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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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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분위기로 뒤덮인 터너 가는 며칠 동안 사실상 장례를 치르는 듯했어. 칼럼이 자해를 했을 때 마지막에 누군가 다행히 그를 막아 실명까지 가진 않을 수 있었지.
“모르겠어, 오스틴. 네가 너무 좋아. 난 어떡해야 해?”
칼럼은 두 손으로 피가 나는 상처를 헤집으려 했어. 그랬다면 분명 두 눈을 잃었겠지.
-멈춰!-
보이스였어. 분명한 베네게세리트의 능력이었지. 오스틴은 핏발 선 두 눈으로 칼럼을 보고 보이스를 사용했어. 그리고 곧바로 기절했지. 오스틴이 잠시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시종이 칼럼을 붙잡아 뒷목을 쳐 기절시켰어. 명백한 역모였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지. 공작은 두 사람을 옮겨 각자의 침실에서 치료하게 했지만 칼럼은 의식을 차리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일으켰어. 결국 두 눈에 붕대를 칭칭 감아놓아 앞도 못 보는 아들을 직접 아들의 첩 침실까지 업어다 준 공작이었어.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를 잃을 수도 없었고, 하나뿐인 아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걸 아비로서 지켜만 볼 수는 없었지. 더듬더듬 침대를 만지며 오스틴을 찾길래 칼럼의 손목을 붙잡아 오스틴의 몸까지 이끌어 준 공작은 의식 없는 오스틴의 몸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어 안기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어. 공작이 겨우 스물둘이었을 시절 얻은 하나뿐인 자식이었어. 터너 가 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아들이기도 했어. 터덜터덜 오스틴의 침실에서 걸어 나온 공작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어. 베네게세리트가 진정 터너 가를 파멸시키려는 것인가.
“오스틴, 우리 화원에 가자.”
“눈이 다 나으면요.”
“그래, 그때 꼭 가자. 내가 꽃반지 만들어줄게.”
칼럼은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어. 오스틴은 그 탓에 손이 아파왔지만 그저 웃으며 칼럼을 바라보았지.
“너에게만 만들어줄 거야.”
붕대 아래로 미소가 지어졌어. 두 눈과 코 윗부분을 덮은 하얀 붕대는 빛 한점 들어가지 못하게 단단히 묶여있었지. 의사는 칼럼이 회복할 거라고 했어. 원래의 시력을 되찾을 거라고도 장담했지.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눈이 아니게 되어버렸어. 칼럼은 불안증세를 나타내며 애착장애를 앓았지. 대상은 오스틴이었어. 힘든 일이 많았으니 두 아이를 그냥 두라는 공작과 치료에 방해가 되니 둘을 떨어뜨려두라는 레이디는 쉴 새 없이 부딪혔어. 그렇게 두 어른이 싸우는 동안 칼럼과 오스틴은 칼럼의 침실로 함께 옮겨올 수 있었어. 오로지 공작의 비호 덕분이었지. 칼럼은 한시도 오스틴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고 눈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두 사람은 항상 손을 잡고 있었어. 그러다 가끔씩 칼럼은 과하게 힘을 주어 오스틴을 손을 부러뜨릴 것처럼 잡아오기도 했지. 시뻘겋게 손자국이 남았는데도 오스틴은 그저 웃으며 칼럼을 바라보기만 했어. 절대 손을 빼지 않았지.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어. 영양가 없는 대화에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둘은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 맞장구를 치곤 했지. 그리고 베네게세리트에서 결정을 내렸어. 오스틴을 돌려보내라는 연통이 터너 가로 보내졌지.
공작은 연통을 계속해서 무시했어. 어쩔 수 없이 보낼 땐 보내더라도 칼럼이 저 상태인데 지금은 안될 일이었지. 결국 베네게세리트에서 대모가 직접 터너 가를 방문했지.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였어. 대자를 수거해 가는 것.
“안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공작님, 피하신다고 피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아이를 보내드리지요. 오스틴은 이제 터너 가에는 필요가 없는 아이입니다.”
“그럼 시종으로라도 데리고 있겠습니다. 데리고 가는 건 심사숙고해주시지요.”
“베네게세리트에는 위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오스틴은 그 계획의 일부가 될 겁니다. 저희가 데려가 써야 할 곳이 있습니다.”
“오스틴은 칼럼의 첩입니다.”
“후계자를 잃고, 주인을 시해하고, 능력을 사용해 조종한 베네게세리트는 첩으로서 그 지위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저희는 오스틴을 데려가 다시 교육하고 다른 곳으로 보낼 겁니다.”
공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어. 오스틴이 돌아가면 그 이후엔 어떻게 될지 뻔했지. 이것이 터너를 위한 베네게세리트의 계획이었던 것인가. 공작은 함정에 갇혀 벗어날 수 없는 길에 도달했음을 깨달았지. 이미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첩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알고 처음부터 오스틴을 받아들였던 것일까. 레이디가 진정 터너의 편이기는 한 것인가. 그녀조차 칼럼의 어미이기 이전에 베네게세리트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오스틴을 내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가 직접 수거해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공작은 두 눈을 감았어.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었지.
칼럼은 오스틴의 손을 잡고 누워 있었어. 약을 바르고 붕대를 새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처가 간질거렸지. 하지만 긁어선 안된다는 걸 알기에 대신 오스틴의 손을 꼭 잡았어. 오스틴은 얌전히 칼럼의 곁에 누워 책을 읽었어. 오늘은 사랑에 빠진 공주와 그런 공주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어 비탄에 빠진 용사의 이야기였지.
“결국 둘은 행복해졌을까?”
오스틴은 아직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 모른다고 답했어. 하지만 결말에서 두 사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 공주는 이웃나라의 왕자와 혼인해 왕비가 되고, 용사는 왕비가 된 공주를 위해 싸우다 전쟁터에서 전사해. 오스틴은 슬픈 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래서 칼럼이 낫지 않은 사이 책을 전부 읽은 것처럼 속이고 행복한 결말로 바꾸어 들려줄 생각이었지.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던 두 사람을 방해한 건 갑작스러운 노크였지. 침실의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을 마주한 순간 오스틴은 경직되었어. 손을 잡고 있던 칼럼에게까지 그 불안이 전해질 정도였지.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불안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칼럼이 오스틴의 손을 잡아당겼어.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칼럼은 흥분하기 시작했지.
“저의 대자를 돌려받으러 왔습니다, 소공작님.”
이번엔 칼럼이 경직되었어. 베네게세리트의 대모였어. 오스틴의 대모이자 그를 터너 가로 보낸 장본인이기도 했지. 돌려받으려 왔다는 건 오스틴을 데려가겠다는 거야. 칼럼은 황급히 품 안에 오스틴을 끌어안았어. 그탓에 붙잡고 있던 손이 풀려버렸지.
“안돼. 넌 못 가.”
오스틴은 말없이 칼럼의 품에 안겨있었어. 이것 또한 운명인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불안에 떨며 흐느끼기 시작한 칼럼을 마주 안아주지도 못한 오스틴은 대모를 바라보았어. 어찌 되었든 자신은 오늘 터너 성을 떠나야 했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칼럼을 떼어내려 호위들이 거리를 좁혀왔어. 오스틴은 붕대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
“소공작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싫어, 가지 마. 안돼, 못가.”
“칼럼, 들어봐.”
오스틴은 칼럼의 양 빰을 붙잡아 눈을 맞추듯 자신의 얼굴을 보게 했어. 이마와 이마가 맞대어지고 잠시 침묵이 흘렀지.
“이렇게 하는 거야. 지금부터 열 세는 거야.”
“오스틴, 가지 마...”
“열 세면 나 다시 돌아올 거야.”
“......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약속할게.”
칼럼은 천천히 오스틴을 놓았어. 마침내 두 팔이 침대 위로 떨어지자 오스틴이 침대 아래로 내려왔지.
“아홉.”
대모를 따라 떠나며 오스틴은 딱 한번 뒤를 돌아보았어.
“여덟.”
등뒤에서 문이 굳게 닫혔지. 오스틴은 거짓말을 했어.
“하나. ..... 오스틴?”
“공작 즉위를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칼럼 터너 공작님, 감축드립니다!”
칼럼 공작은 심드렁하게 연신 위스키를 들이켰어. 그래봤자 즉위식은 어제였고 오늘은 귀족들이 모여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어보고자 그에게 꼬리를 흔드는 걸 구경하기만 하면 되었지. 지겨운 파티가 밤새도록 이어질 테니 어디 발코니에서 몰래 따먹어 볼 미인이나 물색해 볼까 하던 중에 누군가 눈에 들어왔지. 금발의 수려한 미인, 잊을 수 없는 얼굴. 홀린 듯이 그에게로 다가간 칼럼 공작이 다짜고짜 미인의 팔을 잡아챘어. 당황한 미인이 놀라 몸을 떨었지. 입가에 찢어진 상처가 있고 쇄골엔 멍자국과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미인은 칼럼 공작을 마주하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동공이 확장되었어. 칼럼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하늘로 치솟았지.
“열만 세면 온다더니, 그게 십 년이었어?”
“소, 소공작님..”
“아니지, 공작님이야. 오랜만이야, 오스틴.”
이런 청소년 시기에서
이 정도로 성장해서 재회했다고 생각하면 됌.
오스틴 여전히 케이크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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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틴버 칼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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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분위기로 뒤덮인 터너 가는 며칠 동안 사실상 장례를 치르는 듯했어. 칼럼이 자해를 했을 때 마지막에 누군가 다행히 그를 막아 실명까지 가진 않을 수 있었지.
“모르겠어, 오스틴. 네가 너무 좋아. 난 어떡해야 해?”
칼럼은 두 손으로 피가 나는 상처를 헤집으려 했어. 그랬다면 분명 두 눈을 잃었겠지.
-멈춰!-
보이스였어. 분명한 베네게세리트의 능력이었지. 오스틴은 핏발 선 두 눈으로 칼럼을 보고 보이스를 사용했어. 그리고 곧바로 기절했지. 오스틴이 잠시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시종이 칼럼을 붙잡아 뒷목을 쳐 기절시켰어. 명백한 역모였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지. 공작은 두 사람을 옮겨 각자의 침실에서 치료하게 했지만 칼럼은 의식을 차리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일으켰어. 결국 두 눈에 붕대를 칭칭 감아놓아 앞도 못 보는 아들을 직접 아들의 첩 침실까지 업어다 준 공작이었어.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를 잃을 수도 없었고, 하나뿐인 아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걸 아비로서 지켜만 볼 수는 없었지. 더듬더듬 침대를 만지며 오스틴을 찾길래 칼럼의 손목을 붙잡아 오스틴의 몸까지 이끌어 준 공작은 의식 없는 오스틴의 몸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어 안기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어. 공작이 겨우 스물둘이었을 시절 얻은 하나뿐인 자식이었어. 터너 가 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아들이기도 했어. 터덜터덜 오스틴의 침실에서 걸어 나온 공작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어. 베네게세리트가 진정 터너 가를 파멸시키려는 것인가.
“오스틴, 우리 화원에 가자.”
“눈이 다 나으면요.”
“그래, 그때 꼭 가자. 내가 꽃반지 만들어줄게.”
칼럼은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어. 오스틴은 그 탓에 손이 아파왔지만 그저 웃으며 칼럼을 바라보았지.
“너에게만 만들어줄 거야.”
붕대 아래로 미소가 지어졌어. 두 눈과 코 윗부분을 덮은 하얀 붕대는 빛 한점 들어가지 못하게 단단히 묶여있었지. 의사는 칼럼이 회복할 거라고 했어. 원래의 시력을 되찾을 거라고도 장담했지.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눈이 아니게 되어버렸어. 칼럼은 불안증세를 나타내며 애착장애를 앓았지. 대상은 오스틴이었어. 힘든 일이 많았으니 두 아이를 그냥 두라는 공작과 치료에 방해가 되니 둘을 떨어뜨려두라는 레이디는 쉴 새 없이 부딪혔어. 그렇게 두 어른이 싸우는 동안 칼럼과 오스틴은 칼럼의 침실로 함께 옮겨올 수 있었어. 오로지 공작의 비호 덕분이었지. 칼럼은 한시도 오스틴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고 눈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두 사람은 항상 손을 잡고 있었어. 그러다 가끔씩 칼럼은 과하게 힘을 주어 오스틴을 손을 부러뜨릴 것처럼 잡아오기도 했지. 시뻘겋게 손자국이 남았는데도 오스틴은 그저 웃으며 칼럼을 바라보기만 했어. 절대 손을 빼지 않았지.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어. 영양가 없는 대화에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둘은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 맞장구를 치곤 했지. 그리고 베네게세리트에서 결정을 내렸어. 오스틴을 돌려보내라는 연통이 터너 가로 보내졌지.
공작은 연통을 계속해서 무시했어. 어쩔 수 없이 보낼 땐 보내더라도 칼럼이 저 상태인데 지금은 안될 일이었지. 결국 베네게세리트에서 대모가 직접 터너 가를 방문했지.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였어. 대자를 수거해 가는 것.
“안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공작님, 피하신다고 피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아이를 보내드리지요. 오스틴은 이제 터너 가에는 필요가 없는 아이입니다.”
“그럼 시종으로라도 데리고 있겠습니다. 데리고 가는 건 심사숙고해주시지요.”
“베네게세리트에는 위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오스틴은 그 계획의 일부가 될 겁니다. 저희가 데려가 써야 할 곳이 있습니다.”
“오스틴은 칼럼의 첩입니다.”
“후계자를 잃고, 주인을 시해하고, 능력을 사용해 조종한 베네게세리트는 첩으로서 그 지위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저희는 오스틴을 데려가 다시 교육하고 다른 곳으로 보낼 겁니다.”
공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어. 오스틴이 돌아가면 그 이후엔 어떻게 될지 뻔했지. 이것이 터너를 위한 베네게세리트의 계획이었던 것인가. 공작은 함정에 갇혀 벗어날 수 없는 길에 도달했음을 깨달았지. 이미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첩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알고 처음부터 오스틴을 받아들였던 것일까. 레이디가 진정 터너의 편이기는 한 것인가. 그녀조차 칼럼의 어미이기 이전에 베네게세리트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오스틴을 내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가 직접 수거해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공작은 두 눈을 감았어.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었지.
칼럼은 오스틴의 손을 잡고 누워 있었어. 약을 바르고 붕대를 새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처가 간질거렸지. 하지만 긁어선 안된다는 걸 알기에 대신 오스틴의 손을 꼭 잡았어. 오스틴은 얌전히 칼럼의 곁에 누워 책을 읽었어. 오늘은 사랑에 빠진 공주와 그런 공주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어 비탄에 빠진 용사의 이야기였지.
“결국 둘은 행복해졌을까?”
오스틴은 아직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 모른다고 답했어. 하지만 결말에서 두 사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 공주는 이웃나라의 왕자와 혼인해 왕비가 되고, 용사는 왕비가 된 공주를 위해 싸우다 전쟁터에서 전사해. 오스틴은 슬픈 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래서 칼럼이 낫지 않은 사이 책을 전부 읽은 것처럼 속이고 행복한 결말로 바꾸어 들려줄 생각이었지.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던 두 사람을 방해한 건 갑작스러운 노크였지. 침실의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을 마주한 순간 오스틴은 경직되었어. 손을 잡고 있던 칼럼에게까지 그 불안이 전해질 정도였지.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불안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칼럼이 오스틴의 손을 잡아당겼어.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칼럼은 흥분하기 시작했지.
“저의 대자를 돌려받으러 왔습니다, 소공작님.”
이번엔 칼럼이 경직되었어. 베네게세리트의 대모였어. 오스틴의 대모이자 그를 터너 가로 보낸 장본인이기도 했지. 돌려받으려 왔다는 건 오스틴을 데려가겠다는 거야. 칼럼은 황급히 품 안에 오스틴을 끌어안았어. 그탓에 붙잡고 있던 손이 풀려버렸지.
“안돼. 넌 못 가.”
오스틴은 말없이 칼럼의 품에 안겨있었어. 이것 또한 운명인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불안에 떨며 흐느끼기 시작한 칼럼을 마주 안아주지도 못한 오스틴은 대모를 바라보았어. 어찌 되었든 자신은 오늘 터너 성을 떠나야 했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칼럼을 떼어내려 호위들이 거리를 좁혀왔어. 오스틴은 붕대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
“소공작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싫어, 가지 마. 안돼, 못가.”
“칼럼, 들어봐.”
오스틴은 칼럼의 양 빰을 붙잡아 눈을 맞추듯 자신의 얼굴을 보게 했어. 이마와 이마가 맞대어지고 잠시 침묵이 흘렀지.
“이렇게 하는 거야. 지금부터 열 세는 거야.”
“오스틴, 가지 마...”
“열 세면 나 다시 돌아올 거야.”
“......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약속할게.”
칼럼은 천천히 오스틴을 놓았어. 마침내 두 팔이 침대 위로 떨어지자 오스틴이 침대 아래로 내려왔지.
“아홉.”
대모를 따라 떠나며 오스틴은 딱 한번 뒤를 돌아보았어.
“여덟.”
등뒤에서 문이 굳게 닫혔지. 오스틴은 거짓말을 했어.
“하나. ..... 오스틴?”
“공작 즉위를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칼럼 터너 공작님, 감축드립니다!”
칼럼 공작은 심드렁하게 연신 위스키를 들이켰어. 그래봤자 즉위식은 어제였고 오늘은 귀족들이 모여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어보고자 그에게 꼬리를 흔드는 걸 구경하기만 하면 되었지. 지겨운 파티가 밤새도록 이어질 테니 어디 발코니에서 몰래 따먹어 볼 미인이나 물색해 볼까 하던 중에 누군가 눈에 들어왔지. 금발의 수려한 미인, 잊을 수 없는 얼굴. 홀린 듯이 그에게로 다가간 칼럼 공작이 다짜고짜 미인의 팔을 잡아챘어. 당황한 미인이 놀라 몸을 떨었지. 입가에 찢어진 상처가 있고 쇄골엔 멍자국과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미인은 칼럼 공작을 마주하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동공이 확장되었어. 칼럼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하늘로 치솟았지.
“열만 세면 온다더니, 그게 십 년이었어?”
“소, 소공작님..”
“아니지, 공작님이야. 오랜만이야, 오스틴.”
이런 청소년 시기에서
이 정도로 성장해서 재회했다고 생각하면 됌.
오스틴 여전히 케이크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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