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430588927
view 4964
2021.11.29 21:38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검고 끈적거리는 점액질의 심비오트는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무려 우주의 태초에서부터 갈라져 나온 존재였으며, 한 번의 폭발로 흩뿌려진 우주에 존재하는 암이었으며,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포식자로서의 삶이 점지된 존재였다.

달라붙어, 씹고, 먹고, 소화하고 배가 고프면 다시 그 짓을 영영 반복하는 것. 새로운 숙주를 찾아낼 수 없거나, 아니면 동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그야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모호한 개념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그 이후. 환상. 600만년동안 그의 눈에 띄지 않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공간의 개념에 대해서.

“베놈, 거기 있어?”

굳이 필요 없었을 거칠고 낮은 쉬익 소리를 내며 베놈은 에디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수 없는 이빨을 가진 얼굴을 만들어냈다. 점액질이 부족해 피부는 푸석거리고 그 사이로 흰 줄이 죽죽 그어진 볼품없는 모습. 그래, 예전만큼 이 짓이 쉽지는 않다. 베놈은 누구보다 ‘우리’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에디의 몸에 거지같은 호스를 줄줄히 단 의사들보다 더.

그가 뭐라 그랬지? 이대로라면 그는 앞으로 3개월이면 그 명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에.

그의 감각은 오래 전부터 이 늙고 말라 비틀어진 숙주에게서 벗어나 다른 몸을 찾아 떠나라며 아우성이다. 시끄러워. 베놈은 스스로의 머리 한 켠에 자리잡은 목소리를 몰아내기 위해 한 번 더 크게 쉬이익 소리를 냈다. 마치 에디처럼. 오, 그래. 이건 상당히 성가시군. 이 심비오트는 에디와 지낸 몇 십년 짜리 찰나간 처음으로 에디 브록의 심경을 헤아려본다.

“있구나. 베놈.”
<그래. 우리는 여기에 있어.>

에디에게는, 에디에게는 이제 베놈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는 이제 베놈의 머리를 손으로 더듬어 찾아야 할 만큼 눈이 침침해졌으며 손은 완전히 곱아서 닿아오는 피부결에는 이 기생 생물의 것보다 더 생기가 없다.

“왜, 왜 아직 떠나지 않은거야?”

에디는 탁해진 푸른 눈동자를 치켜뜨며 말했다. 폐의 수명 활동은 이제 슬슬 한계로 나아가고 있다. 숨이 거칠었다. 다른 노인네들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달리 노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최근 계속 자신에게서 떠나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면서도 베놈이 그의 목소리에 답을 하면 눈에 띄게 안심한 듯 크게 한 번 심호흡 한다. 그와 함께 이완되는 근육, 호르몬. 그마저도 예전만 못한 반응이었으나 이 현상은 우주의 존재를 안심시킨다.

<…아직 조금 더 버틸 수 있거든. 에디.>

심비오트는 긴 혀를 입 속에서 굴리며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발음으로 제 숙주의 이름을 반응한다. 아무튼, 그는 제 숙주의 이름을 부르는 게 좋았다. 음절의 끝을 늘려 그를 부르는 것을. 얼마 뒤면 이 이름을 다시 부를 일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짜증이 일었다. 그의 끈적한 신체가 나노 입자보다 작은 크기가 되어 늙은 숙주의 몸을 훑는다.

안 좋군, 어느 때보다도.

맨 처음으로 챈 아주머니, 그 다음 애니가 죽고, 댄이 죽었다. 그 동안 에디는 심비오트와 결합했던 그 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심비오트에게 죽음이 낯선 존재이나 영영 미답의 영역은 아닌 것처럼 아무리 그의 숙주의 생명 활동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조절한다 한들 결국은 물방울에 점차 마모되는 바위처럼 결국 한계에 달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었다.

불로불사는 분명 인간들이 가장 이루고 싶어하는 숙업이라고 본 것 같은데 1만년의 문명을 쌓아 올리는 동안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덕택에 이 심비오트는 제 최초의 지구인 숙주의 마음조차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없었다. 에디는 제 주변사람들이 하나씩 제 곁을 떠날 때마다 외로워하고 우울해 했다.

너는 그래도 끝까지 내 곁에 있어 줄거지?

어느 날, 산수를 넘었다기에는 지나치게 젊은 얼굴의 에디는 그렇게 물었다. 사회보장번호가 제 기능을 하지 않기 시작한 시점부터 에디는 에디 브록으로는 바깥을 잘 나돌지 않게 되었다.

<그래. 물론이지. 우리는 언제나 함께니까.>

그 때 베놈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나. 분명 그는 그렇게 답했다. 어쩌면 그를 영원히 제 숙주로 삼아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때였다. 멍청하게도. 멍청하고 아둔한 심비오트. 인간은 너무 여렸다. 보통의 인간 숙주는 아무리 그가 융화하려 노력한다 한들 간부전을 일으키며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는 독(Venom)이다. 결국엔.

“이제 가 봐. 다른 숙주는 금방 찾을 수 있을거야.”
<어디에서?>
“어디에서든. 지금 이 상태인 나보다는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들어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잖아.”

쇳소리로 잘도 말하는군. 베놈은 혀를 찼다. 늙은 숙주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마음 편하겠어. 저 정도로 귀가 먹었으면 4000Hz 이상의 소리따위 들릴 리 없겠지. 그건 좀 편리하군. 심비오트는 제 숙주에게 닿지 않는 혼잣말을 하며 에디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머리를 쓰다듬던 근육이 다 빠진 앙상한 팔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 위로 툭 떨어진다. 지친 것이다. 에디는 침침한 눈으로 단말에 띄워진 푸른 색 심장 박동 그래프를 쳐다본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그것을 보고 눈을 꿈뻑이더니 아까보다는 좀 더 쇳소리를 가다듬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숙주는 너에게 머릿통을 아무리 먹어도 제지하지 않는 좋은 놈일지도 모르고.”
<그건 ‘나쁜 놈’이야. 에디.>

그런다면 정말 좋겠지만, 어째서인지 에디의 말은 심비오트의 심기를 건들인다. 베놈은 화가 나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네가 가르쳐 줬잖아. **나쁜 놈 머리만 먹기** 그런데 그는 마치 그것을 모두 잊으라는 듯이 굴고 있다.

끝이 오고 있다. 베놈은 에디보다 더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아마 천국에 가지 못할거야. 평생 다른 사람에게 민폐나 끼치고 살았으니.”
<‘우리’다. 에디.>
“그래. 사람 머리통도 좀 먹기도 했고. 아무튼, 살인을 하긴 했잖아. 앤이 있는 곳에 같이 가지는 못할거야.”
<난 가.>

에디는 이번에는 정말 화가 치밀게도 심비오트의 말에 주름진 입가를 끌어올려 웃기만 했다. 네가 가는 곳엔 나도 가. 너와 나는 우리니까. 베놈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그제야 에디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베놈이 잘 아는 에디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서 무참히 끓어오르던 화는 허무하게도 가라앉는다.

베놈은,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터다. 한 숙주에 너무 오래 붙어 있던 탓에 한 인간의 머릿 속을 품 속에 감춰둔 교리마냥 닳을 때까지 읽고 또 읽은 탓에. 그의 숙주가 평생 가고자 했으며 그가 600만년동안 온 우주를 뒤집어 엎어도 찾아내지 못한 이 이족 보행 생물이 만들어낸 ‘삶 뒤의 삶’에 대해.

심비오트는, 숙주의 기분과 완전히 유리된 어떤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이에, 그가 가야했을 장소를 먹어 치웠을까봐. 천국도 지옥도, 이 유약한 인간이 향할 장소가 이 광활한 우주에 더는 남아있지 않을까봐.

그는 제 숙주의 앙상해진 가슴에 똬리를 틀었다. 심장의 소리가 간헐적이다. 이제는 이 늙고 지친 숙주가 끝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잘 가. 베놈.”
<그래.>

에디가 느끼기에, 베놈이 점점 제 몸 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다. 안심이다. 온 우주를 먹어치우지만 않으면 좋을텐데. 에디는 그렇게 평안하게 잠에 들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이들이 으레 말하던 것처럼 더 없는 평온따위가 아니었다. 언제나 잠자리에 들 때 느껴지던 딱 그대로의 감각. 베놈이 그에게 선사해준 고통 없는 잠과 아주 닮은 무언가.

<잘 자. 에디.>

잘 가. 베놈. 그것은 에디와 이 심비오트를 동시에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니, 그러므로. 어쩌면 그 다음 이 숙주와 함께할 곳에 천국과 지옥이라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어떤 우주 공간이 도래할지 모르므로. 종족의 이단자는 제 숙주를 위해 동료를 배신했던 것처럼 한 번 더 모험을 걸어보기로 한다.

베놈은 그들이었으므로.
2021.11.29 22:08
ㅇㅇ
모바일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웨날울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82f]
2021.11.29 22:09
ㅇㅇ
모바일
비상이다....센세 왜 날 울려....ㅠㅠㅠㅠㅠㅠ센세의 표현들이 너무 감각적이고 좋아서 술술 읽어버렸는데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버렸어요 센세 책임져ㅠㅠㅠ생각해본적 없던 베놈과 에디의 끝이 만약 도래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센세는 정말 천재만재야....
[Code: f9fd]
2021.11.29 22:13
ㅇㅇ
모바일
찌통...ㅠㅠ 센세 글 너무 잘썼다.. 보면서 가슴이 아렸어ㅜㅜ
[Code: 1963]
2021.11.29 22:14
ㅇㅇ
모바일
༼;´༎ຶ ۝༎ຶ`༽ 감동… 또 감동….
[Code: dee5]
2021.11.29 22:15
ㅇㅇ
모바일
비상비상!!!! 올해 흘릴 눈물은 여기서 다 흘렸다..
[Code: 12ee]
2021.11.29 22:27
ㅇㅇ
모바일
나 왜 울고있냐......센세 글. 보고 울고있지...ㅅㅂ너무 슬퍼........ㅜㅜㅜㅠㅜㅜㅜㅜㅜㅠㅜㅜㅜㅠㅜㅜㅜㅜㅜㅜㅠㅜㅜㅜㅜㅠ
[Code: 3928]
2021.11.30 00:02
ㅇㅇ
모바일
센세 이번 겨울 김장 걱정없어 눈물로 절여서 아주 짭짤하니 맛나다 ㅠㅠㅠㅠㅠ
[Code: 3364]
2021.11.30 00:30
ㅇㅇ
모바일
아 이 글 너무 슬프고 너무 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평생 지우지마요
[Code: 49c3]
2021.11.30 01:15
ㅇㅇ
모바일
센세 필력 무슨 일이야...? 왜이렇게 잘써?ㅠㅠㅠㅠㅠ 읽다가 눈물 고였잖아 날 왜 울려 센세ㅠㅠㅠㅠ 책임져ㅠㅠㅠㅠㅠ
[Code: f0b5]
2021.11.30 06:08
ㅇㅇ
모바일
시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날한시에 같이 가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a8c2]
2021.11.30 22:01
ㅇㅇ
모바일
<그건 나쁜 놈이야> 라는 말을 베놈이 한게 너무 슬프다...ㅠㅠㅠㅠ 에디의 규칙을 아직도 지키고 진정으로 받아들인 느낌ㅠㅠㅠ
[Code: c6f1]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