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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8 16:09
고소로 수학온 첫 날, 위무선은 첫눈에 남망기에게 홀딱 빠져버렸어.
그래서 군말없이 깜빡하고 두고온 명첩도 가지러갔던거야. 보통 때 같으면 어림도 없지. 운심부지처 입구에 주저앉아 수치도 모르고 통곡할 인물이니까. 아예 배를 깔고 누워 나 들여보내주세요 할테지. 물론 깐깐한 남이공자라고 해도 일말의 융통성은 남아있어서 위무선이 채의진으로 내려가고서 조금 뒤에 다시 나타나 들여보내줬으나, 그날 이후 강징은 남망기의 벽창호같은 면을 욕했지만 위무선은 달랐어. 앞에서는 원리원칙을 지키면서도 사람을 배려할줄 안다나. 위무선의 마음 속엔 원망이나 짜증조차 없었어. 그리고는 곧 본심이 튀어나왔지.

"뭐.. 잘생겼잖아!"


강징은 천하의 위무선이 미친것 같다고 느꼈지.




그날 이후 위무선은 수치도 모르고 남망기 옆에 찰싹 붙어 짹짹거리거나, 귀찮게 굴거나 아예 화를 돋구기 시작했어. 방법은 여러가지. 위무선은 남을 미치게 하는 재주가 있었지. 물론 운몽의 망아지 음인 자리는 쉽게 얻는게 아니야. 하지만 불행히도 남망기 뿐만 아니라 남계인 선생까지 미치게 만들어 위무선은 장서각 단골이 되어버렸지. 죄없는 남망기도 함께. 아정하고 곱게 자란 남이공자가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건 전적으로 그의 외모 탓일게지. 강징은 아주 조금 그가 불쌍하다고 느껴졌어.
그런데도 좀 괘씸한게, 남망기는 원체 욕망이 없어 보였고 음인에 대한 관심조차 없으니 위무선만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꼴이잖아. 물론 위무선이 왈가닥이긴해도 그에게 호감을 품는 양인들이 꽤 많이 있었어. 뭐 봐줄만한 얼굴이니(전적으로 강징의 생각) 남망기에게 집착 좀 하지 말라고 몇번 말을해도 위무선은 개똥같은 소리만 해댔지.

"아 우린 친우라니까 그러네!"

하하 나랑 남잠은 말이지, 어? 장서각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있다고 징징!

"사실 저번에 춘궁도를 숨겨서 남잠한테 보여줬다? 그러니까 엄청 화를 내면서 자기는 양인이고 음인이고 절대 관심없대! 역시 너무 재밌어!"


..퍽이나.
호연지기는 무슨, 남망기의 분노가 여기까지 느껴지는데. 여튼 그가 애초에 욕망이 없는 사내인건 확실했어. 안됬지만 위무선에게 빨리 그를 단념토록 해야했지. 역시 남가 둘째놈은 첫만남부터 맘에 안드는 놈이었어.




다음날 강징은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위무선 옆에 찰싹 붙어있었어. 누님이 귀엽다는듯 둘을 보고 빙긋 웃을때 조금 창피했지만 위무선이 남망기 옆에 가는 꼴을 막을수만 있다면야..

"우리 아징이가 이 형님 뒤를 졸졸 쫒아다니는 이유가 뭘까나?"

남노인 수업이라 천자소도 안숨겼다니깐?
위무선은 아마 제가 사고칠까봐 따라다니면서 감시한다고 짐작하는것 같았지만 정작 섭회상은 강징의 계획을 알고있는듯 느긋히 부채를 부쳤어. 영악한 음인인 그는 적어도 위무선보다 눈치 빠른 편이었지.

"잔말 말고 오늘은 얌전히 있을 생각하라고."

강징은 위무선의 어깨를 확 끌고 난실로 향했어.





그런데 이것이 도리어 남망기를 자극시킨것 같음.
뒷통수에 시선이 꽂힐때마다 긴가민가했는데 종일 위무선의 시중과 꽥꽥거림을 들어주느라 지쳐 음인 숙소로 데려다 줄 때였음.

"이제 방으로 가 위무선. 아주 힘들어 죽겠다.."

위무선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남망기가 으르렁거릴줄이야. 위무선을 한번 쳐다보더니 강징에게 들으라는 듯이.

"양인과 음인이 붙어있는건 금지입니다."







"참나~ 강징 너 머리 어떻게 된거아냐?"

"남망기라고 다를거 같아? 그 자식도 다른 양인들이랑 별다를바 없다고 멍충아!"

"위형, 강형 둘다 목소리 좀 죽여요.."

남망기가 일갈하고 사라진 후 강징이 답답하다는듯 가슴을 치자 위무선은 코웃음 쳤어. 남잠은 원칙주의자라니까!

"아징 넌 아무것도 몰라!"

남가 둘째는 위무선과 붙어있는 저를 신경쓰고 있었어. 같은 양인이니까 알수있지. 때마침 채의진에 갔다가 귀가하던 섭회상도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강징에게 눈을 찡긋했어. 오죽하면 남남인 섭회상도 똑같이 느끼는데. 위무선 이 둔탱이야말로 아무것도 몰라.

"남잠은, 사실 사저를 좋아하는거 같다구.."

펄펄뛰던 위무선이 처음으로 작아진 모습을 보였어. 침상에 털썩 앉더니 울적한 목소리로 왜 남망기가 사저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구구절절 풀어놓기 시작했지.
남가 음인의 미덕은 아정하고 차분함을 중시하지 않느냐고. 바로 우리 사저에 해당된다면서 얼마전에 사저랑 토끼랑 놀고 있을때 남망기가 몰래 쳐다봤던것, 또 저번엔 사저 무릎에 누워 선선이 세살~ 하고 있자니 저 멀리서 살짝 웃음을 지었다나. 그러고보니 첫날 명첩을 두고왔던것도 사저를 보고 들여보내준것같다...

사저를 보고 웃는거겠냐!!!
들으면 들을수록 헛웃음만 나왔어. 같이듣던 섭회상의 부채질도 배로 빨라질 정도. 게다가 누님이 들으면 기함할 내용에 울컥 화가 치민 강징이 다시 가슴을 칠때였지. 그래서 더 예민하게 잡아냈는지 몰라.
순간 같은 부류의 희미한 향 한조각이 스치자 강징이 재빨리 문을 열었어.

"남망기!"

"... 강만음."

놀랍게도 위무선과 섭회상의 방 밖에 남망기가 서있었어.
사실 강징에겐 놀랄일도 아니야. 아까부터 남망기가 저를 극도로 경계하던걸 생각하면 이럴줄 알았지. 거기다 음인들 모르게 기척도, 향도 죽이고 있던걸 생각하면 더 어이가없지. 같은 양인에게는 은근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향을 풍기면서말이야.

"남잠? 너가 왜 거기서 나와?"

곧 눈물을 글썽거리는 위무선이 나오자, 남망기가 극도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 주먹은 꽉 쥐고, 입은 자꾸 달싹거리고, 뭔가 호소하는 눈빛으로..... 설마? 이 자식이!

"남잠..?"
"ㄱ가 강낭자가 아니야, 위영!"

섭회상이 더욱더 빠르게 부채질하여 강징에게도 바람이 쏟아졌으나 더 덥기만 하지. 그런데 하필이면, 하필이면 오늘 음인구역 순찰은 왜 택무군이신지..

"강낭자가 아닙니다! 당신입니다! 제가 위영 당신을 좋아한다고요!"



그말을 마친 남망기는 허옇게 질려 도망갔고 택무군이 경악한 얼굴로 뒤쫒는걸 마지막으로 강징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어. 입틀막하고 환호하는 위무선, 그제야 느긋히 부채질을 하는 섭회상..
오늘따라 너무 피곤한 강징이었지.






그리고 n년뒤 백봉산. 사저를 향한 금자헌의 머저리같은 고백에서 데자뷰를 느낀 강징이었어..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온 위무선이 공개고백을 못봐서 아쉽지만 나는 경험있어서 괜찮다고 껄껄 웃으니 꿀먹은 벙어리된 남망기 보고싶다.




망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