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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6 19:55
적비성 사실 방다병 놀려먹을때처럼 어그로 끄는 거 즐기기도 하는데 이연화는 쉽지 않겠지. 어쩔땐 메마른 본인보다도 더 얄짤없는 거 아닌가 할 때도 있을만큼 존나 칼같음.. 그래도 그게 이연화에 대한 마음을 접도록 만드는 걸림돌이 되진 않겠지 다행히 적비성은 어느정도 반열에 오른 무림인들 중에서도 특히 쇠심줄같이 질기고 고집스러울만큼 우직한 구석이 있었으므로 연화가 무시하면 속으로 튕겨도 귀엽군 이딴 생각이나 하면서 1절만하고 끝냈을듯
근데 그런 철벽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는 날이 또 재밌는거잖아. 마침 주변에 볼 일이 있다가 마주친 둘이, 그러다가 또 괜찮은 술에 추억을 안주삼아 저녁내내 웃고 떠들며 홀짝이다 술기운에 못 이기는 척 또 살을 맞대며 하룻밤을 보내고 말았겠지. 적비성은 이연화와 이런 적이 처음도 아니었고, 그간의 경험으로 이연화가 제게 특별한 뜻이 있어서 침상 옆자릴 내주는 것도 아니라고 덤덤히 여겼음. 그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연화는 한번도 속시원하게 마음을 내비친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적비성은 으레 그저 제게 허락된 시간에 충실하려고 했음. 마음이고 나발이고 뒷일 생각 않고 달려드는 저 여우같은 이연화가 어디 부서져버리기라도 할까, 다음날 뜬금없이 앓으며 하루종일 제 탓을 하고 미워하는건 아닐까 하여...
그치만 역시 이연화와 있는 시간은 금원맹주에게 소름돋을만큼 충만한 기쁨이긴 했지. 원래 적비성은 누군가 제 몸에 손을 대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기도 했고 감히 그걸 시도하는 사람도 몇 없었는데, 이연화는 좀 달랐음. 다 나은 흉터가 간질거릴수도 있나. 아무리 적비성이라도 그 옛날 소사검에 찔렸던 옅은 자국을 쓸어내리며 약마할배 실력이 형편없다고 멋쩍어하는 이연화를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어.(일단 적비성은 돌아가면 약마에게 큰 상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함) 살짝 술에 취해 은근한 음욕이 오른 이연화는 이름자와 같은 연꽃보다는 달큰하게 흐드러진 도화꽃같아 의식하지 않고도 홀리는 것 같았음. 하물며 겁없이 사람을 붙잡아 끌고 밀면 밀리는대로, 벌리면 벌리는대로 고분고분하게 손을 타는데 어여쁘지 않을 수가 없지.
지금처럼, 잠결에 얹어놓은 이 팔까지도.
그럼 아직 아무 의미없는 사이여도 아직 괜찮다고 무던하게 구는 적비성이라도 연화와 어떤 관계로 맺어지고 싶은 욕망이 은근히 고갤 들게 되겠지. 좀더 강력하게 이연화를 제게 구속시키고, 좀더 제멋대로 이연화를 만지고 갖고싶은 그런 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비성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항상 파국의 결말밖에 없음. 그리고 이연화가 보여준 극단적인 문제해결의 예시라던가, 각려초가 했던 짓이라던가.. 적비성이 경험했던 일들도 그 비극적인 상상에 한몫을 했을 거고. 암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연화가 어떤 답을 줄때까지 걍 참아보는 적비성임 게다가 적당한 거리까지 염려해야 하기에 질척한 집착이 생기는 걸 하나하나 몰래 끊어내기까지 해야하는..
적비성은 일부러 연화가 일어날때 쯤을 기다려 먼저 몸을 일으켰겠지. 마음같아선 품 안에 고이 품어 재우다가 일어나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하루종일 침상에서 뒹굴고 싶었지만, 그런 짓을 하면 다음부터 절대 이연화가 자신을 허락하지 않을거란걸 알았음. 적비성이 하의만 겨우 걸치고 차갑게 다 식은 씁쓸한 차를 연거푸 들이키고 있을때 이연화가 부스럭거리고 기척을 냈음. 아마 체력이 허락했다면 저보다도 먼저 일어나 움직이고 싶었겠지. 그게 아니니까 저가 먼저 일어나 돌아다니길 기다린 것이고.
으...너. 어제... 아니, 말을 말자.
이연화가 기지개를 펴려다 앓는 소리를 냈음 침의도 꿰어입지 못하고 잠들어 다시 이불을 찾아 끌면서 괜한 볼멘소리를 하는 거지. 적비성이 대꾸없이 간밤의 상황을 말해주듯 바닥에 난잡하게 떨어진 연화의 옷가지를 줏어다 곁에 떨궈줬음. 그리고 본인도 휘적휘적 걸어 마저 옷을 주워 입으려고 했지. 그런데 그 때 이상하게도 근질거리고 따끔거리는 느낌이 신경쓰여 고개를 돌려 옷을 입기 전 어깨와 등을 내려다봤을거야. 적비성은 두 눈으로 제 몸 상태를 목격하고선 그만 참지못하고 킥킥 웃어버렸음. 곧바로 이연화를 바라보며 눈짓하니 고개를 홱 돌리는 게 슬슬 장난이 치고싶어지는거임 아니 솔직히 농을 걸어도 될 것 같았음. 적비성의 어깨나 등판이 죄다 손자국으로 얼룩덜룩하게 멍이 들고 긁혀서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흠..사람을 이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말이지.
적비성이 은근한 웃음을 담아 일부러 보란듯이 등을 힐끗거렸음. 이걸 어떻게 남겨놓을 순 없나. 이연화 네가 새긴 거라고 두고두고 오래도록 놀려먹고 싶은데. 이연화는 얼른 옷이나 입으라고 적비성을 타박하다가 빙글거리며 신난 적비성의 모습에 질린다는 듯이 이불 속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갔음 눈만 좀 내놓은 이연화가 미안함 반, 퉁명스러움 반을 담아 툭 내뱉었음.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냐? 뭐, 남한테 보여줄 일도 없잖아.
그럼 그 웅얼거리는 말을 듣던 적비성이 가만 생각하다가 정말 눈 뜨고는 못봐줄만큼 바보같은 얼굴로 히죽거리면서 웃기 시작할거야. 이연화는 ???? 저놈이 왜이렇게 멍청한 얼굴로 좋아하지 하다가 얼굴에 함박미소를 띈 금원맹주가 돌려준 말에 그제서야 뒤늦게 이불속에 가려진 뺨이 붉게 달았을거임
그치. 내가 널 두고.
...아니. 야, 그게 그런 말이 아니라.
알겠다. 걱정마라. 앞으로도 쭉 너한테만 보여줄테니.
윽, 그만해. 진짜.
이연화가 드물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적비성에게 꼬리를 말았음. 벌게진 얼굴을 숨길수가 없어 아예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어 쓴 이연화를 보며 적비성은 그제서야 상의를 걸쳐입었지. 겁나 세상에서 제일 신나고 재미있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속으로 이연화, 솔직한 건 더 귀엽군 생각하면서ㅋㅋㅋㅋㅋ
비성연화 연애해...
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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