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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22:26
남희신이 광요를 정말 사랑했고 거의 10년을 잊지 못했는데 강징이 옆을 지켜줬겠지
둘이 대놓고 감정에 대해서 말한적은 없지만 남희신은 강징이 자길 사랑하는 거 알고 있었고, 자기가 부탁하면 뭐든 다 들어주는거 알았을거임. 그렇게 십년을 붙어 있었으니 자주 만났고 힘든 때에 늘 있고 그러다보니 몇번 침상도 같이 썼고 남들은 둘이 가까운 사이라는 거 알고 있는 상황되는거지.
오히려 외부인들이 남희신과 강징 사이가 깊다고 생각하고, 남희신은 워낙 아정한 고소의 공자고 강징은 운몽의 대종주라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일뿐 둘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은은하게 함께할 정도로 사랑한다고 여김.
남희신은 이 기간동안 강징이 재촉하지도 않았고 곁에 있어주었고 사랑을 주건 투정을 하건 가끔은 눈물을 보이고 초라한 모습을 보여도 가만히 받아줘서 서서히 빠졌음. 강징이 남희신을 붙잡은 건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말 한마디였음. 사랑했다 뭐 이런 거 말고, 쑥스러워서 고개도 못들면서 처음 고소에서 수학하던 시절부터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택무군을 좋아합니다. 말갛고 순수한 고백에 더이상 누군가에게 내어줄 마음이 없다고 여겼던 남희신이 그때 흔들렸음.
사실 처음엔 충동적으로 받아들인 교제신청을 책임진다는 의미가 컸겠지. 남희신에게 금광요가 충동의 극치였는데, 또 그런 일을 벌여놓고 사람 하나를 가지고 놀 수 없다고 여겨서 마음도 없으면서 같이 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강징의 말을 들어주곤 했음.
강징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음. 남희신은 그에게 다정했고 온화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함께 오랫동안 걷다가 희귀한 꽃이 피었길래 신기해 하니 고소에서만 자라는 꽃이라며, 내년에도 이곳에서 보면 좋겠다고 웃어놓고 그 다음해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무슨 꽃인지 언제 피는 지 등을 설명해줌. 금광요가 한번이라도 좋아했고 아낀 것들은 모두 기억했으면서. 강징은 그냥 남희신에게 제가 광요와 비교될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음.
연서 비슷한 것을 써서 보내주었으나 몇년 뒤 같은 내용을 보내기도 했고 3년 터울이 있긴 했지만 같은 선물을 세번하기도 했음.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이가 준 선물이니 소중했지만, 어차피 아까워 쓸 수도 없었으니 종래엔 같은 종류끼리 모아둠.
강징이 먹지 못하는 음식이 몇 있는데 말을 해줘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챙겨주곤 하니 배가 불러서 먹지 못하겠다고 택무군 더 드시라고 챙겨준 적도 종종 있었음. 강징은 적어도 남희신에게 최선을 다했겠지. 툭하면 뾰족하게 새어나오는 성미도 다듬어졌고 (적어도 남희신 앞에서는)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맙다거나 보고싶었다거나 하는 말 정도는 함.
그렇게 서투르게 시작했고 오랫동안 버텼으니 어느날 마음을 정리한것도 그렇게 고요했음. 사실 택무군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으니 오래된 짝사랑을 버리는 것 뿐이었음. 다소 역설적이지만 정리한 방법이라는 게, 강징은 언젠가 택무군이 선물이라며 주었던 것들을 쓰기 시작한 거. 더이상 고이 간직할 정도의 마음이 없어지고 나니 그저 물건일 뿐이었음. 제게 맞지 않는 옷과 어울리지 않는 장신구, 관심없는 서책같은 것들. 돌아보니 의미가 없었음.
남희신에게 강징이 그랬던 것처럼.
남희신과 한달에 한번은 만났는데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강징이 점점 식어가는 걸 몰랐겠지. 저를 보고 뺨을 붉히고 가끔 밤을 보내던 사람이었으나 정인이라는 이름을 한번도 탐하지 않았고 그 이상을 바라지 않더니, 언젠가부터 차한잔 하며 짧게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는 걸 택무군도 좀 느즈막히 느꼈음. 조금 더 머물고 가시라고 붙잡았더니, 강징이 조용히 손을 잡았다 곱게 놓으며 운몽이 분주합니다. 택무군과는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하고 그대로 간 거.
강징이 남희신을 거절한 적이 없었으니까, 전엔. 이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음. 언젠가부터 출처를 알 수 없던 허전함이 있었고 기묘하게 우울했는데 강징이었음. 잦을 땐 매주 한번정도 찾아와 그의 곁을 지켜주고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조용한 밤을 보내고, 아침에 곧 뵙겠습니다. 하며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던 사람이 사라졌음.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벽 길을 걸으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걸어주던 사람이 없어진거지.
다시 찾으려고 했으나 한번도 어떤 이름을 붙인 관계가 아니었던지라 무어라 해야할지도 알 수 없었음. 돌아와 달라고? 어디로. 무엇으로 그의 무엇으로 돌아오라고 할 수 있겠음.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이전이 무엇이었기에. 그들의 이전에 뭐가 있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겠음.
찾지 않으니 한달, 두 달, 이후 반년이 되도록 얼굴을 볼 수가 없었음. 운몽의 종주가 바쁜 것은 당연했고 같은 가문의 사람이라도 쉽지 않은 것을 단지 친분이 조금 있을 뿐인 타 가문의 종주가 강제로 그를 만나고자 할 수도 없었던거지.
남희신은 그래도 운몽에 갈때마다 매번 서신을 남겼음.
보고싶다고. 매번 그렇게 적었음.
머잖아 운몽에서 연꽃축제를 하니 택무군께서 바쁘지 않으시다면 보러오라는 초대장이 왔겠지. 어쩐지 손님으로 초대되는 듯한 기분에 묘했지만 그래도 갈증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있어 서둘러 나갔을거임. 강종주 여러일 해결되고 금릉도 자기 자리 찾고 하니 요즘 유해져서 분위기 좋았겠지. 어딜가나 아름다웠고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멀리서 오신 손님들 편히 쉬고 가라고 운몽의 여러 방들을 미리 배정해 놓아서 다들 즐겁게 놀고 마심.
둘만 있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종일 이런 저런 이야기나 하고 기다리다가 밤이 깊어져, 결국 남희신이 강징 찾아감. 택무군 예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화풍주 향기 살짝 풍기던 강징이 웃었음. 서로 젊은 시절엔 삶이 쉽지 않아 웃질 않던 사람인데. 제 기억과 달라진 얼굴에 문득 거리감을 느껴 다가가 부축해줌. 그리 취하지 않았으니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혹 방이 불편하십니까? 하며 묻는데 저를 염려하는 것도 맞고 다정한 것도 맞지만 강징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밖에 없었음.
강종주 피곤하지 않으시면 저와 술 한 잔 더 하실까 해서요. 멋쩍게 초대하니, 강징이 짧게 한숨쉬다 이젠 늙어 2차 3차까지는 고되니, 조금만 입니다 하며 따라오긴하는거지. 과거엔 남희신과 둘만 있고 싶었던 강징이 알아서 찾아왔고 늘 자리를 마련했으니 이럴 필요가 없었음. 늦은밤 술잔이나 기울이고 있었으나 강징은 제가 준비한 다과엔 손도 뻗지 않았음. 계화와 호두가 들어간 과자는 그리 달진 않았으나 향기가 좋아 희신이 즐기던 것 중 하나였겠지. 속이 불편하실테니 하나 들라고 권했더니 강징은 손을 내저으며 계화와 상성이 맞지 않아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고 두통이 있다고 거절했음.
계화차를 권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몇번은 말없이 마셔주었고 몇번은 배가 부르다며 밀어 놓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음. 원래 누군가 조금 불편해하면 눈치채고 기억할 정도의 주변머리가 있는 남희신인데 강징에겐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던거임.
어색하게 이어진 술자리를 끝내고 강징은 남희신을 침소로 배웅해주었고, 붙잡는 손을 악수하듯 쥐고 영원히 안 볼것도 아닌데 뭘 또 이렇게 아련하게.. 하며 농담함.
그렇게 짧은 인사후 멀어지는 강징의 뒷모습을 보다 원한적도 없이 가졌던 강징을 어느새 잃었다는 걸 알았겠지.
붙잡고 싶으나 방법을 몰랐고 정을 호소하고 싶었으나 둘 사이에 어떤 약속도 없었음. 그가 좋아하는 것, 그가 원하는 것, 그를 자극할 추억도 없었고 둘을 연인이라 엮을 수 있는 그 무엇도 없었음.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으니 잃은 게 없는 사이인거.
그 뒤로도 만나면 반갑게 이름을 불렀고 택무군의 안부를 물었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남희신에게 단 한걸음도 허용하지 않는 강징 보고 싶다
한사람만 너무 오래 사랑하느라 사랑 자체를 버린 강징과 너무 늦어버린 남희신같은거
희신강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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