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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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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강징은 기산 쪽에 발생한 불온한 기미에 정신이 팔려서 잠시 남희신의 존재를 잊었고, 그가 매일 집무실에 오면서 표정이 복잡해지는 것도 몰랐다.
어느날 강징은 성을 내며 사람들을 물려버렸다.
그 동안 남희신이 워낙 조용히 있었으므로 그는 혼자 남았다는 착각에 빠져서 차를 들이키고는 어깨를 주무르며 욕을 중얼거렸다.
“아프십니까?”
갑자기 한 편에서 부드러운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징은 흠칫 놀라며 손을 떼었다.
아, 참. 저 녀석이 있었지.
어린애가 매일매일 몇 시진이나 죽치고 앉아서는, 지치지도 않는구나. 강징은 짜증스레 생각했다.
별반 거슬리지 않아서 내버려뒀던 것이 더럭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만 와도 된다고 말할까, 싶던 강징은 곧장 그가 한가해지면 무슨 공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의심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남희신이 다가와 강징의 뒤에 서며 말했다.
“제가 풀어드리겠습니다.”
강징은 독재자답게 누군가가 자신의 공격 반경 내에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심지어 남희신이 자객처럼 등 뒤에 서서 손을 뻗어오자 질겁을 했다. 하지만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어깨가 잡히며 혈자리에 강한 통증이 왔다.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러버린 강징은 순식간에 눈알까지 뻗는 통증에 어질해졌다. 그러나 욕을 퍼붓기 전에 아프던 자리가 시원해지며 아릿한 쾌감이 번졌다.
“어찌 이리 뭉칠 정도로 두셨습니까.”
남희신이 솜씨 좋게 어깨를 주무르며 말하는데, 강징은 아팠던 건 잠시였고 너무 시원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희신은 충분히 어깨를 풀어준 다음 풍성한 강징의 머리채 너머로 손을 넣어 목도 풀어주기 시작했다.
“피가 굳은 듯하니 몸에 좋은 걸 드셔야겠습니다. 부인께서는 끼니를 거를 때가 많고 약주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금단이 있다고 건강에 소홀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강징은 싹싹하게 피로를 풀어주며 잔소리를 하는 남희신에 어이가 없었다. ...역시 고지식한 고소 남씨의 후계자라 그런지 애늙은이가 따로 없구나.
뭐라 따끔하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입을 열 때마다 남희신의 손가락이 능숙하게 아픈 곳을 만지며 풀어주었다. 이 곳을 주물러지고, 저 곳을 주물러지며 강징은 차츰 뜨거운 물에 잠기는 것처럼 전신이 녹진녹진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 때, 천상의 것 같은 손이 우뚝 멎으며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부인. 왜 침소에 오지 않으십니까? 혼례를 올린 뒤 벌써 몇 주가 지났는지 아십니까.”
강징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순간 주제파악을 시켜줄까 싶은 잔인한 충동이 치밀었지만, 진지하게 답을 바라는 맑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강징은 마지못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아주 바쁜 사람이다. 피곤할 때에는 혼자 있고 싶어.”
그러자 남희신이 살짝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어 아니 오시는 건 허락할 수 없습니다.”
“......”
강징은 정말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 애는 혹시 자기 처지를 모르는 걸까?
정말로 우리가 진짜 부부관계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강징은 그 날 밤 남희신을 찾아갔다. 그가 신방에 드는 것은 혼례식 후 처음이었다.
강징은 얼결에 남희신이 옷을 벗겨주는 시중을 받으며 낯선 곳에 온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예식용품이 다 치워진 방은 연화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전체적인 빛깔은 세속적인 느낌이었지만, 수수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조각이 된 장롱이나 벽에 걸린 서화, 줄줄이 놓인 다양한 악기들이 단아한 정취를 풍겼다.
그러고 있다가 다시 얼결에 손에 든 삼독까지 뺏긴 강징은 뒤늦게 놀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남희신이 이미 검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두 개의 검을 놓을 수 있는 검대에 하얀 패검과, 짙은 보라색의 삼독이 놓이자 이질적인 빛깔들이 어우러지며 묘한 영기를 뿜었다.
“밤이 늦었습니다. 얼른 자도록 합시다.”
뭐? 뭐가 늦어? 이제 해시가 됐는데?
강징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남희신은 벌써 침상 위에 오르며 몸을 눕히고 있었다.
큰맘 먹고 신방으로 온 뒤 향 반개가 탈 시간도 되기 전에, 남희신은 벌써 고른 숨을 쉬며 꿈나라로 가버린 뒤였다.
강징은 아직도 방 한가운데 서서 정말로 잠을 자야 할지, 아니면 그냥 나가버릴지 갈등했다.
얘. 잠만 잘 거면 굳이 나는 안 와도 되지 않니?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남희신은 고운 옆모습만 보여주며 말이 없었다.
강징은 별 수 없이 침상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며 ‘부군’의 잠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남희신은 정말로 평화로운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나이다운 경망스러운 맛이라곤 한 점도 없는 온화한 얼굴에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마저 어린 듯 편안해보였다.
작정하고 침소로 불렀으니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가. 강징은 조금 기대하며 궁금해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 후 몇 달이 흘러갔다.
강징은 귀찮아하면서도 가끔씩은 남희신의 침실-명목상은 두 사람의 침실이었지만-을 찾아가서 잠을 잤다. 이제 저녁이다 싶은 시간에 찾아가도 남희신은 바로 잠이 들어버리니, 일찍 자고 싶은 피곤한 날에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뭔가 좀 거북하긴 해도 어린 낭군이 결코 강징을 귀찮게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강징은 그런대로 그의 존재에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절대 경계심은 풀지 않았다.
강징은 남희신의 겁없어 보이는 태도와 친밀감이 죄다 연기일 거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누그러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딜 가나 강징을 대하는 사람들은 살기어린 눈으로 흘겨보거나, 혹은 당장 간이라도 바칠 것처럼 눈치를 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강징은 부사도, 심복처럼 부리는 사람들조차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연화오가 파괴된 날부터 강징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그를 바라보는 집안 사람들의 눈에도 언제나 일정량의 두려움이 어리어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살가운 척을 하며 비위를 맞추거나 강징의 마음을 사로잡아보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강징은 언제나 그 속을 환하게 꿰뚫어보았다.
그렇지만 남희신의 경우는 좀, 아니 많이 특수했다.
강징은 양인에게 휘둘리는 이는 아니었다. 그럼 어린애라서? 차라리 그 쪽이 일리 있는 얘기일지 몰랐다. 강징은 포악해도 어린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혹은, 명목상이라 해도 반려자로 맞아들였기 때문일까?
강징은 이러저러 고민하며 남희신의 뛰어난 외모는 생각치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소년 낭군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고소 남씨가 본디 미색이 뛰어난 자들만 모여 있기로 유명했지만, 남희신은 특히나 발군이었다.
아직 강징보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그야 나이가 이제 열 넷이던가. 그럼에도 얼굴에는 벌써 굵은 사내의 선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보기 좋을만치 짙은 눈썹이 가지런했다. 저보다 새하얗고 고운 피부. 코는 오똑하고 눈은, 그러고 보니 강징은 청량감이 감도는 그가 똑바로 바라보기만 해도 벌써 평정심이 흐트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삼독성수, 저를 향하며 부드럽게 웃는 입술까지 떠올리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까지 생각한 강징은 턱에 손을 괴고 정인이라도 그리는 듯한 제 꼴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정말이지.
강징이 얼굴을 찡그리자 외부를 향한 증오심 팽팽한 긴장감이 돌아왔다. 전연 달콤하지도 포근하지도 않은 이 감정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원동력이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쓰디쓴 맛으로 이루어진 익숙한 감정의 파도가 몰려왔다. 강징은 가만히 서서 그것을 덮어쓰며 달콤해질 뻔했던 마음자리를 억제했다.
남희신을 데려온 건 고소 남씨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불온한 움직임이라도 생긴다면 그를 방패삼아 견제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고소 남씨가 올바르고 고고한 척을 하지만, 어디 제가 힘들때 도와준 적이 있었던가?
새삼 분노가 치민 강징은 한동안 야렵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강징은 기산 쪽에 발생한 불온한 기미에 정신이 팔려서 잠시 남희신의 존재를 잊었고, 그가 매일 집무실에 오면서 표정이 복잡해지는 것도 몰랐다.
어느날 강징은 성을 내며 사람들을 물려버렸다.
그 동안 남희신이 워낙 조용히 있었으므로 그는 혼자 남았다는 착각에 빠져서 차를 들이키고는 어깨를 주무르며 욕을 중얼거렸다.
“아프십니까?”
갑자기 한 편에서 부드러운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징은 흠칫 놀라며 손을 떼었다.
아, 참. 저 녀석이 있었지.
어린애가 매일매일 몇 시진이나 죽치고 앉아서는, 지치지도 않는구나. 강징은 짜증스레 생각했다.
별반 거슬리지 않아서 내버려뒀던 것이 더럭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만 와도 된다고 말할까, 싶던 강징은 곧장 그가 한가해지면 무슨 공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의심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남희신이 다가와 강징의 뒤에 서며 말했다.
“제가 풀어드리겠습니다.”
강징은 독재자답게 누군가가 자신의 공격 반경 내에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심지어 남희신이 자객처럼 등 뒤에 서서 손을 뻗어오자 질겁을 했다. 하지만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어깨가 잡히며 혈자리에 강한 통증이 왔다.
저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러버린 강징은 순식간에 눈알까지 뻗는 통증에 어질해졌다. 그러나 욕을 퍼붓기 전에 아프던 자리가 시원해지며 아릿한 쾌감이 번졌다.
“어찌 이리 뭉칠 정도로 두셨습니까.”
남희신이 솜씨 좋게 어깨를 주무르며 말하는데, 강징은 아팠던 건 잠시였고 너무 시원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희신은 충분히 어깨를 풀어준 다음 풍성한 강징의 머리채 너머로 손을 넣어 목도 풀어주기 시작했다.
“피가 굳은 듯하니 몸에 좋은 걸 드셔야겠습니다. 부인께서는 끼니를 거를 때가 많고 약주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금단이 있다고 건강에 소홀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강징은 싹싹하게 피로를 풀어주며 잔소리를 하는 남희신에 어이가 없었다. ...역시 고지식한 고소 남씨의 후계자라 그런지 애늙은이가 따로 없구나.
뭐라 따끔하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입을 열 때마다 남희신의 손가락이 능숙하게 아픈 곳을 만지며 풀어주었다. 이 곳을 주물러지고, 저 곳을 주물러지며 강징은 차츰 뜨거운 물에 잠기는 것처럼 전신이 녹진녹진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 때, 천상의 것 같은 손이 우뚝 멎으며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부인. 왜 침소에 오지 않으십니까? 혼례를 올린 뒤 벌써 몇 주가 지났는지 아십니까.”
강징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순간 주제파악을 시켜줄까 싶은 잔인한 충동이 치밀었지만, 진지하게 답을 바라는 맑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강징은 마지못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아주 바쁜 사람이다. 피곤할 때에는 혼자 있고 싶어.”
그러자 남희신이 살짝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어 아니 오시는 건 허락할 수 없습니다.”
“......”
강징은 정말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 애는 혹시 자기 처지를 모르는 걸까?
정말로 우리가 진짜 부부관계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강징은 그 날 밤 남희신을 찾아갔다. 그가 신방에 드는 것은 혼례식 후 처음이었다.
강징은 얼결에 남희신이 옷을 벗겨주는 시중을 받으며 낯선 곳에 온 것처럼 두리번거렸다. 예식용품이 다 치워진 방은 연화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전체적인 빛깔은 세속적인 느낌이었지만, 수수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조각이 된 장롱이나 벽에 걸린 서화, 줄줄이 놓인 다양한 악기들이 단아한 정취를 풍겼다.
그러고 있다가 다시 얼결에 손에 든 삼독까지 뺏긴 강징은 뒤늦게 놀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남희신이 이미 검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두 개의 검을 놓을 수 있는 검대에 하얀 패검과, 짙은 보라색의 삼독이 놓이자 이질적인 빛깔들이 어우러지며 묘한 영기를 뿜었다.
“밤이 늦었습니다. 얼른 자도록 합시다.”
뭐? 뭐가 늦어? 이제 해시가 됐는데?
강징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남희신은 벌써 침상 위에 오르며 몸을 눕히고 있었다.
큰맘 먹고 신방으로 온 뒤 향 반개가 탈 시간도 되기 전에, 남희신은 벌써 고른 숨을 쉬며 꿈나라로 가버린 뒤였다.
강징은 아직도 방 한가운데 서서 정말로 잠을 자야 할지, 아니면 그냥 나가버릴지 갈등했다.
얘. 잠만 잘 거면 굳이 나는 안 와도 되지 않니?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남희신은 고운 옆모습만 보여주며 말이 없었다.
강징은 별 수 없이 침상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며 ‘부군’의 잠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남희신은 정말로 평화로운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나이다운 경망스러운 맛이라곤 한 점도 없는 온화한 얼굴에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마저 어린 듯 편안해보였다.
작정하고 침소로 불렀으니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가. 강징은 조금 기대하며 궁금해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 후 몇 달이 흘러갔다.
강징은 귀찮아하면서도 가끔씩은 남희신의 침실-명목상은 두 사람의 침실이었지만-을 찾아가서 잠을 잤다. 이제 저녁이다 싶은 시간에 찾아가도 남희신은 바로 잠이 들어버리니, 일찍 자고 싶은 피곤한 날에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뭔가 좀 거북하긴 해도 어린 낭군이 결코 강징을 귀찮게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강징은 그런대로 그의 존재에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절대 경계심은 풀지 않았다.
강징은 남희신의 겁없어 보이는 태도와 친밀감이 죄다 연기일 거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누그러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딜 가나 강징을 대하는 사람들은 살기어린 눈으로 흘겨보거나, 혹은 당장 간이라도 바칠 것처럼 눈치를 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강징은 부사도, 심복처럼 부리는 사람들조차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연화오가 파괴된 날부터 강징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그를 바라보는 집안 사람들의 눈에도 언제나 일정량의 두려움이 어리어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살가운 척을 하며 비위를 맞추거나 강징의 마음을 사로잡아보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강징은 언제나 그 속을 환하게 꿰뚫어보았다.
그렇지만 남희신의 경우는 좀, 아니 많이 특수했다.
강징은 양인에게 휘둘리는 이는 아니었다. 그럼 어린애라서? 차라리 그 쪽이 일리 있는 얘기일지 몰랐다. 강징은 포악해도 어린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혹은, 명목상이라 해도 반려자로 맞아들였기 때문일까?
강징은 이러저러 고민하며 남희신의 뛰어난 외모는 생각치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소년 낭군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고소 남씨가 본디 미색이 뛰어난 자들만 모여 있기로 유명했지만, 남희신은 특히나 발군이었다.
아직 강징보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그야 나이가 이제 열 넷이던가. 그럼에도 얼굴에는 벌써 굵은 사내의 선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보기 좋을만치 짙은 눈썹이 가지런했다. 저보다 새하얗고 고운 피부. 코는 오똑하고 눈은, 그러고 보니 강징은 청량감이 감도는 그가 똑바로 바라보기만 해도 벌써 평정심이 흐트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삼독성수, 저를 향하며 부드럽게 웃는 입술까지 떠올리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까지 생각한 강징은 턱에 손을 괴고 정인이라도 그리는 듯한 제 꼴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정말이지.
강징이 얼굴을 찡그리자 외부를 향한 증오심 팽팽한 긴장감이 돌아왔다. 전연 달콤하지도 포근하지도 않은 이 감정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원동력이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쓰디쓴 맛으로 이루어진 익숙한 감정의 파도가 몰려왔다. 강징은 가만히 서서 그것을 덮어쓰며 달콤해질 뻔했던 마음자리를 억제했다.
남희신을 데려온 건 고소 남씨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불온한 움직임이라도 생긴다면 그를 방패삼아 견제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고소 남씨가 올바르고 고고한 척을 하지만, 어디 제가 힘들때 도와준 적이 있었던가?
새삼 분노가 치민 강징은 한동안 야렵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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