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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00:11


 

네 도움이 필요해 부디 오랜 연을 생각해 우릴 저버리지 말아줘

 

 

반듯하고 곱게 쓴 글자는 분명 벗의 필체였음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지 우리라니 그녀 자신을 말하는 것치고는 쓰임이 맞지 않는 말이었음 그렇다면 그녀가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걸까? 만약 그것이 참이라면 대체 누굴 말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던 솔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살며시 짚으며 입술을 감쳐물었음 어쩌면 그녀를 따르는 시종들을 함께 일컫는 말일지도 몰랐음 평소 마음이 약하고 정이 많은 그녀였으니 자신을 위해 궁 밖까지 따라간 시종을 못 본 척하기는 힘들었을 거임 선황의 후궁이었던 죄로 군병들이 지키는 집안에 갇혀 유배생활을 해야 하는 신세였으니 그녀를 따르는 시종들도 똑같은 상황이었지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답답하고 막막했을 거임

 

그래서 내게 그런 서신을 보낸 것이니?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솔을 찾아온 시종은 벗을 살려달라며 빌었을까 도무지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가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음

 

마마 시간이 늦었습니다 석찬을 올릴까요?

 

조용히 생각에 잠겼던 솔은 조심스럽게 묻는 시종에게 고개를 저었음 도무지 뭘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음 벗에 대한 걱정과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온 신경이 쏠려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고 배가 고픈 줄도 몰랐음 솔은 마른 손끝을 문지르다가 설핏 웃으며 부탁했음

 

석찬은 되었으니 차를 좀 내어주겠니 폐하께서 내리신 차가 입에 딱 맞더구나

 

끼니를 거르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한 끼 정도야 어떠려고 수학하던 시절엔 며칠간 먹지 않고도 잘 지냈었단다

 

솔은 요드가 들었으면 기함할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며 웃었음 시종은 알았다는 듯이 예를 올리고 뒷걸음질 쳐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칫했음 뭔가 더 할말이 있는 것 같아보였음 솔은 자세를 바로 하며 물었지

 

할 말이 있으면 하려므나

 

오늘 있었던 일은 어찌할까요

 

솔은 시종이 뭘 걱정하는지 알았음 궁궐, 그것도 황후궁에 유배형을 받은 죄인이 숨어든 것은 심각한 일이었음 자칫 잘못하면 그를 들여보내준 경비부터 모른 척한 모든 인물들이 화를 면치 못할 일이었지 솔도 그걸 알았지만 자신을 찾아온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벗의 시종이었음 시종은 벗의 간절한 청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지 그 갸륵한 마음이 어여쁘고 안타까워 솔은 그만 눈을 감아주자고 생각했을 거임

 

혹여 누가 그에 대해 묻거든 모른다고 답하렴 그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알겠니?

 

그리하겠습니다

 

시종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가 물러났음 솔은 소매에 감춰두었던 전갈을 촛불에 태워 날려버렸음 요드에게 숨기는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마음 쓰였지만 벗의 일은 요드에게조차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일이었음 대체 제게까지 손을 뻗을만한 일이 무엇이기에 이리 위험한 방법을 쓴 것인지 솔은 멀리 떨어져 볼 수 없는 벗이 걱정돼 미칠 것 같았음

 

 

 

 

 

 

 

황후 눈 좀 떠보세요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요드가 솔을 깨웠음 간밤에 도가 지나친 열락을 견디지 못하고 까무룩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솔은 아직 잠에 취한 눈을 끔벅거렸지 그게 사랑스러워 감긴 눈꺼풀에 입맞춘 요드가 조금 벌어진 채 따끈한 숨을 내쉬는 입술을 빼앗았지

 

오늘도 탕약을 들이라할까요

 

솔은 잠에 취해 배시시 웃으며 요드의 팔뚝에 머리를 살며시 비벼댔지 생전 본 적도 없고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잠투정에 요드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음

 

어찌 이리 깜찍하게 구십니까

 

그리 보였다니 제 의도가 통했나 봅니다 그러니 탕약은 들이지 말라 명해주세요

 

그게 그렇게 싫으십니까

 

탕약보다는 황제폐하께서 계시는 것이 더 좋아 그럽니다

 

나른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솔이 다시 잠에 빠져들었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빙글거리던 요드는 무방비하게 닥친 솔의 교태에 넋이 나갔지 낯 뜨거운 말을 한 건 솔인데 어째서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모를 일이었음 요드는 제 팔뚝을 베고 고른 숨을 내쉬는 솔을 바라보다가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지

 

이리 귀여운 구석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스승님

 

나지막하게 속삭인 요드는 일어나려던 몸을 다시 침상에 뉘였음 아직 조회를 하려면 시간이 있었음 솔이 듣는다면 질책할지도 몰랐지만 딱 하루만 조강을 생략하자 싶었음 대신 솔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가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보고 싶었지

 

폐하...

 

... 아직 황후께서 기침하지 않으셨다 오늘 조강(아침 공부)는 건너뛰고 황후와 함께 조찬을 들 것이니 준비하거라

 

명 받잡겠나이다

 

멀찍이 떨어져있던 내관과 시종들이 모두 물러갔음 내실은 요드와 솔 둘뿐이었지 평안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무척이나 신선하고 기껍게 느껴졌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얼마만인지 몰랐음

 

요드는 제 삶에서 이토록 따뜻하고 안온한 공기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음 어렸을 때야 모두 알다시피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고 성장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음 형제들과의 권력다툼에서 우위를 선점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황제의 배척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몇 배는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음

 

몇 번 변방으로 보내져 국경 지역의 이민족과 산적들을 토벌하며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 했을 때에는 다시는 수도와 궁궐에 발을 못 붙일 줄 알았지 솔 또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좌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음 하지만 그때마다 그런 불확실한 미래가 연료가 되어 요드를 있는 힘껏 버티게 했음 이대로 죽어 솔에게 아무것도 전하지 못하고 죽지는 않을 거다 라고 간절히 생각했었지

 

요드는 솔 없는 세월을 견디며 단 하나의 소원만 간절히 바랐었음 만약 제게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제 곁에 솔이 있기를 바란다고 지금은 요원해 보여도 언젠가는 이룰 것이라고 그래서 살아남았고 정적들이 자신을 이용하는 것에 기꺼이 휘둘려주었고 똑같이 그들을 이용하며 결국엔 살아남아 황권을 쟁취해냈음

 

누군가는 반역자라며 손가락질할 지도 몰랐지만 요드는 끝끝내 버티고 살아남아 솔의 곁에 선 자신이 자랑스러웠음 그랬음 요드는 황권을 차지한 게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솔의 곁에 있게 된 걸 자랑스러워했음 물론 솔을 제 사람으로 두기 위해 황권이나 여러 가지가 필요한 건 맞지만 중요한 건 요드가 지금껏 행한 모든 것의 이유이자 핵심이 솔에게 있다는 거였음 그걸 요드는 감춘 적이 없었지 늘 솔이 먼저고 솔을 위해서 사는 걸 일관되게 표현했을 거임

 

저는 그러할진데 황후는 어찌 제게 숨기시는 겁니까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이 순하디순해서 심장이 찌르르 울렸음 요드는 살며시 벌어진 입술을 손끝으로 쓸어보고서는 침상에 몸을 늘어뜨렸음

 

뭘 하시려는 건지 여쭈어도 답하지 않으시겠지요

 

요드는 나지막한 숨소리에 귀기울이다가 조금 앞으로 다가갔음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체향이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주듯 요드에게 흘러들어왔음

 

저는 황후만 무사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마세요 나쁜 일은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할 터이니 황후께서는 언제나 이렇듯 제 곁에 있어만 주세요 그게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따끈따끈한 몸을 끌어당겨 안은 요드는 솔의 머리에 입술을 꾹 눌렀음 어쩐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음

 

확실한 건 솔이 다쳐서는 안된다는 거였음 요드에게는 솔의 안전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음

 

 

 

 

 

 

 

궁을 좀 나갔다 와야겠구나

 

...?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안 되겠구나 나갈 채비를 좀 해주겠니

 

황후마마!

 

그 아이가 다녀간 것을 혹시 누군가에게 고한 적 있느냐

 

없습니다! 황후마마께서 단단히 이르셨는데 제가 어찌 함부로 입을 놀리겠어요

 

시종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마구 저었음 솔은 시종의 손을 감싸쥐고는 진정하라는 듯이 토닥였음

 

너를 나무라고자 하는 말이 아니란다 사안이 위중하니 신중하게 행동하길 바라서야

 

황후마마...

 

만약 누가 와 나를 찾거든 몸이 좋지 않아 만날 수 없다고 말하렴 만약 폐하께서 석찬을 들러 오실 때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마마!

 

사색이 된 시종이 솔을 만류했음 솔은 가만히 불안해하는 시종을 보고서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음

 

아무일도 없을 테니 걱정 말거라 그저 벗을 만나러 갈뿐이란다

 

마마...

 

하지만 만약 변고가 생겨 돌아오지 못하거든 그때는......

 

솔은 잠시 망설였음 그럴리 없겠지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요드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었지 차라리 제게 화를 내고 황후위를 폐하겠다며 길길이 날뛴다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음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요드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남는다면 그건 안 될 일이었음 그래서는 안 됐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간절히 기다리는 벗을 모른 척할수도 없었음 솔은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조여드는 목을 손으로 슬며시 쓸었음 생각하면 할수록 어째서인지 더더욱 궁지에 몰린 것처럼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지

 

처음에는 차라리 사람을 보내 도울까도 했었음 실제로 한 번 시종을 몰래 보낸 적도 있었을 거임 몰래 벗과 만나고 돌아온 시종은 머뭇거리며 직접 만나 뵙고 말씀하고 싶으시답니다 했음 요드라면 거기서 이상함을 느꼈겠지만 솔은 그럴 정도로 다급한 일이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음 그래서 고민 끝에 직접 나가기로 한 거임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면 그때는 폐하께 말씀드리려므나 혹여 물으시거든 내 벗은 잘못이 없으니 오로지......

 

솔은 말을 잇다가 멈추고 말았음 사달이 난 후에 그리 변명한들 누가 제대로 받아들여주겠음 더구나 벗은 선황의 후궁으로 유배형을 받고 있는 신세였음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의 결백을 누가 믿어주겠음 아무리 호소해도 제대로 듣지 않을 것이 뻔했지 요드라면 다를지도 모르지만 황제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법이었음 그러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다녀오는 것만 생각하면 될 일이었음 솔은 시종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고는 너무 걱정말거라 잘 다녀올 터이니 하며 몰래 궁을 나섰지

 

발을 동동 구르며 멀어지는 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종은 울듯한 얼굴로 곧장 몸을 돌려 황제가 있을 정전으로 뛰어갔음 사실 시종은 요드가 솔의 곁에 둔 요드의 사람이었음 워낙 제 일은 떠들지 않는 솔이었기에 요드가 모르고 지나가는 일도 많았고 곁에 없을 때도 솔의 모든 걸 알고 싶어하는 요드였기에 대신 제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을 심어둔 거였음 진심으로 솔의 인품에 반해 충성을 다하는 시종이었지만 그녀의 근간은 요드에게 있었음

 

황제폐하게 고해주세요 황후마마께서, 황후마마께서 출궁하셨습니다!

 

시종의 보고를 전해들은 요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음

 

 

 

 
 

 
 

 

 

!

 

몇 시진을 달려 도착한 유배지는 생각보다 더 낡고 초라했음 곱고 단아하던 모습도 온 데 간 데 없이 수척했지 솔은 단숨에 다가가 저를 반기는 벗의 손을 와락 움켜잡았음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황궁에서 호희호식하며 자신이 묻는 것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했음 미안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솔에게 귀비는 솔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지

 

솔은 초라하지만 잘 정돈된 집안을 둘러보았음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벗은 평소 성격대로 집안 곳곳을 청소하며 지냈던 모양이었음

 

폐하는 어떠하셔?

 

불쑥 묻는 말에 솔은 대답하지 못했음 솔의 입장에서야 부군이고 황제이자 벗이었지만 눈앞의 벗에게는 그 의미가 많이 달랐지 솔은 대답하는 대신 질문을 되돌렸음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문을 연 벗이 뒤돌아보며 슬며시 웃고 말았음

 

죄인된 입장인데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어쩌겠어

 

솔은 다시 입을 닫고 말았음 자신을 이끄는 벗을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가자 그 순간 알 수 없는 향취가 느껴졌음 묘하게 달큰하고 그리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향취였지 솔은 걸음을 멈추고는 찬찬히 방 안을 훑었음 낮인데도 창을 가렸기 때문인지 방안이 어두컴컴했음

 

창은 왜 막아 두었어?

 

햇볕이 들면 제대로 잠들지 못해 울음이 늘거든 담장 너머 울음이 새어나가면 안 되니까 창을 막은 거야

 

솔의 손을 놓은 벗이 반쯤 어둠에 잠긴 탁자로 걸어가 찻잔에 찻물을 따랐음

 

들겠어?

 

...

 

모처럼 오랜만에 너를 만났는데 줄 것이 없네 황궁에서 즐기던 것보다는 못하지만 영 몹쓸 맛은 아니야 그러니 좀 들어

 

솔은 바복되는 권유에 찻잔을 들어 입술에 댄 뒤 살짝 기울여 찻물을 마셨음 맛이 고르지 못한 데다가 텁텁하고 씁쓸한 찻물이 혀를 적시고 목구멍을 넘어갔음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귀비가 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음

 

뭔가가 이상했음 마치 어떤 의도를 숨긴 것처럼 보이는 태도가 계속해서 의심을 불러일으켰음 이상함을 느낀 솔이 입을 열려던 그때였음 방 한구석에서 작은 짐승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란 솔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보자 우울한 낯빛으로 돌아본 귀바가 천천히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거임 그러고는 칭얼거리는 것을 어르며 솔에게 다가왔음 미심쩍게 보던 솔은 벗의 품에 안긴 것의 정체를 알게 되자마자 아연해져 아무말도 못 했지

 

이게 무슨...

 

이름은 제키야 외가 쪽 방식을 따라 이름을 지었지 아마 외증조모님 성함이 제키였을걸?

 

솔은 벗의 품에 안겨 바동거리는 어리고 연약한 아이를 망연자실해 바라보았음 분명 궁을 나갈 때는 회임하지 않았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음

 

네게 전갈을 보낸 것은 이 아이 때문이야 선황께서 시해당하시던 날 내 태중에 이 아이가 있었다더군

 

시해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음 벗은 처음 보는 눈빛으로 솔을 바라보고 있었음

 

태중에 있다는 걸 몰랐기에 이 아이가 살 수 있었지 만약 그때 내 배가 불렀거나 회임한 사실을 들켰었다면 이 아이는 물론 나역시 살아있지 못했을 거야

 

윤아 그렇지 않아 폐하께서는...

 

날 죽이려고 하셨겠지

 

솔은 손을 꽉 움켜잡았음 아미라고 말했지만 완벽하게 부정할 수 없었음

 

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시다 너도 그 분을 오랫동안 보아 잘 알지 않아

 

잘 알지 잘 알다마다 그 분에게 예외가 있다면 세상에 오로지 너 하나뿐이라는 것 말이야

 

...

 

황제는 너 아닌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

 

정말 그 아이가 선황의 핏줄이라면...

 

이 아이는 내 눈앞에서 처형당하겠지

 

벗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너무나 끔찍해 솔은 비틀거렸음 부정해야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음 지금껏 자신이 역사에서 배운 바로도 그랬음 사람된 도리로 베풀어야하는 온정과 용서는 필요했지만 권력이 얽히면 세상 그 어느것보다 무섭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것도 사람이었음

 

이 아이를 살리고 싶어 도와줘

 

...

 

네 말이라면 황제께서도 들으실 것 아니야 나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 이 아이만은 살려주시라 고해 줘 너는 내 벗이잖아

 

나도 알아 너는 누구보다 귀한 내 벗이고

 

갑자기 속이 울컥했음 솔은 뜨겁게 치미는 불덩어리를 삼키며 입을 열려고 했음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을 태우는 열기는 사그라지기는커녕 더더욱 커져 솔을 고통스럽게 했음 솔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내뱉는 호흡이 거칠다는 걸 알아챘음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반쯤 먹은 귀에 닿았음

 

윤아

 

 

아이를 안은 귀비가 성큼 다가왔음 미처 몰랐지만 그녀에게서 희미한 젖내가 느껴졌음 아이를 품은 어미의 냄새였음 왜 이걸 처음엔 몰랐을까 깊게 숨을 들이마신 순간 다리가 휘청거렸음 솔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급하게 탁자를 짚었음 물끄러미 지켜보던 귀비의 눈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죄책감과 후회가 스쳐갔음

 

용서해 우리가 살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었어

 

우리라고 솔은 그 순간 전갈에서 말했던 우리가 무얼 말하는지 깨달았지

 

무슨...

 

그들이 너를 궁 밖으로 꼬여내면 이곳을 벗어나 아이와 살게 해주겠다고 약조했어 미안해 솔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댔음 귀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킨 것 같았음 얼굴이 축축해 손으로 더듬어보자 흐릿해진 시야에 붉게 물든 손이 보였을 거임 귀비는 경악한 얼굴로 뒤로 물러나며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사죄했음 솔은 가슴을 태우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허리를 숙였음

 

커흑!

 

낡은 탁자에 붉은 선혈이 뿌려졌음 솔은 떨리는 손으로 입술을 훔치며 몸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음 지금 시각이 얼마나 됐지? 흔들리는 시선이 아직 환하게 밝은 창밖을 돌아보았음 노을이 지기도 전이니 솔이 시종에게 이른 시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을 거임

 

윤아...

 

일그러진 눈가에 눈물이 흘렀음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알 수 없었음 어쩌면 너무 많아 미처 다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음 그때 겨우 떠올린 것은 이대로 요드가 알지 못한 곳에서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였음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 눈앞의 벗이 위험해질 거라는 사실이었음 그들이 누군지 벗과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것 외에도 무슨 이유를 들어 움직이게 했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죽으면 벗도 황후를 시해한 패거리의 일원이 되는 거였음 어쩌면 미지의 그들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죽게 될 지도 몰랐음

 

그건 아니 되지 않아... 울컥 울음이 치밀었음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벗인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죽게할 수 없었음 이제 막 태어난 아이도 선황의 핏줄이라는 크나큰 문제가 있었지만 죽게할 수 없었음 요드라면 현명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 거임 그래서 버텨야만 했음 요드가 이곳을 찾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죽어 나자빠지는 건 안 될 일이었음 거기까지 생각한 솔은 무너지려는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려고 했음

 

어서 피해야 해

 

말하려던 솔은 제 뒤에서 쏜살같이 쏘아져온 화살이 벗의 목을 꿰뚫는 것을 망연하게 바라보았음 단말마도 지르지 못한 채 절명한 벗이 무너져내렸음 혼비백산 해 쓰러지는 몸을 안고 주저앉은 솔은 피를 토해내는 벗의 얼굴을 두드리며 이름을 불렀음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벗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음

 

솔은 눈물과 핏물로 범벅이 된 채로 벗의 품에서 아이를 끌어왔음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살펴보니 다행히 상처가 크지는 않았음 화살이 스치며 상처를 냈지만 운이 좋게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음

 

솔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두리번거렸음 연악한 창을 뚫고 몇 대의 화살이 안으로 더 쏘아져들어왔음

 

!

 

어깨가 부서지고 살갗이 찢기는 고통에 일순 숨을 멈춘 솔이 헐떡이며 무릎을 꿇었음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음 한 대만 맞아도 단명할 것 같은 굵은 살대를 가진 화살이 다다닥 소릴 내며 바닥과 벽에 깊이 틀어박혔음 솔은 한팔로 아이를 끌어안고 바닥을 기다시피 앞으로 움직였음 좀처럼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아 돌아보았더니 한쪽 다리에 꽂힌 굵은 살대가 보였을 거임 어깨에 박힌 화살이 너무 아파 다리에 꽂힌 화살은 느끼지 못한 것 같았음

 

으아아앙

 

울지 말거라 울지 말아 여기서 꼭 데리고 나갈 터이니 두려워하지 말거라 반드시 구해줄 터이니...

 

거북이 걸음 하듯 느리게 움직이던 솔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음 밖이 소란스러웠음 솔은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움직여 앞으로 움직이려고 했음 살아서 함께 이곳을 나갈 수 없다면 아이만이라도 살 수 있도록 어딘가에 숨길 생각이었음

 

제발 울지 말려므나 그리 울면 저들이 널 찾아낼 것이야 그러면 아니 되잖느냐

 

아이를 달래던 솔은 갑자기 몰아친 바람이 제 몸을 낚아채는 것을 느꼈음

 

!

 

...

 

괜찮으십니까? 대체...!

 

사색이 된 얼굴인데 오히려 마음이 놓여서 솔은 웃고 말았음 요드는 그럴 때가 아닌데 왜 웃냐고 소리칠 뻔했음 화살을 맞은 어깨는 건드리기조차 겁났지

 

황제 폐하

 

일단 돌아가세요 돌아가...

 

요드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솔이 갑자기 피를 토했음 검붉게 변한 피가 요드의 옷깃을 적셨지 그걸 본 솔이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핏자국을 닦아냈음

 

황공합니다 감히 황제 폐하께 무례를 범하였으니 부디 저를 벌해주세요

 

무슨...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솔을 다그치던 요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음 솔은 요드를 빤히 보다가 더듬거리며 제 얼굴을 매만졌음 이미 토혈한 피로 젖은 손이 줄줄 흘러내리는 코피로 흠뻑 젖었음 아무리 멈추려고 해봐도 코피가 멎지 않자 당황한 요드가 제 옷을 찢어 코에 댔음 하지만 소용없었지 솔은 문득 기묘한 예감을 느꼈음 이상하리만치 침착해져서는 우는 아이를 요드에게 넘겼음

 

폐하 부디 이 아이를 잘 돌봐주세요

 

!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었음 요드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태연하려고 했었음 이미 일을 벌이고서 그리 말하는 것이 기만이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이었음 솔은 입술을 달싹이다 희미하게 웃었음 그 순간 솔이 무너져내렸음 요드는 제 품에 쓰러져 기대는 솔을 황망하여 끌어안았음

 

...?

 

늘 말하듯이 대답이 돌아오길 바랐으나 끝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음 요드의 안에서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했음

 

 

 

 

 

애콜라이트 요드솔

2024.06.25 00: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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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발 센세 내 세상도 무너지는것같아 슈발 둘이 편안하게 사랑하게 해줘라 이새기들아ㅠㅠㅠㅠ
[Code: d1b4]
2024.06.25 00:22
ㅇㅇ
모바일
아 진짜 솔 속아서 피토하는 와중에도 친구 살리겠다고ㅠㅠㅠ 제키도 살리겠다고ㅠㅠㅠ 진짜 요드가 사랑할수밖에 없다...
[Code: d1b4]
2024.06.25 00: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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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오오오 솔아아아아ㅜㅜㅜㅜㅜㅜ 나 이대로는 못산다 요드야 빨리 솔 살리지 않고 뭐하냐 얼른 살려내라고ㅜㅜㅜㅜㅜ 친구가 대체 누구한테 무슨 협박을 받았길래 솔을 꾀어냈던 걸까요 요드한테 솔이 중요하다는걸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칵 마 잡히기만 해봐 아주 그냥 대갈통 깨버려
[Code: 0409]
2024.06.25 00:48
ㅇㅇ
갸아아아아악!!!!! 솔!! ㅠㅠㅜㅜ
[Code: 0251]
2024.06.25 02: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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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애애ㅐㅐㅐㅐㅐㅐ 센세 우리 솔 마마 살려주세요 네? ㅠㅠㅠㅜㅠㅠㅠ 내 세상도 요드랑 같이 무너졌어 허허흑흗 근데 너무 재밌다 흥미진진 죽을 것 같아요 ㅠㅠㅠ
[Code: 1036]
2024.06.25 04: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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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 고마워...
[Code: e912]
2024.06.25 06: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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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제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726]
2024.06.25 12: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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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나 정말 센세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요 오조오억나더로 책임져
[Code: af90]
2024.06.25 16: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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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ㅠㅠㅠㅠㅠㅠ안돼 ㅠㅠㅠㅠㅠㅠ 솔 ㅠㅠㅠㅠ어케되나여 ㅠㅠㅠㅠ 않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085]
2024.06.25 21: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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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으아아악!!!!!!! 솔!!!!!!! 그런 솔 보는 요드 마음도 진짜 무너진다 ㅠㅠㅠㅠㅠㅠ
[Code: f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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