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를 입은 듯 한 색배합을 가진 고양이는 담벼락 위에 무심하게 앉아있다가 샤핀이 손을 뻗으면 샤핀 쪽으로 몸을 숙여줌. 이 도도한 고양이는 샤핀에게 먼저 다가오는 법이 절대로 없지만 샤핀이 쓰다듬으면 잠자코 몸을 내주긴 함. 옆반 반장을 연상시키는 듯 한 이 신비한 고양이를 쓰다듬는게 샤핀의 소소한 행복임.

그러던 어느날 샤핀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보러 왔는데 고양이가 앉아있는 모양새가 좀 이상함. 샤핀이 고양이 상태를 살피려는데 고양이가 샤핀의 손을 피함. 샤핀 충격 받으려는 순간 고양이 앞발에 상처를 발견함. "야! 너 다쳤잖아!" 샤핀이 고양이 덥썩 안아드는데 고양이가 살짝 움찔 했다가 곧 얌전히 샤핀 품에 안겨있음. 샤핀이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뛰어감.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하려고 차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름' 란에서 잠깐 망설임. 테렌 홀시.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름에 깜짝 놀란 샤핀이 고개를 가로저음. "보호자님?" 직원이 재촉하는 소리에 샤핀은 자기품에 안겨있는 고양이 슬쩍 바라보곤 '티' 라고 적음. 

'티'는 세 바늘을 꿰맸고 하루 두 번씩 발라주라며 연고도 처방받았음. 샤핀은 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옴. "그거 뭐냐?" 매니멀의 질문에 "고양이" 짧게 대답한 샤핀은 그 상태로 방으로 들어감.

그날 저녁 샤핀은 생선 삶아서 티한테 주고 상처 소독하고 연고도 발라줌. 상처 감싸 줄 만한 것 뭐 없나 옷장을 뒤지는데 샤핀이 어릴 때 사용하던 손수건 하나를 찾아냄. 이거 루디가 만들어준건데. 이게 아직 있네? 샤핀은 손수건을 티 상처에 감아줌. 그 다음 방 한켠에 쿠션이랑 담요로 티 잘 곳을 만들어주고 티가 쿠션더미로 위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자기도 침대 위에 누움. 내일 사료랑 모래 사고.. 캣타워? 그것도 주문하고, 우리학교에 고양이 키우는 애가 누구 있더라.. 같은 생각 하다가 까무룩 잠듦.       

다음날 눈을 뜬 샤핀은 티가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함. 창문이 미묘하게 덜 닫힌 거 보니 아마 창문을 넘어 사라진 모양임. 샤핀이 학교 안가고 고양이 찾으러 가겠다고 난리 치는데 루디가 파피가 찾아준댔다고 겨우겨우 달래서 매니멀 붙여서 학교 보냄. "그러게 도둑고양이를 왜 주워와서는-" 매니멀 말 끝나기도 전에 샤핀한테 쥐어 뜯김.

죽상으로 학교에 도착한 샤핀은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음. 그 발로 어딜 간거야. 연고 발라줘야 하는데. 괜찮은건가. 저녁 때 준 생선이 별로였나? 아님 담요? 샤핀 머릿속에는 온통 티 걱정 뿐임. 점심시간이 되고 밥도 거른 샤핀이 텅 빈 교실에 혼자 엎드려 있는데 누군가 맞은편에 앉는 소리가 들림. "시비 털러 온거면 꺼져 매니멀" 샤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함. "밥 안 먹었다며." 낯선 목소리가 들리고 샤핀이 고개를 드는데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옆반 반장이 보임. "홀시?" 샤핀이 당황하는데 홀시가 샌드위치며 음료수며 책상 위로 뭘 계속 늘어놓음. 샤핀이 뭐가 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상황파악을 하려 하는데 그 순간 홀시 한쪽 팔에 감긴 익숙한 무언가가 눈에 들어옴. 손수건임. 루디가 만들어준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바로 그 손수건.




젠킬 티샤핀 티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