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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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23:27
오타ㅈㅇ 캐붕ㅈㅇ 걍 다 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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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수트를 입은 호열은 평소엔 쓰지도 않는 향수도 두어번 뿌렸음. 서점 주인인 호열은 책냄새가 좋지 향수냄새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음. 거기다... 그 사람도 싫어했고... 향수 뚜껑을 닫던 호열은 그 옆에 놓여진, 딱 세 번 뿌림 향수를 보다 걸음을 옮겼음. 옷 매무새를 정돈하고 신발장을 열었다 멈칫한 호열은 딱 두 개 있는 구두 중 더 짙은 색의 구두를 꺼냈음. 호열은 현관문에 걸린 바이크 키를 챙기려다 아 하고 다시 집어넣었음. 수트니까... 바이크는 좀... 그러면서 호열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었음. 사실 자신의 마음은 잘 알고 있었음... 1년 만에 보는 그 사람이 잔소리를 할 게 뻔해서 바이크키를 내려놨다는 걸... 호열은 그 옆에 놓인 차키를 집어들고 문을 열었음.
빛나는 샹들리에 밑에서 행복하게 웃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아름다웠음. 모두들 핸드폰을 꺼내들고 신랑 신부 사진을 찍기 바빴고,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에 호열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음. 태섭은 한나의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고 한나는 그런 태섭의 어깨를 토닥였음. 호열은 한나가 입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보다... 그만 대만을 떠올렸음. 자신이 결혼하자고 장난스레 말하면 진지하게 난 겨울에 하고 싶어 하던 그 모습을.
그날 싸움도 사소한 걸로 시작됐음. 대만은 슬슬 정착하고 싶어했고 호열은 아직 자신이 없었음. 그도 그럴게 저렇게 빛나는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호열은 기본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음.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정말 딱 기본. 물컵이라 따지자면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절반. 넘치기엔 부족하고 없다고 하기엔 뭣하게끔. 하지만 호열은 대만과의 사랑 앞에선 약간... 자신을 잃었음. 나와 만나는 그 사람은 티비를 틀어도, 잡지를 펼쳐도 나오고 사람들은 잘 나가는 모델이나 배우들과 함께 언급이 되곤 했음. 함께 길을 걸으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오고 손도 편하게 잡지 못 해 집 데이트를 주로 했고... 군중의 삶을 사는 호열은 그런 상황이 좀 버거웠음.
거기다 서점 일을 하면 듣고 싶지 않던 얘기들도 듣게 됨... 스포츠 잡지나 연예 잡지에 실린 내 애인을 보고 쏟아내는 평가들도. 그럴 때마다 호열은 서평을 적으려 쥔 펜을 아주 꽉 잡았음.
[있지. 정대만은 나중에 엄청 예쁜 여자랑 결혼할 거 같아. 그래야만 해. 정대만이잖아.]
연예 잡지를 보던 학생들은 손바닥만하게 실린 정대만을 가리키며 쑥덕거렸음. 호열은 처음으로 대만을 향한 얘기에 손에 힘을 주지 않았음. 오히려 풀려버렸음. 툭 떨어진 펜을 주워 서평을 쓰는 동안 호열의 귀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음. 호열은 그날 일찍 문을 닫았음. 개인 사정으로 일찍 닫습니다를 써내려가는 손은 미세하게 떨렸음.
평소였음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요 며칠 예민했음. 애인의 스캔들을 보게 됐고 아니란 걸 알지만서도 가슴 한 켠은 씁쓸했음. 대만은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뭔지 모르겠는 마음만 남아버렸음.
호열은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막는 편이 아니었음. 상대방이 보내달라 할 때 잡지 않는 것. 이게 호열의 연애관이었음. 하지만 지금 대만이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한다면... 호열은 과연 자신이 버릇처럼 가져버린 그 마음을 대만에게도 할 수 있을까 싶었음. 동시에 그만 하자 했으니... 어찌 됐건 잡지 않게 된 걸까... 지금까지 그리워 하는 걸 보면 아닌 걸까.. 호열은 눈 앞에 있는 꽃들을 보다 눈을 질끈 감았음. 머릿속에 가득차는 정대만에 정신이 나갈 거 같았음. 짝짝짝. 호열은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다시 눈을 떴음. 남의 결혼식 자리에서 전애인을 떠올리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호열은 진심을 담아 크게 박수를 쳤음. 새빨개진 손바닥이 얼얼해졌음.
사진을 찍는다길래 호열은 테이블에 앉아 물을 홀짝였음. 머릴 세운 정대만과 눈이 마주쳤지만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음. 간만에 수트를 입어 그런지 더 갑갑하네... 하면서. 그러자 언제 올라간 건지 백호 앞에 주르륵 선 군단 놈들이 호열이에게 얼른 올라오라며 손을 흔들었음. 호열은 결국 알겠다고 하며 일어서 사진을 찍었음. 억지로 끌어올려진 입꼬리가 티나지 않길 바라며.
-
결혼식이 끝난 후, 간만에 서울로 온 대남과 용팔은 호열에게 오늘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음. 군단 녀석들 전부가 모이는 건 쉽지 않았으니... 가끔 이런 큰 행사가 아니면 다같이 만날 수 없었으니까. 구식이조차 호열과는 지하철로 5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음. 호열은 턱을 만지다 내일은 책이 오는 날이라 일찍 문 열어야 해서 늦게까진 못 마신다며 저번에 갔던 곳이나 갈까? 했음.
"백호는 어디 갔냐?"
"소연이랑 얘기 중. 너네 다 차 끌고 왔어?"
"아니. 나 용팔이 차 타고 왔어. 출고가 늦어져가지고... 차 없으니까 진짜 불편하더라."
"아직도? 그치. 힘들지.... 그럼 차 한 대니까.. 용팔아 네 차 우리 집 주차장에 대놓고 움직일까? 차고 옆에 치워서 하나는 더 들어가는데."
"그럼 좋지."
"그래. 일단 그렇게 하자. 나 한 대만 피고 올게."
"끊으라니까 안 끊었냐?"
너네처럼 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금방 갔다 올게. 구식이랑 백호 오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봐!"
호열은 대충 손을 휘저었음. 아까 봐뒀던 흡연실을 찾으며 자켓을 벗었음. 그냥 집에서 마시자고 할까... 그럼 저것들이 지랄할텐데. 호열은 손 안에서 라이터를 굴렸음.
-
대만은 태섭과 한나의 청첩장을 받자마자 호열이 생각을 했음. 북산 농구부에서 가장 먼저 결혼을 하는 게 태섭이라니. 대만은 태섭의 머릴 쓰다듬으며 한나 속 썩이지 말고 자식아 하며 크게 웃었음.
사실 대만은... 자신이 먼저 할 거란 생각을 했음. 장난스레 결혼 할까? 우리? 하는 양호열을 보면서 겨울에 하고 싶다고 대답한 것엔 거짓이란 없었지. 그러자 푸하하 웃으며 자신의 손등에 볼을 부비는 양호열을 바라보며 둘이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음. 영원이란 건 전부 거짓이라 생각하던 대만도... 호열을 보면 영원이라는 단어의 낭만을 생각하게 됐음.
아직 동성혼인은 불가하니 그냥 친한 지인들을 불러 같이 식사하는 걸로 결혼식을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음.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호열은 잡혀주지 않았음.
대만은 청첩장을 손으로 쓸어봤음. 아무래도 신랑이 둘이면 좀 그랬을지도 몰라.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대만은 자신을 상처내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그날은 좀 울다 잤음.
태섭과 한나의 결혼식 날, 호열과 멀리 떨어진 테이블로 안내받은 대만은 가슴을 쓸어내렸음. 정말 다행이었지. 치수의 말에 대충 대답하며 눈으로는 끊임없이 호열이 앉은 테이블 쪽을 힐끔거렸음. 결혼식 사진 촬영이 끝난 후, 대만은 곧바로 결혼식장 외부에 있는 흡연실로 들어갔음.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냄새만 가득했음. 대만은 주윌 둘러보다 담배를 물었음. 라이터를 챠칵 움직인 순간 불이 붙었고, 입에 담배를 물며 들어오는 호열에게 그걸 딱 들켰음.
"뭐 해..?"
"뭐가."
호열은 담배를 가로챘음. 아주 재빠르게. 그리곤 셔츠와 넥타이에 주름이 잔뜩 가는 것도 모른 채로 대만의 멱살을 잡았음.
"미쳤어? 담배를 물어?"
담배연기 근처에도 못 가게 하려고 했는데 언제 배웠는지 누가 알려줬는지 그 사람을 족치고 싶었음. 대만은 호열의 격앙된 말투에도 꼼짝하지 않았음. 되려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고 호열은 아예 대만의 손에서 담뱃갑을 빼앗았음. 그리고 손 안에서 전부 우그러뜨렸음.
"정대만."
대만은 입을 꾹 다물었음. 말 하기 싫을 땐 절대 말 안 하는 사람인 걸 알아서... 호열은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음. 대신 대만의 손을 잡아 끌어 흡연실을 벗어났음. 흡연실 밖에 있는 벤치에 대만을 앉혀두고 호열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음.
"담배 더 없어요?"
"응."
"하..."
호열은 이마를 짚었음. 이렇게 어려운 날이 또 있을까. 대만을 살피던 호열은 담배 진짜 태웠냐 물었고 대만은 그냥 불만 붙으면 그 뒤엔 쳐다만 봤다는 얘기를 했음. 대만은 고갤 푹 숙이곤 호열을 불렀음.
"야."
"왜요."
"너는 향수도 잘 안 썼잖아."
"그건... 대만 군이 안 좋아했으니까..."
호열은 그렇게 말하며 대만의 앞으로 가 섰음. 아직 한여름은 아니었지만 낮엔 햇빛이 무척이나 따가워서 대만이 싫어할 게 분명했음. 대만은 자기에게 그늘이 생기자 고갤 들었음. 눈 앞에 있는 상대방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음. 그 사람 발에 신겨진 신발이 아주 낯익었음.
"너... 내가 사준 신발 신었네."
"아... 응. 오늘 옷에 더 잘 어울려서."
대만은 그 말에 피식 웃었음. 내가 신발 사줘서 떠났나... 분명 나도 그만 하자고 했지만... 양호열은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헤어지던 날, 대만은 현관문에 쪼그려 앉아 호열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음. 부상 이후, 조금만 무리하면 흉터부분이 발갛게 올라오는 무릎이 빨개지도록... 한참동안.
빨리 와서 무릎 얘기 해... 잔소리 해줘... 대만은 무릎 위에 올려둔 손등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만 봤음. 이제 더이상 잔소리 하는 사람도, 울어도 닦아 줄 사람은 없었음.
"담배는 누구한테 배웠어?"
"배우긴 뭘 배워.. 그냥 냅다 물고 빨았어..."
"기침 안 했어요?"
"했지. 존나 독하더라. 넌 그 매캐한 걸 잘도..."
"나야 생각없는 좆중딩 때부터 태웠으니까."
"..."
"그치만... 대만 군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야."
호열은 그렇게 말하며 대만의 앞에 무릎을 꿇고 대만을 올려다 봤음. 수트의 무릎 부분이 더러워지건 말건. 한참을 대만과 눈을 맞춘 호열은 이제 가겠다며 일어나 느릿느릿 걸어갔음.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담배갑을 구겨버렸음.
-
"너희... 내가 결혼하면 어떨 거 같아?"
"너 만나는 사람 있냐?"
"아니. 근데 걍 그러면 어떨 거 같냐고."
"뭐 네가 좋다면 해야지."
"그 사람에 비해... 내가 너무 초라해보이면... 어떡하지?"
"엉? 취했네. 이 새끼. 안 하던 말을 다 한다. 야. 백호야 좀 이따 얘 네가 업고 가."
"당연하지. 이 천재가 업어주마."
호열은 술잔을 빙빙 돌렸음. 찰랑이는 맥주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음. 나도 내가 취해서 헛소리나 하는 거면 좋을 텐데.
"근데 그 사람도 너를 선택했다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어?"
"결혼이 뭐 너 혼자 좋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양호열이 뭐 혼자 결혼까지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초라해보여? 너한테 그랬어? 그딴 놈을 왜 만나냐. 헤어져라."
"그래. 야 초라? 당장 헤어져."
호열은 고개를 푹 숙였음. 대만 군은 바보같이 착해서 그런 생각 안 해... 라는 말이 혀 끝에서 맴돌았음. 그렇게 아무 말없이... 몇 시간동안 술을 마신 후 집에 돌아온 호열은 제일 먼저 친구들을 방에 밀어넣었음. 작은 침대에 백호를 눕히고 용팔이에겐 토퍼를 꺼내줬지. 대남은 소파에서 자겠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음. 모두들 잠든 후 호열은 그제서야 씻으러 들어갔음.
씻고 멍한 정신으로 나온 호열은 핸드폰을 챙겨 바깥으로 나왔음. 바람을 좀 쐬고 나니 멍했던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음. 호열은 밝게 빛나는 달을 쳐다본 후 핸드폰을 확인했음. 새벽 두 시. 번호가 똑같길 빌며 호열은 통화 버튼을 눌렀음.
"정대만?"
"... 호열아."
"번호 안 바꿨네."
"응."
"있지, 대만 군...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지금 괜찮아? 낮까지는 못 기다리겠어서."
"어. 해도 돼."
"집엔 잘 갔어요?"
"잘 갔지. 넌?"
"나도 잘 갔어요."
"너 술 마셨어?"
"어떻게 알았어?"
"너 술 마시면 꼭 그렇게 웃으니까."
"대만 군은 귀신이구나."
호열은 그렇게 말하며 벽돌 사이에 핀 들꽃을 만지작거렸음. 이렇게 부드러운데 딱딱한 시멘트 사이를 뚫고 자라다니 대단하네 따위에 생각을 했음. 그렇게 한참을 대만의 숨소리만 듣던 호열은 아까 낮에 했던 얘기를 상기했음. 다시 만난다는 확신이 그다지 있지 않았음. 자신을 쳐다보는 대만의 눈빛을 봐도... 호열은 눈을 꾹 감았다 떴음. 이런 상태로는 다시 만나봤자... 또 그렇게 싸우지 않을까 싶었음. 호열은 슬슬 피하기만 했던 과거의 자신이 미웠음. 그래서 호열은 정리하지 못한 마음을 내뱉기로 결심했음.
"대만 군, 지금부터 하는 말은... 술 취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그렇다고... 뭐 엄청 귀 담아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는 소리."
"...응."
"있지, 의외로 나는 겁이 많아. 지레짐작하는 것도 있고. 생각만큼 깡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는 무척이나 평범해서... 드라마로 따지자면 당신은 주연이고 나는 엑스트라 정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당신은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는 슈퍼스탄데 난 그냥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서점 주인이니까. 당신처럼 잘 생기지도 않고, 특출나게 잘 하는 것도 없고... 또 그걸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가도 아니고...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전국에 몇 없겠지만 당신을 아는 사람은 엄청 많잖아. 당장 티비를 틀어도, 라디오를 들어도, 하물며 편의점에 가도 정대만이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듣게 되니까. 대만 군, 난 서점에서 혼자 잡지를 정리할 때도 내 사랑을 마주하게 돼. 그게... 엄청 신기하면서도... 엄청 컸나봐요."
"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길 보내달라 하면 보내주고 싶었어요. 사랑하니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은 나와 사랑하는 것 보다... 신경쓸 게 더 많잖아요. 근데 난 너무 어린가 봐요... 헤어지기 싫어. 못 보내주겠어요. 이미 2년이나 지났는데 이런 말 하면 너무 웃기겠지만..."
한참동안 조용하던 핸드폰 너머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음. 그건 우는 거 같기도, 웃는 거 같기도 한 소리였음.
"...싶어."
"어?"
"보고 싶어... 지금 당장."
대만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음.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 싶다 하는 정대만을 과연 누가 거역하겠음. 호열은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켰음.
"갈게. 지금."
-
호열이 대만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대만은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음. 무릎 흉터가 빨개지도록. 그걸 본 호열은 바로 대만의 무릎에 손을 올렸음.
"왜 이러고 있어. 무릎 다 상하게..."
대만은 호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했음. 2년을 기다린 말이었기에... 호열은 슬쩍 대만의 무릎 밑으로 손을 집어 넣어 다리를 쭉 필 수 있게 했음. 그런 다음 대만의 무릎에 손가락을 갖다댔음. 울긋불긋한 흉터를 손으로 쓸며 호열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음. 대만은 그런 호열의 손을 붙잡아 자기 볼을 감싸게 했음.
"기다렸어. 그날도... 네가 다시 와서 이렇게 해줄 거라 생각했어."
대만은 조심히 입을 열었음. 현관에 달린 센서등이 서서히 꺼졌음.
"응... 미안해. 좀 더 빨리 올 걸... 너무 늦게 왔어. 내가."
대만은 자기 볼을 감싼 호열의 손등을 감쌌음. 거칠거칠한 손등이 만져졌음.
"있잖아, 호열아."
"응."
"사실 그만 하자고 하기 싫었어... 홧김에.. 내뱉었어. 넌 나한테 항상 져주니까 이번에도 져줄 거라 생각했어."
대만은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음. 호열이 하지말라는 듯 엄지로 입술을 살짝 누르자 대만은 다시 말을 이어갔음.
"내가... 전에 만난 사람들은... 전부 내 유명세를 좋아했어. 이용해먹으려던 놈도 있었고. 아팠어. 너라면 안 그랬을 텐데 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래서 네가 더 좋았어. 넌 날 정대만 그 자체로 봐주니까. 난 오롯이 네 앞에서만 내가 돼.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 하지마. 난 너 없으면 안돼. 너는 그냥 평범한 양호열이 아니야. 네가 그랬지. 드라마로 따지자면 내가 주연 넌 엑스트라라고. 내 드라마에선 네가 주연이야."
대만은 그렇게 얘기하며 호열의 어깨를 끌어안아 뒤로 누웠음. 차가운 바닥이 등에 닿자 대만은 움찔거렸고 자연스레 호열의 귓가가 자신의 입 근처로 오자 전하지 못 했던 말을 속삭였음. 센서등이 다시 켜지며 따뜻한 빛이 내려앉았음.
"미안해."
호열은 대만의 볼에 입을 맞추며 저도 미안해요.. 하고 대답했음. 대만은 호열의 척추뼈를 더듬다 크게 숨을 쉬었음. 포근한 호열의 향이 느껴져 이제서야 진짜... 호열이 내 옆에 있구나 싶었겠지.
둘은 한참을 맨바닥 위에서 엎어져 그 누구도 들을 수 없게 조용히 얘기했음. 못 했던 말들과 사랑한다는 말이 뒤섞였음. 슬슬 몸을 일으키던 호열이 아! 소리를 내자 대만은 왜? 하고 벌떡 일어났음. 호열의 발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음. 슬리퍼를 신고 발이 닿는 대로 그냥 뛰어오느라 발바닥이 엉망진창이었음.
"너 미쳤냐? 아픈 것도 못 느껴?"
하하, 이제야 정대만 같다. 내 걱정하면서 욕 하니까."
"미친 새끼... 웃음이 나오냐? 가서 발 씻고 와. 약 발라 줄게."
"싫은데."
"뭐가 싫어. 빨리 욕실로 안 들어가?"
"떨어져 있기 싫어."
호열의 말에 대만은 새벽인 것도 잊고 큰 소리로 웃었고 호열도 대만의 웃음에 같이 웃었음. 결국 호열이 발을 씻는 동안 대만은 욕실 문지방에 걸터앉아 호열을 쳐다봤음. 호열은 뭘 그리 생각하는지 발에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하고 헹구는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 물소리가 뚝 끊기자 호열은 대만을 쳐다봤음.
"우리.. 처음 사귈 때 기억나요?"
"응? 기억나지."
"그때도... 서로 돌고돌아 만났는데 이번에도 그랬네."
호열은 수건으로 발을 닦으며 말을 마쳤음. 핏물이 수건에 스며들어 얼룩덜룩해졌음. 대만은 그런 호열을 보며 피식 웃었음. 저 조그만 머리로 뭘 그리 생각하나 했더니. 대만은 호열을 침실로 밀어넣고 연고를 꺼내왔음. 침대에 호열을 앉혀놓고 침대 밑에 앉은 대만은 호열의 발을 조심히 감싸쥐고 연고를 살살 발랐음.
"그래서 담배는 왜 했는데? 이제 대답하지?"
대만은 우물쭈물거리다 입을 열었음. 너무 추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솔직해지자고 생각했음. 그날처럼 되고 싶지 않았음.
"그게... 네 향만이라도 기억하고 싶어서...나 네 담배향만 기억나더라. 기억나는 게 이것 뿐이라서... 우리 3년이나 만났는데도... 네 향이 기억이 안 나가지고..."
대만은 그렇게 말하며 호열을 살폈음. 이 상황이 죄스러웠지. 그건 호열도 마찬가지였음. 나 때문에 저 사람 폐에 조금이라도 담배연기가 들어간 게 미치게 싫었음.
"그래서 후회했어... 네 체취랑 비슷한 게 하나도 없더라. 이럴 줄 알았음 향수 좀 자주 뿌리라 할 걸."
"그렇다고 담배를... 하..."
대만은 그렇게 말하며 연고 뚜껑을 닫았음. 호열은 그런 대만에게 다시는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음. 새끼 손가락까지 걸고.
연고를 다 바른 후, 대만은 자고 갈 거지? 하고 물어봤음. 호열은 꾸물꾸물 이불 안으로 들어가놓고도 괜스레 웃으며 튕겼음.
"글쎄에... 일어났을 때 나 없으면 애들 놀랄 텐데..."
"걔네가 애도 아니고 뭘 놀라."
"그래도... 아침에 일어났는데 집 주인이 내가 없어 봐. 내 친구들 놀라지 않을까?"
대만은 호열의 말에 불을 끈 후 작은 수면등만 킨 채 침대로 들어갔음. 호열이 있기에 따끈해진 이불에 대만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음. 이불을 코 끝까지 끌어올린 대만은 조용히 말했음.
"너 가면..."
"나 가면?"
"네 대만이는 외롭단 말야..."
호열은 피식 웃으며 대만의 손에 깍지를 꼈음. 손가락으로 손등을 쓸던 호열의 대만의 볼에 짧게 키스했음.
"안 갈게. 가라고 해도 안 갈게. 계속 옆에 있을게. 질리도록."
"큰일이네. 그럼 너 평생 내 옆에 있어야 해. 난 너 안 질릴 자신 있거든."
대만은 빙글 웃었음. 곧 이어 침실은 낮은 음으로 웃는 소리와 이불이 사부작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지. 대만은 호열의 숨소리에 자신의 숨을 맞춰나갔음.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웠음.
-
끝,,,! 완전 얼레벌레 엉망진창 글이다... 읽어줘서 고마워!!
이건... 별 거 아니고 걍 이거 생각할 때 듣던 노래라 첨부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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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https://hygall.com/592190806
간만에 수트를 입은 호열은 평소엔 쓰지도 않는 향수도 두어번 뿌렸음. 서점 주인인 호열은 책냄새가 좋지 향수냄새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음. 거기다... 그 사람도 싫어했고... 향수 뚜껑을 닫던 호열은 그 옆에 놓여진, 딱 세 번 뿌림 향수를 보다 걸음을 옮겼음. 옷 매무새를 정돈하고 신발장을 열었다 멈칫한 호열은 딱 두 개 있는 구두 중 더 짙은 색의 구두를 꺼냈음. 호열은 현관문에 걸린 바이크 키를 챙기려다 아 하고 다시 집어넣었음. 수트니까... 바이크는 좀... 그러면서 호열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었음. 사실 자신의 마음은 잘 알고 있었음... 1년 만에 보는 그 사람이 잔소리를 할 게 뻔해서 바이크키를 내려놨다는 걸... 호열은 그 옆에 놓인 차키를 집어들고 문을 열었음.
빛나는 샹들리에 밑에서 행복하게 웃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아름다웠음. 모두들 핸드폰을 꺼내들고 신랑 신부 사진을 찍기 바빴고,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에 호열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음. 태섭은 한나의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고 한나는 그런 태섭의 어깨를 토닥였음. 호열은 한나가 입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보다... 그만 대만을 떠올렸음. 자신이 결혼하자고 장난스레 말하면 진지하게 난 겨울에 하고 싶어 하던 그 모습을.
그날 싸움도 사소한 걸로 시작됐음. 대만은 슬슬 정착하고 싶어했고 호열은 아직 자신이 없었음. 그도 그럴게 저렇게 빛나는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호열은 기본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음.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정말 딱 기본. 물컵이라 따지자면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절반. 넘치기엔 부족하고 없다고 하기엔 뭣하게끔. 하지만 호열은 대만과의 사랑 앞에선 약간... 자신을 잃었음. 나와 만나는 그 사람은 티비를 틀어도, 잡지를 펼쳐도 나오고 사람들은 잘 나가는 모델이나 배우들과 함께 언급이 되곤 했음. 함께 길을 걸으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오고 손도 편하게 잡지 못 해 집 데이트를 주로 했고... 군중의 삶을 사는 호열은 그런 상황이 좀 버거웠음.
거기다 서점 일을 하면 듣고 싶지 않던 얘기들도 듣게 됨... 스포츠 잡지나 연예 잡지에 실린 내 애인을 보고 쏟아내는 평가들도. 그럴 때마다 호열은 서평을 적으려 쥔 펜을 아주 꽉 잡았음.
[있지. 정대만은 나중에 엄청 예쁜 여자랑 결혼할 거 같아. 그래야만 해. 정대만이잖아.]
연예 잡지를 보던 학생들은 손바닥만하게 실린 정대만을 가리키며 쑥덕거렸음. 호열은 처음으로 대만을 향한 얘기에 손에 힘을 주지 않았음. 오히려 풀려버렸음. 툭 떨어진 펜을 주워 서평을 쓰는 동안 호열의 귀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음. 호열은 그날 일찍 문을 닫았음. 개인 사정으로 일찍 닫습니다를 써내려가는 손은 미세하게 떨렸음.
평소였음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요 며칠 예민했음. 애인의 스캔들을 보게 됐고 아니란 걸 알지만서도 가슴 한 켠은 씁쓸했음. 대만은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뭔지 모르겠는 마음만 남아버렸음.
호열은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막는 편이 아니었음. 상대방이 보내달라 할 때 잡지 않는 것. 이게 호열의 연애관이었음. 하지만 지금 대만이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한다면... 호열은 과연 자신이 버릇처럼 가져버린 그 마음을 대만에게도 할 수 있을까 싶었음. 동시에 그만 하자 했으니... 어찌 됐건 잡지 않게 된 걸까... 지금까지 그리워 하는 걸 보면 아닌 걸까.. 호열은 눈 앞에 있는 꽃들을 보다 눈을 질끈 감았음. 머릿속에 가득차는 정대만에 정신이 나갈 거 같았음. 짝짝짝. 호열은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다시 눈을 떴음. 남의 결혼식 자리에서 전애인을 떠올리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호열은 진심을 담아 크게 박수를 쳤음. 새빨개진 손바닥이 얼얼해졌음.
사진을 찍는다길래 호열은 테이블에 앉아 물을 홀짝였음. 머릴 세운 정대만과 눈이 마주쳤지만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음. 간만에 수트를 입어 그런지 더 갑갑하네... 하면서. 그러자 언제 올라간 건지 백호 앞에 주르륵 선 군단 놈들이 호열이에게 얼른 올라오라며 손을 흔들었음. 호열은 결국 알겠다고 하며 일어서 사진을 찍었음. 억지로 끌어올려진 입꼬리가 티나지 않길 바라며.
-
결혼식이 끝난 후, 간만에 서울로 온 대남과 용팔은 호열에게 오늘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음. 군단 녀석들 전부가 모이는 건 쉽지 않았으니... 가끔 이런 큰 행사가 아니면 다같이 만날 수 없었으니까. 구식이조차 호열과는 지하철로 5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음. 호열은 턱을 만지다 내일은 책이 오는 날이라 일찍 문 열어야 해서 늦게까진 못 마신다며 저번에 갔던 곳이나 갈까? 했음.
"백호는 어디 갔냐?"
"소연이랑 얘기 중. 너네 다 차 끌고 왔어?"
"아니. 나 용팔이 차 타고 왔어. 출고가 늦어져가지고... 차 없으니까 진짜 불편하더라."
"아직도? 그치. 힘들지.... 그럼 차 한 대니까.. 용팔아 네 차 우리 집 주차장에 대놓고 움직일까? 차고 옆에 치워서 하나는 더 들어가는데."
"그럼 좋지."
"그래. 일단 그렇게 하자. 나 한 대만 피고 올게."
"끊으라니까 안 끊었냐?"
너네처럼 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금방 갔다 올게. 구식이랑 백호 오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봐!"
호열은 대충 손을 휘저었음. 아까 봐뒀던 흡연실을 찾으며 자켓을 벗었음. 그냥 집에서 마시자고 할까... 그럼 저것들이 지랄할텐데. 호열은 손 안에서 라이터를 굴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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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태섭과 한나의 청첩장을 받자마자 호열이 생각을 했음. 북산 농구부에서 가장 먼저 결혼을 하는 게 태섭이라니. 대만은 태섭의 머릴 쓰다듬으며 한나 속 썩이지 말고 자식아 하며 크게 웃었음.
사실 대만은... 자신이 먼저 할 거란 생각을 했음. 장난스레 결혼 할까? 우리? 하는 양호열을 보면서 겨울에 하고 싶다고 대답한 것엔 거짓이란 없었지. 그러자 푸하하 웃으며 자신의 손등에 볼을 부비는 양호열을 바라보며 둘이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음. 영원이란 건 전부 거짓이라 생각하던 대만도... 호열을 보면 영원이라는 단어의 낭만을 생각하게 됐음.
아직 동성혼인은 불가하니 그냥 친한 지인들을 불러 같이 식사하는 걸로 결혼식을 대체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음.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호열은 잡혀주지 않았음.
대만은 청첩장을 손으로 쓸어봤음. 아무래도 신랑이 둘이면 좀 그랬을지도 몰라.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대만은 자신을 상처내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그날은 좀 울다 잤음.
태섭과 한나의 결혼식 날, 호열과 멀리 떨어진 테이블로 안내받은 대만은 가슴을 쓸어내렸음. 정말 다행이었지. 치수의 말에 대충 대답하며 눈으로는 끊임없이 호열이 앉은 테이블 쪽을 힐끔거렸음. 결혼식 사진 촬영이 끝난 후, 대만은 곧바로 결혼식장 외부에 있는 흡연실로 들어갔음.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냄새만 가득했음. 대만은 주윌 둘러보다 담배를 물었음. 라이터를 챠칵 움직인 순간 불이 붙었고, 입에 담배를 물며 들어오는 호열에게 그걸 딱 들켰음.
"뭐 해..?"
"뭐가."
호열은 담배를 가로챘음. 아주 재빠르게. 그리곤 셔츠와 넥타이에 주름이 잔뜩 가는 것도 모른 채로 대만의 멱살을 잡았음.
"미쳤어? 담배를 물어?"
담배연기 근처에도 못 가게 하려고 했는데 언제 배웠는지 누가 알려줬는지 그 사람을 족치고 싶었음. 대만은 호열의 격앙된 말투에도 꼼짝하지 않았음. 되려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고 호열은 아예 대만의 손에서 담뱃갑을 빼앗았음. 그리고 손 안에서 전부 우그러뜨렸음.
"정대만."
대만은 입을 꾹 다물었음. 말 하기 싫을 땐 절대 말 안 하는 사람인 걸 알아서... 호열은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음. 대신 대만의 손을 잡아 끌어 흡연실을 벗어났음. 흡연실 밖에 있는 벤치에 대만을 앉혀두고 호열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음.
"담배 더 없어요?"
"응."
"하..."
호열은 이마를 짚었음. 이렇게 어려운 날이 또 있을까. 대만을 살피던 호열은 담배 진짜 태웠냐 물었고 대만은 그냥 불만 붙으면 그 뒤엔 쳐다만 봤다는 얘기를 했음. 대만은 고갤 푹 숙이곤 호열을 불렀음.
"야."
"왜요."
"너는 향수도 잘 안 썼잖아."
"그건... 대만 군이 안 좋아했으니까..."
호열은 그렇게 말하며 대만의 앞으로 가 섰음. 아직 한여름은 아니었지만 낮엔 햇빛이 무척이나 따가워서 대만이 싫어할 게 분명했음. 대만은 자기에게 그늘이 생기자 고갤 들었음. 눈 앞에 있는 상대방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음. 그 사람 발에 신겨진 신발이 아주 낯익었음.
"너... 내가 사준 신발 신었네."
"아... 응. 오늘 옷에 더 잘 어울려서."
대만은 그 말에 피식 웃었음. 내가 신발 사줘서 떠났나... 분명 나도 그만 하자고 했지만... 양호열은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헤어지던 날, 대만은 현관문에 쪼그려 앉아 호열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음. 부상 이후, 조금만 무리하면 흉터부분이 발갛게 올라오는 무릎이 빨개지도록... 한참동안.
빨리 와서 무릎 얘기 해... 잔소리 해줘... 대만은 무릎 위에 올려둔 손등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만 봤음. 이제 더이상 잔소리 하는 사람도, 울어도 닦아 줄 사람은 없었음.
"담배는 누구한테 배웠어?"
"배우긴 뭘 배워.. 그냥 냅다 물고 빨았어..."
"기침 안 했어요?"
"했지. 존나 독하더라. 넌 그 매캐한 걸 잘도..."
"나야 생각없는 좆중딩 때부터 태웠으니까."
"..."
"그치만... 대만 군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아마 안 했을 거예요."
"...야."
호열은 그렇게 말하며 대만의 앞에 무릎을 꿇고 대만을 올려다 봤음. 수트의 무릎 부분이 더러워지건 말건. 한참을 대만과 눈을 맞춘 호열은 이제 가겠다며 일어나 느릿느릿 걸어갔음.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담배갑을 구겨버렸음.
-
"너희... 내가 결혼하면 어떨 거 같아?"
"너 만나는 사람 있냐?"
"아니. 근데 걍 그러면 어떨 거 같냐고."
"뭐 네가 좋다면 해야지."
"그 사람에 비해... 내가 너무 초라해보이면... 어떡하지?"
"엉? 취했네. 이 새끼. 안 하던 말을 다 한다. 야. 백호야 좀 이따 얘 네가 업고 가."
"당연하지. 이 천재가 업어주마."
호열은 술잔을 빙빙 돌렸음. 찰랑이는 맥주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음. 나도 내가 취해서 헛소리나 하는 거면 좋을 텐데.
"근데 그 사람도 너를 선택했다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어?"
"결혼이 뭐 너 혼자 좋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양호열이 뭐 혼자 결혼까지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초라해보여? 너한테 그랬어? 그딴 놈을 왜 만나냐. 헤어져라."
"그래. 야 초라? 당장 헤어져."
호열은 고개를 푹 숙였음. 대만 군은 바보같이 착해서 그런 생각 안 해... 라는 말이 혀 끝에서 맴돌았음. 그렇게 아무 말없이... 몇 시간동안 술을 마신 후 집에 돌아온 호열은 제일 먼저 친구들을 방에 밀어넣었음. 작은 침대에 백호를 눕히고 용팔이에겐 토퍼를 꺼내줬지. 대남은 소파에서 자겠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음. 모두들 잠든 후 호열은 그제서야 씻으러 들어갔음.
씻고 멍한 정신으로 나온 호열은 핸드폰을 챙겨 바깥으로 나왔음. 바람을 좀 쐬고 나니 멍했던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음. 호열은 밝게 빛나는 달을 쳐다본 후 핸드폰을 확인했음. 새벽 두 시. 번호가 똑같길 빌며 호열은 통화 버튼을 눌렀음.
"정대만?"
"... 호열아."
"번호 안 바꿨네."
"응."
"있지, 대만 군...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지금 괜찮아? 낮까지는 못 기다리겠어서."
"어. 해도 돼."
"집엔 잘 갔어요?"
"잘 갔지. 넌?"
"나도 잘 갔어요."
"너 술 마셨어?"
"어떻게 알았어?"
"너 술 마시면 꼭 그렇게 웃으니까."
"대만 군은 귀신이구나."
호열은 그렇게 말하며 벽돌 사이에 핀 들꽃을 만지작거렸음. 이렇게 부드러운데 딱딱한 시멘트 사이를 뚫고 자라다니 대단하네 따위에 생각을 했음. 그렇게 한참을 대만의 숨소리만 듣던 호열은 아까 낮에 했던 얘기를 상기했음. 다시 만난다는 확신이 그다지 있지 않았음. 자신을 쳐다보는 대만의 눈빛을 봐도... 호열은 눈을 꾹 감았다 떴음. 이런 상태로는 다시 만나봤자... 또 그렇게 싸우지 않을까 싶었음. 호열은 슬슬 피하기만 했던 과거의 자신이 미웠음. 그래서 호열은 정리하지 못한 마음을 내뱉기로 결심했음.
"대만 군, 지금부터 하는 말은... 술 취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그렇다고... 뭐 엄청 귀 담아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는 소리."
"...응."
"있지, 의외로 나는 겁이 많아. 지레짐작하는 것도 있고. 생각만큼 깡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는 무척이나 평범해서... 드라마로 따지자면 당신은 주연이고 나는 엑스트라 정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당신은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는 슈퍼스탄데 난 그냥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서점 주인이니까. 당신처럼 잘 생기지도 않고, 특출나게 잘 하는 것도 없고... 또 그걸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가도 아니고...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전국에 몇 없겠지만 당신을 아는 사람은 엄청 많잖아. 당장 티비를 틀어도, 라디오를 들어도, 하물며 편의점에 가도 정대만이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듣게 되니까. 대만 군, 난 서점에서 혼자 잡지를 정리할 때도 내 사랑을 마주하게 돼. 그게... 엄청 신기하면서도... 엄청 컸나봐요."
"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길 보내달라 하면 보내주고 싶었어요. 사랑하니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은 나와 사랑하는 것 보다... 신경쓸 게 더 많잖아요. 근데 난 너무 어린가 봐요... 헤어지기 싫어. 못 보내주겠어요. 이미 2년이나 지났는데 이런 말 하면 너무 웃기겠지만..."
한참동안 조용하던 핸드폰 너머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음. 그건 우는 거 같기도, 웃는 거 같기도 한 소리였음.
"...싶어."
"어?"
"보고 싶어... 지금 당장."
대만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음.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 싶다 하는 정대만을 과연 누가 거역하겠음. 호열은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켰음.
"갈게. 지금."
-
호열이 대만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대만은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음. 무릎 흉터가 빨개지도록. 그걸 본 호열은 바로 대만의 무릎에 손을 올렸음.
"왜 이러고 있어. 무릎 다 상하게..."
대만은 호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했음. 2년을 기다린 말이었기에... 호열은 슬쩍 대만의 무릎 밑으로 손을 집어 넣어 다리를 쭉 필 수 있게 했음. 그런 다음 대만의 무릎에 손가락을 갖다댔음. 울긋불긋한 흉터를 손으로 쓸며 호열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음. 대만은 그런 호열의 손을 붙잡아 자기 볼을 감싸게 했음.
"기다렸어. 그날도... 네가 다시 와서 이렇게 해줄 거라 생각했어."
대만은 조심히 입을 열었음. 현관에 달린 센서등이 서서히 꺼졌음.
"응... 미안해. 좀 더 빨리 올 걸... 너무 늦게 왔어. 내가."
대만은 자기 볼을 감싼 호열의 손등을 감쌌음. 거칠거칠한 손등이 만져졌음.
"있잖아, 호열아."
"응."
"사실 그만 하자고 하기 싫었어... 홧김에.. 내뱉었어. 넌 나한테 항상 져주니까 이번에도 져줄 거라 생각했어."
대만은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음. 호열이 하지말라는 듯 엄지로 입술을 살짝 누르자 대만은 다시 말을 이어갔음.
"내가... 전에 만난 사람들은... 전부 내 유명세를 좋아했어. 이용해먹으려던 놈도 있었고. 아팠어. 너라면 안 그랬을 텐데 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래서 네가 더 좋았어. 넌 날 정대만 그 자체로 봐주니까. 난 오롯이 네 앞에서만 내가 돼.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 하지마. 난 너 없으면 안돼. 너는 그냥 평범한 양호열이 아니야. 네가 그랬지. 드라마로 따지자면 내가 주연 넌 엑스트라라고. 내 드라마에선 네가 주연이야."
대만은 그렇게 얘기하며 호열의 어깨를 끌어안아 뒤로 누웠음. 차가운 바닥이 등에 닿자 대만은 움찔거렸고 자연스레 호열의 귓가가 자신의 입 근처로 오자 전하지 못 했던 말을 속삭였음. 센서등이 다시 켜지며 따뜻한 빛이 내려앉았음.
"미안해."
호열은 대만의 볼에 입을 맞추며 저도 미안해요.. 하고 대답했음. 대만은 호열의 척추뼈를 더듬다 크게 숨을 쉬었음. 포근한 호열의 향이 느껴져 이제서야 진짜... 호열이 내 옆에 있구나 싶었겠지.
둘은 한참을 맨바닥 위에서 엎어져 그 누구도 들을 수 없게 조용히 얘기했음. 못 했던 말들과 사랑한다는 말이 뒤섞였음. 슬슬 몸을 일으키던 호열이 아! 소리를 내자 대만은 왜? 하고 벌떡 일어났음. 호열의 발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음. 슬리퍼를 신고 발이 닿는 대로 그냥 뛰어오느라 발바닥이 엉망진창이었음.
"너 미쳤냐? 아픈 것도 못 느껴?"
하하, 이제야 정대만 같다. 내 걱정하면서 욕 하니까."
"미친 새끼... 웃음이 나오냐? 가서 발 씻고 와. 약 발라 줄게."
"싫은데."
"뭐가 싫어. 빨리 욕실로 안 들어가?"
"떨어져 있기 싫어."
호열의 말에 대만은 새벽인 것도 잊고 큰 소리로 웃었고 호열도 대만의 웃음에 같이 웃었음. 결국 호열이 발을 씻는 동안 대만은 욕실 문지방에 걸터앉아 호열을 쳐다봤음. 호열은 뭘 그리 생각하는지 발에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하고 헹구는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 물소리가 뚝 끊기자 호열은 대만을 쳐다봤음.
"우리.. 처음 사귈 때 기억나요?"
"응? 기억나지."
"그때도... 서로 돌고돌아 만났는데 이번에도 그랬네."
호열은 수건으로 발을 닦으며 말을 마쳤음. 핏물이 수건에 스며들어 얼룩덜룩해졌음. 대만은 그런 호열을 보며 피식 웃었음. 저 조그만 머리로 뭘 그리 생각하나 했더니. 대만은 호열을 침실로 밀어넣고 연고를 꺼내왔음. 침대에 호열을 앉혀놓고 침대 밑에 앉은 대만은 호열의 발을 조심히 감싸쥐고 연고를 살살 발랐음.
"그래서 담배는 왜 했는데? 이제 대답하지?"
대만은 우물쭈물거리다 입을 열었음. 너무 추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솔직해지자고 생각했음. 그날처럼 되고 싶지 않았음.
"그게... 네 향만이라도 기억하고 싶어서...나 네 담배향만 기억나더라. 기억나는 게 이것 뿐이라서... 우리 3년이나 만났는데도... 네 향이 기억이 안 나가지고..."
대만은 그렇게 말하며 호열을 살폈음. 이 상황이 죄스러웠지. 그건 호열도 마찬가지였음. 나 때문에 저 사람 폐에 조금이라도 담배연기가 들어간 게 미치게 싫었음.
"그래서 후회했어... 네 체취랑 비슷한 게 하나도 없더라. 이럴 줄 알았음 향수 좀 자주 뿌리라 할 걸."
"그렇다고 담배를... 하..."
대만은 그렇게 말하며 연고 뚜껑을 닫았음. 호열은 그런 대만에게 다시는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음. 새끼 손가락까지 걸고.
연고를 다 바른 후, 대만은 자고 갈 거지? 하고 물어봤음. 호열은 꾸물꾸물 이불 안으로 들어가놓고도 괜스레 웃으며 튕겼음.
"글쎄에... 일어났을 때 나 없으면 애들 놀랄 텐데..."
"걔네가 애도 아니고 뭘 놀라."
"그래도... 아침에 일어났는데 집 주인이 내가 없어 봐. 내 친구들 놀라지 않을까?"
대만은 호열의 말에 불을 끈 후 작은 수면등만 킨 채 침대로 들어갔음. 호열이 있기에 따끈해진 이불에 대만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음. 이불을 코 끝까지 끌어올린 대만은 조용히 말했음.
"너 가면..."
"나 가면?"
"네 대만이는 외롭단 말야..."
호열은 피식 웃으며 대만의 손에 깍지를 꼈음. 손가락으로 손등을 쓸던 호열의 대만의 볼에 짧게 키스했음.
"안 갈게. 가라고 해도 안 갈게. 계속 옆에 있을게. 질리도록."
"큰일이네. 그럼 너 평생 내 옆에 있어야 해. 난 너 안 질릴 자신 있거든."
대만은 빙글 웃었음. 곧 이어 침실은 낮은 음으로 웃는 소리와 이불이 사부작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지. 대만은 호열의 숨소리에 자신의 숨을 맞춰나갔음.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웠음.
-
끝,,,! 완전 얼레벌레 엉망진창 글이다... 읽어줘서 고마워!!
이건... 별 거 아니고 걍 이거 생각할 때 듣던 노래라 첨부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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