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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21:09
진정령, 난백 ㅅㅍ
분량조절 실패해서 좀 긺 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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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방으로 돌아가 몸을 확인해보니 또 생채기가 여러 군데 나 있었다. 그건 사실 별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섭회상이었다. 그는 정말 자기를 희생할 생각일까? 죽은 지 십 년이 넘은 형을 위해서? 아니면 그 생각을 지금은 접은 걸까. 죽은 형을 위해 자기 목을 주려 했다던 몇 달 전의 섭회상이 생각나 나는 계속 마음 한 구석이 답답했다.

그 다음 문제는 행로령이었다. 음호부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당연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못 되고, 섭씨가 문제를 해결 못 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금광요에게 이 이야기를 다시 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섭회상과 사마외도 이야기를 꺼내야 할 테고, 내가 꺼내지 않아도 눈치 빠른 금광요라면 유추해낼 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보만은 금광요에게 전할 수 없었다. 만약 음호부에 대해 알고 싶은 거였다면 그가 나한테 분명히 말해줬을 거라고, 나는 나 자신을 위로했다.

당분간 나는 더 나대지 않기로 했다. 듣기로 총령에게 중징계를 먹은 수사가 있다는 게 그 날 일 때문이겠거니 싶어 더 말을 얹지도 않았다. 이제 일주일이면 섭회상이 돌아올 것이고, 사실 그가 온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내 갑갑한 속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그냥...... 그냥 그가 보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주인 없는 부정세는 밤마다 어쩐지 술렁거렸다.

말이 거창하지만, 간단히 말해 잠이 잘 안 왔다는 뜻이다. 밤에 정원에 나가면 섭회상의 앵무새가 그런 나를 맞아주었다.

-몰라요.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모르긴 뭘 몰라.

나는 웃으며 손가락을 뻗었다.

-너는 매일 여기 갇혀 있으면서 안 답답해?

섭회상이 종종 앵무새를 풀어주긴 하지만, 말 그대로 잠시동안이었다. 앵무새는 자기가 알아서 하루를 넘기지 않고 얌전히 새장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훈련시킨 건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자기 집을 어떻게 이렇게 따박따박 찾아오는 걸까? 알고보면 얘도 영물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답답해?

-뒷말 따라하지 마.

-따라하지 마?

어휴. 한숨을 내쉬자 새가 날개를 파닥였다.

-밀아.

그 목소리가 소름끼칠 정도로 섭회상과 닮아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새장에서 손가락을 뺐다. 새가 예쁜 눈을 깜박거렸다. 알록달록한 깃털이 달빛 아래에서 잿빛으로 창백했다.

-밀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갔으나, 어김없이 밤만 되면 그 새를 찾았다. 그러면 섭회상이 새와 오래도록 대화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오랫동안 혼자 갇혀 있으면 외롭지 않니?

-몰라요.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밀아.

-너 진짜.

-진짜.

이런 식으로 실없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시간이 퍽 잘 가는 것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섭회상이 돌아오기 하루 전이었다. 나는 그냥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저녁쯤 되어 부사에게 받은 서류를 처리하고 정원을 지나쳐 내 방으로 향하는데, 시녀 하나가 새장이 걸린 소나무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럴 땐 그냥 지나쳐야 하는 건데, 그놈의 오지랖...... 내가 다가가자 시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 소매를 붙잡았다.

-수사님. 앵무가 안 돌아오는데 어쩜 좋아요?

-무슨 말입니까?

-그게......

사정인즉슨 이러했다. 그 시녀는 온지 얼마 안 된 초보인데, 어쩌다가 앵무에게 먹이를 주고 새장을 청소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새장 문을 여는 중에 잘못해서 새장을 세게 쳐버렸고, 앵무가 놀라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게 오늘 아침의 일인데, 저녁인 아직까지 앵무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눈물까지 맺힌 시녀한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원래 하루 정도 안 돌아오는 날은 많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그동안 꼬박꼬박 잘 돌아오던 애가 갑자기 없어지겠어요?

-하지만 무척 놀라서 날아갔단 말이에요.

짐승들이 그렇게 놀라서 달아나면 집까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는 법이라며 시녀가 눈물을 쏟았다. 엉겁결에 그 시녀가 어릴 적 기르던 강아지 이야기까지 듣게 된 나는 정신이 약간 혼미해졌다. 뭐가 됐든 섭회상이 아끼는 새가 길을 잃고 못 돌아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일단 시녀를 달래기로 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종주님이 아무리 일문삼부지 소리를 듣는 분이라고 해도, 아끼는 새를 그냥 막 풀어놓을 정도로 모자라시지는 않으니까.

-그럼......

-새에게 추적 주술이 걸려있어요. 오늘 밤까지 안 돌아오면 제가 한 번 찾아보죠. 종주님 돌아오시기 전까지만 찾아놓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제야 시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에게도 말 안 할 테니 얼른 들어가 쉬라고 말했다. 그리고 혼자 남아 텅 빈 새장을 잠시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왜 하필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난담? 새가 부디 알아서 잘 돌아오면 좋겠는데.

그런데. 세상이 내 편을 들어줄 리 없지. 하늘에 노을이 짙게 깔렸는데도 새장은 계속 텅 비어있었다. 매나 독수리면 전혀 걱정이 안 되겠는데, 밖에서 헤매고 있는 게 예쁜 깃털이 다인 앵무새라...... 혹시 더 큰 짐승을 마주쳐 잡아먹혔으면 어쩌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새장에 연결된 추적술을 발동했다.

이럴 거면 그냥 낮에 찾으러 갈 걸. 자월이 한 달도 안 남았다는 걸 알려주듯 밤바람은 차가웠고, 발을 뗄 때마다 사브작사브작 울리는 소리는 어쩐지 음산했다. 영력이 있는 수사라고 해도 늦은 밤에 산을 혼자 헤매는 것은 결코 좋은 행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 하나 찾자고 다른 수사들을 데리고 오기도 뭐했고, 그랬다간 오늘 새장 관리를 맡았던 시녀가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좆같은 일 많을 텐데, 새 한 마리 때문에 밥벌이에서 잘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부정세 뒷산이니까 예상치 못한 요마귀괴가 튀어나올 확률은 무척 낮다. 물론 야산에선 그 누구도 자기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듣기로 이 산에 여러 폐광산도 있댔고, 여기가 청하 섭씨 선산이다 보니 어디 가면 무덤만 모여있는 공간도 있댔다. 만약에 전대 종주 귀신이 튀어나오면 싸워도 되나? 아니면 하극상인가? 나는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새의 궤적은 붉은색으로 흙바닥 위에 그어져 있었다. 멀리도 갔다, 정말.

-앵무야?

흔적이 발 앞에서 잠깐 끊겼다. 이 근처 나무 위에 있나? 나는 영력으로 만들어낸 빛을 비추며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나무 위에 앵무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피곤한 목을 꺾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 한 해시쯤 되었을까? 동틀 때까지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다시금 추적술을 재개하자 저 멀리 다시 붉은 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야밤에 술래잡기라니. 그것도 인간이 아닌 앵무새와. 나는 잠시 멈춰서서 피곤한 눈을 비볐다. 내가 어린애랑 놀아주는 십대도 아니고, 빨리 끝내야지. 나는 아예 어검을 하기로 했다.

-앵무야.

간간이 그렇게 불러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보면 내가 찾는 앵무 외의 들짐승들만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거나 부시럭거리며 도망갔다. 이거 점점 불안한데. 더 안쪽으로 깊게 이어지는 궤적을 보며 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진심이야?

마침내 붉은 선은 섭씨 역대 종주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터를 한 바퀴 돌더니, 더더욱 산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나는 잠시 허공에 멈춰 무덤을 둘러보았다. 정말 섭명결의 무덤만 없는지를 보려고.

그런데 있네? 뭐야. 나는 섭명결의 이름이 분명하게 새겨진 비석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짙은 회색 비석은 달빛 아래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가묘인가? 가묘겠지. 한밤중 모여있는 무덤을 보는 건 처음은 아니었다. 종종 가족들이 묻힌 곳을 보러 지금 같은 밤에 향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엄한 묘지는 또 느낌이 다르긴 했다. 섭명결의 묘는 그 윗대 종주들의 것보다 조금 더 컸다. 그게 정말 이상했다.

적봉존 섭명결. 그는 말 그대로 청하 섭씨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사일지정 때 온약한을 직접 죽인 금광요 다음으로 공을 세운 게 섭명결이었고, 그때 큼지막한 작전 회의가 열린 곳도 부정세였다. 섭명결이 종주일 때만큼 청하 섭씨가 다시 부흥하는 날이 올까, 누군가 묻는다면 백이면 백 다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죽었고, 그의 묘는 아주 컸으며, 지금 여기 이렇게 텅 비어있었다. 그 옆의 빈 공간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목이 따끔하게 아파왔다. 여기 언젠가 섭회상이 묻힐까? 그의 무덤은 섭명결의 것보다 더 클까? 무덤이 점점 커지고 더 커져서 커지다가 결국은 부정세까지 잡아먹기 전에 아마 청하 섭씨는 망할 것이다. 그때까지 가문이 남아있다면 그게 더 큰 일이고.

마을 공터가 곧 무덤인 나 같은 평민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무덤자리가 미리 준비되어있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맨날 이런 무덤을 보고 자랐다면 섭회상이 그렇게 심약한 것도 이해가 갔다. 나는 돈 주고 이렇게 살래도 못 산다. 고개를 저으며, 나는 다시금 새를 찾아나섰다.

-앵무야. 슬슬 그만 하자. 피곤하다.

이제 붉은 선은 누가 봐도 버려진 것임이 분명한 탄광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발.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제라도 가서 사람들을 불러와야 할까? 아니. 지금은 늦은 밤일 뿐더러, 종주 애완새 찾으러 새벽에 등산하자고 하면 날 보는 수사들 시선이 참 볼 만할 것이었다. 새를 잃어버린 시녀도 입장이 난감해질 것이고, 무엇보다 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늑장부릴 때가 아니었다. 이왕 찾으러 왔으니 반드시 찾아야지.

그렇게 나는 수색을 속력을 더 냈다. 하지만 붉은 선이 기어이 껌껌한 탄광 안으로 향해 있는 걸 보고서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망할 놈의 새 새끼......

기어이 입에서 욕이 터졌다. 잡아서 구워먹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폐광 앞에 보란 듯이 쳐져 있는 진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이거 지금 건예자 봉인해놓은 진이잖아. 그말인즉슨 이 폐광은 아마도 청하 섭씨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는 것이고 안에는 건예자뿐 아니라 온갖 요마귀괴가 득실거릴 게 분명했다.

이래서 새대가리라는 말을 하나? 좀 동물이라면 생존 본능 그런 거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뭘해야 여기 들어갈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러면서 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몰라요.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희미하게, 탄광 안에서 섭회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발.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마른 세수를 했다. 환장하겠는데. 나는 거의 한숨을 내쉬듯 새를 불렀다. 그러자 몇 초 후,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밀아.

그리고 나는 내가 늘 해오던 실수를 한 번 더 번복했다.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는 것.

바닥에 그려진 진을 손상하지 않고, 나는 우선 어검한 채로 탄광 안에 진입했다. 탄광 안은 당연히 어두웠고, 차갑고 습했으며 뭐라 설명하기 힘든 악취가 났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검에서 내려 바닥에 내려서자 둔탁한 소리가 폐광 안에 울렸다. 새가 찌르르 우는 소리가 왼편에서 울렸다.

괜히 빛을 밝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나는 청력에만 의지해 그리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물론 갑자기 추락해서 신입 건예자 되는 건 사절이었기 때문에, 발밑도 신경썼다. 다행히 새가 눈치는 있는지, 내가 자기를 찾아올 수 있도록 계속 조금씩 울어주었다. 건예자들은 탄광 깊은 곳에 사니까 지금 당장 새 울음소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새 울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밀아.

나는 어둠에 어느 정도 적응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앵무 너 언제부터 암벽도 탔냐.

-몰라요.

-죽일까......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일부러 이렇게 섭회상 닮은 척 하는 거지? 나는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나도 정말 놀랐을 때는 멍청한 짓을 많이 하니까, 이 새도 그랬겠거니 생각할 수 있었다.

-빨리 집으로 가자. 내려와.

새가 머뭇거렸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새가 말했다.

-아파.

-어디가 아픈데?

-아파.

자세히 보자 새는 왼쪽 다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아마도 동굴벽에 부딪혀 뼈가 부러지거나 살갗이 찢긴 게 아닐까 싶었다. 시발.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려와. 가서 약 먹으면 안 아플 거야.

나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소리에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인지 몇 초 뒤에 새가 폴짝 뛰어내렸고, 날개를 팔락거리며 내 손가락 위에 앉은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앞으로 한 발짝을 뗐다. 딱 한 발짝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발 밑이 무너져내렸다.

내가 가장 본능적으로 한 일은 나와 함께 추락하는 새를 감싼 것이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아무 기억이 없었다.

눈을 떴을 때는 눈 앞이 다 까맸다. 뒤통수가 차갑고 축축한 것으로 보아 대가리도 깨졌고, 다리가 안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다리도 부러졌고...... 힘없는 지저귐이 내 귓전을 때렸다. 앵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 손에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새는 내 두 손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팔을 움직여 조심스럽게 새의 상태를 살폈다. 살아있는지, 날개는 무사한지. 그 두 가지를 확인한 뒤, 다리를 살피자 왼쪽 다리가 완전히 부러져 있었다. 아마 새는 너무 놀라서 기력이 없는 듯했다. 섬세한 생명체니까.

-괜찮아.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시린 손목을 무시하고 허리띠를 풀었다. 그리고 그 천으로 새를 부드럽게 감쌌다. 살리려면 체온부터 유지해야 한다. 위를 올려다보자 말 그대로 암흑이었다. 까마득한 지하로 떨어진 모양이다. 용케 안 뒤졌네.

누운 채로 새를 조심 조심 쓰다듬으며 나는 앞으로를 생각했다. 여긴 햇빛이 닿지 않는 탄광 안이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길조차 없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새가 탄광 밖으로 나가 사람을 불러오는 것인데, 날 수가 없으니 보류.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내가 어검을 해서 어떻게든 저 위로 올라가는 것인데...... 나는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오른쪽 다리는 부러진 게 확실했고, 왼쪽 다리는 움직여지기는 하는데, 글쎄. 뭐.

-좆됐네.

나는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명치가 찌르듯 아팠다. 새를 감싸쥐지 않은 손으로 가슴께를 더듬는데, 이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담뱃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거 사실 나무 아닌 거 아냐? 나는 반쯤 경이롭게 담뱃대를 바라보았다. 그때, 담뱃대의 새까만 광택에 무언가 비쳤다.

-담배.

시발. 나는 그대로 굳었다. 그러자 어눌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담배.

고개를 돌리자, 반쯤 썩은 시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괴뢰 같았지만, 나는 그 정체를 하필이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건예자였다.

개시발. 시발 시발.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대신 나는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금연 중이라.

-담배.

-지금 갈비뼈가 폐를 찌른 것 같은데.

건예자가 인간을 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담배를 권하는 것이다. 그 담배를 피우면 반드시 건예자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건예자가 준 담뱃잎으로 담배를 태울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백 년 족히 된 담뱃잎을 태우면 폐가 그대로 썩을 게 분명했다. 폐가 찢어진 것 같다는 것도 진심이었다. 나는 말할 때마다 입 안에 피맛이 도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네가 뭘 원하는지는 나도 알아. 여기서 내보내달라는 거잖아? 나도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데, 지금은 안 돼.

-왜?

-바깥에 해가 떠 있을 테니까.

-해.

-응, 나가면 녹아서 죽는다고.

건예자라는 귀물이 까다로운 이유는 그것이 지능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비교적 침착하게 대화까지 시도해 온다는 데에 있다. 사실 건예자라는 이 귀물은 잘만 하면 오히려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다. 금이나 귀한 광물이 묻힌 장소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반드시 탄광 밖으로 데려가주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건예자가 죽은지 너무 오래 된 시체라 밖에 나가면 그대로 녹아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기만 죽으면 상관이 없는데, 그 사체의 악취를 맡은 인간은 병을 얻어 얼마 안 가 죽고 만다. 그래서 대부분은 건예자에게 밖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을 한 뒤 건예자가 햇빛을 보기 직전 그를 죽이는 방법을 쓴다. 문제는 달빛도 건예자에게 비슷한 효과를 미친다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최대한 그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요괴나 괴물도 마찬가지이지만, 마귀나 귀신은 특히나 한때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던 존재이기에 단칼에 베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요마귀괴를 대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달래는 일이다. 그게 성공할 가능성도 적고 다들 귀찮으니까, 바로 진압이나 소멸로 건너뛰는 거다.

-해가 떴는지 어떻게 아나?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건예자가 물었다. 한 마디 이상 말할 수 있던 거였어? 나는 살짝 놀라며 반쯤 녹아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내 배를 더듬었다.

-내 배꼽시계가 말하길...... 지금은 한낮이래.

물론 이건 거짓말이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시간을 너무 끌면 건예자의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지만, 일단은 생각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해가 지면 너를 데리고 나갈게.

나는 느릿느릿 말했다. 건예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약속?

입맛이 썼다. 무심코 담뱃대를 입에 물었던 나는 금방 그것을 다시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섭씨에서 나를 구하러 오는 것. 아마 그게 지금 상황에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미래일 것이다. 그러나 섭회상이 오늘 중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그의 성격상 오는 길에 담주 구경한다고 도착이 몇 주 지체된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새 한 마리가 없어졌다고 부정세에서 수사들을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보내도 오늘 저녁은 돼야 수색대를 보내리라. 그리고 그 수색대가 여기를 찾는 데에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건예자를 죽이기엔...... 비명소리를 듣고 얼마나 더 많은 건예자들이 몰려올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나는 제일 중요한 일에 신경쓰기로 했다. 천에 휩싸인 새를 나는 조심조심 쓰다듬었다. 최대한 체온을 되찾아주어야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몸이 추위로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나는 금단을 맺은 수사이니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금단을 맺은 수사라는 건 그 어떤 죽음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다. 하지만 이 연약한 새는 아니다.

새의 체온을 유지하면서, 내가 나를 위해 한 일은 고통을 느끼게 하는 혈맥을 막은 것이었다. 이게 한 번 알아두면 쓸만했다. 그러고 나자 아픈 것도 없고, 어쩐지 기묘한 평화에 젖어들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몽롱해진 것도 있었다. 나는 새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자꾸만 불러댔다. 그러자 새가 눈을 깜박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고, 마지막에는 작게 울기도 했다. 말할 힘은 없는지 몰라요 남발은 하지 않았다. 그게 별로 다행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자. 일어나 봐. 네 주인님이 널 걱정하는 건 싫겠지?

장장 한 시진 동안 나는 새를 어루만지며 달랬다. 날개에는 문제가 없으니, 마음만 똑바로 먹으면 날아서 탄광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앵무를 계속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통 새라면 이미 자기 혼자 탈출했어야 정상이다. 생존본능 이런 거 없냐고.

그러나 우습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안 있어, 새가 비틀거리며 한쪽 다리로 일어나 섰다. 그러더니 훌쩍, 저 위로 날아가버렸다.

오. 나는 순식간에 텅 빈 내 손을 바라보며 두 눈을 깜박였다. 이렇게 빨리? 고개를 들자 저 멀리 희끄무레하게 새의 형체 같은 것이 보인 것도 같았는데, 확인할 길은 없었다. 어쨌든 내가 할 일은 마친 셈이다. 고개를 돌리자 건예자가 저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비록 몰골은 흉측했지만, 그 눈빛이나 행동에는 어린 아이 내지 짐승의 순진함이 있었다. 마치 광물 그 자체처럼 광이 나는 썩은 피부를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착잡함을 삼키며 물었다.

-올라가면 넌 그대로 죽어. 그래도 가고 싶어?

-그렇다.

-왜?

그렇게 물으면서 나는 답을 이미 반쯤 알고 있었다. 왜긴 왜야. 그게 건예자라는 존재의 본능이니까 그런 것이겠지. 생각해보면 이런 곳에서 귀물로 천 년 만 년 사느니 그냥 햇빛 한 방에 녹아버리는 게 더...... 뭐랄까, 존엄했다. 귀물에게 존엄을 따지는 게 우습기는 했지만.

-너 저 위에 살 적 기억나?

건예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흉시든 괴뢰든, 죽은 사람이 변해 된 귀물은 생전의 자아를 간직하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한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나는 눈 앞의 건예자를 지상으로 데려가주지 못한다. 단순히 내 목숨이 걱정되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문제는 동굴 입구에 쳐진 진이었다. 건예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선 그 진을 없애야 하는데, 그랬다가 어떤 사단이 날지 알 수 없었다. 섭씨가 여기 진까지 쳐놓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건예자 한 마리 외에 몇 십, 몇 백 마리가 더 이 안에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몸 상태로는 내가 다시 진을 그리는 건 무리다.

눈 앞의 건예자를 이용하면 어떻게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이 탄광을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가 그럴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금단만 없었다면 이미 죽었겠지. 금단이 있으니 천천히 죽을 테고.

그래봐야 해가 지기 전이겠지만.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원래 이런 때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던데 그럴 힘조차 없었다. 새 한 마리 구하겠다는 어이 없는 이유로 폐광산에서 죽는 게 억울하냐고?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무섭거나 괴로운 것도 딱히 없었다. 금광요가 소식 들으면 헛웃음을 흘리겠거니 하는 생각, 그가 내 지전을 태워주겠지 하는 생각......

그러고보니 나 지전 태워줄 사람이 하나 더 있었지. 그 새하얀 얼굴을 생각하며 나는 배 위에 놓여있던 장죽을 꼭 감싸쥐었다. 그리고 진짜로 두 눈을 감았다.

*

뭐야.

뭐지.

나는 새까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탄광이 아니었다. 흑단목으로 된 천장. 여긴 부정세였다. 그걸 인지한 순간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려들어와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누군가 내 손을 으스러져라 쥐고 있다는 것도 몇 초 뒤에나 알았다.

-종주?

고개를 돌려보자, 섭회상이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앵무새는요? 찾았습니까?

섭회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심장이 쿵 가라앉았다.

-앵무는……

-넌 지금 그게 중요해?

자동적으로 입이 다물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까먹고 섭회상을 멍하니 바라만 보는데, 섭회상이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물었다.

-생각이라는 게 없니, 넌?

당신이 할 말인가. 평소였다면 속으로 그렇게 농담을 돈졌겠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대화의 방향성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힘겹게 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섭회상이 별로 상냥하지 않은 손짓으로 나를 다시 눕혔다. 그래서 나는 예의 없게도 자기 종주에게 누워서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이건 솔직히 좀 너무했다. 몸도 성치 않은 사람한테 세기의 난제를 묻다니. 사실 지금도 자꾸만 눈이 다시 감기는데.

-저를 찾으러 온 수사들이...... 다쳤나요?

그 건예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수사들 손에 죽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던 나는 이번엔 손을 정말 으스러져라 쥐어오는 섭회상 때문에 다시 인상을 쓰며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아. 화났네. 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섭회상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반쯤은 이게 울 만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반쯤은 내가 정말 죽일 놈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섭회상에게 붙잡히지 않은 손을 뻗었다. 그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섭회상이 내 손을 뿌리쳤다. 그러면서 여전히 내 다른쪽 손은 놓아주지 않고 꽉 쥐고 있는 게 이상해 나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나에게 섭회상이 물었다.

-돌아올 생각은 있었어?

-아니요.

나는 솔직히 말했다.

-새를 돌려보낼 생각만 했습니다.

-왜?

그렇게 묻는 섭회상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그의 그런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라, 나는 사실 당황했다. 당황하자 더 머리가 아파왔고, 어지럽다 못해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나는 꾹 참으며 말했다.

-종주님이 그 새를 아끼시잖아요.

-내가 너는 안 아꼈니?

-저는...... 저는 여기 온 지 반 년도 안 됐고, 그 새는 훨씬 종주님과 오래......

있지 않았습니까. 그 새가 종주님께 더 소중한 게 당연하죠. 그렇게 대답을 하고 싶었다. 사실 내가 끝까지 말을 했는지 못 했는지는 모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법 정신이 또렷했다. 통증도 생각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팔을 뻗어 침대맡을 더듬어보니 약그릇 같은 것이 잡혔다. 몸을 일으켜 앉은 뒤 일단 약부터 마셨다. 약맛은 끔찍했지만, 오히려 정신이 깨고 좋았다. 눈을 감고 내력을 운용해보았더니, 잔금 간 것들은 얼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상태였고 부러진 다리도 적당히 하고 붙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자 드디어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겼다.

며칠이나 지난 거지? 창을 열어 보니, 하늘에 뜬 건 완벽한 반달이었다. 그럼 일주일 정도가 지난 건가? 폐광에서 추락한 것만 해도 우스운데 일주일간 자리보전까지 하다니,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니기 힘들 듯했다. 무심코 가슴팍을 더듬던 나는 담뱃대가 없는 것을 깨닫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잃어버렸나 봐. 어쩌면 섭회상이 화를 냈던 이유에 이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마지막에 그것을 손에 쥐었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건예자와의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면, 얇은 장죽 따위 쉽게 부러질 수 있었겠지.

섭회상의 우는 얼굴이 눈 앞에 맴돌아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한숨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장죽은 당연히 없었고, 목발로 쓸 만한 나무 막대기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침대맡 탁상을 짚으며 아주 천천히 두 다리로 일어서 보았다. 다행히 오른다리에 체중을 실으면 좀 걸을 만 했다.

절뚝대는 걸음으로 내가 향한 곳은 정원이었다.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었는데, 밤바람을 쐬자 좀 살 것 같았다. 하필이면 새장이 걸린 소나무가 정원 끝에 있어서, 나는 불편함과 왼쪽 다리에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을 참으며 정원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가보니 새장은 텅 비어있었다. 내가 텅빈 새장을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새를 찾는 거라면 내 방에 있어. 다리가 붙을 때까지 내 방에 두려고.

고개를 돌리자 섭회상이 저 멀리 복도쪽에 서 있었다. 그가 정원으로 나오는 것을 따라 나는 말없이 시선만 움직였다. 마침내 내 앞에 다가와 선 그는 이제는 익숙한 중의 차림이었다. 달빛이 밝아서 그의 몸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지만, 다행히도 몸 속 피가 부족했는지 내 얼굴이 붉어지는 일은 없었다. 사실 더 급한 문제가 있기도 했다. 무표정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달빛 아래 표정 없는 섭회상의 얼굴은 마치 달 그 자체 같았다. 나는 마른 입술을 깨물며 그에게 물었다.

-새장 관리하던 시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넌 그게 궁금해?

-네.

섭회상 눈에는 내가 낮보다 더 모자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그 시녀에게 새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반만 지켰으니까.

-그 시녀는 잘못이 없습니다.

섭회상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나무 위로 시선을 옮겼다. 밤바람이 불어 그의 머리카락을 부스스 흩어놓았다.

-알아.

이번엔 내가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침묵했다. 나에게는 침묵이 남는 장사였다. 사실 섭회상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나에게는 뭐가 되었든 이득일 것이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린 얼굴이 바로 이 얼굴이었으니까. 나를 바라보지 않는 옆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나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종주님은 앵무를 얼마나 아끼세요?

섭회상이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았다.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그의 새까만 두 눈이 나에게 묻고 있었다.

-왜 일반 시녀들에게 새를 돌보게 하세요? 왜 이런 정원에서 새를 혼자 재우시고요?

그건 내가 새를 찾을 때부터 궁금해했던 것이었다. 그걸 이렇게 대놓고 물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달빛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섭회상도 내 질문을 듣곤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하더니, 한 손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동안 그는 말이 없었고 나는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말했다.

-내가 새를 충분히 아끼지 않았다는 거지?

-그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도 돼. 지금은.

그러더니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새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글쎄요. 십 년? 십오 년?

-그쯤 되지.

-그러니까 종주께서는 지금, 새에게 정 주는 게 무섭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네요?

혀가 드디어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그렇게 내뱉고야 말았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섭회상이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그 며칠 사이에 키가 더 커진 건 아닐 테고, 내가 특별히 작아진 것도 아닐 텐데 그가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말했다.

-이상해?

-조금요. 저라면 오히려 맘 편하게 아껴줄 것 같거든요. 끝이 정해져 있는 관계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정해진 기간 동안 무언가를 아끼고 보듬는 건 쉬운 일이다. 문제는 기약이 없을 때다. 마치 지금처럼. 동생이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약을 구할 궁리를 할 때면 나는 마치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나는 섭회상에게 손을 뻗고 싶은 걸 참으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제쯤 부정세를 떠나게 될까?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떻게 떠나야 할까? 몰래?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섭회상에게 인사를 올리고? 그런 문제에 골몰해있던 나는, 섭회상의 질문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래서 네가 나를 아끼는 거니?

차가운 손이 다가와 내 뺨을 감쌌다. 섭회상이 아주 느리게 몸을 기울였지만 내겐 그게 느리다는 자각도 없었다. 입술이 천천히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반쯤 감긴 섭회상의 두 눈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난 나보다 먼저 죽는 이를 이해하기엔 이제 지쳤어.

나는 뭐라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안다는 듯, 섭회상이 쉽게 풀이해주었다.

-그러니 너는 오래 살아야 해. 반드시.

너는 정말 멍청하다는 섭회상의 말이 사실인 듯, 여전히 나는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섭회상이 내 입가에 가볍게 입맞췄다. 그리곤 나를 조심스럽게 잡아끌었다.

-앉아. 미련하게, 아프면서 서있지 말고.

나는 천천히 돌의자 위에 앉았다. 연못에 일렁이는 내 모습은 완전 귀신이 따로 없었다. 꼴이 정말 말이 아닌데? 이런 얼굴을 보고 입맞출 생각을 한 섭회상이 신기했다. 연못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고만 있는데, 섭회상이 내 옆에 앉았다. 한동안 그와 나는 그렇게 연못에 비친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더라. 너도 나한테 그런 말을 했던가?

-글쎄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진짜로 기억이 안 났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아마 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 달리 어떤 말로 충성을 맹세하겠는가? 내 질문에 답하듯 섭회상이 말했다.

-나를 위해 살아남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게 어떻게 충성이고 사랑이야? 말이 사랑이지, 그냥 나한테 빚을 안겨주는 거잖아.

그렇게 말하는 섭회상의 목소리는 매우 건조했다. 말투도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게 그의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의 방에 있던 그 주술 조각을 생각하면 그랬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무는 대신 그에게 말 걸기를 택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압니다. 하지만 신선이 아닌 이상 나 받고 싶은 것만 받고 살 수만은 없잖아요. 종주님께 그런 말을 하신 분들이 정말 죽고 싶어 죽었겠습니까.

섭회상은 섭명결에게 분명 고맙지만은 않을 것이다. 형이 자기 대신 주화입마 떠안고 죽는 게 어떻게 고마워만 할 일인가.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 섭명결도 마찬가지다. 동생 대신 장남으로서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게 즐거웠겠는가? 하지만 이 쪽도 달리 특별한 수가 없었으리라.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부채감에 형제의 우애가 상하지 않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우애가 티 없이 순수하여 모두에게 모범이 되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이 형제의 우애란 그 근본부터 어쩔 수 없이 비틀린 데가 있었다.

눈을 감은 섭회상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의 방에서 보았던 주술 조각을 떠올렸다. 정말 무슨 생각일까. 자기가 희생해서 섭명결을 되살릴 수 있다고 믿는걸까?

-부러워.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놀라서 두 눈만 깜박였다. 섭회상이 말을 이었다.

-형님이 돌아가신 뒤로 나는 더 이상 없었어. 오직 가문이, 그리고 돌아가신 형님이 계셨을 뿐이지. 그런데 넌 네 맘대로 죽을 생각도 하고, 맹랑하잖아?

섭회상이 말을 멈추더니 작게 웃었다.

-정말 멋대로야. 너는.

그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쳤다. 갑자기 담배가 말려서, 나는 다른 손으로 가슴팍을 더듬대다가 멈췄다. 생각해보니 맘대로 죽으려 한 것 외에도, 섭회상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저기, 종주......

-이거 찾아?

그 순간 내가 낸 소리는 비명도 목졸리는 소리도 아니었지만 그 두 가지 모두와 흡사했다. 섭회상의 손에 들린 건 내 담뱃대였다. 섭회상이 눈을 떠서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얼른 담뱃대를 받아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행히 옆에 아주 미약하게 실금이 간 것 빼고 담뱃대는 멀쩡했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저 완연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슬펐다고요.

-담배 못 피울까봐 슬펐던 거겠지.

-아닙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진지한 대답을 내놓고 말았다. 여기선 맞다고 어물쩡 넘어가는 게 현명했을 텐데.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니, 나는 모른 척 담뱃대만 내려다보았다. 섭회상도 별 말이 없더니, 수면에 맺힌 그의 몸이 내게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곧 한쪽 어깨가 묵직해졌다. 머리카락이 사르르 흘러내리는 소리와 함께, 내가 미처 그리워하지 못했던 섭회상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참 이상해. 돈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대놓고 말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는데, 돈에는 욕심 많으면서 네 목숨에는 욕심이 없어?

-무슨 말씀이세요?

-탄광에서 너를 발견했을 때,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아니?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후련해 보이더라.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사이, 섭회상의 목소리 끝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후련하지 마.

-종주......

-난 약속 지킬 자신 없어. 너를 위해 지전을 태울 자신이 없단 말이야. 네 것만큼은 죽어도 태우지 않을 거야. 알아듣겠니?

이제 섭회상의 목소리는 완전히 젖어있었다.

-내가 너를 찾지 않을 것 같았니?

대답하지 않는 동안 길어지는 침묵을 느끼다가, 나는 말했다.

-찾지 않으셔도 상관 없었습니다.

-그럼, 내가 보고 싶진 않았니?

이제 섭회상은 정말 울고 있었다. 알 수 있었다.

-네가 정말 미워. 네가 부정세에 왔잖아.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 해? 넌...... 너도 다른 사람과 똑같아. 말로만 날 가엾어한 거지. 내 생각은 조금만치도 안 한 거야.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아닙니다.

나는 섭회상의 말을 끊었다.

-제가 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생각한 건 종주님 얼굴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묻는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리게 창백했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고민했다. 과장 좀 보태서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위해 내가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뇌를 갈아끼우지 않는 이상 답이 안 나올 문제여서, 나는 결국 비겁한 방법을 택했다.

-왜인지 정말 모르십니까?

섭회상이 입술을 가볍게 떨더니 이내 내 시선을 피했다.

-넌 정말 바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섭회상이 내 손을 지그시 쥐어왔다.

-널 만난 뒤로 모든 게 자꾸만 어긋나. 그런데도 좋으니, 나도 정말 어리석기는 어리석은가보지.

나는 대꾸할 수 없었다. 한참 뒤에야 그는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장유에게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서 몇 번 눈을 깜박이던 나는 장유가 총령의 이름이라는 걸 떠올리곤 겨우 대화의 맥락을 파악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섭회상의 질문이 누구를 향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섭회상과 마주잡은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그냥 두세요. 총령님이 이미 징계도 내리셨고, 보니까 상태도 좋지 않던데.

섭회상은 한참 동안 뭔가를 고민하듯 대답이 없더니 물었다.

-넌 억울하지 않아?

-뭐가요?

-듣기로 너를 오랫동안 괴롭혔다며. 부정세 모두가 너를 괴롭히고 못 본 척 했다지.

그렇긴 했지. 하지만 어딜 가든 그런 텃세는 있는 법이고 중간중간 내가 패주기도 했으니 상관 없었다. 오히려 너무 팼던 게 아닌가 싶기까지 했는데,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섭회상이 물었다.

-내가 안 미웠어?

-종주님이 왜 미워요?

나는 순전한 궁금증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연못을 통해 섭회상의 표정을 살피는데, 어쩐지 화가 나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어두운데다 물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몰랐잖아.

-당연하죠. 제가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는데.

-그럼 왜 나한테 아무 이야기도 안 했어?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종주님이 뭘 해주실 수 있다고요.

진짜로. 쟤가 나 괴롭혀요 이런 걸 종주에게 말하는 건 옆집이랑 싸웠다고 황궁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애초에 별로 그렇게 신경쓰이는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건 내가 견뎌야 할 일이었다. 섭회상에게는 섭회상이 견뎌야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종주 회의에서 그를 비호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도 그 상황에서 달리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었을 거다.

-내가 해줄 수 있었다면? 뭐라도.

그렇게 묻는 목소리는 너무나 작고 힘이 없어서, 나는 하마터면 듣지 못할 뻔했다. 나는 잠시 굳어있다가 대답했다.

-상관 없습니다.

잠시 뒤, 억눌린 대답이 돌아왔다.

-바보.

자꾸 누가 누구더러 바보래. 그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다보면, 갑자기 어깨가 조금 축축한 것도 같았다. 어렵게 고개를 돌려 섭회상의 얼굴을 확인하자 그가 울고 있었다. 또 왜 울까.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그에게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조심조심 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멍청한 건 전데 왜 종주님이 자꾸 우세요?

섭회상이 작게 웃더니 자기 눈가를 매만지는 내 손을 잡아챘다.

-왜일 것 같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섭회상이 내 손을 자기 입가로 가까이 가져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가 내 손 위로 속삭였다.

-너는 사실 욕심쟁이인 게 분명해.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듯이 굴잖아. 정말 나에게 아무것도 받기 싫으니? 난 너에게 아무것도 줄 수가 없니?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수련을 거의 하지 않아서인지 고운 섭회상의 손과, 꼭 그만큼 고운 섭회상의 입술과, 굳은살이 빼곡히 박힌 내 손은 달빛 아래 그만한 대비를 이루기도 참 어려워보였다. 이윽고 섭회상의 입술이 내 손가락 위에 닿았다. 한동안 그는 그렇게 내 손가락 위에 입술을 대고만 있었다. 그러더니 입술을 움직여 내 엄지 끝을 가볍게 물었다. 그리곤 더 가까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의 움직임은 아주 느렸고, 마침내 입술이 맞닿을 때까지 나는 정말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혀끝이 닿은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렸지만, 섭회상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동시에 입맞춤이 더 깊어졌다.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바가 없었던 나는 어영부영 상대방을 따라 서툴게 혀를 움직였다. 기침이 터질 때까지.

원래라면 달뜬 신음이나 가쁜 숨소리가 흘러야 할 텐데 폐를 토해낼 것 같은 기침이나 하면서 나는 섭회상을 밀쳤다. 목에 피 맛이 도는 걸 보면 조금 무리한 모양이었다. 물론 혀 조금 움직였다고 파업할 정도로 내 몸이 답 없는 건 아닐 거고, 지금 터질 것 같이 뛰고 있는 심장이 한 몫 했겠지. 겨우 기침이 멎었을 땐 이제 내 눈꼬리에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섭회상이 내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이만 들어가자. 밤공기를 너무 오래 쐬면 네 몸에 좋지 않을 거야.

종주에게 챙김 받는 수사는 아마 나밖에 없을 거다. 이러고 봉급 받아먹어도 되나? 하기야 내 밥줄을 쥔 진짜 주인은 금광요지. 금광요는 내가 쓰러졌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면 대체 뭐라고 할까 생각을 하며 나는 섭회상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돌아갔다. 방 앞에서 감사 인사를 하고 그를 돌려보내려는데, 그가 먼저 방문을 열지 뭔가.

결국 침대에 누워 종주를 배웅해도 되는 건가 눈만 굴리는데, 섭회상이 의자를 끌고 와 아예 침대 옆에 앉았다. 나는 못 참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뭐하세요?

-너 잘 때까지 같이 있으려고.

왜요, 하는 질문은 의미 없을 것을 알아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종주님 계시면 저 바로 못 잘 것 같은데요.

-그럼 더 좋고.

한숨을 내쉬자 섭회상이 작게 키득거리며 내 왼손을 쥐어왔다. 그에게 잡힌 손을 무시하고 창 밖을 내다보면서, 나는 섭회상이 언제쯤 결혼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 상대를 생각하면 내가 섭회상과 이러고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 핑계를 대고 갑자기 섭회상을 밀어내는 것도 우스웠다. 어차피 이건 한 때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흘려보내야지. 그러다가때가 되면 부정세를 떠날 것이다. 금광요도 아마 이해해줄 것이다.

그런데 떠나서 어디로 가야 할까. 아예 동영으로? 금광요는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나를 여기 부정세에 보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에 혼자였다. 섭회상이 빼서 앉았던 의자도 제자리에 돌려져 있어서, 내 머리맡에 있는 빈 약그릇과 장죽이 아니면 나는 어젯밤 일이 전부 꿈이었나 생각했을 것이다.

다리가 붙는 데에는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정말 제대로 붙으려면 열흘은 더 넉넉잡아 필요했고 몸이 다 회복되려면 한 달이 필요했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 없을 정도로 회복된 건 일주일 만이었다. 섭회상은 나를 다시 봤다는 듯 새삼스러운 얼굴을 했다.

-너 정말...... 강하구나.

-그게 아니라 그냥 통뼈라 그럽니다.

섭회상이 뭐라 더 입을 열기 전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저는 언제 복귀합니까? 더 쉬어도 되는 건가요?

-그럼. 당연하지.

다행히도, 목숨 붙은 것 확인하고 곧바로 나에게 일을 시킬 정도로 부정세가 사람 없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섭회상이 나를 말 그대로 옆에 끼고 있었기에, 피로도는 일을 할 때와 거의 비슷했다.

그러고보니 나와 있던 건예자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내가 갑자기 생각이 나 섭회상에게 물었을 때, 시화집을 필사하던 섭회상은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죽였어.

그랬겠지. 내게서 별 대꾸가 없자, 섭회상이 붓을 멈추곤 자기 맞은편에 앉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런 얼굴을 해?

-제가 어떤 얼굴을 했는데요?

-그 건예자가 불쌍하기라도 한 거야?

들켰네. 내가 아무 말 못 하자 섭회상이 헛웃음을 지었다. 분위기가 시시각각 날카로워지는 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진계 사람이 되어서 한낱 귀물에게 자비심을 갖다니, 보살이 따로 없구나.

-그게 아니라, 제가 약속을 했단 말입니다. 해가 지면 밖으로 데려가주겠다고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남을 마구잡이로 해치는 귀물도 아닌데, 불쌍하잖아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섭회상은 이제 붓을 아예 내려놓은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화가 나 보였다. 나는 또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 몰라 긴장했지만, 섭회상이 자기 자신을 달래듯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이건 끝난 일이니까.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마.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렇게 물으려 했으나 섭회상이 내 말허리를 잘랐다.

-나를 제일 불쌍히 여겨달라고.

단호하다 못해 차가운 목소리였다. 너무 차가워서 뜨겁게 느껴질 정도라면 말이 이상한가? 하지만 그의 목소리도, 그의 시선도 그 순간의 내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섭회상이 다시 말했다.

-항상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나를 생각해달란 말이야. 내가 이런 부탁까지 해야겠니?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자 친절하게도 섭회상이 짧게 끊어 말했다.

-약속해.

-네.

나는 쫄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섭회상이 완전히 헛으로 종주 생활을 한 건 아닌가보지. 순간적이었지만 상대방을 복종하게 하는 위엄 같은 것이 그에게 있었다. 나는 어쩐지 어색해진 자리를 피해 섭회상의 침실 맞은편으로 갔다. 거기엔 고운 흰 천 위에 누운 앵무새가 있었다. 찌르르 작게 우는 앵무새의 머리를 나는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열 살 넘었댔지. 그럼 얘도 완전히 노익장인 거였다.

-몸은 좀 괜찮아?

내 속삭임에, 새는 또 작은 울음소리로 답했다. 며칠 전 섭회상에게 경과를 물었을 때 아마 한 달은 족히 누워있어야 한다고 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 얇고 조그만 다리뼈가 붙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니. 나는 여전히 알록달록하지만 어쩐지 색이 바랜 듯한 앵무새의 깃털을 바라보았다. 새에게 미안했다. 내가 발만 헛디디지 않았어도 지금보다는 덜 앓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인 건 앞으로 계속 앵무새가 섭회상의 방에 머물게 되리라는 점이었다. 섭회상이 직접 먹이를 주려는 듯했다. 아마 그도 하다 보면 곧 작별할 이를 사랑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도리어 더 쉽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