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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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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 퇴치하는 천사 방다병과 떠돌이 의원 하지만 당연히 과거 이상이인 이연화가 센티넬 가이드스러운 관계인거 bgsd..
2편.
방다병이 드디어 연형제를 찾았다는 소문에 천기당이 술렁였다. 하당주는 아들이 혼인이라도 하는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그를 구해준 귀한 손님인 이연화가 운명의 연형제였다는 소식에 더욱 수선을 떨며 이연화를 귀히 여겼다. 그 모양새가 늦장가 간 아들을 선택해준 고맙고 예쁜 며느리에게 하는 것 같아 천기당 수련생들은 뒤에서 웃음을 참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방다병이 이연화 앞에서 눈치 보면서 쩔쩔 매는 꼴이 마치 새 색시에게 빠진 새 신랑마냥 퍽 가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방다병은 만인에게 호감을 사는 부드러운 성품이긴 했으나 차기 당주이자 부잣집 도련님 특유의 당당한 자신감이 있었다. 예의를 지키는 바른 젊은이는 누구에게도 위축되는 법이 없었지만 제 연형제 앞에서는 주인을 따르는 커드란 개가 된 마냥 쩔쩔 매고 마냥 좋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인들조차도 제 주인에게 방방 돌아가는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아 눈을 비비고 못 본 척 외면하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천기당 차기 당주 방다병은 이연화 앞에서 체면도 뭣도 없었다.
"저래도 되는거요?"
어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남편의 말에 하당주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다병이 연형제가 없어 의기소침했다가 이렇게 만났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다병이가 워낙 다정한 아이이니 제 연형제를 만나면 저리될 줄 알았어요."
"내 눈엔 사형이 아니라 배필을 만난 것 같아 보이는구려."
"......"
방장주의 말에 하당주도 입을 다물었다. 연형제가 남녀로 짝지어지면 자연스레 부부가 되었지만 그런 행운은 좀체 없었다. 천기당 천사는 사적으로 정을 통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인위적으로 막지는 않았으나 자연히 그리 흘러갔다. 운 좋게 여인과 연형제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는 혼인을 하지 않고 지냈다. 남녀가 아닌 연형제 간에 연모의 정이 싹튼다면 이에 모두가 모른 척 하면서 인정하는 것 또한 불문율이었다. 하당주는 아들이 후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어미의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그 또한 인연이겠지요."
하당주는 마당을 가로 질러 제 연형제에게 질주하다시피 뛰어가는 아들을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연화! 같이 가!"
방다병이 금새 이연화 옆에 따라 붙었다. 이연화는 그런 방다병을 곁눈으로 흘끗 보고는 발걸음조차 늦추지 않고 걸었다. 어차피 뛰어도 날아도 따라올텐데. 천기산장에서 지내는 한 달간 이연화는 방다병의 행동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오늘은 술법 수련하는거지? 내기 했잖아."
방다병이 기대에 찬 눈으로 이연화 앞을 막으며 눈을 마주치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쪽 저쪽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던 이연화는 포기한 듯 손을 들어 치우라는 시늉을 했다. 저리 가라는 손짓도 무에 그리 반가운지 방다병의 낯에 화색이 돌았다.
"내기는 내기이니 할테지만 나는 정말 능력도 뜻도 없는 일개 의원일 뿐이야.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방소보 너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네 연형제로는 그른 것 같으니 다른 자를 찾아봐. 이렇게 약해 빠진 연형제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겠어?"
"무슨 소리야. 내 몸이 확실히 알아봤다고. 네가 내 연형제가 아니었으면 네가 잠시 넣어준 내력만으로 내가 그리 진정되었겠어?"
이연화는 말문이 막혔다. 방다병의 경맥이 들끓은 그 날, 아무리 운기조식을 해도 진정될 기미가 안 보였더랬다. 연형제를 지척에서 느끼고 경맥이 날뛰는데 방치하는 일은 명을 깎아내리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내력을 불어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다병은 근골이 좋고 자질이 뛰어나 경맥이 용처럼 꿈틀대었다. 공유할 경맥이 지척에 있으니 야생마가 날뛰는 것마냥 난리를 부렸다. 이연화 역시 몸 안에서 경맥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이를 다스리는데에 능해져 있어 호응하지 않았을 뿐,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참지 못하고 기운을 통하려 눈 앞의 젊은이를 눕히고 그대로 접문해 버렸을지도 몰랐다.
방다병은 이같은 사정도 모르고 그저 천진한 눈으로 수련을 하자고 성화였다.
"내가 잘 가르쳐줄테니 걱정말고. 술법으로 경맥을 공유하는 것부터 연습할거야. 하다보면 함께 싸우는 법도 자연스레 알게 될거고."
"나는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데 싸우긴 어찌 싸우겠어."
이연화가 눈썹을 팔자로 휘어뜨리며 호소하듯 말했다. 이 정도로 포기할 상대가 아님을 알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했다.
"무공은 내가 하면 되지. 모든 연형제가 다 싸우는건 아니야. 부상을 낫게 하기도 하고. 너는 의원이니 치유능력이 있지 않을까?"
"그게 뭔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방다병의 얼굴이 갑작스레 붉어졌다. 내력을 주입하는 일 외에도 신체 접촉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부상을 빠르게 치유하고 내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천사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만일 이연화가 무공을 하지 못해 치유를 한다면 이는 방다병이 이연화와 살을 맞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그러니 수련하자는거야! 무공은 못해도 술법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고 의술도 있잖아. 네가 혼란스러운건 이해해. 하지만 네가 없으면 나는 천사가 될 수 없어. 인간을 지키는 일이잖아. 혹시 나와 그...게 걱정되서 거부하는거라면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허둥대는 방다병을 보고 이연화는 저도 모르게 풋 웃었다. 젊은이의 패기와 사람을 따르는 강아지스러운 성실함이 뒤섞여 퍽 정감이 갔다.
하지만 방소보. 내가 걱정하는건 그게 아니라고. 이연화에게 방다병 역시 처음 만난 연형제였다. 하지만 몸 안에 스민 벽차지독이 경맥을 흐트린지 오래였다. 이런 몸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나는 병이 깊어, 방소보. 이런 몸과 경맥을 통한다면 너에게도 좋을게 없을거야."
방다병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무슨 소리야, 이연화? 너 병이 있어?"
"그래. 그러니 하루 빨리 몸이 온전한 연형제를..."
이연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다병이 그의 손을 나꿔채 휘어 잡았다. 진맥하며 내력을 느끼는 방다병의 모습이 주인을 걱정하는 충직한 개의 그것과 비슷하여 이연화는 기가 막혔다.
"최고의 의원을 불러줄게. 나는 너 아니면 싫어."
뭐 이리 막무가내지? 이연화의 눈이 크게 떠졌다. 쓸모없다면 버려야 하거늘. 천기당 천사 수련생들 중 최고수인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비리비리한 사내를 붙잡고 연형제랍시고 함께 하자 조르다니. 이연화는 어린 아이를 얼르듯 말했다.
"세상에 연형제가 하나 뿐인 것도 아니잖아. 오래 기다려서 마음이 급한건 알겠어. 하지만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쉬운 것도 아니고 좀 더 신중한게 좋잖아? 앞날도 창창한데 왜 나같은 사람을 굳이 연형제로 두려고 하는거야? 분명히 너에게 맞는 사람이 있을거야, 방다병."
이연화가 조목조목 말하는 동안 방다병은 잠자코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보자 이연화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이 청년은 어쩐지 매몰차게 끊어내기가 어려웠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부드럽게 거절하고 싶었다. 아니었다면 진작에 몰래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백천원을 지망하는 천사라서, 백천원의 전신인 사고문의 실종된 문주 이상이의 제자를 자처하는 혈기왕성한 청년이라서였을지도 몰랐다.
"그간 다른 사형들이 연형제를 바꾸는걸 봤어. 가능하다는걸 알아. 세상에 경맥이 비슷하게 흐르는 사람이 유일무이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고."
그래, 잘됐네-하는 표정으로 이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다병은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내 연형제가 너였으면 해, 이연화."
이연화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방다병의 눈빛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정직하고 올곧게 던지는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이연화는 눈을 굴려 애먼 정원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는데?"
"그건-"
갑자기 방다병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눈을 데룩데룩 굴리는 모양새가 저도 모를 이유를 찾느라 머리 속이 분주한 모양이었다. 거짓말에 능하지 않은 방다병의 머리에 김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연화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런 방다병을 빤히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하인 두엇이 옆을 지나갔다. 이연화는 참을성있게 말을 기다렸다. 갑자기 불에 데인 사람처럼 화들짝 깨어나며 방다병이 소리를 지르다시피 답하기 시작했다.
"천사는 하늘의 정한 기운으로 지하의 요마를 다스려 인세에 평안을 도모한다! 연형제의 안위 살피기를 제 몸같이 하고, 하늘의 뜻을 펼치는 일에 투신하기를 목숨처럼 여기라!"
덩달아 놀란 이연화는 자신이 내뱉어 놓고도 눈을 깜빡대며 당황하는 방다병을 희한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갑자기 뭘 외치는거야?"
"천기당 수련생이 매일같이 외우는 법규야. 연형제를 살피는 일은 나를 살피고 천하를 살피는 일과도 같아."
흐음, 그래서? 이연화는 고개를 내저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린 결과가 고작 이거로군.
"나는 네가 몸이 약한게 마음에 걸려. 내가 옆에 있어야겠어."
하아.
이연화는 소매자락을 휘어 감아 손을 빼서 방다병의 어깨에 척 얹었다. 그리고는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듯 얼굴을 가까이 대고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방소보. 너희 법규가 연형제를 강조하는건 딴길로 새지 말고 하늘의 뜻에 따라 사악한 요마로부터 인간을 지키라는 뜻이야. 연형제를 두면 혼인도 어려우니까. 요마와 싸우려면 강해야하고 연형제가 나처럼 허약하면 좋을게 없지. 네 본분은 연형제 옆에 있는게 아니라 강해지는거고 그러려면 나보다는 멀쩡한 연형제를 둬야하지 않겠어? 게다가 나는 의원으로 살면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요마 때려잡는 천사라니 가당치도 않아."
"이연화."
방다병이 이연화의 어깨를 잡았다.
"정혼자가 있는거야?"
"뭐?"
대관절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청년이었다. 이연화는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네 말대로 천사들은 혼인할 수 없어. 나는 알고 들어선 길이지만 너는 갑작스러우니까. 갑자기 혼삿길을 막고 서서 천사의 연형제로 살라하면 당황스럽겠지.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 미안해."
"음."
이연화는 다른 의미로 신음을 삼켰다. 차라리 이렇게 착각하게 두는게 나을지도 몰랐다. 어깨를 잡은 방다병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아야야. 힘이 너무 세, 방소보."
나약한 의원인 이연화가 우는 소리를 하자 방다병이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울상을 하고 어깨를 주무르는 이연화를 본 방다병의 눈꼬리가 풀죽은 강아지처럼 내려갔다.
"미안해."
하릴없이 서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방다병을 보자 이연화의 마음이 약해졌다. 한숨을 내쉰 이연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뭐 내기는 내기니까. 소원대로 술법을 익히러 가줄게."
툭 던진 말에 방다병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 이연화의 속이 뜨끔하니 벌써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렇게나 좋아할 일인가.
"어차피 재간도 없으니 흉내내는 정도겠지만. 오히려 이 기회에 네가 다른 연형제를 찾는게 낫다는걸 깨달을지도 모르지."
이연화는 방다병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얼른 앞장 서 걸었다. 방다병은 활짝 웃는 얼굴로 해맑게 말했다.
"이연화, 이쪽이야."
이연화는 콧김을 뿜으며 그대로 뒤로 빙글 돌아 방다병을 지나쳐 반대 방향으로 곧게 걸어갔다. 이연화의 단아한 머리 장식 아래로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흘렀다. 방향을 바꿔 새침하게 흔들리는 머리칼에 잠시 시선을 두었던 방다병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후다닥 이연화를 따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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