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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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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난 얼굴에 생채기를 한가득 단 칼럼 터너가 여기저기 멍이 들어 쑤시는 몸을 웅크렸다. 허니 비 터너는 그를 가만히 내려봤다. 기가 차다는 듯 허, 하고 뱉어내는 못 마땅한 숨소리에도 칼럼은 무릎에 묻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허니는 구두 끝으로 칼럼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야."

"..."

"왜 그랬냐고."

"..."

"쳐맞고 죽으려고 작정했니? 5대 1이었다며?"



허니가 속을 콕콕 찌르는 말을 하는데도 칼럼은 침묵을 이어나갔다.



"뭐가 문젠데. 진짜 대가리가 미쳐 돌아갔어?"



걔들이 네 얘기를 해서 바보처럼 대뜸 주먹을 날렸다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허니의 말대로 5대 1이었다. 다섯 명의 무리에 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제 욕은 참을 수 있었지만 허니의 이름을 더럽히는 추잡한 잡담을 듣고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칼럼에게서 여전히 답이 없자 허니는 그를 죽일듯이 매섭게 노려보다가 반 발짝 뒤로 물러났다.



"너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나 집 간다?"

"..."

"... 나 진짜 가-"

"가지 마."



허니는 그제야 조금 웃었다. 칼럼은 여전히 고개를 무릎에 묻고 있었지만 왼쪽 팔을 천천히 뻗었다. 허니는 기꺼이 칼럼의 손을 잡고 그의 옆에 앉았다.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는 골목이라 바닥이 더러웠지만 예쁘게 차려입은 옷이 망가지는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허니는 칼럼의 손에 깍지를 끼며 손장난을 치다가 다시 말을 걸었다.



"많이 맞았어?"

"..."

"그렇지만 네가 때리기도 많이 때렸지?"

"... 응."

"잘했네."



허니는 그의 손을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그새 선명하게 색이 바뀐 멍이 손등부터 팔을 타고 올라갔다. 볼에는 멍 뿐만아니라 생채기까지 나있었는데 허니는 그걸 보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밴드를 꺼냈다.



"칼럼,"



허니가 칼럼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 봐 봐."



칼럼이 절 바라볼 생각이 없어 보이자 허니는 칼럼의 턱을 부드럽게 쥐고 제게로 끌어당겼다. 허니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굴면 칼럼은 별 수 없었다. 허니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만 했다.

허니는 칼럼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곤 제 손에 들린 밴드를 바라봤다가 칼럼의 볼에 붙여주었다.



"밴드가 하나 밖에 없어서 미안해."



칼럼은 곳곳에 마른 핏자국이 묻은 얼굴에 핑크색 캐릭터 밴드란 좀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떼어내거나 하진 않았다.



"집에 가자. 내가 연고도 발라줄게."

"싫어."



칼럼이 다시 고개를 무릎에 묻었다. 왼손은 여전히 허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머니 때문에 그래? 혼날까 봐?'

"어머니는 무슨. 그게 무슨 어머니야. 무슨 엄마가 그래."

"너 그래도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어머니 맞는데 뭘."

"엄마는 나 같은 거 좆도 신경 안 써. 분명 이번에도 집 가면 소리만 빽빽 지를 걸?"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 표현을 잘 못하셔서 그럴 거야."

"그거 내 걱정 아니고 자기 평판 걱정하는 거잖아. 동네 아줌마들끼리 지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자랑하려고 만든 좆같은 모임에 나 안 왔다고. 마음에 있지도 않은 내 자랑은 왜 하고 다니는 거야? 기분 더럽게."

"그렇지 않아, 분명 널 사랑하셔."



대체 왜 그렇게 엄마 편을 드는 거야? 칼럼은 허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널 입양한 것도 좋은 이미지, 착한 이미지 꾸민다고 한 거일텐데. ... 칼럼은 차마 허니의 웃는 얼굴에 대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집에 가자."



허니는 집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다시 돌아갈 곳이 당연하게 있다는 것이 좋았다. 칼럼은 허니에게 미안했다. 더 따뜻하고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허니의 기회를 빼앗은 기분이었다.

허니가 먼저 일어나서 칼럼의 팔을 당겼다. 괜히 드세게 굴고 싶지 않았던 칼럼은 마지못해 허니에게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





당연하게도 쓴 소리를 한 바가지 들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칼럼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엉망이 된 허니의 옷차림을 보고 또 한 마디 하려는 걸 허니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칼럼은 서둘러 허니를 방 안으로 데려갔다.



"칼럼 터너, 너 이리 안 와? 계집애 옷 좀 보게 데리고 나와 봐."

"아, 싫다고, 좀 닥쳐 봐."



칼럼은 문을 걸어 잠그며 볼멘소리를 냈다. 문에 고개를 쿵쿵 박다가 허니가 손끝을 잡아당길 때 겨우 허니를 바라봤다. 허니는 안절부절 못 하며 입술을 짓이겼다. 



"나 때문에 화가 나셨을까?"

"..."

"..."

"그거 먼저 갈아입어."



칼럼은 대답 대신 허니가 편하다고 즐겨 입던 제 옷을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허니는 제가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봐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지 품에 안은 옷가지에 고개를 푹 묻었다. 



"뒤 돌아 있을게."



칼럼은 다시 문을 마주해 섰다. 곧 허니가 옷을 갈아입는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 한 것도 없고 본 것도 없는데 저도 남자라고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당겼다. 요즘 들어 누구에게도 반응하지 않던 녀석이 매번 멍청하게 허니에게만 반응했다. 다시금 제 욕을 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족한테 욕정하는 역겨운 새끼.'

'아무리 입양아라도 그게 가능하냐? 이제 한 집 같이 사는 식구일텐데?'

'터너 그 새끼는 기회라고 생각할지도.'

'한 번에 둘 셋도 상대하던 애가 요새는 파티에 오지도 않는다며?'

'고아 새끼 아니면 이제 안 선대.'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그래도 제 욕이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솔직히 걔 얼굴도 예쁘장하니 귀엽고 몸도 괜찮잖아.'

'누가 알아? 돈 필요하다고 몸 팔고 다녔을지.'

'둘이 잘 만났네. 짐승 새끼랑 걸레 년-'



그리고 그 이후로는 참을 수가 없었다. 



"칼럼."



허니는 칼럼의 침대에 앉아서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달랑거렸다. 옷의 사이즈가 커서 입었다기보단 걸쳤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피곤하면 여기서 자도 돼."



허니를 밤새 혼자두고 싶지 않았다. ... 칼럼 자기자신을 혼자두고 싶지도 않았다. 허니는 다시금 생긋 웃었다. 허니는 칼럼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칼럼은 망설임 없이 허니 앞에 무릎을 꿇고 허니의 손에 제 얼굴을 맏겼다. 허니는 칼럼의 얼굴에 난 상처가 속상했다. 이번에는 또 왜 싸운 건지 궁금했지만 매번 그랬듯이 칼럼은 싸움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을 것이다. 허니는 익숙하게 침대맡 서랍에서 연고와 밴드를 꺼냈다. 

칼럼의 얼굴에는 네 개의 평범하고 심심한 밴드와 한 개의 귀여운 분홍색 밴드가 자리 잡았다. 

칼럼은 허니의 다리에 고개를 기대었다. 허니의 손가락이 제 머리카락을 가르는 게 기분이 좋았다. 허니가 제 졸음에 못 이겨서 고개를 꾸벅일 때쯤 되어서야 칼럼은 허니를 침대에 바로 눕혀 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니가 완전히 잠이 들고 나서 늦게 옷을 갈아입고 피곤한 몸을 바닥에 뉘였다. 접이식 메트리스를 필 힘도 남아나지 않아서 대충 이불만 깔았다. 온 몸이 쑤셔서 아침에 일어날 수 있으려나 싶었다. 

겨우 막 잠이 드려는데 늦게 귀가하신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도, 엄마가 무어라 애원하는 소리도 질려버렸다. 오늘은 제발 방문을 부술듯이 두드리지 않았으면 했다. 오늘 아버지까지 상대할 힘은 없었다. 그래서 칼럼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런 인기척조차 내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방문 아래로 들어오는 불빛을 보고 있으니 곧 불이 꺼지며 밖에서 들리던 말소리도 사그라들었다. 



"... 칼럼..."

"아..."



깼어? 칼럼이 조용히 물었다. 목소리가 잠겨서 허니가 제대로 들었는지도 잘 몰랐다. 



"나랑 같이 자자, 이리 와."



무서워, 하고 허니가 덧붙였다. 허니가 그렇게 말하면 칼럼은 또 별 수 없었다. 찢어질듯 울부짓는 몸을 느리게 일으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허니는 어둠 속에서 칼럼을 찾아 손을 뻗었다. 칼럼이 손을 마주 잡고 제게로 당겨 주었을 때 안심한 허니가 얌전히 칼럼의 품으로 몸을 기대왔다. 허니의 몸이 따뜻하게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칼럼은 허니가 다시 잠들 때까지 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허니가 칼럼의 가슴팍에 볼을 비비며 완전히 잠에 들었을 때 칼럼은 진심을 담아 전했다. 



"미안해."








칼럼너붕붕
2024.05.08 22:52
ㅇㅇ
모바일
대작의 시작이다..... 센세 어나더.......... 존맛.......
[Code: ebd0]
2024.05.08 23:20
ㅇㅇ
모바일
아 애잔하네
[Code: 57b7]
2024.05.08 23:58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이건 문학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452]
2024.05.10 04:26
ㅇㅇ
모바일
와 와우 와 미친
[Code: fb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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