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83042764
재생다운로드22C2572C-A421-4D39-A8F4-162DB98DAA62.gif
재생다운로드98246dedfa7aad31e86d30bf8a7c56c8.gif




 

어젯밤부터 참 심란했는데 일 시작하자마자 사적인 건 다 잊혀졌음. 딴 생각하며 대충대충은 못하는 일이니까. 아무튼 아몬은 상당한 유혈사태가 있었던 밀수 사건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 하루 종일 단서를 쫓던 아몬은 수상한 정황을 포착하고 어느 부둣가의 컨테이너 박스를 급습했어.

 

 

“..!!!”

 

 

사건이 밀수잖아. 그러니까 갱단이던 개인이던 범인 체포하고 물건 압수하면 끝날 줄 알았지. 하지만 모든 게 상상초월이었음. 일단 경찰이 의심한 갱단은 일절 연루되지 않았음. 하지만 적발된 놈들은 갱단 못지 않게 지독했음. 이들이 실제로 사고 판 건 상품성이 떨어져 거래가 안 되는 수인노예들이었음. 그것만 해도 사악한데 어떤 수인들은 잔혹하게 살해당해 가죽이 벗겨진... 상태였어. 아몬은 박피중인 현장을 덮쳤고 그들의 목적이 노예로도 못 써먹는 수인들을 짐승 상태로 죽여 고가의 모피를 얻어내는 것임을 알아차렸음.

 

 

죄질이 나쁘다는 건 아는지 밀수범들은 죽기살기로 도주를 시도했음. 그 중에 보트를 타고 바다로 튄 놈이 있었는데 아마 물 위에서는 경찰을 따돌리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나보지. 하지만 경찰은 아몬 코타로를 보유하고 있잖아? 아몬은 아무 보트나 빌려 즉시 그놈을 추격했음. 놈은 작살총까지 쏘며 저항했지만 흡사 공포영화처럼 뒤돌아보면 가까워져 있는 아몬을 끝내 막을 수 없었음. 최후의 발악으로 바다에 뛰어내리기까지 했지만 아몬은 아까 맞을 뻔한 작살과 그물을 역이용해 놈을 체포하는데 성공했어.

 

 

녹슨 케이지를 부수자 생존한 토끼수인과 여우수인들이 우르르 낑겨 나왔음. 경찰 옆에 가만히 모이는 수인들도 있었지만 죽기살기로 도망치는 수인들도 있어서 또 한바탕 추격전을 벌여야 했지.

 

 

“잡아, 잡아!!”

“과격하게 하지마.”

 

 

포획망에 잡혀서 아둥바둥하는 수인들이 비명을 질러댔음. 도망치면 안 된다고 마구 윽박지르는 동료들을 아몬은 뜯어말렸지. 동료들은 불만스럽게 따졌음.

 

 

“수인사랑은 알겠는데 증거물이 앞뒤 없이 도망가는데 잡아야지!”

 

 

하긴 동료들도 드럽게 억울할 듯. 아몬은 희한하게 수인들에게 인기가 많아. 팔척귀신 같은 키에 호랑이 눈을 했는데 무섭지도 않나 열에 아홉 수인들이 알아서 따름. 고로 아몬은 모양 떨어지게 개고생 안 해도 되지만 자기네들은 수인이 도망가면 발바닥에 불나게 쫓아가서 잡아오지 않으면 안 되거든.

 

 

일단 사체 수습부터 하고 생존한 수인들은 보호소로 보내기로 했음. 대부분 트라우마로 제정신이 아닌 듯 해서 보호소로 간들 얼마나 케어를 받을 수 있을지... 머잖아 안락사 결정나지 않을까. 아몬은 순백색, 은회색, 검은색, 붉은색 등 모피가 되어버린 여우털을 역겹게 바라보다가 수인들의 삶이 얼마나 시궁창인지 새삼 실감하겠다. 그리고 미조구치가 떠올랐지. 깨끗하고 밝아졌지만 요새 너무 말라버려서 저들과 묘하게 비슷한... 너무 소중한 내 여우. 자꾸 눈에 아른거리고 보고 싶었어.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호소로 호송 직전 어느 수인이 인간으로 변해 아몬에게 인사했음. 주위에선 동료들이 투덜댐. 우리도 구해줬는데 아몬만 인사 받는다고. 아몬은 작게 목례했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짧은 대답. 그런데 모여있던 수인들이 너도나도 다가와 저마다 낑낑대며 고개를 꾸닥거림. 감사인사로 보였어.

 

 

“자자 탑승하세요. 출발합니다.”

 

 

격무로 수사하느라 피곤에 절은 요원들은 성가심을 호소하며 수인들을 호송차량으로 밀었음. 그럼에도 인사는 차량 안에서까지 한동안 이어졌음. 아몬은 자신의 손을 떠난 수인들을 등지고 밴에 올랐어. 타니는 극혐이 된 표정으로 시동를 걸고 있었음.

 

 

“살다살다 수인으로 모피를.. 오늘 진짜 욕봤네요.”

“서로 가자.”

 

 

사건은 무사히 종결될 것 같다만, 기분이 굉장히 더러워. 비위 강한 타니도 아까의 현장은 토나올 것 같았다며 수시로 물을 마셨음.

 

 

“불쌍한 수인들 잘해주지는 못해도 괴롭히진 말아야 할 거 아냐!”

“안타깝지만 이게 수인들의 현실이지.”

“어휴 그렇죠. 요즘 미조구치 상만 보고 살아서 감이 떨어졌었나봐요.”

 

 

순간, 아몬은 약간 헛웃음이 나왔음. 같이 동조하고 있던 타니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진 까닭임. 감이 떨어진다, 라.... 그 또한 수인들의 현실이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주 비현실적으로 비춰지는 현실. 타니의 눈엔 아사 직전까지 간 미조구치가 정말 잘지내는 것으로 보이나? 물론 아몬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니까 어련하겠냐만 누가 봐도 위험한 수준으로 말랐는데. 이러니까 수인들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사람이 늘 소수일 수밖에 없고 좆같은 입적요건들도 아직 존재하는구나 싶어. 부끄럽지만 그 현실을 아는 아몬도 누군가가 대신 해결하겠거니 하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해 왔으니 말 다했지.

 

 

차량이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아몬은 휴대폰을 꺼냈어.

 

 

[오랜만에 먹은 미니캐럿 최고였어요🥕]

[유부는 먹다가 눈물도 났어요! 히히]

[처음으로 마루오랑 이야기했어요.]

[걔는 수학을 사랑하는 거 같애요.]

[혹시 코타로 상은 일을 사랑해요?]

[그것도 모르고 거짓말쟁이라고 해서 미안해요.]

[집에서 봐요.]

[몸조심하세요.]

[사랑해요.]

 

 

어제 사랑한단 문자를 보고 참 설렜어. 그런데 오늘은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아. 아몬은 폰 화면을 꺼버렸어. 울컥한 탓이야. 속상했어. 미조구치는 정당한 비난을 했는데 왜 또 양보하려 할까. 아니야. 이래선 안 돼.

 

 

[내가 사랑하는 건 요스케야.]

[믿음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

[선물이 있어.]

[집에서 보자.]

 

 

답장을 써 보내고, 아몬은 결심을 굳혔음. 아몬의 세상은 미조구치 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해. 행여라도 혼자된 미조구치가 오늘 현장에서 본 수인들처럼 고문당하면 아몬은 죽어서도 내 여우를 지키지 못한 후회의 눈물을 흘릴 것임. 가장 확실하게 미조구치를 지킬 사람은 자신이야.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츠지무라나 타니도 안심이 안 돼. 10여년간 사명감을 갖고 진지하게 임해온 직무는 아몬의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야. 중요해 봤자 미조구치보다 중요하진 않아.

 

 

아몬은 재킷 안주머니를 뒤적였음. 예전에 제출하려다가 못해서 쭉 소지한 부서이동 신청서임. 타니는 신청서를 보고 좀 착잡한 표정이 되었음.

 

 

“그거 진짜 하시게요?”

“응.”

“제가 반대할 깜냥은 아니지만 아몬 상 가시면 저희 팀은 어쩌고요. 오늘도 아몬 상 없었으면 해상추격을 어떻게 했겠어요. 해경이랑 연동하는 사이 다 튀었지.”

“새로운 요원을 찾아.”

“아니 그게..”

 

 

참 쉽게 말한다. 그런 요원이 어디 백명 천명씩 있냐고. 그리고 그런 유능한 요원이 우리팀으로 와달라고 하면 네 지금 달려갑니다 하고 와주겠냐고. 그러나 아몬은 단호했음.

 

 

“서장님 실망하시겠네. 다 키워놨더니 떠난다고 저번에도 한숨 푹푹 쉬시더만.”

“인재가 없으면 양성하셔야지. 교관 정도는 맡아줄 수 있어.”

 

 

타니는 이걸 물어 말아 하는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물었음.

 

 

“미조구치 상 때문이에요? 사무직으로 가시는 거.”

“요스케와 나 모두를 위해서.”

“미조구치 상은 몰라도 선배는 이게 천직이잖아요.”

“아까 보트 위에서 스피어가 10cm만 우편으로 날아왔으면, 서풍이 불지 않았으면 나는 즉사했어.”

 

 

타니는 입을 다물었음. 사실 속으로는 아몬 선배 쯤 되면 그런 상황에서도 회피기동이 되니까 안 죽을 거 다 예상하신 거 아니냐고 받아쳤는데 이 얘길 진짜 꺼내면 소시오패스가 아니고 뭐냐. 진짜 위험했던 건 사실이니까.

 

 

“내 목숨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예전과 달라. 요스케는 내가 없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어. 요스케의 자립능력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수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아까의 박피현장 수준이나 다름없이 때문이야.”

“에이.. 수인인권이 낮다는 건 동의하지만 박피는 좀 과장 아닌가.”

 

 

아몬은 여우의 정상체중이 14~15kg인데 입적을 위해 7.3kg까지 감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았음. 수인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이 나쁘지 않은 타니지만 가끔 이상한데 꽂히는 경향이 있어서 괜히 체중 이야기를 꺼내면 털가죽 벗겨내는 것과 체중이 절반으로 주는 것 중 뭐가 더 나쁜가에 집착할 게 뻔함. 둘 다 오십보 백보인 사안인데. 물론 미조구치는 전문의의 집중관리 하에 체중을 조절하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몬이 그를 철저히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

 

 

서에 도착하자 어떤 남성이 울며불며 잃어버린 수인을 찾는다고 난리였음. 듣자하니 오늘 구출한 수인무리에 섞여 있는 것 같다고 당장 만나게 해달라는 거. 언론보도도 안 된 사건을 어떻게 벌써 알고 있나 했는데 누가 SNS에 찍어올린 영상에 ‘가루베’가 보이는 것 같다고 했음. 어떤 영상인지 직접 봤더니 줌해서 찍은거라 화질도 엄청 떨어지고 흔들림도 심한데 아몬이 수인들을 꺼내주는 영상은 맞았음.

 

 

“이걸 보고 알았다고?”

 

 

타니가 의심스럽게 남성을 바라보자 그는 구린 화질이어도 다 알 수 있다고 주장했음. 아몬은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있었어. 아마 자신이 미조구치를 찾는 상황이었다면 이보다 더 저화질이었어도 미조구치를 식별했을 거야.

 

 

“신분증과 보호자등록증 주십시오.”

 

 

남자의 이름은 타카하시 료헤이. 이 사람 신원으로 조회된 반려수인 실종사건이 2건이었어. 어느 수인을 찾는지 대조해봤더니 1건은 털갈이도 안 한 새끼에 인간형 사진도 없어 모르겠고, 또 1건은 아까 아몬에게 감사인사를 했던 수인이야. 아몬은 호송차량에 연락해 가루베를 데려오게 했음.

 

 

“가루베!!”

“타카하시.. 타카하시!!”

 

 

가루베라 불린 수인은 날렵한 여우로 변해 두다다다 달려가더니 훌쩍 뛰어 타카하시에게 안겼음. 타카하시는 한참이나 가루베와 눈물겨운 상봉을 하고는 아몬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얘 없으믄 못 살아요. 가게도 휴업하고 2년 넘게 애들만 찾았어요.”

 

 

타카하시는 가루베에게 ‘마루’의 행방을 물었지만 가루베는 침울하게 고개를 저었음.

 

 

“괜찮아. 니 탓 아녀. 우리 같이 찾자.”

 

 

한 열번 쯤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타카하시는 가루베를 트럭에 태워 떠났음. 아몬은 타카하시의 절박한 표정이 잊혀지질 않겠다.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심일지 너무 잘 아니까. 만약 미조구치가 없으면 자신의 삶은 얼마나 비참할까. 비슷한 버전을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상상만으로도 오장육부가 튀들리는 것 같아.

 

 

“누가 온 세상을 주고 코타로 상을 데려가겠다고 하면 저는 그냥 코타로 상을 달라고 할 거예요. 코타로 상은 제 전부니까.”
 

“저는 그래도 코타로 상을 제일 사랑해요. 세상이 무너진대도.. 코타로 상이 세상을 떠나도.. 우리가 사는 집이 사라지고 돈도 없고 밥을 빌어먹어야 해도 사랑해요.”

 

 

반대로 내가 없으면, 오늘처럼 위험한 임무를 하다가 죽으면, 미조구치는 얼마나 괴로울까.

 

 

‘요스케에게 못된 말을 너무 많이 했어.’

 

 

‘내가 죽으면’ 같은 가정 함부로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럼에도 제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미조구치. 이런 자신에게도 힘껏 웃어주었지. 더 고민할 게 없었음. 아몬은 부서이동 신청서를 꺼내들고 서장실로 향했음.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