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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18:05
케이 대학 입학 앞두고 예비 동기들이랑 팀 이뤄서 하루 날 잡고 대기업 견학하는데 하필 노부네 회사면 좋겠다ㅎㅎㅎㅎ 첨엔 자기 다니는 회사인 줄 모르고 어어 잘 다녀오고~ 가서 회사 분위기만 스윽 보고 와. 어차피 견학으론 그 회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일하시는 분들 방해되게 하지 말고, 했지. 다음날 출근해서 케이 만나게 될 줄은 몰랐을듯. 견학 통솔하는 담당자 올 때까지 잠깐 시간 비는 것 같길래 노부는 얼른 뒤로 가서 마치다 빼돌리겠지.

우리 회사로 견한 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도쿄에 있는 대기업이라고 했잖아요 내가...!
도쿄 대기업이 여기 하나야?
그건 모르죠 나두... 갑자기 나타나서 화났어요?

그럴 리가 없지. 노부는 화났냐는 말에 금방 표정 풀 거임. 화가 난 건 아니고 당황했을 뿐이니까. 복도 모퉁이쪽에서 케이를 찾는 동기의 목소리가 들려왔음. 케이는 가봐야 한다며 손을 흔들고 총총총 노부의 시야에서 사라졌겠지. 뭐 어차피 어린애들 견학이야 노부 위치에서는 신경 쓸 것도 아니니 그냥 자기 일 보면 되겠지만, 그래서 문제임. 최대한 관여해서 최대한 빨리 보내고 싶은 거. 그래서 오전 업무 내내 애샛기들 뒤꽁무니만 따라다니기 시작했을듯

승진 롤러코스터, 고인물들 안 빠지기로 유명한 회사라 승진길 꽉 막혀있는 와중에도 노부는 벌써 과장 달았을 거임. 몇 달 안 되긴했어도. 입사 동기들은 보통 주임, 좀 빠르다 싶으면 대리인데 노부는 대리보다 위임 ㅇㅇ 아무튼 존섹 워커홀릭 스즈키 과장님 종일 자리에 없다 했더니 핸드폰만 달랑 들고 애들 따라다니니 사원들 입에 오르내리기 딱임. 마치다 회사 구석구석 구경하고 최첨단 화장실이랑 얼음 나오는 정수기 보며 감탄할 때 노부 개진지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을 거임.

스즈키 과장님은 왜 같이 구경하신대...?
몰라... 과장님이 왜 애들 견학에 관여하시지?

다들 수군대도 노부는 그런 거 느끼지도 못할듯. 견학 막바지쯤 마치다가 체험부스 들어가서 이것저것 만지다가 부스 외부 조명을 꺼트림. 그냥 다시 켜면 되니 별 일도 아닌데 눈썹 팔자로 늘어뜨리며 나와서 저 사고 쳤어요... 하는데 통솔자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노부 쳐다 보고 있겠지. 왜 저 회사원한테 말함? 하고 동기가 마치다 이상하게 쳐다보고... 통솔자 (평사원임)는 진땀 흘리며 아앗 과장님 가던 길 가십쇼. 견학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노부도 '날 쳐다보면 안 되지!'하는 표정으로 눈 크게 뜨고 있고... 마치다는 갑자기 쓰러지듯 풀썩 주저 앉을 거임.

알고보니 견학 내내 형한테 피해주면 안 된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귀는 걸 걸리면 안 된다 등등 혼자 엄청 긴장하고 애쓰고 있었던 거... 이 회사를 견학하기로 정한 것도 마치다가 아니고 동기들이었고 형한테 말하면 왠지 싫어할 것 같아서 그냥 말 안 했던 거겠지. 겨우 한 시간 정도니까, 빨리 둘러보고 가면 되겠지하고 스스로도 엄청 조심했던 거임. 근데 체험 부스 불 꺼지니까 밖에서 사람들 웅성대고... 그냥 다 망했다고 생각했을듯. 결국 부스에서 나오자마자 정면에 있던 노부를 보고 왈칵 눈물 날 것 같은 거 꾹 참고 사고 쳤다고 말함.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지. 사람들 앞에서 형한테 아는척 하면 안 되는데... 나 왜 지금 형을 보고 말하고 있는거지..?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내려앉아버림.

통솔자가 회사 의무실에 연락하고, 케이 동기들이 케이 부축하려고 다가오는 사이 노부는 누구보다 빨리 케이를 일으켜서 의자에앉힐 거임. 몸 꼿꼿이 세우고 있으려는 마치다의 고개를 자기쪽으로 당겨 어깨에 기대게 하고. 마치다는 이게 꿈인가 싶겠지. 몇 분 뒤 마치다는 동기들 손에 이끌려 회사를 빠져나감. 노부는 사람들 시선이고 뭐고 즈그 케이 걱정돼 죽겠는데 어차피 이제 케이는 갔고, 오전 내내 놀았으니 업무로 돌아가야지. 점심은 도무지 입맛이 돌지 않아 건너뛰고 오후 업무까지 칼같이 해낸 뒤 바로 정시퇴근 갈김. 원래도 무뚝뚝한 과장님이지만 오늘따라 미간 확 구기고 종이 찢을 듯 팔락팔락 넘기면서 열일하니 분위기 장난 아니었을듯.

집에 바로 달려왔는데 오늘은 케이가 집 앞에 없을 것 같다. 비밀번호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문 열고 들어가며 케이? 와있어? 하고 외쳐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도 않겠지. [저녁 먹었어? 걱정 되니까 메시지 보면 연락 좀 줘.] 그리고 한 30분쯤 뒤에 마치다기 답장을 해오는데 그냥 집에 잘 들어왔고 곧 개강이니까 강의록 나온 거 보고 있었다는 말 뿐이겠지. 노부는 애가 미안해서 이런다는 거 단번에 느끼고 정장도 안 갈아입은 채 케이 자취방으로 갈 거임. 얼굴 마주보자마자 케이는 기죽어서 눈 바로 피하고, 노부는 기 팍 죽은 케이 안쓰러워서 꽉 안아주겠지.

맨날 집 앞에서 기다리더니... 오늘은 회사에서 한번 봤다고 지겨워졌어?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어떻게 형이 지겨워요...
근데 왜 안 왔어. 난 너 보려고 바로 왔는데.
회사... 안 짤렸어요...?

마치다는 오늘 노부가 자기랑 사귀는 거 회사에서 알게 되고 짤렸을 거라고 생각한 거임. 노부는 헛웃음 나서 계속 웃다가, 그런 일로 짤릴 회사면 나도 안 아쉽다고 단호하게 말할듯. 물론 회사에서는 그 장면 본 사람도 몇 명 없고, 누가 그 일에 대해 묻는다고 해도 그냥 조카 생각나서 친절을 베풀었을 뿐이라고 둘러댈 생각이라 딱히 노부는 신경 안 썼을듯. 마치다는 즈그 형 짤리지도 않았고 또 자기한테 화나지도 않았다는 거 확인한 다음부터 다시 아깽이모드 들어갈 거임. 오랜만에 형이 여기로 놀러 오니까 좋다면서 엄청 껴안고 치대겠지. 마치다가 자취방으로 피자 시켜가지고 같이 나눠 먹고, 1인용 욕조에 둘이 들어가서 불편하게 씻고, 자정까지 천장 보고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눔. 그러다 마치다가 이젠 형 집에 가보라고 하겠지. 내일 출근하려면 옷도 새 거 입어야하니까. 노부는 오늘처럼 즈그 케이 옆에서 떨어지기 싫은 날도 없었음. 뭔가, 자기가 오늘 케이를 지켜줬어야하는 순간에 그러지 못했다는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오늘은 여기서 잘래.
출근하기 전날 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네요. 그쵸?
응. 와도 주말에만 왔었으니까.
우리 엄마한테 그 장면 걸렸던 거 생각나요...
그 얘기를 왜 해 지금. 잊을만 하면 하더라 꼭.

노부는 그 생각만 하면 진짜 온몸에 털이 삐쭉 서는 느낌이라 싫은데 마치다는 어느정도는 웃긴 일화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철이 없는 건지 그냥 낙척적인 건지. 아무튼 둘이 ㅅㅅ도 없이 그냥 꼭 껴안고 쿨쿨 잠들었음. 다음날 아침 조용히 출근하는 노부... 역시나 집에 들러서 정장 갈아입을까 잠시 고민 했지만 그냥 회사로 바로 감. 그러고보니 이 회사 다니면서 처음으로 이틀 연속 같은 옷 입고 출근하는 노부였음 좋겠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업무 내내 하씨... 남친 집에서 자고 온 거 티 나나...? 하고 좌불안석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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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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