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85213688
view 2584
2024.02.22 08:41

* 혹시 모르니 스포주의

 

아스타리온은 항상 의문이었다. 타브는 종종 자신을 쳐다보지 않고도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떻게 반응할 지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앞으로 어디를 가야할 지 항상 확신에 차있었다. 물론 이 파티의 리더니까 – 아마 이 야영지의 일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 바쁘게 머리를 굴리느라 그럴수도 있겠다만.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내심 생각했지만 장난스레 물어본적도 있었다. 

 

‘달링, 어떻게 그렇게 나에 대해서 다 잘 알고 있지? 이렇게까지 나를 잘 알고있다니. 

마치 우리가 이전 생에서도 여러번 만난 것만 같잖아.’

 

그때 타브는 뭐라 했었더라… 잠시 자신을 응시하다가 그럴리가 없잖아, 읊조리고 건조한 목소리로 다음 행선지를 논의했었다.
그래. 역시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 아스타리온은 모닥불의 빛이 어른거리는 타브의 옆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이해관계를 위해 합류한 파티였다.
수백년간 어둠속에서 쥐로 연명하던 자신이 오후의 햇살을 그저 하염없이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주친 타브의 모습은 꽤 아름다웠다.
그렇지 않다면야 타브와 밤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건 아니지…타브가 나를 믿게 하려면 그게 제일 확실하고 보장된 방법이잖아?
그래도 그때 느꼈던 감정이 그저 역겨움과 혐오감만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확실한 건 타브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자신의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것을 요즘들어 느끼고 있었다.

 

힘겨운 전투였다. 사망했던 저를 위더스가 야영지에서 살려냈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타브의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동시에 죽기 직전의 기억들이 쏟아져들어왔다. 죽기 직전 타브가 절망스럽게 외치던 목소리와 일그러지는 얼굴도 기억났다.
분명 ‘안돼, 이번에도 또다시 여기서 죽었어.’라고 했었던 것 같다.

 

이상하다. 타브와 만난 이후로 내가 ‘잠시 죽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니던가. 다른 동료 – 동료라고 하는게 조금 낯간지럽지만 – 가 죽었을때는 이런 반응이 아니었었잖아? 살릴수도 있고 말이야. 유독 제 죽음에 고통스러워하는 타브가 조금 의아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자신의 죽음을 힘들어하는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마치 겉으로 그런게 아닌 진짜 연인같이 느껴져서… 

‘뭐 잘못 말했거나 그렇겠지.‘

아스타리온은 부활 후 찾아오는 뻐근함에 기지개를 피며 곧 기억에서 지웠다. 

 

카사도어의 궁전 앞에 도착했다. 카사도어가 머물고 있는 제 악몽의 장소. 기나긴 굴종의 시간을 몸이 기억하는듯 떨려온다.
고개를 치켜들고 오히려 별 것 아니란 듯 애써 괜찮은 척 걸어본다. 

 

“아스타리온, 우리는 오늘 카사도어를 죽일거야.”

“당연하지, 달링. 그 개자식에게 복수하기만을 기다려왔는걸?”

“만약… 네가 영원히 살고 햇빛 아래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면. 그러면 다른 모든걸 희생해도 괜찮아?”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그걸 위해서 이런 삶을 버텨온거 아니겠어.”

 

아스타리온은 제 불안을 감추는데 바빠서, 이 대화를 나눌 때의 타브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목소리였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다만 돌이켜보니 이 날의 타브는 아침부터 묘하게 조용하고 고민이 많아보였던 것만 얼핏 기억난다. 

 

카사도어를 죽였다. 칠천의 스폰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하, 오래 꿈꿔왔던 복수를 드디어 이루었네-”

“아스타리온, 승천할래?”

말을 마치기도 전에 타브가 물어왔다. 아스타리온은 제 생각을 읽은듯이 먼저 말을 해오는 타브에게 놀라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왜냐면, 왜냐면 타브는 무고하게 잡혀온 스폰들을 이렇게 희생시킬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팔라딘이라서? 아니, 그냥 타브가 걸어온 모험이 그래왔다. 선조의 맹세를 한 타브는 절대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내심 꿈꿔왔던 제 소망을 감추고 이대로 넘어가려 했었다.
승천을 포기해서라도 타브와 남은 모험을, 삶을 이어가려 했으니까. 

 

얼레벌레 승천이 진행되었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끝나고 나니 제 몸에 넘치는 힘과 권능을 느끼는데 도취되어 직후의 기억은 흐릿하다. 다만 씁쓸하게 고개를 숙이던 타브만은 기억난다. 타브는 맹세를 파기한 팔라딘이 되었다. 후회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번에는… 이걸로 만족할거야.’라고 대답해왔다. 무슨 뜻인지 굳이 묻지는 않았다. 

 

모험은 계속되었다. 이전과 달리 강해진 아스타리온이 있기에 이전과 달리 모든 전투는 꽤 수월했다. 엘더브레인을 처치하던 순간조차도 큰 사상자 없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정말 모든 힘겨운 순간이 끝났구나. 아스타리온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때 타브가 아스타리온에게 말해왔다. 

 

“아스타리온, 지금까지 난 네 승천을 여러 번 막았어. 그러고나면 나는 다시 노틸러스호에 갇힌 채 눈을 떠.”

“아하, 꽤 재밌는 농담이었어.”

농담 아니야, 타브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네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번이 일곱번째네. 나는 더이상 네가 죽는 걸 볼 수 없었어. 모든 모험이 끝나도, 네게 남겨진 시간은 결국 유한했으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승천을 하면, 그래도 영원에 가깝게 살 수 있잖아.”

“......”

“내가 없이도, 살 수 있잖아.”

 

그 말 이후로 타브는 이별을 고했어. 아스타리온은 자존심에 붙잡지 않았고. 곧 다시 타브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사랑했잖아. 나는 아니더라도 너는 날 사랑했잖아. 시간 지나면 결국 나를 보러 오지 않겠어?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스타리온은 타브를 볼 수 없었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며 아스타리온이 타브와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뇐 후에야 깨달았지. 카사도어를 죽이기 전, 제게 물어봤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에는 타브 본인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

아스타리온은 모르지만 타브는 아스타리온을 위해 반복적으로 회귀한다는 아스타브 습습

몇회차를 해도 매번 아스맨스를 택하는 나를 보면서 회귀물같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