https://hygall.com/607749403
view 855
2024.10.11 10:26
KakaoTalk_Photo_2024-10-10-16-08-33 005.jpeg
KakaoTalk_Photo_2024-10-10-16-08-34 007.jpeg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신 노엘은 살짝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허니가 알바하던 카페를 지나쳤음. 
일찍부터 마신 덕택에 아직 카페가 문을 닫기 전이었고, 습관처럼 불빛이 새어나오는 유리창을 통해 안쪽을 흘깃 쳐다본 노엘은 그 자리에서 멈춰섰지.

술기운에 헛게 보이나 싶어서, 근데 씨발 그정도로 마시진 않았는데.

눈을 비비적 거리고 다시한번 가게 안을 쳐다보았는데도 여전히 익숙한 인영이 보이자, 거칠게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음.


“어서오세요”
“너 왜 여기있냐?”
“..일하는 중이니까?”

그걸 씨발 누가 몰라,
카운터에 한 쪽 턱을 괸채 구부정하게 기대 책을 읽고 있던 허니는 짤랑 소리와 함께 등장한 노엘을 보고서도 전혀 놀란 눈치가 아니었음.
마치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본 단골을 대하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계산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겠지.
오히려 노엘만 그런 허니비가 황당해서. 

런던에 있다던 애가 왜 여기 있나 싶어 인상을 살짝 쓴 채 추궁하듯 쳐다보는 시선이 이어지자 허니는 작게 아, 하더니 말을 이었음

“방학이라 집에 왔지.”
“방학?”
“응, 오랜만이네. 늘 마시던걸로?”

그걸로 대화는 끝. 역시나 허니는 그 외에 별다른 물음이 없었어. 분명 몇달만에 마주한건데도 넌 어떻게 지냈냐느니, 요즘은 무슨일을 하냐느니 그런 형식적인 질문도 하질 않았지.
그저 익숙한 동작으로 차를 끓여 노엘 앞에 놔주고는 금새 옆에 놓인, 노엘은 평생 읽어도 다 못읽을만큼 두꺼운 책을 읽어내려갈 뿐.  
노엘을 향해서는 그 어떤 관심 한톨도 내비치지 않았음. 
술기운에 취한 노엘은 거의 환상이라도 보는 냥 허니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런 시선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책에 몰두한 얼굴을 보던 노엘은 그쯤에서야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겠지. 얘 나 싫어하나?

“야"
“응?”
“너 나 존나 싫어하냐?”
“아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여전히 맹한 표정으로 눈을 맞추는 허니와 말없이 시선을 주고 받던 노엘은  “뭐 더 필요해?” 하는 물음에 가만히 허니의 표정을 살폈음.  

그냥 관심이 없는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노엘의 눈을 조금도 피하지 않는 허니는 설핏 웃음을 흘리곤 “근데 곧 문 닫을 시간이야. 빨리 마셔야 할 것 같은데” 하고 느긋하게 말했음. 그 말에 눈썹을 한번 움찔한 노엘은 살짝 식은 차를 그대로 한 입에 털어넣고 빈 잔을 허니에게 건네며 질문을 던졌지


“방학동안에는 여기서 계속 일해?” 
“글쎄, 일단 이번 방학은 사장님이 급하게 부탁하셔서 하기로 했는데 다음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문은 언제 닫는데?”
“너 나가면?”

축객령같이 들리는 말에 노엘은 인상을 찌푸렸음. 
그러거나 말거나 허니는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살짝 웃음기를 띈채로 그러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 하고 덧붙였지. 
하, 똑부러진 거 맞네. 하며 낮의 엄마와의 대화를 떠올리던 노엘은 간다, 가 하고 카페를 나왔음. 







그 후로 다시 일을 떠나기 전 몇일간 집에 머물던 노엘은 카페에 출근도장을 찍었음. 다시 예전과 같았지. 조용히 바 테이블에 앉아 차를 음미하며 몽상에 빠져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동안 허니는 그저 제 할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음. 자주오네 하며 가볍게 나누는 스몰톡이라던가  서비스를 준다던가 하는 넉살은 여전히 허니비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지. 그럼에도 어쩐지 일하는 허니비의 뒷모습을 보고있으면 덩달아 평온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노엘은 몇일 휴가를 만끽했음. 그러다 다시 로디일을 떠나던날 이번에는 허니에게 말을 했음. 나 다시 일하러 간다, 하는 말에 허니는 조금 놀란 듯 노엘을 쳐다봤지.
그 얘길 나한테 왜..? 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에 노엘은 괜히 “뭔데 그 표정은? 씨발.” 하고 멋쩍어했음.
그런 노엘의 마음을 읽은건지 허니는 금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잘 다녀와. 나도 곧 런던으로 다시 가 " 하고 얘기해줬지.


“언제가는데.”
“다음주?”
“또 오냐? 다음 방학에?"
“어.. 오긴 오겠지? 여기서 일 할지는 모르겠고..”
“다음 방학은 언제고?”

노엘의 캐묻는 듯한 질문에도 여전히 허니는 순순히 대답해줬음.

보통 이쯤 했으면 이거 지금 나한테 수작거는 건가? 하는 의심정도는 해줘야되는거 아니냐.

누가 들어도 의심이 갈만한 그런 질문을 던져도 여전히 허니는 아무 동요가 없었음. 눈치가 어지간히 없는건지, 아님 그만큼 노엘에게 관심이 없는건지. 아마 후자에 가깝겠지. 
그렇다고 노엘도 진짜로 허니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거나 하는건 분명히 아니었음. 노엘은 보통 좀더 열정적인 타입에 끌렸으니까.
그저 허니비에게서 전해져오는 평온함을 다른곳에서 찾기 어렵다는 게 아쉬울 뿐.


“그래 그럼 다음에 봐”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온 노엘은 정말로 그 다음 방학에 허니를 만났음.
허니는 방학이면 항상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돌아왔고, 장학금을 계속 타먹으면서도 나름의 용돈을 벌어가겠답시고 동네 카페나 펍 같은곳에서 소소한 알바를 했겠지.
노엘은 그때마다 용케도 허니의 알바처를 잘 찾아냈음. 사실 찾아냈다기보단 온동네 어른들의 자랑거리이던 허니가 방학을 맞아 맨체스터로 돌아오면 어른들 사이에 금새 소문이 퍼지곤 했으니 노엘도 모를 수가 없었지. 그쯤에서야 노엘은 허니가 합격한 대학이 법대라는 걸 알고 뻐킹, 진짜 대단한 놈이었네.. 하고 한번 더 감탄을 했겠지. 




그렇게 한두해 더 허니의 방학과 노엘의 휴가 타이밍이 맞게되면 이어지던 간헐적 만남은 역시나 곧 끊어졌음. 
노엘이 로디일에 짤리고 맨체스터로 돌아온 그 계절은 아직 허니비의 방학까지는 한참 남은 시점이었지.
이제 또 무슨일을 찾아야하나 머릿속이 막막하던 노엘은
허니비가 오기를, 허니비가 와서 그 특유의 평온함을 나눠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기대는 금새 와장창 깨져버리고 말았음


“허니? 허니는 이제 안오지. 비씨네 가족이 이사갔잖니” 

순간 멍해진 표정으로 노엘이 할말을 잃자 페기의 “못 들었니? 너희 제법 친한줄 알았는데” 하는말에 노엘 역시 생각했음



'그러니까요. 나도 우리가 제법 친한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