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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의 산에는 여우가 산다. 깎아지른 절벽과 풀 한 떨기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 사람 세 명이 둘러싸도 안지 못할 암석들로 이루어진 그걸 산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꼭대기가 어디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뾰족한 바윗덩어리들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들에 항상 가려져 있었다. 강징은 밭일을 돕다가 가끔 멍하니 그걸 쳐다보곤 했다. 자꾸만 시선을 끄는 그 광경은 가슴을 간질거리게 하기도 했고 웅장하게 하기도 했다. 강징의 정신이 빠져있는 것을 눈치챈 할머니가 얘야, 하고 부르면 네 하고 곧잘 고개를 숙였지만. 그렇듯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것은 가뭄에 콩 나듯 사람을 끌어들였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아니고. 지도를 그린다는 이들이나 여행을 떠나왔거나 다들 쉬쉬하는 산의 비밀을 기어코 주워듣고 들어온 외지인이 대부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들어가면 시체도 찾지 못한다며 한사코 뜯어말렸으나 거의 말리지 못했다. 그렇게 돌아온 사람은 없었으니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어린 아이들이 흙바닥에 외지인이 떠난 날짜를 세기는 것에도 흥미를 잃을 무렵이면 어른들은 외지인들이 맡기고 간 짐을 정리하면서 사당으로 가 기도를 올렸다. 근심 어린 얼굴들이 내뱉는 말뜻이 조금은 궁금했으나 그런 것을 물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 강징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기도의 대상이 따로 있다는 것은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야 주워들었다. 천년 묵은 여우라고 했다. 여우는 기분이 좋을 때는 두 대가 풍족히 살 만큼의 축복을 베풀지만 심사가 뒤틀릴 때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재앙을 내린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입에 풀칠하고 사는걸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토록 변덕스러운 여우를 두고 누구는 긴 머리의 여자라고도 했고 누구는 술을 좋아하는 미남자라고도 했다. 아무튼 직접 여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사실은 아마 영영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긴 머리의 여자라고 착각할만했다. (술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고 못산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등 뒤로 곧게 뻗은 머리카락은 강징이 살면서 봐온 누구의 것보다도 곱고 윤기가 흘렀다. 햇빛에도 바람에도 상하지 않은 깨끗하고 하얀 피부와 고사 속 선녀라고 착각할만한 이목구비. 걸치고 있는 의복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천이었다. 저건 누가 어떻게 만든 걸까. 아무튼 여우는 강징이 처음 보는 종류의 것들을 형상화한 모습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눈앞의 미남자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했던가. 그제서야 이장의 당부가 떠오른 강징이 얌전하게 눈을 깔았다. 그러나 살랑대는 거대한 여우의 꼬리로 슬그머니 시선을 빼앗기자 여우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강징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눈에 비치는 혐오와 짜증으로 보아 대충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알만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강징을 기른 노부부는 친부모가 아니었다. 커갈수록 그냥 알았다. 그들은 강징만한 아이가 있다기에는 너무 늙었고 닮은 구석 또한 전혀 없다. 주워온 자식이라며 마을 아이들이 놀리는 걸 잠자코 듣고 있던 강징을 노부부가 발견한 날이었다. 10여년 전 다 죽어가는 몰골을 한 사내가 품 속에 안고 나타난 아이. 치료라도 해주려는 것을 뿌리치고 강씨 부부가 데리러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한 남자는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데리고 온 사람이 그토록 처참한 몰골이었는데도 때 하나 묻지 않은 강보와 그가 전하던 또렷한 눈빛으로 강징이 보통 집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노부부는 젖동냥을 하고 가진 것중에서 제일 좋은 것만 쥐어주며 강징을 키웠지만 금방 나타날 줄 알았던 강씨 부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5년 후 마을 밖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비밀리에 수소문을 했을 때야 알았다고 했다. 정확하게 그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진계를 주름잡던 운몽강씨가 멸문당하고 맏딸은 죽임을 당했으며 아들은 행방불명이라는 것을. 소식을 들은 날 노부부는 말없이 앉아 무거운 분위기에 눈치를 보는 강징을 끌어안고 이제는 빛을 잃은 강보를 만지작거렸다. 소식을 전한 이는 얼마 안 있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으니 강징의 뿌리를 아는 사람은 노부부와 강징 뿐이었다.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얼추 자란 아이들을 모은 이장이 10년에 한 번씩 여우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것을 밝혔을 때 왜 모두의 시선이 강징에게 와 꽂혔는지. 왜 어린 아이들은 강징에게 놀자는 말을 하지 않았었는지, 왜 어른들은 강징을 복잡한 얼굴로 보곤 했었는지. 그들에게 강징은 한 번도 ‘우리 마을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분기탱천한 할아버지는 홧병을 얻어 쓰러졌고 심약한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맞설 수 없었다. 병상에 누운 부모를 잠자코 바라보던 강징은 매무새를 가다듬고 그들에게 절을 올렸다. 죽으러 가는 길에 여태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는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강징의 마음은 부부가 제일 잘 알터였다. 그 길로 강징은 이장을 찾아가 그들을 부탁하고 스스로 산에 올랐다. 이장은 알 수 없는 얼굴로 강징을 보다 몇가지 당부의 말을 전해주었다. 눈을 내리깔고 얌전히 모습을 보이라는 말부터 당황하지 말고 여우가 하는 대로 따르다 보면 금방 끝날 것이라는 말을.
그렇게 떠나온 마을에 입에 담지도 못한다는 재앙이 내리는 건 사양이었다. 절절한 사연을 쏟아낼 생각은 없었기에 한 번에 알아들어 주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눈꼽만한 마을에서 잊을만하면 죽을 사람을 골라 바치라는 명령을 내린 네가 지금 화를 내는 게 맞는 일이냐고. 어린애의 눈동자에 드리운 적개심을 여우, 위무선은 단번에 읽었다.
이것 봐라. 마냥 덤덤한 얼굴이라 처한 상황을 이해도 하지 못한 바보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지끈대던 골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흥미가 돋았다. 가끔 있었다. 영웅 심리인지 뭔지 진심으로 제 발로 ‘죽으러’ 오는 인간들이. 위무선은 그런 인간들에게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게다가 기억을 뒤져보니 근래 바쳐진 인간 중 가장 상태가 좋았다. 아까의 대화와 이렇게 당당한 태도를 보아하니 제물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분명했다. 이 인간은 좀 두고 보고 싶어졌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변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위무선은 이마를 짚었던 손을 내리고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넌 별로 먹고 싶지 않아졌어. 어차피 돌아가지도 못할텐데, 여기서 나랑 사는 건 어때?
존나 보고싶은건 1도 안나온데다가 보고싶은대로 안써지기까지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