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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9 16:11
원인은 케이아다. 케이아 알베리히가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려면 보름 전의 몬드로 돌아가야 한다. 페보니우스 기사단과 한밤중에 활동하는 신원 미상의 히어로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몬드에는 마물에 의한 습격 보고가 부쩍 늘고 있었다. 일반인 부상자까지 다수 나올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기에 기사단에서는 사람들에게 당분간 외출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당연히 몬드에 방문하는 이국의 상인이나 관광객의 발길도 끊겼다. 아이들조차 마음대로 바깥을 뛰어다니지 못하는 삭막한 상황 속에서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몬드 사람들이 나누던 술잔에는 즐거움과 희망 대신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런 와중에 출처를 알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금 몬드가 마물에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페보니우스 기사단에 마물과 내통하는 첩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소문은 절망이 가득 담긴 술잔을 타고 파도처럼 퍼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첩자는 바로 기사단의 기병대장, 케이아 알베리히라는 추측이 소문에 따라붙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는 천사의 몫 근처의 성벽에 무단으로 붙인 벽보가 등장했다. 글자가 빽빽하게 쓰여 있었지만 결국 벽보의 요점은 이 두 줄이었다.
'케이아 알베리히의 동공은 마물의 동공이며 그는 마물의 언어에 능통하다.'
'4년 전 갑작스럽게 다운 와이너리에서 나온 것은 정체를 들키고 의절당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이루크가 보았다면 당장 뜯어서 태워버렸을 내용이었지만 현재 그는 끝없이 늘어나는 마물의 침입으로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몬드성에 올 수 없었고, 벽보는 정오까지 붙어있다가 술집을 열기 위해 출근한 찰스에 의해 제거되었다.
기사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성 밖에서 마물을 소탕하고 돌아와서는 잠깐 재정비한 후 다시 출정하기를 숨쉬듯이 반복했기 때문에 성내에 도는 소문의 심각성을 파악할 여력은 없었다. 기사단 내부의 인물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분열을 일으키기 위한 누군가의 소행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깨끗하게 무시했다. 어쩌면 서로를 너무 신뢰했던 탓일지도 몰랐다. 결과적으로 소문을 방치하게 된 건.
소문이 폭발적으로 기승을 부리게 된 시점에 케이아가 사라졌다. 동시에 우연의 일치로 마물의 습격이 뚝 끊겼다. 기사단에서는 지친 단원들 중 그나마 체력이 남은 몇 명을 모아 케이아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꾸렸다. 수색대의 대장은 '케이아를 찾아서 보호하기 위한 수색대'라고 입이 마르도록 설명했으나 세간에서는 이상한 왜곡을 거쳐 '첩자를 찾아내서 처단하기 위한 토벌대'로 알려졌다. 그리고 수색대보다 한 발 먼저 다이루크가 출발했다. 사라진 의동생을 가장 먼저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그것이 보름 전까지 몬드에서 일어난 일이다.
'케이아, 집에 가자.'
케이아의 흔적을 추적하며 다이루크는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소문이 무서워서 도망친 거라면 그런 헛소문따위 닿지 않도록 다운 와이너리에 꽁꽁 감추고 안정될 때까지 보살필 셈이었다. 케이아에게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 한 마디를 그토록 건네고 싶어서 다이루크는 저주받은 땅을 지나고 비경의 시련을 통과했다. 끝없이 전투를 치른 몸은 쇳덩이를 찬 것처럼 무거웠지만 다이루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그러다 결국 한 폐허에서 케이아를 발견했을 때, 다이루크는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케이아의 말이 먼저 들려왔다.
"하하, 곱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어."
케이아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들었다. 거짓말을 하는 말투와 자포자기한 얼굴. 영문을 알 수 없는 케이아의 태도에 다이루크의 사고가 잠깐 얼어붙었다.
'케이아는 내가... 그 소문을 믿고 죽이러 왔다고 생각했나?'
정지된 사고가 천천히 녹으며 눈물로 흘러내렸다. 다이루크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반응이 없자 케이아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눈을 굴리며 다가갔다.
"다이루크, 우...울어...?"
눈치를 보던 케이아는 조심스럽게 다이루크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어깨가 사정없이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루크는 '난 그냥...집으로 가자고 말하러 왔단 말이야...'라고 자신이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터져나오는 울음에 묻혀서 멀쩡히 전해진 말은 한 글자도 없었다.
그로부터 48시간 후, 다이루크의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케이아 씨는 다이루크 어르신의 손에 죽으려고 했어요."
"하, 하지만 여행자..."
"게다가 '곱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라니, 그럼 다이루크 어르신이 당신을 처참하게 죽이기라도 할 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두 번째 죄목이 되겠네요"
"그건 내가 배신자로 오해받고 있었으니까..."
"세 번째, 케이아 씨는 다이루크 어르신이 그 헛소문을 믿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따지자면..."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잘못은, 당신을 겨우 찾아낸 다이루크 어르신의 가슴에 말로 못을 박았다는 거예요."
케이아의 등 뒤에서 다이루크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쏘아보는 여행자의 눈빛이 따끔거렸다. 페이몬은 바보, 멍청이, 말미잘, 해파리 등등의 별명을 마구 붙이며 다이루크를 울린 케이아를 매도하고 있었다.
"한 번 정도는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를 드리죠."
"일단 나도 소문 때문에 힘든 상황이었잖아? 그리고 여행자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을 찾고 있는 처지가 다이루크와 비슷해서 이입할 여지가 있으니까...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에는..."
점점 무섭게 변해가는 여행자의 표정에 케이아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의외로 케이아의 말은 정확했다. 케이아가 다이루크를 울린 사건의 전말을 듣고 여행자가 폭발해버린 이유에는, 자신의 쌍둥이 혈육이 떠올라서인 것도 있으니까. 만약 여행의 끝에서 만난 혈육이 모든 오해를 뒤집어쓰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신의 손에 죽으려 든다면, 여행자는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케이아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다이루크 어르신의 입장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을 테니까 심판으로는 제가 적임자네요."
여행자의 단호한 말에 케이아는 더이상 변명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페이몬과 잠시 상의한 후 여행자는 판결을 내렸다. 원래라면 '평생 다운 와이너리 감금'을 구형할 생각이었으나 케이아의 빈 자리로 기사단의 업무 정체가 심각하다는 점, 평소 다이루크가 케이아에 대해 '그 녀석의 말은 반 밖에 못 믿겠다'며 신뢰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점, 그리고 헛소문의 당사자였던 케이아가 느꼈을 혼란 등을 참작하여 '일 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한 계절 동안 다운 와이너리에서 근신, 이후 한 달에 최소 두 번 이상 다운 와이너리 방문, 또한 근신 기간 동안 술 대신 포도주스 마시기'처분을 내렸다. 판결이 끝난 뒤 다이루크는 울음을 그쳤다.
더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려면 보름 전의 몬드로 돌아가야 한다. 페보니우스 기사단과 한밤중에 활동하는 신원 미상의 히어로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몬드에는 마물에 의한 습격 보고가 부쩍 늘고 있었다. 일반인 부상자까지 다수 나올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기에 기사단에서는 사람들에게 당분간 외출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당연히 몬드에 방문하는 이국의 상인이나 관광객의 발길도 끊겼다. 아이들조차 마음대로 바깥을 뛰어다니지 못하는 삭막한 상황 속에서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몬드 사람들이 나누던 술잔에는 즐거움과 희망 대신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런 와중에 출처를 알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금 몬드가 마물에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페보니우스 기사단에 마물과 내통하는 첩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소문은 절망이 가득 담긴 술잔을 타고 파도처럼 퍼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첩자는 바로 기사단의 기병대장, 케이아 알베리히라는 추측이 소문에 따라붙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는 천사의 몫 근처의 성벽에 무단으로 붙인 벽보가 등장했다. 글자가 빽빽하게 쓰여 있었지만 결국 벽보의 요점은 이 두 줄이었다.
'케이아 알베리히의 동공은 마물의 동공이며 그는 마물의 언어에 능통하다.'
'4년 전 갑작스럽게 다운 와이너리에서 나온 것은 정체를 들키고 의절당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이루크가 보았다면 당장 뜯어서 태워버렸을 내용이었지만 현재 그는 끝없이 늘어나는 마물의 침입으로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몬드성에 올 수 없었고, 벽보는 정오까지 붙어있다가 술집을 열기 위해 출근한 찰스에 의해 제거되었다.
기사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성 밖에서 마물을 소탕하고 돌아와서는 잠깐 재정비한 후 다시 출정하기를 숨쉬듯이 반복했기 때문에 성내에 도는 소문의 심각성을 파악할 여력은 없었다. 기사단 내부의 인물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분열을 일으키기 위한 누군가의 소행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깨끗하게 무시했다. 어쩌면 서로를 너무 신뢰했던 탓일지도 몰랐다. 결과적으로 소문을 방치하게 된 건.
소문이 폭발적으로 기승을 부리게 된 시점에 케이아가 사라졌다. 동시에 우연의 일치로 마물의 습격이 뚝 끊겼다. 기사단에서는 지친 단원들 중 그나마 체력이 남은 몇 명을 모아 케이아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꾸렸다. 수색대의 대장은 '케이아를 찾아서 보호하기 위한 수색대'라고 입이 마르도록 설명했으나 세간에서는 이상한 왜곡을 거쳐 '첩자를 찾아내서 처단하기 위한 토벌대'로 알려졌다. 그리고 수색대보다 한 발 먼저 다이루크가 출발했다. 사라진 의동생을 가장 먼저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그것이 보름 전까지 몬드에서 일어난 일이다.
'케이아, 집에 가자.'
케이아의 흔적을 추적하며 다이루크는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소문이 무서워서 도망친 거라면 그런 헛소문따위 닿지 않도록 다운 와이너리에 꽁꽁 감추고 안정될 때까지 보살필 셈이었다. 케이아에게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 한 마디를 그토록 건네고 싶어서 다이루크는 저주받은 땅을 지나고 비경의 시련을 통과했다. 끝없이 전투를 치른 몸은 쇳덩이를 찬 것처럼 무거웠지만 다이루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그러다 결국 한 폐허에서 케이아를 발견했을 때, 다이루크는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케이아의 말이 먼저 들려왔다.
"하하, 곱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어."
케이아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들었다. 거짓말을 하는 말투와 자포자기한 얼굴. 영문을 알 수 없는 케이아의 태도에 다이루크의 사고가 잠깐 얼어붙었다.
'케이아는 내가... 그 소문을 믿고 죽이러 왔다고 생각했나?'
정지된 사고가 천천히 녹으며 눈물로 흘러내렸다. 다이루크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반응이 없자 케이아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눈을 굴리며 다가갔다.
"다이루크, 우...울어...?"
눈치를 보던 케이아는 조심스럽게 다이루크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어깨가 사정없이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루크는 '난 그냥...집으로 가자고 말하러 왔단 말이야...'라고 자신이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터져나오는 울음에 묻혀서 멀쩡히 전해진 말은 한 글자도 없었다.
그로부터 48시간 후, 다이루크의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케이아 씨는 다이루크 어르신의 손에 죽으려고 했어요."
"하, 하지만 여행자..."
"게다가 '곱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라니, 그럼 다이루크 어르신이 당신을 처참하게 죽이기라도 할 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두 번째 죄목이 되겠네요"
"그건 내가 배신자로 오해받고 있었으니까..."
"세 번째, 케이아 씨는 다이루크 어르신이 그 헛소문을 믿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따지자면..."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잘못은, 당신을 겨우 찾아낸 다이루크 어르신의 가슴에 말로 못을 박았다는 거예요."
케이아의 등 뒤에서 다이루크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쏘아보는 여행자의 눈빛이 따끔거렸다. 페이몬은 바보, 멍청이, 말미잘, 해파리 등등의 별명을 마구 붙이며 다이루크를 울린 케이아를 매도하고 있었다.
"한 번 정도는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를 드리죠."
"일단 나도 소문 때문에 힘든 상황이었잖아? 그리고 여행자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을 찾고 있는 처지가 다이루크와 비슷해서 이입할 여지가 있으니까...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에는..."
점점 무섭게 변해가는 여행자의 표정에 케이아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의외로 케이아의 말은 정확했다. 케이아가 다이루크를 울린 사건의 전말을 듣고 여행자가 폭발해버린 이유에는, 자신의 쌍둥이 혈육이 떠올라서인 것도 있으니까. 만약 여행의 끝에서 만난 혈육이 모든 오해를 뒤집어쓰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신의 손에 죽으려 든다면, 여행자는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케이아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다이루크 어르신의 입장을 더 잘 헤아릴 수 있을 테니까 심판으로는 제가 적임자네요."
여행자의 단호한 말에 케이아는 더이상 변명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페이몬과 잠시 상의한 후 여행자는 판결을 내렸다. 원래라면 '평생 다운 와이너리 감금'을 구형할 생각이었으나 케이아의 빈 자리로 기사단의 업무 정체가 심각하다는 점, 평소 다이루크가 케이아에 대해 '그 녀석의 말은 반 밖에 못 믿겠다'며 신뢰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점, 그리고 헛소문의 당사자였던 케이아가 느꼈을 혼란 등을 참작하여 '일 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한 계절 동안 다운 와이너리에서 근신, 이후 한 달에 최소 두 번 이상 다운 와이너리 방문, 또한 근신 기간 동안 술 대신 포도주스 마시기'처분을 내렸다. 판결이 끝난 뒤 다이루크는 울음을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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