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진맥을 제안하며 일어선 사람은 성대경이었다. 퍽 걱정스러운 낯빛이었으나, 방다병은 온몸의 솜털까지 올올이 곤두서는 기분으로 턱에 힘을 주었다. 상대가 꾸민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공격성이 치밀었다. 청년은 간신히 예의의 끝자락을 붙든 목소리로 물었다.

"성 공자, 의술에 조예가 있으십니까?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부끄럽지만, 제가 무가에서 병약하게 태어난 탓으로 어릴 때부터 의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웬만한 의원보다도 솜씨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문주께서 과거 신의라는 칭호를 지니셨다는 것은 잘 아나, 아무리 빼어난 의원이라도 자신의 몸을 진맥하기는 어려우니 말입니다."
"진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종 공자가 더 낫지 않겠는가?"

사인백이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종려명은 오밀조밀하면서도 똑부러지는 인상을 한 젊은이였는데, 사인백의 말에 등을 바로 폈다. 그 얼굴로 한 줄기 난색이 비쳤다.

"아버지께서 거대한 의방을 운영하시기는 하나, 제 의술은 그리 뛰어난 경지가 아닙니다."
"뛰어나지 않다니요? 종 공자의 아버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명의로 손꼽히던 분이 아니십니까. 종씨 집안 남매들 중, 가장 의술에 재능을 보이는 이가 삼남 종려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과히 겸손하신 성품이라 들었는데, 제가 들은 소문이 맞나 봅니다."

추영인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구소양은 다른 후보를 천진하게 치켜세우는 추영인을 불만스럽고도 딱하게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다. 성대경 역시 추영인의 말에 조금 기분이 상한 듯했으나 더 목소리를 높이지는 못했다. 난색을 표하던 종려명은, 이연화가 한 차례 더 기침을 뱉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방다병이 다분히 날선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성대경처럼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종려명 역시 그들의 경계 대상이었다. 

"문주, 괜찮으시다면 제가 잠시 맥을 확인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이연화가 입술에 살짝 남았던 피를 소매에 누르며 다른편 팔을 내밀었다. 종려명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살짝 떨리는 손끝으로 흰 팔목을 잡았다. 방다병은 상대가 숨 한 번이라도 잘못 쉬는 순간 당장 장을 날릴 작정으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이윽고 종려명의 미간이 좁아졌다. 

"맥이 살짝 어지럽습니다. 치명적이지는 않으나, 기관지에 좋지 못한 독을 드신 듯합니다."

종려명이 속삭이듯이 낮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 목소리였다. 그 시선이 조금 전까지 이연화가 쓰던 찻잔을 향했다. 이연화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종려명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고는 더 작게 속삭였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공자. 이미 많은 일이 있었던지라, 다른 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종려명이 고개를 끄덕했다. 동그란 얼굴의 청년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벽차지독은 사라졌으나, 체내에 흔적처럼 남았던 기운이 기관지를 통해 빠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일시적인 증상이니 기운을 보하는 약으로 금방 좋아지실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상비하는 약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청선의방의 약재라면 물론 믿을 수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종 공자."

이연화가 부드럽게 웃으며 건넸다. 긴장한 얼굴로 가볍게 예를 표한 종려명이 자리로 돌아갔다. 옷매무새를 정돈한 이연화가 말했다.

"별일 아니니 부디 심려치 마시지요. 그보다 조금 전 드리던 말씀을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같은 시간까지, 첫 번째 과제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 답을 제출하시면 됩니다. 이후 제가 직접 지통 안의 내용과 대조하여 확인하지요. 이 지통은 만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백천원의 증거 보관실에 두었다가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후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비를 제외한 이들이 답안에 대해 고민하며 사라지자마자, 방다병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연화의 몸을 더듬었다. 아직도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귀가 울렸다.

"이연화, 어떻게 된 거야? 무슨 독이었던 거야? 치명적이지 않다고 했는데, 정말이야?"
"방소보, 방소보. 진정해. 정말이야, 별로 강한 독이 아니었어. 알고 먹은 거야."

이연화가 방다병의 손등을 탁탁 때리며 말했다. 방다병의 얼굴이 멍해졌다.

"뭐?"
"차 맛이 미세하게 이상하더라고. 별로 강한 독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돌게 놔뒀지."

이연화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몸의 혈도 몇 군데를 짚었다. 곧 양주만의 내력이 활발히 체내를 돌자, 살짝 창백해졌던 낯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연화가 눈을 떴을 때, 방다병은 자기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 그런 짓을 왜 해!"
"왜 하긴, 상대가 뭘 노리고 이런 짓을 한 건지 알아야 하니까."
"만일 정말 위험한 거였으면 어쩌려고? 독인 줄 알면서 왜 먹어!"
"정말 위험한 독이었으면 이미 내가 내력으로 방출하려고 했을 거야. 종려명이 말했던 대로, 그냥 기관지를 살짝 건드린 것뿐이야. 뭣보다, 날 정말 죽이려 들었다면 이미 연회 자리에서 손을 썼겠지. 진정해, 진정. 난 괜찮아. 벽차지독도 이겨냈는데, 이 정도는 독도 아니라고."

이연화가 농담처럼 이야기하며 한 손을 대충 내저었다. 영 그 말을 믿을 수 없어, 방다병은 한 손으로 이연화의 팔목을 탁 낚아챘다. "이 녀석이, 무례하긴." 이연화가 혀를 차며 투덜댔지만, 방다병은 무시하고 그 몸을 쭉 둘러보았다. 이연화의 말대로, 그 체내에 독의 기척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놀란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방다병이 억울한 눈으로 이연화를 노려보며 꿍얼거렸다.

"놀라 죽는 줄 알았잖아. 미리 전음으로라도 좀 알려주면 좀 좋아?"
"미안, 미안."

상대가 별로 미안해 보이지 않았기에, 방다병의 기분은 조금 더 나빠졌다. 하지만 방다병이 뭐라 더 타박하기 전에, 적비성이 연회장의 뒷문 쪽으로 날아 들어왔다. 상황을 묻는 말도 없이, 적비성은 성큼 다가와 이연화의 팔부터 덥석 잡았다. 이연화가 혀를 찼다.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하여튼 얘나 너나 성질이 급해."
"네 말은 자주 믿을 게 못 되니까."

적비성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투로 이야기했다. "미약한 독이야. 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기 위해서 잠시 놔뒀을 뿐이라고." 이연화가 불만스레 이야기했지만, 적비성은 묵묵히 이연화의 몸을 훑어본 후에야 그 팔을 놓았다. 미간으로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정신 차려라, 이연화. 네게 한 번 벽차를 썼는데, 두 번이라고 못 쓸까. 조심성 있게 행동하도록 해."
"맙소사. 방소보가 어머니처럼 군다 했더니, 너도 이제 내 부모처럼 구네."
"네가 가끔씩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행동하기 때문이야."

적비성이 코웃음과 함께 쏘아붙였다. 방다병은 내심 그 말에 동조했지만, 이연화를 책망하는 대신 적비성을 향해 물었다.

"아비. 이연화의 찻잔은 언제부터 놓여 있었어?"
"이연화의 다기는 후보들이 모두 모인 후에, 백천원의 일꾼이 내왔다. 직접 독을 탈 시간은 없었을 거야."
"그럼 백천원 내부에 세작이 있다는 거잖아. 바로 원주들에게 알려야겠어."

방다병이 다급히 말했다. "음. 최근에 외부인이 워낙 많이 들고 났으니, 세작이 섞이기에 좋았겠지." 이연화가 팔짱을 끼며 받았다. 적비성이 눈살을 찌푸린 채, 조금 전 후보들이 앉았던 자리를 힐끔 보았다.

"원래 성대경이 나서려던 것 같은데. 미약한 독이었다면, 네 상태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겠군."
"그렇겠지. 하지만 종려명이 있는데, 정말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을까?"
"며칠 지켜보니, 종려명은 나서는 성격이 아니야. 오히려 지나치게 사리고 쓸데없이 사양하는 편이지. 사인백과 추영인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먼저 제 이름을 대진 않았을 거다."

적비성이 단언했다. 방다병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종려명과 사인백은 뱀과 여우일 가능성이 없는 걸까? 아비, 네가 보기엔 어땠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확률은 낮겠지. 만일 그들이 짜고 친 판이라면, 성대경이 정말 연기를 잘한 것이고. 종려명이 진맥하는 동안, 사람들의 기척을 자세히 살폈다. 성대경은 정말 불쾌해 보였어. 아무리 감추려 들어도, 감정이 흐트러진 기척까지 숨길 수는 없지."
"그럼...구소양과 서호천, 경설형 중에 둘인 건가?"

방다병이 어쩐지 미심쩍인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소란을 일으켰다던 미숙한 공자들이, 이런 식의 음모에 엮인 그림을 잘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연화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흠 소리를 냈다.

"그럴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 후보들을 다시 한 번 검토해야겠어. 우리가 의심스러운 사람을 배제했을 수도 있잖아."
"알았어. 그런데, 종려명이 네 상태를 확인한 건 괜찮은 거야? 네가, 그...아이를 못 가진다고 거짓말한 게 들통나는 건 아니겠지."

방다병이 걱정스럽고도 무안하게 우물거렸다. 이연화가 피식 웃었다. "그게 걱정됐으면 진맥하라고 했겠어? 내력을 잠깐 조정해서, 그쪽의 기운을 아주 허하게 만들었어. 관하몽에게 미리 배워뒀지." 의기양양한 얼굴이 안심되면서도 얄미웠다. 방다병은 발로 그 정강이를 한 대 차주고 싶다 생각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잔소리를 했다.

"옷이나 갈아입어. 네가 피 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면 백천원이 뒤집어질걸."
"이상이, 비무 아닌 일로 피를 흘리지 마라. 낭비다."

적비성이 진지하게 한 마디 얹었다. 이연화는 퍽 귀찮다는 눈으로 둘을 흘겨보았으나,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연화 본인은 멀쩡했으나, 백천원에는 한 차례 소란이 일었다. 원주들은 당장 일꾼들 사이에 숨어든 세작을 색출하는 일에 나섰고, 이연화는 그 움직임을 굳이 막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너무 조용하다면 오히려 적의 의심을 살 터였다.

방다병은 그 후 종일 이연화의 곁에 붙어 있었다. 후보들의 자료를 다시 훑어볼 때에도, 밥을 먹거나 무술을 연마할 때에도 쭉 함께였다. 그 입가에 이제 붉은 흔적 따위는 없었지만, 어쩐지 한 번 소란해진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 피 섞인 기침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늦은 밤 이연화가 생활하는 별채에 다다라, 방다병은 발길을 돌리지 않고 잠시 주저했다. 이연화가 무슨 할 말 있느냐는 눈으로 방다병을 돌아보았다. 

"이연화. 오늘 네 방 앞에서 자도 돼?"

망설이다 건네자, 물론 이연화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조금 전 내가 들은 것이 확실한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 내 방 앞?"
"응. 문 앞에서 자게."
"왜 그런 데서 자? 옆방도 아니고."
"오늘 누가 너한테 독을 썼잖아. 밤을 틈타 무슨 짓을 더 하려고 들지도 몰라."
"방소보, 누가 내 방에 들어오려고 하면 내가 알겠지. 내 기감이 그렇게 못 미더워?"

이연화가 헛웃음을 뱉듯이 말했다. 방다병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물론 이연화가 자신보다 아득한 고수라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해도, 상대가 진심으로 검을 휘두른다면 결코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실력이나 믿음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방다병이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조금 풀이 죽은 투로 말했다.

"그런 게 아냐. 그냥, 내가 걱정돼서 그래. 어차피 내 방에 가도 깊이 못 잘 것 같아."

이연화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방다병을 빤히 보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방 도련님. 네가 편한 대로 해. 하지만 굳이 밖에서 잘 필요 없어, 천기산장의 귀한 도련님을 문앞에서 재웠다간 나중에 하 당주에게 매를 맞을걸. 방도 큰데 뭣하러 문간에서 자? 그냥 방에 들어와서 자도록 해."
"그, 그건 안 돼."

방다병이 화들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연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네가 무슨 절 문에 있는 사천왕이라도 돼? 적이 들어오려다가 널 보고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 방다병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역시, 이연화는 스스로의 변화에 영 무뎠다.

"이연화, 넌 지금 공개 혼사를 진행 중인 음인이라고...나랑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면 무슨 소문이 돌겠어?"

아. 이연화가 혀를 차며 눈가를 살짝 만졌다. 잠시 생각하다, 그는 곧 어이없는 웃음을 픽 흘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너와 생활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 걸 미처 생각 못했다. 그래, 그럼 알아서 해. 추우면 돌아가고." 가볍게 건넨 이연화가 문 너머로 사라졌다. 방다병은 문으로 비치는 그림자를 잠시 지켜보다, 곧 한숨과 함께 문 앞에 걸터앉았다. 방문을 등지고 고개를 들자 밤하늘의 달이 깨끗하게 보였다. 방다병이 품 안의 술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나도 내가 너무 유난하게 행동한다는 건 알지만...넌 죽었다가 살아왔다가, 다시 죽을 뻔했잖아. 못된 늙은 여우." 

방다병이 이연화의 얼굴을 보듯이 술병을 응시하며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붙드는 손길들을 모두 뿌리치고 사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던 남자를 보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슬펐는지, 아마도 이연화는 평생 모를 터였다. 이제 겨우 건강해졌는데, 다시 적의 계략에 넘어가 위험해지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일이 끝날 때까지-아니, 이 일이 다 끝난 후에도 꼭 별일 없도록 지켜줘야지. 방다병이 다짐하듯 생각하며 다시 술병을 기울였다. 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도, 도처의 위험을 모두 혼자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이연화처럼 때때로 무모하게 구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취기가 빨리 오른다고 생각하며, 방다병은 하늘을 바라보다 잠시 선잠에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방다병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야, 잠들기 전까지 생각하던 사람이 크게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아래에 깔려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명료하게 생각하기엔 상대의 체취가 너무 좋아서, 방다병은 잔뜩 취한 기분으로 그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방다병!" 이연화가 기겁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