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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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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땅에 내렸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어검이 힘든 날씨라 마차가 속속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소 남씨의 주최라 빠지기 힘들었기에 강징도 수사들을 거느리고 왔다.
이런 때에도 멋을 부리느라 다소 얇은 외투로 몸을 감쌌더니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즐기지도 않던 술을 연일 때려부은 후유증으로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며 몸이 떨리는 것을 억누르던 강징은, 멀리서 객을 맞는 남희신의 그림자가 보이자 반대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하인이 안내해 주는 객실에 도착한 강징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운심부지처는 여름철에도 건물 내부가 서늘한 냉지다. 그럼에도 손님에게 겉치레의 작은 화로나 한 개 놓아주는 것이 고작인데, 한겨울에 이처럼 굉장한 훈기를 뿜는 방은 본 적이 없었다.
방을 치우던 하녀조차도 나가기가 싫어 미적거리는 것 같았다.
강징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 침상 위로 올라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몇 시진이나 추위에 떨면서 왔으니, 제 방보다도 뜨끈한 이부자리가 달콤하지 않을 리 없었다.
피로가 심했을까, 깜박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도 시간이 흐른 느낌이 났다. 골이 깨질 듯이 아파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제는 추운 것이 아니라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강징은 어처구니가 없는 동시에 난감해졌다.
금단을 수련한 사람이 고뿔에 걸리다니, 누가 알면 창피할 일이었다.
벌떡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서둘러 회장으로 나갔다. 역시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강징은 늦어서 죄송하다고 짤막하게 예의를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제가 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얼마나 늦었던 건지, 청담회는 무척 빠르게 끝나 버렸다. 하지만 강징은 그 짧은 시간을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움직이지 않으려 해도 덜덜 떨리는 몸을 고정시키느라 식은땀이 흘렀다.
겨우 자리가 파할 때쯤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상태가 나쁜 것이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스치듯이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던 상대가 붙잡았다.
“어디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강종주.”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대답하려던 강징은 순간 너무 놀라 미쳐날뛰듯 떨리던 몸이 얼음처럼 굳어져버렸다. 정신을 차리자 이미 제 이마에 닿았던 손가락이 똑같이 하얀 소매 속으로 물러가고 있었다.
“열이 심하지 않습니까! 객실로 돌아가세요, 곧 약탕을 끓여 보내겠습니다.”
“아닙니다, 쓸데없이 폐를 끼칠 생각은. 회의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까지 말한 강징은 남희신이 미소도 없는 냉한 눈으로 바라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 몸으로, 이런 날씨에 어검을 해서 돌아가시겠다고요?”
“......”
“강종주. 금단을 뚫고 기어드는 병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긴 말 말고 방으로 가십시오.”
아직 근처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얼핏 싸늘한 그의 본색이 튀어나오자 강징은 오히려 제 쪽이 당황하며 항의할 정신머리를 잃고 말았다.
쫓기듯이 물러나오는 길에 부사와 나머지 사람들을 연화오로 돌려보내고.
그리고 강징은 그대로 앓아 누웠다.
남희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금단 있는 사람들은 병치레를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병에 걸린다면 정말로 지독하게 앓는 것이 일반이었다.
이틀 가량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비몽사몽하던 강징은 겨우 의식이 맑아져 오자 무척 곤란해했다.
남의 선부에서 앓아누운 것만 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인데, 남희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여길까 생각하니 뜨겁게 몸을 데워주는 이부자리도 가시방석 같았다.
하지만 일어나 볼래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았고, 아직 낫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려니 무섭게 굴던 남희신의 얼굴이 떠오르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빨리 낫는 수밖에 없겠다고, 강징은 하녀가 들여오는 약과 죽 같은 것들을 부지런히 목구멍으로 털어넣었다.
강징은 정확한 날짜를 세지 못했지만, 앓아 누운 지 나흘째가 되는 날에 남희신이 찾아왔다.
며칠 동안 모아 익숙해진 하녀가 아니라 새하얗게 차려 입은 남희신이 방으로 들어오자 강징은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강징은 남희신이 어떤 태도로 나오며 무슨 소리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첫마디에 웃음기도 없이 나무랐다.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한겨울에 냉욕이라도 하셨던 건가요?”
이 편이야말로 대체. 당신이 내 모친도 아닌데 왜 그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강징은 삐죽 불만스러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겉으로 드러낼 용기는 없었다.
“그게... 안 마시던 술을 조금 마셨더니. 몸이 놀랐던 모양입니다...”
남희신은 팍 쉬어버린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강징을 바라보며 눈빛이 더욱 뾰족해졌다.
수선인이 술을 ‘조금’ 마셨다고 이렇게 될 리가 없다. 평생 술을 삼가던 고소 남씨도 아닌데.
역시 나 때문인가. 남희신은 생각할수록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음 상할 것을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병에 걸려 기운없이 움츠러든 모습을 보는 기분은 사뭇 달랐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몸 관리도 못하십니까?”
남희신은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말투가 까칠하게 나왔다. 거짓으로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쉽던 친절이, 왜 그만 대하면 먹통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강징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은 단둘만 되면 아주 막 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가?
하지만 몸이 아파서였을까. 불만을 품는 대신 약화되고 울적한 감정이 마음자리에 깃들었다.
채 약관도 되기 전에 커다란 가문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었으니, 누군가로부터 질책을 듣는 것이 대체 얼마만의 일인지 몰랐다.
누님을 닮은 줄 알았던 남희신의 꾸지람이 오히려 모친 우자연의 성격에 가깝다는 사실에.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남희신은 답을 기다렸지만 강징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고개를 숙이고 꾹 참을 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계속 화를 내기도 어려워서, 남희신은 가져온 약차를 끓여서 먹인 다음 밖으로 나왔다.
객실을 나와 조금 걷던 그는 얼어붙은 연못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수심에 잠긴 듯, 눈을 내리깔고 선 그를 본 수사들은 또 종주의 병이 도진 게 아닌가 싶어 쉬쉬하면서 스쳐지나갔다.
남희신은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부유한 가문에, 세속에서는 1위로 꼽아준다는 외모.
가식이든 어쨌든 부드러운 성정까지 더하여, 그간 남계인의 선에서 정리된 혼서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위상이 너무도 찬란하고 높았음인지, 남희신에게 직접 마음을 전했던 사람은 오히려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이립을 넘기며 도무지 장가들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자 혼서도 차차 줄어들었다.
그 뿐 아니라, 어쩐지 그에게는 동성도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립이 넘은 나이가 될 때까지 그의 친우는 호방한 섭명결과, 끈기있는 금광요가 전부였다.
심지어 관음묘 사건 후에는 사람이 망가졌단 소리까지 들었으니. 이제 와 면전에서 고백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어제 오늘 알아온 것도 아닌 사람에게.
남희신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찬찬히 강징의 모습을 떠올렸다.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해도 오래 보아 온 사람이기에, 지금 눈 앞에 없는 그를 그려내라고 해도 할 수 있다.
문득 강징의 시중을 드는 하녀가 총총히 지나가자 남희신은 손짓을 하여 불렀다.
“그동안 강종주를 방문한 사람이 있는가?”
하녀는 공손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윽고 그는 남망기를 찾아서 또 질문을 던졌다.
“위공자는 강종주가 아파서 운심부지처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남망기는 불쑥 찾아와 따지는 듯한 형장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만으로도 익숙하게 많은 것을 헤아린 남희신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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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땅에 내렸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어검이 힘든 날씨라 마차가 속속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소 남씨의 주최라 빠지기 힘들었기에 강징도 수사들을 거느리고 왔다.
이런 때에도 멋을 부리느라 다소 얇은 외투로 몸을 감쌌더니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즐기지도 않던 술을 연일 때려부은 후유증으로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며 몸이 떨리는 것을 억누르던 강징은, 멀리서 객을 맞는 남희신의 그림자가 보이자 반대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하인이 안내해 주는 객실에 도착한 강징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운심부지처는 여름철에도 건물 내부가 서늘한 냉지다. 그럼에도 손님에게 겉치레의 작은 화로나 한 개 놓아주는 것이 고작인데, 한겨울에 이처럼 굉장한 훈기를 뿜는 방은 본 적이 없었다.
방을 치우던 하녀조차도 나가기가 싫어 미적거리는 것 같았다.
강징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 침상 위로 올라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몇 시진이나 추위에 떨면서 왔으니, 제 방보다도 뜨끈한 이부자리가 달콤하지 않을 리 없었다.
피로가 심했을까, 깜박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도 시간이 흐른 느낌이 났다. 골이 깨질 듯이 아파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제는 추운 것이 아니라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강징은 어처구니가 없는 동시에 난감해졌다.
금단을 수련한 사람이 고뿔에 걸리다니, 누가 알면 창피할 일이었다.
벌떡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 서둘러 회장으로 나갔다. 역시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강징은 늦어서 죄송하다고 짤막하게 예의를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제가 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얼마나 늦었던 건지, 청담회는 무척 빠르게 끝나 버렸다. 하지만 강징은 그 짧은 시간을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움직이지 않으려 해도 덜덜 떨리는 몸을 고정시키느라 식은땀이 흘렀다.
겨우 자리가 파할 때쯤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상태가 나쁜 것이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스치듯이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던 상대가 붙잡았다.
“어디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강종주.”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대답하려던 강징은 순간 너무 놀라 미쳐날뛰듯 떨리던 몸이 얼음처럼 굳어져버렸다. 정신을 차리자 이미 제 이마에 닿았던 손가락이 똑같이 하얀 소매 속으로 물러가고 있었다.
“열이 심하지 않습니까! 객실로 돌아가세요, 곧 약탕을 끓여 보내겠습니다.”
“아닙니다, 쓸데없이 폐를 끼칠 생각은. 회의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까지 말한 강징은 남희신이 미소도 없는 냉한 눈으로 바라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 몸으로, 이런 날씨에 어검을 해서 돌아가시겠다고요?”
“......”
“강종주. 금단을 뚫고 기어드는 병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긴 말 말고 방으로 가십시오.”
아직 근처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얼핏 싸늘한 그의 본색이 튀어나오자 강징은 오히려 제 쪽이 당황하며 항의할 정신머리를 잃고 말았다.
쫓기듯이 물러나오는 길에 부사와 나머지 사람들을 연화오로 돌려보내고.
그리고 강징은 그대로 앓아 누웠다.
남희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금단 있는 사람들은 병치레를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병에 걸린다면 정말로 지독하게 앓는 것이 일반이었다.
이틀 가량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비몽사몽하던 강징은 겨우 의식이 맑아져 오자 무척 곤란해했다.
남의 선부에서 앓아누운 것만 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인데, 남희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여길까 생각하니 뜨겁게 몸을 데워주는 이부자리도 가시방석 같았다.
하지만 일어나 볼래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았고, 아직 낫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려니 무섭게 굴던 남희신의 얼굴이 떠오르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빨리 낫는 수밖에 없겠다고, 강징은 하녀가 들여오는 약과 죽 같은 것들을 부지런히 목구멍으로 털어넣었다.
강징은 정확한 날짜를 세지 못했지만, 앓아 누운 지 나흘째가 되는 날에 남희신이 찾아왔다.
며칠 동안 모아 익숙해진 하녀가 아니라 새하얗게 차려 입은 남희신이 방으로 들어오자 강징은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강징은 남희신이 어떤 태도로 나오며 무슨 소리를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단둘이 남게 되자 그는 첫마디에 웃음기도 없이 나무랐다.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한겨울에 냉욕이라도 하셨던 건가요?”
이 편이야말로 대체. 당신이 내 모친도 아닌데 왜 그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강징은 삐죽 불만스러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겉으로 드러낼 용기는 없었다.
“그게... 안 마시던 술을 조금 마셨더니. 몸이 놀랐던 모양입니다...”
남희신은 팍 쉬어버린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강징을 바라보며 눈빛이 더욱 뾰족해졌다.
수선인이 술을 ‘조금’ 마셨다고 이렇게 될 리가 없다. 평생 술을 삼가던 고소 남씨도 아닌데.
역시 나 때문인가. 남희신은 생각할수록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음 상할 것을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병에 걸려 기운없이 움츠러든 모습을 보는 기분은 사뭇 달랐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몸 관리도 못하십니까?”
남희신은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말투가 까칠하게 나왔다. 거짓으로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쉽던 친절이, 왜 그만 대하면 먹통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강징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은 단둘만 되면 아주 막 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가?
하지만 몸이 아파서였을까. 불만을 품는 대신 약화되고 울적한 감정이 마음자리에 깃들었다.
채 약관도 되기 전에 커다란 가문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었으니, 누군가로부터 질책을 듣는 것이 대체 얼마만의 일인지 몰랐다.
누님을 닮은 줄 알았던 남희신의 꾸지람이 오히려 모친 우자연의 성격에 가깝다는 사실에.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남희신은 답을 기다렸지만 강징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고개를 숙이고 꾹 참을 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계속 화를 내기도 어려워서, 남희신은 가져온 약차를 끓여서 먹인 다음 밖으로 나왔다.
객실을 나와 조금 걷던 그는 얼어붙은 연못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수심에 잠긴 듯, 눈을 내리깔고 선 그를 본 수사들은 또 종주의 병이 도진 게 아닌가 싶어 쉬쉬하면서 스쳐지나갔다.
남희신은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부유한 가문에, 세속에서는 1위로 꼽아준다는 외모.
가식이든 어쨌든 부드러운 성정까지 더하여, 그간 남계인의 선에서 정리된 혼서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위상이 너무도 찬란하고 높았음인지, 남희신에게 직접 마음을 전했던 사람은 오히려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이립을 넘기며 도무지 장가들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자 혼서도 차차 줄어들었다.
그 뿐 아니라, 어쩐지 그에게는 동성도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립이 넘은 나이가 될 때까지 그의 친우는 호방한 섭명결과, 끈기있는 금광요가 전부였다.
심지어 관음묘 사건 후에는 사람이 망가졌단 소리까지 들었으니. 이제 와 면전에서 고백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어제 오늘 알아온 것도 아닌 사람에게.
남희신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찬찬히 강징의 모습을 떠올렸다.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해도 오래 보아 온 사람이기에, 지금 눈 앞에 없는 그를 그려내라고 해도 할 수 있다.
문득 강징의 시중을 드는 하녀가 총총히 지나가자 남희신은 손짓을 하여 불렀다.
“그동안 강종주를 방문한 사람이 있는가?”
하녀는 공손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윽고 그는 남망기를 찾아서 또 질문을 던졌다.
“위공자는 강종주가 아파서 운심부지처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남망기는 불쑥 찾아와 따지는 듯한 형장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만으로도 익숙하게 많은 것을 헤아린 남희신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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