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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3 18:13
원작 날조 주의
캐붕주의
빻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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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있다. 어떤 계산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목표를 쫓기에 정신이 없는 날. 눈앞을 보느라 발밑을 보지 못하는 날. 궁지에 몰린 용의자는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들었다. 손가락보다 좀 더 긴, 정말 작은 칼이었다. 타니는 그 칼이 무섭지 않았다. 칼보다 더 무서운 것도 많이 봤다. 조금만 더 용의자를 압박하면 수갑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의자는 꽤 빠르게 타니의 품을 파고들었고, 칼은 타니의 옆구리를 스쳤다.
“윽!”
피가 솟아나 옷과 바닥을 적셨다. 용의자는 멀리 가지 못하고 잡혔다. 타니는 비틀비틀 걸어가다 길가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요란하게 구급차가 오더니 타니를 싣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의 후원을 받고 있는 병원이었다.
“환자분. 움직이지 마세요. 출혈이 심해지면 빈혈이 올 수도 있어요”
한두 번 겪는 부상도 아닌데. 타니는 이를 꽉 물고 분노를 삼켰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차분하게 타니의 상처를 치료했다. 마취가 풀리면 아플 수도 있다는 말에 타니는 코웃음을 쳤다. 왜 아다치 얼굴이 떠올랐는지는 타니도 모른다.
몸보다 마음이 더 불편했기 때문에 타니의 밤은 길었다. 상처가 아프긴 했어도 장기 손상까진 아니었기에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상이 아닌 건 아니었다. 피를 많이 흘렸으니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타니를 찾아온 사람은 팀장님 뿐이었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류 몇 장을 타니에게 주었다.
“츠게 마사토.”
“……하.”
“아는 얼굴이지?”
서류엔 문장 몇 줄로 이루어진 기사가 인쇄되어 있었다. 타니가 사는 도시에 부패 경찰이 쫙 깔려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없어도 알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였다. 도시를 꽉 잡고 있는 특정 집안의 비리. 그들의 뒤를 봐주는 부패 경찰. 그 부패 경찰의 과잉 진압. 전부 타니의 이야기였다.
“좀 쉬어.”
“일주일 지나면 출근할 수 있어요.”
“내가 너 걱정되서 하는 소리같아? 몸 사리라는 거잖아.”
팀장이 하는 말에 걱정은 없었다. 여전히 타니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타니는 밤이 내린 병실에서 아침 해가 뜨는 것까지 전부 지켜봤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은 분노가 되어 타니를 움직였다. 타니는 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찍 퇴원했다.
- 여보세요?
츠게의 번호를 저장해서 다행이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타니가 절뚝거리며 비아냥댔다.
“야. 미쳤냐?”‘
- 소식이 빠르군. 좀 미안한 걸.
“좀 미안? 건방진 자식. 내가 살려줬더니…….”
- 네 발이 묶이면 쿠로사와가 귀찮아질 것 같아서.
밤공기가 찼다. 타니는 길 가운데에 우뚝 섰다.
- 네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
- 아다치를 도와줘.
수많은 차가 도로를 달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타니의 곁을 지나갔다. 츠게는 타니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타니를 괴롭히는 불쾌감. 분노.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다치’ 이름을 듣자 마자 눈녹듯 사라졌다. 약효 때문에 통증이 아릿하게만 느껴졌다. 타니는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타니는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번호가 없었다. 걸고 싶은 번호도 저장되어있지 않았다. 쿠로사와는 아다치의 휴대폰과 번호를 바꿔주었다. 타니는 쿠로사와의 방법을 잘 안다. 연락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아다치와 주변인들의 관계를 끊어낼 것이다.
“…….”
병원에선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는데, 타니는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시계를 봤을 땐 쿠로사와의 출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타니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다치는 혼자일테니.
“형수님.”
타니는 겁도 없이 신혼집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형수님!”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다. 쿠로사와가 아다치를 헤쳤을 리 없다. 타니는 계속 현관문을 두드렸다. 옆집 남자가 시끄럽다며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뭘 봐. 신경 끄라고.”
복도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문이 열렸다. 안전고리가 채워져 있던 상태라 아다치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타니는 문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다치는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형수님.”
“……. 그…… 그만…….”
“예?”
“그만……. 해주세요. 다들 싫어하니까…….”
아다치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바람소리에도 묻히는 것 같았다. 옆집 남자는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타니는 문 사이로 손을 집어 넣었다.
“문 열어줘요. 안 열어주면.”
“…….”
“계속 소란 피울거예요.”
다정한 아다치. 엉망으로 다친 츠게가 아직도 악몽에 나오는데, 간절해 보이는 타니를 외면하지 못했다. 아다치는 문을 열어주었다. 타니는 무언가에 쫓기듯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
“…….”
두 사람은 낯선 관계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타니는 어떤 계산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아다치를 쫓아 여기에 왔다. 아다치는 그저, 타니가 어떤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아 무서웠을 뿐이었다. 타니는 손바닥을 쥐었다 펴며 긴장만 하다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아다치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다치의 주머니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아…….”
아다치는 타니의 눈치를 보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입술이 유독 통통하고 빨갛다. 꼭 부은 것처럼…….
“쿠로사와가……. 왜 왔느냐고 물어요…….”
타니는 뒤를 돌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욕을 중얼거렸다.
“나도 몰라요.”
“네?”
겁먹은 아다치. 타니에게 붙임성이 좋다고 말하던 얼굴. 타니가 한 걸음 더 아다치에게 다가갔다. 그때 진통제로 가린 통증이 찌릿- 하고 올라왔다. 타니는 본능적으로 상처부위를 감쌌다. 화려한 패턴의 셔츠 위로 피가 베어나왔다.
“어어. 피!”
타니보다 아다치가 더 놀랐다. 정작 타니는 옷이 더러워진 것을 안타까워하기만 했다. 아다치는 거실장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타니가 피는 곧 멎을 거라고 얘기했는데도 아다치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타니의 얼굴과 츠게에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피는 이제 싫었다. 누군가 다치는 건 더더욱 싫다. 타니가 아다치의 어깨를 잡았다.
“저 괜찮다고 했잖아요.”
봉합부위가 좀 덜 나은 것뿐이다. 아다치는 타니의 손을 탁 쳐내더니 또 놀란 표정으로 사과했다. 타니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오히려 자신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쳤어요?”
“아. 예. 범인 잡다가 조금.”
약간의 거짓말도 섞여있다. 타니가 쫓았던 사람은 범인이 아닌 용의자였다. 아다치는 상처 부위를 봐야겠다고 했다. 거즈라도 감아줘야 겠다고. 타니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쉽게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다치에겐 보여주고 싶었다. 타니는 소파에 앉아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렀다. 잘 짜여진 근육 위로 자잘한 흉터가 많았다. 아다치가 조용히 놀랐다. 타니는 아다치의 순수한 눈길에 타버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 있어야 하지 않아요?”
“별 거 아니에요.”
아다치는 피가 스며든 거즈를 떼고 새 거즈를 붙여주었다. 그 손길에 망설임이 없어서 타니는 괜히 뱃속이 간질댔다.
“아팠겠다.”
아주 짧은 말인데도 진심이 느껴졌다. 타니는 헛기침을 한 뒤 다시 옷을 입었다. 심장이 두근댔다.
“뭐 하고 있었어요?”
툭 던지는 질문처럼 보여도 아다치를 향한 어떤 애정이 느껴졌다. 그걸 알 리 없는 아다치는 조용히 구급상자를 치웠다.
“그냥 있었어요.”
아다치의 목소리가 다 시들어 있었다. 타니는 아다치가 들풀이라고 생각했다. 들풀은 시드는 법이 없다. 어디든 흙과 물. 햇빛만 있으면 잘 자란다. 누가 뽑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 쿠로사와 유이치가 뽑아놨구나.’
그리고 그걸 도운 건 타니다. 타니는 눈을 질끈 감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덜 아문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할 말이 있어요.”
아다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츠게 마사토. 난 그 사람 몰랐어요.”
“…….”
“쿠로사와 유이치 그 새끼가.”
타니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쿠로사와가 어떤 더러운 명령을 내리는지 말하려면 자신이 그 명령을 전부 수행해냈다는 사실도 말해야만 했다. 아다치는 눈만 깜빡거리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꺾인 건 아다치인데. 궁지에 몰린 건 타니였다.
“죄송해요.”
타니가 평소에 자주 아끼던 말이다. 죄송하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면 계속 죄송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싫어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아다치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츠게한테도 사과했어요?”
타니는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아다치는 타니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했다.
“아니. 아니예요. 잊어주세요.”
“뭐가요.”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뭐가요.”
“츠게도. 타니씨도.”
타니는 아다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섣불리 말을 할 수 없었다. 타니의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쿠로사와에게서 온 문자였다.
- 거기서 뭐해?
- 말 없이 아다치 만나지 마.
- 나가
타니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본인 탓 자주 하지 마세요.”
아다치의 뒷모습이 동요하는 것 같았다. 타니는 용기를 얻고 더 말했다.
“그럼 자기 탓이 아닌 것도 자기 탓이 되니까요.”
아다치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 상대는 타니나 쿠로사와가 적당할 것이다. 아다치는 타인을 미워하는 게 힘들어서 오히려 자신 탓을 하고 있었다. 아다치는 바닥에서 일어나 몸만 살짝 튼 채로 말했다.
“저 쉬고 싶어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아다치의 말은 강한 힘이 있었다. 타니는 그저 손님이었다. 여긴 쿠로사와와 아다치의 집이고. 이제 곧 아다치는 쿠로사와가 된다.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은 뿌리째 뽑혀 다시 심어진 아다치가 아니라 타니였다. 타니는 별다른 인사 없이 집을 나섰다. 아다치는 손을 깨끗이 씻고 침대로 들어갔다. 제시간에 맞춰 퇴근한 쿠로사와가 아다치를 먼저 찾았다.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스킨십을 피하지 않았다.
“타니랑 무슨 얘기 했어?”
쿠로사와가 물었다.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품속에서 웅얼댔다.
“사과하러 온 것 같아.”
“어떤 사과?”
쿠로사와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아다치의 귓가에 쿠로사와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쿵. 쿵
“상냥하게 대해주지 못한 거.”
“뭐어?”
아다치는 쿠로사와가 자신을 보지 못하게 쿠로사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쿠로사와는 아다치의 말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뒤통수를 더 꾸욱 눌렀다.
“아다치 친구 일 때문에 그랬구나.”
“…….”
“그런데 그 자식이 그런 말을 했다고? 의외인데.”
쿠로사와는 그 날. 아다치를 보고 있던 타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도 반쯤은 쿠로사와 피라고, ‘그런 일’에 거리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과대평가했군.’ 쿠로사와가 생각했다.
“그래서 아다치는 뭐라고 했어?”
아다치가 떠올리는 타니와 쿠로사와의 머릿속 타니는 비슷하면서도 좀 달랐다. 아다치는 되려 타니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다.
“돌아가 달라고 했어. 쉬고 싶다고.”
마음에 든 대답이었나 보다. 쿠로사와가 아다치의 뺨에 쪽쪽 입을 맞췄다.
“피곤했구나. 응. 타니 혼내줄까?”
가만히 안겨있던 아다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쿠로사와는 눈부신 미소를 지은 채 아다치의 등을 토닥였다.
“농담이야. 아다치는 예나 지금이나 속마음을 잘 못 숨기네.”
쿠로사와는 아다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아다치는 이제 잘 기억나지도 않는. 쿠로사와와 함께 보냈었던 어린 날의 추억 한조각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몸이 약했던 아이. 엄한 집에서 자라 늦은 시간 반딪불이도 본 적 없는 아이. 떠나던 날 자신과 함께 가자고 드물게 떼를 쓰던 아이.
‘꼭 데리러 올 거야.’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그 마음이 지금까지 그대로일줄은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쿠로아다 타니아다 마치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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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있다. 어떤 계산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목표를 쫓기에 정신이 없는 날. 눈앞을 보느라 발밑을 보지 못하는 날. 궁지에 몰린 용의자는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들었다. 손가락보다 좀 더 긴, 정말 작은 칼이었다. 타니는 그 칼이 무섭지 않았다. 칼보다 더 무서운 것도 많이 봤다. 조금만 더 용의자를 압박하면 수갑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의자는 꽤 빠르게 타니의 품을 파고들었고, 칼은 타니의 옆구리를 스쳤다.
“윽!”
피가 솟아나 옷과 바닥을 적셨다. 용의자는 멀리 가지 못하고 잡혔다. 타니는 비틀비틀 걸어가다 길가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요란하게 구급차가 오더니 타니를 싣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의 후원을 받고 있는 병원이었다.
“환자분. 움직이지 마세요. 출혈이 심해지면 빈혈이 올 수도 있어요”
한두 번 겪는 부상도 아닌데. 타니는 이를 꽉 물고 분노를 삼켰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차분하게 타니의 상처를 치료했다. 마취가 풀리면 아플 수도 있다는 말에 타니는 코웃음을 쳤다. 왜 아다치 얼굴이 떠올랐는지는 타니도 모른다.
몸보다 마음이 더 불편했기 때문에 타니의 밤은 길었다. 상처가 아프긴 했어도 장기 손상까진 아니었기에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상이 아닌 건 아니었다. 피를 많이 흘렸으니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타니를 찾아온 사람은 팀장님 뿐이었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류 몇 장을 타니에게 주었다.
“츠게 마사토.”
“……하.”
“아는 얼굴이지?”
서류엔 문장 몇 줄로 이루어진 기사가 인쇄되어 있었다. 타니가 사는 도시에 부패 경찰이 쫙 깔려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없어도 알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였다. 도시를 꽉 잡고 있는 특정 집안의 비리. 그들의 뒤를 봐주는 부패 경찰. 그 부패 경찰의 과잉 진압. 전부 타니의 이야기였다.
“좀 쉬어.”
“일주일 지나면 출근할 수 있어요.”
“내가 너 걱정되서 하는 소리같아? 몸 사리라는 거잖아.”
팀장이 하는 말에 걱정은 없었다. 여전히 타니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타니는 밤이 내린 병실에서 아침 해가 뜨는 것까지 전부 지켜봤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은 분노가 되어 타니를 움직였다. 타니는 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찍 퇴원했다.
- 여보세요?
츠게의 번호를 저장해서 다행이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타니가 절뚝거리며 비아냥댔다.
“야. 미쳤냐?”‘
- 소식이 빠르군. 좀 미안한 걸.
“좀 미안? 건방진 자식. 내가 살려줬더니…….”
- 네 발이 묶이면 쿠로사와가 귀찮아질 것 같아서.
밤공기가 찼다. 타니는 길 가운데에 우뚝 섰다.
- 네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
- 아다치를 도와줘.
수많은 차가 도로를 달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타니의 곁을 지나갔다. 츠게는 타니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타니를 괴롭히는 불쾌감. 분노.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다치’ 이름을 듣자 마자 눈녹듯 사라졌다. 약효 때문에 통증이 아릿하게만 느껴졌다. 타니는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타니는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번호가 없었다. 걸고 싶은 번호도 저장되어있지 않았다. 쿠로사와는 아다치의 휴대폰과 번호를 바꿔주었다. 타니는 쿠로사와의 방법을 잘 안다. 연락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아다치와 주변인들의 관계를 끊어낼 것이다.
“…….”
병원에선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는데, 타니는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시계를 봤을 땐 쿠로사와의 출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타니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다치는 혼자일테니.
“형수님.”
타니는 겁도 없이 신혼집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형수님!”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다. 쿠로사와가 아다치를 헤쳤을 리 없다. 타니는 계속 현관문을 두드렸다. 옆집 남자가 시끄럽다며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뭘 봐. 신경 끄라고.”
복도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문이 열렸다. 안전고리가 채워져 있던 상태라 아다치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타니는 문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다치는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형수님.”
“……. 그…… 그만…….”
“예?”
“그만……. 해주세요. 다들 싫어하니까…….”
아다치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바람소리에도 묻히는 것 같았다. 옆집 남자는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타니는 문 사이로 손을 집어 넣었다.
“문 열어줘요. 안 열어주면.”
“…….”
“계속 소란 피울거예요.”
다정한 아다치. 엉망으로 다친 츠게가 아직도 악몽에 나오는데, 간절해 보이는 타니를 외면하지 못했다. 아다치는 문을 열어주었다. 타니는 무언가에 쫓기듯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
“…….”
두 사람은 낯선 관계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타니는 어떤 계산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아다치를 쫓아 여기에 왔다. 아다치는 그저, 타니가 어떤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아 무서웠을 뿐이었다. 타니는 손바닥을 쥐었다 펴며 긴장만 하다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아다치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다치의 주머니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아…….”
아다치는 타니의 눈치를 보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입술이 유독 통통하고 빨갛다. 꼭 부은 것처럼…….
“쿠로사와가……. 왜 왔느냐고 물어요…….”
타니는 뒤를 돌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욕을 중얼거렸다.
“나도 몰라요.”
“네?”
겁먹은 아다치. 타니에게 붙임성이 좋다고 말하던 얼굴. 타니가 한 걸음 더 아다치에게 다가갔다. 그때 진통제로 가린 통증이 찌릿- 하고 올라왔다. 타니는 본능적으로 상처부위를 감쌌다. 화려한 패턴의 셔츠 위로 피가 베어나왔다.
“어어. 피!”
타니보다 아다치가 더 놀랐다. 정작 타니는 옷이 더러워진 것을 안타까워하기만 했다. 아다치는 거실장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타니가 피는 곧 멎을 거라고 얘기했는데도 아다치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타니의 얼굴과 츠게에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피는 이제 싫었다. 누군가 다치는 건 더더욱 싫다. 타니가 아다치의 어깨를 잡았다.
“저 괜찮다고 했잖아요.”
봉합부위가 좀 덜 나은 것뿐이다. 아다치는 타니의 손을 탁 쳐내더니 또 놀란 표정으로 사과했다. 타니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오히려 자신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쳤어요?”
“아. 예. 범인 잡다가 조금.”
약간의 거짓말도 섞여있다. 타니가 쫓았던 사람은 범인이 아닌 용의자였다. 아다치는 상처 부위를 봐야겠다고 했다. 거즈라도 감아줘야 겠다고. 타니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쉽게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다치에겐 보여주고 싶었다. 타니는 소파에 앉아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렀다. 잘 짜여진 근육 위로 자잘한 흉터가 많았다. 아다치가 조용히 놀랐다. 타니는 아다치의 순수한 눈길에 타버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 있어야 하지 않아요?”
“별 거 아니에요.”
아다치는 피가 스며든 거즈를 떼고 새 거즈를 붙여주었다. 그 손길에 망설임이 없어서 타니는 괜히 뱃속이 간질댔다.
“아팠겠다.”
아주 짧은 말인데도 진심이 느껴졌다. 타니는 헛기침을 한 뒤 다시 옷을 입었다. 심장이 두근댔다.
“뭐 하고 있었어요?”
툭 던지는 질문처럼 보여도 아다치를 향한 어떤 애정이 느껴졌다. 그걸 알 리 없는 아다치는 조용히 구급상자를 치웠다.
“그냥 있었어요.”
아다치의 목소리가 다 시들어 있었다. 타니는 아다치가 들풀이라고 생각했다. 들풀은 시드는 법이 없다. 어디든 흙과 물. 햇빛만 있으면 잘 자란다. 누가 뽑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 쿠로사와 유이치가 뽑아놨구나.’
그리고 그걸 도운 건 타니다. 타니는 눈을 질끈 감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덜 아문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할 말이 있어요.”
아다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츠게 마사토. 난 그 사람 몰랐어요.”
“…….”
“쿠로사와 유이치 그 새끼가.”
타니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쿠로사와가 어떤 더러운 명령을 내리는지 말하려면 자신이 그 명령을 전부 수행해냈다는 사실도 말해야만 했다. 아다치는 눈만 깜빡거리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꺾인 건 아다치인데. 궁지에 몰린 건 타니였다.
“죄송해요.”
타니가 평소에 자주 아끼던 말이다. 죄송하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면 계속 죄송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싫어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아다치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츠게한테도 사과했어요?”
타니는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아다치는 타니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했다.
“아니. 아니예요. 잊어주세요.”
“뭐가요.”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뭐가요.”
“츠게도. 타니씨도.”
타니는 아다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섣불리 말을 할 수 없었다. 타니의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쿠로사와에게서 온 문자였다.
- 거기서 뭐해?
- 말 없이 아다치 만나지 마.
- 나가
타니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본인 탓 자주 하지 마세요.”
아다치의 뒷모습이 동요하는 것 같았다. 타니는 용기를 얻고 더 말했다.
“그럼 자기 탓이 아닌 것도 자기 탓이 되니까요.”
아다치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 상대는 타니나 쿠로사와가 적당할 것이다. 아다치는 타인을 미워하는 게 힘들어서 오히려 자신 탓을 하고 있었다. 아다치는 바닥에서 일어나 몸만 살짝 튼 채로 말했다.
“저 쉬고 싶어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아다치의 말은 강한 힘이 있었다. 타니는 그저 손님이었다. 여긴 쿠로사와와 아다치의 집이고. 이제 곧 아다치는 쿠로사와가 된다.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은 뿌리째 뽑혀 다시 심어진 아다치가 아니라 타니였다. 타니는 별다른 인사 없이 집을 나섰다. 아다치는 손을 깨끗이 씻고 침대로 들어갔다. 제시간에 맞춰 퇴근한 쿠로사와가 아다치를 먼저 찾았다.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스킨십을 피하지 않았다.
“타니랑 무슨 얘기 했어?”
쿠로사와가 물었다.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품속에서 웅얼댔다.
“사과하러 온 것 같아.”
“어떤 사과?”
쿠로사와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아다치의 귓가에 쿠로사와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쿵. 쿵
“상냥하게 대해주지 못한 거.”
“뭐어?”
아다치는 쿠로사와가 자신을 보지 못하게 쿠로사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쿠로사와는 아다치의 말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뒤통수를 더 꾸욱 눌렀다.
“아다치 친구 일 때문에 그랬구나.”
“…….”
“그런데 그 자식이 그런 말을 했다고? 의외인데.”
쿠로사와는 그 날. 아다치를 보고 있던 타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도 반쯤은 쿠로사와 피라고, ‘그런 일’에 거리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과대평가했군.’ 쿠로사와가 생각했다.
“그래서 아다치는 뭐라고 했어?”
아다치가 떠올리는 타니와 쿠로사와의 머릿속 타니는 비슷하면서도 좀 달랐다. 아다치는 되려 타니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다.
“돌아가 달라고 했어. 쉬고 싶다고.”
마음에 든 대답이었나 보다. 쿠로사와가 아다치의 뺨에 쪽쪽 입을 맞췄다.
“피곤했구나. 응. 타니 혼내줄까?”
가만히 안겨있던 아다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쿠로사와는 눈부신 미소를 지은 채 아다치의 등을 토닥였다.
“농담이야. 아다치는 예나 지금이나 속마음을 잘 못 숨기네.”
쿠로사와는 아다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아다치는 이제 잘 기억나지도 않는. 쿠로사와와 함께 보냈었던 어린 날의 추억 한조각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몸이 약했던 아이. 엄한 집에서 자라 늦은 시간 반딪불이도 본 적 없는 아이. 떠나던 날 자신과 함께 가자고 드물게 떼를 쓰던 아이.
‘꼭 데리러 올 거야.’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그 마음이 지금까지 그대로일줄은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쿠로아다 타니아다 마치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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