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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이 좀 나간 남종주를 키우게 된 강종주의 사정 어나더
- 설정파괴주의 / 양음인 설정 믹스
그렇게 두 종주는 채의진의 나루터에 섰다. 평소 같았으면 어검을 택했겠지만, 오랜 시간 폐관을 한 희신에게 부담이 될 것을 고려하여 요양을 핑계로 배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강징은 자신 대신 작은 도자기를 안고 있는 남가의 가주를 바라보았다. 유독 저 작은 도자기가 길고 창백한 손안에 싸여 있으니 더욱 작아 보였다. 웃는 낯으로 강징을 바라보는 희신의 얼굴은 조금 야위어 있었다.
“강 종주. 죄송합니다. 저는 요즘 내력을 운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강징의 곁눈질에 웃는 얼굴로 말을 꺼낸 희신은 곧 나루터에서 배를 옮겨 타는 대가족들에게로 시선을 빼앗겼다. 아이가 여럿에 부부가 둘인 가족이었다. 커다란 짐을 나누어 들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자 자신이 들고 있는 도자기도 잊었는지 멍하니 손에 힘을 놓아버린다.
“남 종주!”
가까스로 희신이 놓친 도자기를 받아 든 강징은 급하게 안을 다시 살폈으나, 누굴 닮아 속이 이리 편한지 몸을 굽히고 잠들어 있는 것이 아주 안정적이었다. 이에 한 마디를 하려고 시선을 돌린 강징은 그의 처연한 미모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큰일이 날 뻔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놈은 이제 제가 들지요.”
천하의 택무군이 어쩌다가 이리 되었는가. 강징은 낯선 그의 슬픈 표정에 어설프게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자의이긴 하지만 혼자서 벽만 보고 폐관을 해온 희신은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택무군께서는 정말 장서각의 고서들을 모두 독파했습니까?”
강징이 여전히 도자기 안에서 잠든 메추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시선을 어디 두기 민망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말 이것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맞는 지도 의문이었다. 제법 크게 흔들렸는데, 하며 웅얼거리는 입모양이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귀여운 것이 화근이었다.
“네?”
“장서각의 모든 책을 독파하셨냐 물었습니다.”
강징의 작은 입이 희신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희신은 뒤늦게 강징의 물음에 대답했다.
“사일지정 이전에는 더욱 방대한 자료가 보존되어 있었으니 모두 완독을 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지금 있는 자료들을 다 보신 게 아닙니까.”
“네. 그간 장서각을 관리하면서 대부분의 자료는 꼼꼼히 확인하여 보관하는 편이지요.”
“기억이 다 나십니까?”
강징의 물음에 희신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사실 요즘의 희신은 머릿속에 잡스러운 것이 많아 정신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확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뜻이라고 오해한 강징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에 펼쳐진 수로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남 종주께서는 이것이 신수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이렇게 메추리같이 생긴 신수에 대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
희신은 강징이 쳐다보고 있는 메추리를 함께 바라보았다. 이는 영락없이 메추리가 분명했다.
‘불쌍한 강 종주, 이 이도 마음의 병이 다 낫지 않은 모양이구나.’
희신은 어쩐지 강 종주 또한 저처럼 마음의 병이 있다고 여겨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긴 사일지정 이후 그의 삶은 자신의 삶보다 더욱 처절하지 않았는가. 희신은 강징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에 빠졌으나 손을 물리고는 다소곳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메추리와 닮은 것은 잘 모르겠으나. 새의 모양을 한 재미있는 신수에 대한 구전설화가 있긴 합니다.”
희신을 강징이 그의 말에 기대를 거는 것을 보며, 어릴 때 망기를 놀려먹던 것과 같은 잔잔한 재미가 느껴져 오랜만에 장난기가 도졌다.
“이 신수는 1000년에 한 번, 아주 상서로운 곳에 제 알을 두고 간다 합니다. 그래서 새끼가 다 자라면 이 새끼를 데리고 가면서 큰 복을 주고 간다지요.”
“저는 알은 받은 적이 없는데요?”
“보십시오. 이 도자기가 동그란 것이 마치 새알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희신의 말에 강징은 도자기에 손가락을 넣어 메추리의 머리를 살살 쓸었다. 그리고 희신 역시 무심결에 그런 강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징은 그런 희신의 태도에 크게 당황했지만, 굳이 희신의 태도를 지적하고 넘어가진 않았다. 사실 희신에게 강징은 함께 선문을 이끌어나가는 종주로서의 동료이기도 하지만, 한참 어린 동생뻘이기도 했으니.
수로를 통해 나아가는 두 종주의 여정은 그리 고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별 말없이 광활한 전경에 심취하여 있었기에 서로를 의식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인지 강징은 남 종주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로군. 하며 긴장으로 굳어진 표정을 풀었다.
“중요한 것은 이 새를 키우는 것이 온데”
“방법이 있습니까?”
“혼자서는 어렵다 합니다. 어미 새와 아비 새가 되어줄 보호자가 있어야 하지요. 사랑과 정성으로 두 사람이 이 새를 보듬어 줘야하고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합니다.”
희신의 말에 강징은 갸우뚱 고개를 기울며 눈매를 찌푸렸다. 사실 희신은 오랜만에 운심부지처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자신이 여전히 한 가문의 가주 라는 무게 또한 내려놓은 상태였다. 다만 평소와 같이 평화로이 웃는 낯으로 풍경만 보고 있으니 아무도 그의 숨겨져 있는 이상함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신은 자신이 이야기를 청산유수로 내 뱉고 있으면서도 전혀 이러한 대화가 어디로 튈 것인지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어디선가 들어본, 새와 관련된 신수의 설화를 소개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는 실제로 고소의 근처 지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한 때 고소에서도 유행을 했던 구전설화였다. 만약 이를 다른 누군가에서 희신이 소개했다면 웃음거리가 되었거나, 가벼운 농담으로 넘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택무군(고소남씨 가주)의 가르침에 필요 이상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 바로 예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는 삼독성수 (운몽강씨 가주) 였기에 상황은 더욱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더라.’
희신은 한참 강징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배회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그의 생각은 갈피를 잃고 이리 저리 뻗어가느라 처음 의도했던 본질을 비켜가고 말았다. 잠시 희신이 말을 멈춘 것을 기회 삼아 물었다.
“보호자가 말입니까?”
강징의 맑은 눈동자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자 희신은 그제야 다시 현실로 돌아와 말을 이었다.
“네. 그리하여 이 아이가 다 자랄 때쯤 되면”
희신은 다시 마지막 말을 망설이자, 가벼운 목소리의 강징이 물었다.
“복을 받습니까?”
“네. 그리고”
“그럼 이 메추리를 연화오와 고소에서 키우시지요. 분명 이 녀석이 나중에 길한 기운을 끌고 들어올 것입니다. 남 종주와 저는 어린 동생과 조카를 키워 본 전적이 있으니 어렵진 않지 않겠습니까?”
성질이 급한 강징이 희신의 대답을 자르며 말을 이었다. 강징은 그 동안 앓던 이가 시원하게 빠진 냥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희신은 해사한 얼굴로 말하는 강징 탓에 자신이 마지막 말을 마치지 못하였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희신강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