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태섭

자신이 송태섭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본인 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그 후배한테 잘못한 게 파노라마 마냥 촤르르 지나가서 깨닫자마자 마음 접어버리는 대만이었으면. 근데 접는다고 해서 막 접어지냐... 별 거 아닌 일로 걔가 자기 걱정해줄 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가 한나 앞에서 몸을 배배 꼬는 걸 보면 다시 땅바닥으로 처박히는 것 같고. 그래서 선배 오늘 저녁 콜? 물어올 때 나랑? 이한나는 어쩌고. 하며 뜬금없는 심술을 부렸는데 여기서 한나가 왜 나와요? 선배랑 나랑 저녁 먹자는 건데. 라는 소리에 또 바보같이 기분 좋아짐. 행여나 누구 데려올까 백호는? 이라고 물으니 없어요. 선배랑 저랑만요. 하고 둘이서만 먹는다고 확인도장 쾅쾅 찍어주면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려는 걸 겨우 막았지. 그런데 저녁 먹는 와중에 오늘 한나가_ 하며 바보처럼 풀린 얼굴을 해서 니 표정 되게 바보같은 거 아냐. 하며 괜히 시비도 날리고. 하여간 송태섭 하나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기분이 왔다갔다 하니까 좀 멀어져야겠다 싶어서 거리 두면 걔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나한테 뭐 화난 거 있어요? 이러는데 동그란 얼굴에 묘하게 서운한 티가 나서 이것도 안되겠다 싶음. 그냥 졸업 때까지 버티자 싶은 마음으로 지내는데 태섭이가 주장이 된 후로 확 가까워져서 둘이서만 남는다거나 저녁 먹는다거나 하는 일이 늘어났겠지. 물론 싸우는 일도 늘어났는데 보통 혼자서 다 떠안으려고 하지말라는 대만이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태섭이의 의견 충돌이 주를 이룸. 싸운다해도 대만이가 먼저 화해를 걸어오면 저도 과했죠 뭐.. 작게 사과하는 태섭이고, 태섭이가 화해를 걸어오면 오냐, 하며 산뜻하게 받아주는 대만이라서 오래 가지는 않음. 전화통화 하는 날도 늘었고 주말에 만나서 노는 날도 늘었음. 선배 친구 없어요? 그래도 대만이가 전화하면 하는대로 통화하고 만나자고 하면 꼬박꼬박 나오는 태섭이었지. 그러다 라커룸에서 같이 메뉴 짠다고 머리 맞대고 있을 때 그날따라 유독 말랑해보이는 태섭이 입술이 신경 쓰여서 태섭이 말은 한 귀로 흘리고 입술만 보고있다가 홀린 것처럼 손가락으로 쓸어보는데 태섭이가 눈에 띄게 놀라더니 뭐, 뭐하는 거에요?! 하고 소리를 지르겠지. 본인 실수를 알아차린 대만이도 놀라서 미안하다고 하려는데 잔뜩 흔들리는 눈과 빨개진 귀 끝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입 대신 손이 또 한 번 멋대로 움직였음. 피어스가 달린 귓볼을 만지다가 귓바퀴를 따라 살살 만져보는데 아까와 다르게 소리 지르지 않고 눈 꾹 감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어쩔 줄 모르는 태섭이 때문에 대만이는 뜬금없는 질문을 날렸음. 태섭아 키스해도 돼? 그러자 태섭이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대만이를 쳐다보는데 입술은 열리지 않았음. 다만 귀 끝은 아까보다 더 빨개졌지. 대만이의 손 끝으로 열기가 전달될 정도였음. 여전히 귀만 만지작거리며 태섭이의 입술만 열리길 기다렸음. ....왜요. 근데 싫다고 할 줄은 예상했어도 왜냐고 물을 줄은 몰랐거든. 내가 너 좋아해서. 그래서 평생 꺼낼 일 없다고 생각한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게 됐고 태섭이의 눈은 더 커졌다가 땅바닥을 쳐다봤다가 다시 대만이를 보더니 그러겠지. ...해요 그럼. 이제는 대만이의 눈이 커졌음. 너 그거 무슨 소린데. 대만이의 물음에 태섭이 입은 다시 조개처럼 다물어졌음. 하지만 대만이도 대답을 들을 작정이어서 태섭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두 사람 사이에 침묵만 흐르다가 갑자기 태섭이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태섭이 입술이 대만이 입술에 스쳤다 떨어졌음. 놀라서 굳어버린 대만이는 태섭이 한마디에 금세 다가가 입을 맞췄지. 나도 선배 좋아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