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4373
2025.05.08 05:42



bgsd  어나더  3나더  4나더  5나더  6나더  7나더   




"나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고 보육원에서 자랐어요."

대답은 안 하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데도 마치다는 울면서도 답을 재촉하지 않고 참을성있게 기다려줬다. 그렇다고 목에 대고 있던 단검을 치워주지는 않았지만. 

"우리 보육원에는 매달 찾아와서 간식이며 옷가지 등을 주고 선생님들이 우리 돌봐주느라 바빠서 밀린 이불 빨래나 대청소를 도와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당신도 잘 아는 분들이에요. 아몬 아저씨와 당신을 베이비폭스라고 부르고 싶어했던 그 분들."

젖은 눈동자가 커다래지고 스즈키의 목에 대고 있던 단검을 쥔 손이 흔들렸다. 그 탓에 스즈키의 목이 조금 찔려서 피가 흐르자 마치다는 단검을 침대 위로 던지듯 내려놓고 스즈키의 어깨를 꽉 쥐었다. 

"거짓말하지 마."

스즈키가 눈물이 더 펑펑 흘러내리는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자, 마치다는 손으로 눈을 북북 문질러서 안 그래도 빨개진 눈이 더 새빨개진 채로 스즈키를 노려봤다. 

"네가 스즈키 노부유키라고?"

아저씨가 이름을 이야기했었나. 아저씨는 팀원들하고 인사하는 건 스즈키가 잠입 팀으로 들어온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었다. 스즈키가 훈련소에서 탈락해서 못 들어올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팀원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로 하자고. 그래서 스즈키는 당연히 마치다에게 스즈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저씨가 스즈키의 이름을 말해줬었다는 걸 알았으면 바에서 만났을 때든 아니면 조직에서 헬폭스의 작전이 있는 날이든 어떻게든 만나서 내가 그 스즈키 노부유키라고 말을 했었을 터였다. 하지만 스즈키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 나서지 못했던 건데. 

생각해 봐라. 아는 거라곤 고작 마치다 케이타가 폭스라는 사실 그리고 술에 취하면 귀여운 주정을 하고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는 것밖에 모르는데 나서서 어떻게 아저씨와의 친분을 믿게 할 수 있었겠는가. 안 그래도 경계심이 잔뜩 높아져 있는 사람한테. 

그런데 알고 있었구나. 

"내가 스즈키 노부유키예요."
"팀장님은 네가 우리팀으로 올 거라고 했어. 잠입 팀 훈련을 받고 들어올 거라고. 넌 잠입 팀으로 왔어야 해. 팀장님이 그렇게 말했어. 훈련소에 들어가서 훈련받고 있으니까 우리 팀의 새로운 막내로 올 거라고. 그런데 아니잖아."

스즈키는 한숨을 내쉬며 젖은 마치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뺨에 손가락만 대도 손가락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뺨이 푹 젖어 있었다. 

"아저씨가, 그리고 어린 우리를 도와줬던 그 분들이 왜 갑자기 한꺼번에 다 돌아가셨는지 알아내야 했어요. 분명히 지령 팀에 문제가 있었을 거예요. 악의적으로 아저씨의 팀을 궤멸시키려 한 것이든, 지령실의 멍청이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실수를 무마하려고 아저씨 팀을 전부 제거하려 한 건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지령 팀에 있었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지령 팀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당신만 살아남았다고 들었는데... 내가 잠입 팀으로 들어가 봐야 우리 둘이서만 한 팀을 이룰 수도 없고, 여전히 지령팀의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면 여전히 우리는 위험할 거잖아요. 게다가 지령 팀에 우리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그 일의 원인과 책임자를 알아내는 건 요원해질 테니까."

마치다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스즈키를 바라보고 있다가 쥐고 있던 스즈키의 어깨를 내리쳤다. 

"왜!"
"..."
"왜 말을 안 했어!"

마치다는 몇 번 더 어깨를 때렸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차라리 플라스틱 실드를 깨느라 플라스틱 조각이 박혀서 꿰매고 온 손이 더 아팠다. 마치다는 몇 번 더 때리더니 스즈키의 몸 위로 털썩 쓰러졌고 스즈키는 밤톨처럼 짧은 마치다의 머리카락과 마르고 단단한 등을 쓰다듬었다. 마치다는 온몸에 흉터가 가득이라 등에도 흉터가 많기 때문에 손가락에 도톨도톨 흉터가 걸릴 때마다 마음이 쓰라렸다. 아저씨와 팀원들은 소중한 막내 몸에 흉터 하나 생기지 않게 애지중지했을 텐데, 5년 동안 어떤 지옥에서 굴렀길래 온몸이 흉터로 뒤덮이게 된 걸까, 대체. 

"왜 말 안 했어?"

아까와는 달리 한결 진정된 목소리라 스즈키는 듣기만 하고 있던 때와 달리 입을 열었다. 이제는 대화가 가능할 만큼 진정됐다는 뜻이니까. 

"내가 만약에 갑자기 당신 눈 앞에 불쑥 나타나서 '당신이 폭스이자 마치다 케이타가 맞죠?'라고 물었거나 우리가 처음 바에서 만났을 때 '당신이 착하고 순하지만 가끔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당신이 그렇게 심통을 부릴 때면 특효약은 치즈케이크라는 마치다 케이타가 맞습니까? 당신이 술에 취하면 하나도 안 취한 것 같은 말짱한 얼굴로 귀여운 주정을 부린다는 폭스가 맞나요?'라고 물었다면 어떻게 했을 건데요."
"왜 질문이 다 그따위야."
"아저씨가 당신에 대해 알려준 게 그런 것들밖에 없었으니까. 대답해 봐요. 어떻게 했을 건데요?"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서 어디 파묻었겠지."
"그러니까요."
"..."
"아는 거라곤 최애가 치즈케이크고 귀엽고 술취해도 얼굴은 멀쩡하기만 해서 주정만 안 부리면 티가 안 난다는 것밖에 없는데 뭐라고 하면서 아는 척을 해요. 난 아저씨가 케이한테 내 이름을 말해준 것도 몰랐어요."
"... 케이?"

그때까지 가만히 스즈키의 등 위에서 색색대며 엎드려 있던 마치다가, 아니 케이가 고개만 들더니 어이없다는 얼굴로 노부를 바라봤다. 

"베이비 폭스보다는 낫잖아요?"
"그것도 들었냐?"
"네."
"필요한 건 말 안 해주고 쓸데없는 것만 잔뜩 말했네."
"그러니까요. 거짓말만 잔뜩 하고."
"거짓말도 했어?"
"치즈케이크만 사 주면 방긋방긋 웃는다더니. 내내 뚱한 얼굴이더구만 뭐."

마치다는 시큰둥한 얼굴로 다시 스즈키의 가슴 위로 고개를 툭 떨꿨지만 스즈키는 여전히 빨간 눈에 시무룩한 기색이 스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설마...? 

스즈키는 손이 떨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마치다의 등을 쓰다듬었다. 

"... 맛이 안 느껴져요?"

제발 아니라고 해.

"왜? 내가 위스키 맛도 향도 못 느끼면서 너 약오르라고 버번 자주 시킨 거 눈치챘어?"

가슴에 대못이 콱 박히는 기분이었다. 묵직하고 거대한 고통이 심장을 꽉 짓누르는 듯해서 순간적으로 숨도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5년간 뭘 먹어도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사람이 품 안에 있는데 스즈키가 더 우울해해봐야 도움도 안 되고 더 속상하게 할 뿐이라. 스즈키는 일부러 장난스레 마치다의 머리를 토닥였다. 

"역시 심술이었구나. 버번 자주 시킨 거."
"... 이렇게 들키네."

스즈키는 한숨을 삼키고 마치다를 데리고 욕실로 가서 욕조에 물을 받았다. 이 호텔은 다행히 욕조가 커다래서 스즈키가 마치다를 안고 들어가도 넉넉했다. 스즈키가 붕대를 감은 손을 욕조 밖으로 내놓고 있자, 마치다는 스즈키의 손을 흘긋 바라보곤 스즈키의 얼굴에 장난처럼 물을 튕겼다. 

"뭘 깼길래 손이 그 모양이야? 뭐 깨지는 소리는 크던데."
"플라스틱 실드요."
"꿰맸는데 술 마신 거야? 곪는다."
"자기는 총 맞아놓고도 술 잘도 마셨으면서."

마치다의 검은색 잠입복이 적갈색으로 물들어가던 모습과 팔에 붕대를 감고 있던 그날 밤의 풍경, 그리고 흉터가 크게 남은 팔이 차례로 떠올라서 입을 삐죽거리자 마치다는 스즈키의 얼굴에 다시 물을 살짝 튕기더니 고개를 돌렸다. 

"내가 볼크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너 노래하는 거 좋아하지?"
"네? 뭐... 좋아해요."

노래를 정식으로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일도 없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해서 자주 흥얼거리기는 했다. 그것도 요즘은 노래를 흥얼거릴 마음도 안 들어서 흥얼거리는 일도 줄었는데?

"너 종종 노래하는 것처럼 미묘하게 음을 실어서 말할 때가 있어. 바에서 만난 너도 그랬고. 볼크도 그랬고."
"내가요?"
"어. ㄹ 발음을 흘리듯이 부드럽게 연결해서 발음하기도 하고."
"..."
"억양이나 발음이 특색이 강해서 작년부터 의심하고 있었어."
"... 나한테 관심 많았나 보네?"
"넌 말이 너무 많아. 눈치 못 채기가 어렵던데."
"..."

사실 지금도 할 말이 너무 많았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이 조직에서는 작전이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실패한 작전 내용을 공유한다. 정보 분석이 잘못된 건지, 지령이 잘못된 건지, 잠입 팀이 실수한 건지 알아야 다음에 실패하지 않으니까. 건물이나 목표물을 특정할 수 있는 디테일한 정보까지는 공유하지 않지만 실패한 이유가 뭔지는 공유를 하는데. 하지만 아저씨의 팀이 전멸한 사건은 작전 내용이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 아저씨와 폭스의 팀이 뭘 하러 들어갔던 건지, 왜 실패한 건지, 왜 탈출하지 못한 건지도 공개되지 않았고 누구의 잘못이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게다가 스즈키는 오늘 부대표와 본부장이 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마치다와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았으면 정말 날 찌르려고 했어요?"

마치다는 스즈키를 빤히 바라보더니 한숨을 실어 일부러 심술궂게 대답했다. 

"못 찌르겠던데."

괜히 심술을 부리며 또 스즈키에게 물을 튕긴 마치다 때문에 욕조의 물이 찰랑거렸다. 스즈키의 마음도 그 물과 함께 찰랑거렸다. 






#요원놉맟
[Code: a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