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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22:21
호열대만임
미츠이는 그날따라 일진이 사나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 헤드에 머리 쾅 부딪혀서 데굴데굴 구르고, 비 오는 걸 모르고 그냥 나왔다가 흠뻑 젖었고, 다시 집에 들어가서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그 우산은 구멍이 나서 결국 찔끔찔끔 젖으며 등교를 했으니, 말 다 했다.
운 없는 날은 이걸로 미츠이를 놔주지 않았다. 점심시간 가방 안에 들어있어야 하는 도시락은 코빼기도 안 보여 결국 매점에서 사온 빵으로 대충 떼웠고 평소 같았음 쉬웠을 슛도 전혀 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미츠이는 미야기에게 나 머리 좀 식힐게 하곤 농구화를 벗었다. 삑삑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대충 바깥용 신발에 발을 구겨넣은 후 문을 열자 빗물에 삐끗. 다리에 아주 나이스한 자국이 생겼다. 온갖 흙과 조그만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은 것이다.
미츠이는 어깨에 걸쳐둔 수건으로 다리 벅벅 닦았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지 눈 앞이 흐려졌다. 집은 어떻게 가지. 미츠이는 속이 뒤집히는 기분에 수건을 꽉 쥐었다. 조급해 죽겠는데... 난 농구도 2년이나 쉬어서 얼른 해야 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미츠이는 손으로 눈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누군가 미츠이에 손에서 수건을 낚아챘다.
"미토..."
"마른 수건으로 하면 잘 안 닦여요. 기다려."
미토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가방을 미츠이 옆에 살짝 내려놨다.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수건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은 꽤 귀여워서 미츠이는 멍하니 미토의 뒷모습을 좇았다. 차박차박한 발소리가 나자 미츠이는 고갤 흔들었다. 적신 수건을 가져온 미토가 그대로 있으라며 자신을 세워두곤 우산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미츠이 다리에 묻은 흙탕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닦아주는 손길에 미츠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뒷목에 기분 좋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추운데 왜 나와있어요? 몸 따뜻하게 해야지."
미토가 꼼꼼하게 제 다리를 닦는 걸 보며 미츠이는 입 안 여린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냥..."
미츠이는 그제서야 미토의 등이 보였고 정수리가 보였다. 빗방울이 미토의 교복셔츠를 적셨다. 체육관 문 위에 달린 차양막은 작았지만 미츠이에겐 충분했고 미토에겐 부족했다. 미토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흙탕물을 닦아냈다.
"너 비 맞고 있어."
"알아요. 다 닦았다. 얼른 들어가요. 수건은 빨아다 줄게요."
미토는 지저분해진 수건을 정갈하게 접었다. 그리곤 가방을 집어들고 안에 수건을 넣은 미토는 얼른 들어가라며 미츠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몸을 돌린 미토는 뭔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소릴 냈다. 미츠이는 그 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자, 하나 먹어요."
미토가 건네준 건 사탕이었다. 식당에서 입가심용으로 흔하게 두는, 개별포장된 사탕. 색소가 잔뜩이라 먹고 나면 혀가 알록달록 해지는. 미츠이는 사탕봉지를 내려다봤다. 정직하게 딸기맛이라 적힌 작은 알사탕에 미츠이는 입가가 씰룩거렸다.
"...나 딸기맛 사탕 안 좋아하는데."
"...공주 밋치. 기다려봐요."
든 거라곤 철판과 사탕 그리고 책 한 권.
언젠가 미츠이는 미토에게 가방에 뭘 넣고 다니냐 물었다. 미토는 그런 미츠이를 슬쩍 보다 가방을 아예 넘겨줬다. 헤질대로 헤진 가방에선 시원한 민트향이 났다. 알아서 봐요. 블랙 캔커피를 마시는 미토는 미츠이에게 턱짓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미츠이는 그럼, 잠깐 실례. 하곤 미토의 가방을 들여다 봤다. 당연스레 있는 철판. 그리고 책 한 권. 미츠이는 책표지를 손으로 쓸어보다 다시 쏙 집어넣었다. 미츠이가 킥킥 웃으며 너 책도 읽네? 라 하자 미토는 누구처럼 농구만 아는 바보는 안 하려고요 하곤 캔을 구겼다. 아 실패. 멀리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던져진 캔은 땅바닥으로 추락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미토는 터벅터벅 걸어가 캔을 주워 버렸다.
"사탕은 왜 이렇게 많이 들고 다녀?"
"알바하는데서 한 주먹씩 가져오는 거라... 애들 주고 그러면 금방 먹어요."
미츠이는 미토의 말에 피식 웃었다. 단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미츠이는 미토가 사탕을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점심시간에 군단 애들에게 주고 연습하는 사쿠라기에게 두어개 쥐어준다. 그리고 가끔 밋치~하며 미츠이에게도 두어개 주는 게 끝이었다. 그때마다 주는 맛은 달랐다. 어떤 날은 레몬, 어떤 날은 민트. 어떤 날은 체리가 되기도 했다. 미츠이는 봉지를 쭉 찢어 사탕을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곤 커피향이 나는 미토를 보며 민트커피맛 키스는 별로겠지. 이런 응큼한 생각을 했다. 연인 사이도 아니면서 말이다.
미토는 가방 속으로 손을 넣어 솎아내기 시작했다. 몇 개나 될까. 철판에 달그락 부딪히는 소리와 봉지의 바스락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렸다.
"음... 콜라는 별로일 거 같고... 여기 사과맛. 다 줄게."
"...고마워."
미츠이는 사과맛 사탕을 두 손으로 받았다. 미토는 두 손으로 받은 미츠이에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가방과 우산을 주워 들었다. 미츠이는 사탕 껍질을 뜯어 두 개나 쏘옥 입에 넣었다. 상큼한 인공사과맛에 미츠이는 눈을 찡긋거렸다.
"뭘요. 얼른 들어가요. 당신 다리 엄청 차갑거든."
미츠이는 망설임 없이 발을 움직이는 미토의 뒷모습을 보다 미토!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몰랐다. 뭐냐는 듯 자길 빤히 보는 미토에게 미츠이는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내뱉었다.
"미토!! 사탕 고마워!"
"하하, 그 말 하려고 불렀어요? 밋치는 하여튼 이상해!"
미토는 터져나온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큰 소리로 하하 웃었다. 빗소리에 묻힐까 덩달아 목소리를 키운 미토는 미츠이에게 얼른 들어가라며 손을 저었다. 반소매 셔츠 밑으로 드러난 팔뚝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쏴아아아-.
미츠이는 빗 속으로 옅게 보이는 미토가 정말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일도 저 놈은 머릴 깔끔하게 넘기고 살살 웃으며 밋치~ 하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사라질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빛나는 미토의 눈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을 떠올리게 했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이방인이 한 마을에 정착하여 이것저것 나쁜 짓을 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 미모에 홀려 이방인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서로를 의심하다 마지막엔 그 이방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내용이었다. 그렇게 예쁜 얼굴이었는데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미츠이는 손 안에서 남은 세 개의 사탕을 굴렸다. 잘그락 소리가 나는 사탕을 만져대다 미토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미츠이는 다리를 움직였다.
지금이 아니면 저 깔끔하게 넘긴 리젠트를 못 볼지도 몰라.
뜬금없지만 강한 확신이 들었다. 미토는 정말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니까. 갑자기 사라져도 미토 요헤이답네~ 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
미츠이는 퍼붓는 빗줄기 사이로 미토에게 뛰어갔다. 찰박찰박 소리가 나는 흙들을 밟아가며, 다리에 흙탕물이 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몸에 닿는 빗물에 미츠이의 몸이 더욱 차가워졌다.
밋치? 하고 올려다 보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미츠이는 다시 한 번 동화책 내용을 떠올렸다. 나도 나중에 널 기억 못 하면 어떡하지. 미츠이는 눈을 깜빡이는 미토의 눈가를 쓰다듬었다. 그 다음엔 손을 내려 차가운 볼을 감쌌다. 비가 와서 그런가 미토의 볼은 차가웠다. 갑자기 잡힌 얼굴에 미토는 흠칫 놀라며 팔을 더 높게 들었다. 1인용 우산 안을 비집고 들어온 미츠이 때문에 미토의 몸이 잔뜩 굳었다. 키가 좀 커야지. 그리고 덩치도. 미토는 자기보다 훨씬 큰 미츠이의 몸 쪽으로 슬쩍 우산을 기울였다. 스포츠맨은 몸이 재산인데 어쩌자고 저 비를 뚫고 여기까지 뛰어왔는지...
그 짧은 새에 미츠이의 머리는 흠뻑 젖었다. 앞머리에 방울방울 맺힌 빗물이 미츠이의 높다란 콧대를 타고 흘러내렸다. 미츠이는 눈가로 흐르는 빗물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미츠이 군? 나 볼이 너무 뜨거운데."
미토가 작게 웃으며 얘기하자 미츠이는 볼이 터질 각오를 했다.
그러니까, 미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박았다. 눈을 질끈 감은 미츠이는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렸다.
자기가 갖다 박았음에도 미츠이는 양아치 시절, 여자애들과 나눴던 키스를 떠올렸다. 부드럽고 이상한 맛이 나던 입술. 미츠이는 두어번 더 키스를 한 후 그게 립글로스 맛이라는 걸 알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입술이 어색했다. 미끌거리지 않은 입술도. 미츠이는 '미토 입술은 부드럽네.' 란 생각을 하다 급하게 입술을 뗐다. 이미 처맞았는데 모르고 있나... 싶어 볼까지 쓸어봤지만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미츠이 군."
잔뜩 낮아진 미토의 목소리에 미츠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좆됐다. 이제 볼은 커녕 걸레짝이 되게 맞을지도.
"어?!"
"나 이게 첫 키슨데..."
미토는 들고있던 우산을 미츠이에게 건넸다.
"잠깐 들어봐요."
진짜 좆됐다. 미츠이는 미토의 우산을 받아들었다. 우산 손잡이가 따뜻해 미츠이의 손이 형편없이 떨렸다. 버튼을 잘못 눌러 우산이 접히면 어떡하지? 그런 허무한 생각을 했다.
쪽.
"어?!?!"
미토는 미츠이의 볼을 잡고 까치발을 들었다. 양키의 존심따위는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학교에서. 이거 군단 놈들이 알면 무지하게 놀리겠는 걸. 미토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한 번 더 내밀었다.
쪽.
"하하, 바보 같은 표정이네."
쪽.
"자기가 먼저 해놓고 왜 그런 표정이야?"
쪽.
"설마... 두 살이나 어린 애 입술 뺏어가놓고 나몰라라 하진 않겠죠?"
츄, 쪼옥.
"사과맛은 꽤 괜찮네."
츄으, 쪼옵, 촉, 쪽.
"잘 먹을게요. 준 건 나지만 먹여준 건 밋치니까."
"야 말은 바로 해! 내가 언제 먹여줬어? 네가 뺏어갔지."
"그러게 누가 두 개나 먹으랬나? 밋치 건강 생각해서 일부러 하나 먹어줬더니 화만 내고 밋치는 바보네. 먹고 싶음 밋치도 뺏어가요."
"됐어. 짜증나."
"미츠이 군, 나 지금 키스 더 해달라고 꼬시는 건데..."
미토는 그렇게 말하며 빨간색으로 물든 혀를 빼꼼 내밀었다. 미츠이는 아마 이게 만화 속이었다면 펑 하는 효과음과 함께 자기 얼굴이 빨개져있고 눈은 하트로 바껴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미츠이는 고개를 숙여 미토의 입술에 살포시 자신의 입술을 갖다댔다. 우산을 떨어뜨릴까 한쪽 손엔 힘을 꽉 줬다. 토도도도톡, 우산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글로켄슈필 같았다. 미토의 입술에선 그새 사과맛이 났다. 음 첫키스는 레몬맛이라 들었는데, 실제로 사과사탕을 먹고 있으니 사과맛이 나는 건 당연한가...
미츠이는 서툴게 미토의 입술을 핥았다. 미츠이는 뭐든 배움이 빨라서, 미토가 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미토는 그런 미츠이의 행동에 살풋 웃으며 바로 입을 벌려줬고 어느새 새끼손톱 보다도 작아진 사탕 두 개가 미토와 미츠이의 혀 끝에서 질척하게 녹아갔다. 사탕이 사라지자 미츠이는 미토의 혀끝에 남은 사탕맛을 핥았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미츠이 군이네. 미토는 미츠이의 입술에 짧게 키스하곤 얼굴을 뗐다. 얼굴 엉망이겠지. 미토는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지금껏 미츠이에게 잘 보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공들여 머릴 넘기고 면도도 눈썹정리도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한참을 빨아댔으니 입가엔 침도 묻었을 것이고 얼굴도 잔뜩 붉어져 있겠지. 완전 최악. 미토는 손을 뻗어 미츠이의 눈을 가렸다.
미츠이는 훅 다가온 미토의 손바닥을 빤히 봤다. 너무 가까워 형태만 어렴풋이 보이는 하얀 손바닥. 미츠이는 눈을 감았다. 까만 시야에 둥둥 떠다니는 미토의 얼굴. 흐트러진 숨을 내뱉으며 올려다보던 청순한 얼굴.
큰일이네. 평생 못 잊겠는데...
미츠이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미츠이는 그날따라 일진이 사나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 헤드에 머리 쾅 부딪혀서 데굴데굴 구르고, 비 오는 걸 모르고 그냥 나왔다가 흠뻑 젖었고, 다시 집에 들어가서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그 우산은 구멍이 나서 결국 찔끔찔끔 젖으며 등교를 했으니, 말 다 했다.
운 없는 날은 이걸로 미츠이를 놔주지 않았다. 점심시간 가방 안에 들어있어야 하는 도시락은 코빼기도 안 보여 결국 매점에서 사온 빵으로 대충 떼웠고 평소 같았음 쉬웠을 슛도 전혀 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미츠이는 미야기에게 나 머리 좀 식힐게 하곤 농구화를 벗었다. 삑삑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대충 바깥용 신발에 발을 구겨넣은 후 문을 열자 빗물에 삐끗. 다리에 아주 나이스한 자국이 생겼다. 온갖 흙과 조그만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은 것이다.
미츠이는 어깨에 걸쳐둔 수건으로 다리 벅벅 닦았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지 눈 앞이 흐려졌다. 집은 어떻게 가지. 미츠이는 속이 뒤집히는 기분에 수건을 꽉 쥐었다. 조급해 죽겠는데... 난 농구도 2년이나 쉬어서 얼른 해야 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미츠이는 손으로 눈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누군가 미츠이에 손에서 수건을 낚아챘다.
"미토..."
"마른 수건으로 하면 잘 안 닦여요. 기다려."
미토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가방을 미츠이 옆에 살짝 내려놨다.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수건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은 꽤 귀여워서 미츠이는 멍하니 미토의 뒷모습을 좇았다. 차박차박한 발소리가 나자 미츠이는 고갤 흔들었다. 적신 수건을 가져온 미토가 그대로 있으라며 자신을 세워두곤 우산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미츠이 다리에 묻은 흙탕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닦아주는 손길에 미츠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뒷목에 기분 좋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추운데 왜 나와있어요? 몸 따뜻하게 해야지."
미토가 꼼꼼하게 제 다리를 닦는 걸 보며 미츠이는 입 안 여린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냥..."
미츠이는 그제서야 미토의 등이 보였고 정수리가 보였다. 빗방울이 미토의 교복셔츠를 적셨다. 체육관 문 위에 달린 차양막은 작았지만 미츠이에겐 충분했고 미토에겐 부족했다. 미토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흙탕물을 닦아냈다.
"너 비 맞고 있어."
"알아요. 다 닦았다. 얼른 들어가요. 수건은 빨아다 줄게요."
미토는 지저분해진 수건을 정갈하게 접었다. 그리곤 가방을 집어들고 안에 수건을 넣은 미토는 얼른 들어가라며 미츠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몸을 돌린 미토는 뭔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소릴 냈다. 미츠이는 그 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자, 하나 먹어요."
미토가 건네준 건 사탕이었다. 식당에서 입가심용으로 흔하게 두는, 개별포장된 사탕. 색소가 잔뜩이라 먹고 나면 혀가 알록달록 해지는. 미츠이는 사탕봉지를 내려다봤다. 정직하게 딸기맛이라 적힌 작은 알사탕에 미츠이는 입가가 씰룩거렸다.
"...나 딸기맛 사탕 안 좋아하는데."
"...공주 밋치. 기다려봐요."
든 거라곤 철판과 사탕 그리고 책 한 권.
언젠가 미츠이는 미토에게 가방에 뭘 넣고 다니냐 물었다. 미토는 그런 미츠이를 슬쩍 보다 가방을 아예 넘겨줬다. 헤질대로 헤진 가방에선 시원한 민트향이 났다. 알아서 봐요. 블랙 캔커피를 마시는 미토는 미츠이에게 턱짓으로 가방을 가리켰다.
미츠이는 그럼, 잠깐 실례. 하곤 미토의 가방을 들여다 봤다. 당연스레 있는 철판. 그리고 책 한 권. 미츠이는 책표지를 손으로 쓸어보다 다시 쏙 집어넣었다. 미츠이가 킥킥 웃으며 너 책도 읽네? 라 하자 미토는 누구처럼 농구만 아는 바보는 안 하려고요 하곤 캔을 구겼다. 아 실패. 멀리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던져진 캔은 땅바닥으로 추락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미토는 터벅터벅 걸어가 캔을 주워 버렸다.
"사탕은 왜 이렇게 많이 들고 다녀?"
"알바하는데서 한 주먹씩 가져오는 거라... 애들 주고 그러면 금방 먹어요."
미츠이는 미토의 말에 피식 웃었다. 단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미츠이는 미토가 사탕을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점심시간에 군단 애들에게 주고 연습하는 사쿠라기에게 두어개 쥐어준다. 그리고 가끔 밋치~하며 미츠이에게도 두어개 주는 게 끝이었다. 그때마다 주는 맛은 달랐다. 어떤 날은 레몬, 어떤 날은 민트. 어떤 날은 체리가 되기도 했다. 미츠이는 봉지를 쭉 찢어 사탕을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곤 커피향이 나는 미토를 보며 민트커피맛 키스는 별로겠지. 이런 응큼한 생각을 했다. 연인 사이도 아니면서 말이다.
미토는 가방 속으로 손을 넣어 솎아내기 시작했다. 몇 개나 될까. 철판에 달그락 부딪히는 소리와 봉지의 바스락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렸다.
"음... 콜라는 별로일 거 같고... 여기 사과맛. 다 줄게."
"...고마워."
미츠이는 사과맛 사탕을 두 손으로 받았다. 미토는 두 손으로 받은 미츠이에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가방과 우산을 주워 들었다. 미츠이는 사탕 껍질을 뜯어 두 개나 쏘옥 입에 넣었다. 상큼한 인공사과맛에 미츠이는 눈을 찡긋거렸다.
"뭘요. 얼른 들어가요. 당신 다리 엄청 차갑거든."
미츠이는 망설임 없이 발을 움직이는 미토의 뒷모습을 보다 미토!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몰랐다. 뭐냐는 듯 자길 빤히 보는 미토에게 미츠이는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내뱉었다.
"미토!! 사탕 고마워!"
"하하, 그 말 하려고 불렀어요? 밋치는 하여튼 이상해!"
미토는 터져나온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큰 소리로 하하 웃었다. 빗소리에 묻힐까 덩달아 목소리를 키운 미토는 미츠이에게 얼른 들어가라며 손을 저었다. 반소매 셔츠 밑으로 드러난 팔뚝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쏴아아아-.
미츠이는 빗 속으로 옅게 보이는 미토가 정말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일도 저 놈은 머릴 깔끔하게 넘기고 살살 웃으며 밋치~ 하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사라질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빛나는 미토의 눈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을 떠올리게 했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이방인이 한 마을에 정착하여 이것저것 나쁜 짓을 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 미모에 홀려 이방인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서로를 의심하다 마지막엔 그 이방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내용이었다. 그렇게 예쁜 얼굴이었는데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미츠이는 손 안에서 남은 세 개의 사탕을 굴렸다. 잘그락 소리가 나는 사탕을 만져대다 미토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미츠이는 다리를 움직였다.
지금이 아니면 저 깔끔하게 넘긴 리젠트를 못 볼지도 몰라.
뜬금없지만 강한 확신이 들었다. 미토는 정말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니까. 갑자기 사라져도 미토 요헤이답네~ 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
미츠이는 퍼붓는 빗줄기 사이로 미토에게 뛰어갔다. 찰박찰박 소리가 나는 흙들을 밟아가며, 다리에 흙탕물이 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몸에 닿는 빗물에 미츠이의 몸이 더욱 차가워졌다.
밋치? 하고 올려다 보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미츠이는 다시 한 번 동화책 내용을 떠올렸다. 나도 나중에 널 기억 못 하면 어떡하지. 미츠이는 눈을 깜빡이는 미토의 눈가를 쓰다듬었다. 그 다음엔 손을 내려 차가운 볼을 감쌌다. 비가 와서 그런가 미토의 볼은 차가웠다. 갑자기 잡힌 얼굴에 미토는 흠칫 놀라며 팔을 더 높게 들었다. 1인용 우산 안을 비집고 들어온 미츠이 때문에 미토의 몸이 잔뜩 굳었다. 키가 좀 커야지. 그리고 덩치도. 미토는 자기보다 훨씬 큰 미츠이의 몸 쪽으로 슬쩍 우산을 기울였다. 스포츠맨은 몸이 재산인데 어쩌자고 저 비를 뚫고 여기까지 뛰어왔는지...
그 짧은 새에 미츠이의 머리는 흠뻑 젖었다. 앞머리에 방울방울 맺힌 빗물이 미츠이의 높다란 콧대를 타고 흘러내렸다. 미츠이는 눈가로 흐르는 빗물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미츠이 군? 나 볼이 너무 뜨거운데."
미토가 작게 웃으며 얘기하자 미츠이는 볼이 터질 각오를 했다.
그러니까, 미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박았다. 눈을 질끈 감은 미츠이는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렸다.
자기가 갖다 박았음에도 미츠이는 양아치 시절, 여자애들과 나눴던 키스를 떠올렸다. 부드럽고 이상한 맛이 나던 입술. 미츠이는 두어번 더 키스를 한 후 그게 립글로스 맛이라는 걸 알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입술이 어색했다. 미끌거리지 않은 입술도. 미츠이는 '미토 입술은 부드럽네.' 란 생각을 하다 급하게 입술을 뗐다. 이미 처맞았는데 모르고 있나... 싶어 볼까지 쓸어봤지만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미츠이 군."
잔뜩 낮아진 미토의 목소리에 미츠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좆됐다. 이제 볼은 커녕 걸레짝이 되게 맞을지도.
"어?!"
"나 이게 첫 키슨데..."
미토는 들고있던 우산을 미츠이에게 건넸다.
"잠깐 들어봐요."
진짜 좆됐다. 미츠이는 미토의 우산을 받아들었다. 우산 손잡이가 따뜻해 미츠이의 손이 형편없이 떨렸다. 버튼을 잘못 눌러 우산이 접히면 어떡하지? 그런 허무한 생각을 했다.
쪽.
"어?!?!"
미토는 미츠이의 볼을 잡고 까치발을 들었다. 양키의 존심따위는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학교에서. 이거 군단 놈들이 알면 무지하게 놀리겠는 걸. 미토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한 번 더 내밀었다.
쪽.
"하하, 바보 같은 표정이네."
쪽.
"자기가 먼저 해놓고 왜 그런 표정이야?"
쪽.
"설마... 두 살이나 어린 애 입술 뺏어가놓고 나몰라라 하진 않겠죠?"
츄, 쪼옥.
"사과맛은 꽤 괜찮네."
츄으, 쪼옵, 촉, 쪽.
"잘 먹을게요. 준 건 나지만 먹여준 건 밋치니까."
"야 말은 바로 해! 내가 언제 먹여줬어? 네가 뺏어갔지."
"그러게 누가 두 개나 먹으랬나? 밋치 건강 생각해서 일부러 하나 먹어줬더니 화만 내고 밋치는 바보네. 먹고 싶음 밋치도 뺏어가요."
"됐어. 짜증나."
"미츠이 군, 나 지금 키스 더 해달라고 꼬시는 건데..."
미토는 그렇게 말하며 빨간색으로 물든 혀를 빼꼼 내밀었다. 미츠이는 아마 이게 만화 속이었다면 펑 하는 효과음과 함께 자기 얼굴이 빨개져있고 눈은 하트로 바껴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미츠이는 고개를 숙여 미토의 입술에 살포시 자신의 입술을 갖다댔다. 우산을 떨어뜨릴까 한쪽 손엔 힘을 꽉 줬다. 토도도도톡, 우산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글로켄슈필 같았다. 미토의 입술에선 그새 사과맛이 났다. 음 첫키스는 레몬맛이라 들었는데, 실제로 사과사탕을 먹고 있으니 사과맛이 나는 건 당연한가...
미츠이는 서툴게 미토의 입술을 핥았다. 미츠이는 뭐든 배움이 빨라서, 미토가 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미토는 그런 미츠이의 행동에 살풋 웃으며 바로 입을 벌려줬고 어느새 새끼손톱 보다도 작아진 사탕 두 개가 미토와 미츠이의 혀 끝에서 질척하게 녹아갔다. 사탕이 사라지자 미츠이는 미토의 혀끝에 남은 사탕맛을 핥았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미츠이 군이네. 미토는 미츠이의 입술에 짧게 키스하곤 얼굴을 뗐다. 얼굴 엉망이겠지. 미토는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지금껏 미츠이에게 잘 보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공들여 머릴 넘기고 면도도 눈썹정리도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한참을 빨아댔으니 입가엔 침도 묻었을 것이고 얼굴도 잔뜩 붉어져 있겠지. 완전 최악. 미토는 손을 뻗어 미츠이의 눈을 가렸다.
미츠이는 훅 다가온 미토의 손바닥을 빤히 봤다. 너무 가까워 형태만 어렴풋이 보이는 하얀 손바닥. 미츠이는 눈을 감았다. 까만 시야에 둥둥 떠다니는 미토의 얼굴. 흐트러진 숨을 내뱉으며 올려다보던 청순한 얼굴.
큰일이네. 평생 못 잊겠는데...
미츠이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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