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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21:53
펄럭패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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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님부터 쭉 서울 토박이인 중산층 집안 외동아들 최동오. 어릴 때부터 가족들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는데 예의범절이나 배려 같은 거에 있어선 철저히 배웠음. 근데 애가 어릴 때는 입도 짧고 가리는 것도 많고...그래서 그런지 자라는 내내 삐쩍 말랐었는데 언젠가부터 잘 먹더니 쑥쑥 큰 거임. 그렇게 늦게 크다 보니 예의범절엔 엄했던 부모님이 얘 편식하는 건 그냥 내버려 두고 키웠음. 뭐라도 잘 먹고 잘 크는 거 기특하고 이뻐서~근데 생각보다 애가 좀 많이 커짐ㅋㅋ

그에비해 정성구는 형 하나 누나 하나 있는 삼남매집 막내임. 형하고는 네 살 터울, 누나랑은 연년생이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컸고 삼남매 전부 길쭉하니 크고 다 잘 먹다 보니 성구 부모님이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이 대식가 아기들 먹는 걸 못 따라갔겠지.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음식은 없어서 못 먹는 거고 신발이고 돌이고 다 씹어먹을 수 있을 것 처럼 음식 경쟁하며 컸음. 편식은 무슨 편식이야 아무거나 양껏 먹을 수만 있음 그게 땡큐지.




이런애들이 산왕에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음...!

근데 최동오 편식하는 걸 성구는 물론이거니와 동기, 선후배 할 거 없이 3년 동안 아무도 몰랐음. 왜냐하면 동오 알러지 있다거나 그런 건 없었고 자기가 편식하는 거 창피한 줄 잘 앎. 그래서 걍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땐 토할 거 같고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욱여넣어서 꿀떡 삼킴. 대신 싫은 걸 많이 먹을 순 없으니 늘 맨밥은 양 많이 푸고 반찬은 코딱지만큼씩 얹어서 먹는 거임. 딱 보기엔 밥을 수북하니 많이 퍼오니까 유심히 얘 밥 먹는 거만 보고 있지 않는 한 이상할 게 없는 거지.

동오 편식하는 종류 중에 일반 반찬 말고도 합성 착향료 냄새 강한 딸기시럽이라던가 그런 것들도 못 먹는데 이건 ㄹㅇ 토할 거 같아서 아예 안 먹음. 근데 이런 건 평소에 급식에 나오진 않는 편이고 간식 먹을 땐 알아서 피함 되니 문제없음. 그렇게 3년을 보내다가 이걸 처음으로 친구들한테 들키게 되는 건 3학년 여름이었겠지.







인터하이의 충격 어서 잊고 윈터컵 으쌰으쌰 하자는 의미로 농구부 애들 서울로 현장학습 가는데 동오네 본가가 서울체육관 근처인 거야. 먼 강원도로 학교 보낸 아들래미가 친구들이랑 서울 온다 하니 동오 부모님 신나서 애들 마지막 날 하루 자고 가라고 집으로 초대했음.

100명이나 되는 농구부 다 부를 순 없으니 동오랑 친한 3학년들이랑 현철이 동생이니 현필이까지 같이 불렀겠지.
집 현관 들어서면서부터 도시 냄새 물씬 나서 애들 다 최동오 서울깍쟁이였냐며 은근히 놀렸을 듯. 되게 도시적이고 세련된 집안 인테리어이긴 한데 단란한 가정 분위기도 확 와닿는 그런 집이겠지. 신발장 위 선반에 최동오 백일 사진부터 돌사진, 발가벗고 빨간 다라이에서 목욕하는 아기 동오, 노란 유치원복 입고 소풍 간 사진, 농구공 들고 쁘이하는 초딩 최동오 등등 옆 구르기 하며 봐도 최동오네 집임.

커다란 남고딩들 우글우글 현관에서 신발도 안 벗고 사진부터 구경하고 있는 거 동오가 민망해서 등 떠밀어서 안으로 들여보냈음. 동오네 어머니는 앞치마 두르고 음식하는 중이었는데 얘네 부모님 맞벌인데도 엄마가 아들 친구들 밥 해먹인다고 무려 반차까지 내셨음;;
애들 넘 반갑게 맞아주시고 동오 보고는 우리 아들 왔냐며 볼도 쓰담쓰담, 궁디 토닥 해주심. 최동오도 그런 스킨십이 너무 익숙해 보여서 산왕 애들 '이 집안 분위기가 원래 저런가보다~'하고 은근히 신기하게 보겠지.

어마어마하게 먹어대는 운동부 애들이 도합 6명이니 음식을 ㄹㅇ 산더미처럼 준비하는 중인데 아직 좀 걸린다 해서 다들 동오 방 구경하려고 들어갔음. 동오 방은 아들이 없는 동안도 부모님이 늘 잘 관리해두셔서 깔끔했는데 책장에 농구잡지, 만화책, 소설책 순서대로 쫙 꽂혀있고 침구류도 바스락바스락 호텔 침구 같은 거라서 다들 경악함. 심지어 룸 스프레이 뿌렸는지 무슨 꽃향기도 남ㅋㅋ
맨날 같이 기숙사에서 땀 흘리며 부대끼고 살던 최동오가 새삼 서울 샌님이란 거 느껴져서 명헌, 낙수는 간지러워 몸서리치고 현철, 현필, 성구는 좀 놀라 할 듯.

애들 동오네 집이랑 낯가리느라 어디 앉지도 못하고 계속 서 있으니 동오가 왜들 그러냐며 침대 앉으라고 팡팡 치고 나서야 다들 앉았겠지. 와중에 몇은 차마 그 향기 나는 침대에는 못 앉겠다고(사유 : 내가 너무 누추함) 해서 바닥에 앉음.
암튼 애들 그렇게 앉아서 농구잡지나 만화책 꺼내 보고 방 한 쪽에 놓여 있던 보드게임도 하다 보니 저녁 먹으라며 동오 어머니가 부르시겠지.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경악하기 시작하는 산왕즈여라...







동오 어머니 대체 음식을 뭘 얼마나 하신 건지, 종류도 엄청 많은데 한 종류당 솥으로 요리한 것처럼 산더미같이 쌓여 있고 심지어 다 맛있음.
근데 신기한 건 밥상에 야채가 거의 없는 거임. 그니까 다 고기 메뉴란 소리가 아니고 왜...그런 거 있잖아. 분명 보편적으로 있어야 하는 채소가 없다는 소리임.

예를들어 갈비찜이라면 보통 안에 있어야 하는 큼지막한 당근이라던가 이런 거 없이 고기만 있고 카레에도 당근 양파 하나 없이 감자랑 고기만 들어 있고 부침개에도 보통 들어가는 양파나 파 이런 거 하나도 안 보이고 오징어만 박혀있음.
근데 또 그렇다고 부족한 맛은 아니야. 채소가 없는데 있는 것 같은 맛임. 일단 해주셨으니 맛있게 먹다가 현철이가 '음식이 다 너무 맛있다. 채소도 안 들어갔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 감칠맛이 나냐~어머니 음식 솜씨 짱이에요!' 하면서 변죽 좋게 너스레를 떠는데 동오 어머니 활짝 웃으며 기뻐하시는 거지.




"어머 그러니? 다들 잘 먹어주니 기분 너무 좋네~근데 그거 다 채소 들어간 거야*^^*"




알고보니 동오가 음식에 들어간 채소 물컹한 식감을 못 먹어서 이 집 모든 음식의 채소는 전부 믹서기로 갈아서 넣은 거겠지. 근데 가만보니 야채 뿐만이 아니야...


생선구이인데 껍질이 없고 흰 속살만 있음
why? 동오가 생선껍질 미끄덩하다고 안 먹어서 다 벗겨버림

미역국에 미역 줄기가 하나도 없음
why? 최동오 미역 줄기 싫어해서 줄기는 아예 빼놓고 엄빠 드시는 나물 무칠 때만 씀

멸치볶음에 멸치 머리가 없음
why? 최동오 멸치 눈 징그럽다고 안 먹어서 떼버림


다 이런 식임ㅋㅋ
최동오의 상상 초월 공주 짓을 알게 된 친구들 ㅈㄴ충격먹고 경악 중인데 차마 그 어머니 앞에서 아들래미 욕할 순 없으니 속으로 삼키고 있고 동오는 엄마는 애들한테 그런 얘길 왜 하냐며 얼굴 시뻘게져서 안절부절 중임.
근데 가만보니 최동오 앞에 놓인 작은 갈비찜 접시엔 뼈가 없음. 알고 보니 동오 갈비찜 뼈도 잘 못 발라먹어서(어릴 때부터 입이 짧아서 밥 먹는 게 전쟁이었다보니 늘 엄빠가 해주셔서 그럼) 동오 엄마가 습관처럼 뼈 발라서 따로 준 거임.

다들 어이없고 저 새끼 진짜 뭐지 싶은데 정작 동오 엄마는 뭐가 이상한지 모름ㅋㅋ너무 익숙한 내 새끼 공주 짓인데다가 외동아들이고 방학 때만 보다 보니 그냥 엄마 눈에 늘 애기라서~
심지어 최동오도 순살 갈비에 대해선 아직 자각 못해서 걍 즈그엄마가 발라준 갈비 냠냠 먹고 있고 동오 어머니 개뿌듯한 표정으로 아들 밥 먹는 거 구경 중.
최동오 학교에선 또래들 중에서도 의젓한 이미지인데다가 후배들한테는 조금 차가워 보인다는 인상까지 주는데, 지금 이 광경은 얘 평소 이미지랑 완전 딴판이라 다들 인지부조화 옴.

다들 속으로 '와씨....와....에반데;;;' 하면서 밥 먹는데 동오 어머니 동오 얼굴 보더니




"아들, 엄마가 보내준 바디로션 안 발라?"
"응? 아니 바르는데? (갈비우물우물)
"근데 왜 이렇게 피부가 상했어~"
"그런가? (우물우물)"




별 대화는 아닌데 고등학생 아들을 대하는 스킨십이라기엔 심히 거리감이 없고 또 그걸 받아들이는 최동오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와...이 집은 그냥 이게 디폴트구나.' 했음. 그러고 나서도 식사 시간 내내 어머니 산왕 애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화하고 하는데 은근히 애들 개인에 대한 정보 많이 알고 계셔서 동오가 집에서 부모님이랑 대화 많이 하고 진짜 살가운 아들이란 거 또 깨닫겠지.




그렇게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었던 저녁 식사 끝날 때쯤 동오 아버지도 퇴근하고 오셔서 애들 다 우르르 나가서 인사하는데 키도 얼굴도 최동오 복사판으로 생긴 아버지 차가운 첫인상하고 다르게 사람 좋게 웃으며 애들하고 일일이 악수해주실 듯. 근데 동오네 아빠도 애들 이름 이미 다 알고 있음;;
아 물론, 동오네 말고도 부모님들이 워낙 경기 자주 보러오시니 이름 정도야 알 텐데 '네가 현필이구나~요즘 살도 열심히 빼고 있다며? 형이 입학하고 쑥 큰 거로 봐선 현필이도 곧 살도 쫙 빠지고 튼튼해지겠네!' 이런 식임...
암튼 걍 여기까진 이미 동오네 집안 분위기 파악 끝냈으니 오케이. 별로 놀라지 않았음. 근데 이제 문제는....

친구들 뒤에 서 있던 최동오가 아빠 오랜만이라며 쪼르르 가서 지 아빠한테 푹 안기는데 애들 다 고장남ㅋㅋ
아니 쟤가...쟤가..원래 저런 애였어?!?!?!!!ㅇㅁㅇ
자기 행동 때문에 애들 고장 났는데 동오 눈치 없어서 이유 모름...동오네 엄빠도 모름...얘 눈치 없는 거 엄빠 닮은 거임;;




암튼 어찌저찌 놀란가슴 진정하고 동오 아버지가 아들 친구들 준다고 간식이랑 과일을 잔뜩 사 오셔서 그거 받아 들고 거실에 모여 앉았음. 근데 뭔 한여름에 붕어빵을 사 오신 거지 했는데 알고 보니 백화점에서 사 온 거임ㄴㅇㄱ

야 명헌아 서울에선 붕어빵도 백화점에서 사 먹냐? (소곤소곤)
나도 몰라 뿅;;(속닥속닥)

글고 팥붕 하나도 없이 다 슈붕 피붕임.
하...강원도 시내에 있는 붕어빵 트럭에서 애들 붕어 열 마리씩 조질 때 최동오 입에도 안 대길래 쟤 안 어울리게 밥만 조지는 토속적인 입맛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팥을 안 먹는 거였음.

그렇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붕어빵 흡입하고 있는데 동오 아버지가 또 계절감 안 맞게 백화점에서 사 온 귤을 까더니 아들 손에 쥐여줌. 근데 귤에 하얀 부분 다 떼서 줌;;;
ㅅㅂ 최동오 겨울마다 농구부에 귤 박스째로 들어와서 차고 넘쳐도 잘 안 먹길래 걍 과일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안 좋아하긴 개뿔...얘 지금 귤 흡입 중임.







산왕에서 지지고 볶고 3년 살면서 얘가 밥 외에 이렇게 뭘 턱턱 먹어대는 걸 첨 봐서 친구들은 다 신기한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게...동오 자기 편식하는 거 친구들한테 보여주기 창피하고 밖에서 그러는 거 민폐라고 배워서 걍 싫거나 못 먹거나 하는 건 아예 안 먹었고 그러다 보니 학교에선 간식 자체를 잘 안 먹었음.
운동하는 성장기 남자앤데 그럼 당연히 배가 고프니까 매 끼니마다 수북이 받은 맨밥에 반찬 찌끔 놓고 무념무상 배 찰 때까지 우적우적 먹고 운동한 거. 그래도 매점에서 파는 빵들이나 과자 같은 것 중엔 먹는 것들 있으니 간식 땡김 알아서 용돈으로 그런 거나 사 먹은 거지.

근데 부모님 오랜만에 만났고 자기 집이다 보니 얘가 긴장이 풀어져서 자기도 모르게 엄빠가 챙겨주는 거 다 받아버렸고~
간식까지 다 먹고나서 다시 동오 방 들어왔는데 아직도 애들 너갱이 나가 있고 명헌이 심연의 눈을 하고 있으니 뒤늦게 깨닫고 ㅈㄴ쪽팔려서 죽고싶음.

근데 뭘 어쩌겠어...이미 다 들켜버린 거ㅋㅋㅋ
동오 방에서 자기엔 좀 좁아서 거실에 이불 깔고 다 같이 누웠는데 동오 어머니가 뭔 자장가 같은 클래식도 거실에 은은하게 틀어두셔서 애들은 거대한 최씨 일가 유니버스에 들어오고 만 기분이라 기묘함 느끼며 잠들겠지...







그렇게 엄청난 경험을 하고 학교로 돌아가면 애들 최동오를 놀리기에도 너무 너무.....찐의 그것이라 놀리지도 않는데 다들 급식 시간마다 맨 밥만 수북한 동오 식판이 이젠 눈에 보여서 한 번씩 흠칫함.

낙수는 종종 깊은 한숨을 쉬고,
현철이는 대놓고 '와...넌 진짜....와...현필이도 초등학교 들어가고 부턴...와......' 말을 잇지 못하고 절레절레,
명헌이는 매직아이 돼서 빠안히 보다가 시선 거두고,
현필이는 헤헤..하면서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안 웃고 있음...


근데 유일하게 성구만,

살짝 한심하고 질린다는 표정으로 동오 하는 꼬라지 보다가 자기 식판에 있던 소시지 최동오 식판에 우르르 덜어주고 동오 식판에 있던 각종 나물들 다 집어 오겠지.
동오 난 이제 학교생활 망했다 싶어서 개쪽팔리고...
'야 정성구 너 왜 그래...!'라고 목소리 높였더니 급식실 한복판에서 이목 집중돼서 더 말도 못함.
그냥 시뻘게진 얼굴로 식판에 코 박고 우걱우걱 밥 퍼먹는데 성구가 잔뜩 쏟아준 소시지 때문에 오랜만에 밥 끝까지 맛있어서 내심 기분은 좀 좋았겠지.








예전에 갤에서 같은 소재로 썰 푼 적 있음
1편에 성구가 거의 안 나오는데 어쨌든 성구동오임


슬램덩크 성구동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