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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6 00:09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로 시작했던 거 2.5부 2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그게 뭘 어쨌단 말이냐."
짧은 설명을 들은 적비성이 바로 대꾸한 말에, 방다병은 어쩐지 고소한 심정으로 이연화를 돌아보았다. 이연화는 이제 억울한 여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퍽 귀여운 동시에 가증스러웠다.
"뭘 어쩌다니, 당연히 알아봐야지. 여기서 뭔가 흉한 일이 벌어지는 중일지도 모르잖아."
"큰일이었다면 이미 관에서 조사하러 나왔겠지. 일꾼 몇이 길을 좀 돌아서 간 게 무슨 대수라고."
적비성이 귀찮은 투로 이야기했다. 이연화가 보다 진지한 낯빛을 띤 채 한 손을 들었다.
"너희가 보지 못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물론 길을 돌아서 가는 이유야 여러 가지일 수 있지. 하지만 그 낭자들은 결코 편한 길을 찾으려던 게 아니었어. 무언가를 두려워해서 피하는 모습이었다고. 개장 직전의 객잔에 뭔가 꺼림칙한 일이 있다는 건데, 마음이 쓰이지 않아? 하 당주가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장에서 수상한 정황을 발견하고도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이연화는 꽤나 성실한 투로 이야기했지만, 방다병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말이었으나, 그 기저에 깔린 의도야 뻔했다. 이연화는 지금 혼례 이외의 일에 마음을 두고 싶어했다.
하효혜가 혼인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부터, 이연화는 예상치 못한 낙석에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어리벙벙하게 굴었다. 하효혜를 설득하려는 말들이 먹히지 않자-"하 당주, 부디 깊이 생각해 보시고...아니, 각인을 무르길 원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혼례는...예, 물론 형식의 문제라는 부분은 이해하지만...."-이연화는 언젠가부터 입을 다물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휩쓸려 가도 괜찮은가?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 머릿속이 드물게도 손에 잡힐 듯했지만, 방다병은 그 속내를 굳이 말로 끄집어내지 않았다.
딱히 이연화에게 혼사를 강요할 마음이 충만하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연화가 정말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방다병은 너무나 바빴다. 셋 중 혼례 준비에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방다병이었다.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기도 했고, 혼례 준비를 주관하는 하효혜가 방다병의 어머니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방다병은 이연화가 진심으로 이 혼사를 거부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이연화는 훨씬 더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했을 터였고, 하효혜 역시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았을 터였다.
"원래 혼인을 앞두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법이야. 네 이모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들 그래."
혹시 이연화를 너무 몰아세우는 것은 아닐지 염려를 표하던 방다병에게, 하효혜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날 반응을 보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란 건 알겠더구나. 하지만 이 선생에게도 말했듯이, 이건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과시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반려 사이의 예를 다하는 일일 뿐이야. 선생이야 워낙 조심스럽고 염려가 많아, 이런저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겠지. 옆에서 그러지 말라 이야기해도 별 소용은 없을 게다."
"저도 이해는 하지만...음, 전 엄청나게 기쁘거든요. 그런데 이연화한테는 이 혼사가 그저 고민거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끔 마음이 싱숭생숭해요."
방다병이 웅얼웅얼 말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니 이연화가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했으나, 그래도 가끔씩은 혼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연화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는 각인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그렇게 전전긍긍했으면서, 참 배부른 불만이다. 어차피 이연화와 내 속도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충분히 존중하겠다 호언장담하고서는, 왜 이제 와서 욕심이야? 방다병이 스스로를 질책하듯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효혜가 방다병의 팔을 가볍게 잡고는 위로했다.
"선생이 혼인에 대해 너만큼 적극적이지 않아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섭섭하다 여기지 말고 여유를 주도록 해. 이 선생이 어디 정말 못할 일을 참아줄 사람이냐? 잠자코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널 굉장히 아끼는 거야."
"그건 알아요, 엄청 섭섭한 건 아니에요. 그냥...이연화도 아주 조금쯤은 기뻐하면 좋겠어요. 아니면 뭐가 걱정인지 솔직하게 알려주든가요."
방다병이 입을 삐죽 내민 채 투덜거렸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연화는 자신의 속내를 공유하는 일에 별 조예가 없었다. 그는 늘 중요한 부분을 혼자서만 꼭꼭 곱씹으며 곪아가다가, 결국 견디기 힘든 지경이 되어서야 냉소적이거나 자학적인 말들을 툭 내뱉곤 했다. 최악의 경우를 쉽게 상상하진 않았지만, 방다병은 이연화가 말없이 골똘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살짝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차라리 자신을 붙들고 미주알고주알 불평을 늘어놓았다면 덜했을 텐데, 이런저런 선택지를 들고 갈 때마다 애매모호한 얼굴로 잠자코 응해주긴 하니 오히려 더 마음이 쓰였다.
방다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효혜가, 이내 어이없게 웃으며 아들의 팔을 찰싹 때렸다.
"이 녀석.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라. 하루종일 싱글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한테 어떻게 마음이 복잡하다고 하겠어?"
방다병이 머쓱하게 해해거리며 팔을 문질렀다. 종종 마음에 그늘이 생긴다 하여, 이 상황이 기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염려보다 환희가 열 배 정도는 더 컸다. 오죽하면 리아가 '도련님, 혹시 무슨 약을 잘못 드셨어요?' 하고 천진하게 물을 정도였다. 살짝 상기된 채 고개를 숙이자, 하효혜가 아들을 짐짓 흘겨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네가 섣불리 아는 척하는 게 더 불편할 수도 있으니, 괜히 안달복달 나서서 들쑤실 것까진 없다. 네 입에서 썩 좋은 소리만 나가지도 않을 테고. 선생도 엉킨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제가 뭔가 도울 수는 없을까요? 만날 때마다 묘하게 떨떠름해 보여서 신경이 쓰이지 뭐예요."
방다병이 염려와 배려가 뒤섞인 투로 이야기하자, 천기당주는 낮게 웃으며 아들을 달래듯이 건넸다.
"청면객잔에 가면 너도 너무 혼인에만 집착하지 말고, 선생과 같이 온천욕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라. 최근에는 바빠서 제대로 휴식도 못 취했을 게 아니냐. 너도 여유가 없으니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더 드는 것이지. 함께 쉬면서 잘 지켜보다가, 만일 정 힘들어하거든 먼저 이야기를 꺼내 봐. 마음의 부담을 서로 나누는 일은 중요하니까. 각인을 이어가려면 그런 것도 계속 연습해야지."
방다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화는 가끔씩 겁을 먹은 미꾸라지처럼 굴 때가 있어, 그럴 때 억지로 양손에 쥐려 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쑥 빠져나가곤 했다. 잠시 주저하던 방다병이 중얼거렸다.
"어머니. 진짜 만에 하나라도...이연화가 정말 혼례까진 못하겠다 하면 어떡하죠?"
"뭘 어떡해? 못하는 거지. 아니면 미루거나."
하효혜가 어깨를 으쓱했다. 방다병이 괴상한 표정을 짓고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혼례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 생각이야 그렇다만, 정 안될 일이었으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각인에 대한 선생의 마음이 진지하고 깊어 보이니 제안할 수 있었던 게지. "
하효혜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걸 제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방다병은 어머니를 깊이 사랑했지만, 어머니가 가끔씩 코뿔소처럼 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아들의 묘한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하효혜는 빙긋 웃으며 방다병의 등을 툭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소보. 선생은 뜻 없는 일에 힘없이 딸려갈 사람이 아니야. 때로 무모하게 행동할 뿐 책임감이 있는 분이니, 이런 일을 쉽게 번복하려 들진 않을 게다." 방다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평가에는 자신도 동의했다.
향후 며칠 동안, 방다병은 그 날의 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연화와 마주앉을 시간조차 마땅치 않았던 탓이었다. 헌성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고 나서야, 청년은 어머니와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시시때때로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너무 따지고 들면 안 돼.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으니, 먼저 말해주기 전까진 적당히 모른 척하자. 스스로의 허벅지를 거푸 꼬집는 기분으로, 방다병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연화가 말썽을 부리기 직전의 아이처럼 움찔거리거나 눈길을 슥 피할 때면 영 참기가 어려워져, 얼렁뚱땅 둘러대거나 피하지 말고 네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으라는 말이 혀끝에 매달려 달랑거렸다.
이연화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 방다병은 이내 낮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적비성을 도와 이연화의 퇴로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무정하지 못한 성정과 상대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연화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해. 이상한 걸 보고도 그냥 놔뒀다가, 나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곤란하잖아. 미리 확인해두는 게 낫지."
방다병이 거들어주자, 이연화가 눈을 빛내며 반색했다. "맞아. 그, 중요한 날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아." 살짝 어색하게 덧붙이는 이연화를 뚱한 눈으로 바라보며, 방다병이 내심 체념의 한숨을 뱉었다. 그래, 내가 너무 혼인 준비에만 몰두한 나머지 마음이 좁아졌는지도 몰라. 이 이상 현상을 파헤치는 일이 이연화와 나에게 오히려 휴식이 될지도 모르니, 일단 어울려 줘야겠다. 그렇게 결정한 방다병이 적비성을 돌아보았다. 이연화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적비성 역시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참이었다.
"그도 그렇군. 좋아, 뭘 하면 되지?"
"태도 변화가 굉장히 빠르네, 적 맹주."
"혼례 날에 방해받기 싫다."
이연화가 어이없게 건넨 말에, 적비성이 즉시 대꾸했다.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눈가를 만지더니, 이연화는 곧 문 밖을 향해 슬쩍 고갯짓했다.
"그럼, 온천에 몸 좀 담그러 가볼까?"
"수상한 일이 있다더니, 갑자기 웬 온천이냐."
"탕을 청소하러 가던 낭자들이었거든. 피하고 싶은 것이 뭐였든, 온천으로 가는 방향에 있었을 거야."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연화가 냉큼 발길을 돌려 문을 향했다. 방다병이 그 뒷모습을 향해 타박했다. "이연화, 온천에 몸 담그러 간다면서 갈아입을 옷이나 수건도 안 가져가?" "알아서 좀 챙겨 줘, 방 공자!" 이연화가 오른손을 흔들며 뻔뻔하게 외친 말에, 방다병은 억울한 얼굴로 쳇 소리를 냈으나 얼른 움직여 이연화의 짐을 뒤졌다. "내 것도 알아서 챙겨라." 무심한 탓에 더더욱 뻔뻔하게 들리는 지시를 던져 놓고, 적비성이 훌쩍 몸을 날려 사라졌다. "너희들 진짜!" 방다병이 성난 소리를 빽 내질렀다.
결국 방다병은 꽤 묵직한 짐을 품에 안은 채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어떻게 천기당의 소당주를 짐꾼처럼 부리느냐 투덜거리며 나란히 걷다 보니, 이윽고 맑은 증기와 함께 훈훈한 냄새가 맡아졌다. 방다병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작게 떠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소리를 따라가니, 곧 나무 통과 청소 용품들을 챙긴 채 일어나던 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틀어올리고 팔이며 바지 끝단을 접어올린 모습이 퍽 편안해 보였다.
"저, 낭자들."
방다병이 부른 소리에, 그들 중 하나가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발을 헛디뎠다. 어찌나 놀랐던지, 여자는 자신이 청소한 탕 안에 빠져 잠시 허우적거렸다. "낭자!" 방다병이 놀라 그편을 향해 뛰어갔다. 물론 위험할 만큼 수심이 깊지는 않았기에, 여자는 곧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틀어올렸던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쫄딱 젖어 있었다. 나머지 두 여자는 동료를 부축해 얼른 옷매무새를 살펴주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한밤의 산속에서 괴물을 두려워하다가 사람을 만난 듯한 반응이었다. 상대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방다병이 얼른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천기당에서 온 사람들인데, 여독을 풀기 위해 탕을 찾다가 낭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 천기당에서...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에 빠졌던 사람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퍽 민망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던 이연화가 슬쩍 흘리듯 말했다. "제가 들은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세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연화를 바라보았다. 이연화가 짐짓 손끝을 문지르며 한숨을 토했다.
"듣기로는 청면객잔에 이상한 것이 나온다던데...우리를 보고 이리 놀라시니, 확신이 생기는군요."
세 여자가 동시에 숨을 삼켰다. 그 눈동자가 조금 전보다 훨씬 크게 벌어져 있었다. 창백해진 채, 세 낭자는 서로를 돌아보며 곤혹스러운 시선을 교환했다. 곧 그들 중 가장 키가 크고 차분해 보이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저희는 그런 이야기를 퍼뜨린 적이 없사온데...."
"미아, 네가 동생한테 이야기한 거 아니야? 추아가 여기서 일하고 싶다 했다며."
"무슨-나 그런 적 없어!"
물에 빠졌던 여자가 대경하여 고개를 저었다. 이연화가 빙긋이 미소했다.
"그래서, 뭐가 나오긴 나오나 보군요."
"아, 아닙니다. 객잔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그냥 저희가...어쩌다 헛것을 본 겁니다."
키 큰 여자가 허둥지둥 얼버무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똑같이 허리를 굽힌 채, 세 사람은 판결을 앞둔 죄인처럼 일행의 눈치를 보았다. 일거리를 발견한 형탐의 마음가짐으로 쉽게 빠져들어, 방다병은 특유의 성실한 얼굴과 마음으로 그들에게 건넸다.
"사실 조금 전, 낭자들이 무언가를 피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두려움을 품을 만한 대상이 있는 듯해, 신경이 쓰여 겸사겸사 이쪽으로 와 보았지요. 소문이 퍼져 객잔의 영업에 누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사실을 함구하다가 후에 천기당주의 눈에 띈다면 일이 더 복잡해지지 않겠습니까? 낭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중간에서 말을 잘 전할 테니, 마음에 걸리는 점을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지요."
"아비, 잘 봐둬. 저게 정파인이 말하는 자세야. 수건과 침의를 양쪽 팔에 걸쳤는데도 아주 믿음직해 보이잖아."
"너도 못하는 걸 나한테 기대하지 마라."
뒤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다병은 무시하고 꿋꿋이 낭자들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흔들리는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이 사실이 알려져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과, 이 사실을 숨겼다가 후에 천기당주의 분노가 쏟아질 상황을 저울질하듯이 방다병을 힐끗거렸다. 하지만 이미 본인들의 입으로 단서를 흘린 이상, 무작정 함구하는 일만이 최선은 아니었다. 물에 빠졌던 여자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조그맣게 말했다.
"저, 그게...정말로 헛것일 수도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헛것이라면 오히려 다행이지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방다병이 친절하게 이야기하자, 미아는 용기를 얻은 듯 움츠렸던 어깨를 살짝 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여전히 속삭임처럼 작았다.
"여기...여기선 귀신이 나와요."
"귀신이요?"
방다병의 눈이 커졌다. 여자는 허황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부끄러운지 뺨을 붉혔지만, 이내 소곤소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일꾼들에게, 청면객잔의 귀신은 사실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단장을 시작한 지는 반 년 정도가 되었는데, 미아가 이곳에서 일한 것은 세 달 전부터였다. 그때, 여자는 동료들에게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 어떤 원혼이 살고 있어, 가끔씩 그 소리나 기척을 드러낸다는 내용이었다. 여자는 평소 귀신을 비롯한 미신 따위를 믿지 않았기에, 이렇게 예쁘고 깔끔한 객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여겨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이 죽고 불이 난 일이야 물론 흉사였으나, 살다 보면 어디서든 사고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신입 일꾼을 놀리려는 말인 줄 알았지요." 여자가 창백해진 채 이었다.
괴담의 가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울음소리였다.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때로 잔치를 벌였던 장소 근처에는, 화재에 휩쓸려 반절 정도가 소실된 마굿간이 있었다. 새로 수리하여 깨끗해졌지만 아직은 말을 들여놓지 않아 비어 있었는데, 밤이 되면 가끔 그 부근에서 사람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가까이 가 보면, 늘 종이가 탄 흔적 따위와 향 냄새가 남아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그저 재빠른 인간의 소행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한 일은 두 번째였다. 이곳에는 총 여섯 개의 탕이 있었는데, 개중 한 군데가 취화탕이었다. 취화탕은 물이 뽀얗고 좋은 데다 근처에 꽃나무들이 있어 아름다웠으나, 탕 내부가 다소 울퉁불퉁하고 경사져 청소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아는 일꾼들이 그곳에 잘 가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라고 여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물이...때때로 붉게 변한단 말입니까?"
이연화가 느리게 말하자, 미아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여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소문만 들었을 때에는 믿지 않았는데, 꽃나무가 그렇게 예쁘다기에 밤 청소를 끝내고 몰래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그런데, 정말로 물이 새빨갛게 변해 있는 거예요. 게다가 그 옆의 꽃나무에는, 거기에는 반쯤 불탄 흰 옷이 걸려서...."
미아가 와들와들 떨면서 말을 흐렸다. 다른 두 일꾼이 진저리를 쳤다. 키 큰 여자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그 탕의 물은 가끔 피처럼 변해요. 우리도 낮에만 가끔 청소하지, 그쪽으론 잘 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객잔에서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서린 게 아니겠어요? 물이 붉게 변하고, 더해서 울음소리까지 들린 밤에는 정말이지...다들 잔뜩 겁을 먹어 처소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생정 어르신도 고민하고 계세요. 취화탕의 정경이 아쉽긴 하지만, 손님을 받은 후에도 계속 변이 생기면 그곳을 메운 다음 창고를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요. 꽃나무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도 되니까요."
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었다. 방다병의 미간으로 주름이 생겼다. "생정도 이런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단 말입니까?" 화들짝 놀라 입을 막은 미아가 허리를 푹 숙이며 간청했다. "죄, 죄송합니다. 부디 제게 들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객잔 밖에서는 정말 한 마디도 말을 퍼뜨린 적이 없어요." 방다병이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염려 마세요, 낭자. 말했다시피, 낭자들을 곤란하게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취화탕은 어느 쪽입니까?"
이연화가 불쑥 물은 말에, 세 사람이 놀라 돌아보았다. 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지금 거기 가시려고요?"
"꽃나무가 아름답다 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 구경하고 싶어서요."
"하, 하지만...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꽃나무라면 내일 보셔도 되는데...."
"낭자, 저는 천기당에서 여러 신묘한 법술과 의학을 익힌 사람입니다. 몸을 떠난 혼백과 대화한 적도 있으니, 혹여 귀신에게 화를 당할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연화가 소매를 떨치며 천연덕스럽게 건넨 말에, 미아를 비롯한 여자들은 조금 안도한 듯했다. 그들은 잠시 쭈뼛거리다가 이연화에게 다가와, 귀신에게서 몸을 지키는 부적 따위를 써줄 수 있겠느냐 부탁했다. 이연화는 진지한 태도로 '지금은 적절한 재료가 없어, 영험한 부적을 써 드리기는 어렵겠다. 다만 오늘 취화탕을 한 번 살펴보고, 귀신의 넋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해 보겠다' 하는 말을 건네고는 취화탕의 위치를 얻어냈다. 그 꼴을 지켜보며, 방다병과 적비성은 비슷한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취화탕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정돈된 길과 통해 있었으나 꽃나무로 잘 가려져 있어, 표시석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취화탕을 발견한 방다병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거대하고 화려한 탕은 아니었으나, 아늑한 공간에 자리한 노천탕은 흰 달빛과 꽃나무에 휩싸여 고즈넉한 미를 풍겼다. "이런 곳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니, 너무 아까운걸." 진심으로 말하는 방다병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흠 소리를 낸 이연화가 겉옷을 훌렁 벗었다. 방다병이 기겁하여 돌아보았다.
"너 뭐하는 거야?"
"뭘 하긴, 탕에 들어가 보려고 그러지. 이 옷을 다 걸치고 들어갈 순 없잖아."
"오, 옷은 저기 안에서 벗든가 해! 왜 여기서-."
"진정해, 알몸으로 들어갈 건 아니야. 하여튼 전부터 예민하다니까."
방다병을 흘겨보며 혀를 차더니, 이연화는 곧 간소한 침의 한 장만 남겨두고는 성큼성큼 걸어 탕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몸이 넘어질 것처럼 휘청하며 물에 반쯤 빠졌을 때, 방다병은 적비성에게 허둥지둥 옷가지와 수건을 떠넘기곤 탕을 향해 달려갔다. "왜 그래, 괜찮아?" 방다병이 이연화의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얼른 중심을 잡은 이연화가 머쓱하게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땅이 고르지 않네. 처음 만들 때 좀 실수했던 모양이야. 워낙 큰 바위들이라, 힘들여 바꾸지 않고 둔 모양인데."
"뭘 확인하려고 그러는 건데? 그 안에 물을 붉게 만드는 장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와 내가 마주친 귀신이 이게 처음은 아니잖아? 지금껏 진짜 귀신은 없었으니, 아마 이번에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이연화가 조금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나도 돕겠다고 말하려다, 방다병은 눈앞의 광경에 잠깐 마른침을 삼켰다. 얇고 흰 옷감이 피부에 들러붙어, 그 아래의 살빛이 연하게 비쳐 올라왔다. 둥근 어깨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우뚝 멈추고, 방다병은 스스로를 책망하듯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안 돼, 정신 차려. 너는 군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야! 머리에 열이 오른 청년을 비웃듯이, 옆에서 옷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 방다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아무렇지 않게 탈의한 적비성이 탕 안에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너, 넌 또 왜 그래?"
"뭘 찾아야 한다지 않았나? 하나보단 둘이 찾는 게 낫지."
적비성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방다병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탕의 바닥을 더듬던 이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소보, 너는 마굿간에 가서 흔적이 남은 게 없는지 확인해 봐. 종이나 향의 잔해가 있다면-."
"나, 나도 들어갈 거야! 둘보단 셋이 낫잖아."
급히 대꾸한 방다병이 겉옷을 벗어젖혔다. 적비성이 무심히 버려둔 옷 더미에 겉옷을 올려놓고, 방다병은 얼른 온천 안으로 발을 들였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그게 뭘 어쨌단 말이냐."
짧은 설명을 들은 적비성이 바로 대꾸한 말에, 방다병은 어쩐지 고소한 심정으로 이연화를 돌아보았다. 이연화는 이제 억울한 여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퍽 귀여운 동시에 가증스러웠다.
"뭘 어쩌다니, 당연히 알아봐야지. 여기서 뭔가 흉한 일이 벌어지는 중일지도 모르잖아."
"큰일이었다면 이미 관에서 조사하러 나왔겠지. 일꾼 몇이 길을 좀 돌아서 간 게 무슨 대수라고."
적비성이 귀찮은 투로 이야기했다. 이연화가 보다 진지한 낯빛을 띤 채 한 손을 들었다.
"너희가 보지 못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물론 길을 돌아서 가는 이유야 여러 가지일 수 있지. 하지만 그 낭자들은 결코 편한 길을 찾으려던 게 아니었어. 무언가를 두려워해서 피하는 모습이었다고. 개장 직전의 객잔에 뭔가 꺼림칙한 일이 있다는 건데, 마음이 쓰이지 않아? 하 당주가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장에서 수상한 정황을 발견하고도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이연화는 꽤나 성실한 투로 이야기했지만, 방다병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말이었으나, 그 기저에 깔린 의도야 뻔했다. 이연화는 지금 혼례 이외의 일에 마음을 두고 싶어했다.
하효혜가 혼인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부터, 이연화는 예상치 못한 낙석에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어리벙벙하게 굴었다. 하효혜를 설득하려는 말들이 먹히지 않자-"하 당주, 부디 깊이 생각해 보시고...아니, 각인을 무르길 원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혼례는...예, 물론 형식의 문제라는 부분은 이해하지만...."-이연화는 언젠가부터 입을 다물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휩쓸려 가도 괜찮은가?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 머릿속이 드물게도 손에 잡힐 듯했지만, 방다병은 그 속내를 굳이 말로 끄집어내지 않았다.
딱히 이연화에게 혼사를 강요할 마음이 충만하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연화가 정말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방다병은 너무나 바빴다. 셋 중 혼례 준비에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방다병이었다.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기도 했고, 혼례 준비를 주관하는 하효혜가 방다병의 어머니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방다병은 이연화가 진심으로 이 혼사를 거부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이연화는 훨씬 더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했을 터였고, 하효혜 역시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았을 터였다.
"원래 혼인을 앞두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법이야. 네 이모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들 그래."
혹시 이연화를 너무 몰아세우는 것은 아닐지 염려를 표하던 방다병에게, 하효혜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날 반응을 보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란 건 알겠더구나. 하지만 이 선생에게도 말했듯이, 이건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과시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반려 사이의 예를 다하는 일일 뿐이야. 선생이야 워낙 조심스럽고 염려가 많아, 이런저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겠지. 옆에서 그러지 말라 이야기해도 별 소용은 없을 게다."
"저도 이해는 하지만...음, 전 엄청나게 기쁘거든요. 그런데 이연화한테는 이 혼사가 그저 고민거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끔 마음이 싱숭생숭해요."
방다병이 웅얼웅얼 말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니 이연화가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했으나, 그래도 가끔씩은 혼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연화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는 각인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그렇게 전전긍긍했으면서, 참 배부른 불만이다. 어차피 이연화와 내 속도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충분히 존중하겠다 호언장담하고서는, 왜 이제 와서 욕심이야? 방다병이 스스로를 질책하듯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효혜가 방다병의 팔을 가볍게 잡고는 위로했다.
"선생이 혼인에 대해 너만큼 적극적이지 않아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섭섭하다 여기지 말고 여유를 주도록 해. 이 선생이 어디 정말 못할 일을 참아줄 사람이냐? 잠자코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널 굉장히 아끼는 거야."
"그건 알아요, 엄청 섭섭한 건 아니에요. 그냥...이연화도 아주 조금쯤은 기뻐하면 좋겠어요. 아니면 뭐가 걱정인지 솔직하게 알려주든가요."
방다병이 입을 삐죽 내민 채 투덜거렸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연화는 자신의 속내를 공유하는 일에 별 조예가 없었다. 그는 늘 중요한 부분을 혼자서만 꼭꼭 곱씹으며 곪아가다가, 결국 견디기 힘든 지경이 되어서야 냉소적이거나 자학적인 말들을 툭 내뱉곤 했다. 최악의 경우를 쉽게 상상하진 않았지만, 방다병은 이연화가 말없이 골똘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살짝 초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차라리 자신을 붙들고 미주알고주알 불평을 늘어놓았다면 덜했을 텐데, 이런저런 선택지를 들고 갈 때마다 애매모호한 얼굴로 잠자코 응해주긴 하니 오히려 더 마음이 쓰였다.
방다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효혜가, 이내 어이없게 웃으며 아들의 팔을 찰싹 때렸다.
"이 녀석.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라. 하루종일 싱글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한테 어떻게 마음이 복잡하다고 하겠어?"
방다병이 머쓱하게 해해거리며 팔을 문질렀다. 종종 마음에 그늘이 생긴다 하여, 이 상황이 기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염려보다 환희가 열 배 정도는 더 컸다. 오죽하면 리아가 '도련님, 혹시 무슨 약을 잘못 드셨어요?' 하고 천진하게 물을 정도였다. 살짝 상기된 채 고개를 숙이자, 하효혜가 아들을 짐짓 흘겨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네가 섣불리 아는 척하는 게 더 불편할 수도 있으니, 괜히 안달복달 나서서 들쑤실 것까진 없다. 네 입에서 썩 좋은 소리만 나가지도 않을 테고. 선생도 엉킨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제가 뭔가 도울 수는 없을까요? 만날 때마다 묘하게 떨떠름해 보여서 신경이 쓰이지 뭐예요."
방다병이 염려와 배려가 뒤섞인 투로 이야기하자, 천기당주는 낮게 웃으며 아들을 달래듯이 건넸다.
"청면객잔에 가면 너도 너무 혼인에만 집착하지 말고, 선생과 같이 온천욕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라. 최근에는 바빠서 제대로 휴식도 못 취했을 게 아니냐. 너도 여유가 없으니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더 드는 것이지. 함께 쉬면서 잘 지켜보다가, 만일 정 힘들어하거든 먼저 이야기를 꺼내 봐. 마음의 부담을 서로 나누는 일은 중요하니까. 각인을 이어가려면 그런 것도 계속 연습해야지."
방다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화는 가끔씩 겁을 먹은 미꾸라지처럼 굴 때가 있어, 그럴 때 억지로 양손에 쥐려 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쑥 빠져나가곤 했다. 잠시 주저하던 방다병이 중얼거렸다.
"어머니. 진짜 만에 하나라도...이연화가 정말 혼례까진 못하겠다 하면 어떡하죠?"
"뭘 어떡해? 못하는 거지. 아니면 미루거나."
하효혜가 어깨를 으쓱했다. 방다병이 괴상한 표정을 짓고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혼례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 생각이야 그렇다만, 정 안될 일이었으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각인에 대한 선생의 마음이 진지하고 깊어 보이니 제안할 수 있었던 게지. "
하효혜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걸 제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방다병은 어머니를 깊이 사랑했지만, 어머니가 가끔씩 코뿔소처럼 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아들의 묘한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하효혜는 빙긋 웃으며 방다병의 등을 툭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소보. 선생은 뜻 없는 일에 힘없이 딸려갈 사람이 아니야. 때로 무모하게 행동할 뿐 책임감이 있는 분이니, 이런 일을 쉽게 번복하려 들진 않을 게다." 방다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평가에는 자신도 동의했다.
향후 며칠 동안, 방다병은 그 날의 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연화와 마주앉을 시간조차 마땅치 않았던 탓이었다. 헌성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고 나서야, 청년은 어머니와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시시때때로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너무 따지고 들면 안 돼.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으니, 먼저 말해주기 전까진 적당히 모른 척하자. 스스로의 허벅지를 거푸 꼬집는 기분으로, 방다병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연화가 말썽을 부리기 직전의 아이처럼 움찔거리거나 눈길을 슥 피할 때면 영 참기가 어려워져, 얼렁뚱땅 둘러대거나 피하지 말고 네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으라는 말이 혀끝에 매달려 달랑거렸다.
이연화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 방다병은 이내 낮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적비성을 도와 이연화의 퇴로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무정하지 못한 성정과 상대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연화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해. 이상한 걸 보고도 그냥 놔뒀다가, 나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곤란하잖아. 미리 확인해두는 게 낫지."
방다병이 거들어주자, 이연화가 눈을 빛내며 반색했다. "맞아. 그, 중요한 날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아." 살짝 어색하게 덧붙이는 이연화를 뚱한 눈으로 바라보며, 방다병이 내심 체념의 한숨을 뱉었다. 그래, 내가 너무 혼인 준비에만 몰두한 나머지 마음이 좁아졌는지도 몰라. 이 이상 현상을 파헤치는 일이 이연화와 나에게 오히려 휴식이 될지도 모르니, 일단 어울려 줘야겠다. 그렇게 결정한 방다병이 적비성을 돌아보았다. 이연화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적비성 역시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참이었다.
"그도 그렇군. 좋아, 뭘 하면 되지?"
"태도 변화가 굉장히 빠르네, 적 맹주."
"혼례 날에 방해받기 싫다."
이연화가 어이없게 건넨 말에, 적비성이 즉시 대꾸했다.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눈가를 만지더니, 이연화는 곧 문 밖을 향해 슬쩍 고갯짓했다.
"그럼, 온천에 몸 좀 담그러 가볼까?"
"수상한 일이 있다더니, 갑자기 웬 온천이냐."
"탕을 청소하러 가던 낭자들이었거든. 피하고 싶은 것이 뭐였든, 온천으로 가는 방향에 있었을 거야."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연화가 냉큼 발길을 돌려 문을 향했다. 방다병이 그 뒷모습을 향해 타박했다. "이연화, 온천에 몸 담그러 간다면서 갈아입을 옷이나 수건도 안 가져가?" "알아서 좀 챙겨 줘, 방 공자!" 이연화가 오른손을 흔들며 뻔뻔하게 외친 말에, 방다병은 억울한 얼굴로 쳇 소리를 냈으나 얼른 움직여 이연화의 짐을 뒤졌다. "내 것도 알아서 챙겨라." 무심한 탓에 더더욱 뻔뻔하게 들리는 지시를 던져 놓고, 적비성이 훌쩍 몸을 날려 사라졌다. "너희들 진짜!" 방다병이 성난 소리를 빽 내질렀다.
결국 방다병은 꽤 묵직한 짐을 품에 안은 채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어떻게 천기당의 소당주를 짐꾼처럼 부리느냐 투덜거리며 나란히 걷다 보니, 이윽고 맑은 증기와 함께 훈훈한 냄새가 맡아졌다. 방다병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작게 떠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소리를 따라가니, 곧 나무 통과 청소 용품들을 챙긴 채 일어나던 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틀어올리고 팔이며 바지 끝단을 접어올린 모습이 퍽 편안해 보였다.
"저, 낭자들."
방다병이 부른 소리에, 그들 중 하나가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발을 헛디뎠다. 어찌나 놀랐던지, 여자는 자신이 청소한 탕 안에 빠져 잠시 허우적거렸다. "낭자!" 방다병이 놀라 그편을 향해 뛰어갔다. 물론 위험할 만큼 수심이 깊지는 않았기에, 여자는 곧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틀어올렸던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쫄딱 젖어 있었다. 나머지 두 여자는 동료를 부축해 얼른 옷매무새를 살펴주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한밤의 산속에서 괴물을 두려워하다가 사람을 만난 듯한 반응이었다. 상대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방다병이 얼른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천기당에서 온 사람들인데, 여독을 풀기 위해 탕을 찾다가 낭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 천기당에서...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에 빠졌던 사람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퍽 민망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던 이연화가 슬쩍 흘리듯 말했다. "제가 들은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세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연화를 바라보았다. 이연화가 짐짓 손끝을 문지르며 한숨을 토했다.
"듣기로는 청면객잔에 이상한 것이 나온다던데...우리를 보고 이리 놀라시니, 확신이 생기는군요."
세 여자가 동시에 숨을 삼켰다. 그 눈동자가 조금 전보다 훨씬 크게 벌어져 있었다. 창백해진 채, 세 낭자는 서로를 돌아보며 곤혹스러운 시선을 교환했다. 곧 그들 중 가장 키가 크고 차분해 보이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저희는 그런 이야기를 퍼뜨린 적이 없사온데...."
"미아, 네가 동생한테 이야기한 거 아니야? 추아가 여기서 일하고 싶다 했다며."
"무슨-나 그런 적 없어!"
물에 빠졌던 여자가 대경하여 고개를 저었다. 이연화가 빙긋이 미소했다.
"그래서, 뭐가 나오긴 나오나 보군요."
"아, 아닙니다. 객잔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그냥 저희가...어쩌다 헛것을 본 겁니다."
키 큰 여자가 허둥지둥 얼버무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똑같이 허리를 굽힌 채, 세 사람은 판결을 앞둔 죄인처럼 일행의 눈치를 보았다. 일거리를 발견한 형탐의 마음가짐으로 쉽게 빠져들어, 방다병은 특유의 성실한 얼굴과 마음으로 그들에게 건넸다.
"사실 조금 전, 낭자들이 무언가를 피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두려움을 품을 만한 대상이 있는 듯해, 신경이 쓰여 겸사겸사 이쪽으로 와 보았지요. 소문이 퍼져 객잔의 영업에 누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사실을 함구하다가 후에 천기당주의 눈에 띈다면 일이 더 복잡해지지 않겠습니까? 낭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중간에서 말을 잘 전할 테니, 마음에 걸리는 점을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지요."
"아비, 잘 봐둬. 저게 정파인이 말하는 자세야. 수건과 침의를 양쪽 팔에 걸쳤는데도 아주 믿음직해 보이잖아."
"너도 못하는 걸 나한테 기대하지 마라."
뒤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다병은 무시하고 꿋꿋이 낭자들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흔들리는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이 사실이 알려져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과, 이 사실을 숨겼다가 후에 천기당주의 분노가 쏟아질 상황을 저울질하듯이 방다병을 힐끗거렸다. 하지만 이미 본인들의 입으로 단서를 흘린 이상, 무작정 함구하는 일만이 최선은 아니었다. 물에 빠졌던 여자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조그맣게 말했다.
"저, 그게...정말로 헛것일 수도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헛것이라면 오히려 다행이지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방다병이 친절하게 이야기하자, 미아는 용기를 얻은 듯 움츠렸던 어깨를 살짝 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여전히 속삭임처럼 작았다.
"여기...여기선 귀신이 나와요."
"귀신이요?"
방다병의 눈이 커졌다. 여자는 허황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부끄러운지 뺨을 붉혔지만, 이내 소곤소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일꾼들에게, 청면객잔의 귀신은 사실 꽤 오래된 이야기였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단장을 시작한 지는 반 년 정도가 되었는데, 미아가 이곳에서 일한 것은 세 달 전부터였다. 그때, 여자는 동료들에게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 어떤 원혼이 살고 있어, 가끔씩 그 소리나 기척을 드러낸다는 내용이었다. 여자는 평소 귀신을 비롯한 미신 따위를 믿지 않았기에, 이렇게 예쁘고 깔끔한 객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여겨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이 죽고 불이 난 일이야 물론 흉사였으나, 살다 보면 어디서든 사고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신입 일꾼을 놀리려는 말인 줄 알았지요." 여자가 창백해진 채 이었다.
괴담의 가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울음소리였다.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때로 잔치를 벌였던 장소 근처에는, 화재에 휩쓸려 반절 정도가 소실된 마굿간이 있었다. 새로 수리하여 깨끗해졌지만 아직은 말을 들여놓지 않아 비어 있었는데, 밤이 되면 가끔 그 부근에서 사람이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가까이 가 보면, 늘 종이가 탄 흔적 따위와 향 냄새가 남아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그저 재빠른 인간의 소행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한 일은 두 번째였다. 이곳에는 총 여섯 개의 탕이 있었는데, 개중 한 군데가 취화탕이었다. 취화탕은 물이 뽀얗고 좋은 데다 근처에 꽃나무들이 있어 아름다웠으나, 탕 내부가 다소 울퉁불퉁하고 경사져 청소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아는 일꾼들이 그곳에 잘 가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라고 여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물이...때때로 붉게 변한단 말입니까?"
이연화가 느리게 말하자, 미아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여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소문만 들었을 때에는 믿지 않았는데, 꽃나무가 그렇게 예쁘다기에 밤 청소를 끝내고 몰래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그런데, 정말로 물이 새빨갛게 변해 있는 거예요. 게다가 그 옆의 꽃나무에는, 거기에는 반쯤 불탄 흰 옷이 걸려서...."
미아가 와들와들 떨면서 말을 흐렸다. 다른 두 일꾼이 진저리를 쳤다. 키 큰 여자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그 탕의 물은 가끔 피처럼 변해요. 우리도 낮에만 가끔 청소하지, 그쪽으론 잘 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객잔에서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서린 게 아니겠어요? 물이 붉게 변하고, 더해서 울음소리까지 들린 밤에는 정말이지...다들 잔뜩 겁을 먹어 처소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생정 어르신도 고민하고 계세요. 취화탕의 정경이 아쉽긴 하지만, 손님을 받은 후에도 계속 변이 생기면 그곳을 메운 다음 창고를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요. 꽃나무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도 되니까요."
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었다. 방다병의 미간으로 주름이 생겼다. "생정도 이런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단 말입니까?" 화들짝 놀라 입을 막은 미아가 허리를 푹 숙이며 간청했다. "죄, 죄송합니다. 부디 제게 들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객잔 밖에서는 정말 한 마디도 말을 퍼뜨린 적이 없어요." 방다병이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염려 마세요, 낭자. 말했다시피, 낭자들을 곤란하게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취화탕은 어느 쪽입니까?"
이연화가 불쑥 물은 말에, 세 사람이 놀라 돌아보았다. 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지금 거기 가시려고요?"
"꽃나무가 아름답다 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 구경하고 싶어서요."
"하, 하지만...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꽃나무라면 내일 보셔도 되는데...."
"낭자, 저는 천기당에서 여러 신묘한 법술과 의학을 익힌 사람입니다. 몸을 떠난 혼백과 대화한 적도 있으니, 혹여 귀신에게 화를 당할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연화가 소매를 떨치며 천연덕스럽게 건넨 말에, 미아를 비롯한 여자들은 조금 안도한 듯했다. 그들은 잠시 쭈뼛거리다가 이연화에게 다가와, 귀신에게서 몸을 지키는 부적 따위를 써줄 수 있겠느냐 부탁했다. 이연화는 진지한 태도로 '지금은 적절한 재료가 없어, 영험한 부적을 써 드리기는 어렵겠다. 다만 오늘 취화탕을 한 번 살펴보고, 귀신의 넋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해 보겠다' 하는 말을 건네고는 취화탕의 위치를 얻어냈다. 그 꼴을 지켜보며, 방다병과 적비성은 비슷한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취화탕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정돈된 길과 통해 있었으나 꽃나무로 잘 가려져 있어, 표시석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취화탕을 발견한 방다병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거대하고 화려한 탕은 아니었으나, 아늑한 공간에 자리한 노천탕은 흰 달빛과 꽃나무에 휩싸여 고즈넉한 미를 풍겼다. "이런 곳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니, 너무 아까운걸." 진심으로 말하는 방다병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흠 소리를 낸 이연화가 겉옷을 훌렁 벗었다. 방다병이 기겁하여 돌아보았다.
"너 뭐하는 거야?"
"뭘 하긴, 탕에 들어가 보려고 그러지. 이 옷을 다 걸치고 들어갈 순 없잖아."
"오, 옷은 저기 안에서 벗든가 해! 왜 여기서-."
"진정해, 알몸으로 들어갈 건 아니야. 하여튼 전부터 예민하다니까."
방다병을 흘겨보며 혀를 차더니, 이연화는 곧 간소한 침의 한 장만 남겨두고는 성큼성큼 걸어 탕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몸이 넘어질 것처럼 휘청하며 물에 반쯤 빠졌을 때, 방다병은 적비성에게 허둥지둥 옷가지와 수건을 떠넘기곤 탕을 향해 달려갔다. "왜 그래, 괜찮아?" 방다병이 이연화의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얼른 중심을 잡은 이연화가 머쓱하게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땅이 고르지 않네. 처음 만들 때 좀 실수했던 모양이야. 워낙 큰 바위들이라, 힘들여 바꾸지 않고 둔 모양인데."
"뭘 확인하려고 그러는 건데? 그 안에 물을 붉게 만드는 장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와 내가 마주친 귀신이 이게 처음은 아니잖아? 지금껏 진짜 귀신은 없었으니, 아마 이번에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이연화가 조금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나도 돕겠다고 말하려다, 방다병은 눈앞의 광경에 잠깐 마른침을 삼켰다. 얇고 흰 옷감이 피부에 들러붙어, 그 아래의 살빛이 연하게 비쳐 올라왔다. 둥근 어깨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우뚝 멈추고, 방다병은 스스로를 책망하듯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안 돼, 정신 차려. 너는 군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야! 머리에 열이 오른 청년을 비웃듯이, 옆에서 옷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 방다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아무렇지 않게 탈의한 적비성이 탕 안에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너, 넌 또 왜 그래?"
"뭘 찾아야 한다지 않았나? 하나보단 둘이 찾는 게 낫지."
적비성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방다병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탕의 바닥을 더듬던 이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소보, 너는 마굿간에 가서 흔적이 남은 게 없는지 확인해 봐. 종이나 향의 잔해가 있다면-."
"나, 나도 들어갈 거야! 둘보단 셋이 낫잖아."
급히 대꾸한 방다병이 겉옷을 벗어젖혔다. 적비성이 무심히 버려둔 옷 더미에 겉옷을 올려놓고, 방다병은 얼른 온천 안으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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