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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3 21:11
아버지의 얼굴은 멍하게 경직되어있다. 뺨의 굴곡을 따라서 흘러내리듯 늘어선 것은 다이아몬드 조각들이다. 기에디 프라임의 어슴푸레한 빛에도 눈물처럼 반짝일 정도로 정교하게 세공되어있다. 특히 턱수염 끝 작은 은 고리에 매달린 5캐럿짜리 다이아는 바람이 불 때마다 천천히 흔들리며 광택을 과시하고 있다. 그 아래로 벌거벗은 어깨 역시 표면에 특수한 유약을 덧칠하여 땀에 젖은 것처럼 번들거린다. 이 쯤이면 입가에 맺힌 백진주가 어떤 액체의 방울을 묘사한 것인지는 명백하다. 하코넨의 고약한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는 레토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흉상 형태로 박제해놓았다. 원래 황소의 헌팅 트로피가 걸려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퀴사츠 헤더락은 벽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안다. 예지몽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다른 차원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왜 이런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자신은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 건가?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필시 현실에서 아버지가 그의 곁을 벗어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폴은 눈을 뜨기도 전에 허공으로 팔을 뻗었다. 자석처럼 붙잡히는 것은 아버지의 손목이었다. 경련하는 근육 아래로 박동하는 맥이 반가웠다. 아버지는 마취 침을 들고 있었다. 헤드라이트와 마주친 사슴처럼 창백하게 굳어버린 모습이 방금 꿈 속의 박제를 상기시켰다. 맞닿은 살갗에서 식은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감에 따라서 레토는 미간을 고통스럽게 구기다가 결국 침을 떨어뜨렸다. 폴 무앗딥은 이 장면에 어떤 대사가 따라붙는지 이미 여러 번의 생을 통해서 보았다.
"예전 아라키스에서 암살 기계를 붙잡았을 때, 아버지는 제가 털끝 하나라도 다쳤을까봐 가신들에게 역정을 내셨죠."
"......"
"스파이스 채취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을 때에도 그러셨죠. 아트레이데스의 후계자로서 저한테는 살아남아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요, 절대 함부로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요."
"......"
"그 때에는, 암살자 명단에 아버지가 올라오리라고 꿈에도 상상 못 했는데."
"폴! 그게 아니라!"
독침이 아니라 마취 침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황제를 잠시 운신 불가 상태로 만들어놓고 야반도주 하려는 계획이 전부였을 것이리라. 지금쯤 성 밖에 레토를 위해서 탈 것을 준비해놓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마취 침도 그 자가 마련해줬겠지. 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비행 기지 앞에서 서성이는 거니가 떠올랐다. 충직하고 믿음직한 거니. 그는 동이 틀 때까지 인생에서 가장 초조한 하룻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의 주군은 저를 위해서 목숨을 건 가신과의 약속도, 손목에 가해지는 악력도 잊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들의 어깨를 더듬고 있었다.
"살아서 아버지를 보려고 제가 얼마나… 아버지 말씀대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폴, 폴, 내 아들,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보렴."
애써 연기하려 하지 않아도 목소리에 물기가 차올랐다. 퀴사츠 헤더락은 이 세계에서 정해진 운명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지켜보았다. 시큰거리는 열기가 눈시울에서 턱으로 퍼졌다. 아버지의 자유로운 한 손이 예전 그 언젠가처럼 아들의 뺨을 절실하게 쓰다듬다가, 이어지는 말에 그의 뒷머리를 서둘러 감싸안았다.
"아트레이데스의 이름을 잇지 않는 아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나요?"
"폴, 제발..! 아트레이데스이든 무앗딥이든, 전혀 상관없어! 부탁이야, 오해하지 말아다오. 넌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이건 그냥 마취 침일 뿐이고…"
"....."
"누구든 내 소중한 자식을 죽이려면.. 아비의 시체부터 밟고 가야할 거다."
"...떠나려고 하셨잖아요. 앞으로 누가 절 죽이려 들지 무슨 수로 아시겠어요?"
폴 무앗딥은 어깨 너머에 파묻힌 아버지의 턱이 죄책감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일에 누가 연루되었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
"대신 평생 제 곁에 있겠다고 약속해요. 남아서 지켜준다고 맹세해줘요."
"폴…"
"사랑한다고 맹세해줘요, 아버지로서 말고요.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줘요, 생각보다 그리 역겹진 않았다고 맹세…."
끝맺지 못한 말이 북받치는 침묵으로 방울졌다.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바빠졌다. 그래도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잔떨림이 멎을 기색이 없자, 레토는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아들을 몇 번이고 달래서 겨우 조금 떼어놓았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멀어진 후에야 폴은 레토의 얼굴 역시 눈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입술이 뜨겁게 그를 삼켰다.
퀴사츠 헤더락은 미지근한 액체가 뺨에서 구르는 것을 느끼며 방금 전의 장면을 다시 재생했다.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바빠졌다. 그래도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잔떨림이 멎을 기색이 없자, 레토는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아들을 몇 번이고 달래서 겨우 조금 떼어놓았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멀어진 후에야 폴은 레토의 얼굴 역시 눈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입술이 뜨겁게 그를 삼켰다.
한번 더.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바빠졌다. 그래도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잔떨림이 멎을 기색이 없자…
한 번만 더….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다시 한 번만…
몇 년동안 반복해도 영원할 수 없는 키스가 또다시 끝나고야 만 뒤, 퀴사츠 헤더락은 레토의 품에 안긴 채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손바닥에 볼을 부비자 반대편 뺨에 다가오는 숨결이 오래 씹은 음식물처럼 따뜻했다. 차라리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다른 사람들처럼 단 하나의 생을 살 수 있다면, 죽음 이후에 영원히 의식이 끊어질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적도 아주 오래 전 언젠가 있기는 있었다. 그는 마취 침이 굴러갔을 어딘가, 시간처럼 광활해보이는 그 어둠 속을 그저 바라보았다. 레토의 손바닥 위로 미지근한 눈물이 계속해서 고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으로부터 칠 년 하고도 오십 삼일 전의 날이었다.
티모시오작 폴레토 레토텀
퀴사츠 헤더락은 벽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안다. 예지몽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다른 차원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왜 이런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자신은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 건가?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필시 현실에서 아버지가 그의 곁을 벗어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폴은 눈을 뜨기도 전에 허공으로 팔을 뻗었다. 자석처럼 붙잡히는 것은 아버지의 손목이었다. 경련하는 근육 아래로 박동하는 맥이 반가웠다. 아버지는 마취 침을 들고 있었다. 헤드라이트와 마주친 사슴처럼 창백하게 굳어버린 모습이 방금 꿈 속의 박제를 상기시켰다. 맞닿은 살갗에서 식은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감에 따라서 레토는 미간을 고통스럽게 구기다가 결국 침을 떨어뜨렸다. 폴 무앗딥은 이 장면에 어떤 대사가 따라붙는지 이미 여러 번의 생을 통해서 보았다.
"예전 아라키스에서 암살 기계를 붙잡았을 때, 아버지는 제가 털끝 하나라도 다쳤을까봐 가신들에게 역정을 내셨죠."
"......"
"스파이스 채취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을 때에도 그러셨죠. 아트레이데스의 후계자로서 저한테는 살아남아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요, 절대 함부로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요."
"......"
"그 때에는, 암살자 명단에 아버지가 올라오리라고 꿈에도 상상 못 했는데."
"폴! 그게 아니라!"
독침이 아니라 마취 침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황제를 잠시 운신 불가 상태로 만들어놓고 야반도주 하려는 계획이 전부였을 것이리라. 지금쯤 성 밖에 레토를 위해서 탈 것을 준비해놓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마취 침도 그 자가 마련해줬겠지. 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비행 기지 앞에서 서성이는 거니가 떠올랐다. 충직하고 믿음직한 거니. 그는 동이 틀 때까지 인생에서 가장 초조한 하룻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의 주군은 저를 위해서 목숨을 건 가신과의 약속도, 손목에 가해지는 악력도 잊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들의 어깨를 더듬고 있었다.
"살아서 아버지를 보려고 제가 얼마나… 아버지 말씀대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폴, 폴, 내 아들,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보렴."
애써 연기하려 하지 않아도 목소리에 물기가 차올랐다. 퀴사츠 헤더락은 이 세계에서 정해진 운명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지켜보았다. 시큰거리는 열기가 눈시울에서 턱으로 퍼졌다. 아버지의 자유로운 한 손이 예전 그 언젠가처럼 아들의 뺨을 절실하게 쓰다듬다가, 이어지는 말에 그의 뒷머리를 서둘러 감싸안았다.
"아트레이데스의 이름을 잇지 않는 아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나요?"
"폴, 제발..! 아트레이데스이든 무앗딥이든, 전혀 상관없어! 부탁이야, 오해하지 말아다오. 넌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 이건 그냥 마취 침일 뿐이고…"
"....."
"누구든 내 소중한 자식을 죽이려면.. 아비의 시체부터 밟고 가야할 거다."
"...떠나려고 하셨잖아요. 앞으로 누가 절 죽이려 들지 무슨 수로 아시겠어요?"
폴 무앗딥은 어깨 너머에 파묻힌 아버지의 턱이 죄책감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일에 누가 연루되었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
"대신 평생 제 곁에 있겠다고 약속해요. 남아서 지켜준다고 맹세해줘요."
"폴…"
"사랑한다고 맹세해줘요, 아버지로서 말고요.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줘요, 생각보다 그리 역겹진 않았다고 맹세…."
끝맺지 못한 말이 북받치는 침묵으로 방울졌다.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바빠졌다. 그래도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잔떨림이 멎을 기색이 없자, 레토는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아들을 몇 번이고 달래서 겨우 조금 떼어놓았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멀어진 후에야 폴은 레토의 얼굴 역시 눈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입술이 뜨겁게 그를 삼켰다.
퀴사츠 헤더락은 미지근한 액체가 뺨에서 구르는 것을 느끼며 방금 전의 장면을 다시 재생했다.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바빠졌다. 그래도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잔떨림이 멎을 기색이 없자, 레토는 자신을 놓지 않으려는 아들을 몇 번이고 달래서 겨우 조금 떼어놓았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멀어진 후에야 폴은 레토의 얼굴 역시 눈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입술이 뜨겁게 그를 삼켰다.
한번 더.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바빠졌다. 그래도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잔떨림이 멎을 기색이 없자…
한 번만 더….
곱슬머리를 어루만지고…
다시 한 번만…
몇 년동안 반복해도 영원할 수 없는 키스가 또다시 끝나고야 만 뒤, 퀴사츠 헤더락은 레토의 품에 안긴 채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손바닥에 볼을 부비자 반대편 뺨에 다가오는 숨결이 오래 씹은 음식물처럼 따뜻했다. 차라리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다른 사람들처럼 단 하나의 생을 살 수 있다면, 죽음 이후에 영원히 의식이 끊어질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적도 아주 오래 전 언젠가 있기는 있었다. 그는 마취 침이 굴러갔을 어딘가, 시간처럼 광활해보이는 그 어둠 속을 그저 바라보았다. 레토의 손바닥 위로 미지근한 눈물이 계속해서 고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으로부터 칠 년 하고도 오십 삼일 전의 날이었다.
티모시오작 폴레토 레토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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