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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4 20:05
https://hygall.com/602674105 <이 남자랑
https://hygall.com/611038399 <이런..저런..짓을 하게됨
내 집이 아닌 옆집에서 자면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옆집은 내 집이 아님. 집주인이 위험해 보임. 집주인이랑 안 친함. 집주인이랑 한 침대를 쓰면 더 위험함.
집주인이랑 안 친한데 한 침대를 왜 쓰냐고? 일단 들어봐.
난 그 집 주인을 짝사랑 중임. 그 집 주인은 나랑 잘 생각이 있지만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음. 나쁜 새끼임. 가끔 기대하지 않은 부분에서 신경써줌. 더이상 마음 주면 안 됨.
그 집에 가기 전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음.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 대충 옆집에서 자는 건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 말임.
그렇게 많은 문제가 있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집에서 자버렸는데 말이지. 깨어나고 나니까 온갖 문제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심해진 거야.
근데 심지어 생각지도 못한 문제까지 있네?
“무거워··· 아ㅍ, 무거, 아니 아파, 아니 무ㄱ,“
옆집남자랑 자고 일어난 아침에 내가 하게 될 첫 마디가 이딴 거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도 진짜 어쩔 수가 없었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선택할 수 있는 거였으면 나야 안 아픈 걸 골랐겠지.
그게 뭐든.
잠든 옆집남자 팔은 무거웠고 몸은 부서질 것처럼 아팠음.
아니? 부서질 것처럼이 아니라 부서진 것처럼 아픈 거임.
본능적으로 눈 번쩍 떴을 때 처음엔 무겁다는 생각 밖에 없었음. 그게 뭔지도 몰랐지.
정신 차리고 나서야 몸에 덮은 이불 위로 팔 하나가 얹어져 있다는 걸 알았음.
기다란 팔을 따라 시선을 옮긴 덕분에 팔 주인이 엎드려서 자고 있다는 정보를 습득함.
그거 보고 어제 있었던 일 잠깐 떠올린 다음 팔을 밀어냄. 이 아니라 밀어내려고 했음. 비명 지를 뻔 함.
팔이 그렇게 무거웠냐고? 가볍진 않았지. 문제는 옆집남자 팔보다 내 팔이 무거웠어.
내 팔은 내 거 아님? 분명히 내가 달고 다니는 건 무게를 크게 못 느껴야 하는 거잖아. 무게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데 내 팔이 무거워서 비명까지 지를 뻔 함.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근육 하나하나가 근육통으로 아프고 쑤셨음.
팔만 아픈 건 차라리 참을만 하지.
조금씩 움직여보면서 근육을 의식하자마자 온갖 곳에서 무게와 통증이 느껴짐. 팔만 그런 게 아니라 온몸이 그 모양이었던 거야.
어느 정도였냐면 자고 있는 옆집남자 깨워서 책임지라고 하고 싶을 만큼 아팠음.
옆집남자가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어젯밤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뭐라도 어떻게든 해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아팠어.
남의 팔 무게며 내 팔의 고통 때문에 잠깐 허우적대다가 어떻게 팔을 밀어내긴 함.
사람이 급하니까 어떻게 뭐라도 되긴 되더라.
끝이 아님. 이번엔 몸을 움직이려니까 또 죽겠는 거임.
온몸에 근육통이 없는 부위가 없어. 허우적거리다 보니까 팔에는 멍든 곳도 몇 군데 있음.
이건 언제 생긴 걸까. 잡아채서 고정시켰을 때? 아니면 뒤에서 붙잡았을 때..?
모르겠어. 어차피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짐? 원인 찾는다고 기억 뒤지면서 곱씹어 보다가 내 얼굴만 빨개지겠지.
그냥 순수하게 고통 때문에 앓는 소리내면서 몸이나 일으켜야 했음.
근데 또 막상 앉고 보니까 막막함.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
전라에 옷도 없고 속옷도 없음. 평소보다 일찍 눈 뜬 덕분에 여유가 있긴 하지만 출근 준비 해야 함. 출근하려면 샤워도 해야함.
어제 옆집남자가 대충 닦은 덕분인지 찝찝하진 않지만, 그렇게 시달린 몸으로 출근하는 건 좀 그렇잖아.
씻고 나면 긴 머리도 말려야지 옷도 골라 입어야지.
그보다 지금 출근이 문제야?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니까.
물론 출근도 문제긴 하지. 그건 매일, 평생. 항상 문제야.
어쨌든 여기서는 따지자면 현관문 두 개만 지나면 내 집이긴 함. 그렇다고 벗고 나가서 벗고 들어갈 수는 없잖아.
이 시간에 같은 층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쳐도. 나한테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있을 거 아님?
옆집남자한테 옷 좀 빌려달라고 할까? 그게 제일 나을 것 같지? 나한테 맞는 사이즈는 없겠지만 당장은 몸만 가리면 될 것 같음.
옆집남자 옷이 내 몸을 가릴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혹시 내가 고뇌하는 동안 옆집남자가 일어났나 해서 돌아봤더니 엎드린 채로 잘 자고 있더라. 원래 야행성 인간인가. 아니면 밤에 자주 돌아다녀서 그럴 수밖에 없는 건가?
하여튼 나랑 다르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는 타입이 아닌 건 분명함.
옷 하나 빌리는 정도면 깨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사실 깨워도 곤란하긴 함. 무슨 대화를 할 건데. 다짜고짜 옷만 빌려달라고 한 다음 다시 재우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지.
보통 원나잇한 사람들은 아침에 무슨 대화 하냐? 좋은 아침? 아침 식사 하셨어요? 했겠냐? 뭐 이런 거?
차라리 옆집남자가 잠들어 있는 틈에 나가는 게 낫지.
그래서 침대에서 살금살금 내려감. 이불도 살며시 들어 옮기고 침대 옆에 서봄. 다리도 안 아픈 데가 없음. 침대에 다시 누울 뻔 함. 진짜 병가 내도 되는 수준이었다고.
물론 온몸이 아픈 게 옆집남자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그래도 그냥 전부 다 옆집남자 때문인 걸로 치자.
당사자한테 물어봐도 아마 상관 없으니까 그러라고 할 걸. 응.
하여튼 그 성한 곳이 없는 몸으로 방 안을 걷기 시작했음. 소리도 크게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근데 어디를 뒤져야 내가 입을 만한 옷이 나올까? 옆집남자 옷차림 보면 후드티같은 것도 자주 입던데. 그런 거 하나만 입으면 내 몸은 얼추 다 가릴 수 있을 것 같음.
목표물 정하고 살금살금 옷장으로 걸어감. 도중에 옆집남자가 아직 잠들어 있는지도 간간히 확인했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저 덩치를 누가 업어가기는 힘들겠지..?
그보다 옷장까지 가기도 전에 운 좋은 일이 하나 일어났어. 옆집남자 방 한 켠에 작은 테이블이랑 의자가 하나 있거든?
거기 의자에 후드티가 걸쳐져 있는 거임!
입었다가 대충 벗어둔 거겠지. 누군가가 정리 정돈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게 이렇게 다행인 건 처음일 거임.
조용히 의자 앞으로 다가가서 후드티를 들었어. 내 몸에 살짝 대보기도 했는데 역시 못해도 허벅지까지는 가려질 것 같음.
조용히 껴입고 또 침대 쪽 돌아봤는데 옆집남자는 여전히 뒷통수만 보이게 잘 자고 있었어.
그리고 한숨 쉬면서 돌았는데 순간 익숙한 향이 나는 거임. 내가 입은 후드 앞 부분 살짝 들고 냄새 맡아봄.
옆집남자한테서는 항상 거의 비슷한 냄새가 나거든? 땀냄새나 역한 냄새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음. 내가 짝사랑 중이라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랬어. 처음부터.
항상 맡아지던 체취를 말로 구현하려고 노력해 보자면.. 짙은 담배랑 옅은 비누가 섞인 살 냄새?
그 비누 냄새가 뭔지는 어제 욕실에서 내 몸으로 확인했지. 같은 비누랑 같은 샴푸를 써봤으니까.
내가 입은 후드에서 정확히 그 냄새가 났어.
“... .....”
이게 객관적으로 좋은 냄새인가? 처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맞아. 객관적으로도 좋은 냄새긴 함. 옆집남자를 보기만 해도 무서웠을 때도 얼핏 좋은 냄새라고 느끼긴 했던 것 같음.
다만 특별히 좋은 냄새라고 인식한 적은 없었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까먹고 입은 옷 냄새나 맡고 있을 만큼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겠지.
그치만 생각해 봐. 옆집남자한테 직접 대고 냄새를 맡을 수는 없잖아. 근데 옷에서는 그 냄새가 남.
옷은 나한테 왜 냄새를 맡냐고 항의할 수 없잖아. 변태같이 냄새만 맡아도 상기될 만큼 좋아하냐거나,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아무래도 인간은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히 흐려지기 마련인 거지. 이미 옷까지 훔쳐 입은 거 기왕이면 집에 간 다음. 아니 하다못해 방이라도 나간 후에 냄새를 맡았어도 되는 일이잖아.
“냄새 나?”
“흡.”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옷 냄새를 맡고 있으면 누가 봐도 수상하지. 심지어 옷 주인한테 목격 되면 굉장히 곤란하다고.
곤란할 걸 알면 진작 그만두든가 방을 나갔어야지!
비스듬히 등지고 서있는 침대 쪽에서 잠기고 갈라져서 거의 그르렁거리는 목소리 듣고 나서야 거의 발작 일으키면서 옷을 놔버렸음.
“....아니... 별..로..?”
어색하게 중얼거리면서 침대 쪽으로 돌아보니까 자세는 그대로에 고개만 내 쪽으로 돌아와있더라. 내가 밀어뒀던 팔이 올라가서 베개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만 달라짐. 잠에서 완전히 깬 건 아닌 것 같지?
내가 언제부터 옷 냄새를, 왜 맡고 있었는지까지는 몰랐겠지?
“옷-이.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이거 좀 빌려도 되..나..? 하고.”
“하루 입은 것 같은데. 냄새 나면 다른 거 입어.”
좋아. 내가 왜 냄새를 맡고 있었는지 들키지 않았다는 건 확실함.
그보다 내가 본인 옷을 입고 가든 들고 가든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더라. 그냥 졸린 것 같음. 더 자고 싶은데 내가 부스럭거리니까 눈 뜬 김에 뜨고 있는 것 같음.
“바로 옆집 갈 건데.. 굳이 남의 옷장을 뒤질 정도는 아니니까.“
”상관없어. 아무거나 꺼내 입어.”
미간도 구겨져서는 눈도 반만 뜨고 깜빡거리는 거 보니까 졸린 거 맞는데. 그냥 더 자지 왜 굳이 친절을 베풀고 있는 거임?
난 이 옷이 입고 싶다고.
이 옷을 집까지 가져가서 아무 눈치도 안 보고 냄새 맡고 싶단 말이야. 오래도 아니고 잠깐이면 돼. 출근 준비하기 전까지만.
“아니 진짜 괜찮아. 이거면 돼.“
”저거 열어서 꺼내 입어.“
그냥 자라니까? 굳이 손으로 어디를 열어야 하는지까지 알려줄 필요 없다고.
왜 저렇게 이상한 데서 친절하게 구는 거임? 내 짝사랑이 우스워?
“그냥.. 이거 입고 갈게. 아. 입고 빨아서 돌려줄게. 오늘이나 내일 몇 시쯤 집에,“
잠깐만. 몇 시쯤 집에 있냐고 물어보는 건 다시 만날 구실 만드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아?
한 번 잤다고 질척거리는 것처럼 보일까? 그치만 옷을 빌려야 하는데 어떡해. 다른 원나잇 하는 사람들은 그냥 옷 훔쳐감?
아니지. 그런 경우는 애초에 옷을 빌릴 일이 없나..? 그래도 그런 경우가 있으면?
아니야. 괜히 말한 것 같음. 어차피 퇴근할 때 데리러 오잖아. 그 때 줄 걸.
근데 또 며칠, 몇 주는 안 나오면? 그게 몇 달이 되면?
결과적으로 난 나한테 맞지도 않는 남자옷이 하나 생기게 되는 건가. 내가 손해볼 건 없네. 역시 괜히 물어봤어.
“...아니야. 그냥 빨아서 문에 걸어둘게.”
아무래도 다시 만날 구실을 만들고 싶었던 게 맞는 것 같음. 얼굴을 안 보고도 옷을 전해줄 방법은 많잖아. 바로 옆 집인데.
아니면 우선 문 두드려 보고 없으면 다음에 줘도 되는 일이고. 맞아. 그냥 자연스러운 구실 하나가 필요했나봄.
“안 빨아도 되는데.“
”아니 그래도 기왕이면..”
”안 돌려줘도 상관없어.“
근데 옆집남자는 옷 얘기하는데 그게 왜 이렇게 내 얘기같이 들리냐.
아마도 배려일 말들이 내 귀에는 난 굳이 너 안 만나도 되는데? 너랑 만나든 말든 상관없는데?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옆집남자는 누구 체취 때문에 하던 것도 다 까먹고 냄새나 맡고 있어본 적 같은 거 없겠지? 누가 미치게 신경쓰이고 너무 상관 있어서 상관없다는 말 대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해본 적도.
..없을까?
남자친구 있을 때는 걔 이전 연애같은 거 신경 써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짝사랑으로 끝날 것 같은 게 처음이라 그런가? 좀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함.
누구를 질투해야 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 ....난 출근 준비 때문에 일어난 거니까 더 자.“
“너 가면.”
아무래도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음. 별 의미도 없는 말마다 나혼자 일희일비 하고 있잖아.
졸음 묻은 눈꺼풀도, 잠긴 목소리도 후드티 모자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잖아.
역시 어제 일은 밤새 혼자 앓고 말아야 했던 거임.
“그럼.. 갈 테니까 자.”
지금이라도 얼굴 그만 보고 집에 가려고 급하게 몸 돌렸음. 근데 왜 일어나?
이불 안 쪽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있는 건 옆집남자도 마찬가지일 텐데.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걸음 멈췄는데 아무래도 아닌가봄. 이불 밖으로 나온 건 아니고 몸 일으켜 앉아서 멍하니 벽 보고 있더라.
잠이 덜 깬 거지. 난 집에 가면 되겠지?
“이 쪽으로 와 봐.”
“···왜?”
그냥 지나가려고 했더니 또 와보래.
목소리도 한참 잠겼고 눈도 반만 뜨고 있으면서 왜 불러 세우는데.
심지어 내가 안 다가가고 가만히 서있으니까 소리내서 웃기까지 함. 낮고 짧았지만 어쨌든 웃은 건 웃은 거잖아.
“뭘 그렇게 경계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근데 왜?“
“출근하지 말고 한 번 하고 가라고 할까 봐?“
”경계한 거 아니라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무시하고 나가버릴 수는 없잖아. 하는 수 없이 침대 쪽으로 다가가니까 조금 더 가까이 오라는 것처럼 손짓 하더라.
더 가까이 가려면 다시 침대에 올라가야 하는데.
머뭇거리다 결국 무릎으로 짚고 올라가긴 했는데 침대 끝 쪽에서 멈춤.
옆집남자는 졸음이 안 달아나는지 얼굴 한 번 쓸어내리고 머리도 한 번 쓸어넘기고 나서야 내 위치를 확인했어.
그러더니 내 쪽으로 몸을 숙이는 거임? 난 굳어서 보고만 있었는데 내 옷 멱살을 살짝 잡아당김.
고개 숙이고 옷 냄새 맡아봄.
...내가 냄새를 여러 번 맡는 걸 보긴 했구나. 나같아도 누가 내 옷을 입고 그렇게 냄새 맡는 것 같으면 신경 쓰이는 데다 궁금하기도 할 것 같아.
그건 그거고 어차피 이미 붙잡혔는데 어캄. 가만히 보고 있기만 했지.
“담배냄새 나네.“
“알아.”
“상관없어?“
옷을 놓긴 했는데 쓸데없이 가까워졌잖아. 겨우 그거 물어보는데 꼭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야 됨?
아침부터 심장 뛰게.
“어차피 문 하나, 아니 문 두 개 지나가는 거리만큼 입을 건데 뭘.“
”그런 것치고는 냄새를 오래 맡던데.“
아. 꽤 본 거 맞구나. 어쩌지? 복도 난간 밖으로 도망치고 싶다.
가 아니라 왜 이렇게 끈질긴 거임.
“그건 그냥.. 맡아본 거야.“
”다른 거 입어.“
”겨우 옆집 가는 거라 괜찮다니까.“
”신경쓰여서 냄새 맡고 있었잖아.“
“그건 진짜 그냥... 그냥 맡아본 거고.“
”갈아입어도 기분 안 나쁘니까 갈아입어.“
“나도, 냄새나도 기분 안 나빠.“
잠깐만. 뱉고 나서 깨달았는데 이건 좀 이상했지?
옆집남자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보니까 듣는 쪽도 이상했던 거 맞는 것 같음.
아무래도 내가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어캄?
“ㅊ.. 출근 늦겠다. 갈게.“
어카긴 뭘 어캄. 도망가야지. 바로 침대 내려가서 닫힌 문 열고 닫아버림.
그리고 자책하면서 현관문으로 걸어감.
왜 똑같이 두 사람이 같은 행위를 했는데 난 옆집남자처럼 태연하지 못한 거야.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나도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건 옷 냄새나 신경쓰고 싶은데.
“후- 어?“
”...“
아무리 인생에 복잡한 일이 있어도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잖아. 별 수 없이 한숨 쉬면서 현관 문 열었는데 거대한 그림자가 지는 거임.
흠칫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다음 고개 들었는데 빵집 아저씨였음. 카를로스씨 말이야. 빵집이나 펍 아닌 장소에서 보니까 더 무섭게 생기심.
아저씨도 내가 갑자기 문 여니까 놀랐는지 뒷걸음질로 물러났다가 문 뒤로 몸 기울임.
몇 호인지 보려는 거겠지. 집 주인이 아닌 사람이 나왔으니까.
“어.. 안ㄴ.. 안녕하세요..?”
“단골손님은 이 옆집이라고 안 했어요?”
호수 확인까지 하고 와서 날 위아래로 훑어봄.
아침부터 옆집에서 나오지를 않나 옷차림은 그 옆집 주인 상의만 달랑 걸치고 나오지를 않나. 누가 봐도 전날 뭘 했는지 뻔하지.
두 사람은 얼마나 친하길래 아침부터 집에를 찾아오는 거야. 하필 타이밍은 왜 이 모양이고. 사람 민망하게 말임.
“맞..는데요.“
”허어. 어쩐지 연락이 안 되더라.“
카를로스 아저씨가 내가 나온 집 안 쪽을 힐끔 쳐다봄. 옆집남자가 항상 핸드폰을 끼고 문자며 전화며 하던 걸 보면 옆집남자 이야기겠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돼서 찾아온 건가. 조금 더 민망해짐.
“좋은..아침.. 입니다... 저는 출근 준비 해야해서 가볼..게요..?“
”우리 단골손님.. 이것보다는 현명하실 줄 알았는데.“
근데 문 밖으로 슬쩍 비켜서 나가자마자 그러는 거임.
이것보다는 현명할 줄 알았다고? 옆집남자랑 원나잇 좀 했다고 현명하지 못할 건 뭔데?
뭐 겨우 하룻밤 때문에 내 인생에 지장이라도 갈까 봐? 하루종일 그 생각 곱씹느라 일도 못하고 옆집남자 마주쳐보려고 기웃거리고 옆집남자는 나한테 마음 없는 거 뻔히 알면서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뻐하고 울고 웃고 뭐. 그럴까 봐?
맞네. 나 그럴 예정이었네. 현명하지 못했던 게 맞지. 응.
울컥해서 돌아보긴 했는데 딱히 할 말은 없더라.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저 쪽도 할 말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카를로스 아저씨는 미리 조언도 해줬잖아. 저런 남자한테 빠지면 나락 가기 십상이라는 거 말이야.
“젊은이들끼리 치기 어린 불장난 정도야 제 때 불만 끄면 다행이지만. 옆집은 너무 가까워요.“
”...“
”인근 지역에 사는 직장 동료나 친구한테 이 동네에 산다는 말 해본 적 있습니까?“
”..네?”
“여긴 어지간히 갈 곳 없는 인간들만 모이는 곳이에요. 우리 단골손님은 내 생각에 처음부터. 여기 속할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잘못 흘러 들어왔다 싶었지.“
”아니 그게..“
”근데 심지어 또 하필 왜 이 집에.. 직장 동료든 이 지역 알 만한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 동네 아는지 한 번 물어봐요. 그리고 가능한 빨리 준비해서 이사 나가요. 계약이나 서류 문제는 내가 여기 건물 주인이랑 얘기 해둘테니까.“
“어.. 여기 주인이랑도 아세요?”
“이 동네는 그래요. 다들 어디선가 연결 돼 있어요.“
카를로스 아저씨까지 저 얘기야. 나만 빼고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이어져 있다는 거.
“하여튼 젊고 앞길 창창한 사람이 저런 새끼한테 인생 낭비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카를로스 아저씨랑 옆집남자는 대체 무슨 사이임? 무슨 사이길래 친해보이는 것 같았다가 또 어떨 때는 당장이라도 싸울 것 같았다가 하는 걸까.
“뭐 딱히.. 인생 낭비할 만큼 만나지도 않았는데요.”
“이 동네에 대해 알고 나면 하루도 아까워질 겁니다. 단.“
나름 말대답이라도 해보려는데 카를로스 아저씨가 내 쪽으로 살짝 거리를 좁혔음. 빵집에 있을 땐 그래도 이렇게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난 심지어 달랑 맨발에 후드티 차림이잖아.
“이 동네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외부인은 자칫하면 머리에-“
괜히 겁 먹어서 숨 삼키는데 카를로스 아저씨가 한 손 살짝 들어올려서 검지 손가락으로 내 머리 쪽을 가리키는 거야.
외부인은 자칫하면.. 머리에-
그 손짓이랑 말만 듣고도 뒷 말은 대충 예상할 수 있었음.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을 잊을 리가 없잖아.
실제로 들어본 건 처음인 소음, 처음 보는 빛이라 해도 그게 뭔지 모를 리가 없지.
옆집남자는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규칙이라고 했어.
카를로스 아저씨가 말하는 것도 그거겠지. 외부인인 내가 친구나 직장 동료한테 이 동네에 대해.
가령, 어제 있었던 일을 발설하면-
나도 같은 일을 당하게 될 거라는 경고일 거야.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내 머리로 향하는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찰나였음.
“ㄱ,”
“아침부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거칠고 투박한 손이 다른 커다란 손에 저지됐어. 내 손으로는 다 잡지도 못할 것 같은 손을 가볍게 잡아채서 아래로 내렸음.
아까보다는 덜 잠긴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집까지는 왜 찾아 왔고.“
옆집남자가 담배 물고 서있음.
아침부터 나 나가자마자 담배부터 문 건가. 아직 졸린 것 같더니 잠보다 담배야?
“왜 집까지 찾아왔겠습니까.”
“왔으면 들어오든가. 왜 여기서 시끄럽게 굴어.”
“시끄럽게 굴 일을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뭐 별 일이라고.”
잠깐만. 방금 그 말에는 내가 타격 입은 것 같은데.
“어제 그러고 바로 잠적해..서... 잠깐. 설마.“
난 그냥 슬쩍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눈치 보고 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또 카를로스 아저씨가 내 쪽을 돌아보는 거야.
나 계속 여기 서있어야 하는 거임? 이제 슬슬 진짜 출근 준비 해야 하는데.
”어제 같이 있었, 아니 혹시 어제 그 일이. 그래서 둘이...!”
카를로스 아저씨도 어제 그 일을 알고 있나 봐. 어제 그러고 바로 잠적했다고 말한 거 보면 옆집남자가 뭔가 연락하면서 숲에서 나온 게 그럼. 카를로스 아저씨랑 연락한 거였나?
아침부터 머리가 복잡한데 아저씨가 아예 두 손으로 내 어깨까지 붙잡음.
“아니 그걸 보고도 이 인간 집에 따라 들어갈 생각이 든답니까??”
붙잡고 짤짤 흔들기 시작함. 별로 힘이 크게 실린 건 아니라 아프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았어.
그런데도 덩치랑 기본 골격 차이가 있으니까 속절없이 짤짤 흔들림. 약간 어지러움.
옆집남자가 또 한 손으로 붙잡고 떼어놔서 멈출 수 있었음. 대신 아저씨가 이번엔 옆집남자 쪽으로 돌아섬. 그 쪽도 양 쪽 어깨 붙잡았는데 나처럼 흔들리진 않더라.
옆집남자는 와중에 혼자 평온하게 담배 피움.
“아니 그, 하.. 도와준 거야 그렇다 치고 왜 멀쩡한 사람을 흔듭니까?”
“사람 흔드는 건 내가 아니라 너고.“
”물리적으로 흔드는 거 말고요!! 계약 기간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두고 재계약만 못하게 방해 하면 끝날 일을..!“
“지금 그거 저랑 제 집 계약 얘기 맞아요..? 제 앞에서 대놓고요...?“
하여간 이 동네 사람들 한결같이 이상해. 위험하고 무서운데 이상해. 이상하게 자꾸 위험한 것도 안 위험해 보이고 무서운 것도 안 무서워 보이고 이상함.
너무 이상해서 무서운 얘기가 안 무섭게 들릴 지경임.
“아무튼.. 그럼 전 이만 출근 준비 하러,“
”아시겠지만 불장난은 한 번이면 족합니다. 이런 남자한테 빠지면 나락 간다니까?“
”출근 준비 하러.. 가볼게요..“
”이 인간.. 사람이라곤 쓰고 버리는 법 밖에 몰라요. 쓸모 있으면 제멋대로 가져다 쓰고 쓸모 없어지면,“
”카를로스. 그만 하고 들어와. 볼 일 있어서 온 거 아니야?“
“...난 우리 단골손님 안목 믿어요. 예?”
“너도 들어가. 출근 안 해?“
“...”
“믿습니다. 예??”
“들어오라고.”
옆집남자가 한 번 더 말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아저씨도 집 안 쪽으로 들어갔음.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나한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가, 아래로 꺾었다가 의미 모를 수신호를 몇 번이나 날린 후에야 사라짐.
나도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긴 했어. 현관문 열고 닫은 다음 잠깐 그대로 서서 곱씹어봄. 옆집남자는...
사람이라곤 쓰고 버리는 법 밖에 모르는구나. 쓸모 있으면 제멋대로 가져다 쓰고 쓸모 없어지면.
내가 옆집남자 손에 어제 그 변태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뜻일까?
어젯밤은 내가 옆집남자를 이용하는 마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옆집남자도 내가 쓸모 있으니까 받아줬던 것도 맞긴 하겠지.
사람 속 아프게 다정한 순간들은 늘 그렇듯 별로 어려울 것도 아닌, 쉬운 일이었겠지.
나도 다 아는 거잖아. 새삼스럽게 새로울 것도 없고 상처받을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출근 해야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겠지.“
그냥 한숨 한 번 쉬고 집 안으로 들어감.
들어가자마자 발에 뭐가 채임.
밑에 보니까 옆집남자 겉옷이더라.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맞아, 어제 우리 집에 먼저 들어왔었지.
겉옷만이 아니라 내 방에 옆집남자 상의도 있을 거 아님?
방에 들어가 보니까 당연히 옆집남자가 입었던 상의도 그대로 있음. 핏자국도 말라있었어.
하루 지나서 그런가, 아니면 그 일 자체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어서 그런가? 피 묻은 옷 봐도 뭔가 실감이 안 남.
이제 진짜 씻고 준비해야 하는데. 이거 여기 두고 가면 하루 종일 신경 쓰이겠지?
결국 집어 들어서 팔에 걸치고 다시 현관으로 감. 거기서 겉옷도 집어 들었어.
“··?”
근데 들자마자 뭐 묵직한 게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임?
겉옷 주머니에서 떨어질 만한 크기가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바닥으로 몸 숙이고 손 뻗었다가 그대로 굳음.
...까맣고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물체가 또 뭐가 있을까?
그딴 설명 없이 모양만 봐도 총 말고 다른 게 있겠냐. 총같이 생긴 건 장난감 총 밖에 없을 거 아니야.
어제 옆집남자가 들어올 때 들고 있던 겉옷을 여기 내려뒀었지. 아마 그 때 같이 빼놨나봄?
이게 이렇게 막 굴러다녀도 되는 거임?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옆집남자 겉옷으로 다시 덮음. 그리고 그 안에 감싸지게 잘 접어서 안았어.
이것만 돌려주고 오면 되겠지.
“출근 안 해?”
문 두드리고 잠깐 기다리니까 옆집남자가 금방 나왔음.
그냥 옷 주러 왔다고 하면 되겠지.
”이거 주고 가려고.“
옷 대충 접은 모양으로 내밀었는데 옆집남자가 한 손으로 받으려고 하는 거임. 도로 물리니까 얼굴 쳐다봄.
뭐야. 본인이 어제 내 집에 뭘 놓고 갔는지도 몰라? 그게 그렇게 소홀히 관리 될 물건이 아니지 않냐?
“아니 이거 안에... 두 손으로 받아가야 할 것 같은데.”
“공손하게?”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안에 다른 것도 들었으니까..“
진짜 뭔 소리임? 온몸에 타투는 휘감아 놓고 뭘 공손하게야. 일부러 나 놀리려고 저러는 건지 가끔 다 알면서 이상한 소리 하더라.
근데 다시 내밀었는데도 한 손만 내미는 거임. 그렇게 받아들면 내용물이 떨어질 텐데.
도로 물리려는데 받아드는 게 아니라 겉옷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음. 뒤적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그거.. 꺼내서 살펴봄.
”사격 배운 적 있어?”
“뭐?“
살펴보더니 나한테 뜬금없이 그러는 거야. 난 그거 보기만 해도 껄끄러운데.
“총 쏘는 법 알아?”
“..아니.”
근데 재차 물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음. 이번엔 별 말 없이 손만 내밀더라.
그제서야 들고 있던 옷을 안정적으로 건네줄 수 있었음.
“잘할 것 같은데. 다음에 알려줄게.“
별로 배우고 싶지 않은데. 심지어 옆집남자한테 배우고 싶지는 않은데.
미처 싫다고 말할 새도 없이 옆집남자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버림.
진짜 제멋대로야. 총 쏘는 건 가르쳐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항의하고 싶어도 이제 진짜 시간이 촉박해서 집으로 들어가야 했음.
들어가자마자 급하게 씻고 머리 말리고 옷 갈아입고 가방 챙기고 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 안 들어서 좋았어.
출근 하는 동안에는 잠깐 생각했고, 출근해서는 일하느라 바빴지.
숨 돌릴 때마다 어제 일어난 일들이나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그래서 더 숨 돌릴 틈 없이 바빴음.
그 때까지만 해도 오늘도 퇴근하면 역에 나와 있을까? 오늘 못 보면 주말에는 볼 일 없을 텐데. 그럼 다음 주에나 보게 되려나. 간간이 그런 생각을 했을 거임.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지.
“···어?”
“왜. 뭐 빠트린 거 있어요?”
“아뇨, 아니에요.”
“그럼 뭐. 아는 사람이라도 봤어요?”
“그-건 아니고. 진짜 별 거 아니에요. 잠깐 딴 생각 하다가.“
”뭐야. 아까 거기 뭐 두고 오기라도 했나 했네.“
여긴 우리가 사는 동네가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일하는 회사 근처도 아니었음. 업무상 볼 일 때문에 잠깐 나온 거였거든. 그러니까 옆집남자도 내가 거기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야.
그치만 옆집남자는 거기에 있었어.
대화 중인 남자들 몇이랑, 옆집남자 팔에 팔을 끼워넣어 안고 기대선 여자 하나랑.
옆집남자도 내가 거기에 있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거야.
알았지만 별로 상관없었겠지.
내가 그 모습에 식은 땀이 날 정도로 호기심을 갖든 당황하든 불안해 하든 질투를 하든.
상처를 받든 말든.
늘 그렇듯 옆집남자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일 거임.
아. 옆집남자랑 원나잇 해본 후기 말이야.
첩첩산중. 점입가경?
총체적으로 다방면으로 아주 아주-
엿같아.
맥카이너붕붕
https://hygall.com/611038399 <이런..저런..짓을 하게됨
내 집이 아닌 옆집에서 자면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옆집은 내 집이 아님. 집주인이 위험해 보임. 집주인이랑 안 친함. 집주인이랑 한 침대를 쓰면 더 위험함.
집주인이랑 안 친한데 한 침대를 왜 쓰냐고? 일단 들어봐.
난 그 집 주인을 짝사랑 중임. 그 집 주인은 나랑 잘 생각이 있지만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음. 나쁜 새끼임. 가끔 기대하지 않은 부분에서 신경써줌. 더이상 마음 주면 안 됨.
그 집에 가기 전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음.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 대충 옆집에서 자는 건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 말임.
그렇게 많은 문제가 있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집에서 자버렸는데 말이지. 깨어나고 나니까 온갖 문제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더 심해진 거야.
근데 심지어 생각지도 못한 문제까지 있네?
“무거워··· 아ㅍ, 무거, 아니 아파, 아니 무ㄱ,“
옆집남자랑 자고 일어난 아침에 내가 하게 될 첫 마디가 이딴 거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도 진짜 어쩔 수가 없었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선택할 수 있는 거였으면 나야 안 아픈 걸 골랐겠지.
그게 뭐든.
잠든 옆집남자 팔은 무거웠고 몸은 부서질 것처럼 아팠음.
아니? 부서질 것처럼이 아니라 부서진 것처럼 아픈 거임.
본능적으로 눈 번쩍 떴을 때 처음엔 무겁다는 생각 밖에 없었음. 그게 뭔지도 몰랐지.
정신 차리고 나서야 몸에 덮은 이불 위로 팔 하나가 얹어져 있다는 걸 알았음.
기다란 팔을 따라 시선을 옮긴 덕분에 팔 주인이 엎드려서 자고 있다는 정보를 습득함.
그거 보고 어제 있었던 일 잠깐 떠올린 다음 팔을 밀어냄. 이 아니라 밀어내려고 했음. 비명 지를 뻔 함.
팔이 그렇게 무거웠냐고? 가볍진 않았지. 문제는 옆집남자 팔보다 내 팔이 무거웠어.
내 팔은 내 거 아님? 분명히 내가 달고 다니는 건 무게를 크게 못 느껴야 하는 거잖아. 무게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데 내 팔이 무거워서 비명까지 지를 뻔 함.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근육 하나하나가 근육통으로 아프고 쑤셨음.
팔만 아픈 건 차라리 참을만 하지.
조금씩 움직여보면서 근육을 의식하자마자 온갖 곳에서 무게와 통증이 느껴짐. 팔만 그런 게 아니라 온몸이 그 모양이었던 거야.
어느 정도였냐면 자고 있는 옆집남자 깨워서 책임지라고 하고 싶을 만큼 아팠음.
옆집남자가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어젯밤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뭐라도 어떻게든 해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아팠어.
남의 팔 무게며 내 팔의 고통 때문에 잠깐 허우적대다가 어떻게 팔을 밀어내긴 함.
사람이 급하니까 어떻게 뭐라도 되긴 되더라.
끝이 아님. 이번엔 몸을 움직이려니까 또 죽겠는 거임.
온몸에 근육통이 없는 부위가 없어. 허우적거리다 보니까 팔에는 멍든 곳도 몇 군데 있음.
이건 언제 생긴 걸까. 잡아채서 고정시켰을 때? 아니면 뒤에서 붙잡았을 때..?
모르겠어. 어차피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짐? 원인 찾는다고 기억 뒤지면서 곱씹어 보다가 내 얼굴만 빨개지겠지.
그냥 순수하게 고통 때문에 앓는 소리내면서 몸이나 일으켜야 했음.
근데 또 막상 앉고 보니까 막막함.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
전라에 옷도 없고 속옷도 없음. 평소보다 일찍 눈 뜬 덕분에 여유가 있긴 하지만 출근 준비 해야 함. 출근하려면 샤워도 해야함.
어제 옆집남자가 대충 닦은 덕분인지 찝찝하진 않지만, 그렇게 시달린 몸으로 출근하는 건 좀 그렇잖아.
씻고 나면 긴 머리도 말려야지 옷도 골라 입어야지.
그보다 지금 출근이 문제야?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니까.
물론 출근도 문제긴 하지. 그건 매일, 평생. 항상 문제야.
어쨌든 여기서는 따지자면 현관문 두 개만 지나면 내 집이긴 함. 그렇다고 벗고 나가서 벗고 들어갈 수는 없잖아.
이 시간에 같은 층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쳐도. 나한테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있을 거 아님?
옆집남자한테 옷 좀 빌려달라고 할까? 그게 제일 나을 것 같지? 나한테 맞는 사이즈는 없겠지만 당장은 몸만 가리면 될 것 같음.
옆집남자 옷이 내 몸을 가릴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혹시 내가 고뇌하는 동안 옆집남자가 일어났나 해서 돌아봤더니 엎드린 채로 잘 자고 있더라. 원래 야행성 인간인가. 아니면 밤에 자주 돌아다녀서 그럴 수밖에 없는 건가?
하여튼 나랑 다르게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는 타입이 아닌 건 분명함.
옷 하나 빌리는 정도면 깨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사실 깨워도 곤란하긴 함. 무슨 대화를 할 건데. 다짜고짜 옷만 빌려달라고 한 다음 다시 재우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지.
보통 원나잇한 사람들은 아침에 무슨 대화 하냐? 좋은 아침? 아침 식사 하셨어요? 했겠냐? 뭐 이런 거?
차라리 옆집남자가 잠들어 있는 틈에 나가는 게 낫지.
그래서 침대에서 살금살금 내려감. 이불도 살며시 들어 옮기고 침대 옆에 서봄. 다리도 안 아픈 데가 없음. 침대에 다시 누울 뻔 함. 진짜 병가 내도 되는 수준이었다고.
물론 온몸이 아픈 게 옆집남자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그래도 그냥 전부 다 옆집남자 때문인 걸로 치자.
당사자한테 물어봐도 아마 상관 없으니까 그러라고 할 걸. 응.
하여튼 그 성한 곳이 없는 몸으로 방 안을 걷기 시작했음. 소리도 크게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근데 어디를 뒤져야 내가 입을 만한 옷이 나올까? 옆집남자 옷차림 보면 후드티같은 것도 자주 입던데. 그런 거 하나만 입으면 내 몸은 얼추 다 가릴 수 있을 것 같음.
목표물 정하고 살금살금 옷장으로 걸어감. 도중에 옆집남자가 아직 잠들어 있는지도 간간히 확인했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저 덩치를 누가 업어가기는 힘들겠지..?
그보다 옷장까지 가기도 전에 운 좋은 일이 하나 일어났어. 옆집남자 방 한 켠에 작은 테이블이랑 의자가 하나 있거든?
거기 의자에 후드티가 걸쳐져 있는 거임!
입었다가 대충 벗어둔 거겠지. 누군가가 정리 정돈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게 이렇게 다행인 건 처음일 거임.
조용히 의자 앞으로 다가가서 후드티를 들었어. 내 몸에 살짝 대보기도 했는데 역시 못해도 허벅지까지는 가려질 것 같음.
조용히 껴입고 또 침대 쪽 돌아봤는데 옆집남자는 여전히 뒷통수만 보이게 잘 자고 있었어.
그리고 한숨 쉬면서 돌았는데 순간 익숙한 향이 나는 거임. 내가 입은 후드 앞 부분 살짝 들고 냄새 맡아봄.
옆집남자한테서는 항상 거의 비슷한 냄새가 나거든? 땀냄새나 역한 냄새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음. 내가 짝사랑 중이라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랬어. 처음부터.
항상 맡아지던 체취를 말로 구현하려고 노력해 보자면.. 짙은 담배랑 옅은 비누가 섞인 살 냄새?
그 비누 냄새가 뭔지는 어제 욕실에서 내 몸으로 확인했지. 같은 비누랑 같은 샴푸를 써봤으니까.
내가 입은 후드에서 정확히 그 냄새가 났어.
“... .....”
이게 객관적으로 좋은 냄새인가? 처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맞아. 객관적으로도 좋은 냄새긴 함. 옆집남자를 보기만 해도 무서웠을 때도 얼핏 좋은 냄새라고 느끼긴 했던 것 같음.
다만 특별히 좋은 냄새라고 인식한 적은 없었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까먹고 입은 옷 냄새나 맡고 있을 만큼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겠지.
그치만 생각해 봐. 옆집남자한테 직접 대고 냄새를 맡을 수는 없잖아. 근데 옷에서는 그 냄새가 남.
옷은 나한테 왜 냄새를 맡냐고 항의할 수 없잖아. 변태같이 냄새만 맡아도 상기될 만큼 좋아하냐거나,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아무래도 인간은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히 흐려지기 마련인 거지. 이미 옷까지 훔쳐 입은 거 기왕이면 집에 간 다음. 아니 하다못해 방이라도 나간 후에 냄새를 맡았어도 되는 일이잖아.
“냄새 나?”
“흡.”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옷 냄새를 맡고 있으면 누가 봐도 수상하지. 심지어 옷 주인한테 목격 되면 굉장히 곤란하다고.
곤란할 걸 알면 진작 그만두든가 방을 나갔어야지!
비스듬히 등지고 서있는 침대 쪽에서 잠기고 갈라져서 거의 그르렁거리는 목소리 듣고 나서야 거의 발작 일으키면서 옷을 놔버렸음.
“....아니... 별..로..?”
어색하게 중얼거리면서 침대 쪽으로 돌아보니까 자세는 그대로에 고개만 내 쪽으로 돌아와있더라. 내가 밀어뒀던 팔이 올라가서 베개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만 달라짐. 잠에서 완전히 깬 건 아닌 것 같지?
내가 언제부터 옷 냄새를, 왜 맡고 있었는지까지는 몰랐겠지?
“옷-이.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이거 좀 빌려도 되..나..? 하고.”
“하루 입은 것 같은데. 냄새 나면 다른 거 입어.”
좋아. 내가 왜 냄새를 맡고 있었는지 들키지 않았다는 건 확실함.
그보다 내가 본인 옷을 입고 가든 들고 가든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더라. 그냥 졸린 것 같음. 더 자고 싶은데 내가 부스럭거리니까 눈 뜬 김에 뜨고 있는 것 같음.
“바로 옆집 갈 건데.. 굳이 남의 옷장을 뒤질 정도는 아니니까.“
”상관없어. 아무거나 꺼내 입어.”
미간도 구겨져서는 눈도 반만 뜨고 깜빡거리는 거 보니까 졸린 거 맞는데. 그냥 더 자지 왜 굳이 친절을 베풀고 있는 거임?
난 이 옷이 입고 싶다고.
이 옷을 집까지 가져가서 아무 눈치도 안 보고 냄새 맡고 싶단 말이야. 오래도 아니고 잠깐이면 돼. 출근 준비하기 전까지만.
“아니 진짜 괜찮아. 이거면 돼.“
”저거 열어서 꺼내 입어.“
그냥 자라니까? 굳이 손으로 어디를 열어야 하는지까지 알려줄 필요 없다고.
왜 저렇게 이상한 데서 친절하게 구는 거임? 내 짝사랑이 우스워?
“그냥.. 이거 입고 갈게. 아. 입고 빨아서 돌려줄게. 오늘이나 내일 몇 시쯤 집에,“
잠깐만. 몇 시쯤 집에 있냐고 물어보는 건 다시 만날 구실 만드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아?
한 번 잤다고 질척거리는 것처럼 보일까? 그치만 옷을 빌려야 하는데 어떡해. 다른 원나잇 하는 사람들은 그냥 옷 훔쳐감?
아니지. 그런 경우는 애초에 옷을 빌릴 일이 없나..? 그래도 그런 경우가 있으면?
아니야. 괜히 말한 것 같음. 어차피 퇴근할 때 데리러 오잖아. 그 때 줄 걸.
근데 또 며칠, 몇 주는 안 나오면? 그게 몇 달이 되면?
결과적으로 난 나한테 맞지도 않는 남자옷이 하나 생기게 되는 건가. 내가 손해볼 건 없네. 역시 괜히 물어봤어.
“...아니야. 그냥 빨아서 문에 걸어둘게.”
아무래도 다시 만날 구실을 만들고 싶었던 게 맞는 것 같음. 얼굴을 안 보고도 옷을 전해줄 방법은 많잖아. 바로 옆 집인데.
아니면 우선 문 두드려 보고 없으면 다음에 줘도 되는 일이고. 맞아. 그냥 자연스러운 구실 하나가 필요했나봄.
“안 빨아도 되는데.“
”아니 그래도 기왕이면..”
”안 돌려줘도 상관없어.“
근데 옆집남자는 옷 얘기하는데 그게 왜 이렇게 내 얘기같이 들리냐.
아마도 배려일 말들이 내 귀에는 난 굳이 너 안 만나도 되는데? 너랑 만나든 말든 상관없는데?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옆집남자는 누구 체취 때문에 하던 것도 다 까먹고 냄새나 맡고 있어본 적 같은 거 없겠지? 누가 미치게 신경쓰이고 너무 상관 있어서 상관없다는 말 대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해본 적도.
..없을까?
남자친구 있을 때는 걔 이전 연애같은 거 신경 써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짝사랑으로 끝날 것 같은 게 처음이라 그런가? 좀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함.
누구를 질투해야 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 ....난 출근 준비 때문에 일어난 거니까 더 자.“
“너 가면.”
아무래도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음. 별 의미도 없는 말마다 나혼자 일희일비 하고 있잖아.
졸음 묻은 눈꺼풀도, 잠긴 목소리도 후드티 모자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잖아.
역시 어제 일은 밤새 혼자 앓고 말아야 했던 거임.
“그럼.. 갈 테니까 자.”
지금이라도 얼굴 그만 보고 집에 가려고 급하게 몸 돌렸음. 근데 왜 일어나?
이불 안 쪽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있는 건 옆집남자도 마찬가지일 텐데.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걸음 멈췄는데 아무래도 아닌가봄. 이불 밖으로 나온 건 아니고 몸 일으켜 앉아서 멍하니 벽 보고 있더라.
잠이 덜 깬 거지. 난 집에 가면 되겠지?
“이 쪽으로 와 봐.”
“···왜?”
그냥 지나가려고 했더니 또 와보래.
목소리도 한참 잠겼고 눈도 반만 뜨고 있으면서 왜 불러 세우는데.
심지어 내가 안 다가가고 가만히 서있으니까 소리내서 웃기까지 함. 낮고 짧았지만 어쨌든 웃은 건 웃은 거잖아.
“뭘 그렇게 경계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근데 왜?“
“출근하지 말고 한 번 하고 가라고 할까 봐?“
”경계한 거 아니라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무시하고 나가버릴 수는 없잖아. 하는 수 없이 침대 쪽으로 다가가니까 조금 더 가까이 오라는 것처럼 손짓 하더라.
더 가까이 가려면 다시 침대에 올라가야 하는데.
머뭇거리다 결국 무릎으로 짚고 올라가긴 했는데 침대 끝 쪽에서 멈춤.
옆집남자는 졸음이 안 달아나는지 얼굴 한 번 쓸어내리고 머리도 한 번 쓸어넘기고 나서야 내 위치를 확인했어.
그러더니 내 쪽으로 몸을 숙이는 거임? 난 굳어서 보고만 있었는데 내 옷 멱살을 살짝 잡아당김.
고개 숙이고 옷 냄새 맡아봄.
...내가 냄새를 여러 번 맡는 걸 보긴 했구나. 나같아도 누가 내 옷을 입고 그렇게 냄새 맡는 것 같으면 신경 쓰이는 데다 궁금하기도 할 것 같아.
그건 그거고 어차피 이미 붙잡혔는데 어캄. 가만히 보고 있기만 했지.
“담배냄새 나네.“
“알아.”
“상관없어?“
옷을 놓긴 했는데 쓸데없이 가까워졌잖아. 겨우 그거 물어보는데 꼭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야 됨?
아침부터 심장 뛰게.
“어차피 문 하나, 아니 문 두 개 지나가는 거리만큼 입을 건데 뭘.“
”그런 것치고는 냄새를 오래 맡던데.“
아. 꽤 본 거 맞구나. 어쩌지? 복도 난간 밖으로 도망치고 싶다.
가 아니라 왜 이렇게 끈질긴 거임.
“그건 그냥.. 맡아본 거야.“
”다른 거 입어.“
”겨우 옆집 가는 거라 괜찮다니까.“
”신경쓰여서 냄새 맡고 있었잖아.“
“그건 진짜 그냥... 그냥 맡아본 거고.“
”갈아입어도 기분 안 나쁘니까 갈아입어.“
“나도, 냄새나도 기분 안 나빠.“
잠깐만. 뱉고 나서 깨달았는데 이건 좀 이상했지?
옆집남자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보니까 듣는 쪽도 이상했던 거 맞는 것 같음.
아무래도 내가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어캄?
“ㅊ.. 출근 늦겠다. 갈게.“
어카긴 뭘 어캄. 도망가야지. 바로 침대 내려가서 닫힌 문 열고 닫아버림.
그리고 자책하면서 현관문으로 걸어감.
왜 똑같이 두 사람이 같은 행위를 했는데 난 옆집남자처럼 태연하지 못한 거야.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나도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건 옷 냄새나 신경쓰고 싶은데.
“후- 어?“
”...“
아무리 인생에 복잡한 일이 있어도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잖아. 별 수 없이 한숨 쉬면서 현관 문 열었는데 거대한 그림자가 지는 거임.
흠칫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다음 고개 들었는데 빵집 아저씨였음. 카를로스씨 말이야. 빵집이나 펍 아닌 장소에서 보니까 더 무섭게 생기심.
아저씨도 내가 갑자기 문 여니까 놀랐는지 뒷걸음질로 물러났다가 문 뒤로 몸 기울임.
몇 호인지 보려는 거겠지. 집 주인이 아닌 사람이 나왔으니까.
“어.. 안ㄴ.. 안녕하세요..?”
“단골손님은 이 옆집이라고 안 했어요?”
호수 확인까지 하고 와서 날 위아래로 훑어봄.
아침부터 옆집에서 나오지를 않나 옷차림은 그 옆집 주인 상의만 달랑 걸치고 나오지를 않나. 누가 봐도 전날 뭘 했는지 뻔하지.
두 사람은 얼마나 친하길래 아침부터 집에를 찾아오는 거야. 하필 타이밍은 왜 이 모양이고. 사람 민망하게 말임.
“맞..는데요.“
”허어. 어쩐지 연락이 안 되더라.“
카를로스 아저씨가 내가 나온 집 안 쪽을 힐끔 쳐다봄. 옆집남자가 항상 핸드폰을 끼고 문자며 전화며 하던 걸 보면 옆집남자 이야기겠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돼서 찾아온 건가. 조금 더 민망해짐.
“좋은..아침.. 입니다... 저는 출근 준비 해야해서 가볼..게요..?“
”우리 단골손님.. 이것보다는 현명하실 줄 알았는데.“
근데 문 밖으로 슬쩍 비켜서 나가자마자 그러는 거임.
이것보다는 현명할 줄 알았다고? 옆집남자랑 원나잇 좀 했다고 현명하지 못할 건 뭔데?
뭐 겨우 하룻밤 때문에 내 인생에 지장이라도 갈까 봐? 하루종일 그 생각 곱씹느라 일도 못하고 옆집남자 마주쳐보려고 기웃거리고 옆집남자는 나한테 마음 없는 거 뻔히 알면서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뻐하고 울고 웃고 뭐. 그럴까 봐?
맞네. 나 그럴 예정이었네. 현명하지 못했던 게 맞지. 응.
울컥해서 돌아보긴 했는데 딱히 할 말은 없더라.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저 쪽도 할 말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카를로스 아저씨는 미리 조언도 해줬잖아. 저런 남자한테 빠지면 나락 가기 십상이라는 거 말이야.
“젊은이들끼리 치기 어린 불장난 정도야 제 때 불만 끄면 다행이지만. 옆집은 너무 가까워요.“
”...“
”인근 지역에 사는 직장 동료나 친구한테 이 동네에 산다는 말 해본 적 있습니까?“
”..네?”
“여긴 어지간히 갈 곳 없는 인간들만 모이는 곳이에요. 우리 단골손님은 내 생각에 처음부터. 여기 속할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잘못 흘러 들어왔다 싶었지.“
”아니 그게..“
”근데 심지어 또 하필 왜 이 집에.. 직장 동료든 이 지역 알 만한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 동네 아는지 한 번 물어봐요. 그리고 가능한 빨리 준비해서 이사 나가요. 계약이나 서류 문제는 내가 여기 건물 주인이랑 얘기 해둘테니까.“
“어.. 여기 주인이랑도 아세요?”
“이 동네는 그래요. 다들 어디선가 연결 돼 있어요.“
카를로스 아저씨까지 저 얘기야. 나만 빼고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이어져 있다는 거.
“하여튼 젊고 앞길 창창한 사람이 저런 새끼한테 인생 낭비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카를로스 아저씨랑 옆집남자는 대체 무슨 사이임? 무슨 사이길래 친해보이는 것 같았다가 또 어떨 때는 당장이라도 싸울 것 같았다가 하는 걸까.
“뭐 딱히.. 인생 낭비할 만큼 만나지도 않았는데요.”
“이 동네에 대해 알고 나면 하루도 아까워질 겁니다. 단.“
나름 말대답이라도 해보려는데 카를로스 아저씨가 내 쪽으로 살짝 거리를 좁혔음. 빵집에 있을 땐 그래도 이렇게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난 심지어 달랑 맨발에 후드티 차림이잖아.
“이 동네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외부인은 자칫하면 머리에-“
괜히 겁 먹어서 숨 삼키는데 카를로스 아저씨가 한 손 살짝 들어올려서 검지 손가락으로 내 머리 쪽을 가리키는 거야.
외부인은 자칫하면.. 머리에-
그 손짓이랑 말만 듣고도 뒷 말은 대충 예상할 수 있었음.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을 잊을 리가 없잖아.
실제로 들어본 건 처음인 소음, 처음 보는 빛이라 해도 그게 뭔지 모를 리가 없지.
옆집남자는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규칙이라고 했어.
카를로스 아저씨가 말하는 것도 그거겠지. 외부인인 내가 친구나 직장 동료한테 이 동네에 대해.
가령, 어제 있었던 일을 발설하면-
나도 같은 일을 당하게 될 거라는 경고일 거야.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내 머리로 향하는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찰나였음.
“ㄱ,”
“아침부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거칠고 투박한 손이 다른 커다란 손에 저지됐어. 내 손으로는 다 잡지도 못할 것 같은 손을 가볍게 잡아채서 아래로 내렸음.
아까보다는 덜 잠긴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집까지는 왜 찾아 왔고.“
옆집남자가 담배 물고 서있음.
아침부터 나 나가자마자 담배부터 문 건가. 아직 졸린 것 같더니 잠보다 담배야?
“왜 집까지 찾아왔겠습니까.”
“왔으면 들어오든가. 왜 여기서 시끄럽게 굴어.”
“시끄럽게 굴 일을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뭐 별 일이라고.”
잠깐만. 방금 그 말에는 내가 타격 입은 것 같은데.
“어제 그러고 바로 잠적해..서... 잠깐. 설마.“
난 그냥 슬쩍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눈치 보고 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또 카를로스 아저씨가 내 쪽을 돌아보는 거야.
나 계속 여기 서있어야 하는 거임? 이제 슬슬 진짜 출근 준비 해야 하는데.
”어제 같이 있었, 아니 혹시 어제 그 일이. 그래서 둘이...!”
카를로스 아저씨도 어제 그 일을 알고 있나 봐. 어제 그러고 바로 잠적했다고 말한 거 보면 옆집남자가 뭔가 연락하면서 숲에서 나온 게 그럼. 카를로스 아저씨랑 연락한 거였나?
아침부터 머리가 복잡한데 아저씨가 아예 두 손으로 내 어깨까지 붙잡음.
“아니 그걸 보고도 이 인간 집에 따라 들어갈 생각이 든답니까??”
붙잡고 짤짤 흔들기 시작함. 별로 힘이 크게 실린 건 아니라 아프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았어.
그런데도 덩치랑 기본 골격 차이가 있으니까 속절없이 짤짤 흔들림. 약간 어지러움.
옆집남자가 또 한 손으로 붙잡고 떼어놔서 멈출 수 있었음. 대신 아저씨가 이번엔 옆집남자 쪽으로 돌아섬. 그 쪽도 양 쪽 어깨 붙잡았는데 나처럼 흔들리진 않더라.
옆집남자는 와중에 혼자 평온하게 담배 피움.
“아니 그, 하.. 도와준 거야 그렇다 치고 왜 멀쩡한 사람을 흔듭니까?”
“사람 흔드는 건 내가 아니라 너고.“
”물리적으로 흔드는 거 말고요!! 계약 기간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두고 재계약만 못하게 방해 하면 끝날 일을..!“
“지금 그거 저랑 제 집 계약 얘기 맞아요..? 제 앞에서 대놓고요...?“
하여간 이 동네 사람들 한결같이 이상해. 위험하고 무서운데 이상해. 이상하게 자꾸 위험한 것도 안 위험해 보이고 무서운 것도 안 무서워 보이고 이상함.
너무 이상해서 무서운 얘기가 안 무섭게 들릴 지경임.
“아무튼.. 그럼 전 이만 출근 준비 하러,“
”아시겠지만 불장난은 한 번이면 족합니다. 이런 남자한테 빠지면 나락 간다니까?“
”출근 준비 하러.. 가볼게요..“
”이 인간.. 사람이라곤 쓰고 버리는 법 밖에 몰라요. 쓸모 있으면 제멋대로 가져다 쓰고 쓸모 없어지면,“
”카를로스. 그만 하고 들어와. 볼 일 있어서 온 거 아니야?“
“...난 우리 단골손님 안목 믿어요. 예?”
“너도 들어가. 출근 안 해?“
“...”
“믿습니다. 예??”
“들어오라고.”
옆집남자가 한 번 더 말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아저씨도 집 안 쪽으로 들어갔음.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나한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가, 아래로 꺾었다가 의미 모를 수신호를 몇 번이나 날린 후에야 사라짐.
나도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긴 했어. 현관문 열고 닫은 다음 잠깐 그대로 서서 곱씹어봄. 옆집남자는...
사람이라곤 쓰고 버리는 법 밖에 모르는구나. 쓸모 있으면 제멋대로 가져다 쓰고 쓸모 없어지면.
내가 옆집남자 손에 어제 그 변태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뜻일까?
어젯밤은 내가 옆집남자를 이용하는 마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옆집남자도 내가 쓸모 있으니까 받아줬던 것도 맞긴 하겠지.
사람 속 아프게 다정한 순간들은 늘 그렇듯 별로 어려울 것도 아닌, 쉬운 일이었겠지.
나도 다 아는 거잖아. 새삼스럽게 새로울 것도 없고 상처받을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출근 해야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겠지.“
그냥 한숨 한 번 쉬고 집 안으로 들어감.
들어가자마자 발에 뭐가 채임.
밑에 보니까 옆집남자 겉옷이더라.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맞아, 어제 우리 집에 먼저 들어왔었지.
겉옷만이 아니라 내 방에 옆집남자 상의도 있을 거 아님?
방에 들어가 보니까 당연히 옆집남자가 입었던 상의도 그대로 있음. 핏자국도 말라있었어.
하루 지나서 그런가, 아니면 그 일 자체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어서 그런가? 피 묻은 옷 봐도 뭔가 실감이 안 남.
이제 진짜 씻고 준비해야 하는데. 이거 여기 두고 가면 하루 종일 신경 쓰이겠지?
결국 집어 들어서 팔에 걸치고 다시 현관으로 감. 거기서 겉옷도 집어 들었어.
“··?”
근데 들자마자 뭐 묵직한 게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임?
겉옷 주머니에서 떨어질 만한 크기가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바닥으로 몸 숙이고 손 뻗었다가 그대로 굳음.
...까맣고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물체가 또 뭐가 있을까?
그딴 설명 없이 모양만 봐도 총 말고 다른 게 있겠냐. 총같이 생긴 건 장난감 총 밖에 없을 거 아니야.
어제 옆집남자가 들어올 때 들고 있던 겉옷을 여기 내려뒀었지. 아마 그 때 같이 빼놨나봄?
이게 이렇게 막 굴러다녀도 되는 거임?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옆집남자 겉옷으로 다시 덮음. 그리고 그 안에 감싸지게 잘 접어서 안았어.
이것만 돌려주고 오면 되겠지.
“출근 안 해?”
문 두드리고 잠깐 기다리니까 옆집남자가 금방 나왔음.
그냥 옷 주러 왔다고 하면 되겠지.
”이거 주고 가려고.“
옷 대충 접은 모양으로 내밀었는데 옆집남자가 한 손으로 받으려고 하는 거임. 도로 물리니까 얼굴 쳐다봄.
뭐야. 본인이 어제 내 집에 뭘 놓고 갔는지도 몰라? 그게 그렇게 소홀히 관리 될 물건이 아니지 않냐?
“아니 이거 안에... 두 손으로 받아가야 할 것 같은데.”
“공손하게?”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안에 다른 것도 들었으니까..“
진짜 뭔 소리임? 온몸에 타투는 휘감아 놓고 뭘 공손하게야. 일부러 나 놀리려고 저러는 건지 가끔 다 알면서 이상한 소리 하더라.
근데 다시 내밀었는데도 한 손만 내미는 거임. 그렇게 받아들면 내용물이 떨어질 텐데.
도로 물리려는데 받아드는 게 아니라 겉옷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음. 뒤적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그거.. 꺼내서 살펴봄.
”사격 배운 적 있어?”
“뭐?“
살펴보더니 나한테 뜬금없이 그러는 거야. 난 그거 보기만 해도 껄끄러운데.
“총 쏘는 법 알아?”
“..아니.”
근데 재차 물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음. 이번엔 별 말 없이 손만 내밀더라.
그제서야 들고 있던 옷을 안정적으로 건네줄 수 있었음.
“잘할 것 같은데. 다음에 알려줄게.“
별로 배우고 싶지 않은데. 심지어 옆집남자한테 배우고 싶지는 않은데.
미처 싫다고 말할 새도 없이 옆집남자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버림.
진짜 제멋대로야. 총 쏘는 건 가르쳐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항의하고 싶어도 이제 진짜 시간이 촉박해서 집으로 들어가야 했음.
들어가자마자 급하게 씻고 머리 말리고 옷 갈아입고 가방 챙기고 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 안 들어서 좋았어.
출근 하는 동안에는 잠깐 생각했고, 출근해서는 일하느라 바빴지.
숨 돌릴 때마다 어제 일어난 일들이나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그래서 더 숨 돌릴 틈 없이 바빴음.
그 때까지만 해도 오늘도 퇴근하면 역에 나와 있을까? 오늘 못 보면 주말에는 볼 일 없을 텐데. 그럼 다음 주에나 보게 되려나. 간간이 그런 생각을 했을 거임.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지.
“···어?”
“왜. 뭐 빠트린 거 있어요?”
“아뇨, 아니에요.”
“그럼 뭐. 아는 사람이라도 봤어요?”
“그-건 아니고. 진짜 별 거 아니에요. 잠깐 딴 생각 하다가.“
”뭐야. 아까 거기 뭐 두고 오기라도 했나 했네.“
여긴 우리가 사는 동네가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일하는 회사 근처도 아니었음. 업무상 볼 일 때문에 잠깐 나온 거였거든. 그러니까 옆집남자도 내가 거기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거야.
그치만 옆집남자는 거기에 있었어.
대화 중인 남자들 몇이랑, 옆집남자 팔에 팔을 끼워넣어 안고 기대선 여자 하나랑.
옆집남자도 내가 거기에 있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거야.
알았지만 별로 상관없었겠지.
내가 그 모습에 식은 땀이 날 정도로 호기심을 갖든 당황하든 불안해 하든 질투를 하든.
상처를 받든 말든.
늘 그렇듯 옆집남자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일 거임.
아. 옆집남자랑 원나잇 해본 후기 말이야.
첩첩산중. 점입가경?
총체적으로 다방면으로 아주 아주-
엿같아.
맥카이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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