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00362162
view 3575
2022.10.03 03:04


재생다운로드A6D3F009-EA0B-47EF-9FF7-5C4718D380C5.gif
82B1C1E1-989B-4562-B8EA-CE70C7AF7F2A.gif







 긴 꿈을 꾸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날의 꿈이었다. 출근하려고 테리와 함께 집을 나서는 순간, 케니는 어째선지 직감할 수 있었다. 간밤 앨리스에게 연락이 온 일도 없었고, 그간 좋지 않았던 상태도 차도를 보이고 있던 참이었는데, 어떤 이유도 없이, 데니스에게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의 풍경이었지만,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라져있었다. 풀어진 신발 끈을 내려다보는데 아주 막연하게, 스스로가 그를 알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끈을 다시 묶기 위해 몸을 숙여 앉는 동안 누군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영혼을 툭 밀어버린 것처럼, 케니의 몸 전체에 느릿한 속도로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그렇게나 명백하고 또렷한 신호를 누군가 보내주고 있었는데, 왜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았는 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케니는 그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했고, 오후에 긴급으로 들어온 타 구역의 지원 요청에 스스럼없이 자원했다. 은행에서 벌어진 인질극이었다. 자정까지 이어진 대치 상황에, 진전없이 팽팽한 긴장의 기운이 흐르고, 밤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내렸다. 차 천장에 무수히 떨어지는 빗소리, 환한 헤드 라이트 빛을 가르며 쏟아지는 빗줄기가 보였다. 쉼없이 경찰차의 경광등이 번쩍거리고, 몸과 정신이 극도의 각성 상태로 넘어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케니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서 있는 동안은 외부와 어떤 연락도 허용되지 않는다. 불시에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었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순간을, 그렇게 끝없이 유예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질 두 사람이 중상을 입고, 한 사람이 사망한 후에야 기동대는 간신히 인질범을 체포할 수 있었다. 협상이 몇 번이나 결렬되고, 녹초가 된 이들이 피로한 정신을 붙잡고 있을 동안 유일하게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케니는 결박된 채 호송되는 인질범들과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람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케니가 밟고 서 잇는 빗물 웅덩이에도 적지 않은 피가 섞여 있었다. 정신없이 현장을 빠져나가는 응급차의 후미를 바라보며, 케니는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22서 동료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는 케니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꼭 받아야 하는 전화가 있다고 했다. 케니는 그가 억지로 손에 쥐어준 핸드폰 화면에서 테리의 이름을 읽었다. 받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가 간신히 귓가에 가져다 대었을 때, 테리의 숨소리가 수화음 너머로 들려왔다.
 
어떤 찰나는 영원과 같아서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케니는 자신이 내내 억지로 미뤄왔던 하루의 끝자락에, 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직전 그 숨소리에서 영원을 바랐고, 이내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예감이 맞았다.
 
[케니.]
 
연락을 했던 사람이 테리였던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혹여 무너져버린 형들의 목소리나, 잔뜩 뭉개진 앨리스의 음성을 들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테리는 그에게 침착하게 병원으로 와야겠다는 말을 전했고, 케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입으론 긍정의 말을 조금도 내뱉을 수 없었는데 마치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 듯이 테리가 즉답했다. 자신이 앨리스의 곁을 지키고 있겠노라고. 그 목소리가 든든해서,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성을 유일하게 받들고 선 커다란 기둥처럼 느껴져서 엉망으로 깨져버린 삶의 파편 위에서도 잠깐이나마 쉴 수 있었다.





 
현장에서 병원으로 가는 동안, 동료의 차 안에서 전화를 두 번 더 받았고, 케니는 자신이 데니스의 임종을 지키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다. 질퍽거리는 신발을 끌고 침대 앞에 가 섰을 때, 모두가 흐느껴 우는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꼭 죄인이 된 기분으로, 울며 내뻗는 앨리스의 손을 맞잡았다. 둘째 형의 가눌줄 모르는 고개를 끌어와 자신의 왼 어깨를 빌려주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끙끙거리며 애처럼 울고 있는 큰 형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렇게 모두의 슬픔에 관대할 수 있었으나, 자신의 슬픔에게만은 함구령을 내렸다. 케니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데니스의 주름진 이마를 조용히 손바닥으로 덮어보면서 눈을 감았다. 젖은 머리칼 끝으로 똑똑 떨어지는 빗물이 차갑게 시트 위를 적셨다.
 
케니는 홀로 병실을 나서서 어두운 복도 끝으로 비척대며 걸어갔다. 창 아래로 일렁대는 가로등의 불빛들을 내려다보다, 가슴이 싸르르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주춤했다. 데니스의 오랜 투병 기간이, 단 한번 살갑게 나누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던 대화들이 그순간 자신의 몸을 한꺼번에 통과하는 것 같았다. 숨을 내쉬는데 알 수없는 묵은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으으….’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계속 그의 등뒤를 지키고 있던 테리가 케니의 어깨를 끌어와 안았다. 케니는 힘없이 그의 목줄기에 뺨을 갖다대었다. 감싸 안을 힘도 없어 가만히 기대어 있었다. 따뜻하게 닿는 피부에 맥동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지탱해주던 테리가, 외롭고 공허해 금방이라도 안쪽부터 부스러질 것 같은 몸을 꽉 끌어안아 가볍게 압박해주었다. 케니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거품 같은 숨을 내뱉으면서 계속해서 억눌린 신음성을 내뱉어댔다.
 
 지난 밤, 마지막으로 병실을 나오기 직전에, 데니스가 했던 말이 귓가로 조그맣게 흘려들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죽으면 너는 좋아하겠지. 잘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수십번은 더 들었던 것 같은 나쁜 푸념이어서 대꾸도 않고 그대로 나왔었다. 그에 대답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피로한 마음탓에 의미없이 폭발해버리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전만큼의 총기도 남아 있지 않은 그가, 누구를 상처주려고 꺼낸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케니는 병든 아버지가 고통에 몸부림치듯 내뱉는 말에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고, 툭툭 던져오는 말들을 전부 맞지 않겠다고 오래전 결심했었다. 잘 흘려보내고, 잊어버리겠다고.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를 대화를 무시해버렸다.
 
‘케니, 괜찮아…. 괜찮아.’
 
테리가 낮게 속삭였다.
 
‘울어도 괜찮아. 여기는 아무도 없어. 너랑 나뿐이야.’
 
 
 
 
 
 
 
 
 
눈을 뜨고 나서는 새벽 내도록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테리가 침음을 흘리면서 몸을 뒤척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여기에는 너와 나뿐이야. 그러니까 참지 말고, 울어. 숨 죽여 자신을 바라보며 힘겹게 달래오던 테리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 밤에, 기대서 엉엉 울었어야 하는데, 슬픔을 해갈해야 했는데 케니는 끝까지 울지 못했다. 그 때 눈물이 나올 곳을 너무 세게 잠가 두어서인지 앞으로도 영영 울지 못할 것 같았다. 느슨하게 풀려 있는 팔을 몸 위에 다시 고쳐 얹어두고 품 속을 파고들자, 테리가 흐릿하게 눈을 떴다. 케니는 잠에서 깬 그를 모르는 척 크고 단단한 몸을 옭아매고서 고르고 마른 숨을 쉬었다.
 
“또 무서운 꿈 꿨어?”
 
잠긴 음성으로 테리가 물었다. 한참이 지나도 케니가 대꾸하지 않자 그는 케니의 뒤통수를 자신 쪽으로 더 끌어안았다.
 
 “누구야. 누가 그랬어.”
 “……모르겠어.”
 “모르겠어?”
 
 그걸 알아야 혼내주는데. 테리는 잠꼬대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불 밖으로 나온 케니의 어깨를 만질거렸다. 따끈한 몸이 주는 온기에 굳어있던 근육들이 살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케니는 아직도 잠결을 헤매는 그에게 뭐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반복적으로 머릿 속에 맴도는 말들. 의문들. 테리, 나 가끔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 꼭 바다 한가운데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야. 혹시 이게 꿈은 아니겠지. 우리 같이 날다가 나만 혼자 모르는 곳에 추락한 건 아니겠지.
 
결국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테리, 나 잘 모르겠어.”
 
너무 외로워.
 
“안아 줘…….”
 
 시간이 지나서 언젠가 너도 떠나면 나는 다시 혼자가 될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먼저 떠나고 싶어. 그럼 너무 이기적인 바람인 걸까.
 
 
 
 
 






 
 
 케니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내외하던 신입 형사들과 반장이 마주 앉아 티격태격 하며 햄버거를 먹고 있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몇번이나 리뉴얼된 주변 상가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이전의 인테리어를 고수하는 테리와의 단골 가게였다. 조금 낡은 것 외엔 달라지지 않은 공간에서, 자신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 눈을 흘기며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 그를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다. 자신과 자신 아닌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지극히 다르다고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기본적으로 테리는 다정한 사람이어서 마음을 주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따뜻했다. 다들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스며들 듯 익숙해졌다. 언젠가 테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바랐었던 날도 있었다. 위압적인 겉모습에 지레 겁먹더라도, 가볍고 장난스러운 태도에 쉽게 믿음이 가지 않더라도, 지내고 보면 누구보다 속이 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거라고 늘 앞장서서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테리가 일전에 자신 편을 들어달라며 투덜거릴 때에도 케니는 마음 속에 깊은 확신이 있었다. 테리 스스로의 매력만으로 그들을 그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릴 거라는 확신. 이번에도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해내었던 모양이었다.
 
 빤히 바라보고 있다, 신입 중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손을 흔들며 아는 체하자, 체리콕을 한 모금 마시고 있던 테리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케니는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며 점원과 눈 인사를 했다. 익숙한 자리로 걸어가 곁에 앉자, 테리가 자연스레 가방을 받아들었다.
 
 “고생했네. 배고프겠다.”
 
 케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리가 마시던 콜라를 가져와 마셨다. 빤히 바라보는 눈 앞의 형사들과 눈이 마주쳐 슬쩍 웃어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 세례가 맹렬히 쏟아졌다.
 
 “반장님 대체 어디가 좋으셨던 건데요?”
 “당시 22 관할서에는 인물이 없었나요?”
 “원래는 햄버거 세트를 기본 두 개씩 드셨다면서요?”
 
 케니는 맞물린 목소리의 내용들을 선별할 수 없어 그저 눈만 깜박였고, 테리는 무시하라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곧이어 점원이 내온 햄버거를 나이프로 4등분했다. 익숙한 세팅이 끝나고서도 케니가 쉽게 집어들지 못하자, 테리의 시선은 맞은 편을 향해 매섭게 쏘아졌다.
 
 “부담스러운 시선들 좀 치워라?”
 “왜 면박주고 그래. 쳐다볼 수도 있지.”
 
케니가 두둔하자, 살짝 겁먹은 듯하던 표정들은 유순하게 풀렸다. 현장에 나서면 똘똘해지는 형사들이 어쩐지 선배들 앞에서는 영락없이 말 잘듣는 올망졸망한 후배들처럼 보이는 게 귀여웠다. 테리에게 말했다간 덩치 큰 사내 자식들 뭐가 귀엽냐며 가볍게 역정을 냈을 테지만. 아니나다를까, 마주한 눈빛이 심술맞아졌다.
 
“얘들 이거 다 내숭 떠는 거야. 너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걸걸한 목소리로 얼마나 나한테 행패부렸는 줄 알아.”
 
테리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 지 일일히 케니에게 고했고, 케니는 테리가 잘라놓은 것을 조금씩 베어 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얼굴이 빨개져선 당장 쥐구멍을 찾으려는 형사들을 보는 게 나름 흥미로웠다. 그러나 가장 재미 있는 것은 자신에게 이르는 척하면서 맞은 편 형사들의 반응을 귀여워하는 테리를 보는 것이었다. 케니는 테리가 짓궂은 듯이 굴면서도 사람들을 애정하는 자기만의 눈빛을 숨기지 못할 때가 좋았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못하면서도, 감추지 못한 애정들이 무의식중에 흘러나올 때. 본인은 그런 걸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까지.
 
그런 그에게 제일 아낌 받는 대상이 되고 싶어서 케니는 얼마나 안달했던가. 어린 날에는 열병처럼 지독하게 앓았었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아무 계산도 없이 마음을 다 주고, 헤어지던 날에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릴 만큼. 잊지 못해서 술독에 빠져 지낼만큼. 그러고도 다시 만나자는 말을 먼저 꺼낼 만큼. 맞은 편을 향해 가늘게 눈을 흘기며 웃는 테리를, 케니는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 아무렇지 않게 입으로 가져오자, 테리가 살짝 굳어진 채로 시선을 옮겼다.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왜?”
“…그걸 그렇게 날름 먹어버려? 그냥 말로 해줘도 됐는데.”
“그런가.”
 
 케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꾸했다. 테리가 이내 답지 않게 헛기침을 하고 목을 풀었다. 멋쩍게 들썩이는 카라 밑으로 점점 살짝 붉어지는 목덜미가 보이자, 방심하고 있다 웃음이 터졌다. 어깨에 이마를 대고 끅끅 웃자, 테리가 콜라를 벌컥대며 마셨다.
 
한동안 싫으면서도 좋은 듯 양가감정에 오묘해진 시선들을 느긋하게 마주하던 케니는 부끄러워하는 테리를 흘끗 보고서 말했다.
 
“너무 미워하지 마.”
“…….”
“내가 먼저 반장님 좋아했던 거 같아.”
“…아냐, 그건 네 착각이야.”
 
테리가 단호히 대꾸했다.
 
“그래? 그럼 내가 더 좋아했나봐. 연애할 때 이 사람이 먼저 헤어지자고 했었거든.”
“그래도. 다음에는 내가 더 좋아했어.”
“있을 때 잘 하지 그랬어?”
 
케니가 장난스레 쏘아보자, 테리는 낮게 웃었다. 그러게. 소중한 건 꼭 잃어봐야, 그 후에 소중했다는 걸 깨닫더라. 말하면서.
 
 
 
 
 
 
 
 
 
 
 “여보, 내일 우리 오랜만에 쇼핑 가자.”
 “쇼핑?”
 “우리 주말에 결혼식 가야 하는데 입을 옷이 없어.”
 “응. 그때 그 친구 결혼이었나.”
 “아니, 그 친구 누나. 누나도 같은 학교였어. 아가사랑 나랑 친했어.”
 “나 근데, 그 친구는 이름도 몰라. 사진에서도 본 적 없던 것 같은데, 동창이라고?”
“이름 들어서 알텐데. 폴이라고. 잘 먹고 잘 울던 애. 왜 있지, 그때 아가사가 햄버거 케이크 만들어줬다던.”
 
아. 테리가 넥타이를 푸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피곤함에 반쯤 감긴 눈을 보며 케니는 피식 웃었다. 오늘은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많다더니 피곤이 누적된 모양이었다. 퇴근길에 항상 운전을 자처하던 그가 오랜만에 케니에게 운전대를 맡긴 날이기도 했다. 케니는 그에게서 넥타이를 받아내고, 벗어낸 빨랫거리를 부지런히 정리했다.
 
“호주로 이민 가고 한동안 연락이 안됐었어. 최근에야 연락이 닿아서, 소방관됐다더라, 음. 애들이 전에 나한테 준 달력있지, 거기도 찾아보면 걔 사진이 있대, 신기하지. 한번 들춰보고 자세히 안 봐서 몰랐어. 살이 엄청 빠졌더라……”
“……”
“……테리?”
 
아무런 대꾸가 없는 테리에 케니는 의아해 고개를 돌렸다. 드레스룸에 놓아둔 리클라이너 소파에 잠시 앉아있던 테리가 그대로 눈을 감고 까무룩 잠이 들어버린 것이 보였다. 케니는 가볍게 한숨을 지으며 빨래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조심조심 걸어가 테리의 손목시계를 풀러냈다. 양말을 벗겨내고 벨트까지 풀어주자 그는 한결 더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 이대로 잠깐 자신이 바깥에 다녀올 동안만 재워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케니는 가장자리의 옷장 구석 한 편에서 숨겨두었던 파우치를 바지 주머니 속에 슬몃 욱여넣고서 소파 옆의 스탠드 조명을 제외한 불들을 껐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길에 곤하게 잠든 테리의 얼굴을 바라보다, 케니는 뭐에 홀린 듯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됐다.”
 
잔머리들이 깔끔하게 넘어가자 케니는 저도 모르게 만족스럽게 속삭였다.
 
“얼마나 피곤하면 그새 곯아떨어져.”
“……”
“조금만 자고 있어.”
 
케니는 숙였던 상체를 다시 들어올렸고, 아무 생각없이 방을 나서려다 별안간 손목을 잡혔다. 기우뚱 기울어진 몸이 테리의 위로 쏟아지는 바람에 균형을 잡아야만 했는데 다행히도 넘어지지 않아 세게 부딪히지 않았다. 케니는 간신히 짚은 소파의 팔걸이를 밀어내며 눈 앞의 테리와 마주했다. 연한 주황빛의 스탠드 조명의 불빛이 테리의 얼굴에 은은하게 반사되었다. 그는 차분해진 눈으로 케니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탄식을 터뜨렸다.
 
“케니.”
“…….”
“나 요즘 샤워하러 들어갈 때마다, 너 몰래 밖에 나가는 거 알아.”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방 안을 웅웅 울렸다.
 
“너 혹시, 다시 담배 피워?”
 
테리는 케니의 불룩한 바지 주머니를 스치듯 바라보곤 다시 시선을 눈동자로 옮겼다. 언제 졸음이 담기기라도 했냐는 듯 맑아 보이는 눈이었다. 한참 입을 달싹이다 두눈을 지그시 감은 케니는 이내 아무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슼탘 테리케니 브랫네잇

2022.10.03 15:38
ㅇㅇ
실시간 센세다...(감격) 연휴 막날이라 시무룩했는데 센세 덕분에 큰 선물 받고 ㄹㅇ 행복해졌어,,, 본인도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끝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행동했으면서 막상 테리 앞에서조차 슬픈척도 못하고 끝끝내 못 우는 케니가 짠해... 하 근데 아버지 끝까지 테니 마음에 대못 박고 가시는 거 아닌가요 케니가 다 끌어안고 살 아이인거 알면서 그랬어요...ㅠㅠㅠ 내가 다 속상하네 진짜ㅠ
[Code: c15e]
2022.10.03 15:39
ㅇㅇ
테리랑 케니랑 같이 있는데도 충족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둘이 잘 되었으니 이제 마냥 해피엔딩인 줄만 알았는데 상대가 떠날까, 내가 남겨질까, 외로워하는 부분들이 지독히 현실적이어서 더 와닿는다... 하 마지막에 케니 역시 괜찮지 않잖아..ㅠㅠ 케니 워낙 곧고 강한 사람이지만 혼자 속으로 다 삭이면서 시들어가는 케니 보면 테리도 속상할 것 같은데ㅠㅠㅠㅠㅠㅠㅠ 케니가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고 겉으로 표현해줬음 좋겠는데 테리가 다가가도 꽁꽁 숨기기만 하는 케니라.. 이 다음에 어떻게 될지 진심 너무 궁금해... 테리케니의 감정선이 더 이상 엇갈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좀만 더 서로 끙끙 앓았으면 좋겠고(ㅠㅠㅠㅠ) 센세의 테리케니 찌통이 너무 좋아서 인지부조화 온다 흑흑 이런 글은 대체 어떻게 쓰는거야 센세...? 외전이 백나더까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행복해야해 센세
[Code: c15e]
2022.10.03 16:19
ㅇㅇ
모바일
센세 살앙훼
[Code: 7ca1]
2022.10.03 18:23
ㅇㅇ
모바일
우와 센세… 와줘서 고마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케니가 또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힘들어하네 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또 와줄거지? ㅠㅠㅠ
[Code: 52e3]
2022.10.03 19:07
ㅇㅇ
모바일
아이고 케니야 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부부처럼 단단하게 의지하고 행복해하는 둘 모습 보면서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ㅠㅠㅠ 아버지의 죽음이 케니 삶에 그 살아온 여정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친 거 같아서 속상하고 안쓰럽다 ㅜㅜㅜㅜㅜㅜㅜ 이젠 테리가 곁에 있는데, 자길 의지할 수 있도록 단단히 버텨주고 있는데도 케니는 왜 이렇게 모든 걸 내맡기지 못할까 ㅠㅠㅠ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고요 안타까워서 나오는 탄식에 가깝습니다 ㅜㅜㅜㅜㅜㅜㅜㅜ 테리가... 테리가 이 모든 걸 기민하게 알아차려주는 남편이라 너무 좋다 ㅜㅜ
[Code: 4140]
2022.10.03 19:34
ㅇㅇ
모바일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다 맞춰주고 씩씩하게 웃다가, 그래도 견딜 수 없을만큼 지치면 케니는 가장 끝의 모서리로 도망친다. 제 마음의 낭떠러지 끝에서 혼자 쉼호흡을 하고서 돌아온다. 그렇게 하면 지나가고 말 것처럼. 저를 힘들게 하는 짐들은 아무것도 털고 오지 못했으면서.’

정주행하면서 아가사가 케니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이번편 케니 모습이랑 겹쳐져서 넘 슬펐어..... 케니야 ㅠㅠㅠㅠ 털어내야해 도망치지말고 테리 곁에서 ㅠㅠ 털어내고 덜어내야 품에 안고 갈 것들만 남을거야 더 이상 도망치고 싶어지지 않을 거야 ㅠㅠㅠ
[Code: 4140]
2022.10.03 21:38
ㅇㅇ
두 사람이 마냥 행복하게 꽁냥꽁냥 대고 살줄 알았는데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일이 아닌 상황에서 케니가 심적으로 동요하고 조금 힘들어하는거 안쓰럽다ㅠㅠㅠ 그래도,, 서로 옆에 있으니까 조금 더 기대고 의지했으면 좋겠어 케니야 왜 또 담배를 피고 그래 너 심란할 때만 담배 찾고 그랬자나..ㅠㅠ 근데 또 테리 귀신같이 즈그 마누라가 요즘 마음에 힘든게 있다는거 알아채고 물어보네 허당인거 같은데 역시 날카로워ㅋㅋㅋㅋ
[Code: 3092]
2022.10.03 22:55
ㅇㅇ
하 센세 ㅠㅠㅠㅠㅠㅠㅠ이즈 댓 유??????????????????????????????
[Code: 3b99]
2022.10.04 06:22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진짜 문학작품 이걸 그냥 봐도 되는걸까
[Code: aa45]
2022.10.04 10:55
ㅇㅇ
모바일
센세 무순으로 테리케니 입덕했어요..
[Code: c889]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