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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00:50
섭명결이 회귀했는데 그게 이상하게도 딱 성별만 뒤바뀐 거임, 여자로. 근데 섭명결은 막상 크게 신경안쓸듯... 그 끔찍한 시간속에서 겨우 과거로 돌아왔는데 성별쯤이야 알빠인가? 섭명결이 회귀했을 쯤이 딱 새어머니 들어왔을 때라, 섭회상이 태어난다면 그 누구보다도 잘해 주겠노라고 굳건히 다짐함. 섭명결은 자라나서 섭회상은 패도 내가 패지 어떤 버르장머리 뒈진 놈이 감히 남의 귀한 동생을 걸고 넘어지느냐 과보호 누나로 거듭남. 물론 섭회상의 앞에서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함. 대놓고 챙겨주는 짓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쪽팔려서 평생 못함. 마주칠 때마다 누누이 학업과 수련에 정진하라고 혼내면서도 뒤에서는 그간 갖고 싶어했던 붓이라든가 부채라든가 사소한 것들을 조용히 방안에 채워넣어줌. 하지만 눈치빠른 섭회상이 과연 모를까요? 섭명결은 모를테다... 자기가 앞으로 섭회상의 시스콤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지.

그런데 아무래도 여자의 몸인지라 원래 기억처럼 남희신과는 허물없이 못 친해질듯. 고소남씨는 남녀구분 확실하니까. 사실 섭명결은 나름 과거의 친분을 기대하고서 고소수학을 왔는데 남희신이 자기를 본듯 만듯 대꾸하니 나중에 가서는 어느 정도 포기했을듯. 하지만 여기서 섭명결이 남들 눈에는 나올 데는 터질 듯이 나오고 들어갈 데는 절묘하게 쏙 들어간 핫바디라 뭇 소년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사고 있다는걸 혼자서는 결코 몰라야함. 섭명결은 여자의 몸이 되어도 여자 기준으로는 산만한 덩치라(170 정도는 훌쩍 넘길듯) 남들이 제게 그런 상상을 가질 줄은 진정 꿈에도 몰랐음. 남희신이라고 불순한 상상을 안했을까요? 내 생각에 소년시절 남희신은 밤마다 스스로를 꾸짖으며 반성할 타입임. 어떻게 같은 학우로서 이런 생각을... 뉘우치면서도 섭낭자가 매번 자신을 보는 눈빛이 하도 간지러우니 멈출 수가 없음. 마치 꼭, 헤어진 연인을 보는 것 같이... 물론 섭명결에게는 단순 친구입니다만.

한편 섭명결은 군중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철저히 고독을 추구함. 과거로 돌아왔으니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더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어짐. 틈만 나면 수련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나중에 맹요를 어떻게 조져야할지 그것만이 섭명결 생각의 전부였음. 그런데... 그런 모습이 처연한 인상을 더해서 고소수학 소년들에게 갖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거임. 고고한 늑대같이 아름다운 소녀가 밤마다 우수에 젖은 눈으로 땀을 똑똑 흘리며 수련하는데 누구 하나쯤은 홀리겠지. 결국 고소수학 마지막날, 등불을 올리고 각자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해산하는데 누군가 섭낭자에게 마음을 전하려 도전함. 가깝지 않지만 멀지도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진득하게 지켜보던 남희신의 얼굴이 기어이 딱딱하게 굳어짐. 섭낭자 얼굴이 이런 것은 처음이라는 새빨간 낯빛이어서. 반면 섭명결은 깔끔하게 거절했음. 자기가 남자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 정도 있으니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음, 그 주제에 심장은 쿵쾅쿵쾅 뛰어대니 아무래도 여자가 맞긴 한가 보군... 다시 한번 깨닫고.

거절하고 돌아서는 섭명결을 고백했던 누군가가 다시 잡으려 하자 남희신은 자기도 모르게 부리나케 달려가서 섭명결의 앞을 호딱 막아섰음. 그러고 대뜸 내뱉는 말이 “우리 편지하죠.” 이거였으면. “제가 사실 그동안 낭자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부끄럽게도 낯을 가려...” 섭명결은 당연히도 환하게 웃으며 흔쾌히 수락함. 언제든 편지하라고. 섭명결이 고소에서 돌아온 뒤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이자, 어렸음에도 <눈치빠른> 타이틀에 벌써 <예민한> 타이틀이 붙은 시스콤 섭회상은 불안해짐. 설마 웬 이상한 놈한테 헤벌렐레 넘어가신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나밖에 모르는 우리 누님이신데? 이 새카만 속을 전혀 모르는 섭명결은 역시 한번 친구는 영원히 친구라고 혼자서 흐뭇해함. 그러면 섭회상은 어린놈이 머리만 커가지고 잔머리 살살 굴리며 누나 앞에서 재롱 피우는 거임. “누님은 나밖에 없지요?” 섭명결은 뭘 물어보냐는 듯 피식거리며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줌. 섭회상은 그것만으로 벌써 좋았음.

그런데 이제... 섭낭자 나이에다가, 그 스펙에 선 얘기가 안 들어올까요? 당연히 들어옵니다. 그것도 운명의 장난인지 우부인에게 들어온 거임. 우부인이 선을 보낼 자식이라면 누가 있겠음. 섭명결은 차라리 전생에 자신이 강낭자와 혼인했다면 덜 억울했을까, 생각하면서 서신에 적힌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봤음. 강만음, 섭명결 자신에게는 까마득하게 어린애였음. 무엇보다도 제 동생과 동갑인 아이와 어떻게 혼담을 진행하겠음? 아니 물론 여인의 몸이니 혼담이 들어올 수 있다만, 추후 복수에 지장이 될 게 뻔하니 모조리 거절할 생각이었단 말씀. 더구나 마음은 아직 사내이기도 했고. 하지만 여기서 섭종주가 나서야함. ‘일단’ 만나보라고. 섭종주도 무밖에 추구할 줄 모르는 제 큰딸이 조금이나마 걱정되기는 한거지. 게다가 운몽 강씨면 나쁜 선택지도 아니었고, 나이차야 미리 정혼하고 성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섭명결은 울며 겨자먹기로 선자리에 나감. 하지만 이를 어쩌나. 우부인의 야심찬 계획과는 다르게 강징은 덩치가 산만한 섭낭자를 보고 덜컥 겁먹어서 와앙 울음을 터트림. 나 이 사람이랑은 혼인 못하겠다고. 하기야 열살 짜리가 뭘 알겠음. 열여섯의 섭명결은 멋쩍게 웃으면서 나도 혼인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말라고 달래느라 개고생함. 대신 멋있는 걸 보여 주겠다며 그동안 수련한 도법이나 재연해줌. 강징은 그 계기로 덩치가 산만한 섭낭자에 대한 공포심을 아주 쬐끔 고쳐먹음. 무서운 게 아니라 멋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끝내 선자리는 실패로 끝났지만 우부인이 여기서 포기할쏘냐. 첫딸은 난릉 금씨에, 장차 종주가 될 아들은 청하 섭씨에 맡기면 미래가 얼마나 안심되겠음? 잘만 하면 오대 선문 세가 사돈이 무려 둘이나! 우부인은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 만남의 자리를 자주 가짐. 섭종주야 고마운 일이었지. 그때마다 섭회상은 샐쭉한 얼굴로 섭명결의 소매를 꼭 붙잡고 꾸역꾸역 동석함. 그 원인인 강징은 정작 질투 어린 시선 따위 전혀 모르고 그저 멋진 누나에게 각종 모험담을 전해듣느라 정신이 팔렸음.

한편 남희신은 얼굴도 모르는 열살짜리 꼬마에게 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충격먹음. 우부인은... 양심도 없으신가? 열살이라면 망기와 동갑이잖아. 나정도는 되야 선자리를 주선할만 하지. 아니 세상에 무슨 이런 망발을! 남희신은 다급하게 자기 뺨을 철썩 때리고서 섭명결에게 쓰던 답장을 이어감.

그래 사실 나는 명결ts 하하버스가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신선하니까 괜찮지 않겠습니까? 의외로 성별 바뀌면 클리셰로 범벅인 섭낭자임 이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