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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5 03:10
ㅈㅇㅁㅇ
슬램덩크




대만태섭 왠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 적은 없겠지. 고3고2 때는 크리스마스가 뭐야 윈터컵 준비하고 치르느라 여념이 없고 대1고3 크리스마스 땐 태섭이는 이미 미국에 있어서 어렵겠지. 연휴다 보니 표가 잘 없기도 하고 비싸기도 하고 우선 태섭이가 오는 것부터가 무리임. 대만이가 가더라도 끽해봤자 이틀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 태섭이가 절대 못 오게 하겠지.

그냥 나중에 더 길게 봐요. 롱디 2년차, 언제나처럼 돌아온 크리스마스였지만 전화로만 아쉬움을 달래는 중에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연하남친 말을 듣고 대만이가 넌 나 안 보고싶냐고 잔뜩 서운한 말투로 얘기하면 이마 잠깐 짚고는 한숨 푸욱 쉬는 송군... 장난쳐요? 누가 안 보고싶대. 나도 보고싶거든요. 보지 않아도 수줍음을 숨기려 눈썹을 모으고 입술을 툭 내밀며 투덜거리는 송태섭 모습이 그려져서 금세 웃는 대만이겠지. 도통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송태섭의 약한 소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나도 엄청, 엄청 많이 보고싶어, 태섭아. 눈 앞에 있으면 당장 안았다. 그걸 어떻게 생각했는지 선배 미쳤어요? 하는 말이 넘어오는데, 대만이가 음흉하게 웃으면서 어어 송태섭 너,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래? 나는 그냥 꽉 안아준다는 말이었는데. 하고 놀리겠지. 순간 태섭이가 조용해지더니 ...끊어요. 하는 걸 간신히 막아야했지만ㅋㅋㅋ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도 당연히 대태는 못 만났고, 대만이는 25일 오전 12시가 되자마자 울리는 전화를 당황하면서 받았음. 여보세요? 이 시간에 대체 누군지 조금 짜증을 담아서 받았는데 너무나 익숙한 Hello? 소리에 금세 마음이 풀리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대만이겠지. 헬로우? 태섭이를 흉내내는 듯한 말투에 건너편에서도 웃음소리가 넘어왔음. 메리 크리스마스, 선배. 그 말 한 마디로 벌써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된 대만이는 행복하게 수화기를 고쳐잡으며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전해주었지.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이 제일 먼저 선배랑 통화하고 싶었다는 깜찍한 발언을 듣고 키스를 퍼부어 줄 수 없다는 게 한이었음. 당장 날아가서 너 안고싶다. 이번엔 야한 뜻이야. 그 말에 태섭이는 킥킥거리는 웃음으로 대신 대답했지.

그 다음 해에도 태섭이는 한국 시간으로 25일 12시에 맞춰 대만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받지 않았음. 5번을 걸어봐도 듣고 싶은 목소리 대신 반복되는 기계음만 계속 들리자 결국 끊어야했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휴가를 길게 받게 되었지만 그닥 기쁘지는 않았음.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선배를 보러 갈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자꾸 후회를 두지 않으려고 했음. 이따가 다시 전화해봐야겠다. 아쉬움을 삼키고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지.

모처럼 쉬는 날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겠지.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화면을 보니 저절로 미소를 띄게 됨. 선배? 조금 들뜬 목소리로 받으면 응, 태섭아. 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넘어오겠지. 안 그래도 전화했었는데. 지금 통화돼요? 당연히 되지. 너는 무조건 돼. 그 말에 괜히 제 앞머리를 꼬아보는 태섭이었음. 자신이 정대만에게 특별한 예외라는 점은 여전히 익숙치가 않았거든.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거기는 크리스마스죠? 묻는데 대만이가 뜸을 들이더니 음.... 그렇겠지? 하는 거임.

"그렇겠지는 뭐예요."
- 몰라. 계산이 안 돼.
"선배 혹시 취했어요?"
- 아니 멀쩡한데.
"근데 무슨 계산이 안 돼요?"
- 으음.....
"어어 뭐지?"
- 태섭아, 문 좀 열어봐.
"문?"
- 응 너희집 문.
"우리집 문은 왜-"

아 설마. 설마. 설마! 폰을 꼭 쥐고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면

- 내가 지금 미국이라, 한국 시간이 계산이 안 되네.
"내가 지금 미국이라, 한국 시간이 계산이 안 되네."

핸드폰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겠지.

"메리 크리스마스. 아, 여기는 아직 아닌가?"
"어...떻게 왔어요?"

대만이는 통화를 끊고 그랬음. 너 보고싶어서 왔다고. 이번에 감독님 졸라서 휴가도 길게 받았으니까 같이 오래 있을 수 있다고. 그러면서 태섭이를 안아주며 살 것 같다고 하는데, 눈으로만 봤던 정대만의 온기가 몸을 감싸자 그제야 태섭이도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지. 살 것 같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에요. 그 말 대신 대만이가 어디 가지 못하도록 팔을 들고 힘을 주어 안았음.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듯 낮게 웃는 소리가 위에서 들리자 아예 몸을 대만이에게 푹 묻고 눈을 감는 태섭이었지. 진짜 정대만이 여기 있어. 한국 안 가고 여기 있길 잘했다. 아까의 후회가 행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음.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수 있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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