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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23:50
처음 강징의 혼은 무無의 공간에서 한참이나 잔류했다. 더 남은 게 뭐가 있다고. 죽음 뒤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안식의 부재에 강징은 절망했다. 사는 동안 손에 묻힌 피가 많은 탓에 벌을 받고 있나. 끝도 없이 펼쳐진 흰 종이 속에 찍힌 티끌 하나가 바로 그였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강징은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길 기다렸다. 사후는 평생 그의 관심 영역 밖에 있었으므로 상상력이 상당히 부족했다. 예를 들면 신선이 나타나 그의 생전을 단죄한다거나 누군가가 그리 믿듯이 먼저 간 그리운 이가 나타나 준다거나.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일도. 하긴 강징이 진심으로 보고 싶은 이는 아직 살아있었다.

시간의 여백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연히 과거를 곱씹는 것뿐이었다. 지나치게 길었던 삶을 다시 한번 사는 듯이. 육체에 갇히지 않은 생각은 제한 없이 가지처럼 뻗어져 나갔다. 이젠 무뎌져 객관적인 시선을 더해 바라볼 수 있게 된 부모와 아직도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시린 누이, 그 피를 이어받아 걱정이 끊일 날이 없게 하는 질자. 금릉은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떠난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두 스스로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몫인 것이다.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제 모든 걸 주고 기른 금릉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는 동안 사치였던 후회를 죽은 후에나 실컷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애써 뭉뚱그린 생각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선명해졌다. 그때 위무선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위무선을 붙잡아야 했는데. 위무선, 위무선, 위무선, 위무선. 연화오에 첫발을 디딘 주눅 들어 있던 얼굴, 연화호를 뒤로 하고 환하게 지은 미소. 미쳐 다 닦지 못한 얼굴에서는 강징이 끼얹은 물이 고여 떨어졌다. 낭자들에게 연방을 던지다 강징을 돌아보고 휘어지던 눈꼬리, 새하얀 고소수학복을 입은 모습. 불의를 절대 참지 않았던 단호한 얼굴, 불타는 연화오로 뛰어드는 강징을 필사적으로 막던 손, 강징을 숨겨두고 먹을 것을 구하러 가던 뒷모습. 금단을 잃고 고문당한 강징을 보던 참담한 얼굴. 할 수만 있다면 절대 위무선이 그런 얼굴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위무선이 제 금단을 파내줄 것을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었어도 자결했을 것이다. 원수들을 도륙하고 점차 수세에 몰리던 위무선의 속이 어떻게 썩어가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살펴볼 것을 그랬다. 불야천 절벽에서 쥐어야 했던 것은 삼독이 아니라 위무선이었다.

갓난아이였던 금릉이 훌쩍 자라는 동안 부모 없는 자식이라는 괄시를 함께 듣는 강징의 증오와 원망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끝냈다고 생각했던 사랑 역시. 애초에 위무선을 향한 마음에서 원망과 사랑을 구분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다. 강징은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원망하는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다 결국 함께 파국을 맞은 불쌍한 사람을. 어쩌자고 이런 것까지 닮았단 말인가. 강징은 자신을 닮아 아들도 예뻐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일갈하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자조했다.

해일처럼 들이닥치는 회한 속에서 강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표류했다. 위무선을 생각할 때마다 찾아오던 익숙한 감각 – 갈비뼈 안이 터질 듯 부풀어 손끝까지 저린 –을 기다렸지만 이미 육신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으나 뜨거워질 눈시울조차 없었다. 슬픔과 한탄이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한차례 강징의 영혼을 뒤흔든 파도는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빠져나갔다. 그 과정은 수없이 반복되어 강징을 마모시켰다. 고통과 체념이 휩쓰는 동안 남은 한줄기 의식은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깜빡거리길 반복했다. 더이상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고 의미 또한 없었다. 점차 강징은 무뎌지고, 유리되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불야천에서 죽었던 위무선의 혼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까. 그래서 이제 모두 전생 같다는 말을 했을까. 이 모든 게 너를 구속하는 것에서 벗어나 초연한 얼굴을 짓게 했나. 그렇다면 강징 또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매일 밤을 잠 못 들게 하고 죽어서도 강징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곧 강징은 생전 자신을 땅에 붙어있게 했던 중력, 혹은 육신과 감정을 이루었던 것들, 미련, 사랑이 여태 자신을 붙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강징을 가둔 것은 강징 자신이었다. 이제 자의로 그것을 끊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가 크게 강징을 부르는 것처럼 빈 공간이 뒤흔들리고 요동쳤다. 육신이 있었다면 귀가 터졌을지도 모르겠군. 태평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는 실처럼 이어지던 의식이 한계까지 팽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실가닥이 속에서부터 툭툭 끊어지는 것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이 기나긴 형벌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 위무선. 비로소 자유를 찾은 네 얼굴을 스치는 바람조차 되지 않겠다. 마침내 강징은 두 번째 기회를 얻은 위무선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다 전생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강징. 잠시만.
비켜주시죠.

붙잡힌 손목을 비틀어도 힘이 들어간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징은 위무선을 짜증스럽게 바라보았다. 위무선은 모종의 이유로 이미 강징이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애매하게 확신을 더할 시간을 주느니 확실하게 쳐내는 게 나았다.

이해가 안되는데.

진심이었다. 한치의 원망이나 비꼼도 없는. 이미 옛날 옛적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것 아니었나.

위무선은 강징이 하려는 말을 단박에 알아채고 웃었다.

모르겠어? 이제야 우리 둘 다에게 전생이 되었잖아. 은원도 가문도 없이 서로만 볼 수 있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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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이 환생하기만을 기다린 위무선과 기억이 모조리 있는데 전생과 어떻게 다른지 이해못하는 강징 ㅂㄱㅅㄷ

강징 전생에서 자살했는데 그것만 기억못함





샤오잔왕탁성
2022.09.02 03: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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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존나 응애 ...
오늘이 내 생일........
이 글을 보고 새로 태어난....
[Code: 8195]
2022.09.02 08: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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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니 이런거 없어서 못먹네....존나 이거 명작아님?캬.....무선이가 무슨마음으로 강징잡았을지 크아아아아아 강징 마모되고 유리된거 존나 좋구요
[Code: bea8]
2022.09.02 11: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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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ㅈㄴ명작이다. 센세의 글을 발견해서 너무 행복해,,, 계속후회하다가 마침내 전생같이 여길수 있게된 강징이랑 이제 시작인 무선까지 갓벽하다 제발 어나더 ㅠㅠ
[Code: 0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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