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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14:29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매버릭은 텅 빈 옆자리를 손으로 몇 번 슥슥 만져본 후에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원래였으면 같이 누워있던 사람이 제 이마에 키스를 날리고 저벅저벅 걸어가 씻기 부터 했을텐데. 황량하기만 한 침실이 매버릭을 반겼다.
침실에서 나온 매버릭은 자연스럽게 냉장고로 향했다.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냉장고 앞에 붙여놓은 메모들이 시선을 끌었다.
[아침부터 초코우유 안 돼. 흰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어.]
[
ㄴ사둠 -11/17, m
ㄴㄴ3알 남았다 -11/30, m]
[시금치 프리타타 냉동실에 넣어뒀어.]
[10/13 얼굴만 보고 나가, 미안. 다음 주는 빨리 퇴근할게.]
정갈한 글씨체가 꼭 주인을 닮아있었다. 매버릭은 초코우유를 꺼내던 손을 멈추고 다시 집어넣었다. 다시 문을 닫았을 땐, 그의 손엔 흰 우유가 들려있었다.
가와사키가 부대의 입구에 들어서자, 팀원들이 매버릭을 맞이했다. 탑건 프로젝트를 끝내고 돌아온 대령을 모두가 반겼다. 매버릭은 기존에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앉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끝내긴 했지만 보고할 보고서는 산더미였으므로 매버릭은 정신없이 오전 근무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에서야 폰을 열어볼 수 있었는데, 화면엔 알림 하나 떠있지 않았다. 매버릭은 조용히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오후 근무 시간도 결코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아무리 전투기에만 몰두한 군인이라 할지라도 행정근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울려대는 메일과 여러 서류들이 매버릭의 시간을 호로록 빨아들였다.
저녁을 대충 사가지고 들어온 매버릭이 소파에 앉았다. 6시 20분, 저녁을 먹기 딱 알맞은 시간이었다. 종이박스를 열어 중국식 누들을 꺼냈다.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청경채를 골라냈다. 윽, 초록색 야채는 왜 먹는거야?
매버릭의 앞에선 야구가 한창이었다. 매버릭은 야구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습관이었다. 그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당연히 틀어놨을 야구경기였으므로. 매버릭은 궁금하지도 않는 타율을 보며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는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매버릭은 호다닥 충전기 쪽으로 가 폰을 가지고 거실에 앉았다.
"여보세요?"
-미안, 오늘 너무 바빠서 연락 한 번을 못했네. 복귀 잘했어?
"....."
-여보세요? 자기야? 안 들려?
"...으응, 아니 들려. 복귀 잘했어어..."
-진짜 미안해. 아까 저녁먹고 전화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샌더스 의원이 붙잡아가지고...
"아이스."
-응?
"...보고싶어."
-어? 안 들려. 연결 상태가 이상한가? 자기야?
"...보고싶어. 자기야."
-...갑자기? 무슨 일 있어?
"...죽을래?"
-하하, 나도 보고싶어. 얼른 끝내고 갈게.
떨어져 지내던 세월이 얼만데 왜 이제야 보고싶다는 말을 하게 된 건지. 매버릭은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몰려와 주먹으로 소파를 마구 쳤다. 겨우 일주일인데! 예전엔 6개월짜리 파병도 아무렇지 않게 보냈으면서!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화르륵 불타오른 매버릭이 쿵쾅쿵쾅 침실로 들어갔다.
-
"으응..."
햇빛이 눈을 간지럽히자 매버릭이 몸을 뒤집어 고개를 파묻었다. 잠이 아직 덜 깬 그가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눈을 살며시 떴다.
어?
"굿모닝, 피트. 나도 보고싶었어."
아이스맨이 와이셔츠를 입은 채로 상체를 숙여 매버릭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잠결에 매버릭은 아이스맨이 아닌 본인이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아이스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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