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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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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잡화점 바로 뒷편에는 붉은 벽돌을 얹고 하얀 페인트로 덧칠한 학교가 있다. 여느 사춘기 학생들이 머무는 학교가 다 그렇듯 이곳에서도 매일같이 다양한 가십이 오르내린다. 그 중에서도 요즘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소문은, 요약하자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아화에 대한 것. 학교에 거의 안 나오다시피 하는 그 의문스러운 인물에 대한 소문은 뭐가 됐든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일찍이 전부 세상을 떠났다든가, 마땅한 안식처 없이 밤낮 가리지 않고 오토바이에만 몸을 맡기고 산다든가, 연명을 위해 그때그때 빈 가게를 털러 다닌다든가 하는 그런, 진위여부는 가려낼 수 없어도 ‘아화’라는 존재를 인식하기에는 충분한 소문들이.

아화 본인이 이런 소문들을 의식했는지에 대한 것은 본인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거고, 아마 소문의 존재 자체도 잘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아화는 학교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비행청소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화가 비행청소년보다 외톨이라는 단어에 더 잘 어울리는 소년이라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둘째, 임문청에 대한 것. 날 좋은 주말 오전, 작은 필름카메라를 들고 선선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풀밭을 조용히 찍고 있는 소년이 있다면 그는 분명 임문청일 것이다. 저 사람이 문청인지 아닌지 아리송하다면 얼굴을 보면 된다. 그는 사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곱상한 학생이니 회색빛 도시 사이에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문청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튀는 점이 없는 소년이다. 구태여 화제가 될 만한 걸 꼽아봐도 준수한 외모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그 외모로도 큰 화제가 되기엔 충분했지만, 문청이 아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그가 귀머거리 벙어리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을 걸면 그는 상대의 입 모양을 읽고 수첩에 글을 써서 대답했다. 문청은 워낙 선하고 맑은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셋째, 그 둘이 친구라는 것. 어느 여학생이 바다에서 그 둘이 함께 앉아있는 걸 봤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새로운 소문은 기름 튄 불덩이처럼 순식간에 번져가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모난 양아치와 순수한 모범생이, 같이 만나 놀러갈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니. 색다른 조합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구관 복도를 가도, 신관 복도를 가도, 체육관을 가도, 학교의 어느 곳을 가도 모두 그들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세번째 소문은 잠잠해지게 되었다. 곧, 아화가 사경을 헤메며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네번째 소문이 퍼져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
#1 아화.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옥상 위였다.



“어라. 여긴 나만 아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손님이 왔네.”
“…?”
“난 아환데, 넌 누구?”


마땅히 시간을 떼울 장소가 없어서 평소처럼 상가 옥상 문을 따고 들어가려는데, 그 날은 웬일로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헐거운 문을 치우듯이 열고 옥상에 발을 들이자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웬 사람의 형상이었다. 바깥을 바라보고 선, 약간은 작은 체구를 가진 남자.

옷차림으로 보아하니 내 또래 학생 같은데. 그는 내가 문을 열고 옥상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한건지 뒤를 돌아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내가 가까이 다가가 그의 바로 옆에 서자, 남학생은 그제서야 나를 알아차린건지 어깨를 움츠리며 흠칫 놀랐다.


“으음?”
“……”


양 손에 작은 필름카메라를 든 그 소년은 대답 없이 멀뚱멀뚱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를 빤히 응시하는 큼지막한 두 눈동자가 호수처럼 맑았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는 이내 허둥지둥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열심히 뭔가를 적더니 나에게 보여주었다. 수첩에는 정갈한 필체로 짧은 글 하나가 적혀 있었다.



[임문청이야.]
“임문청? 아아. 그…”



그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임문청이라고 소개했다. 임문청. 언젠가 스쳐 지나가듯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임문청이라면 귀가 안 들린다던 그 애인가. 그래서 내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아무 말도 안 했던 거구나.


“여기서 뭐하는 거야?”
[사진 찍고 있어.]
“사진? 무슨 사진?”
[그냥… 난 하늘 찍는 걸 좋아해서]


백날천날 똑같은 하늘 사진 찍는 게 뭐가 즐겁다고 옥상까지 올라와 사서 고생하는 거야. 세상 구경이나 하려고 올라와 본건데 뜻밖에 참 요상한 사람을 만났다. 이런 것도 의외의 수확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내가 한동안 대답이 없자 문청은 무안해졌는지 시선을 데굴데굴 내 머리 끝으로 옮겼다가, 갑자기 냅다 내 눈 앞에 자신의 필름 카메라를 들이댔다. 작은 글도 한 장 덧붙여서, 여기 보라는 듯 손가락으로 종이를 톡톡 치며.



[너도 찍어 볼래?]
“뭐? 푸핫.”



그가 카메라와 함께 내게 보여준 메모지에는 그런 말이 쓰여 있었다.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권유에 나도 모르게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나를 문청은 어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렇게 경계심 없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 보네.



“넌 내가 싫지 않아?”
“?”



웃음기가 조금 잦아들자 그 허물 없는 경계심에 약간은 호기심이 생겼다. 내 또래 아이들은, 특히 이렇게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의 학생이라면 날 보기만 해도 대부분 인상을 찌푸리거나 도망치듯 자리를 떠날 뿐 이렇게 맹랑함을 넘어 되려 친근하게까지 구는 사람은 여태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내가 너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
“뭐, 그거야. 다들 나를 안 좋아하거든.”


이렇게 당연한 질문을. 그 정도 되는 학교씩이나 다니시면서, 오고 가며 내 뒷담화 한번 못 들어보셨나. 뭐 나를 모르면 모르는대로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에 문청은 여전히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고민 없이 한 문장을 써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너 안 싫어해.]



그러면서 그는 곧 가방에서 작은 필름사진을 한 장 꺼내 뭔가를 적더니 그대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날 좋은 저녁, 보라색 노을을 찍은 사진 한 구석에 그가 쓴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이거 봐봐. 누군가를 미워하기엔 하늘은 너무 예뻐.]



내게 그렇게 전해주며 그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때 든 생각은, ‘별 이상한 놈을 다 보겠네.’ 그게 문청에 대한 나의 첫번째 감상이었다.





***
#2 문청.




“난 아환데, 넌 누구?”


그 무렵 나는 아화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이 그에 대해서 아는 것만큼, 기껏해야 단지 이름과 대략적인 생김새를 아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러니까 그 ‘아화’가 먼저 말을 건 것만으로도 내게 있어서는 꽤 당황스럽고 특이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아화의 첫인상은 건조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소문대로 영화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또 소문과는 다르게 그다지 위협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안녕, 사진사.”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아화는 종종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만한 숨은 명소들을 알려주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먼저 찾아갈 수 없었지만 그는 내가 어디에 있든 간에 항상 나를 찾아왔다.


“오늘은 노을이 제일 잘 보이는 바다로 가볼까.”


내색은 안 했어도 그는 바다와 하늘을 참 좋아했다. 왜냐하면 아화는 주로 나를 바다에 데려갔고, 끝은 늘 건물만 다른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보냈기 때문이다.


“야, 오늘 하늘 한번 끝내주는데.”
[와, 여기선 항구까지 한번에 다 보이는구나…]


바다든 옥상이든 아화가 나를 데려가는 장소들은 하나같이 처음 보는 멋진 곳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기쁜 마음으로 정신 없이 사진들을 찍었고, 항상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 아화는 햇빛에 그 사진을 하나씩 비춰보며 몇 분이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꼭 칭찬을 한 마디씩 덧붙여 주었다.


“이거, 태양 잘 나왔다.”
[그렇지? 엄청 선명하게 나왔어. 보통 이렇게 잘 안 나오는데.]
“오, 이것도 꽤 느낌 좋은데? 너 사진 잘 찍네.”
[그래? 고마워.]
“뭘 또 고맙대? 진짜 이상하네.”


아화는 언제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지 나는 아화와 함께 하는 내 일상이 어쩌면 조금은 무섭고 괴로울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와 함께하는 일상은 예상보다 즐겁고 편안했다.

아화는 소문처럼 망가지거나 모난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본 그의 모습은 그랬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는 예민하다기보다는 무감각한 사람이었고 쾌활하다기보다는 우울한 사람이었다.





***
#3 아화.




나는 내가 머무는 곳을 으레 집이 아니라 방으로 지칭하곤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처사였다. 그곳은 오로지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었으니까. 오직 잠만 자고, 환복만 하는, 말 그대로 집보다는 은신처나 피난처에나 어울리는 곳이다.

끼니도 휴식도 그 방에서 해결하지 않는다. 수면 시간이 아닐 때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온 우주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그 적막이 내 머리를 지겹게 한다. 여태 혼자가 아니었던 적도 없지만,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나게 하는 그 공간이 싫다.



‘오늘도 그 범생이나 데리러 가볼까.’



말하자면 나는 내 거처를 싫어했다. 그래서 늘 정처없이 바깥을 나돌아 다니곤 했다. 갔던 곳을 또 가고, 또 가고, 또 가다보면 점점 지겨워지고 시간도 잘 안 갔지만, 이제는 다르다. 임문청을 끌고 다니면 어디든지 두 배로 즐거워졌으니까. 나는 오늘도 하교하는 문청을 찾아 간다.



“야. 네가 그 귀머거리냐?”



오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저 멀리 문청의 형상이 보여 내가 그를 향해 다가가려고 했을 때, 어떤 불량한 무리가 문청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셋 정도 되는 껄렁한 자세의 남학생들. 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맞네, 이 새끼. 어리버리 까는 거 봐.”
“푸하하. 멍청하긴.”




비열한 음색에 모욕적인 어조. 그건 당연히 문청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노골적인 멸시를 뱉어내고 있었다. 단순히 문청이 싫어서 비아냥거리던 건지, 아니면 그저 저들이 보기에 약자로 규정된 이들을 괴롭히는 게 재미있어서 그랬던 건지 어쩐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은 문청이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든 지에 대한 것도 그다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내 뇌는 오지랖 넓게 그 일에 참견하기를 선택했다. 다리가 절로 그쪽을 향해 움직이고 주머니 속에 말아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야. 너는 학교를 나와 뭐 하냐?”
“그냥 때려 치워. 그 아화라는 놈처럼 말이야. 알아 듣고 있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문청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알 수 없는 짜증에 점점 미간이 구겨졌다. 마침내 바짝 다가온 내가 목소리를 내기 직전,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문청의 동공이 미세하게 커졌다.



“안녕?”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에, 엥?!”



인사를 했을 뿐인데 그들은 인사 공포증이라도 있는 건지 소스라치게 놀라 뒤집어졌다. 그러더니 아까까지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꼭 매 맞은 짐승마냥 일제히 설설 기기 시작했다.



“나, 여기 지나가야 하는데.”
“으, 으응…”
“비켜.”



그보다 친절하게 비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들은 뭐가 그리 불편했는지 길을 터주다 못해 줄행랑을 치며 사라졌다. 그 기어갈듯 비굴한 모습에 나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널렸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마주하기도 많이 마주해봤다. 뒤에서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나를 조롱하고 증오하던 그들은, 앞에서는 하나같이 사족을 못 쓴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맹세컨대 그들에게 제대로 된 화 한번 내 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화! 고마워.]
“… 됐어.”
[쟤네가 뭐라고 하는 지 거의 못 알아들어서 곤란했거든. 입에 뭘 물고 있어서 입모양이 뭉개지더라고. 다행이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언짢았다. 오늘도 임문청을 데리고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닐 생각에 신나 있었는데 어떤 머저리들 때문에 하루 계획이 깨나 뭉개졌다. 그 와중에 얘는 배알도 없는지 아무렇지 않은 듯 사글사글 웃으며 자신의 말을 적은 수첩을 보여주었다.



“야. 넌 기분도 안 나빠?”
[기분이 좋진 않은데, 괜찮아.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니까.]
“나도 저런 애들 많이 만나봤어. 그리고 난 한번도 괜찮은 적 없었는데.”
… [그래…?]

“ … 쟤네가 너한테 뭐라고 하는지, 진짜 못 알아 들었어?”



내 말을 들은 문청의 눈빛이 미묘하게 풀어졌다. 그러더니 ‘이미 알고 있구나.’ 라고 말하는 듯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는 건 취소해아겠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갈 걸 그랬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몇 초 동안 머릿속을 스쳤다.



[근데 진짜 괜찮아. 내일 아침 되면 생각도 안 나.]
“……”



거짓말. 나는 일주일 전 들은 말도, 두 달 전 들은 말도, 일 년 전 들은 말도, 삼 년 전 들은 말도 전부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문청은 여전히 살짝 겸연쩍은 얼굴로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더이상 그런 문청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는 게 힘겨워져서 나는 무작정 그의 손목을 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난 위로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 네 거 탄산수.”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 문청은 나를 보며 고개를 작게 한 번 끄덕였다. 여긴 전에도 둘이서 한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해가 질 무렵이 아닌 동이 트던 이른 아침이었지만.

목적지를 정하고서 그를 끌고 뜀박질한 것은 아닌데 어쩐지 발걸음이 저절로 이끌리는 기분에 또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전에 문청이 날 향해 ‘여기 정말 멋지다.’라고 말해주었던 탓일까. 모르겠다. 문청은 어디를 가든 항상 풍경이 아름답다며 감탄했으니까.



“… 그거 맛있냐?”
[아니. 하나도 안 달아]
“그러게 그냥 과일주스 먹으라니까.”
[그러게… 오렌지 같은 걸로 살걸.]
“자. 내 거랑 바꿔.”
[아냐, 괜찮아!]
“나 탄산수 좋아해. 팔 아파, 빨리.”



한사코 됐다는 걸 겨우 달래서 그와 음료를 바꿨다. 바다 너머로 타오르듯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문청과 나는 여느 날처럼 실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 애와 나의 손에 들린 투명한 음료수 컵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짭짤한 파도가 철썩이며 모래를 간질이고 있었다.


[여기서 노을 보는 건 또 처음인데, 엄청 멋지다.]
“…그치?”


이 바다는 나의 생채기가 담긴 바다다. 몸과 마음에 남은 피멍이 오랜 시간 빠지지 않을 때면 나는 욱씬거리는 전신을 이끌고 꼭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면 파도가 한번 밀려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차가운 소리에 내 상처도 함께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여기서 잠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면 때때로 정처 없이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별이 되는 꿈을 꿨다. 그 꿈 속에서 나는 영원히 행복했다. 증오 받을 일도 없었고, 얻어 맞을 일도 없었고, 주저 앉을 일도 없었다. 물론 눈 뜨면 사라질 한낮의 꿈에 불과하긴 했지만, 이 바다는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나를 품어준 유일한 존재였다.

아마 그래서 문청을 여기로 데려 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화.]
“음?”
[고마워.]



문청은 문득, 나에게 그렇게 메모를 써서 보여주며 사르르 웃었다. 노을빛을 받아 붉게 반짝이는 그의 까만 눈동자와 똑바로 마주쳤다. 마치 영화 속 슬로우 모션처럼,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습한 저녁 바람에 한 올 한 올 천천히 휘날렸다. 꼭 심장에 물이 찬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고맙긴 뭐가 고마워…”
[항상 멋진 장소들 가르쳐주잖아!]
“이 정도는 그냥 다들 알고 있는 거잖아.”
[아니야. 네가 아니었으면 난 이런 풍경 평생 몰랐을지도 몰라.]
“…그러냐.”
[나는 그동안 바다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넌 바다를 좋아하는구나. 그럼 밤하늘의 별들이 새까만 바다에 잠겨 달빛과 함께 하얗게 반짝이는 것도 좋아할텐데. 자정이 넘어서 저 뒤로 올라가면 볼 수 있거든… 그런 생각이 들긴 했는데, 미처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내가 별다른 대꾸 없이 문청을 빤히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세상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한 문청의 보들보들한 볼을 충동적으로 콕 찌르면서 가볍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너는 꿈이 뭐야.”
[꿈?]
“응.”



머리를 거치지 않은 입이 제멋대로 문득 그런 질문을 했다. 그건 내가 항상 가지고 있던 유일한 궁금증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모두가 분주한 대낮에 홀로 옥상에 올라가 바쁘게 번화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늘 그들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알면 따라 가려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



[난… 알다시피 사진 찍는 게 좋아서.]
“그럼, 사진사?”
[아마도.]
“아아…”



예상한 대답이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또 그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임문청은 공부를 꽤 잘 한다고 했지. 그래, 이 성실하고 선량한 소년이라면 뭐가 됐든 간에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꿈이 뭔데?]
“네 조수 되는 거.”
[나는 조수 필요 없는데…]
“그래? 그러면 안 할래.”



내가 킥킥거리며 대답하자 그제서야 장난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문청의 입이 미묘하게 삐쭉 튀어나왔다. 또 바보 같은 얼굴. 범생이들은 생각보다 장난과 진심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임문청 때문에 알게 되었다.

문청은 살짝 뾰루퉁해진 표정으로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누가 봐도 ‘나 마음에 안들어요.’하고 광고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또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꿈이 뭐냐니까.]
“난 그런 거 없어.”
[왜 없어?]
“글쎄, 그냥…”



나한텐 그런 거 필요 없거든. 이어지는 뒷말은 때맞춰 몰아치는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목구멍 너머로 삼켜냈다. 두리뭉실한 내 대답이 그다지 성에 차지 않았는지 문청은 큼지막한 두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낌새를 보아하니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문청의 콧대를 타고 지는 노을이 선명했다.



[너는 너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 알고 있어?]
“뭐? 하하,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잠시 후 문청이 내게 꺼낸 말은 다름 아닌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문이었다. 갑작스레 눈에 들어온 맹랑한 문장에 저절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낯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 취급은 이제는 익숙하다. 그들도 세 번쯤 말하면 곧 또 다른 화제로 넘어가 잊어 버리니, 나 역시 그들이 나에 대해 무어라 말하든 더이상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왜? …너도 그 소문 믿어?”



툭. 또 다시 사고 회로를 거치지 않은 충동적인 질문이 제멋대로 튀어 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던져놓고 내심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게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 미세하게 빨라지고 흉통으로 그 울림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왜 초조해하고 있는 거지? 얘가 내 소문들을 믿으면, 그게 뭐 어쨌다고…

그렇지만 잠시나마 마음을 졸인 게 무안해질 정도로 문청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나도 그런 거 신경 안 써.]
“… 그래?”
[응. 난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 너 좋은 사람이잖아.]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응, 응. 그런 소리를 내며 문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고한 믿음이 배어 나와서, 순간 굳어 있던 시야가 탁 풀리고 목울대가 일렁이는 느낌이 느껴졌다. 정신줄을 제대로 붙잡고 있지 않으면 그 낯선 온기에 헤롱헤롱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왜? … 왜 그렇게 생각해?”



이유를 찾는 나의 질문에 문청은 아주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나를 확 끌어 안았다. 그다지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순히 그의 품 안으로 끌려 갔다.



“엇, 야, 뭐…!”



내 뺨이 문청의 목덜미에 놓이자 그는 나의 어깨를 두어 번 정도 작게 토닥였다. 섬유유연제 향인지 비누 향인지 모를 산뜻한 향이 은은하게 코 끝에 와닿았다. 갈 곳 잃은 내 두 손이 문청의 날개뼈 근처에서 방황했다.



“……”

‘… 따뜻하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사그라들 때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인간은 생각보다도 더 따뜻한 몸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망설이던 두 손을 다잡고 그 애를 조심스레 마주 껴안았다. 최대한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 수 있게끔, 연약한 비눗방울을 안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게.

포옹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지금 네가 나에게 전해주고 있는 온도만큼 나도 너에게 전해줄 수 있을런지. 품 안에 누군가가 가득 들어차는 감각이 낯설어서 몸짓이 영 어색했다.



[봐. 안 밀어내잖아. 소문 속의 너였으면 진작 밀쳐내고도 남았을걸?]



곧 나에게서 떨어진 문청이 씨익 웃으며 그렇게 쓴 글을 보여주었다. 자그마한 머리통과 꽤 희고 가늘은 손목. 또 그 손목 안쪽의 얇은 살갗 밑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푸른 혈관들. 따뜻한 피부. 아직까지도 그 잔상과 감각이 두 눈과 손 끝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를 도와주지도 않았겠지. 그것도 정말 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진짜 좋아졌어. 진짜야.]



어째서인지 나를 향해 밝게 웃는 그 얼굴을 차마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꼭 거짓말을 하다 들킨 것 같은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얼굴에 닿는 바람이 너무 뜨겁게 느껴져서 나는 절로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
#4 문청.




그 날 이후로 아화의 태도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무심하던 말투는 비교적 사근사근하게 바뀌었고, 뾰족하던 태도는 사포로 간 것처럼 뭉툭하게 바뀌었다.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극적인 변화는 절대 아니었지만 매일같이 곁에 있다보면 자연스레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변화였다.



“임문청.”

“임문청? 거기 가만히 서서 뭐해?”



어쩌면 그 역시 내가 조금 변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다른 일은 없었다. 나는 그날 그저 알 수 없는 연민에 직접 와닿는 방식으로 위로를 해주고 싶어 충동적으로 아화를 끌어다 안았고 아화는 잠시 당황스러워 했지만 이내 서툰 손길로 나를 마주 안았을 뿐이다. 그 때까지 특별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서로의 몸이 떨어지기 직전에 맞닿은 아화의 가슴팍에서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낯선 박동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몸이 스르르 떨어졌을 때.



… 이제 그만 돌아갈까.



그는 분명히 어딘가 위축되어 있었다. 무릎 아래로 내려간 내 팔을 붙잡은 두 손에 묘하게 힘이 빠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늘 그랬듯 까만 유리알 같은 동공에 노을빛이 비쳐와야 하는데, 아화의 눈꺼풀이 자꾸 바닥을 향해서 힘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색깔이 그의 눈에서 사라진 듯, 그 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거야?’



자꾸만 그때 그 아화의 눈빛이 떠올랐다. 표정 속에 감춰져 있었던 선명한 고통이 끊임없이 내 마음을 괴롭혔다. 모른척 해줘야 하는 걸까? 섣불리 들추다가는 아물지 못한 상처가 짓무를까? 그런 생각이 무한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차라리 이대로 거리를 유지해주는 게 나을까? 아니면 한 발짝 더 다가가야 할까?

신경 쓰인다. 머릿속이 온통 아화로 가득했다. 어떤 수업을 들어도, 어떤 책을 읽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서 나는 며칠 내내 종일 잠이 덜 깬 사람처럼 멍하니 펜만 쓱싹였다. 그러다 하루는 필통을 쏟았고 하루는 책상을 엎었다. 그런데도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야. 야아.”
“!”



그리고 지금도. 콘크리트 조각이 마구잡이로 발에 채이는 것도 모르고 옥상에 서 있던 나는, 옆에 있던 아화가 내 어깨를 약하게 쿡쿡 찌르는 감촉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제서야 눈 앞에 놓인 화려한 번화가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맞다, 오늘은 아화와 함께 도시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왔었지.



“넋을 놨네. 대답도 안 하고.”
[미안해.]
“무슨 생각하냐.”



내가 너무 멍하니 있었는지 아화는 별안간 내 볼을 쿡 찌르며 그렇게 물어왔다. 아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꼭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안다는 듯이 물어오는 어투에 나는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그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러는 너는 지금 무슨 생각 해?]
“나? 나는.”



으음. 아화는 또 희미한 미소로 뒷말을 흐렸다. 다행히도 아화의 눈빛은 그날 한시적으로 빛을 잃었을 뿐, 하루가 지나고 다시 마주했을 때는 전처럼 맑은 흑색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날의 일이 없었던 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번 눈치 챈 흠집은 계속해서 그 편린을 내비쳤다. 아마 아화도 내가 눈치챈 걸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어쩌면 그 날 이후로 아화의 태도가 모호해진 이유도 그 탓이었을 지 모른다. 분명히 저 투명한 각막 너머에 뭔가가 있는데. 그게 그 날 네가 나에게 보여줬던 것임이 확실한데.

하지만 그 너머로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아화는 놀란 야생 동물처럼 쏙 숨어버렸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이 나를 막아서고 있음이 느껴졌다. 날이 갈수록 아화의 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저 아래 봐봐. 엄청 큰 네온 전광판이다.”
“……”
“이렇게 보면 저 복잡한 도시도 그냥 장난감 판 같다니까.”



그냥 물어볼까? 그랬다가 네가 영영 도망쳐버리면 어떡하지? 말마따나 필요 없는 오지랖일 지도 모르잖아. 아, 아니야, 그렇지만, 넌 지금 분명히 온 몸으로 도와달라고 하고 있단 말이야. 아무도 너를 도와주지 않는데, 아무도 네 마음에는 관심이 없는데 나까지 널 외면하면. 그럼 너는 어떡해?



‘아냐. 아무래도 물어봐야겠어. 아화, 불편하고 언짢아도 날 용서해 줘. 제발 쏜살같이 달아나지만 말아주라.’


[아화, 그 있잖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두 마디를 써 냈다. 그리고 그에게 보여주기 직전까지도 그냥 미친 척하고 얼른 찢어버릴까 고민했다. 그러고도 나는 잠깐 후회했다. 다음 말을 쓸까 말까, 지금이라도 그냥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마할까 머릿속으로 수천번 고민했다.



“응?”



그러다 머리보다 먼저 몸이 앞서 아화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바람에, 순간 나와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 시선 속에 갇혀 버렸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 눈동자가, 눈물이 고인 건지 우수에 젖은 건지 알 수 없는 영롱한 두 눈동자가 어렴풋이 일렁이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
“뭐야. 아무 말도 안 하고 싱겁긴.”



미소짓는 얼굴이 쓰라리다. 그 미소 뒤에 감춰진 불안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마치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네가 그 표정을 짓는 이유를 알면서도 도와주지 못하는 내가 더욱 미련해보였다.



“…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



아화가 흔들리는 표정으로 할 말을 잃은 나의 대답을 독촉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불안해 보였다. 대체 무엇에 그렇게 초조해하고 있는 건지. 그의 첫 인상에서 받았던 기묘한 느낌의 정체를 이제야 조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에게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그는 영원히 오늘만을 사는 사람 같았다. 말도 안 되는 묘사인줄 알면서도 그보다 더 정확히 아화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늘 미래 대신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 같았고 삶에 남은 미련도 살고자 하는 의지도 딱히 없어 보였다. 거센 태풍에 바스라지며 나무를 떠나가는 고엽처럼.



‘상처 받은 거지? 넌…’



내가 그에게서 확실하게 목격한 것은 두려움과 불안정이었다. 아화는 수 천 개의 돌이 날아와도 똑바로 서서 버틸 수 있을만큼 강해보였지만, 동시에 당장이라도 저 허공 너머로 몸을 던져버릴 수도 있을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내 눈에 그는 태풍에 휩쓸리는 것처럼 휘청휘청거리면서도 결코 엎어지지는 않는 그런 존재였지만 한번이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존재였다.



[별 말 아니야. 여기 자주 오나 해서.]
“어? 별로 자주 오는 건 아닌데. 왜?”
[그냥 궁금하잖아.]
“… 별 걸 다 궁금해한다.”



콘크리트 바닥에 놓인 손 끝이 그와 잠깐 맞닿았다가 스쳐 지나간다. 살짝 만난 손톱 사이로도 아화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내가 이대로 너를 놓아버리면, 넌 그대로 힘없이 넘어질 것만 같아. 그런 너를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서, 내가 주제 넘게 붙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기분 나빠 할까? 경솔한 동정심일 뿐이라며 허구한 날 네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얄팍한 사람들과 날 비슷하게 생각하려는지.



“날이 좋네…”



끝없는 고민으로 뒤섞인 내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화가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벽에 기댔다. 딱딱한 바닥에 편안하게 늘어진 그의 다리가 보였다. 그는 이내 산들바람에 몸을 맡기기라도 하려는 듯, 무거운 눈꺼풀을 스르르 감았다.



‘응…?’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 뭔가 툭하고 닿는 느낌이 들어 옆을 보니, 아화의 머리가 내 오른쪽 어깨로 힘없이 기울어 있었다. 그는 난데 없는 저녁잠에 들어 있었다. 밤공기가 그만큼 상쾌했던 걸까? 아니면 이런 곳에서 단번에 잠에 들만큼 피곤했던 걸까? 무엇이 됐든 간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속눈썹이 편안해 보여 다행이었다.

날씨에 걸맞지 못한 차림과, 긴 옷으로 얼추 가렸지만 한 눈에 봐도 상처투성이인 온 몸. 어리석게도 첫 눈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아화의 삶의 흔적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칠 때마다 그 아픔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예쁘게 자는데…’



선선한 바람에 그의 까만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곤히 잠든 그는 여전히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미남이었지만, 동시에 놀라울만큼 천진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 마치 작은 사탕 하나에도 꾀여 넘어가는 어린 아이를 보는 것처럼.



넌 내가 싫지 않아?

다들 날 안 좋아하거든.




문득 흐릿하게 웃어보이던 아화의 모습이 생각 났다. 그의 웃음은 꼭 가시 박힌 줄기 같아서 더없이 싱그럽게 느껴지다가도 떠올릴수록 가슴이 쓰라려진다. 왜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은 백 가지도 넘게 단정 지으면서 누구도 내면을 봐 줄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항간에 지겹도록 떠도는 소문들이 전부 진실이더라도, 나는 그에 대한 풍문을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아화를 미워하더라도 나 하나 정도는 그의 편에 서 줄 수 있는 거니까.



‘좋은 꿈 꿔. 아화.’



난간 너머로 수놓인 도시의 불빛이 형형하다. 나는 아화의 콧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그의 귓등으로 살짝 넘겨 주었다. 혹여 아화가 깰까, 손 끝의 작은 움직임 하나조차 조심스러웠다.





***
#5 아화.




“우리 이제 그만 같이 다닐까?”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숨이 막힐 정도로 흐리고 습하던 날. 내가 문청에게 전한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도서관 근처를 지나가다 우연히 여러 소문들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늘 있는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비뚤어진 싹수 노란 놈인가, 아니면 문청이 정말로 태어날 때부터 귀머거리인가 하는, 그런 의미없는 부류의 소문. 그래서 나는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이 나를 알아차리기 전에 최대한 빨리 복도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래, 그 임문청. 걔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알아?

세상에 아화랑 같이 있더라니까?




창틈 너머로 자세한 말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선명하게 들은 것은 오직 그 두 마디 뿐이었지만 심상치 않은 내용에 나는 절로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태 나와 그에 대한 많은 소문을 들었지만, 우리의 이름이 한 입에서 나온 적은 없었는데.



둘이 친한가봐.

야, 친한 거겠냐? 안 봐도 아화가 임문청 괴롭히는 거구만.

아니면 걔네 혹시 그런 거 아니야? 왜 그렇고 그런 거 있잖아…




온 몸의 피가 확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참담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백 번도 넘게 들은 저질스러운 소문들인데 어쩐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가 없었다. 울분스럽다.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왜 임문청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야?



—어쩐지, 아화랑 어울리는데 제정신일 리 없지.


‘… 나, 때문에…?’



순간 모든 사고가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심장에 얼음으로 만든 화살을 맞은 것처럼 싸늘한 이 기분은, 아마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겠지.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약하게 부정하고 싶어하는 감정이 느껴졌지만 이미 무력해질대로 무력해진 가슴으로는 적절한 변명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일 때는 그저 관심을 끄고 모른 척 없는 척하며 지내면 그만인 일이었는데, 혼자가 아니게 되니까 나만 신경쓰지 않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여태 혼자가 아니었던 적이 없어서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줄 수가 있구나.


내심 우려하고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외면하려고 했다. 알면서도 계속 그의 곁에 머무르려고 했다. 이런 말들이 생길 줄 짐작했으면서,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억지를 부려 문청의 옆에 있으려 했다.

이기적이었다. 두번 생각할 줄 모르는 멍청한 마음으로 문청까지 저 저렴한 구설수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그의 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왜?]



한참 동안 멍해진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던 문청이 건넨 글은 그 짧은 한 마디였다.

너와 어울리기가 싫어졌어. 라고 거짓말하면, 이 바보 같을 정도로 선량한 소년은 순순히 나에게서 떠나가주겠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문청의 얼굴에 되려 내가 상처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너도 너만의 일이 있고.”


입 밖으로 내뱉는 단어들이 힘겹다. 말 하나하나에 무거운 돌을 실어 보내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거짓을 말하는 것만큼 익숙해진 일이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입 안에 말 대신 가시를 머금은 것처럼 불편한 기분이다.


“내가 널 방해하는 것 같네.”


어색한 미소가 흐릿하게 입가에 떠올랐다. 억지로 웃어보려고 해도 차마 입꼬리가 굽어지지를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형편 없는 연기에 속으로 코웃음이 나왔다.



… [소문들 때문이야?]



아, 똑똑하기도 하시지. 어떻게 단번에 그렇게 정확히 간파해내는지. 속여 넘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번에 알아 차릴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문청에게 내 생각보다도 더 많은 모습을 들킨 모양이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자 문청은 그 침묵에서 대답을 들었는지, 답답해보이는 얼굴로 수첩에 글을 꾹꾹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무겁게 눌린 펜촉 탓인지 종이가 깊게 파여 있었다.


[나는 그런 거 신경 안쓴다니까!]
“… 네가 신경 쓰지 않는 거랑은 다른 일이야.”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괴로운 일들이.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너무 넓고 커서 혼자서는 전복하거나 거스를 수 없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너도 알잖아.

문청은 어느 때보다도 굳센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내 말의 뜻은 이미 애저녁에 이해한 게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알아채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넌 다른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하는 말들이 그렇게 중요해?]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너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해. 난 그냥… 난 그냥 너한테.



“… 너한테 해 끼치기 싫어서 그래.”



피해 주기 싫어서 그랬어. 네가 나 때문에 그런 취급 받는 게 싫어서… 자꾸만 고개가 땅을 향해 기울어졌다. 문청의 찬란한 두 눈동자에 자꾸만 내 모습이 비쳐서 도저히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목젖 너머로 삼켜내는 죄책감이 따끔거렸다.


[무슨 해? 내가 고작 저런 속 빈 말들에 휘둘릴까봐?]
“그렇다기보다는…”
[바보야!]


내가 쩔쩔매며 애써 설명하려 하는 순간, 문청은 그렇게 쓴 종이를 내 얼굴에 던지듯 거세게 내밀었다. 얼마나 가까이 들이 밀었는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한 발짝 물러서서 초점을 다시 맞춰야 했다.

겨우 글을 읽어내고 나서 면목없는 시선을 종이 뒤에 서 있는 문청에게로 옮기자, 입을 앙 다문 그의 얼굴이 보였다. 한껏 힘이 들어간 눈썹과 동시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그의 아래 눈꺼풀이, 묘한 속상함을 담아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하나도 안 중요해.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그래.]
“……”
… [나한테 중요한 건 너밖에 없어.]



그가 결연한 얼굴로 진심을 꾹꾹 눌러담아 나에게 전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쉽게 믿는 편이 아니고, 독심술사는 더더욱 아니지만, 문청의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임문청. 넌 나한테 왜 이렇게 잘 해줘?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 계속 내 곁을 지켜주는 거야? 왜 매번 망설이는 내가 늦게나마 너를 따라갈 수 있도록 끝없이 기다려주는 거야? 이러다 하루아침에 내가 정말 소문 속의 괴물 같은 모습이 되어서, 너를 내동댕이치고 해치면 어쩌려고 나한테 이렇게 많은 걸 주는 거야?


넌, 왜 나를 믿는 거야…? 어떻게 널리 퍼진 소문들이 아니라 나를 믿어줄 수 있는 거야?



[네가 나랑 같이 있는 게 싫다고 하면 그렇게 할게. 난 네가 가장 중요하니까. 그렇지만 다른 말들은 상관 없어.]
“……”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안돼?]



이러지 마. 이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마.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마. 이건 내가 아닌 것 같아. 이런 건 마주해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어. 네 앞에서 꼴사납게 무너지는 내가 싫어. 왜 자꾸만 내 삶에 제멋대로 밀려 들어오는 거야.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가 없어. 이런 건, 이렇게 불가항력적인 건, 싫어.



“……”
… [다시 물어볼게. 나랑 같이 있는 게 싫어서 떠나달라고 하는 거야?]



나는 다시 한참을 망설였다. 주저하는 나의 시선과 확신에 찬 그의 눈빛이 마주쳤다. 나는 운동화 끝을 땅바닥에 쿡쿡 찌르다가 목에 걸린 씨앗을 기침해 뱉어내듯 힘겹게 대답했다.



“…… 아니.”
[그렇지? 그럼 다른 사람들 얘기 계속 신경쓸 거야? 내가 괜찮은데도?]
“아니…”
[사과해!]
“… 미안.”



문청은 꼭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내 입이 떨어지자마자 배시시 웃어 보였다. 언제나 받아 들이는 것보단 내치는 게 쉬웠는데, 그런데, 이 소년은 내칠 수 없게끔 나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마치 내가 사랑이라는 걸 받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만큼.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 아무리 내가 엮였다해도 그런 소문들이 뭐가 중요하다고.]



문청이 내 어깨를 약하게 두드린다. 그 작은 손짓으로도 온 몸이 울리는 기분이다. 그 파동에 반응해 잔잔하던 심장이 다시 낯선 강도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마저도 자신이 없고 불안하다.



‘무서워서…’



난 그냥 무서워서 그랬어. 너만 보면 나는 한없이 무르고 약한 아이가 되는 기분이다. 알에서 갓 깨어난 새가 낯선 환경에 겁을 먹는 것처럼, 나는 자꾸만 나를 너의 세상으로 끌어내려 하는 네가 무서웠고, 네가 나에게 새 팔과, 새 다리와, 새 눈과, 새 귀, 새 심장을 만들어 줄 때마다 지레 겁이 났다.

이러다 네가 내가 사랑했던 다른 것들처럼 내 곁을 떠나가게 되면, 너의 세상에서 내가 금방 지워지게 될까봐. 내가 너와 함께했던 날들을 잊지 못할까봐. 네가 나를 잊어버리게 될까봐.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될까봐.



[음료수 마시러 가자.]



난… 사랑이 무서워.





***
#6 문청.




침대에 누워 뒤척이기 시작한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지만 도저히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대로 눈을 떴다. 불 꺼진 방의 어두운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 잠을 자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도통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너한테 해 끼치는 게 싫어서 그래.

어때, 오늘 하늘 엄청 파랗지?



주눅 들어 있던 아화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 바다와 하늘을 보여주며 아닌 척 잔뜩 들떠있던 어린 아이 같은 모습도 떠올랐다. 그의 그 여린 웃음을 지켜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채이고 찢기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

‘아화…’


마음 속이 꽁꽁 얽힌 실타래처럼 심란했다. 아화가 아닌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명확한 주제가 되는 생각은 없었다. 머릿속이 아화라는 궤도를 따라 의미 없이 빙빙 돌고 있었다.

모든 문제에 정답이 존재한다면 좋을텐데. 그래서 지금 내 마음도 꼭 감기나 천식 같은 병명처럼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면 이런 답답함도 조금은 덜 했을지도 모른다.


‘네 상처는 뭘로 치료할 수 있을까? … 내가 할 수 있을까…?’


다시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해볼까, 하다가 그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그리고는 못다한 문학 과제라도 마저 할 심산으로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켰다.



‘응…?’



그때 책상 앞 작은 창문 너머로 누군가 약하게 창을 두드리는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나뭇잎이나 새가 부딪친 줄 알았지만, 곧 작게 움직이는 인영이 보여서 나는 그제서야 창문 밖에 있는게 사람인 걸 눈치챘다.


“… 야!”


창문 너머로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낯익은 기색에 나는 그 인기척의 주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껏 내가 계속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 사람.


“임문청…!”


겉창을 올리자 드러난 방문객의 정체는 아화였다. 자기 생각하고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찾아왔는지, 아니 그보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오밤중에 무턱대고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 당황스러운 점들이 가득해서 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밖으로 나와 봐.”
[너 이 시간에 뭐해??]
“데려다 줄 데가 있어.”


아화는 나에게 무작정 밖으로 나오라 권했다. 뭐 하는 거냐고 두번 세번씩 물어도 그저 데려다 줄 곳이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나를 바라보는 아화의 표정이 꼭 어린 아이처럼 들뜨고 티 하나 없이 투명해서 나는 차마 그에게 싫은 소리 한 점 할 수가 없었다.


“괜찮아. 나와 봐, 얼른.”


내가 잠시 아무 말이 없자 아화는 그렇게 말하며 생글 웃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그에게 반쯤 넘어가 있었다. 저렇게 순하게 웃는 얼굴에 대고 어떻게 거절을 말할 수 있을까.


‘에잇.’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갈까 말까 머릿속으로 수백 번을 고민했지만 결국 겉옷만 대충 걸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요란하게 대문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 아화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창틀을 통해 넘어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창을 끝까지 밀어 올리고 나를 기다리는 그를 향해, 온 몸을 내던졌다.


“…읏… 차…!”


내 방이 일 층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창틀 반대편에 선 아화의 손을 잡고 최대한 조심해서 넘어간다. 마침내 다리가 방을 넘어가고 발이 야외에 닿는 순간, 생각보다도 더 낮은 지면 탓에 나는 잠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어이쿠.”


반대편에서는 손만 보여서 잠시 내게 존재가 잊혀져 있었던 아화가 바닥으로 엎어질 뻔한 내 상체를 제 품으로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아화는 내 옷을 툭툭 쳐서 먼지를 털어주더니 하나도 안 졸려 보이네- 하며 혼자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내가 안 자고 있을줄 어떻게 알았어?]
“그런 건 생각 안했는데?”
“…?…”
“당연히 네가 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또, 어린 아이같은 웃음을 짓는다. 무언가 질문을 해봐도 그다지 실속은 없는 답변만이 돌아온다.


“가자.”
[어디로 가는 건데? 걸어가게?]
“설마 그럼 내가 너희집 식구들 다 깨우려고 바이크를 끌고 왔을까봐? 자, 뛰어! 나 잘 따라와!”


‘아, 잠깐…!’ 그렇게 말하고 아화는 내 앞을 앞질러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일은 내일의 일정이 있고, 당장 잠들어도 여섯 시간을 채 잘 수 없을 만큼 시간이 늦어버렸다. 아화가 어디를 향해 가는 건지,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인지 나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샌가 그런 생각들은 뒤로 한 채 마냥 그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의 뒤를 쫓아서 정신없이 내달렸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어 거리에 사람은 전무했다. 도로를 따라 쭉 뻗은 직선은 생각보다 곧고 시원했다. 늘 사람들이 붐비던 번화가 뒷골목은 불이 전부 꺼져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르게 무척 어둡고 공허했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텅 빈 거리를 지키고 선 것은 오직 간간이 놓인 가로등 뿐이었지만 그들이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모자란 호흡에 심장도 폐도 곧 터질 것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입가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 왔다.”


한참을 앞질러 달리던 아화가 문득 멈춰 선 곳은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도로변이었다. 속력을 조절하지 못하고 그의 등판에 콩 하고 부딪힌 나는 겨우 멈춰서서 차오른 숨을 몰아 쉬었다. 그제서야 폐가 찢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헉헉거리며 아화가 선 풍경을 이리저리 눈에 담아보았지만, 몇 번을 다시 봐도 여기에 무엇이 있다는 건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
“저기 봐.”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아화가 손을 뻗어 어느 지점을 가리켜 주었다.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곧바로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쏟아지는 항성을 닮은 밤바다의 윤슬이었다.



“예쁘지.”



그 자리에 선 채로 몸이 굳고,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 광경을 본 순간 폐의 통증은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처음으로 봤던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나 언젠가 신문에서 본 지구 반대편의 유명한 자연 경관보다도 더.

바다가 한번 일렁일 때마다 물결을 따라 찬란하게 부서지는 달빛에 눈이 부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것도 아쉬울 정도였다. 별가루를 닮은 그 파편을 있는 힘껏 두 눈에 담으려 애썼다. 나는 줄곧 이곳에 살면서도 집 밖에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내 옆에 선 아화가 나에게 온 몸으로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 전부터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아화는 그렇게 말하며 약간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있던 지난 모든 황홀한 풍경이 떠올랐다. 부드러운 구름 사이로 사라지던 아침 해, 상현달이 그대로 담기던 예쁜 분수, 불타는 석양이 녹아 없어지던 저녁 바다… 그리고 아화, 아화, 또 아화. 내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광경 안에는 항상 아화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네 그 웃음이 내 뇌를 헤집어 놓았다. 소문은 전부 틀렸다. 아화는 비행 청소년도 문제아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사랑과 사람이 필요했던 상처받은 소년이었다. 그 누가 아화를 보고 엇나간 문제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철도 없는 기차는 탈선하기 마련인데.



“어때?”



지푸라기 한 점 없어 괴로운 방황의 길에서도 넌 나를 온 마음으로 믿어줬어. 믿다 못해 네가 줄 수 있는 건 전부 나에게 줬지. 넌 마치 날개를 다친 새처럼 휘청거리면서도, 두 다리로 의연히 내게 다가와 내가 보지 못했던 너른 세상을 선물해줬어. 그리고 서투른 네 순정까지도.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난 일찍부터 알고 있었어. 그 투명한 온정 속에서 나 역시 덜컥 너를 사랑해 버렸으니까.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어… 온 몸과 온 마음에 상처가 가득해도 나를 바라볼 때면 누구보다 영롱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맑게 웃어주는 너인데.



“마음에 들어? ...”



고요한 밤공기를 뚫고 파도가 요동친다. 그 물살에 맞춰 내 귓가와 맞닿은 아화의 어깨 너머로 그의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당장 눈앞에 놓인 거친 바다보다도 여기서 느껴지는 미약한 파동이 더욱 생생했다.


“어? 졸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야. 필담을 이용하느라 소통이 느려 짧은 대화 한번 하는데도 몇 분씩 걸리는 날 답답해하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변함없이 그대로 서서 나를 기다려 준 사람도 네가 처음이었어.

그리고 고요한 새장 속에서 살던 나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저녁 거리를 누비는 상쾌함을 알게 해 준 것도, 들리지 않는 귀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해 준 것도, 날카로운 겉모습 안에 순수한 영혼이 깃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것도, 또 누군가를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이는 낯선 사랑을 알게 해 준 것도. 전부 너야. 너였어. 그래, 너였어… 네가 내 문제의 답이었어.


“눈 좀 붙여, 곧 깨워줄게…”


그래서. 나에게 마음을 준 네가 고마워서. 그때 널 있는 힘껏 붙잡아 주기로 마음 먹었는데. 무한한 사랑과 시간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널 도와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불행을 빙자한 운명의 기로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운명은 좇는 게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 했던가. 그러니까 아무리 질문을 던져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를테면 왜 지금 내 눈 앞에 네가 보이는 것인지. 가장 네가 없었으면 하는 곳에 왜 네가 주저 앉아 있는 건지. 난 그저 오늘따라 밤바다를 찍고 싶었을 뿐인데. 이전에 아화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아름다운 광경을 필름 속에 담고 싶었을 뿐인데.

무언가 알 수 없는 형체가 보여서, 처음에는 그게 웅크리고 잠을 자는 고양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 형체가 피를 흘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시야 끝에 보이는 건 아화였다.



아니기를 바라면서 몇 번을 다시 봤다. 그러나 그 형체는 더이상 부정할 여지조차 없는 분명한 아화였다.


배에서 피를 흘리며, 창백해진 안색으로 쓰러져 있는 아화였다.





***
#7 아화.




상처 난 복부가 고통스럽다. 맞닿은 손바닥에 느껴지는 흙바닥이 차갑다.


‘… 왜 이렇게 된 거지…?’


아니. 왜, 라는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게 내 삶이니까. 되려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거야. 그러니까 의미나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경위를 떠올리는 게 마땅하다.


내가 한 게 아니야.
가서 당신의 무능한 부하들한테나 따지지 그래?


뭐?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그래, 그 놈이, 약쟁이 운반책이었던가. 건달놈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주제에 성질머리 한번 더럽긴. 정말 내가 약값을 빼돌린 게 아니라니까 사람 말 못 믿고 욕지거리나 하며 손부터 나갈 줄이야.

아직도 날카로운 쇠붙이가 뱃가죽을 파고 들어오는 느낌이 생경하다. 몸을 찢는 고통보다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무너지듯 휘청이며 주저앉았을 때 손바닥에 닿던 거친 자갈들의 따가운 감각이다.


‘아, 피가 안 멈추잖아… 젠장…’


힘겹게 손을 들어 칼이 뚫고 지나간 자리를 꾸역꾸역 지혈하려 해봐도 자꾸만 힘이 빠졌다. 기운 없는 손바닥은 상처 위에서 미끄러지고, 어지러운 의식은 이제 그만 제 기능을 멈추고 싶어했다. 의학적 지식은 없어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게 나의 마지막 순간이 될 거라는 걸.

언젠가 나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길바닥에서 태어나, 길바닥에서 굴러먹던 놈이 종단이라고 뭐가 다를까. 만일 그렇게 기대했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내게는 딱 이 정도 대우가 어울린다.


“하아…”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정신이 흐릿해졌다. 타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던 복부도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후련하다거나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출구없는 미로같던 삶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머리가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기는 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단 하나.



네가 보고 싶어…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게 너였다면 좋았을텐데. 마지막으로 날 봐주는 건, 하자 난 돌벽이 아니라, 낡은 회색 가로등이 아니라, 너. 너였어야 하는데…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줄 알면서도 작은 미련이 남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건 아주 사소한 미련이니까. 이제 곧 숨이 꺼질 마당에 이 정도는 면죄부 줘도 괜찮잖아.



“…!”



그때 눈 앞에 누군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건 문청이었다. 흐릿한 시야 탓에 단번에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그건 분명히, 당혹스러운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문청이었다. 가히 극적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었다. 신이 있다면 내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주려고 한 걸까. 그런 덧없는 생각에 와중에도 헛웃음이 나왔다.



“… …, …”
“안녕, 임문청…”



모든 게 끝날 때가 가까워지니 드디어 임문청의 앞에서도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왼 뺨을 향해 팔을 내뻗었다. 손 끝에 따뜻한 물기가 느껴진다. 내 앞의 문청이 울고 있다. 항상 올곧은 심지가 담겨 있던 그 눈이, 아른거리는 눈물로 흔들린다. 이제껏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 그래. 널 봤으니까 됐어.’



이게 나의 최후라면 만족할 수 있어. 더없이 완벽한 결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로소 마음이 안락하게 놓이는 것 같았다. 서서히 눈꺼풀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랬는데. 정신이 희미해져가는 나를 문청이 자꾸 미약하게 흔들며 끝없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 죽으면 안돼. 분명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왜?’


[원에 . 빨리 급차 불러]



문청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꺼내 급하게 휘갈겨 쓴 글을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서 내 복부에 칭칭 감는다. 힘빠진 허리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검붉은 자상이 다시금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파.”


바람 앞의 촛불처럼 자꾸만 흐려져 가는 미약한 의식 속에서도 시야에 너만 보이면 정신이 돌아왔다. 네가 자꾸 나를 사경에서 억지로 끌어내려 했다. 네가 자꾸 나를 고통스러운 현실로 데려왔다. 나는 괴롭고, 시리고, 외롭고, 또 문청이 있는 세상 속으로 계속 꾸역꾸역 잡아 당겨졌다.



‘…?’



불현듯 문청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힘겹게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러더니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손짓하기 시작한다. 그의 마디마디가 연약한 버들잎처럼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문청은 손짓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한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마치 이 손짓의 의미를 알아차려 달라는 듯이.

…아마 수화일까. 그런다고 내가 평생 제대로 접한 적도 없는 수화를 알아 들을 수 있을 리가. 하지만 굼뜬 내 동공을 따라 점점 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 그 손짓이,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곧게 뻗은 손가락과 허공을 휘젓는 다른 편의 손. 저건…




좋아해.




“뭐…?”



순간, 마치 벼랑 끝에서 강제로 끌어 올려지는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맑은 정신이 확 돌아왔다. 독한 마취가 한번에 풀린 것처럼 상처의 고통은 다시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왜 이런 순간까지도 그렇게. 넌 왜, 나마저도 포기해버린 나를 사랑한다 말하는 거야.



“흑, 으으… 흐으…”
“야…”



문청이 서투르게 상처 부위를 지혈하고 있다. 그렇게 손을 덜덜 떨어서야 제대로 힘이 들어가긴 하는 건지. 제대로 행하지는 못할지언정 그가 필사적으로 날 살리려 하는 것이 느껴진다. 네가, 나에게 네 곁에 남아달라 외치고 있다…


그거 알아? 넌. 진짜 이상해. 바보같고, 허당같고, 천진하기까지 해. 야, 누가 소문도 안좋은 질 나쁜 양아치를 믿고 좋아해 줘? 나같이 사랑도 사람도 무서운 놈한텐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사고방식이야. 그래. 그 납득할 수 없는 마음에 난 침몰해 버렸어. 불가항력이야. 달이 지구 주위를 벗어날 수 없듯 나는 항상 너에게 매여 있어. 왜인지는 몰라. 나는 언제나 네 곁으로 돌아와서 너와 함께 바보가 되어 있고,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늘 웃고 있어. 어떤 아픔도 없는 것처럼. 아무런 상처도 받아본 적 없는 것처럼.

언젠가, 내 꿈이 뭐냐고 물어봤던가? 야… 임문청. 내 꿈은 너야. 내 미래는 너야. 내 세상은 너야. 네가 그렇게 만들었어. 그래, 네가 날 고장내버렸어. 네가 날 하루 종일 네 생각만 하게 만들고, 네가 날 너와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네가 날 편안히 잠 잘 수 있게 만들고, 네가 날 웃음 짓게 만들고, 네가 날 숨 쉬게 만들고, 그리고 네가 날.





살고 싶게 만들어.





“… …원에…”
“!”




“… 병원에, 가고 싶어.”


제멋대로 차오른 눈물 탓에 목이 메였다. 매달리듯 문청을 붙잡고 있는 힘을 다 해 겨우 말해냈다. 울먹이는 내 목소리가 놀랄 만큼 앳되게 들렸다. 눈시울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너무 뜨거웠다. 칼을 맞은 부위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곧 멎을 것만 같던 심장이 다시 터질 것처럼 요란하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기는 싫어. 이런 나지만. 내 몸 뉘일 곳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는 나지만. 이렇게 끝나는 건 싫어. 마저 해 보고 싶은 것들도 남아 있고, 아직 너와 함께 가보지 못한 곳들도 많아. 그 마음들이 고작 여기서 소등되게 둘 수는 없어.



“도와줘…”



나의 친구. 나의 연인. 나의 가족, 나의 형제, 나의 스승, 나의 꿈, 나의 동경, 또 내 삶의 시작과 끝. 전부 너여야만 해. 네가 없으면 난 안돼. 난 너라는 바다가 필요한 물고기고, 너라는 은하가 필요한 항성이야.



“도와줘, 임문청…”



그때 나는 결심했다. 무의미한 삶이라도 너 때문에 있는 힘껏 살아가보기로. 너 하나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너 하나만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삶을 포기할 수 없어. 우주를 떠나는 별은 없으니까…








(Bgm: As the world caves in - Matt Maltese)


아화문청 먹어도먹어도 맛있는걸 어떡하면 좋음.. 외강내유 아화와 외유내강 문청의 사랑이 좋다.. 이 둘이 개잘어울림 쓰라린 청춘의 맛tv
예전에 올렸던거 내용 갈아엎고 재업한거라 혹시 기시감 들면 아마 나 맞을거임 여러가지알못ㅁㅇ 날조ㅁㅇ

유덕화양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