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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8 04:55
또각-또각-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느릿하게 울려 퍼졌다. 서쪽 탑 손님방이 늘어진 복도에는 최소한의 불이 밝혀져 있었다. 뻐근한 목을 가볍게 돌린 아에몬드는 굳게 닫힌 문을 무의미하게 훑었다. 그의 손은 어머니가 건넨 작은 병을 쥔 채였다.



‘내일 약혼식이 있는 조카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다니!’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먹먹히 울리는 듯했다. 곤죽이라니- 비약이 심했다. 곧 드리프트마크의 후계자로 인정될 조카의 얼굴은 고작 살짝 긁혔을 뿐이다. 제 얼굴에 있는 흉보다도 아주 작게. 아에몬드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솟았다.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먼저 대련을 청한 이는 조카였고 아에몬드는 정정당당하게 승리했을 뿐이었다.



작은 병을 흔들자 걸쭉한 액체가 안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용의 피가 섞인 묘약인가보다. 구하는 데 꽤 애를 먹었을 거란 생각에 아에몬드는 핏-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갈수록 쇠약해지는 어머니를 어쩌면 좋을까. 내일 있을 약혼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녕 모르고 이런 깜찍한 선물을 준비하신 걸까. 아에몬드는 횃불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작은 병을 꽉 쥐었다. 그가 멈춰 서자 한 뼘 정도 열린 문 사이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그만-”



열기 섞인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아에몬드의 외안이 가늘어졌다. 입꼬리는 가느다랗게 뻗은 채였다. 남녀가 뒤엉킨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한 번 구겨진 표정은 펴질 줄 모른다. 무엇이 그리 충격적이었을까. 건장하게 성장한 조카의 간음을 목도한 것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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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혀를 찬 그는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었다.

사생아끼리 붙어먹는 게 무슨 대수라고.

발리리아어로 중얼거린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병을 문 앞에 내려놓은 채 몸을 돌렸다. 겨우 풀린 목 주변이 다시 뻐근해졌다.




#



허니 비에 대한 소문은 레드 킵에서도 유명했다. 비 가문의 수치. 사생아. 허니를 지칭하는 말은 많았지만, 스톰즈 엔드의 어느 누구도 떠도는 것을 정정하려 들지 않았다. 난산으로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 그리고 비 가문의 모든 일원과 다르게, 허니 비의 머리칼은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다. 비 가문을 상징하는 붉은 머리칼은 지독하게 그녀를 따라다니며 헐뜯어댔다. 친탁도 그렇다고 외탁도 아닌 외모- 비 가문에게만 전해진다는 능력도 없는-



“쓸모없는 것.”



오라비의 말처럼 쓸모없는 것. 허니의 담갈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우악스럽게 두 뺨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오른쪽 뺨에 패인 상처 쓸려 아렸지만, 으으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삼킨 채 허니는 눈동자를 떨궜다.



“이러라고 널 드리프트마크로 보낸 줄 알아? 한심한 것.”



스톰즈 엔드의 후계자는 잔뜩 화난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수년 전, 유학을 핑계로 드리프트마크로 허니 비를 보낸 건 모두 이 자리를 위해서였다. 사생아니 불운아니 해도 허니의 성은 명백한 비였고, 이런 난세라면 좋은 패로 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계산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 같아요. 거짓부렁으로 작성된 편지에 해이하게 속은 제 탓이었을까. 아니면 조그만 힘을 주면 부서져 버릴 거 같은 이 미천한 것의 탓일까.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뿌리치자, 허니가 구석으로 너부러졌다.



‘내 것이 되어줘.’



빳빳하게 굳은 턱 주변을 문지르는 동안 물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스톰즈 엔드로 돌아오지 말라는 오라비의 말보다 잔혹했던 자캐리스의 말이. 어젯밤 그는 쉴 새 없이 내 것이 되어 달라 속삭였다. 입술과 부드러운 살갗을 한없이 탐하면서 하는 말에 예전이라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틈을 주지 않고 갈구하는 목소리에 허니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에 담긴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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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를 부인으로 들일 순 없어.’



누구 좋으라고. 허황한 꿈을 꾸지 말라는 듯 다그치는 목소리에 베인 상처는 쉽사리 낫지 않아, 잊을 만하면 허니를 난도질했다.



#



거슬린다. 아에몬드는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미세하게 입술을 말았다.



꽤 성대했던 약혼식이 끝나고 초대되었던 이들은 대부분 영지로 되돌아갔고 레드 킵에 남은 이들은 오직 가족뿐이었다. 그래, 가족. 뇌리를 파고드는 단어에 아에몬드의 손길이 멈추었다.



가족이 아닌 불청객이 남은 건 어머니의 허락 덕분이었다. 이쯤 되면 신경 쇠약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닐까. 아에몬드는 어머니의 의중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에몬드의 시선은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허니를 좇았다. 



레드 킵에 당도했을 때보다 한층 더 파리해진 얼굴을 한 허니는 말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에 아에몬드는 약혼식에 한구석에 있던 허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쓸모없는 것.’



쏟아지는 폭언에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하고 날개를 꺾인 새처럼 파들파들 떨던 모습을. 그저 수많은 사생아 중 하나일 뿐이라 그녀의 말로를 항상 비웃었지만, 가해지는 폭력에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오라비의 거친 손길 때문에 생겼을 오른쪽 뺨의 생채기가 눈에 담겼다. 아에몬드가 대련에서 조카에게 선사한 것과 같은 자리라 더 신경이 쓰였던 걸지도 모른다. 느릿하고 진득하게 모습을 담는 동안 허니는 결심한 듯 순식간에 말 위로 올랐다.



용에 비할 바는 못되었지만, 말을 길들이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며칠을 쓰다듬고 먹을 것을 주었다고 해서, 그 말이 길들어졌을 리 만무했다. 더더욱- 고고하기로 소문난 명마였다면 말이다. 



막스! 아에몬드의 목소리가 마구간을 울렸다. 하지만 일순간 허니를 태운 말은 마구간을 뛰쳐나와 마구잡이로 달리기 시작했고 째지는 듯한 비명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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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말에 오른 아에몬드는 생각할 틈도 없이 허니와 도망친 막스를 뒤쫓았다.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말을 따라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와 나란히 달리며 고삐를 쥐도 당기라 일렀지만,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듯했다. 흥분한 막스도 앞으로만 달려갈 뿐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아에몬드는 자신의 말 고삐를 풀었다. 이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는 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뒷자리에 안착해 막스를 다독일 생각이었지만, 계산을 잘못한 탓인지 그럴 수 없었다. 허니를 지탱한 몸이 돌아 떨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칙- 끌리는 소리와 함께 텁텁한 모래가 코 끝에 맴돈다. 왼쪽 팔이 전부 쓸린 건지 살갗이 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상처를 보살필 생각도 없이, 아에몬드는 막스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멀리 가지 못하고 멈춰선 말은 콧김을 뿜어대며 그를 맞이했다. 고삐를 쥐어 들어 터벅터벅 이끄는데 왼쪽 팔이 심상치 않았다.



“젠장.”



욕지기와 함께 올라오는 말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웅크린 채 가만히 있던 허니는 머리 위로 맴도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죽으려거든 혼자 곱게 죽어.”

“...죽으려는 건 아니었어요.”



그저 도망가고 싶었을 뿐이다. 자캐리스가 있는 레드 킵이이나 고향이라 부를 수 없는 스톰즈 엔드로부터.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니고서야,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일 리 없다. 꽉 다문 아에몬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분위기를 읽은 건지 허니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앵무새처럼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에몬드는 잠자코 막스를 이끌며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너덜너덜하게 느껴진 건 비단 왼쪽 팔만이 아니었다. 넘어지면서 왼쪽이 모두 쏠린 모양이다. 발목부터 타고 올라오는 고통에 그는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춰 앉았다.



“젠장.”



팔이고 다리고 왼쪽에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갈라진 살갗 사이로 엉겨 붙는 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주먹만 쥔 채 가만히 있을 때였다.



“제, 제가 좀 봐도 될까요?”



가느다랗게 묻는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생아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비웃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잠자코 있었다. 비 가문에 치유 능력이 있다는 건 대륙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눈빛에 허니는 몸을 숙였다.



“무례함을 용서하세요.”



고개 숙인 얼굴이 다가온 건 순식간이었다. 말캉하고 따뜻한 입술이 차가운 제 것에 닿자 아에몬드는 한발 뒤로 물러나려 했다. 아에몬드의 두 뺨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움직이지 말라는 듯이. 별안간 맞물린 입술이 서툴게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난 자리들이 욱신거렸다. 땅을 지탱한 손끝부터 천천히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영겁 같던 시간이 흐른 후 입술이 떨어졌다. 더러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른 채 짓눌렸던 입술을 거칠게 닦으며 아에몬드가 중얼거렸다. 짐작했다는 듯 허니는 그에게서 떨어질 뿐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에몬드는 아직도 사고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러운 사생아에게 농락당한 게 분명한데, 어딘가 석연치 않다.



가볍게 말에 올라탄 그는 고삐를 쥐고서야 알았다. 아까와 달리 제 몸이 평소처럼 가볍다는 것을. 가벼워? 분명 너덜너덜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던 팔과 다리를 한 번씩 털었다. 아에몬드는 걷어붙인 왼쪽 팔을 내려다보았다. 피로 물든 옷자락은 그대로였지만 언제 있었냐는 듯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어 있었다.



말에서 내려온 아에몬드는 멀찍이 떨어진 허니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던 이는 고통스러운 듯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서서히 붉게 물드는 소맷자락을 거칠게 말아 올린 그의 눈썹이 찌푸려진다. 분명 아까까지 없던 상처들이 새겨있다. 저와 같은 자리에 그대로. 할딱이는 숨소리가 조금씩 옅어지더니, 허니의 몸이 힘없이 아에몬드에게 닿았다.



정신을 잃은 머리를 들어 얼굴을 살핀 아에몬드는 입술을 물었다. 조금 옅어졌지만 허니의 뺨에는 여전히 길게 상처가 남아있었다.

아에몬드가 자캐리스에게 낸 것과 똑같은 상처가.








아에몬드너붕붕
자캐리스너붕붕
2024.09.28 05:18
ㅇㅇ
모바일
ㅁㅊ 자캐리스는 허니 이용해먹는거였어...
[Code: 6db4]
2024.09.28 05:21
ㅇㅇ
모바일
이 세가완삼 맛도리는 뭐야 센세 어나더
[Code: 319a]
2024.09.28 06:06
ㅇㅇ
모바일
와 🙌
자캐리스가 허니비 이용하고
아에몬드는 허니비 구해줬어

어나더
[Code: c1c5]
2024.09.28 06:43
ㅇㅇ
모바일
모야 재밌어 ㅠㅠㅠㅠㅠㅠ
[Code: 7c31]
2024.09.28 07:00
ㅇㅇ
모바일
미친 ㅠㅠㅠ 이거지예 ㅠㅠㅠㅠ 다정해보이는 자캐리스는 정작 허니를 무너뜨렸는데 냉정해보이는 아에몬드는 허니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ㅠㅠㅠㅠㅠ 아 이제 아에몬드랑 허니랑 가까워지면 자캐리스 얼마나 속이 답답할깧ㅎㅎㅎ
[Code: ff7c]
2024.09.28 07: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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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이거 직업셀털 아니냐고
[Code: 1881]
2024.09.28 08:06
ㅇㅇ
모바일
어나더어나더
[Code: fae8]
2024.09.28 08:13
ㅇㅇ
모바일
히이이이발 너무 맛있어ㅡㅠㅠㅜㅜㅜㅜㅜㅜㅠㅠㅠㅜ
존잼꿀잼 억나더
[Code: 1f34]
2024.09.28 08:45
ㅇㅇ
ㅁㅊ
[Code: c360]
2024.09.28 08:50
ㅇㅇ
모바일
와씨 같은 상처인거 발견하는 부분ㅌㅌㅌ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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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8 08:53
ㅇㅇ
헐... 미친 존잼
[Code: 7781]
2024.09.28 09: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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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이다...
[Code: 9ddb]
2024.09.28 09: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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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작의 시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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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8 09: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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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하오드 색창도 걸어주시술잇나요 허억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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