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75540444
view 9359
2023.12.06 22:03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는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는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믿을 수가 없네."
이연화가 손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떨떠름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초현실적이었다. 고민에 온 하룻밤을 썼다 하여 이 상황이 썩 합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손바닥 위에 놓인 환이 그런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이연화야, 이게 무슨 짓이냐." 이연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환을 꾹 쥐었다. 한숨 같은 꿍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게 다 방다병 때문이야. 그 녀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자가 되어서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먹어."
이연화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적비성이 핀잔을 주었다. 이연화가 어깨너머를 흘겨보았다.
"이봐, 적 맹주. 여생을 갑자기 다른 형질로 살아갈지도 모를 판이라고. 지금 내가 하는 어떤 소리도 쓸데없지 않아."
"할 일이 명확한데 뭐하러 신세한탄을 하지? 시간낭비야. 빨리 먹어."
"이거 정말 확실한 거야? 해독은 안 되고 형질만 바뀌면 어떡해?"
이연화가 툴툴거린 말에, 적비성의 눈썹이 조금 더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입을 열어 더 험한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멍하게 상대를 보던 이연화가 왁 소리쳤다. "진짜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방다병이 얼른 끼어들어 말했다.
"아니야! 어, 해독이 완벽하게는 안 될 수도 있지만, 분명히 효과는 있을 거라고 했어. 반절 정도만 해독할 수 있어도 굉장한 성과잖아."
"내가 감수할 대가를 생각하면 충분하지 않다고."
이연화가 투덜거리며 매무새를 고쳐 앉았다. 적비성이 코웃음을 쳤다.
"음인, 양인, 뭐든 상관없다. 음인이든 양인이든 넌 이상이고, 내 유일한 호적수이며 정파 제일인이야. 형질이 바뀐다 해서 그 잔꾀 부리는 솜씨나 무학의 깨우침이 사라질 일은 없지. 네가 그런 껍데기에 연연하는 사람인 줄 몰랐군."
"아비, 너처럼 무공만 모르는 바보한테야 차이가 없겠지. 형질은 단순한 껍데기가 아냐. 그게 바뀌면 인간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이-."
"불평 듣기 싫다. 빨리 먹기나 해. 내가 먹여주길 바라는 게 아니면."
적비성의 눈이 번쩍였다. 이연화가 한숨을 푹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네 얼굴 봐서 시도하는 거야, 방다병. 이게 실패하면 다신 나한테 영험한 약초 얘기 꺼내지 마. 천기산장 사람들 여기저기 돌리지도 말고. 약속해." 방다병의 얼굴을 정확히 가리키며 힘주어 말하자, 방다병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앳된 얼굴에 긴장과 기대의 빛이 역력했다. 이연화가 마지막 한숨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보고 계시다면 부디 못난 제자에게 2할의 운을 주십시오."
한탄하듯 중얼거리자, 어디선가 스승님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를 골탕먹일 때에도 무언가를 베풀어주실 때에도 똑같이 웃으셔서, 이게 좋은 징조인지 잘 모르겠네. 내심 갸웃한 이연화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두 개의 환을 톡 털어 넣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손에서 멀쩡하던 환은 점막을 만나자 이내 물처럼 스르륵 녹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적비성의 손이 등으로 와 닿았다.
이연화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체내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너무 크지 않았다면 무슨 소리라도 냈을 터였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그 약이, 마치 강력한 자석처럼 체내의 벽차지독을 끌어당겼다. 맹독 중의 맹독이 한곳으로 온통 몰리자, 그 부위가 칼로 난자당하듯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적비성의 내력이 체내를 강하게 뒤흔들어 통증이 몇 배로 증폭되었다. 야, 날 죽이고 싶으면 그냥 죽이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냐? 이 무식한 철면피야! 이연화는 내심 고함을 지르듯이 생각했으나, 말소리 비슷한 것도 내지 못했다. 금세 목구멍이 뜨끈해졌다.
"아비, 좀 천천히 해! 이러다 큰일 나겠어."
초조하게 지켜보던 방다병이 버럭 외쳤을 때, 이연화는 감격한 나머지 제자를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적비성이 쯧 혀를 찼다. 해일처럼 밀려오던 내력이 조금 물러나면서, 격통이 그나마 견딜 만하게 바뀌었다. 이연화는 입으로 넘어온 피를 뱉으며 숨을 골랐다. 죽거나 정신을 놓지 않으려면 자신도 사력을 다해야 했다.
양주만과 비풍백양의 내력이 뒤섞였다. 화봉초의 인도에 이끌려, 그 강대하고 오묘한 기운은 마치 알 껍질처럼 벽차지독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연화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 알 껍질을 한 겹 한 겹 덧씌우듯이 내력을 운용했다. 적비성 역시 그 정교한 작업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연화의 미간으로 깊은 골이 생겼다. 약효의 도움이 있더라도 지지부진하고 지난한 일이었다. 태풍 속에서 쌀알 크기의 조각을 깎아내는 기분이었다.
"이연화, 힘내. 제발 힘을 내."
이연화의 앞에 꿇어앉은 방다병이 기도하듯이 말했다. 이연화가 조용히 혀뿌리를 물었다. 상대를 안심시키고 싶었지만, 여느 때처럼 괜찮다는 허세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연화는 온몸뿐 아니라 긴 머리칼까지 점점 땀으로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알을 부수고 나오기 위해 날뛰던 벽차지독이 비교적 잠잠해졌을 즈음, 적비성이 일순 흡 소리를 내며 몸을 긴장시켰다.
커다란 손바닥이 등을 두드렸다. 그와 함께, 내력과 화봉초에 둘러싸였던 벽차지독이 이연화의 목구멍으로 치밀었다.
컥 소리가 터졌다. 핏덩이와 함께, 시커멓다 못해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바닥으로 확 흩뿌려졌다. 온몸의 경맥이 들끓는 와중에도, 이연화는 급히 눈짓하여 방다병이 그것에 닿지 않도록 했다. 바닥에 닿은 독과 피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솟았다. 벽차지독이 배출되었다 하여 바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연화는 온통 지진이 난 것 같은 체내를 정돈하며 보다 활발히 양주만을 전개했다. 비풍백양의 기운은 이연화의 몸 속을 한 번 쭉 돌더니,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에 만족한 듯 빠르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적비성이 손을 뗐을 때, 방에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힘겹게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방을 울렸다. 이연화를 지켜보던 방다병의 눈동자와 입술이 떨렸다. 방다병이 바닥의 잔해와 이연화를 번갈아 보았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청년은 실패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물었다.
"되...된 거야? 해독이 됐어?"
이연화는 바로 눈을 뜨거나 답하지 않았다. 십 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온 탓에, 벽차지독 없는 체내가 오히려 낯설었다. 아직 내력의 수준은 미미했지만, 몸의 어디로 내력을 보내더라도 독의 그림자가 따라붙지 않았다. 한기도 고통도, 늘 칼날 위를 걷는 듯했던 위기감도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잔잔하고 고요했다. 이연화가 한 차례 헛웃음을 뱉었다. 그 뺨과 귀가 은은하게 붉어졌다. 이 평온함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반가웠다.
"이연화, 어때? 된 거야? 말 좀 해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의 말초까지 내력을 쭉 돌려본 다음에야, 이연화는 눈을 떴다. 가볍게 떠올랐던 머리카락이 가라앉았다. 피에 젖은 입으로, 이연화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느새 반쯤 쉬어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됐어, 방 대협. 네가 해냈다고."
"진짜야?"
방다병이 물었다. 커다란 눈망울이 순식간에 그렁그렁해졌다. "진짜, 진짜야? 정말 다 해독된 거야? 또 나 속이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방다병이 거푸 물으며 적비성과 이연화를 번갈아 보았다. 적비성이 고개를 끄덕했다.
"알고 있었지만, 정말 엄청난 독이군. 나보다 내력이 덜한 자였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이연화, 이연화! 해독이 됐대! 정말 해독이 됐대!"
방다병이 정신없이 외치며 양팔을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이연화가 허탈하게 웃으며 건넨 말에, 방다병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이연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연화는 뒤로 한 차례 휘청했다가, 곧 양손을 들어 방다병의 등을 토닥였다. 방다병이 엉엉 울며 소리쳤다.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네 몸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준 적 한 번도 없으면서!"
"쯧, 그냥 기뻐하면 될걸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허물을 들추다니. 버릇없는 제자구만."
이연화가 짐짓 야단치며 방다병의 등을 쓸었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방다병은 한참을 더 울었다. 많이 피로하다 못해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이연화는 상대를 금방 밀어내지 않고 한동안 달래주었다. 꺽꺽거리는 소리와 끌어안은 팔에서, 청년이 지금껏 얼마나 많이 걱정하고 노력했는지 생생하게 전해진 탓이었다. 코를 훌쩍거리며 멀어진 얼굴이 새빨갰다. 방다병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이연화의 어깨며 팔을 더듬었다.
"이연화. 진짜 안 아파? 이제 괜찮아? 안 추워?"
"괜찮다니까. 누가 보면 내가 네 자식인 줄 알겠다, 방소보."
일부러 농담을 던지며 툭 치자, 방다병이 어이없이 웃었다. 눈물로 엉망이었지만, 상대는 어느 때보다도 기쁘게 빛나고 있었다. 목을 가볍게 돌린 적비성이 이연화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건넸다.
"형질의 변화는 없는 것 같던데."
"오, 그렇지? 나도 다른 건 전혀 못 느끼겠어."
이연화가 반갑게 이야기하며 양팔을 벌렸다. 아직 내력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스무 살 이후 이렇게 몸이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개중 최고의 결과를 얻어냈다는 사실에 머리가 약간 어지러울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축하주라도 진탕 나누고 싶었으나, 이연화는 방다병에게 부산스레 등을 떠밀려 일찍 침상에 눕게 되었다. 쉬어야 한다는 방다병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심각한 중독에서 막 벗어난 만큼, 이연화의 몸뚱이는 그 과정을 견디느라 꽤 약해져 있었다.
그날 밤, 이연화는 꿈에서 칠목산을 만났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노인은 가끔씩 이연화의 꿈에 등장했고, 때로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형의 배신을 알고 고통받던 시절에는 꿈 속 스승을 바라보며 통곡하거나 사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결 편안하게 노인을 마주볼 수 있었다. 환상이든 혼백이든, 옛날처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술을 마시는 칠목산을 앞에 두고 심각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축하한다, 제자야. 드디어 그 형벌에서 놓여났구나! 이제 술도 마음껏 마시고 사람도 적당히 패면서 생을 즐길 날만 남았어, 하하하.
"하나뿐인 제자와 무공에 미친 바보 덕분이죠. 제가 그래도 인복이 없진 않아요."
-내 보기엔 사고문 때보다 지금 네 인복이 더 나아. 뭐, 그때보다 네놈 성질머리도 지금이 더 나아졌고.
칠목산이 삿대질하며 건넨 말에, 이연화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의 자신은 진실로 오만했고 확신에 차 있었다. 좋은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했지만 그들을 진실로 인정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자신으로 꽉 찼던 세계에서 자신을 과감히 덜어내고 나니, 타인의 빛나는 부분들이 삶을 다채롭게 채우기 시작했다. 이연화가 낮게 웃었다.
"그 녀석이 이상한 약초 얘길 꺼낼 때까지만 해도, 사실 성공할 거라 믿지 않았는데. 방다병의 제안이 실패할 것보다, 방다병이 실망할 게 더 걱정이 됐어요."
-오, 이 녀석이 이제 사부의 마음이란 걸 좀 알게 됐나 보구나!
"사부님이 이런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제가 뭘 실패한 적이 거의 없는데."
-너 왜 나를 대하는 성질머리는 변한 게 없느냐? 건방진 놈 같으니.
일부러 농담처럼 툭 던지자, 칠목산이 투덜거렸다. 빙긋 웃은 이연화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제 평소 운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제가 2할의 확률을 가져온 건 스승님 덕이겠지요. 그 환을 먹기 전에 사부님을 생각했거든요."
-아, 그거 말인데....
칠목산의 말끝이 흐려졌다. 노인은 갑자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이연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술을 대판 마시고 사모를 피하려 하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 탓이었다.
"왜요, 왜 그러세요?"
-그게...나도 진짜 애쓰려고 하긴 했다, 제자야. 진짜야.
칠목산이 무안하게 입맛을 다셨다. 불길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연화는 함정을 향해 발을 내딛는 기분으로 물었다.
"그런데요?"
-그런데 그게, 내가 애쓴다고 다 되는 일은 아니라...에이, 그 삶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 너라면 어떻게든 잘 적응하고 살겠지. 혹시 아느냐, 자손을 만드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 될지 모르지. 네가 양육을 당최 어찌 할진 모르겠다만....
"아니, 잠깐-자손이요? 양육이라니-그게 다 무슨 말씀이에요?"
-난 언제나 네가 잘 살긴 바란다는 거지, 제자야. 아이고, 술 약속이 있었는데 늦겠네. 난 이만 가보마, 잘 살거라!
"잠깐만요. 스승님. 스승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칠목산을 거푸 부르다가, 이연화는 그만 얼굴을 찡그리며 배에 손을 얹었다. 하복부에서부터 둔하고 생소한 통증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머리도 열이 오른 것처럼 무겁고 아팠다. 아직 벽차지독이 남았나? 왜 이러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시야가 희게 점멸했다가 어두워졌다. 그와 함께 익숙한 부름이 들려왔다.
"이연화, 이연화! 정신 차려, 이거 좀 어떻게 해봐!"
눈을 깜박이니, 자신을 울상으로 내려다보던 방다병이 보였다. 한 팔로 입과 코를 꽉 막은 모양새가 퍽 절실했다. 너 왜 그러고 있냐? 누가 독공이라도 썼어? 그렇게 묻기 전에, 이연화는 그만 아연해졌다. 꿈에서처럼 머리가 뜨거웠고 아랫배는 둔하게 아팠는데, 방안의 공기가 낯선 체취로 무거웠다. 문간에 방다병과 똑같은 자세로 섰던 적비성이, 무뚝뚝한 코맹맹이 소리로 타박했다.
"연꽃 냄새가 온 건물에 진동한다, 이상이. 적당히 좀 넣어."
이연화의 얼굴이 한층 멍해졌다. 두 명의 반응과 이 상황을 조합하니,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결론이 도출되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빙글빙글 돌았다(저놈은 왜 자신이 퍽 부당한 일을 겪은 것처럼 말하는 걸까? 음인은 체취를 어떻게 조절하지? 아 젠장, 이곳에 얘네 말고 또 누가 묵더라? 스승님이 사과한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연화는 적비성을 바라보며 억울하게 외쳤다.
"말도 안 돼. 왜 너는 1할의 확률도 뚫었는데, 나는 2할에서 걸린 거야?"
"생사의 문제가 아니니, 그 부분에서 네 의지가 약했나 보지."
적비성이 세상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드물게도 대노한 이연화가 뭐라 쏘아붙이기 전에, 빨개진 얼굴의 방다병이 난처하게 퍼덕거리며 말했다.
"일단, 일단 이거 좀...어떻게 해볼 수 없어? 이러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알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건데?"
이연화가 난감하게 되묻자, 방다병과 적비성이 서로를 보았다. "우리는...모르지." 방다병이 맹하게 어물거린 말에, 이연화는 당장 손에 잡힌 베개를 던질 뻔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간에서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다병! 누가 아파요? 갑자기 냄새가 너무-응?"
관하봉과 소소용이 함께 나타났다. 손님 방에 머물다가 급히 달려온 모양새였다. 의남매는 곧 심대한 혼돈에 빠진 눈으로 방에 모인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연화는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아이고, 술 약속이 있었는데 늦겠네. 잘 살거라! 허둥지둥 사라지던 뒷모습을 떠올리자, 무례하게도 돌아가신 스승님의 멱살을 잡고 싶어졌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믿을 수가 없네."
이연화가 손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떨떠름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초현실적이었다. 고민에 온 하룻밤을 썼다 하여 이 상황이 썩 합당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손바닥 위에 놓인 환이 그런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이연화야, 이게 무슨 짓이냐." 이연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환을 꾹 쥐었다. 한숨 같은 꿍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게 다 방다병 때문이야. 그 녀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자가 되어서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먹어."
이연화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적비성이 핀잔을 주었다. 이연화가 어깨너머를 흘겨보았다.
"이봐, 적 맹주. 여생을 갑자기 다른 형질로 살아갈지도 모를 판이라고. 지금 내가 하는 어떤 소리도 쓸데없지 않아."
"할 일이 명확한데 뭐하러 신세한탄을 하지? 시간낭비야. 빨리 먹어."
"이거 정말 확실한 거야? 해독은 안 되고 형질만 바뀌면 어떡해?"
이연화가 툴툴거린 말에, 적비성의 눈썹이 조금 더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입을 열어 더 험한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멍하게 상대를 보던 이연화가 왁 소리쳤다. "진짜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방다병이 얼른 끼어들어 말했다.
"아니야! 어, 해독이 완벽하게는 안 될 수도 있지만, 분명히 효과는 있을 거라고 했어. 반절 정도만 해독할 수 있어도 굉장한 성과잖아."
"내가 감수할 대가를 생각하면 충분하지 않다고."
이연화가 투덜거리며 매무새를 고쳐 앉았다. 적비성이 코웃음을 쳤다.
"음인, 양인, 뭐든 상관없다. 음인이든 양인이든 넌 이상이고, 내 유일한 호적수이며 정파 제일인이야. 형질이 바뀐다 해서 그 잔꾀 부리는 솜씨나 무학의 깨우침이 사라질 일은 없지. 네가 그런 껍데기에 연연하는 사람인 줄 몰랐군."
"아비, 너처럼 무공만 모르는 바보한테야 차이가 없겠지. 형질은 단순한 껍데기가 아냐. 그게 바뀌면 인간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이-."
"불평 듣기 싫다. 빨리 먹기나 해. 내가 먹여주길 바라는 게 아니면."
적비성의 눈이 번쩍였다. 이연화가 한숨을 푹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네 얼굴 봐서 시도하는 거야, 방다병. 이게 실패하면 다신 나한테 영험한 약초 얘기 꺼내지 마. 천기산장 사람들 여기저기 돌리지도 말고. 약속해." 방다병의 얼굴을 정확히 가리키며 힘주어 말하자, 방다병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앳된 얼굴에 긴장과 기대의 빛이 역력했다. 이연화가 마지막 한숨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보고 계시다면 부디 못난 제자에게 2할의 운을 주십시오."
한탄하듯 중얼거리자, 어디선가 스승님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를 골탕먹일 때에도 무언가를 베풀어주실 때에도 똑같이 웃으셔서, 이게 좋은 징조인지 잘 모르겠네. 내심 갸웃한 이연화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두 개의 환을 톡 털어 넣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손에서 멀쩡하던 환은 점막을 만나자 이내 물처럼 스르륵 녹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적비성의 손이 등으로 와 닿았다.
이연화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체내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너무 크지 않았다면 무슨 소리라도 냈을 터였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그 약이, 마치 강력한 자석처럼 체내의 벽차지독을 끌어당겼다. 맹독 중의 맹독이 한곳으로 온통 몰리자, 그 부위가 칼로 난자당하듯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적비성의 내력이 체내를 강하게 뒤흔들어 통증이 몇 배로 증폭되었다. 야, 날 죽이고 싶으면 그냥 죽이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냐? 이 무식한 철면피야! 이연화는 내심 고함을 지르듯이 생각했으나, 말소리 비슷한 것도 내지 못했다. 금세 목구멍이 뜨끈해졌다.
"아비, 좀 천천히 해! 이러다 큰일 나겠어."
초조하게 지켜보던 방다병이 버럭 외쳤을 때, 이연화는 감격한 나머지 제자를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적비성이 쯧 혀를 찼다. 해일처럼 밀려오던 내력이 조금 물러나면서, 격통이 그나마 견딜 만하게 바뀌었다. 이연화는 입으로 넘어온 피를 뱉으며 숨을 골랐다. 죽거나 정신을 놓지 않으려면 자신도 사력을 다해야 했다.
양주만과 비풍백양의 내력이 뒤섞였다. 화봉초의 인도에 이끌려, 그 강대하고 오묘한 기운은 마치 알 껍질처럼 벽차지독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연화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 알 껍질을 한 겹 한 겹 덧씌우듯이 내력을 운용했다. 적비성 역시 그 정교한 작업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연화의 미간으로 깊은 골이 생겼다. 약효의 도움이 있더라도 지지부진하고 지난한 일이었다. 태풍 속에서 쌀알 크기의 조각을 깎아내는 기분이었다.
"이연화, 힘내. 제발 힘을 내."
이연화의 앞에 꿇어앉은 방다병이 기도하듯이 말했다. 이연화가 조용히 혀뿌리를 물었다. 상대를 안심시키고 싶었지만, 여느 때처럼 괜찮다는 허세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연화는 온몸뿐 아니라 긴 머리칼까지 점점 땀으로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알을 부수고 나오기 위해 날뛰던 벽차지독이 비교적 잠잠해졌을 즈음, 적비성이 일순 흡 소리를 내며 몸을 긴장시켰다.
커다란 손바닥이 등을 두드렸다. 그와 함께, 내력과 화봉초에 둘러싸였던 벽차지독이 이연화의 목구멍으로 치밀었다.
컥 소리가 터졌다. 핏덩이와 함께, 시커멓다 못해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바닥으로 확 흩뿌려졌다. 온몸의 경맥이 들끓는 와중에도, 이연화는 급히 눈짓하여 방다병이 그것에 닿지 않도록 했다. 바닥에 닿은 독과 피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솟았다. 벽차지독이 배출되었다 하여 바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연화는 온통 지진이 난 것 같은 체내를 정돈하며 보다 활발히 양주만을 전개했다. 비풍백양의 기운은 이연화의 몸 속을 한 번 쭉 돌더니,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에 만족한 듯 빠르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적비성이 손을 뗐을 때, 방에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힘겹게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방을 울렸다. 이연화를 지켜보던 방다병의 눈동자와 입술이 떨렸다. 방다병이 바닥의 잔해와 이연화를 번갈아 보았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청년은 실패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물었다.
"되...된 거야? 해독이 됐어?"
이연화는 바로 눈을 뜨거나 답하지 않았다. 십 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온 탓에, 벽차지독 없는 체내가 오히려 낯설었다. 아직 내력의 수준은 미미했지만, 몸의 어디로 내력을 보내더라도 독의 그림자가 따라붙지 않았다. 한기도 고통도, 늘 칼날 위를 걷는 듯했던 위기감도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잔잔하고 고요했다. 이연화가 한 차례 헛웃음을 뱉었다. 그 뺨과 귀가 은은하게 붉어졌다. 이 평온함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반가웠다.
"이연화, 어때? 된 거야? 말 좀 해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의 말초까지 내력을 쭉 돌려본 다음에야, 이연화는 눈을 떴다. 가볍게 떠올랐던 머리카락이 가라앉았다. 피에 젖은 입으로, 이연화는 희미하게 웃었다. 어느새 반쯤 쉬어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됐어, 방 대협. 네가 해냈다고."
"진짜야?"
방다병이 물었다. 커다란 눈망울이 순식간에 그렁그렁해졌다. "진짜, 진짜야? 정말 다 해독된 거야? 또 나 속이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방다병이 거푸 물으며 적비성과 이연화를 번갈아 보았다. 적비성이 고개를 끄덕했다.
"알고 있었지만, 정말 엄청난 독이군. 나보다 내력이 덜한 자였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이연화, 이연화! 해독이 됐대! 정말 해독이 됐대!"
방다병이 정신없이 외치며 양팔을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이연화가 허탈하게 웃으며 건넨 말에, 방다병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이연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연화는 뒤로 한 차례 휘청했다가, 곧 양손을 들어 방다병의 등을 토닥였다. 방다병이 엉엉 울며 소리쳤다.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네 몸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준 적 한 번도 없으면서!"
"쯧, 그냥 기뻐하면 될걸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허물을 들추다니. 버릇없는 제자구만."
이연화가 짐짓 야단치며 방다병의 등을 쓸었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방다병은 한참을 더 울었다. 많이 피로하다 못해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이연화는 상대를 금방 밀어내지 않고 한동안 달래주었다. 꺽꺽거리는 소리와 끌어안은 팔에서, 청년이 지금껏 얼마나 많이 걱정하고 노력했는지 생생하게 전해진 탓이었다. 코를 훌쩍거리며 멀어진 얼굴이 새빨갰다. 방다병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이연화의 어깨며 팔을 더듬었다.
"이연화. 진짜 안 아파? 이제 괜찮아? 안 추워?"
"괜찮다니까. 누가 보면 내가 네 자식인 줄 알겠다, 방소보."
일부러 농담을 던지며 툭 치자, 방다병이 어이없이 웃었다. 눈물로 엉망이었지만, 상대는 어느 때보다도 기쁘게 빛나고 있었다. 목을 가볍게 돌린 적비성이 이연화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건넸다.
"형질의 변화는 없는 것 같던데."
"오, 그렇지? 나도 다른 건 전혀 못 느끼겠어."
이연화가 반갑게 이야기하며 양팔을 벌렸다. 아직 내력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스무 살 이후 이렇게 몸이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개중 최고의 결과를 얻어냈다는 사실에 머리가 약간 어지러울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축하주라도 진탕 나누고 싶었으나, 이연화는 방다병에게 부산스레 등을 떠밀려 일찍 침상에 눕게 되었다. 쉬어야 한다는 방다병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심각한 중독에서 막 벗어난 만큼, 이연화의 몸뚱이는 그 과정을 견디느라 꽤 약해져 있었다.
그날 밤, 이연화는 꿈에서 칠목산을 만났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노인은 가끔씩 이연화의 꿈에 등장했고, 때로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형의 배신을 알고 고통받던 시절에는 꿈 속 스승을 바라보며 통곡하거나 사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결 편안하게 노인을 마주볼 수 있었다. 환상이든 혼백이든, 옛날처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술을 마시는 칠목산을 앞에 두고 심각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축하한다, 제자야. 드디어 그 형벌에서 놓여났구나! 이제 술도 마음껏 마시고 사람도 적당히 패면서 생을 즐길 날만 남았어, 하하하.
"하나뿐인 제자와 무공에 미친 바보 덕분이죠. 제가 그래도 인복이 없진 않아요."
-내 보기엔 사고문 때보다 지금 네 인복이 더 나아. 뭐, 그때보다 네놈 성질머리도 지금이 더 나아졌고.
칠목산이 삿대질하며 건넨 말에, 이연화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의 자신은 진실로 오만했고 확신에 차 있었다. 좋은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했지만 그들을 진실로 인정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자신으로 꽉 찼던 세계에서 자신을 과감히 덜어내고 나니, 타인의 빛나는 부분들이 삶을 다채롭게 채우기 시작했다. 이연화가 낮게 웃었다.
"그 녀석이 이상한 약초 얘길 꺼낼 때까지만 해도, 사실 성공할 거라 믿지 않았는데. 방다병의 제안이 실패할 것보다, 방다병이 실망할 게 더 걱정이 됐어요."
-오, 이 녀석이 이제 사부의 마음이란 걸 좀 알게 됐나 보구나!
"사부님이 이런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제가 뭘 실패한 적이 거의 없는데."
-너 왜 나를 대하는 성질머리는 변한 게 없느냐? 건방진 놈 같으니.
일부러 농담처럼 툭 던지자, 칠목산이 투덜거렸다. 빙긋 웃은 이연화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제 평소 운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제가 2할의 확률을 가져온 건 스승님 덕이겠지요. 그 환을 먹기 전에 사부님을 생각했거든요."
-아, 그거 말인데....
칠목산의 말끝이 흐려졌다. 노인은 갑자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이연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술을 대판 마시고 사모를 피하려 하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 탓이었다.
"왜요, 왜 그러세요?"
-그게...나도 진짜 애쓰려고 하긴 했다, 제자야. 진짜야.
칠목산이 무안하게 입맛을 다셨다. 불길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연화는 함정을 향해 발을 내딛는 기분으로 물었다.
"그런데요?"
-그런데 그게, 내가 애쓴다고 다 되는 일은 아니라...에이, 그 삶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 너라면 어떻게든 잘 적응하고 살겠지. 혹시 아느냐, 자손을 만드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 될지 모르지. 네가 양육을 당최 어찌 할진 모르겠다만....
"아니, 잠깐-자손이요? 양육이라니-그게 다 무슨 말씀이에요?"
-난 언제나 네가 잘 살긴 바란다는 거지, 제자야. 아이고, 술 약속이 있었는데 늦겠네. 난 이만 가보마, 잘 살거라!
"잠깐만요. 스승님. 스승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칠목산을 거푸 부르다가, 이연화는 그만 얼굴을 찡그리며 배에 손을 얹었다. 하복부에서부터 둔하고 생소한 통증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머리도 열이 오른 것처럼 무겁고 아팠다. 아직 벽차지독이 남았나? 왜 이러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시야가 희게 점멸했다가 어두워졌다. 그와 함께 익숙한 부름이 들려왔다.
"이연화, 이연화! 정신 차려, 이거 좀 어떻게 해봐!"
눈을 깜박이니, 자신을 울상으로 내려다보던 방다병이 보였다. 한 팔로 입과 코를 꽉 막은 모양새가 퍽 절실했다. 너 왜 그러고 있냐? 누가 독공이라도 썼어? 그렇게 묻기 전에, 이연화는 그만 아연해졌다. 꿈에서처럼 머리가 뜨거웠고 아랫배는 둔하게 아팠는데, 방안의 공기가 낯선 체취로 무거웠다. 문간에 방다병과 똑같은 자세로 섰던 적비성이, 무뚝뚝한 코맹맹이 소리로 타박했다.
"연꽃 냄새가 온 건물에 진동한다, 이상이. 적당히 좀 넣어."
이연화의 얼굴이 한층 멍해졌다. 두 명의 반응과 이 상황을 조합하니,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결론이 도출되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빙글빙글 돌았다(저놈은 왜 자신이 퍽 부당한 일을 겪은 것처럼 말하는 걸까? 음인은 체취를 어떻게 조절하지? 아 젠장, 이곳에 얘네 말고 또 누가 묵더라? 스승님이 사과한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연화는 적비성을 바라보며 억울하게 외쳤다.
"말도 안 돼. 왜 너는 1할의 확률도 뚫었는데, 나는 2할에서 걸린 거야?"
"생사의 문제가 아니니, 그 부분에서 네 의지가 약했나 보지."
적비성이 세상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드물게도 대노한 이연화가 뭐라 쏘아붙이기 전에, 빨개진 얼굴의 방다병이 난처하게 퍼덕거리며 말했다.
"일단, 일단 이거 좀...어떻게 해볼 수 없어? 이러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알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건데?"
이연화가 난감하게 되묻자, 방다병과 적비성이 서로를 보았다. "우리는...모르지." 방다병이 맹하게 어물거린 말에, 이연화는 당장 손에 잡힌 베개를 던질 뻔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간에서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다병! 누가 아파요? 갑자기 냄새가 너무-응?"
관하봉과 소소용이 함께 나타났다. 손님 방에 머물다가 급히 달려온 모양새였다. 의남매는 곧 심대한 혼돈에 빠진 눈으로 방에 모인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연화는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아이고, 술 약속이 있었는데 늦겠네. 잘 살거라! 허둥지둥 사라지던 뒷모습을 떠올리자, 무례하게도 돌아가신 스승님의 멱살을 잡고 싶어졌다.
https://hygall.com/575540444
[Code: 3f3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