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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8 14:04

1 태섭대만 잘생긴 체육 선생님의 까리한 손님 1 https://hygall.com/598115166



2.
 

성지 중학교의 명물, 전직 프로 농구선수 출신 체육 교사 정대만은 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걸어서 출근을 한다. 선수 시절에도 한 번 쇼츠 알고리즘을 타고 외모가 화제가 되었던지라, 이제는 아무런 방송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주변의 인기는 여전하다.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것이 학교 선생인건만 큰 키에 날렵한 몸, 얼굴까지 훈훈한 데다 성격도 털털하니 반에서 한 두 명은 꼭 사회적으로 용인될 리 없는 관계를 꿈꾸는 아이들이 생기곤 했다. 조금만 일찍 서두르면 선생님의 출근 시간에 맞춰 같이 학교로 갈 수 있어서 출근길에는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아이들도 있었다.
 

“헐 쌤!”

“차 뽑으셨어요?”

“와 개비쌀 거 같이 생김”
 

그러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르르 몇 명이 주변에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박, 송태섭이다!”
 

그렇게 외친 아이는 눈이 마주친 태섭이 싱긋 웃자 팔을 휘저으며 애먼 옆 친구 뒤로 숨었다.
 

“아니, 송태섭님이요, 님 님”

“야아, 옷 잡아당기지 마.”

“너네 좀 떨어져라, 응? 선생님, 출근 좀 하자.”
 

운전석에서 내린 대만은 곧 자리를 바꿔 탄 태섭을 배웅하고 일일히 대답하기도 어려울 만큼 질문을 쏟아내는 애들을 끌고 교문 안으로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섭은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뒤로 하고 얼른 복잡한 도로를 빠져 나왔다. 미국에서 있을 때는 고장이 안났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샀던 SUV를 계속 끌고 다녔었는데, 제대로 달릴 도로도 없는 한국에 와서 페라리를 뽑게 되다니. 동료 선수들이 멕라렌이나 람보르기니에 커스텀 튜닝까지 해서 돈을 쏟아 붓는 걸 보면서 조금 쓸 데 없다 생각했었는데, 대만이 신나서 바람을 넣는 바람에 덩달아 흥을 부리고 말았다. 그나마 양산형 모델을 중고 매장에서 산 거라 대기할 필요 없이 바로 끌고 다닐 수는 있었지만 가격은 체감상 중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뭐 저렇게 좋아하니까.’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출근길에 운전대를 맡겼다고 볼이 빵빵해져서는 지나가는 애들한테 창문을 내리고 인사하는 수고까지 마다않는 대만의 모습을 직관한 터라 태섭은 조금 유쾌했다. 마침 에이전시를 통해 들어온 계약 건의 연봉이 차 한 대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차피 연봉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 것을 각오하고 돌아온 터였다.
 

‘돈 벌어 놓은 보람이 있네.’
 

문득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쩐지 쑥스러워졌다. 아무런 의도도 없었을 대만의 행동에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뿌듯해 하는 꼴이라니, 짝사랑 앞에 가오고 뭐고 아무 것도 없이 탈탈 털린 기분이다. 이럴 땐 할 일을 하는 것으로 도피하는 수밖에 없다. 태섭은 곧 지나가는 사람이 흘끔거릴 만큼 안 어울리는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대놓고 휴대폰으로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


 

“태섭이, 너네 집에서 같이 살기로 했다며?”
 

언제 소식을 들었는지 종례가 마치자마자 물어오는 준호다. 대만은 약간 찔리는 것 같은 표정으로 눈알을 또르르 굴렸다.
 

“아. 같이 산다기보다, 걔 아직 집 구하기 전이라 방 하나 쓰라고 했지.”

“룸메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계속 사는 게 아니라 잠깐 몇 주, 며칠 데리고 있는 거라니까.”
 

물론 준호를 룸메로 들이지 않았던 것은, 묘하게 잔소리가 많은 그가 동거인이 되는 것이 불편하리란 계산이 컸던 탓이지만, 대만에게도 그 정도까지 솔직해지지 않을 눈치는 있었다. 준호 역시 질문에 악의는 없었다.
 

“아하하, 뭘 변명하듯 그러냐. 너 편한 대로 하는 거지.”

“변명은 아니고 그냥……”

“애들이 엄청 난리더라,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느바 송’이 ‘포카리’ 태우고 왔다고.”

“아, 쫌!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닭살 돋아.”
 

누가 붙인 별명인지, 처음 불렸을 때 한바탕 교무실에서 유행하는 바람에 대만은 면전에서 별명을 듣는 것을 과히 좋아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SNS도 인터넷도 거의 하지 않는 정대만 본인이 잘 몰랐을 뿐, 선수 시절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유행했던 별명이다. (덧붙여 장본인은 언뜻 들으면 포카리보다도 낯뜨겁게 느껴지는 불꽃 남자라는 별명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좀 재밌어서.”

“뭐가.”

“너 혼자만 있어도 눈에 띠는데, 태섭이도 화려한 편이라 같이 있으면 시선을 엄청 끈달까. 왜, 우리 어렸을 땐 그게 불량스러운 느낌으로 튀었잖아. 근데 지금은 애들이 엄청 좋아하니까.”
 

그래, 준호는 이래서 대하기가 어렵다. 대만은 애들이 좋아한다든가 하는 낯간지러운 말을 생글 생글 웃으며 이야기하는 준호의 눈을 피해 헛기침을 했다. 예전부터 쑥스러운 이야기를 잘도 하는 놈이다.
 

“저녁이나 한 번 먹으러 와. 걔 밥 잘하더라.”

“태섭이? 밥도 차려?”

“그냥 건강하게 잘 차려 먹는 게 좋대. 걔가 생활력은 엄청 있더라고.”

“하긴 보기랑 다르게 야무진 편이었지. 그럼 주말에 한 번 신세질께.”
 

준호의 평가대로 태섭은 야무지고 나무랄 데 없는 동거인이었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태섭은 기본적으로 깔끔하고 부지런했으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대만 역시도 합숙소 생활이 길었던 덕분인지 생활 환경을 정리하는 것에는 익숙한 편이었는데, 딱 하나 밥 차려 먹는 게 부실한 편이었다. 그래서 냉장고를 거의 비워두곤 했는데, 태섭이 온 후로는 하루 한 끼라도 사람 답게 먹고 있었다.
 

‘타지에서 혼자 오래 살아서 그런가.’
 

손이 하나도 가지 않는 타입이다. 손님이라고 신경 쓸 게 없다는 것은 좋지만 너무 눈치를 보고 있는 거라면 그것도 싫다. 대만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맥주라도 사 가자.’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되고서 둘이서 시간을 보낸 적은 의외로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난 녀석이 아예 그쪽에서 2군부터 천천히 자리를 잡아나아가는 동안, 가끔 한국에 들어오긴 했어도 여럿이 함께 볼만한 이벤트가 있을 때나 얼굴을 비추곤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따지면 갑작스러운 동거가 어색할만도 한데, 워낙 밑바닥을 보는 걸로 쌓기 시작한 관계여서인지, 아니면 제대로 사람이 안 됐던 시절부터 봐와서 그런지 마냥 편하다는 게 신기했다.
 

“읏차, 너 뭐 마시는 지 몰라서 그냥 이것 저것 사 왔다.”
 

집에 들어서면서 편의점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대만을 보고 태섭은 조금 의외라는 듯 봉지를 열었다.
 

“뭐, 가리는 건 없어요.”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 까탈스러운 구석 하나도 없는 무난한 대답에 대만은 피식 웃었다. 준호가 말한 게 이런건가? 어렸을 때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먹을 부르는 양아치 자석이었던 놈이, 어른이 되고 나서 같이 살다 보니 모난 곳 하나 없는 자갈처럼 느껴진다는 게 우습긴 했다.
 

“너 취하긴 하냐?”

“그렇게까지 마셔본 적은 없어서.”
 

태섭은 안주겸 저녁 거리라고 사온 편의점 표 어묵탕과 닭강정을 보더니 잽싸게 주방으로 가져갔다다. 대만이 씻고 나와 보니 뭔가를 더 넣고 끓인 것 같은 어묵탕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대접에 보기 좋게 담겨 있었다. 
 

“편하게 그냥 있지.”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뭐.”

“너 원래 이렇게 빠릿하냐? 눈치 보는 건 아니지?”

“내가요? 누구 눈치?”
 

눈썹 한 쪽이 삐딱하게 올라가는 걸 보니 괜한 소릴 꺼냈나 보다. 한편으론 안심이긴 한데…….
 

“야, 너무 잘하지 마라. 이러다 너 나갈 때 아쉬워질까 무섭다.”
 

대만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밖에 냈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캔을 따고 꿀꺽꿀꺽 호기롭게 넘기는 동안, 태섭은 무슨 실없는 소리냐며 작게 핀잔을 주고 이내 옆에 앉았다. 실제로도 태섭이 무리해서 참고 있는 부분은 생활에 관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운동 선수 특유의 각잡힌 정리 정돈 방식이나 담백한 생활이 잘 맞는 것 뿐이다. 참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저 인간은 전혀 상상도 못할 부분에서랄까.
 

‘뭔가 캥기는 기분이군.’
 

태섭은 자연스럽게 대만의 앞에 앞접시를 놓고 어묵을 덜어놓으며 속으로 잠깐 생각했다. 샤워 후에 수건 한 장 두르고 나와서 돌아다닌 걸 굳이 말리지 않는다든가, 의식도 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눈을 피하지 않는다든가, 대만이 집에 없을 때 주기적으로 욕구해소에 필요한 최소한의 상상을 한다든가 하는. 그 정도의 비밀에 죄악감을 가질 만큼 순진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냥 이렇게만 계속 있어도 좋겠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더부살이하는 것을 대만이 꽤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이 기쁘다. 한 집에 살면서 밥도 같이 먹고 얼굴도 매일 보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정도의 삶이어도 충분할 것 같다.
 

“저쪽에 있을 때는 쉴 때 뭐하고 지냈냐?”

“쉬는 날이 별로 없었어요.”

“엥? 시즌 오프 때 몇개월이나 있잖아. 루틴은 하겠지만”

“초반엔 알바 뛰느라고 매일 정신 없었고. 아. 근데 첫 계약 땄던 해에 바이크로 한 40일 내내 돌아다녔어요. 목적지도 안 정하고.”

“아. 그 얘긴 전에 들었다, 언제지, 너 강도 당할 뻔 했다고 하지 않았냐?”

“그래도 미수로 그쳤으니까”

“총든 놈 상대로 아주 미친 놈이라니까”
 

대만은 킬킬거리며 태섭이 쪽에 놓인 과자봉지를 잡는답시고 몸을 붙여왔다. 
 

“니가 그런 놈인 줄 알았으면 안건드렸을 텐데.”
 

어깨가 닿은 채로 등을 기댄 대만이 예전 일이 생각나기라도 한 듯 이런 저런 말을 이어 간다. 송태섭은 대만의 체온이 닿은 부분을 의식하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선배도 그땐 제정신 아니었어서, 물불 가리기나 했겠어요?”

“그건 그렇지.”
 

괜히 그 얘기를 꺼내서는. 꼴사나웠던 과거를 떠올리고 말문이 막힌 대만은 태섭의 옆에서 꼼지락거리며 애먼 과자를 우걱 우걱 씹어먹었다. 태섭에게도 봉지를 내밀어서 한 두개 집어먹으면서 바로 옆에 있는 대만의 얼굴을 바라본다.
 

“좀 많이 옅어졌네요.”

“어? 아 이거. 오래되서 그런가.”
 

대만은 흉터를 만지작거리다가 바로 옆에 있는 태섭의 팔을 불쑥 잡아든다.
 

“?”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게 어딜 어떻게 때리면 맨손인데 살이 찢어지기까지 때릴 수 있는 거냐? 그때도 반지 같은 거 없었잖아.”

“그냥 막 휘둘러서 그렇죠 뭐.”

“아니 신기하다니까 진짜.”
 

손목을 계속 잡은 상태로 마디 마디 튀어나온 곳을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태섭은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 되었다. 가뜩이나 닿은 어깨로 체온이 느껴져서 살짝 기분이 좋았는데 이러시면 확 끌어 안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칠 거 같아지지 않겠냐고요.

태섭의 그런 심정도 모르는 채, 대만은 태섭을 주물거리던 손으로 제 턱의 흉터도 한 번 쓸어보고서야 팔을 놓아주었다. 같이 살고, 한솥밥을 먹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껏 만지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섭은 실현되지 않는 마지막 한 가지 욕망을 제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꾹꾹 눌러 주워담으며 들고 있던 캔을 꿀꺽꿀꺽 비웠다.
 

“아 참”
 

그러더니 또 벌떡 일어나서 방 안에서 뭔가를 한참 뒤지다 나온다.
 

“요거, 사인 좀 해놔.”

“누구 건데요.”

“교감네…… 누구랬더라. 듣긴 했는데 까먹었어.”

“누구한테 드리는 건지 안써드려도 되는 거에요?”

“아, 맞다! 내가 다시 물어볼게!”
 

생각보다는 꽤 유명인인 동거인은 곧 있으면 바빠질 예정이지만, 지금 상태로는 백수나 다름없다. 그것을 마치 알기라도 하는 듯 주변에서 크고 작은 부탁이 소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방송에도 나오는 성공한 스포츠스타다. 대만과 태섭의 사이가 꽤 친밀하다는 것이 알음알음 알려지다 보니, 크게 관심 없었던 주변 사람들보다도 한 다리 두 다리 건넌 사람들까지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개중에는 나름의 권력이나 연줄이 있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네? 초청 수업이요?”

“좀 부탁해보면 어때요? 정선생이랑 권선생 후배라면서.”
 

이런 류의 부탁도 들어오는 법이다.
 

“초청 수업 기획안 한 번 만들어서 올려주세요. 예산은 별로 없긴 한데…… 사무실 끼고 섭외하는 거 아니니까 선배 기 한 번 살려주는 셈 치고 와달라고 잘 좀 부탁해 봐요.”

“음, 그…… 물어는 보겠습니다.”

“꼭 좀 부탁해요. 이사장님 사모님이 팬이라고 꼭 보고싶다고 하시더라구.”

“하하, 넵…!” (그럼, 제 값 주고 부르시죠!)
 

대만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준호 녀석, 분명 먼저 그쪽에 이야기가 갔을 텐데 ‘태섭이라면 정선생이 더 잘 알거에요’ 같은 말로 능구렁이처럼 넘어갔겠지. 그야 물론 사립이라고는 해도, 학교 재정이란 게 엄청 넉넉할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라고 제대로 몸 값 안주고 부르고 싶다는 태도는 짜증이 났다. 단지 바로 거절하지 않은 것은 애들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콩알만한 것들이 신나서 이것 저것 물어보던 걸 생각하면 한 번쯤 학교에 와달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조금이라도 시간이 안 되거나 귀찮은 내색이면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아직은 계약 전이라 낮 시간에는 한가할 듯 했다.
 

‘……시선을 끈다고 했나.’
 

불현듯 준호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뭘 하든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은 그 때는, 그래도 패기만으로도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산왕’에게 이겼던 날의 감각을 어떤 다른 경험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꽤 오랜 시간 서로가 모르는 곳에서 지내다가 재회한 사이에도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시간을 함께 한 동료와의 일종의 전우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그 치기 어렸던 2학년 주장이 이런 스타 취급이라니 시간 참…….
 

‘흐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대만은 새삼 자신이 송태섭이란 후배를 꽤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학교에 데려오면 확실히 기가 살 거 같긴 하다. 기특한 놈 같으니. 그럼 교감 꼬라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디 좀 잘 구슬려 볼까? 그리고 태섭은, 대만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흔쾌히 시간을 비워주기로 했다.
 

“준호 선배네 학교이기도 한 거잖아요.”
 

라고 대답한 부분이 건방지게 들리긴 했지만, 그렇게 부랴 부랴 만든 기획안을 통과시키고 잘생긴 체육 선생님의 잘 나가는 후배가 정식으로 교문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학생 친구들은 아직 시간이 무척 많잖아요. 노력해서 이루고 싶은 것을 찾아보세요.”
 

히죽히죽 거리는 정대만이나 뿌듯한 표정의 권준호가 있는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태섭은 모여든 체육관의 아이들에게 짤막한 인사를 했다. 오신 분들과 악수도 나누고 사진도 찍는 사이에 금세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왔다. 
 

“이제, 팀을 나눠 시범경기를 하겠습니다. 일반학생 대표는 미리 신청한 친구들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정했으니 오해 말고, 담임 선생님 따라 자리 앉아서 응원할게요.”
 

태섭의 팀에는 어른 하나를 포함해서 일반학생 대표 셋, 상대 팀은 당연히 체육 담당인 대만과 보건 교사인 준호, 그리고 이제 막 2년차인 농구부 아이들이 뛰게 되었다. 적당히 농구를 체험하는 수업 내용이면 좋겠다고해서, 처음에는 프리드로우 레슨이나 원 온 원 정도를 제안했는데 두 안 다 즉시 까였다. 프리드로우는 선수다운 플레이를 볼 수 없어서 심심하고, 원 온 원은 하게 되면 교사가 상대가 될 테니 코트에 학생들이 함께 뛰는 게 아니라 의미가 없다는, 제법 그럴싸한 이유였다. 
 

‘애들 상대로 뛰는 시점에서 제대로 된 플레이는 어차피 못 보겠지만, 뭐 상관없나.’
 

예상한 대로 시범경기는 경기라고 부를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농구부 아이들 쪽은 그럭저럭 연계 플레이를 착실하게 할 수 있었지만 일반학생 대표팀은 그저 튀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중딩이 패기롭게 자기 이름을 투표함에 넣은 것 뿐이니 당연하다. 그 와중에도 태섭은 초청 강사로서의 체면을 차릴 정도의 묘기는 중간 중간 선보였다. 승부가 걸리면 쉽게 바보가 되는 대만도, 교사로서의 본분을 잊지는 않았다.
 

“이쪽, 패스!”

“으아! 죄송해요!”
 

기특하게도 뽑혀서 나온 애들은, 한창 때인데다 보는 눈까지 많아서인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 애를 썼다. 반 아이들의 응원도 묘한 경쟁에 불을 지폈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리 중학생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진심을 다해 덤벼드니 조심스러워진다. 기초도 없는 일반인에 체구도 작은 아이들이니, 최대한 힘조절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중간부터는 농구라기보다는 차력쇼에 가까운 일대 다수의 공놀이가 되어 있었다. 예상보다 꽤 힘든 시범 경기를 무사히 마쳤을 때는, 행여라도 아이들을 다치게 할까 봐 꽤 몸이 긴장된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평소라면 조금 더 기민하게 반응했을 대만은 제법 흘린 땀을 닦아내다가 순간적으로 머리 위에서 떨어진 물건을 피하지 못했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나고, 바닥에 떨어진 사기 화분은 몇 조각으로 동강이 났다.
 

“어떡해!”

“쌤, 괜찮아요?”

“뭐야, 무슨 일이야?”
 

대만은 나동그라진 몸을 일으키며 옆구리를 감싼 태섭의 팔을 치웠다. 어느새 끼어든건지. 태섭은 대만의 몸에 튄 조각이 없는지를 살피고서야 한숨을 쉬며 몸을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야 너 죽었다, 미친 새끼야!”

“아 어떡해, 죄송해요! 선생님, 죄송해요!”
 

위쪽에서 소리가 들려서 보니 시범경기를 하는 동안 잘 안보인다고 2층 난간쪽에 올라간 아이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놀다가 발로 친 화분이 아래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야 너네, 조심해야지!”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내려와 담임 교사의 (손님 앞이라 약간 데시벨이 줄어든) 꾸지람을 들었고, 깨진 화분을 치우느라 행사의 마무리는 조금 정신 없이 흘러가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대박, 이거 봤냐?”

“뭔데 뭔데”

“송태섭이 포카리 다칠 뻔 한 거 끌어당겨서 막았잖아, 개멋있음 진짜.”
 

누군가가 찍고 있던 영상에 마침 화분이 떨어지던 순간이 잡혔다. 하마터면 대만의 머리 위로 바로 떨어질 뻔했던 것을, 옆에 있던 태섭이 잡아당겨서 넘어지는 바람에 피할 수 있었다. 영상은 곧 아이들 사이에서 퍼졌고, SNS를 종종 하는 선생님 중 한 명이 종례할 때쯤 발견했을 때는 그세 알고리즘이라도 탄 건지 꽤 조회수가 높아져 있었다.
 

“이거 보셨어요, 정쌤?”

“뭔가요. 어디… 농구 선수 순발력 체감 영상? 어? 이거 아까 전인데…”
 

SNS와 담을 쌓은 대만은 어떻게 이런 걸 찍어 올렸나 신기할 뿐이었다. 오히려 영상으로 보니 생각보다 격렬하게 부딪힌 태섭의 팔목에 신경쓰였다.
 

“이 자식, 이거……”

“네?”

“저 좀 급해서 가봐야할 거 같은데, VIP 챙기느라 먼저 나갔다고 좀 전해주세요!”
 

후다닥 뛰쳐나간 대만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던 태섭의 차를 곧 발견했다. 방금전까지도 아이들을 상대하다 간신히 차 안으로 들어간 참이었던 태섭은 대만이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들켰나?
 

“야 인마, 팔 내 놔!”

“뭔데요 진짜”

“확인 좀 하게.”

“……”

“아 빨리!”
 

하는 수 없이 살짝 부은 팔을 슬쩍 내보이며 태섭은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그냥 가볍게 접지른 거라 괜찮은데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준호 불러 올테니까 걔 말 한 번 들어보고 같이 병원 가. 니 몸이 얼마짜린데 이게 지금!”
 

안그래도 집까지 갔다가 따로 나와서 저녁에 하는 병원이 있나 찾아보려고 했었다. 몸을 함부로 다치게 하거나 그걸 방치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단지, 정도가 심하지 않으니 알리지 않고 다녀오려고 한 것 뿐이다. 
 

“응. 뭐, 심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이틀 정도는 이쪽 팔목 쓰지 말고, 얼음 찜질 하루 4-5번 정도 하면서 경과 보면 될 거 같아. 평소엔 압박 붕대로 감아놓고. 아마 병원에 가도 특별한 다른 처방은 없을 거 같은데 신경 쓰이면 가보든지.”
 

부랴 부랴 불려온 준호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대만은 잠깐 한숨을 쉬고 안도한 듯 했다. 태섭은 거보라는 듯 별 거 아니라고 했지만 당장 운전석에서 쫓겨났다.
 

“팔 쓰지 말라는데 운전은 하고 갈라고 했냐?”

“원래 한 손으로 하는데”

“시끄러 임마.”
 

투덜거리면서 엄격해진 대만 덕분에 그 순간부터 태섭은 꼼짝 없이 가만히 쉬어야 했다. 원래도 부상에 예민한 사람이라 유독 신경써주는 것이겠지 싶으면서도 못내 기쁘다. 
 

‘역시 이렇게만 지낼 수 있어도 좋은 것 같은데.’
 

태섭이 그렇게 이미 손에 넣은 일상과 욕심 나는 미래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 한쪽에선 그가 상상도 못하던 일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순발력 미챴다 ㄷㄷㄷㄷ 2배속 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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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실수할 수는 있는데 교사들이 제대로 봤어야지; 머리에 맞았으면 중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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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송태섭 전부터 계속 정대만 쪽 쳐다보고 있음. 00:06부터 보면 쭉 보다가 달려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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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정대만 지킴이 ㄷㄷㄷㄷㄷ

ㄴ 헐 진짜, 뚫어지겠네

ㄴ 표정 왜이렇게 멜로눈깔이냐 겁나 수상하네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계속 보는데 보는 내가 기분 이상해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섭대만 태대 료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