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09091819
view 5760
2022.11.23 02:31
노잼 맞춤법 띄어쓰기 짭마법소녀 ㅈㅇ
공사를 하다 만 건지 골재가 드러난 천장에 칠이 죄 까진 콘크리트와 바람에 삐걱거리는 철문. 대충만 봐도 폐공장이 틀림 없다. 이런 데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지. 내가 올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나.
뿌연 시야를 겨우 붙잡고 주위를 훑어보던 강징은 코를 찌르는 먼지에 콜록, 기침을 뱉었다.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손이 의자 뒤로 묶여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부림을 칠수록 케이블타이가 살에 파고들었다. 이러다 범인 얼굴을 보기도 전에 손목을 잃을 것 같아 강징은 힘을 풀었다. 그새 쓸렸는지 손목에서 따끔함이 느껴졌다.
저 높은 천장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의 달빛을 바라보며, 강징은 기억 저편을 더듬어보았다. 제가 왜 여기 있으며, 왜 이런 꼴로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흐릿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별 같잖지도 않은 빌런 새끼의 얼굴이었다. 맞아, 이제야 기억이 난다. 학교 옆 공원에 갑자기 거북이 악당이 나타났고,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강징이 출동을 했다. 다행히 약한 놈이라 금방 물리친 후 가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어이."하며 강징의 주의를 끌었고, 보인 것은...
"깼네?"
그래, 저 인간이었다. 망할 놈의 푸른 정장! 강징이 이를 빠득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나 안 반가워?"
"너 같으면 반갑겠냐?"
"난 무ㅡ지 반가운데."
그가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뻔히 표정이 예상될 정도로 싱글싱글 웃었다. 나를 납치한 이유가 혹시 혈압 올려 죽이려는 건가? 강징은 묶인 손을 들어 뒷목을 부여잡을 뻔 했다. 저 새끼는 늘 저랬다. 건물을 터뜨리면서도 싱글생글, 다리에 불을 지르고서도 싱글생글. 한 번은 백화점 조명을 죄다 쨍한 파랑으로 바꿔놓고 그 앞에서 깔깔대며 웃고 있더라. 얼마나 기가 차던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있는 강징을 보며 그는 그날처럼 깔깔 웃었다.
"넌 가면을 써도 눈에 감정이 다 보여."
"별..."
"그래서 너무 재밌단 말이야. 계속 보고 싶게."
"지랄하지 말고 이거 풀어."
"으음..."
싫어.
공장에 메아리치던 웃음소리가 단박에 사라졌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강징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조용한 공간에 저벅대는 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묶여있는 몸은 피할 새가 없고, 어느새 그의 거대한 몸은 강징 앞에 있었다. 두 사람 사이 거리가 고작 한 발 자국이었다.
"가면 쓴 것도 좋지만..."
"......"
"역시 맨 얼굴을 더 보고 싶다."
방금 전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는 상상도 못할 만큼 짙은 목소리가 온몸을 덮쳐오듯 속삭였다. 강징은 뺨을 감싸듯 제 가면 측면을 큰 손이 살며시 쥐어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술을 또 마시면 인간이 아니라 개다, 개!
그러니까,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이었다.
옆집 사는 엄마친구아들이라 쓰고 불알친구라고 읽는 위무선이 개강한 기념으로 술을 퍼먹자며 이른 점심부터 찡찡대더니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마자 주점으로 향했다. 분명 저보다 말랐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도망칠 새도 없이 끌려간 강징은 개강 첫 날부터 술에 절여졌다. 진정대 대표 주당, 위무선은 아주 신이 나서 온갖 폭탄주를 말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강징은 한 시간 반 만에 꼴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위무선이 과 동기를 발견해서 자리를 비운지도 모를 만큼.
다행스럽게도 강징의 술버릇은 귀가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술에 꼴은 강징은 귀가를 하기 위해 주점을 나와 걸었다. 위무선이 없는 것도 까먹은 채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집을 향하던 강징은 땅바닥에서 반짝 빛을 내는 무언가를 보고 제자리에 섰다. 강징의 행동을 말려줄 불알친구는 불행하게도 아직 주점에 있었기에 그는 무의식에 '무언가'를 주웠다.
그건 팔찌였다. 자색 뱀이 팔목을 감싸고, 반지가 체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술기운이 가득 깃든 동공으로 살피던 강징은 자신도 모르게 팔찌를 꼈다. 왜 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듯 싶기도 하고, 눈에 홀린 것도 같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강징이 팔찌를 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평범한 장신구가 아니었는지 강징이 끼자마자 은은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뱀이 꿈틀대면서 팔목을 서서히 감으며 빙그르 돌았다. 다시 말하지만 강징은 술에 아주 꼴아 있었고, 정상적인 사고 능력이 굉장히 떨어져 있었다. 제정신에는 기피할 뱀을 예쁘다며 쓰다듬었다는 뜻이다.
뱀은 곧 강징의 팔목을 벗어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기를 가로질러 서서히 오르다 강징 눈높이에 맞춰 멈췄다. 그리고는 작은 입을 열고 쉭쉭대었다.
- 너구나. 날 깨운 이가.
강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우왕."
그런 정신머리였으니 뱀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렸겠는가. 그냥 고개나 대충 끄덕이고, 싸인하라길래 싸인했지. 사태를 제대로 알아차린 건 다음 날 술이 깬 이후였다. 약 12시간을 내리 잔 강징이 쓰린 속을 부여잡고 기어나오던 중 발견했다. 무엇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뱀을. 어디서? 제 팔목에서.
강징은 순간 제가 죽었구나 싶었다. 위무선이 폭탄주 대신 기어코 독을 만들었구나. 마지막에 먹은 무선특제고추주(위무선이 이름 붙임)가 분명 원인이라 의심하며 개거품을 물 뻔 했다. 하지만 뱀의 이가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물었고, 전기가 흐르듯 찌릿함이 느껴졌다. 현실이었다. 뱀이 제 팔목을 기어다니는 것도, 뱀이 물자마자 숙취가 싹 가신 것도 죄다 현실이었다.
"... 너 뭐야?"
- 자전.
"... 자전...?"
- 기억 못할 줄 알았다.
자신을 자전이라 소개한 뱀은 어제 안내했다던 히어로 계약서를 빠르게 읽어내렸다.
[1. 이 계약은 자전(이하 '갑'이라고 한다)과 강징(이하 '을'이라고 한다) 간의 히어로 활동에 관한 약정이다.
2. 을은 갑이 지시하는 때에 히어로 활동을 수행한다.
3. 을은 갑이 지시하는대로 히어로 활동을 수행한다.
•••
10. 갑과 을의 계약은 갑이 원할 때까지 지속된다. ]
"뭐 이런 계약서가 있어!! 이거 취업 사기야. 나 못해!"
- 계약을 끝내는 방법은 한 가지다.
"뭔데?!"
- 죽음.
강징은 입을 합 닫았다. 저 뱀, 아니 자전은 농담이 아닌 듯 했다. 까딱하다가는 대학 졸업도 못하고 죽을 것 같다. 내가 스펙을 어떻게 쌓았는데. 얼마나 자격증을 준비하고 언어를 공부했는데...!
죽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뿐이었다.
"하면 되잖아... 히어로..."
그렇게 평범한 대학생이던 강징은 하루 아침에 히어로가 되었다.
히어로 활동은 걱정이 무색하도록 단순했다. 빌런이 나타나면 자전이 쉭쉭거리며 신호를 보낸다. 그럼 강징은 팔찌에 달린 반지의 자색 보석을 두 번 터치한다. 히어로 의상과 가면으로 변신하면 빌런을 쫓아가서 뚜까 패고, 변신이 풀리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오기. 끝. 쉽다며 투덜거릴 시간도 있었다. 며칠 정도는.
강징은 나흘쯤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빌런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이 잔챙이라 처치가 어렵지는 않은데(딱 유아 수준이었다. 해봤자 쓰레기통 길가에 내던지기, 나무 이상한 모양으로 만들기, 꽃 이상한 색으로 물들이기, 물방울 만들어서 시민한테 던지기 등) 수가 너무 많았다. 하나를 패면 둘이 튀어오고, 둘을 패면 넷이 기어나왔다. 쉴 틈이 없었다. 변신을 풀기만 하면 다시 신호가 울려서 또 다시 변신을 해야 했다. 이게 히어로인지, 아니면 유아를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인지 모를 정도가 되니 약간 미칠 지경이었다. 피로는 자전이 풀어줬지만(자전의 이가 살을 물면 병이 다 낫는다)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쌓였다.
그쯤되니 위무선도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강징! 어디 가냐고!"
"잠깐 갈 데가 있어."
"같이 가!"
"금방 올게."
위무선이 서운해하는 게 뻔히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전은 히어로가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서운 표정으로 몇 번이나 말하는 걸 봐서는 정말 안 되는 듯 했다. 그러니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와 죄책감만 늘어났다. 히어로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싶던 그때, 그가 떡하니 나타났다.
"네가 그 히어로구나? 생각보다... 귀엽네."
푸른 정장.
그놈은 잔챙이들과 차원이 달랐다. 다른 빌런이 나무 하나를 건들인다면 그 놈은 산을 불태웠다. 도망치는 실력도 뛰어나 고작 히어로 2주차인 강징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상대였다. 그러나 피할 길은 없고, 이름도 모르는 푸른 정장은 쉴 새 없이 사고를 쳐대서 강징은 그를 계속 쫓아다녔다. 2주 동안이나 계ㅡ속.
그리고 오늘, 이 상황이었다. 자신을 납치해 가면을 벗기려는 푸른 정장과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강징. 강징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재빨리 뇌를 돌렸다.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손은 묶여있고 움직일 수 없다. ... 하지만 발은 안 묶여있지.
강징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벗어난 다음 다리를 들어 사람을 힘껏 걷어찼다. 무릎을 정통으로 맞은 그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난 틈에 강징은 온 힘을 실어 의자를 땅에 부딪혔다. 나무의자가 산산조각 났다. 몸 또한 산산조각이 날듯 아팠지만 강징은 얼른 일어섰다. 한 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얼른 이 곳에서 벗어나 자전을 되찾아...
"역시 재밌다니까!"
푸른 정장이 박수를 짝짝 치며 웃었다. 그의 눈동자와 온몸이 흥분으로 젖었음이 보였다. 그러나, 강징이 생각을 멈춘 까닭은 제 공격이 의도대로 먹히지 않아서도, 탈출할 구멍이 사라져서도 아니었다. 푸른 정장의 가면이 벗겨져 있었다. 더 이상 숨길 마음도 없는지 가면 아래 숨었던 얼굴이 달빛 아래로 훤히 드러났다. 잘난 이목구비를 보며, 강징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희신 선배...?"
망할 놈의 푸른 정장은, 강징의 대학교 선배이자 남망기의 형인 남희신이었다.
이런 걸로 강징텀 보고 싶다
학교에서는 친절하고 다정한 선배지만 밖에서는 빌런짓 하고 다니는 푸른 정장 남희신
소꿉친구이자 부랄친구 + 짭형제로 비밀 없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비밀 생긴 강징이 신경쓰이는 위무선
위무선의 친구라는 공통점을 두고도 데면데면하던 동기 사이였는데 히어로 활동하던 강징이 한 번 구해준 이후로 정체 모를 자전청년한테 반해버린 남망기(지 형이 빌런인 건 모름)
강징텀 희신강징 무선강징 망기강징
공사를 하다 만 건지 골재가 드러난 천장에 칠이 죄 까진 콘크리트와 바람에 삐걱거리는 철문. 대충만 봐도 폐공장이 틀림 없다. 이런 데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지. 내가 올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나.
뿌연 시야를 겨우 붙잡고 주위를 훑어보던 강징은 코를 찌르는 먼지에 콜록, 기침을 뱉었다.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손이 의자 뒤로 묶여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부림을 칠수록 케이블타이가 살에 파고들었다. 이러다 범인 얼굴을 보기도 전에 손목을 잃을 것 같아 강징은 힘을 풀었다. 그새 쓸렸는지 손목에서 따끔함이 느껴졌다.
저 높은 천장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의 달빛을 바라보며, 강징은 기억 저편을 더듬어보았다. 제가 왜 여기 있으며, 왜 이런 꼴로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흐릿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별 같잖지도 않은 빌런 새끼의 얼굴이었다. 맞아, 이제야 기억이 난다. 학교 옆 공원에 갑자기 거북이 악당이 나타났고,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강징이 출동을 했다. 다행히 약한 놈이라 금방 물리친 후 가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어이."하며 강징의 주의를 끌었고, 보인 것은...
"깼네?"
그래, 저 인간이었다. 망할 놈의 푸른 정장! 강징이 이를 빠득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나 안 반가워?"
"너 같으면 반갑겠냐?"
"난 무ㅡ지 반가운데."
그가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뻔히 표정이 예상될 정도로 싱글싱글 웃었다. 나를 납치한 이유가 혹시 혈압 올려 죽이려는 건가? 강징은 묶인 손을 들어 뒷목을 부여잡을 뻔 했다. 저 새끼는 늘 저랬다. 건물을 터뜨리면서도 싱글생글, 다리에 불을 지르고서도 싱글생글. 한 번은 백화점 조명을 죄다 쨍한 파랑으로 바꿔놓고 그 앞에서 깔깔대며 웃고 있더라. 얼마나 기가 차던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있는 강징을 보며 그는 그날처럼 깔깔 웃었다.
"넌 가면을 써도 눈에 감정이 다 보여."
"별..."
"그래서 너무 재밌단 말이야. 계속 보고 싶게."
"지랄하지 말고 이거 풀어."
"으음..."
싫어.
공장에 메아리치던 웃음소리가 단박에 사라졌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강징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조용한 공간에 저벅대는 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묶여있는 몸은 피할 새가 없고, 어느새 그의 거대한 몸은 강징 앞에 있었다. 두 사람 사이 거리가 고작 한 발 자국이었다.
"가면 쓴 것도 좋지만..."
"......"
"역시 맨 얼굴을 더 보고 싶다."
방금 전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는 상상도 못할 만큼 짙은 목소리가 온몸을 덮쳐오듯 속삭였다. 강징은 뺨을 감싸듯 제 가면 측면을 큰 손이 살며시 쥐어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술을 또 마시면 인간이 아니라 개다, 개!
그러니까,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이었다.
옆집 사는 엄마친구아들이라 쓰고 불알친구라고 읽는 위무선이 개강한 기념으로 술을 퍼먹자며 이른 점심부터 찡찡대더니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마자 주점으로 향했다. 분명 저보다 말랐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도망칠 새도 없이 끌려간 강징은 개강 첫 날부터 술에 절여졌다. 진정대 대표 주당, 위무선은 아주 신이 나서 온갖 폭탄주를 말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강징은 한 시간 반 만에 꼴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위무선이 과 동기를 발견해서 자리를 비운지도 모를 만큼.
다행스럽게도 강징의 술버릇은 귀가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술에 꼴은 강징은 귀가를 하기 위해 주점을 나와 걸었다. 위무선이 없는 것도 까먹은 채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집을 향하던 강징은 땅바닥에서 반짝 빛을 내는 무언가를 보고 제자리에 섰다. 강징의 행동을 말려줄 불알친구는 불행하게도 아직 주점에 있었기에 그는 무의식에 '무언가'를 주웠다.
그건 팔찌였다. 자색 뱀이 팔목을 감싸고, 반지가 체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술기운이 가득 깃든 동공으로 살피던 강징은 자신도 모르게 팔찌를 꼈다. 왜 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듯 싶기도 하고, 눈에 홀린 것도 같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강징이 팔찌를 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평범한 장신구가 아니었는지 강징이 끼자마자 은은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뱀이 꿈틀대면서 팔목을 서서히 감으며 빙그르 돌았다. 다시 말하지만 강징은 술에 아주 꼴아 있었고, 정상적인 사고 능력이 굉장히 떨어져 있었다. 제정신에는 기피할 뱀을 예쁘다며 쓰다듬었다는 뜻이다.
뱀은 곧 강징의 팔목을 벗어나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기를 가로질러 서서히 오르다 강징 눈높이에 맞춰 멈췄다. 그리고는 작은 입을 열고 쉭쉭대었다.
- 너구나. 날 깨운 이가.
강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우왕."
그런 정신머리였으니 뱀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렸겠는가. 그냥 고개나 대충 끄덕이고, 싸인하라길래 싸인했지. 사태를 제대로 알아차린 건 다음 날 술이 깬 이후였다. 약 12시간을 내리 잔 강징이 쓰린 속을 부여잡고 기어나오던 중 발견했다. 무엇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뱀을. 어디서? 제 팔목에서.
강징은 순간 제가 죽었구나 싶었다. 위무선이 폭탄주 대신 기어코 독을 만들었구나. 마지막에 먹은 무선특제고추주(위무선이 이름 붙임)가 분명 원인이라 의심하며 개거품을 물 뻔 했다. 하지만 뱀의 이가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물었고, 전기가 흐르듯 찌릿함이 느껴졌다. 현실이었다. 뱀이 제 팔목을 기어다니는 것도, 뱀이 물자마자 숙취가 싹 가신 것도 죄다 현실이었다.
"... 너 뭐야?"
- 자전.
"... 자전...?"
- 기억 못할 줄 알았다.
자신을 자전이라 소개한 뱀은 어제 안내했다던 히어로 계약서를 빠르게 읽어내렸다.
[1. 이 계약은 자전(이하 '갑'이라고 한다)과 강징(이하 '을'이라고 한다) 간의 히어로 활동에 관한 약정이다.
2. 을은 갑이 지시하는 때에 히어로 활동을 수행한다.
3. 을은 갑이 지시하는대로 히어로 활동을 수행한다.
•••
10. 갑과 을의 계약은 갑이 원할 때까지 지속된다. ]
"뭐 이런 계약서가 있어!! 이거 취업 사기야. 나 못해!"
- 계약을 끝내는 방법은 한 가지다.
"뭔데?!"
- 죽음.
강징은 입을 합 닫았다. 저 뱀, 아니 자전은 농담이 아닌 듯 했다. 까딱하다가는 대학 졸업도 못하고 죽을 것 같다. 내가 스펙을 어떻게 쌓았는데. 얼마나 자격증을 준비하고 언어를 공부했는데...!
죽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뿐이었다.
"하면 되잖아... 히어로..."
그렇게 평범한 대학생이던 강징은 하루 아침에 히어로가 되었다.
히어로 활동은 걱정이 무색하도록 단순했다. 빌런이 나타나면 자전이 쉭쉭거리며 신호를 보낸다. 그럼 강징은 팔찌에 달린 반지의 자색 보석을 두 번 터치한다. 히어로 의상과 가면으로 변신하면 빌런을 쫓아가서 뚜까 패고, 변신이 풀리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오기. 끝. 쉽다며 투덜거릴 시간도 있었다. 며칠 정도는.
강징은 나흘쯤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빌런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이 잔챙이라 처치가 어렵지는 않은데(딱 유아 수준이었다. 해봤자 쓰레기통 길가에 내던지기, 나무 이상한 모양으로 만들기, 꽃 이상한 색으로 물들이기, 물방울 만들어서 시민한테 던지기 등) 수가 너무 많았다. 하나를 패면 둘이 튀어오고, 둘을 패면 넷이 기어나왔다. 쉴 틈이 없었다. 변신을 풀기만 하면 다시 신호가 울려서 또 다시 변신을 해야 했다. 이게 히어로인지, 아니면 유아를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인지 모를 정도가 되니 약간 미칠 지경이었다. 피로는 자전이 풀어줬지만(자전의 이가 살을 물면 병이 다 낫는다)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쌓였다.
그쯤되니 위무선도 이상함을 느낀 것 같았다.
"강징! 어디 가냐고!"
"잠깐 갈 데가 있어."
"같이 가!"
"금방 올게."
위무선이 서운해하는 게 뻔히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전은 히어로가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서운 표정으로 몇 번이나 말하는 걸 봐서는 정말 안 되는 듯 했다. 그러니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와 죄책감만 늘어났다. 히어로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싶던 그때, 그가 떡하니 나타났다.
"네가 그 히어로구나? 생각보다... 귀엽네."
푸른 정장.
그놈은 잔챙이들과 차원이 달랐다. 다른 빌런이 나무 하나를 건들인다면 그 놈은 산을 불태웠다. 도망치는 실력도 뛰어나 고작 히어로 2주차인 강징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상대였다. 그러나 피할 길은 없고, 이름도 모르는 푸른 정장은 쉴 새 없이 사고를 쳐대서 강징은 그를 계속 쫓아다녔다. 2주 동안이나 계ㅡ속.
그리고 오늘, 이 상황이었다. 자신을 납치해 가면을 벗기려는 푸른 정장과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강징. 강징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재빨리 뇌를 돌렸다.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손은 묶여있고 움직일 수 없다. ... 하지만 발은 안 묶여있지.
강징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벗어난 다음 다리를 들어 사람을 힘껏 걷어찼다. 무릎을 정통으로 맞은 그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난 틈에 강징은 온 힘을 실어 의자를 땅에 부딪혔다. 나무의자가 산산조각 났다. 몸 또한 산산조각이 날듯 아팠지만 강징은 얼른 일어섰다. 한 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얼른 이 곳에서 벗어나 자전을 되찾아...
"역시 재밌다니까!"
푸른 정장이 박수를 짝짝 치며 웃었다. 그의 눈동자와 온몸이 흥분으로 젖었음이 보였다. 그러나, 강징이 생각을 멈춘 까닭은 제 공격이 의도대로 먹히지 않아서도, 탈출할 구멍이 사라져서도 아니었다. 푸른 정장의 가면이 벗겨져 있었다. 더 이상 숨길 마음도 없는지 가면 아래 숨었던 얼굴이 달빛 아래로 훤히 드러났다. 잘난 이목구비를 보며, 강징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희신 선배...?"
망할 놈의 푸른 정장은, 강징의 대학교 선배이자 남망기의 형인 남희신이었다.
이런 걸로 강징텀 보고 싶다
학교에서는 친절하고 다정한 선배지만 밖에서는 빌런짓 하고 다니는 푸른 정장 남희신
소꿉친구이자 부랄친구 + 짭형제로 비밀 없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비밀 생긴 강징이 신경쓰이는 위무선
위무선의 친구라는 공통점을 두고도 데면데면하던 동기 사이였는데 히어로 활동하던 강징이 한 번 구해준 이후로 정체 모를 자전청년한테 반해버린 남망기(지 형이 빌런인 건 모름)
강징텀 희신강징 무선강징 망기강징
https://hygall.com/509091819
[Code: 0b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