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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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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섭이가 미국행을 이야기하며 플랫폼에서 이별을 고했을때, 대만이는 그냥 벙쪘음. 미국을 간다고? 끝이라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나 방금...차인 건가? 실연의 아픔이 아닌 황당함과 당황함만이 느껴졌음. 대만이는 다음날 오전에 태섭이네로 전화를 걸었음. 가끔 전화를 바꿔주곤 했어서 얘기를 나누어 본 적 있는 태섭이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지. 태섭이를 바꿔달라는 대만이의 말에 태섭이의 어머니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했음. 태섭이는 오늘 아침 비행기라 새벽에 벌써 공항으로 떠났다고. 대만 군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대만이는 당황해서 날짜를 착각한 모양이라고 얼버무리고 끊었음. 전화를 끊은 뒤에도 대만이는 한동안 전화기 앞을 떠나지 못했음. 태섭이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다는 감각이 정대만을 덮쳤음. 어제 기차 플랫폼에서 느꼈어야 했을 감각이었음.
그 뒤로도 대만이는 한동안 나름 잘 지냈음.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그뿐이었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없는건 아니었음. 하지만 스스로 할만큼 했다는 마음이 더 컸음. 뭘 제대로 했던 건 아니지만 남자랑 친구 이상의 교제를 시도해본 것 자체가 대만이로선 엄청난 일이었음. 정말 연인다운 일은 아무것도 안 했었나, 그 즈음의 대만이는 돌이켜 보았음. 한번은 같이 전철을 탔을 때 나란히 앉은 둘의 허벅지가 맞닿은 적이 있었음. 그정도야 딱히 의식할 정도도 아니었기에 내버려 두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태섭이 엄청나게 긴장하는 게 느껴졌음. 호기심이 인 대만이는 조는 척하면서 태섭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보았음. 살짝 눈을 떠 내려다보니 송태섭은 손바닥을 쥐었다폈다 하며 동요를 숨기고 있었음. 목적지는 금방이라 둘은 곧 일어나야 했음. 내가 잠깐 잤나보네, 미안하다. 대만이의 말에 태섭이는 어깨가 아프다며 투덜댔지만 대만이는 태섭이의 귀 끝이 빨개져있는 걸 보았음. 그게 끝이었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둘이 만나면서 했던 스킨십은 그뿐이었음. 좀 피곤한 등교길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할 수 있을 법한 스킨십. 태섭이와의 교제는 나쁘지 않았음. 좋냐 싫냐 하면 좋았음. 송태섭과는 애초에 북산에서 서로 볼 꼴 못볼 꼴 다 본 편한 사이였고,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감각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음.
본격적으로 대만이 속세에서 후폭풍이라 일컫는 것을 쳐맞게 된 건 태섭이 미국으로 떠난 뒤에 세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2학년이 되어 처음 주전으로 나간 대학 농구경기에서였음. 농구 명문인 대학교라 팀원들도 분명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재일텐데, 패스가 뭔가 달랐음. 태섭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주지 않았을텐데.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감. 처음 호흡을 맞춰본 거라 그랬겠지. 애써 경기에 다시 집중한 대만이는 삼점슛을 쏘아 넣는 데 성공했음. 좋았어, 정대만! 멤버들이 외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 뭔가가... 빠져있어. 정대만은 생각했음. 뭔가 부족했음. 대만이는 자꾸 코트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렸음. 삼점슛을 넣으면, 누구보다 환해지던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았음. 몸은 반사적으로 경기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송태섭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음.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대만이는 계속 태섭이를 생각하고 있었음. 당시에는 태섭이가 주장이라서 점수가 나는 것에 기뻐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표정은...매번 다시 정대만에게 반하는 표정이었음. 도미노가 무너지는 것처럼, 송태섭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은 또 다른 몇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고, 그 몇 가지 생각은 각각 또 다른 몇 가지의 생각을 불러일으켰음. 그 녀석이 쓰던 곱슬머리용 헤어 왁스를 드럭스토어에서 마주치고는, 쓰지도 못할 왁스를 주머니를 털어 홀린듯이 사 버리고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온 그날 정대만은 결심했음.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멀끔한 외모의 대만이라 여자를 사귀는 건 어렵지 않았음. 하지만 그 누구를 만나도 뭔가가 달랐음. 뭔가 불편하고 어딘지 어긋난 듯한 감각이 있었는데 정대만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좋은 향기가 나는 여자애들과 데이트를 할 때 마다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음.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고 하는 행위들이 태섭이와의 짧은 교제를 상기시킬 뿐이었음. 태섭이는 그때 블렌드 원두의 블랙커피를 마셨지. 이런 생각만 나서 데이트도 그만두었음.
정대만은 태섭이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음. 태섭이와 이야기를 하면 이 이질감과 불편함의 정체가 좀 더 확실해질 것 같았음. 태섭이네 집에 연락해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언제 미국에 가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선배가 지금 시점에 연락처를 물어보는 건 부자연스러울것 같았음. 그렇다고 사귀었던 사이라는 걸 밝힐수도 없는 노릇이었음.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은 나타났음. 본가에 내려갔던 정대만이 우연히 백호와 마주치게 된 거였음. 대만이는 백호와 패밀리레스토랑에 들어가 근황을 나누었음. 그러다 백호가 태섭이의 이야기를 꺼냈음. 백호와 태웅이도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어서 가끔 전화해서 조언도 듣고 이야기도 나눈다는 거였음. 대만군도 가끔 전화하지? 대만이가 사준 파르페를 먹으며 백호가 던진 질문에 대만이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당연하지, 하고 대답했음. 그리고 없는 연기력을 총동원해서 이야기했음. 그러고보니 태섭이와 전화한지 좀 되어서 오랜만에 해볼까 하는데, 전화번호를 적어둔 걸 자취방에 두고와서 혹시 지금 알려줄 수 있냐고. 백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당연하쥐! 외치고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태섭의 번호를 알려주었음. 백호에게는 아무런 필기구가 없어서 대만이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볼펜을 빌려 그 숫자들을 받아적었음. 흔하디 흔한 숫자들의 조합이었지만, 대만에게는 태섭이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음.
그리고...태섭이는 전화를 피했음. 처음엔 통신불량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만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끊는 게 몇번이나 이어지자 깨달았음. 우리 정말 헤어졌구나. 마음 깊은곳에서 정대만은 자신이 뭔가 제스처를 취하면 언제든지 이 관계는 다시 시작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음. 하지만 아니었음. 형은 워낙에 상냥하잖아요. 언젠가 태섭이가 지나가듯 얘기한 적이 있었음. 그건 틀린 말이었음. 정대만은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음. 적어도 송태섭에게는. 대만이의 머릿속에 헤어지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음. 태섭이는 억지로 대만이의 손을 끌어와 악수를 했었음. 그 전에는 단 한번도 악수같은 걸 한 적 없었음. 그 때 그 애의 손은 어떤 느낌이었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음.
정대만은 미친듯이 알바를 했음. 미국에 갈 비행기표를 사야하기 때문이었음. 주소는 백호에게서 받았음. 주소를 적은 종이를 잃어버렸다는 대만이의 말에 태섭과 편지를 하고 있던 백호는 또 아무런 의심 없이 주소를 알려주었음. 대만군 은근 덜렁거린다니까. 백호는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었음. 학기가 끝나고 돈이 모이자마자 대만이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고, 그렇게 태섭이의 집 앞에서 끌어안은 채 얼굴을 맞대고 있던 정우성과 송태섭을 마주치게 된 거였음.
탕!
그릇을 힘차게 내려놓는 소리에 대만이는 잠에서 깼음. 여기가 어디지? 멍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고, 몸 이곳저곳이 쑤셨음. 대만이는 소파 위에 있었음. 한쪽에 부엌이 딸린 작은 거실...여긴 미국에 있는 송태섭의 집이었음. 그리고 지금 앞에 서 있는 정우성의 집이기도 했음.
먹어요.
정우성이 턱짓하는 탁자 위엔 시리얼이 담긴 그릇과 사과가 놓여있었음. 살짝 멍든 사과를 보자 어제의 태섭이가 생각나며 가슴이 찌릿했음.
태섭이는...?
나간지 한참 됐어요. 아침 연습이 있어서.
'한참'이라는 말에 어쩐지 강세가 들어있는 것 같아서-마치 여태껏 자고있던 걸 책망이라도 하는듯한 말투여서-대만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음.
고맙다.
그래도 불청객에게 아침밥을 차려 준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 대만이는 감사를 표했음. 목이 까끌한게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밥투정할 처지는 아니어서 잠자코 먹었음. 억지로 마지막 한 입까지 삼킨 뒤, 대만이는 나갈 준비를 하는 정우성에게 어제 밤부터 목에 걸려있던 질문을 내뱉었음.
태섭이랑은, 무슨 사이야?
대만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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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섭이가 미국행을 이야기하며 플랫폼에서 이별을 고했을때, 대만이는 그냥 벙쪘음. 미국을 간다고? 끝이라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나 방금...차인 건가? 실연의 아픔이 아닌 황당함과 당황함만이 느껴졌음. 대만이는 다음날 오전에 태섭이네로 전화를 걸었음. 가끔 전화를 바꿔주곤 했어서 얘기를 나누어 본 적 있는 태섭이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지. 태섭이를 바꿔달라는 대만이의 말에 태섭이의 어머니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했음. 태섭이는 오늘 아침 비행기라 새벽에 벌써 공항으로 떠났다고. 대만 군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대만이는 당황해서 날짜를 착각한 모양이라고 얼버무리고 끊었음. 전화를 끊은 뒤에도 대만이는 한동안 전화기 앞을 떠나지 못했음. 태섭이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다는 감각이 정대만을 덮쳤음. 어제 기차 플랫폼에서 느꼈어야 했을 감각이었음.
그 뒤로도 대만이는 한동안 나름 잘 지냈음.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그뿐이었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없는건 아니었음. 하지만 스스로 할만큼 했다는 마음이 더 컸음. 뭘 제대로 했던 건 아니지만 남자랑 친구 이상의 교제를 시도해본 것 자체가 대만이로선 엄청난 일이었음. 정말 연인다운 일은 아무것도 안 했었나, 그 즈음의 대만이는 돌이켜 보았음. 한번은 같이 전철을 탔을 때 나란히 앉은 둘의 허벅지가 맞닿은 적이 있었음. 그정도야 딱히 의식할 정도도 아니었기에 내버려 두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태섭이 엄청나게 긴장하는 게 느껴졌음. 호기심이 인 대만이는 조는 척하면서 태섭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보았음. 살짝 눈을 떠 내려다보니 송태섭은 손바닥을 쥐었다폈다 하며 동요를 숨기고 있었음. 목적지는 금방이라 둘은 곧 일어나야 했음. 내가 잠깐 잤나보네, 미안하다. 대만이의 말에 태섭이는 어깨가 아프다며 투덜댔지만 대만이는 태섭이의 귀 끝이 빨개져있는 걸 보았음. 그게 끝이었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둘이 만나면서 했던 스킨십은 그뿐이었음. 좀 피곤한 등교길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할 수 있을 법한 스킨십. 태섭이와의 교제는 나쁘지 않았음. 좋냐 싫냐 하면 좋았음. 송태섭과는 애초에 북산에서 서로 볼 꼴 못볼 꼴 다 본 편한 사이였고,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감각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음.
본격적으로 대만이 속세에서 후폭풍이라 일컫는 것을 쳐맞게 된 건 태섭이 미국으로 떠난 뒤에 세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2학년이 되어 처음 주전으로 나간 대학 농구경기에서였음. 농구 명문인 대학교라 팀원들도 분명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재일텐데, 패스가 뭔가 달랐음. 태섭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주지 않았을텐데.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감. 처음 호흡을 맞춰본 거라 그랬겠지. 애써 경기에 다시 집중한 대만이는 삼점슛을 쏘아 넣는 데 성공했음. 좋았어, 정대만! 멤버들이 외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 뭔가가... 빠져있어. 정대만은 생각했음. 뭔가 부족했음. 대만이는 자꾸 코트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렸음. 삼점슛을 넣으면, 누구보다 환해지던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았음. 몸은 반사적으로 경기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송태섭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음.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대만이는 계속 태섭이를 생각하고 있었음. 당시에는 태섭이가 주장이라서 점수가 나는 것에 기뻐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표정은...매번 다시 정대만에게 반하는 표정이었음. 도미노가 무너지는 것처럼, 송태섭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은 또 다른 몇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고, 그 몇 가지 생각은 각각 또 다른 몇 가지의 생각을 불러일으켰음. 그 녀석이 쓰던 곱슬머리용 헤어 왁스를 드럭스토어에서 마주치고는, 쓰지도 못할 왁스를 주머니를 털어 홀린듯이 사 버리고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온 그날 정대만은 결심했음.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멀끔한 외모의 대만이라 여자를 사귀는 건 어렵지 않았음. 하지만 그 누구를 만나도 뭔가가 달랐음. 뭔가 불편하고 어딘지 어긋난 듯한 감각이 있었는데 정대만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좋은 향기가 나는 여자애들과 데이트를 할 때 마다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음.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고 하는 행위들이 태섭이와의 짧은 교제를 상기시킬 뿐이었음. 태섭이는 그때 블렌드 원두의 블랙커피를 마셨지. 이런 생각만 나서 데이트도 그만두었음.
정대만은 태섭이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음. 태섭이와 이야기를 하면 이 이질감과 불편함의 정체가 좀 더 확실해질 것 같았음. 태섭이네 집에 연락해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언제 미국에 가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선배가 지금 시점에 연락처를 물어보는 건 부자연스러울것 같았음. 그렇다고 사귀었던 사이라는 걸 밝힐수도 없는 노릇이었음.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은 나타났음. 본가에 내려갔던 정대만이 우연히 백호와 마주치게 된 거였음. 대만이는 백호와 패밀리레스토랑에 들어가 근황을 나누었음. 그러다 백호가 태섭이의 이야기를 꺼냈음. 백호와 태웅이도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어서 가끔 전화해서 조언도 듣고 이야기도 나눈다는 거였음. 대만군도 가끔 전화하지? 대만이가 사준 파르페를 먹으며 백호가 던진 질문에 대만이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당연하지, 하고 대답했음. 그리고 없는 연기력을 총동원해서 이야기했음. 그러고보니 태섭이와 전화한지 좀 되어서 오랜만에 해볼까 하는데, 전화번호를 적어둔 걸 자취방에 두고와서 혹시 지금 알려줄 수 있냐고. 백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당연하쥐! 외치고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태섭의 번호를 알려주었음. 백호에게는 아무런 필기구가 없어서 대만이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볼펜을 빌려 그 숫자들을 받아적었음. 흔하디 흔한 숫자들의 조합이었지만, 대만에게는 태섭이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음.
그리고...태섭이는 전화를 피했음. 처음엔 통신불량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만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끊는 게 몇번이나 이어지자 깨달았음. 우리 정말 헤어졌구나. 마음 깊은곳에서 정대만은 자신이 뭔가 제스처를 취하면 언제든지 이 관계는 다시 시작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음. 하지만 아니었음. 형은 워낙에 상냥하잖아요. 언젠가 태섭이가 지나가듯 얘기한 적이 있었음. 그건 틀린 말이었음. 정대만은 상냥한 사람이 아니었음. 적어도 송태섭에게는. 대만이의 머릿속에 헤어지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음. 태섭이는 억지로 대만이의 손을 끌어와 악수를 했었음. 그 전에는 단 한번도 악수같은 걸 한 적 없었음. 그 때 그 애의 손은 어떤 느낌이었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음.
정대만은 미친듯이 알바를 했음. 미국에 갈 비행기표를 사야하기 때문이었음. 주소는 백호에게서 받았음. 주소를 적은 종이를 잃어버렸다는 대만이의 말에 태섭과 편지를 하고 있던 백호는 또 아무런 의심 없이 주소를 알려주었음. 대만군 은근 덜렁거린다니까. 백호는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었음. 학기가 끝나고 돈이 모이자마자 대만이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고, 그렇게 태섭이의 집 앞에서 끌어안은 채 얼굴을 맞대고 있던 정우성과 송태섭을 마주치게 된 거였음.
탕!
그릇을 힘차게 내려놓는 소리에 대만이는 잠에서 깼음. 여기가 어디지? 멍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고, 몸 이곳저곳이 쑤셨음. 대만이는 소파 위에 있었음. 한쪽에 부엌이 딸린 작은 거실...여긴 미국에 있는 송태섭의 집이었음. 그리고 지금 앞에 서 있는 정우성의 집이기도 했음.
먹어요.
정우성이 턱짓하는 탁자 위엔 시리얼이 담긴 그릇과 사과가 놓여있었음. 살짝 멍든 사과를 보자 어제의 태섭이가 생각나며 가슴이 찌릿했음.
태섭이는...?
나간지 한참 됐어요. 아침 연습이 있어서.
'한참'이라는 말에 어쩐지 강세가 들어있는 것 같아서-마치 여태껏 자고있던 걸 책망이라도 하는듯한 말투여서-대만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음.
고맙다.
그래도 불청객에게 아침밥을 차려 준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 대만이는 감사를 표했음. 목이 까끌한게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밥투정할 처지는 아니어서 잠자코 먹었음. 억지로 마지막 한 입까지 삼킨 뒤, 대만이는 나갈 준비를 하는 정우성에게 어제 밤부터 목에 걸려있던 질문을 내뱉었음.
태섭이랑은, 무슨 사이야?
대만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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