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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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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을지는 몰라도, 그 사람들 중 행복한 사람이 몇 퍼센트일지는 몰라도 일단 마치다 케이타는 긴 시간 소수였고 불행했다.

9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쳤던 그는 운동성 실어증에 걸렸다. 전두엽의 손상 부위가 커서 회복이 더딜 거라고는 했지만 9년이나 흐른 지금,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그는 유난히 큰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과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까지 싹 다 불러 모을 수 없는 이유를 그의 배우자인 스즈키 노부유키는 '우리가 동성인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치다는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성하지 않은 사람이라 가족도 친구도 없이 도둑 결혼식을 올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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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전 짧은 결혼식을 올리고 스즈키가 인터넷으로 혼인 신고서를 제출 했다.

"이제 우리 부부예요. 잘 지내자구요. 알겠죠?"

"...... 응."

"약속한 대로 언어 치료도 열심히 받는 거예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마치다에게 그는 웃으며 다가왔다. 자신 없는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대충 끄덕이기만 하는 걸 벌써 3년이나 곁에서 봐온 그였다.

"잘 할 수 있어요. 내가 많이 도와줄게요."

수술 후 언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완전히 놓쳐 버렸던 건 자의도 타의도 아니었다. 차에 함께 타고 있던 두 동생이 즉사해 버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동생들 따라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뇌 수술후 최소한의 숨만 달고 누워 있는 동안 부모님과 친척들은 두 동생의 장례를 치렀고 환자 침대에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되어있을 땐 이미 아무도 없었다. 두 자식을 한번에 잃게 된 부모님은 큰 충격으로 칩거하셨다. 병동 간호사들은 모두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장남이 아직 병원에 누워 있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병간호 한번을 안 하냐고. 그렇지만 모든 가정엔 그들만의 사연이 있는 법. 마치다는 그 집 장남이자 입양아였고, 여덟 살 터울의 두 동생은 어느날 부모님께 선물처럼 찾아온 쌍둥이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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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무실에 선물을 돌릴까 해요. 치즈랑 와인인데 그리 비싸지도 않고 포장이 고급스러워요. 어때요?"

"...... 치, 즈... 하는, 사람......"

말이 느리고 문장 전체를 구사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다는 늘 단어를 끊어서 말해야했다.

"치즈, 사람?"

"...... 안 좋, 아......"

"아, 치즈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치즈 하나를 입에 넣으며 끄덕이는 마치다에게 스즈키는 뭐 어떠냐며 다소 무책임한 말을 하고는 웃었다. 그래도 결혼했다고 알리는 선물인데 조금 더 대중적인 걸 골랐으면 싶었지만 일단 정해버리면 도저히 무르지 않는 고집쟁이라 마치다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녀올게요. 2시에 가스 점검 온다고 했어요. 부탁해요."

"...... 응."

"사랑해요."

스즈키는 마치다의 뺨이 움푹 패일 정도로 진하게 뽀뽀를 한 뒤 치즈와 와인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바리바리 챙겨 집을 나섰다.

"해, 나... 나, 도..."

너무 느려서, 끝내 나도 사랑한다는 말은 스즈키에게 닿지 못했다. 마치다의 사랑은 늘 이렇게 몇 발짝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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