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5006
2024.11.23 06:29


ㅂㄱㅅㄷ 어나더 3나더 4나더 5나더     




녀석의 외삼촌에게서 아주 신선한 해산물이 많이 들어왔으니까 와서 술 한 잔 하라는 말을 전달받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녀석을 붙잡고 네가 나랑 사귄다고 말한 거냐고 녀석을 짤짤 털었는데 녀석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래서 그냥 녀석이랑 친하게 지내는 교사라서 부른 건가 하고 안심하려던 찰나 녀석은 폭탄을 던졌다. 

"외삼촌이 옛날부터 눈치가 빨라요."
"야!"

마치다는 다시 녀석을 붙잡고 짤짤 털었으나 녀석의 외삼촌이 눈치가 빠른 게 녀석의 탓은 아니고, 그저 당황했을 뿐이었다. 이제 녀석의 졸업까지는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 와서 들키는 건 억울하기도 했고, 직장이 걱정되기도 했고. 하지만 녀석은 속없이 우리 외삼촌 좋은 사람이라며 맘편한 소리나 해 댔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외삼촌은 녀석의 말대로 좋은 분이었고, 마치다의 불안한 예감대로 마치다와 녀석의 관계도 짐작하고 계셨다. 녀석의 외삼촌은 녀석만큼 전복을 좋아하시는지 싱싱한 전복회와 갖가지 생선회, 그리고 생선회를 뜨고 남은 부분을 넣어서 끓인 맑은 탕과 각종 해산물 튀김을 내 주셨다. 마치다는 맥주파였지만 이 지역의 전통술이라며 내준 술도 깔끔하고 맛있었다. 

녀석과 녀석의 외삼촌, 그리고 녀석을 고용하고 있는 바이크샵의 사장님이 마치다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알고 보니 녀석의 외삼촌과 바이크샵 사장님, 그리고 녀석의 친부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친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녀석의 어머니, 그러니까 외삼촌의 동생이 녀석의 친부와 결혼한다고 할 때도 환영했었다고 하고. 녀석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녀석의 집안도 남부러울 것 없이 화목하고 단란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젊어서 병에 걸리면 젊은 체력으로 병을 쉬 이겨낼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젊어서 더 손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녀석의 어머니가 그런 경우였다. 녀석의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자꾸 피곤해했는데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다른 집에서는 그런 걸 눈치채지도 못했다고 했다. 어린 녀석이 엄마가 피곤하니까 자기가 도와야 한다며 심부름을 다닐 때도 그저 귀엽다고 여겼다고. 녀석의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라서 약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망가졌고 집안은 무너졌다고. 

녀석과 마치다가 회와 튀김을 열심히 주워먹는 동안 아저씨들은 주로 맑은 탕과 함께 술을 먹었기 때문에 탕이 떨어지자 녀석이 어묵탕이라도 간단히 끓여오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그 틈에 녀석의 외삼촌과 바이크샵 사장은 녀석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계시고 교사들과 주변 어른들이 빨리 알아채서 여기 두 사람이 녀석의 아버지를 마구 팬 덕분에 학대는 곧 중단됐다나. 어린애를 어디 때릴 데가 있어서 손을 대냐고 막 팼더니 지역을 떠 버렸다고 했다. 못났다, 진짜.

그렇게 집을 나갔다가 돈 떨어지면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결국 사채업체에서 거액의 돈을 빌려 잠적해 버렸고.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던 녀석의 할머니가 심장을 붙잡고 한 번 쓰러진 바람에 눈이 돌아간 녀석이 전국을 뒤져서 결국 잡아왔다고.

칼빵 맞은 게 인생 최대의 사건이었던 (물론 칼빵 맞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에게 다 인생 최대의 사건일 거다) 마치다와 달리 짧은 인생이 그리 평탄지 않았다는 녀석은 얼마 후에 보글보글 끓은 어묵탕을 가지고 와서 맑은 탕 냄비를 치우고 대신 어묵탕을 올렸다. 탕이 다 떨어져서 술만 마시다가 얼른 어묵탕을 한 그릇 뜨려던 녀석의 외삼촌은 냄비 안을 유심히 보다가 녀석을 돌아봤다. 

"무슨 어묵탕에 곤약이 어묵보다 더 많냐?" 
"우리 선생님이 곤약 좋아하거든요."

녀석이 곤약 가득과 약간의 어묵, 그리고 약간의 채소를 담아서 마치다의 앞에 한 그릇 놔주며 실실거리자 녀석의 외삼촌은 혀를 끌끌 찼다. 

"키워줬더니 다 헛수고구만. 선생님 입만 입이냐, 이 녀석아?"
"아, 뭘 또 그래요. 여기 외삼촌이 좋아하는 쑥갓 많네. 쑥갓 먹어요. 쑥갓."
"뭐, 임마?"
"농담이에요. 어묵도 많아요. 많이 드세요. 곤약은 탐내지 말고."

녀석의 외삼촌과 바이크샵 사장은 또 혀를 끌끌 찼지만 녀석을 타박하는 목소리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어서 맛보라며 마치다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기만 했지만. 마치다는 국물 맛이 진하게 벤 데다 예쁘게 썰린 따끈한 곤약을 입에 넣으며 녀석이 어묵탕을 끓이러 간 동안 녀석의 외삼촌과 바이크샵 사장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애가 고생했던 거에 비해 착해요. 착실하고. 그건 다행인데...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그런지 세상만사가 시큰둥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오고나서 사는 게 아주 재밌나 보더라고. 얼굴이 아주 피었어요. 매일 신나 있어서 어찌나 보기 좋은지. 
제가 해 준 것도 없는데요. 다 두 분이 녀석을 잘 보살펴주신 덕분이죠.


그러자 바이크샵의 사장이 폰에 있는 사진을 몇 장 보여줬다. 녀석이 바이크샵의 동료와 찍은 사진도 있었고 혼자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배경을 보니 어디 다 함께 놀러가서 찍은 것 같았는데도 녀석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녀석이 낮에 마치다에게 보여주는 밝고 다정한 모습과는 물론 완전히 달랐고, 밤에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얼굴과도 완전히 달랐다. 밤에 녀석은 종종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을 했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이는 그 얼굴에는 항상 마치다를 향한 날것의 욕망과 무시무시한 집착이 보였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녀석은...





그날 마치다는 외삼촌이 집에 갖고 가서 먹으라며 잔뜩 챙겨준 해산물을 든 녀석과 함께 녀석의 집으로 가면서 무심하게 물었다. 

"넌 앨범 같은 거 없어?"
"앨범이요? 무슨 앨범이요?"
"사진 앨범."
"요즘 누가 앨범을 갖고 있어요. 역시 아저-"
"닥쳐."

마치다가 발끈하자 녀석은 키득키득 웃더니 제 폰을 흔들었다. 

"사진이야 있죠. 왜요? 보고 싶어요? 현재의 나로는 부족해? 과거의 나까지 다 가져야겠어요? 아주 그냥 날 완전히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겠어요?"
"제발 닥쳐주라."

녀석은 시답잖은 장난을 치긴 했지만 집에서 폰을 열어 사진을 다 보여주긴 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의 녀석은 바이크샵 사장이 보여준 사진과 다르지 않았다. 10살쯤 이전에는 밝고 개구진 아이였지만 그 이후로는 사진이 많지도 않았고 있는 사진도 대부분 무표정하거나 귀찮은 표정이었다.

마음쓰이게... 





그 후부터 마치다는 녀석과 함께 놀러다닐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녀석이 졸업했기 때문에 당당했다) 덕분에 마치다의 폰에도, 녀석의 폰에도 밝고 환하게 잘 웃는 녀석들의 사진이 꽤 채워졌을 때였다. 그날도 녀석과 함께 대나무 숲이 근사한 근처 관광지에 놀러갔다가 돌아와서 녀석의 자취방 앞에서 바이크를 내릴 때였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몸이 으슬으슬했던 마치다가 따끈한 전골을 먹고 싶다고 하자 녀석은 사야 될 재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녀석이 고기와 청경채, 버섯을 사야 한다고 중얼거리면서 아직 바이크를 세우고 있었고 마치다가 먼저 내렸을 때.

"너 때문에...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너 같은 것 때문에... 이 배은망덕한 새끼...."

누군가 술에 취한 듯 불분명한 발음으로 음침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자 행색이 허름하고 얼굴이 시커멓게 죽은 남자가 식칼을 들고 녀석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미친놈에게 칼을 맞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끔찍했던 고통과 충격이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남자의 칼 끝이 향하는 곳이 아직 뒤쪽의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녀석의 등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마치다가 녀석의 등 뒤를 가로막으며 선 순간 배에 낯익은 감각이 다시 덮쳐왔다. 불타는 듯한 화끈하고 날카로운 고통에 순간적으로 비명보다 먼저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마치다는 이제서야 놀라서 제대로 고정하지 못한 바이크가 쓰러지는 것도 아랑곳않고 마치다를 감싸안는 녀석의 품에 기댄 채로 억지로 버티며 남자가 칼을 뽑지 못하도록 칼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못 놔. 안 놔. 죽어도 못 놔.

남자는 몇 번 칼을 뽑으려다가 당황해서 도망치려 했는지 뒤로 물러나려다 쓰러져 나뒹굴었다. 칼을 놔 주지 않은 건 원치 않게 얻게 된 경험상 칼을 뽑으면 출혈 때문에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미친놈이, 생전 처음 보지만 누군지 알 것 같은 미친놈이 이 칼을 다시 녀석에게 휘두르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녀석이 비명을 질렀고 곧 자취방이 가득한 주변 건물들에서 집집마다 창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저 중에 누가 경찰에 신고해 줘야 할 텐데. 

마치다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혀 끝을 꽉 씹으며 녀석의 팔을 꽉 잡았다. 저 사람이 녀석을 또 해치려 할지도 모르는데 녀석이 달려나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때 인근에 사는 바이크샵의 직원들이 휴대폰을 귀에 댄 채로 서둘러 달려오는 게 흐릿하게 보였다.

"사람이 찔렸어요!!!"

전화기에 대고 그렇게 외치는 사람은 경찰에 신고해 주는 걸까. 그리고 다른 직원 역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장님, 스즈키네 아저씨가 마치다 선생님을 찔렀어요!!!!"

마치다는 사람들이 마치다를 찔렀던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제압하는 걸 보면서도 녀석의 팔을 놓지 않았다. 젠장. 





노부.... 나 너무 아파.... 






#노부마치
#학생노부선생님마치다
[Code: cd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