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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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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사탕입니다, 사탕! 더 가시면 파는 곳이 없어요!”
오늘은 햇살이 어찌나 강한지, 목청껏 외치는 사탕장수의 목소리조차 빛에 녹아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강징은 폴폴 떨어지는 꽃잎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높이 드리워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번쩍거리는 것들이 빛인지 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전방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에 반사되는 빛조차도 흐드러지게 핀 꽃더미 같았다.
어색하게 어슬렁거리다가 힐끗 주위를 보았지만 그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름 민간인처럼 차려입었던 옷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징은 더 수수하게 위장을 했고, 요즘은 남희신도 강징의 고집에 맞춰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액을 벗어던지고 나타났을 때에는 정말 놀랐지만. 
아무튼 단풍잎이 이렇게 떨어지는 걸 본 지가 엊그제같은데,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하룻밤이 지나가는 것도 얼마나 길었는지.
그런데 요즘은 시간이 계절 단위로 훌쩍훌쩍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좀 더 기다리던 강징은 나무 아래에 기대 앉아서 눈을 감았다.
패검은 건곤대 안에 숨겨놓았고 언제라도 꺼낼 수 있는 상태였지만 아무리 경계심이 강한 그도 따스하기만 한 분위기에 마음이 늘어졌다.
그래서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을 때에도 꿈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눈을 떴다.
바로 머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들여다보는 남희신의 얼굴이 있었다. 그를 쳐다보는 강징은 눈이 부신 것처럼 가늘어지며 살짝 입술이 벌어졌다. 마치 선량한 택무군이 애정을 듬뿍 담고 바라보는 것처럼, 기이할 정도로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 순간만큼은 남희신도 농담을 던질 생각이 없는지. 홀린 듯 쳐다보는 강징과 마찬가지로 시선을 맞추기만 했다. 



두 사람은 고목이 서 있던 언덕을 내려와 강을 따라 천천히 산책했다.
멀리 봄놀이를 즐기는 몇 척의 배가 물 위에 떠 있었다.
오늘도 남희신은 연한 잿빛의 고상하면서도 수수한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명의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자 강징의 마음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 일어났다. 
강징이 방향을 틀어 숲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도 남희신은 살짝 웃기만 할 뿐 순순히 따라갔다.
무거운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주변 공기가 삽시간에 식어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뭇 시선을 피하기 위해 수풀 속으로 잠겨들었던 강징은 오히려 더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고 말았다.
“!”
유난히 빽빽거리는 새소리에 가려진 탓일까, 강징은 손 닿는대로 부러뜨린 나뭇가지를 흔들다 말고 무심코 덤불을 푹푹 쑤시고 있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뛰어서 물러났다.
이어서 한 발 늦게 따라온 남희신의 눈에도 민망한 장면이 펼쳐졌다.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시시덕거리던 사내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여인은 꼼짝도 못하는 채 그만 손수건을 펼쳐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기류 안에서, 무척 긴박하면서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몇 초가 흘렀다.
이윽고 강징이 홱 돌아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가지만 태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기세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남희신은 충격을 수습하지 못하는 연인들에게 피식 웃음을 던지고 얼른 강징의 뒤를 쫓았다.
결국 환하게 빛이 쏟아지는 강가로 되돌아 나온 강징은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피하며 태산처럼 굳게 입을 다물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깨가 쏟아지는군요.”
강징은 째릿하고 그를 노려본 다음 못마땅한 말투로 내뱉았다.
“다 큰 부부가 애들처럼 뭐하는 짓인지...!”
“그런 게 무슨 상관입니까? 나이로 말하자면 우리도...”
남희신이 손을 내밀며 다가붙자 강징은 질겁을 하고 피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둬요! 다 커서 저러는 건 진짜 꼴값이라고 내가 몇 번을...”
“누가 또 저랬기에요?”
“......”
“위공자?”
열이 오른 김에 마구잡이로 심통을 낼 법도 한데, 강징이 허를 찔린 듯 입을 다물어버리자 남희신은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싶은 쓴웃음을 지었다.
운심부지처 한구석에서 위무선이 남망기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목격한게 한두번도 아니고 수십번이 되어갈 정도니까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강징이 그들을 보았을 리는 없고...
또 누구에게 그랬단 말인가.
강풍면이 위무선을 싸고 돌긴 했지만 그가 설마 무릎베개를 해줬을 리는 없고.
“아... 뭐그리 궁금한 게 많습니까?! 누님이에요, 누님!”
“그래서? 부러웠어요?”
남희신은 눈치도 없이 재촉하다가 끝까지 느릇하게 말을 던졌다.
마치, 당신이라면 절대 그런 행동은 못했겠지 하는 듯 꿰뚫어보는 소리에 강징은 이를 깨물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남희신은 오랜만에 아르릉거리며 열불을 내는 강징을 향해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해가 저물자 두 사람은 마을로 돌아와 객잔에 들었다.
목욕을 하고,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
강징은 장죽을 물고 천천히 연기를 내뿜는 남희신의 모습을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가끔씩은 너무나도 풀어진 그의 모습에, 혹여 자기가 그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강징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입술 끝을 비틀었다. 그의 기행은 감히 따라가기도 힘든 수준인데, 어떻게 내가 그것을 초래할 수 있을까.
강징은 맨바닥에 앉아 새까만 어둠이 깔리기도 전에 솟아오른 달을 바라보았다. 고요하게 있으려니 객지의 호젓하고도 낯선 공기에 감싸이는 것 같았다.
그 때 갑자기 허를 찌르듯 담뱃대를 내려놓는 소리가 탁 하고 울리며 남희신이 앉은 다리를 툭툭 때렸다.
“뭡니까?”
“오십시오. 이 사람이 해 드리지요. 무릎베개.” 
뭔가 그럼 그렇지, 라는 느낌이 든 강징은 하아 길게 숨을 내뱉으며 외면했다.
“자아, 어서요.”
강징은 싹둑 무시를 한 채 창 밖에 걸린 달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또 시작이구나 싶으면서 난감했다. 그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말도 안되는 일이라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안하면 제가 합니다?”
다음에는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야지, 무조건 무시해야지 마음먹으면서도 도무지 이겨볼 수가 없는건 때마다 새로운 방향에서 날아오는 공격 때문이었다.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내뱉은 그가 곧 달려들 것처럼 몸을 일으키자 깜짝 놀란 강징이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펼치며 외쳤다.
“잠깐!!!...”
“......”
“아, 알겠... 아니, 그, 그게 대체 뭐라고...”
남희신은 횡설수설하는 강징을 바라보며 잠자코 웃었다. 짜증이 난 강징은 홧김에 술을 한 잔 털어마신 다음 씩씩거렸다. 하지만 능글하게 웃고 있는 상대는 난공불락이었다. 무시하면 더욱 약을 올렸고, 화를 내면 더욱 좋아할 뿐이었다. 
강징은 다시 한 번 남희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웃고 있는 그의 눈빛에 한줄기 봄기운 같은 따스함이 깃드는 것처럼 느껴지자, 그만 어린애 같은 분노마저 불쑥 솟는 수치심 뒤로 훅 꺼지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하는 척했지만, 이제는 패배감조차도 그가 던지는 것이라면 싫지 않았다.
무척 싫은 듯, 머뭇머뭇 질질 끌면서도 강징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팔을 접고, 조심해야 하는 화롯불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의 허벅지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그 위로 머리를 올렸다.
한 번 심호흡을 한 다음, 돌아누워 천장 쪽으로 향하자 남희신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징은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기묘한 감정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까도 남희신이 이런 모양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뭔가가 달랐다.
천천히 그와 시선을 교환하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자니, 투명한 공기 중에 서로의 기운이 섞여드는 것처럼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위무선이, 누님의 무릎을 베고 누웠을 때에도... 
누님이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더랬지. 그건...
......이런 느낌이었구나...
남희신은 더 심통을 낼 줄 알았던 강징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기분 좋아요?”
그가 말을 걸며 살금살금 강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이 닿자 강징은 흠칫 몸을 떨었다. 길다란 손가락이 건드리는 감촉이 정말로 심하게 달콤하게 느껴져서였다.
동시에 급속도로 눈에 열기가 번지자, 강징은 깜짝 놀라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만음?”
너무 화를 돋구었나, 생각한 남희신이 불렀다.
“더...”
눈을 감은 강징이 뭐라고 웅얼거렸다. 하지만 남희신이 잘 들으려고 귀를 가져가자 “아닙니다...”하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성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남희신은 말없이 웃음짓다가 코를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강징은 더욱 세게 눈을 감으며 결국 안으로 스며드는 뜨거운 감촉을 느꼈다.
남희신이 몇 번 더 불렀지만 강징은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눈을 감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조용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남희신은 고개를 들어 금방 강징이 바라보던 달을 쳐다보았다. 
고소 남씨는 이른 시간에 잠이 드니, 깊은 밤 달을 볼 기회는 야렵을 할 때 외에는 별로 없었다.
야렵도 아니며, 운심부지처도 아닐 때에는 그 옛날의 친우들과 함께했던 시간 뿐이었다.
아름답지만 굳건해 보이는 입술이 벌어지며 옅은 한숨을 흘렸고, 강징의 머리를 배회하던 손이 이번에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참혹했던 과거를 떠올려도, 암흑 속으로 말려들어가 그대로 죽음이든 망각이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쳐버리고 싶던 절망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달로부터 시선을 떨어뜨리고 자신의 손 안을 보니, 그 곳에는 달처럼 새하얗게 눈을 감은 얼굴이 있었다. 
눈을 뜨지 않는 강징이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나 싶었기에 남희신은 입맞추고 싶은 것을 참으며 가만히 쓰다듬기만 했다.




강징이 노심초사하다가 슬그머니 눈을 떠 보려고 했을 때에는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런데 아뿔싸, 눈 속에는 여전히 뜨거운 윤기가 맴돌고 있는 게 아닌가.
“만음?”
강징은 벌떡 일어나 당황한 얼굴을 돌리며 얼른 눈을 문질렀다. 하지만 기민하고 날카로운 눈에 이미 노출된 후였다.
미처 다음 행동을 취할 틈도 없이 뒤에서 뻗어온 손과 팔이 넓은 가슴으로 강징을 잡아당겼다.
“왜 그래요?”
낮고 부드럽게 묻는 목소리가 쥐락펴락 놀리며 강제하는 고집보다도 훨씬 강했기에, 강징은 새로운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누님이......”
강징은 들릴락말락 조그맣게 변명하며, 속으로 다른 이름을 불렀다.
“...보고 싶어서요...”
남희신은 강징의 머리에 뺨을 꼭 붙이고 도닥거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괜찮지 않을까요, 강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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