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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16:03
아이스매브로 너는 네 목숨보다 그 아이 목숨이 더 중요했던 거야. https://hygall.com/504880354











제발, 부탁이야 미첼. 그만 가줘.


미첼은 한 마디도 더 붙이지 못하고 돌아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미첼이 조금 더 어린 나이였다면, 네가 불러와놓고 이렇게 내쫓는 법이 어딨냐며 달겨들었을 거였다. 그리고 둘은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어떻게든 끝을 보았을 거였지만, 오늘의 미첼은 카잔스키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저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미안해. 그래도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싶어. -Mav]


카잔스키는 반짝거리는 액정 화면에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빈 허공을 응시했다. 피트 미첼이 보고싶었다.















출격 명령 대기 중입니다. 출격 시켜. 아이스가 명령했다. 대거1 격추되었습니다. 낙하산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복귀 하라고 해. 아이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에도 명령을 내리는 것에 주저함은 없었다. 대거1 추락 지점에서 5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했습니다. 사망, 확인했습니다. 수습해서 복귀 중이라고 합니다. 아이스가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과 등을 눈에 담았다. 흔들리는 호흡을 바로잡기 위해 깊게 숨을 쉬었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 장면이 재생될까 무서워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로 방을 둘러봤다.

여기가 현실이다. 카잔스키는 손을 더듬거려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미안해. 그래도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싶어.] 여기가 현실이었다. 카잔스키는 몸을 일으켰다. 등판에 달라붙은 티셔츠가 축축했다.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가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면서 카잔스키는 애써 호흡했다. 그 목소리는 제것이 아니었다. 피트를 사지로 몰아낸 출격 명령도, 피트를 적지에 두고 도망치라는 명령도 아이스의 목소리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마지막 서명은 자신의 것이었다.

침대로 돌아온 카잔스키는 익숙하게 침대 시트를 갈았다. 다시 잠들 수 없는 것은 명백했지만 이불을 주욱 끌어올려 어깨까지 덮었다. 매버릭은 살아돌아왔다. 매버릭은 살아있어. 카잔스키는 핸드폰 문자함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카잔스키는 실수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톰.

매버릭은 벨이 울리기도 전에, 액정 화면이 반짝 빛나는 순간에 벌떡 일어난 참이었다. 톰. 부름에 대답이 없어 심장이 뛰었다. 온 신경이 귀로 집중되었다. 잠이 들었을 거라 생각했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를 울렸다. 카잔스키는 액정 화면을 보고 정말로 통화가 연결된 건지 확인했다. 연결된 지 12초가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묻는 거 염치없는 거 아는데, 너 괜찮아?


카잔스키는 말없이 조곤조곤한 미첼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역시, 매버릭은 살아있었다.


잘못눌렸나. 톰, 너 자는 중이야?


조금 더 작아진 목소리가 전해졌다. 이대로 자는 척을 할까 고민하던 카잔스키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너, 왜 안 자고 있어.


카잔스키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비어 있는 옆자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불이 버석거렸다.


그냥, 너한테 전화 올 거 같아서.

거짓말도 잘 하네.

진짜야. 진짜 그래서 안 자고 있었어. 너 나 못 믿어?

응.


평소처럼 장난스레 흘러가려던 대화는 카잔스키의 대답에 다시 얼어붙었다. 미첼은 입을 다물었다. 의미없이 방을 서성거리던 미첼은 테이블 위에 놓아둔 지갑을 열었다. 빛이 바랜 사진을 손 끝으로 더듬었다.


미안해.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톰.

살아있으니까 됐어.

아이스, 우리 얘기 좀 하면 안될까.

싫어.


매버릭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스에게서 싫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다 카잔스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화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조심할게.

아니야, 미안해 하지마. 아이스. 난 상관없어, 아니 난 좋아.

….

너 하고싶으면 해. 하고싶을 때. 톰, 내 말 듣고 있어?

그래.

잘 자.

응.

이상한 꿈 꾸지 말고.

알겠어.


통화를 종료한 카잔스키는 눈을 감았다. 확실히 피트 미첼은 살아있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