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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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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의 첫인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수업 중간에 들어와서는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지를 않나, 다짜고짜 사람 이름을 묻지를 않나. 거기다 그 올리브색 눈동자는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는 이름 알려주기 싫다고 하니 빌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주변 학생들이 쳐다볼 정도로 큭큭거렸다. 괜히 이상한 애와 엮일까봐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강의실에서 튀어나왔다. 다음에는 최대한 멀찍이 앉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다른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또 빌을 만났다.



"또 만났네? 우리 뭐 있나보다. 그치."

"뭐래…."



알고 보니 빌과 나는 겹치는 수업이 많았다. 무시해도 끈질기게 옆에 앉아서 말을 걸고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멋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 마주치는 날이 많아지니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빌과는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됐는데 우리 마을은 생각보다 더 유명했다. 고향이 어디냐기에 순진하게 대답했다가 주변에 있던 동기들이 다 모였들었을 정도였으니까. 다들 그 2층집 얘기를 꺼내며 가본 적이 있는지, 그 철문을 열어봤는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질문을 퍼부었다. 내가 가본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치자 재미없다는 식으로 금세 뿔뿔이 흩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관심이 사그라들어 이제 좀 조용히 살 수 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메탈이 광적으로 유행했고 악마주의에 편승해서 또 그 컬트 교단 사건이 대대적으로 방송됐다. 이제 학교를 가면 모르는 애들까지 나에게 와서 그 집에 가봤느냐고 물어댔다. 어느새 나는 학교에서 '그 마을에서 온 애'로 유명해졌다. 정말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빌만은 유일하게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같이 있을 때 다른 학생들이 몰려와도 시큰둥하게 굴며 나를 데리고 자리를 옮겨줬다. 그래서 내 하소연 상대는 늘 빌이 되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지들이 찾아가보든가. 그렇지 않아?"

"그건 안 되지."

"왜?"

"집이 엉망이 되잖아."

"…지금 그게 중요해?"



빌은 좋게 말하면 특이한 성격이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길에 찬물을 끼얹어주는 생뚱맞은 말들 덕에 옆에 있으면 금방 마음이 풀리고는 했다. 사실 내가 빌과 이렇게 친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애와 처음 만난 날부터 나는 또 지하실의 악몽을 꾸게 됐으니까. 매일밤 괴물은 어둠 속에서 내 손목을 잡고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괴물이 하는 말은 매번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꿈을 꾸는 이유가 그 말을 기억해내기 위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매일 꿈에서 괴물의 눈을 마주하는 탓에 그 눈과 꼭 닮은 빌의 눈을 쳐다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빌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렸으니 당하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거다. 언젠가 내가 얘기를 하다가 고개를 돌린 적이 있는데 그날따라 빌은 끈질기게 내 눈을 따라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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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 좋아해?"

"뭐?"



기가 막혀서 아니라고 해도 빌은 믿지 않았다. 그럼 왜 눈을 못 마주치는 거냐며, 부끄러워서 그런 거 아니냐며 실실 웃었다. 울컥해서 아니라는 증거로 오랫동안 눈을 마주쳐주니 빌은 장난이었다면서 손으로 우리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나는 아직 안 끝났다며 그 손을 치우려고 했는데 잡은 순간 놀라서 바로 손을 뗐을 정도로 빌의 손은 차가웠다.



"너 손 되게 차가워."

"여름에 손 잡으면 딱일 것 같지?"

"수작부리지 마라."



무시하고 강의실 쪽으로 걷기 시작하자 빌은 뒤에서 손을 비비며 쫓아왔다. 그리고 이제 따뜻해졌으니까 다시 잡아보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골적으로 서운해하는 얼굴이 조금 귀여웠다.

빌은 주말이 되면 술을 마시러 우리 집에 찾아왔다. 본인이 직접 사오는 거니 얻어먹을 수 있어서 나야 좋았지만 빌은 걱정이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다. 내가 안주와 함께 맥주캔을 마시는 동안 빌은 집에 있는 머그컵에 위스키를 콸콸 따라서 마셨다. 물처럼 마시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빌의 컵에 든 것을 마셔봤다가 목 안이 타들어가는 지옥 같은 경험을 한 뒤로 나는 위스키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빌은 그렇게 마시는데도 한 번도 취한 적이 없었다. 병 하나를 깔끔하게 비운 것을 보고 걱정이 돼서 물었던 적이 있었다.



"너 진짜 그렇게 마셔도 돼?"

"술이 들어가야 살아있는 것 같아."



제정신일 때 들었으면 기겁할만한 말이었지만 이미 나도 취한 탓에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술을 마실 때 빌의 특이한 버릇은 하나 더 있었는데, 내가 한계치를 넘어서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면 꼭 그 괴물 얘기를 꺼냈다.



"괴물에게는 이름을 알려주면 안 돼."

"왜?"

"이름을 알려주면 표식을 남길 수 있거든. 표식을 남기면 널 찾을 수 있어."

"찾으면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냐면…."



하지만 매번 빌의 얘기를 다 듣기 전에 의식이 끊기고 말아 끝까지 제대로 들은 적은 없었다. 다음날 술이 깨고 나면 빌은 평소처럼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 나 역시 그 얘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걸 아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우리가 괴물 얘기를 하는 것은 술에 취했을 때뿐이었다.

시간을 빠르게 흘러 어느덧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날 시험치는 수업은 하나밖에 없었다. 며칠 도서관에서 밤을 새운 덕에 시험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기지개를 켜고 있으니 목 뒤에 서늘한 것이 닿았다. 깜짝 놀라서 폴짝 뛰니까 뒤에서 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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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도 다 끝났고. 오늘 뭐할래?"

"일단 밥부터 먹자."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번화가로 나갔다. 그리고 시험기간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푼 다음 자정 가까이 되어 집에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술집에서 마실 만큼 마신 나는 이미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빌은 같이 걸으면서 넘어질뻔한 나를 몇번씩 잡아줬다. 그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한 번 길바닥에 주저앉을 뻔까지 하니 이젠 안되겠는지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업어줄까?"

"응…."



넓은 등에 업혀서 꾸벅꾸벅 졸다가 뺨에 빌의 목이 닿았다. 시원함이 기분 좋아서 뒷목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니 빌은 간지럽다며 낮게 웃었다. 왜일까. 빌에게 업혀 있는 동안 나는 그날 일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함께 숲길을 내달리던 그 밤.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고 털어놓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빌에게만큼은 그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있잖아."

"응."

"사실 그 2층집에 가본 적 있어."

"응."

"거기서 괴물을 봤어."



빌은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발을 내디뎠다. 내가 꼬인 발음으로 어릴 적 얘기를 하는 동안 빌은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줬다. 가로등이 켜진 환한 주택가에서는 이따금 술취한 대학생들의 고성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집에 들어와 나를 눕혀준 빌은 침대 맡에 걸터앉아 내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방에는 불을 켜두지 않았지만 커튼을 열어둔 덕에 달빛이 들어와 빌의 얼굴이 잘 보였다. 청백색 빛에 비추어진 흰 피부는 별을 수놓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 괴물은 무서웠어?"



나는 반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이 날 잡아갈까봐 무섭다고, 매일 지하실 꿈을 꾼다고 속삭이자 빌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괴물이 나한테 무슨 말을 했었는데 그게 아무리 해도 기억이 안 나."

"기억났으면 좋겠어?"

"응."



빌은 언젠가 기억이 날 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이제 거의 눈이 감겨 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비밀 하나 알려줄까?"

"비밀?"

"괴물에게 잡혀가도 살 수 있는 방법. 궁금해?"

"궁금해…."



웅얼거리며 대답하니 빌이 내쪽으로 몸을 숙였다. 침대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내 몸을 지그시 누르는 다른 몸의 무게가 느껴졌다. 빌은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괴물의 부탁을 들어주면 돼."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는데, 잠들기 직전 빌이 나에게 키스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이미 시간은 11시가 훌쩍 지나있었다. 숙취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누운 채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는데 빌이 방에 들어와서 내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 우리집에서 잔 것 같았다.



"괜찮아?"

"아니…."



목 안이 사막처럼 메말라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빌이 가져다 준 물을 마시니 겨우 정신이 드는 것 같아서 일단 씻으러 들어갔다. 잠을 깨려고 찬물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불현듯 어제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분명 닿았던 것 같은데... 손끝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간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하지만 빌이 노크를 하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하는지라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다고 짜증스럽게 대답을 한 뒤 다시 한번 찬물로 세수를 하고 욕실에서 나갔다.



"뭘 그렇게 서둘러."

"기차 시간 다 되어가니까 그렇지."

"기차? 무슨 기차?"

"기억 안 나?"



나는 느릿느릿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빌은 그런 내가 답답한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2층집, 다시 가보기로 했잖아."

"어, 어딜 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나와."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를 혼자 남겨두고 빌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집에서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도 나는 여전히 당황스러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집에 간다고? 오늘?

기차역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머리가 웅웅 울려서 벤치에 앉아 몸을 숙이고 있으니 빌이 옆에 와서 커피를 내밀었다. 뜨거운 커피가 속을 달래주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잠든 나에게 빌이 2층집에 다시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는데 내가 잠결에 대답을 했다고 빌이 우겨서였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된다며 나를 기어코 여기까지 끌고 왔다. 옆에 앉아서 떨떠름한 내 표정을 살피던 빌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어깨로 나를 툭 밀었다.



"트라우마는 직면해야 극복할 수 있어."



그 말이 사실이기는 했다. 다 큰 어른이 언제까지고 그 2층집에, 그 괴물에게 사로잡힌 채로 살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를 직면한다면, 그 지하실에 가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한다면, 어쩌면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혼자라면 용기가 부족했겠지만 지금은 옆에 빌이 있었다.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빈 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빌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기차 문으로 몰리는 사람들 사이에 낑겨 안으로 들어갔다. 빌은 좁은 통로를 앞서 걸으며 티켓에 적힌 자리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그 뒤를 따라가며 나는 새삼 긴장이 되는 것 같아 두 팔로 배를 감쌌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으니 빌이 여기라며 내게 손짓했다.



"넌 집에 안 가?"

"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맞은편에 앉은 빌은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당분간 못 보겠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고향 마을, 그 2층집을 향해서.










빌슼너붕붕
2024.03.28 01: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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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다!!!
[Code: 6bfe]
2024.03.28 01:32
ㅇㅇ
모바일
헉헉 같이 2층집 갈 생각에 벌써 무슨 일이 생길지 기대돼!!!!!!! 센세 억나더까지 함께 해줘 빌이 너무 궁금해진다 진짜......
[Code: dc12]
2024.03.28 01: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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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주세요 제발요...ㅜㅜㅜㅜㅜ 빌슼 분위기 미쳣다ㅜㅜㅜㅜ
[Code: c276]
2024.03.28 01: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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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미친 빌슼이 2층집 사는 건 맞는거 같은데 어케될지 모르겠네....햐 텐션 미친다
[Code: 2c03]
2024.03.28 01: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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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너무 궁금해
[Code: 5859]
2024.03.28 09:24
ㅇㅇ
모바일
하... 진짜 재밌어ㅠㅠ 센세 어나더 제발여ㅠㅠㅠ
[Code: 4d66]
2024.03.29 04: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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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개존잼 센세 어나더
[Code: 4e89]
2024.03.29 22: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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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필력 미쳤다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
너무 재밌어요 센세
[Code: 3d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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