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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01:44
엑퍼클 이후 시점 에릭찰스 아오삼 ㅊㅊ하러 왔음
사람을 죽이기엔 아직 어린 레이븐
찰스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에릭이 있음
슬로우번 입덕부정기 에릭
에릭이랑 헬파이어클럽 관계묘사
레이븐 찰스 에릭 논컾관계묘사가 좋음…
행크레이븐 있음
중픽 일부번역함 햎에서만 봐조
https://archi❤️veofou❤️rown.org/works/53127415
[에릭찰스] I May Hate Myself in the Morning
but I'm gonna love you tonight
헬멧으로 찰스의 사고를 영원히 차단하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었다.
에릭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는 여전히 헬멧 아래의 머리와 얼굴을 정리해야 했고, 안정된 수면이 필요했으며, 때로는 단순히 그 물건이 귀찮기도 했다. 헬멧을 벗을 때마다 그는 목을 잔뜩 긴장시켜, 무언가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사실 에릭은 찰스의 생각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는 깨달았다. 그의 친구가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에릭은 늘 그런 정신적 대화를 침범이라고 여겼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찰스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하는 교류였을 수도 있다. 마치 무심코 팔을 스치거나 어깨를 감싸는 친밀한 행동처럼. 그러나 에릭은 이제 그 무리 속에 있지 않았다. 그의 친구는 해변에서 연약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단호하게 그를 거절했다. 하지만 먼저 헬멧을 써서 그를 멀리한 것은 에릭 자신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쿠바 해변에서 데려온 동료들은 그리 통제하기 쉬운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군인이 아니었고, 규율도 없으며, 야망은 컸지만 대개는 제멋대로 행동했다. 집단의 큰 방향보다 사소한 문제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에릭이 자신의 강함과 능력을 계속해서 드러내야 그들이 복종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늘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하지만 웨스트체스터 저택에서의 날들을 떠올리면, 지금과 비교했을 때 그것은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는 그리 아름다운 꿈도 아니었고, 현실 같지도 않았다. 그는 찰스가 뮤턴트의 유토피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들으며, 그의 눈이 빛나는 동안 부드럽고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사랑했고, 그의 생각과 이상을 온전히 믿으며 따랐다.
오직 에릭만이 그 이상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알아챘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수많은 낮과 밤 동안, 에릭은 찰스가 체스를 둘 때 움직이는 손과 그의 셔츠 깃 아래 드러나는 빈약한 가슴을 바라보며 그가 옥스퍼드 영어사전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 의심하곤 했다. 그는 찰스의 몸 어느 부분이든 손쉽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찰스는 분명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평화로운 나라란 이상과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비료나 물과 같은 역할을 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 기반은 철과 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무런 의도도 숨기지 않는 찰스는 에릭이 한 손으로 감쌀 수 있는 자신의 목을 들어 올리며 격려하듯 턱을 살짝 올렸다. 그의 표정은 부드럽고 방심한 상태였다.
"다음 수는 네 차례야."
다음 수에서 에릭은 그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혔으며, 그의 여동생을 데려갔다.
레이븐은 함께하기에 매력적인 동료였다. 그녀는 귀한 돌연변이 능력을 지녔고, 경계심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모두와 가까워지려 노력했으며, 특히 에릭과 가장 가까워지려 했다. 그녀는 강인했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찰스가 그녀를 위해 만들어 둔 거대한 신탁기금 덕분에 에릭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계획을 효과적으로 막아서 오랫동안 돈 문제에는 신경 쓰지 않게 해줬다. 그녀는 오빠처럼 너그럽고 배려심이 깊었지만, 후자보다 더 세속적이고 융통성 있게 대처할 줄 알았다. 에릭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에릭과 레이븐의 관계에 진전은 없었다. 사실 에릭이 원한다면 여러 외로운 밤과 몇 잔의 도수 높은 술, 몇 번의 눈빛 교환만으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에릭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들 아무 의미도 없으니. 그들은 서로 너무 닮았다. 레이븐은 심지어 그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곁에 있을 때 자신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좋아했다. 에릭은 이것이 자신이 찰스에게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분노와 평온 사이에서, 척추 끝에서 솟아오르는 짜릿한 흥분감을, 손가락 끝에서 폭발하는 듯한 무적에 가까운 힘을 자주 잊지 못했다. 찰스와 함께 있을 때 그는 더 강해지고, 더 정교해지며, 더 평온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됐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에릭은 스스로에게 계속 이렇게 말하려 했다. 그게 전부라고, 다른 건 없다고.
그 겨울, 그들은 베를린에 갔다. 한 연구소에 감금된 돌연변이를 찾으러 간 것이었다. 그러나 작전은 순탄치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그 돌연변이는 이미 수술대에서 숨을 거둔 상태였다. 철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한 인간을 처리해야 했다. 에릭은 능력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맨손으로 그의 목을 꺾었다.
그러자 평소 침착하던 레이븐이 구토했다.
더럽혀진 벽돌 담을 붙잡고, 마치 물이 흐르는 고무관처럼 온몸을 떨며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냈다. 에릭은 그녀의 얼굴에서 낯익은 표정을 보았다. 소련 임무를 마치고 무너진 CIA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더 어린 레이븐도 같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공포를 멈추려 애쓰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혐오와 저항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녀의 오빠의 따뜻한 포옹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에릭은 그녀를 안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찰스가 아니었고, 영원히 그리 될 수도 없었다. 그는 그녀의 땀으로 젖은 목덜미나 등을 만질 수도 없었다. 뻣뻣한 그녀의 등은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안.”
레이븐이 구토하며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 어린 미안함이 담겨 있었지만, 더 많은 것은 책임을 묻는 말을 예상해 그에 저항하려는 고집과 도전이었다.
에릭은 그녀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고개를 돌려 밤의 인적 없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베를린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 목뼈가 부러진 시체가 있었고, 그의 옆에서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조차 모르는 동료가 구토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피로에 지친 에릭은 한 가지 너무도 명확한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레이븐은 아직 너무 어렸다.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쿠바 사건 이후 1년이 넘은 시간 동안, 에릭은 처음으로 찰스가 여기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 감정은 너무나 절박해서, 그는 심지어 위까지 쓰리도록 고통을 느꼈다.
에릭은 다음 날 저녁, 레이븐의 방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곧 레이븐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하얀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고, 피로와 함께 핏발이 선 노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지만, 적대감은 없었다.
“엠마 말로는 네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더군.”
에릭은 발밑으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레이븐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샌드위치 한 접시와 오렌지 주스가 놓여 있었다.
“이거 가지고 들어가서 좀 먹어.”
레이븐은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은 채, 음식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주방에 없으면 이런 거나 먹고 사는 거야?”
그녀는 음식을 들고 농담조로 물었고, 에릭은 그녀가 기력을 회복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반가워했다.
“와봐, 독이라도 있는지 확인하게.”
에릭은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고, 뒤에서 레이븐이 발로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아직도 네 오빠와 연락하고 있지.”
에릭이 조용히 물었다. 레이븐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응. 안전한 방법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 매달 다른 우체국 사서함을 써. 다른 주에서. 원하면 더 얘기해줄게.”
에릭은 자신의 추측이 사실임을 확인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시선에는 레이븐의 얼굴이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찰스의 창백한 손가락이 검은 펜을 감싸고, 황색 조명을 받은 편지 위에서 급히 글을 쓰고 있는 모습만 가득했다.
“그는 여전히 네게 오빠군.”
레이븐이 물었다.
에릭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네 친구야.”
레이븐의 마지막 말이 그의 귀에 머물렀다.
불행히도,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에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 My dear sister, hope this letter finds you well. -
그건 별 일이 아니다. 에릭은 몇 잔의 술로 상황을 진정시켰고, 아침이 되어 거실 소파에 엎드린 채로 밤을 보낸 자신을 발견했다. 배 아래 깔린 손에 완전히 감각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뒤집으며 팔을 꺼내 소파 밖으로 늘어뜨렸다. 마치 차가운 빗방울이 피부를 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핏줄이 손끝까지 다시 흐르기를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 사이 누군가 주방으로 들어가 컵들을 뒤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의 눈꺼풀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릭이 눈을 뜨자, 엠마가 미소 짓는 듯한 표정으로 소파 등받이 밖에 기대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릭의 첫 반응은 짜증스럽게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헬멧을 집으려는 것이었다.
“그래. 너무 매력적이셔서. 다들 네 작은 머릿속에 들어가려고 안달인 거 같지?” 엠마는 비꼬듯 말하며 김이 나는 머그잔 하나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다. 커피 향이 퍼지며 에릭의 머릿속이 조금 더 맑아졌다. “고맙단 말은 넣어둬.”
에릭은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엠마는 이미 자신의 커피를 들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에릭이 그녀를 불렀다.
“뭐?” 그녀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쇼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감정이 들어?”
엠마는 마치 미간을 찌푸리려다 포기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대부분 농담 섞인 화를 거두고 경계하듯 에릭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묻지?”
“왜냐하면 지금 너는 나를 따르고 있으니까.” 에릭이 냉정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죽였으니까. 그리고 난 그걸 전혀 후회하지 않아.”
에릭은 엠마가 손에 든 뜨거운 커피를 자신에게 끼얹을 거라 상상했지만, 그녀는 전혀 화난 기색도, 다른 부정적인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살짝 불편한 듯 무게 중심을 다른 무릎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감정도 없어." 엠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릭과 마찬가지로 그의 표정을 탐색하며 덧붙였다. "어떤 면에서 당신은 쇼하고 굉장히 닮았어. 당신도 알겠지. 필요할 때는 우리를 희생할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 나는 오늘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아무런 감정 없을 거야."
그녀의 비슷하다는 지적에 에릭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팽팽히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무감각한 통증이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는 먼저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은 자신의 일부는 그 말에 차갑게 동의했다.
- "그리고 너는 모든 사람이 쇼와 같다고 생각하고."
찰스는 그날 밤 그렇게 말했다. 에릭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그 순간 친구에게 실망했지만 연민을 느낄 정도였다. 왜 찰스가 이해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하며, 그가 찰스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늘 사람들의 좋은 면을 보려고 했고, 에릭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에릭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든 사람이 쇼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쇼와 가장 닮은 사람은 에릭 자신이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은 후회하고 있네. 하지만 쇼를 죽인 부분은 아니고." 엠마는 자신만만하게 에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무례에 대한 보복이었다. "맞아, 나 당신 생각 읽었어. 뭐 고소라도 할 거야?"
에릭은 철로 된 주방 수저를 조종해 엠마를 쫓아다니며, 다이아몬드 형태로 변한 그녀의 머리를 연신 두드렸다. 결국 그녀의 비명 소리에 집안의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다.
3월 중순, 날씨는 점점 덜 추워졌지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엠마라는 강력한 텔레패스가 있긴 했지만, 그녀의 능력은 세레브로로 증폭되지 않은 상태였고, 찰스의 능력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에릭은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새로운 뮤턴트 인재를 영입할 기회를 놓쳤고, 선수를 치기 위해 때로는 엠마가 찰스를 제외한 엑스맨 멤버들의 생각을 읽어 정보를 빼내야 했다.
그리고 엑스맨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에릭은 그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알렉스와 션의 능력은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고, 행크는 혁신적인 비행기를 새로 만들어냈다. 여전히 엔진 소음이 너무 크긴 했지만. 에릭은 그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기로 했고, 방법은 그를 기체 위로 던진 후 알루미늄 캔처럼 철 껍질로 그를 감싸는 것이었다. 에릭은 사람들이 대량으로 철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했지만, 레이븐은 이 일로 그와 이틀 동안 냉전 상태에 들어갔다.
"다음번엔 내 그를 너에게 맡기지, 미스틱." 에릭은 닫힌 방문 너머로 소리쳤다. "그때는 네가 직접 그의 이마에 키스하고 저리 비키라고 치워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일들은 에릭의 진짜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블랙버드의 후미 문이 열릴 때마다 에릭은 온몸이 긴장되었다. 그는 늘 찰스가 팀을 이끌고 나오는 모습을 기대했다. 마치 적국의 지도자처럼 결단력 있고 품위 있게, 가득 찬 책망과 설득을 쏟아내며 등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릭은 그저 자신과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이상에 물든 낯선 젊은 얼굴들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 얼굴들은 찰스가 여전히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는 찰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에릭은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느 날, 레이븐이 정부 기관에서 확인되지 않은 뮤턴트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다. 에릭은 유럽에 있었기에 가벼운 비가 내리는 오후에 혼자 영국으로 향했다.
몇 가지 소문과 뚜렷한 지적을 따라 그는 런던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허름한 술집에서 소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탈리"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술을 마실 나이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에릭은 이 점을 신사적으로 무시한 채 그녀가 마시는 것이 무엇이든 한 잔 더 시켰다. 소녀는 만족했고, 뮤턴트의 존폐보다는 에릭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에릭이 그녀의 능력에 대해 묻자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서투르게 그와 장난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
"저기요. 좀 더 어두운 데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어때요?"
에릭은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녀는 그로 하여금 찰스의 한 부분을, 유쾌한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예전에 자주 술집에 갔었는데, 에릭은 단순히 자신을 느긋하고 시끄러운 환경에 두기 위해 갔던 반면에 찰스는 말그대로 그의 눈을 열어주었다. 찰스는 모든 사람과 플러팅했다. 모든 사람, 심지어 에릭과도. 그의 밤색 곱슬머리와 푸른 눈은 술집에서 당연히 매력을 더했고, 거기에 의도적으로 낮고 부드러운 우아한 억양을 곁들이며, 여자들 귀에 대고 에릭이 지루해서 미칠 것 같은 유전학 이론을 읊조리면 대부분 성공이었다. 에릭은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찰스는 무심한 듯 잘해냈다. 지금 앞에 있는 나탈리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어리숙하리만치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아자젤은 약속된 시간에 도착했고, 나탈리는 그들을 근처의 눈에 띄게 "조금 더 어두운" 창고로 데려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나탈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도 에릭 손에 있는 동전의 문양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에릭은 창고를 나서며 도로 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옥스퍼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명한 보들리 도서관의 웅장한 둥근 지붕이 시야에 들어왔다. 찰스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도서관은 항상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래서 그는 발길을 돌릴 수 없었고, 아자젤에게 새로운 동료를 데리고 먼저 떠나라고 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도서관이 거의 요새와 같았다는 점이다. 무의미한 부분만 개방되어 있었고, 에릭이 진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양모 가디건과 체크무늬 트위드 재킷을 입은 찰스 흉내쟁이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그는 건물 외곽을 돌며 부술 수 있는 문 자물쇠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 한 발걸음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이 그의 가슴팍에 부딪혔다.
“아! 실례했습니다.” 그 키 작은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예의 바른 태도로 사과했다. 그는 파란 체크무늬 셔츠와 갈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에릭은 찰스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거의 확신했다. “괜찮으세요?”
에릭은 그의 미안한 표정 속에서 열쇠를 찾았다.
“자주 있는 일이죠. 저는 통행증을 자주 잃어버려서.”
가짜 찰스는 그의 거짓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공모자 같은 표정으로 쉿 소리를 내며 관리자들이 주의를 돌린 틈을 타 에릭을 서고로 안내했다. 에릭은 가장 진심 어린 무해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고, 그가 수많은 책장과 기둥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다음 단계는 훨씬 쉬웠다. 그는 한 여성 사서를 찾아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을 말했고, 몇 분 뒤 그녀는 두 손가락 두께만 한 문서 한 묶음을 들고 와 읽기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떠나기 전 그녀는 “혹시 다른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라는 말에 특별히 힘을 실었다.
에릭은 도서관에서 한 시간 넘게 머물렀고, 떠날 때 그 여성 사서를 다시 마주쳤다. 그녀가 에릭의 엉덩이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그의 코트로 가려진 등에 약간 부자연스러운 부푼 부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레이븐은 나탈리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에릭은 그녀가 저녁 식탁 위에서 비꼬는 인사말과 속내가 담긴 질문으로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능력을 직접 목격했다.
엠마는 옆에서 부채질하며 더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듯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립타이드와 아자젤은 조용히 자신의 접시를 비우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에릭이 몇 번 경고의 눈빛을 보냈지만, 레이븐은 반항적인 시선으로 그의 시도를 모두 튕겨냈다.
"그 여자 별로야."
에릭이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반쯤 누운 채 읽던 종이에서 눈을 들어, 문가에 선 레이븐이 마치 그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듯 단호하게 선언하는 모습을 보았다.
"저녁 식사 때 이미 충분히 명확히 표현했잖아."
에릭은 별다른 반응 없이 대답했고, 레이븐은 방 안으로 들어와 그의 침대 가장자리에 옆으로 앉았다.
"그 여자애 진짜 별로라고."
레이븐은 원망에 가득 찬 어조로 다시 한 번 말했다.
"다들 보는 앞에서 너한테 막 플러팅하잖아."
"그게 널 불편하게 했나?"
에릭은 느긋하게 물었고, 레이븐은 침대로 올라와 다리를 모아 앉은 뒤, 자신이 불쾌한 이유를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기색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제발, 너 설마 그런 철부지 꼬마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레이븐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나한테도 몇 년은 더 기다리라고 했잖아!"
에릭은 레이븐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녀가 질투하고 있다고 오해할 일은 없었다. 그보다는, 에릭 곁에 있는 어떤 여성에게든 적대감을 품는 그녀의 오랜 습성이 또 한 번 드러났을 뿐이었다. 예컨대 그들이 외출해 술을 마실 때, 몇 잔 들어간 여성이 에릭의 가슴에 손을 대며 은근한 신호를 보낼 때마다, 레이븐은 항상 때맞춰 나타나 금발에 창백한 피부의 모습으로 에릭에게 집에 갈 시간이라고 부드럽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상대 여성에게 날카롭게 박혀 있었다.
"아니, 관심 없어."
에릭은 읽던 종이로 눈길을 돌리며 무심히 웃었다. 그러자 레이븐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뻐했다. 그녀는 에릭의 다리 위로 몸을 눕히며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방으로 돌아가."
"내일부터는 나탈리가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자장가를 들려주는 걸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봐."
"왜?"
에릭은 체념한 듯 물었다.
"혹시 내가 너랑 사귀고 있고,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한 건가?"
"아니, 더 좋은 건데. 내가 그녀에게 네가 내 오빠랑 사귀고 있고, 서로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했거든."
레이븐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넌 네 오빠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군."
"내 생각엔 내가 훼손한 건 오히려 네 명예 같아."
레이븐은 놀란 척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찰스는 둔감한 바보거든."
그녀는 오빠의 이름을 부드럽게 한숨으로 삼키며 말했고, 그 어조엔 어쩔 수 없는 사랑과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뭔가 읽어줘."
그녀는 방금 했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하는 에릭에게 부드럽게 요청했다.
"내 방에 동화책이 있을 거라 기대한건 아니겠지."
"뭐든 좋은데. 네가 지금 읽고 있는 책도 괜찮아."
레이븐은 에릭이 머리 위로 든 책의 제목을 알아내려고 표지를 손가락으로 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방사선 시대와 유전자 변이의 필연성'... 이건 찰스의 지루한 논문 같은데. 왜 이런 걸 읽는대?"
그녀의 웃음소리가 에릭의 표정을 보고 약해졌다.
"너… 이거 진짜 찰스의 논문이구나. 맞지? 어디서 난 거야?"
"보들리 도서관."
에릭은 짧게 대답했다.
"나탈리가 옥스퍼드에 있어서."
"찰스는 보들리 도서관 책들은 외부 대출이 안 된다고 항상 불평했었는데."
레이븐은 의심스럽게 말했다.
"국왕이 와도 예외는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난 돌려줄 생각이 없으니 대출은 아니지."
레이븐은 폭소를 터뜨리며 에릭의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세상에, 너 우리 오빠 석사 논문을 훔친거야? 그것도 옥스퍼드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관에서?"
그녀는 거의 숨이 넘어가는 듯한 경외감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가 즐거웠다니 다행이군."
에릭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읽어줘, 제발." 레이븐은 웃으면서 애원했다. 그녀의 끊임없는 요청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생물체는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유전적 특성을 생성함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
에릭은 그저 그녀가 입을 다물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한 구절 읽었다. 그러나 몇 가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의해 그는 다시 멈추었다. 레이븐은 책과 배 사이의 틈에서 그를 격려하는 눈빛을 보냈다.
「.........비록 유전적 변이는 대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여전히 백만분의 일이 우수한 유전자를 생성하여 종을 번식시키고 불멸하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도 긴 시간의 시스템적인 선택을 필요로 하며, 조급한 행동은 대부분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한다. 방사능에 대해 말하자면.........」
에릭은 다섯 페이지를 연달아 읽고, 목이 바짝 마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레이븐은 그의 저린 다리에 몸을 기댄 채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가엾은 바보야.”
그녀는 가슴이 아려오는 한숨 속에서 사랑스러운 어조로 찰스의 이름을 읊조리며 잠들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에릭의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가엾은 바보.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에 에릭은 한참 동안 멍해졌다. 그러고는 레이븐의 얼굴 아래에서 자신의 다리를 천천히 빼내고,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찰스의 논문을 안은 채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에릭은 그의 신비로운 문구들 속에 자신을 내맡긴 채, 존재하지 않는 은유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불쌍한, 가엾은 바보.
레이븐 덕분에, 젊은 뮤턴트 나탈리는 그 후 에릭에게 완전히 관심을 잃었다. 이것이 좀 더 온화한 표현이라면, 이제 그녀는 에릭을 보면 마치 그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는 듯한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낸다.
여까지 번역함ㅠㅠㅠㅠ
진짜 재밌으니까 채찍피티 끼고 전문 읽어조
사람을 죽이기엔 아직 어린 레이븐
찰스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에릭이 있음
슬로우번 입덕부정기 에릭
에릭이랑 헬파이어클럽 관계묘사
레이븐 찰스 에릭 논컾관계묘사가 좋음…
행크레이븐 있음
중픽 일부번역함 햎에서만 봐조
https://archi❤️veofou❤️rown.org/works/53127415
[에릭찰스] I May Hate Myself in the Morning
but I'm gonna love you tonight
헬멧으로 찰스의 사고를 영원히 차단하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었다.
에릭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는 여전히 헬멧 아래의 머리와 얼굴을 정리해야 했고, 안정된 수면이 필요했으며, 때로는 단순히 그 물건이 귀찮기도 했다. 헬멧을 벗을 때마다 그는 목을 잔뜩 긴장시켜, 무언가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사실 에릭은 찰스의 생각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는 깨달았다. 그의 친구가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에릭은 늘 그런 정신적 대화를 침범이라고 여겼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찰스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하는 교류였을 수도 있다. 마치 무심코 팔을 스치거나 어깨를 감싸는 친밀한 행동처럼. 그러나 에릭은 이제 그 무리 속에 있지 않았다. 그의 친구는 해변에서 연약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단호하게 그를 거절했다. 하지만 먼저 헬멧을 써서 그를 멀리한 것은 에릭 자신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쿠바 해변에서 데려온 동료들은 그리 통제하기 쉬운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군인이 아니었고, 규율도 없으며, 야망은 컸지만 대개는 제멋대로 행동했다. 집단의 큰 방향보다 사소한 문제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에릭이 자신의 강함과 능력을 계속해서 드러내야 그들이 복종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늘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하지만 웨스트체스터 저택에서의 날들을 떠올리면, 지금과 비교했을 때 그것은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는 그리 아름다운 꿈도 아니었고, 현실 같지도 않았다. 그는 찰스가 뮤턴트의 유토피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들으며, 그의 눈이 빛나는 동안 부드럽고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사랑했고, 그의 생각과 이상을 온전히 믿으며 따랐다.
오직 에릭만이 그 이상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알아챘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수많은 낮과 밤 동안, 에릭은 찰스가 체스를 둘 때 움직이는 손과 그의 셔츠 깃 아래 드러나는 빈약한 가슴을 바라보며 그가 옥스퍼드 영어사전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 의심하곤 했다. 그는 찰스의 몸 어느 부분이든 손쉽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찰스는 분명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평화로운 나라란 이상과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비료나 물과 같은 역할을 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 기반은 철과 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무런 의도도 숨기지 않는 찰스는 에릭이 한 손으로 감쌀 수 있는 자신의 목을 들어 올리며 격려하듯 턱을 살짝 올렸다. 그의 표정은 부드럽고 방심한 상태였다.
"다음 수는 네 차례야."
다음 수에서 에릭은 그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혔으며, 그의 여동생을 데려갔다.
레이븐은 함께하기에 매력적인 동료였다. 그녀는 귀한 돌연변이 능력을 지녔고, 경계심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모두와 가까워지려 노력했으며, 특히 에릭과 가장 가까워지려 했다. 그녀는 강인했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찰스가 그녀를 위해 만들어 둔 거대한 신탁기금 덕분에 에릭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계획을 효과적으로 막아서 오랫동안 돈 문제에는 신경 쓰지 않게 해줬다. 그녀는 오빠처럼 너그럽고 배려심이 깊었지만, 후자보다 더 세속적이고 융통성 있게 대처할 줄 알았다. 에릭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에릭과 레이븐의 관계에 진전은 없었다. 사실 에릭이 원한다면 여러 외로운 밤과 몇 잔의 도수 높은 술, 몇 번의 눈빛 교환만으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에릭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들 아무 의미도 없으니. 그들은 서로 너무 닮았다. 레이븐은 심지어 그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곁에 있을 때 자신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좋아했다. 에릭은 이것이 자신이 찰스에게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분노와 평온 사이에서, 척추 끝에서 솟아오르는 짜릿한 흥분감을, 손가락 끝에서 폭발하는 듯한 무적에 가까운 힘을 자주 잊지 못했다. 찰스와 함께 있을 때 그는 더 강해지고, 더 정교해지며, 더 평온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됐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에릭은 스스로에게 계속 이렇게 말하려 했다. 그게 전부라고, 다른 건 없다고.
그 겨울, 그들은 베를린에 갔다. 한 연구소에 감금된 돌연변이를 찾으러 간 것이었다. 그러나 작전은 순탄치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그 돌연변이는 이미 수술대에서 숨을 거둔 상태였다. 철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한 인간을 처리해야 했다. 에릭은 능력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맨손으로 그의 목을 꺾었다.
그러자 평소 침착하던 레이븐이 구토했다.
더럽혀진 벽돌 담을 붙잡고, 마치 물이 흐르는 고무관처럼 온몸을 떨며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냈다. 에릭은 그녀의 얼굴에서 낯익은 표정을 보았다. 소련 임무를 마치고 무너진 CIA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더 어린 레이븐도 같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공포를 멈추려 애쓰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혐오와 저항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녀의 오빠의 따뜻한 포옹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에릭은 그녀를 안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찰스가 아니었고, 영원히 그리 될 수도 없었다. 그는 그녀의 땀으로 젖은 목덜미나 등을 만질 수도 없었다. 뻣뻣한 그녀의 등은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안.”
레이븐이 구토하며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 어린 미안함이 담겨 있었지만, 더 많은 것은 책임을 묻는 말을 예상해 그에 저항하려는 고집과 도전이었다.
에릭은 그녀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고개를 돌려 밤의 인적 없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베를린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 목뼈가 부러진 시체가 있었고, 그의 옆에서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조차 모르는 동료가 구토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피로에 지친 에릭은 한 가지 너무도 명확한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레이븐은 아직 너무 어렸다.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쿠바 사건 이후 1년이 넘은 시간 동안, 에릭은 처음으로 찰스가 여기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 감정은 너무나 절박해서, 그는 심지어 위까지 쓰리도록 고통을 느꼈다.
에릭은 다음 날 저녁, 레이븐의 방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곧 레이븐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하얀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고, 피로와 함께 핏발이 선 노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지만, 적대감은 없었다.
“엠마 말로는 네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더군.”
에릭은 발밑으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레이븐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샌드위치 한 접시와 오렌지 주스가 놓여 있었다.
“이거 가지고 들어가서 좀 먹어.”
레이븐은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은 채, 음식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주방에 없으면 이런 거나 먹고 사는 거야?”
그녀는 음식을 들고 농담조로 물었고, 에릭은 그녀가 기력을 회복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반가워했다.
“와봐, 독이라도 있는지 확인하게.”
에릭은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고, 뒤에서 레이븐이 발로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아직도 네 오빠와 연락하고 있지.”
에릭이 조용히 물었다. 레이븐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응. 안전한 방법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 매달 다른 우체국 사서함을 써. 다른 주에서. 원하면 더 얘기해줄게.”
에릭은 자신의 추측이 사실임을 확인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의 시선에는 레이븐의 얼굴이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찰스의 창백한 손가락이 검은 펜을 감싸고, 황색 조명을 받은 편지 위에서 급히 글을 쓰고 있는 모습만 가득했다.
“그는 여전히 네게 오빠군.”
레이븐이 물었다.
에릭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네 친구야.”
레이븐의 마지막 말이 그의 귀에 머물렀다.
불행히도,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에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 My dear sister, hope this letter finds you well. -
그건 별 일이 아니다. 에릭은 몇 잔의 술로 상황을 진정시켰고, 아침이 되어 거실 소파에 엎드린 채로 밤을 보낸 자신을 발견했다. 배 아래 깔린 손에 완전히 감각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뒤집으며 팔을 꺼내 소파 밖으로 늘어뜨렸다. 마치 차가운 빗방울이 피부를 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핏줄이 손끝까지 다시 흐르기를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 사이 누군가 주방으로 들어가 컵들을 뒤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의 눈꺼풀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릭이 눈을 뜨자, 엠마가 미소 짓는 듯한 표정으로 소파 등받이 밖에 기대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릭의 첫 반응은 짜증스럽게 손을 뻗어 테이블 위의 헬멧을 집으려는 것이었다.
“그래. 너무 매력적이셔서. 다들 네 작은 머릿속에 들어가려고 안달인 거 같지?” 엠마는 비꼬듯 말하며 김이 나는 머그잔 하나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다. 커피 향이 퍼지며 에릭의 머릿속이 조금 더 맑아졌다. “고맙단 말은 넣어둬.”
에릭은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엠마는 이미 자신의 커피를 들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에릭이 그녀를 불렀다.
“뭐?” 그녀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쇼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감정이 들어?”
엠마는 마치 미간을 찌푸리려다 포기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대부분 농담 섞인 화를 거두고 경계하듯 에릭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묻지?”
“왜냐하면 지금 너는 나를 따르고 있으니까.” 에릭이 냉정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죽였으니까. 그리고 난 그걸 전혀 후회하지 않아.”
에릭은 엠마가 손에 든 뜨거운 커피를 자신에게 끼얹을 거라 상상했지만, 그녀는 전혀 화난 기색도, 다른 부정적인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살짝 불편한 듯 무게 중심을 다른 무릎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감정도 없어." 엠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릭과 마찬가지로 그의 표정을 탐색하며 덧붙였다. "어떤 면에서 당신은 쇼하고 굉장히 닮았어. 당신도 알겠지. 필요할 때는 우리를 희생할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 나는 오늘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아무런 감정 없을 거야."
그녀의 비슷하다는 지적에 에릭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팽팽히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무감각한 통증이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는 먼저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은 자신의 일부는 그 말에 차갑게 동의했다.
- "그리고 너는 모든 사람이 쇼와 같다고 생각하고."
찰스는 그날 밤 그렇게 말했다. 에릭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그 순간 친구에게 실망했지만 연민을 느낄 정도였다. 왜 찰스가 이해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하며, 그가 찰스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늘 사람들의 좋은 면을 보려고 했고, 에릭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에릭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든 사람이 쇼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쇼와 가장 닮은 사람은 에릭 자신이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은 후회하고 있네. 하지만 쇼를 죽인 부분은 아니고." 엠마는 자신만만하게 에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무례에 대한 보복이었다. "맞아, 나 당신 생각 읽었어. 뭐 고소라도 할 거야?"
에릭은 철로 된 주방 수저를 조종해 엠마를 쫓아다니며, 다이아몬드 형태로 변한 그녀의 머리를 연신 두드렸다. 결국 그녀의 비명 소리에 집안의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다.
3월 중순, 날씨는 점점 덜 추워졌지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엠마라는 강력한 텔레패스가 있긴 했지만, 그녀의 능력은 세레브로로 증폭되지 않은 상태였고, 찰스의 능력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에릭은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새로운 뮤턴트 인재를 영입할 기회를 놓쳤고, 선수를 치기 위해 때로는 엠마가 찰스를 제외한 엑스맨 멤버들의 생각을 읽어 정보를 빼내야 했다.
그리고 엑스맨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에릭은 그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알렉스와 션의 능력은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고, 행크는 혁신적인 비행기를 새로 만들어냈다. 여전히 엔진 소음이 너무 크긴 했지만. 에릭은 그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기로 했고, 방법은 그를 기체 위로 던진 후 알루미늄 캔처럼 철 껍질로 그를 감싸는 것이었다. 에릭은 사람들이 대량으로 철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했지만, 레이븐은 이 일로 그와 이틀 동안 냉전 상태에 들어갔다.
"다음번엔 내 그를 너에게 맡기지, 미스틱." 에릭은 닫힌 방문 너머로 소리쳤다. "그때는 네가 직접 그의 이마에 키스하고 저리 비키라고 치워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일들은 에릭의 진짜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블랙버드의 후미 문이 열릴 때마다 에릭은 온몸이 긴장되었다. 그는 늘 찰스가 팀을 이끌고 나오는 모습을 기대했다. 마치 적국의 지도자처럼 결단력 있고 품위 있게, 가득 찬 책망과 설득을 쏟아내며 등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릭은 그저 자신과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이상에 물든 낯선 젊은 얼굴들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 얼굴들은 찰스가 여전히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는 찰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에릭은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느 날, 레이븐이 정부 기관에서 확인되지 않은 뮤턴트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다. 에릭은 유럽에 있었기에 가벼운 비가 내리는 오후에 혼자 영국으로 향했다.
몇 가지 소문과 뚜렷한 지적을 따라 그는 런던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허름한 술집에서 소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탈리"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술을 마실 나이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에릭은 이 점을 신사적으로 무시한 채 그녀가 마시는 것이 무엇이든 한 잔 더 시켰다. 소녀는 만족했고, 뮤턴트의 존폐보다는 에릭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에릭이 그녀의 능력에 대해 묻자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서투르게 그와 장난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
"저기요. 좀 더 어두운 데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어때요?"
에릭은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녀는 그로 하여금 찰스의 한 부분을, 유쾌한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예전에 자주 술집에 갔었는데, 에릭은 단순히 자신을 느긋하고 시끄러운 환경에 두기 위해 갔던 반면에 찰스는 말그대로 그의 눈을 열어주었다. 찰스는 모든 사람과 플러팅했다. 모든 사람, 심지어 에릭과도. 그의 밤색 곱슬머리와 푸른 눈은 술집에서 당연히 매력을 더했고, 거기에 의도적으로 낮고 부드러운 우아한 억양을 곁들이며, 여자들 귀에 대고 에릭이 지루해서 미칠 것 같은 유전학 이론을 읊조리면 대부분 성공이었다. 에릭은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찰스는 무심한 듯 잘해냈다. 지금 앞에 있는 나탈리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어리숙하리만치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아자젤은 약속된 시간에 도착했고, 나탈리는 그들을 근처의 눈에 띄게 "조금 더 어두운" 창고로 데려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나탈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도 에릭 손에 있는 동전의 문양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에릭은 창고를 나서며 도로 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옥스퍼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명한 보들리 도서관의 웅장한 둥근 지붕이 시야에 들어왔다. 찰스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도서관은 항상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래서 그는 발길을 돌릴 수 없었고, 아자젤에게 새로운 동료를 데리고 먼저 떠나라고 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도서관이 거의 요새와 같았다는 점이다. 무의미한 부분만 개방되어 있었고, 에릭이 진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양모 가디건과 체크무늬 트위드 재킷을 입은 찰스 흉내쟁이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그는 건물 외곽을 돌며 부술 수 있는 문 자물쇠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 한 발걸음을 제대로 보지 않은 사람이 그의 가슴팍에 부딪혔다.
“아! 실례했습니다.” 그 키 작은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예의 바른 태도로 사과했다. 그는 파란 체크무늬 셔츠와 갈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에릭은 찰스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거의 확신했다. “괜찮으세요?”
에릭은 그의 미안한 표정 속에서 열쇠를 찾았다.
“자주 있는 일이죠. 저는 통행증을 자주 잃어버려서.”
가짜 찰스는 그의 거짓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공모자 같은 표정으로 쉿 소리를 내며 관리자들이 주의를 돌린 틈을 타 에릭을 서고로 안내했다. 에릭은 가장 진심 어린 무해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고, 그가 수많은 책장과 기둥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다음 단계는 훨씬 쉬웠다. 그는 한 여성 사서를 찾아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을 말했고, 몇 분 뒤 그녀는 두 손가락 두께만 한 문서 한 묶음을 들고 와 읽기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떠나기 전 그녀는 “혹시 다른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라는 말에 특별히 힘을 실었다.
에릭은 도서관에서 한 시간 넘게 머물렀고, 떠날 때 그 여성 사서를 다시 마주쳤다. 그녀가 에릭의 엉덩이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그의 코트로 가려진 등에 약간 부자연스러운 부푼 부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레이븐은 나탈리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에릭은 그녀가 저녁 식탁 위에서 비꼬는 인사말과 속내가 담긴 질문으로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능력을 직접 목격했다.
엠마는 옆에서 부채질하며 더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듯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립타이드와 아자젤은 조용히 자신의 접시를 비우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에릭이 몇 번 경고의 눈빛을 보냈지만, 레이븐은 반항적인 시선으로 그의 시도를 모두 튕겨냈다.
"그 여자 별로야."
에릭이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반쯤 누운 채 읽던 종이에서 눈을 들어, 문가에 선 레이븐이 마치 그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듯 단호하게 선언하는 모습을 보았다.
"저녁 식사 때 이미 충분히 명확히 표현했잖아."
에릭은 별다른 반응 없이 대답했고, 레이븐은 방 안으로 들어와 그의 침대 가장자리에 옆으로 앉았다.
"그 여자애 진짜 별로라고."
레이븐은 원망에 가득 찬 어조로 다시 한 번 말했다.
"다들 보는 앞에서 너한테 막 플러팅하잖아."
"그게 널 불편하게 했나?"
에릭은 느긋하게 물었고, 레이븐은 침대로 올라와 다리를 모아 앉은 뒤, 자신이 불쾌한 이유를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기색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제발, 너 설마 그런 철부지 꼬마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레이븐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나한테도 몇 년은 더 기다리라고 했잖아!"
에릭은 레이븐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녀가 질투하고 있다고 오해할 일은 없었다. 그보다는, 에릭 곁에 있는 어떤 여성에게든 적대감을 품는 그녀의 오랜 습성이 또 한 번 드러났을 뿐이었다. 예컨대 그들이 외출해 술을 마실 때, 몇 잔 들어간 여성이 에릭의 가슴에 손을 대며 은근한 신호를 보낼 때마다, 레이븐은 항상 때맞춰 나타나 금발에 창백한 피부의 모습으로 에릭에게 집에 갈 시간이라고 부드럽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상대 여성에게 날카롭게 박혀 있었다.
"아니, 관심 없어."
에릭은 읽던 종이로 눈길을 돌리며 무심히 웃었다. 그러자 레이븐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뻐했다. 그녀는 에릭의 다리 위로 몸을 눕히며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방으로 돌아가."
"내일부터는 나탈리가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자장가를 들려주는 걸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봐."
"왜?"
에릭은 체념한 듯 물었다.
"혹시 내가 너랑 사귀고 있고,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한 건가?"
"아니, 더 좋은 건데. 내가 그녀에게 네가 내 오빠랑 사귀고 있고, 서로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했거든."
레이븐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넌 네 오빠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군."
"내 생각엔 내가 훼손한 건 오히려 네 명예 같아."
레이븐은 놀란 척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찰스는 둔감한 바보거든."
그녀는 오빠의 이름을 부드럽게 한숨으로 삼키며 말했고, 그 어조엔 어쩔 수 없는 사랑과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뭔가 읽어줘."
그녀는 방금 했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하는 에릭에게 부드럽게 요청했다.
"내 방에 동화책이 있을 거라 기대한건 아니겠지."
"뭐든 좋은데. 네가 지금 읽고 있는 책도 괜찮아."
레이븐은 에릭이 머리 위로 든 책의 제목을 알아내려고 표지를 손가락으로 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방사선 시대와 유전자 변이의 필연성'... 이건 찰스의 지루한 논문 같은데. 왜 이런 걸 읽는대?"
그녀의 웃음소리가 에릭의 표정을 보고 약해졌다.
"너… 이거 진짜 찰스의 논문이구나. 맞지? 어디서 난 거야?"
"보들리 도서관."
에릭은 짧게 대답했다.
"나탈리가 옥스퍼드에 있어서."
"찰스는 보들리 도서관 책들은 외부 대출이 안 된다고 항상 불평했었는데."
레이븐은 의심스럽게 말했다.
"국왕이 와도 예외는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난 돌려줄 생각이 없으니 대출은 아니지."
레이븐은 폭소를 터뜨리며 에릭의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세상에, 너 우리 오빠 석사 논문을 훔친거야? 그것도 옥스퍼드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관에서?"
그녀는 거의 숨이 넘어가는 듯한 경외감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가 즐거웠다니 다행이군."
에릭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읽어줘, 제발." 레이븐은 웃으면서 애원했다. 그녀의 끊임없는 요청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생물체는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유전적 특성을 생성함으로써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
에릭은 그저 그녀가 입을 다물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한 구절 읽었다. 그러나 몇 가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의해 그는 다시 멈추었다. 레이븐은 책과 배 사이의 틈에서 그를 격려하는 눈빛을 보냈다.
「.........비록 유전적 변이는 대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여전히 백만분의 일이 우수한 유전자를 생성하여 종을 번식시키고 불멸하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도 긴 시간의 시스템적인 선택을 필요로 하며, 조급한 행동은 대부분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한다. 방사능에 대해 말하자면.........」
에릭은 다섯 페이지를 연달아 읽고, 목이 바짝 마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레이븐은 그의 저린 다리에 몸을 기댄 채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가엾은 바보야.”
그녀는 가슴이 아려오는 한숨 속에서 사랑스러운 어조로 찰스의 이름을 읊조리며 잠들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에릭의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가엾은 바보.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에 에릭은 한참 동안 멍해졌다. 그러고는 레이븐의 얼굴 아래에서 자신의 다리를 천천히 빼내고,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찰스의 논문을 안은 채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에릭은 그의 신비로운 문구들 속에 자신을 내맡긴 채, 존재하지 않는 은유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불쌍한, 가엾은 바보.
레이븐 덕분에, 젊은 뮤턴트 나탈리는 그 후 에릭에게 완전히 관심을 잃었다. 이것이 좀 더 온화한 표현이라면, 이제 그녀는 에릭을 보면 마치 그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는 듯한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낸다.
여까지 번역함ㅠㅠㅠㅠ
진짜 재밌으니까 채찍피티 끼고 전문 읽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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