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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22:26
강백호 재활 후 성공적으로 복귀한 2학년.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교정의 나무들에 꽃몽우리가 맺히는 초봄이었어

여느때 같은 부활동 시간
연습경기 중에 부딪쳐 상대 발에 엉켜 넘어진 강백호 위로 서태웅이 엎어지고 이때 서로 입술이 스쳤음

서태웅 즉시 강백호 위에서 일어났음 불유쾌하다는 듯 인상 찡그리면서

 "쳇." 

이러고 입술 손등으로 슥- 닦고 마는데,

강백호는 주저 앉은 상태 그대로 멍하니 굳어있었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태웅과 스친 입술을 손으로 더듬다가 이내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지름

 "끄아악!!!! 미..미친.. 더러워!!!!!!!! 여..여우 독이!!!!!!! 썩는다고!!!!!!!!!!"

그러면서 무슨 신호등마냥 새파랗게 질렸다가 빨개졌다가 그야말로 쌩난리를 치면서 코트 바닥에 누워 데굴데굴 구름 기겁하며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강백호에, 태섭이는 너무 웃겨서 배잡고 거의 울고있고 나머지 팀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차마 말리지도 못함


근데..
저 꼴을 가만히 보고있던 서태웅 은근히 열받는거지 누군 기분 안더러운줄 아나. 일부러도 아니고 둘 다 실수로 충돌해서 벌어진 사고잖아 입도 고작 살짝 스친 정도인데, 솔직히 송충이 바퀴벌레랑 닿았어도 저 정도 반응은 아니었을듯?

나와 닿는게 얼마나 싫었으면 온몸이 새빨개져서 부들댈 정도냔 말이야.

강백호가 너무 극혐하니까 서태웅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끓어오르는 걸 느낌 태섭주장과 달재선배가 무슨 어린애 대하듯 강백호를 위로하며 어르는걸 바라보며 서태웅은 아플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음



.
.
그 후 강백호는 연습경기때 아니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항상 둘이 남아서 하던 저녁 연습마저도 안함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강백호 흥-하고 새침하니 고개를 획 돌리고 서태웅 개무시함 

이래서야 1학년 초때와 다를바가 없잖아.. 강백호 재활 후 그래도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실제로 강백호 재활하는 곳에 서태웅 뻔질나게 찾아 갔었음)

평소에는 복도에서 마주치면 강백호 일부러 서태웅의 어깨 툭 부딪치고 지나가거나 눈으로 위협(?)하는 등 제법 장난스럽게 굴었었고 자신도 싫지 않았는데.. 그날 우연히 입술이 스친 이후로 강백호쪽에서 완전히 자신을 무시함

 '저 멍청이가..'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니까 열받기도 하고.. 이상하게 체한듯 속이 답답하고 가끔 한쪽 가슴이 따끔하기도 함 그 날 그건 정말 사고였는데..


서태웅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본격 엎드려 자려는데 문득 생각함

 '그렇게나 싫었나..?'

자기 전 불끄고 침대에 누워서도 불현듯

 '..나랑 닿는것만으로도 몸서리 쳐질정도로 싫은건가.'

자전거 타고 가는 도중 신호대기로 멈춰섰는데, 가로수에 붙은 송충이같이 생긴 이름모를 벌레가 눈에 들어왔어 물끄러미 보다가

 '끔찍할 정도로 싫은가.. 송충이보다는 내가 더 낫지 않을까.. 설마 바퀴벌레보다야 낫겠지..'

수업시간 잠도 안오고 그냥 엎드려 있는데 창밖에서 하하하 하고 시원하게 웃어대는 그 녀석의 웃음소리가 들려옴 부스스 일어나서 교실 창밖 너머 운동장에 있을 빨간머리 걔를 눈으로 찾으면서 무거운 한숨을 쉬고 또 생각함

 '멍청이는 나를 싫어하는 건가.. 어째서..why...'

그냥..멍하니 있으면 온몸이 붉어져서 치가 떨린다는 듯 부들부들 떨어대던 그 날의 강백호만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름

차라리 1학년 초창기때처럼 시비걸고 덤벼드는게 나았지 이런식으로 일방적으로 무시당하는건 더이상 참을 수 없어짐 고작 입술한번 스친거정도로 이따위로 계속 투명인간 취급받을 바에야. 결국 오기가 생겨버린 서태웅 혐관의 길을 선택하기로 함 

 '반드시 혀도 넣어주지.'

강백호가 게거품 물고 쓰러지는 꼬락서니를 두 눈으로 봐주겠다고 다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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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가 요즘 노골적으로 자신을 피해대는 통에 둘만 있는 타이밍을 잡기 쉽지 않았음 계속 틈을 노리며 강백호를 살핌 

그 후 얼마지나지 않아 요즘 어딘지 어수선한 강백호에게 저녁까지 남아서 연습하고 가라는 송캡틴의 명령이 떨어졌음 연습 제대로 했는지 태웅이한테 물어볼거라는 으름장과 함께. 서태웅으로서는 운이 좋았지 송캡틴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강백호는 결국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을 함

겨우 연습이 끝나고 둘 만 있는 부실에서 여전히 강백호는 서태웅에게 시비는 커녕 말 한마디 안걸었고 서태웅이 조금 다가가면 피해버림 부실은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음

그때 라커 앞에서 묵묵히 옷을 갈아입는 강백호 뒤에 서태웅이 바짝 붙어섬 그리고 두 팔로 라커 양 옆을 짚고 강백호를 팔 안에 가둠

 "야."

 "눗?"

강백호가 이 팔은 뭐냐는 듯 몸을 돌리니 바로 코 앞에 서태웅이 있음

서태웅은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음 손을 뻗어 강백호를 닫힌 라커쪽으로 밀친 후 곧바로 강백호 얼굴 고정시키고 턱을 아프게 쥐어 입을 강제로 열었음 그렇게 어거지로 열린 강백호 입에 다짜고짜 자신의 혀를 쑤셔넣음 

서태웅도 첫..키스여서 잘 모름 그저 눈 한번 안깜박이고 강백호 얼굴 뚫어져라 보면서 당연하게 굳어있는 강백호 혀를 건들여보고 빨아도 봄 멍청이 네가 스치는것조차 끔찍해하는 나한테 제대로 한번 당해봐 라는 삐뚤어진 감정에서 감행한거였는데 서태웅은 온 몸이 녹을 것 처럼 기분이 좋았음 

강백호 턱을 아프게 쥐었던 손에 저절로 힘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강백호의 뺨과 귓가를 만지작거림 강백호의 입안은 너무나 부드럽고 따끈했으며 타액은 달콤했음 원목적과 다르게 각도까지 바꿔가며 서태웅 한창 즐기고 있는데 강백호 반응이 심상치 않은거야

그러니까 진작에 주먹이 날라왔어야 했어 당연히 강백호에게 밀쳐지고 세게 얻어맞겠거니 했는데 (이빨 나갈 각오까지 함) 강백호는 그 어떤 반응도 안보이고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음 그러다 어느 순간,

충격받은 듯 크게 떠진 강백호 눈에 방울방울 물이 한가득 차오르더니 멍청이가 눈 한번 깜박이자 눈물이 폭포수마냥 흘러내렸음

 "!!"

예상과 180도 다른 반응에 서태웅 생애 처음으로 몹시 당황, 그제서야 츕- 하고 입을 뗌


 "이..이 무신경한 놈아!!! 나쁜자식!!!!!"

서태웅 어깨를 밀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서태웅 침으로 범벅된 입가와 계속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마구 닦는, 그날 그때처럼 얼굴이 빨개져 바들바들 떠는 강백호.


실은 강백호, 서태웅의 농구에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되버린 그 날부터 서태웅에게 속절없이 이끌리고 있었음 서태웅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화려한 전국의 에이스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시선을 빼앗지 못했음 오직 서태웅만이 자신을 움직일 수 있었고, 오직 서태웅만이 자신을 영혼까지 뒤흔들 수 있었음.

강백호를 향해 해변가를 달려온 그 무더운 여름부터 재활 마치고 퇴원하게 된 늦가을까지. 서태웅은 강백호가 있는 재활원에 출석체크 하듯 드나들었고 이때 강백호는 이 여우같은 놈을 좋아한다는 걸 자각했음 

그래서 그날 강백호는 서태웅과 입술이 닿은 우연한 사고에 가슴 떨려 진짜 죽을 뻔했음 동요를 숨기려고 일부러 바닥을 구르며 더 오버 떨었던거였지 싫어서가 아니었음 게다가 서태웅이 일어서면서 몹시 불쾌하다는 듯 인상 찡그린 것도 똑똑히 봤고.. 그런데도 서태웅을 좋아하는 마음을 없앨 수가 없어서 피했던거임

시컴하고 커다란 같은 성별의 남자애가..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여우를 좋아한다는 걸 여우가 알면 얼마나 싫겠어.. 송충이 바퀴벌레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싫겠지.. 저 여우놈이 좋아한다고 고백한 상대에게 얼마나 차가운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음 목격한 적 많았으니까..

그렇게 서태웅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강백호가 자신의 마음을 눌러가며 계속 계속 쌓아올린 방벽이, 서태웅의 오기섞인 입맞춤을 받고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져버림 

막다른 곳에 몰려 더이상 숨길 수 없어진 강백호의 솔직한 맨 얼굴이 지금 그대로 서태웅의 눈 앞에 어떤 거짓도 없이 드러남


이건.. 이런 류에 눈치 쌈싸먹은 둔하디 둔한 서태웅도 모를수가 없었음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워질 정도의
사랑에 빠진 열정 품은 불꽃같은 눈빛을.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원하는
애틋하고 순수한 열렬한 연모의 마음을.


그리고 이런 강백호를 마주한 서태웅은 생각함

강백호가 아닌, 다른 그 어떤 누구라도 같은 사고가 벌어졌다면 상대방이 강백호와 똑같은 반응이었어도 자신은 아무런 관심도 신경도 안썼을거라고.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릴 정도의 그 정도로 사소하디 사소한 신경 쓸 가치조차 없었을 일.

그런 자신이 대체 왜 강백호의 반응에 그렇게 예민했었는지, 마음에 걸렸는지, 계속 곱씹었는지. 강백호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고 자신을 무시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나 답지않은 짓을 벌이게 됐는지. 



서태웅 이 모든 원인의 답을 벼락같이 깨달음

             늘 나에게 강백호는 특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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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강백호를 처음 마주쳤던 그 순간, 가슴 깊이 심겨진 벚나무에 드디어 꽃들이 피어나는 순간이었어


종생토록 시들일 없는 서태웅만의 아주 사랑스러운 벚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