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일본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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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4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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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교수가 그날 밤의 그 사람이 아닐 리는 없었다. 저 얼굴, 저 눈빛, 저 목소리, 저 분위기와 저 냄새를 착각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마치다를 끝없이 몰아갔던, 마치다를 미치게 만들고 마치다를 완전히 통제하고 주물러댔던 바로 그 남자였다. 마치다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심리학에는 꽤 흥미가 있어서 열심히 공부해 볼 요량으로 의욕을 가지고 참여했는데.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 혹시 저 남자, 아니 저 교수와 눈이 마주칠까 봐, 저 남... 저 교수가 자신을 알아볼까 봐. 게다가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교재는 어떤 걸 마련해야 하는지, 평가는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어차피 공지 페이지에 다 있겠지만) 일일이 설명해 주는 목소리와 말투가 자꾸 그날 밤을 떠올리게 해서...
"열 나? 아픈 거 아니야?"
급기야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그렇게 물어볼 정도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한 옆자리 친구가 계속 걱정하는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밤 마치다를 흥분하게 했던, 지금도 마치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 목소리가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라고 말한 순간, 마치다는 빠르게 책과 패드를 정리해 넣고, 강의실을 나서는 친구의 등 뒤에 숨어서 교수의 눈에 띄지 않게 강의실 밖으로 나갔....
... 다가 잡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어느새 쫓아와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사람이 그날 밤의 그 상대, 그러니까 스즈키 노부유키 교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첫 수업이라고 신경을 썼는지 시가 냄새는 나지 않았고, 수업을 하러 온 판이니 당연히 위스키도 마시지 않았을 터라 위스키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샌달우드 냄새와 아득한 고서의 향이 체취와 섞인 어딘가 묵직하면서도 달콤한 이 냄새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에 저 단단한 품에 안겨서 몇 번이고 자지러지는 동안 들이마신 향이 얼마인데.
"학생, 잠깐 이야기 좀 하죠."
시선을 내려 남자에게 잡힌 손목을 보자, 그날 밤이 다시 떠올랐다. 남자는 그날 밤에도 마치다의 아래가 얼얼해질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동안 마치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이렇게 마치다의 손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자기 뼈대가 얇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남자의 커다란 손에 잡힌 손목은 유독 얇아 보여서 한숨을 삼킨 마치다는 여전히 시선을 내린 채로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목소리... 알아들었겠지...? 마치다가 남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으니, 남자도 당연히 마치다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해도 괜찮겠습니까?"
안 되지. 그건 절대로 안 되지!
돔과 섭, 지배와 복종, 통제 같은 이야기, 상식이 있는 이라면 공개된 자리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야하고 음탕한 이야기가 가득 숨겨진 관계인데, 무슨 말이 나올 줄 알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
그래서 낚이는 건 줄 뻔히 알면서도 남자의 연구실, 그러니까 남자의 교수 연구실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마치다가 도망칠까 봐 걱정됐는지 마치다의 손목을 놓지 않고 걸었다. 아플 정도로 잡은 건 아니지만... 굳이 빼 내려고 하면 빼 낼 수도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그저 잡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날 밤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꽉 잡혀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답게 처음 들어와 본 교수 연구실로 끌려들어가 교수가 문을 닫고 확실히 잠그는 것까지 확인한 뒤였다.
남자가, 스즈키 노부유키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걸 마치다는 오늘에서야 알게 된 이 남자가, 마치다를 문쪽으로 밀어붙이고, 틀어쥐고 있던 마치다의 손목을 마치다의 위쪽으로 올려 누르며 마치다를 내려다봤을 때.
이 남자가 그날밤 호텔 방 안에서 이렇게 커다란 덩치로 내려다보며 마치다를 밀어붙이던 순간이.
지금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샌달우드와 이 연구실에 가득한 묵직한 고서 향기에 더해 위스키와 시가 향까지 더해졌는데도 그래서 더 매혹적이던 그날밤의 향기가.
'가고 싶어? 그럼 가게 해 달라고 예쁘게 빌어봐.' 밤새 심술궂게 그런 소리나 해댔으면서 또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이것만 마시고 푹 자요. 빈속으로 자면 새벽에 속아플 거예요.'그렇게 다정하게 달래주기도 했던 목소리가.
밤새 마치다를 조롱하고 명령하고 통제하고 괴롭히면서도 단 한순간도 진심으로 경멸하거나 비난하는 눈빛을 보이지는 않았던 상냥하고 진중한 눈빛이...
해일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며 다시 그날밤이 선명하게 떠올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저도 모르게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지금 마치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날 밤 마치다를 사정없이 통제하고 무자비하게 지배하고 그의 발 밑에 엎드리게 했던 그 잔혹하고 오만했던 남자가 아니라 예의바르고 다정한 교수라는 걸 아는데도, 이 남자와 눈이 마주친 채, 이 남자에게 또 손목이 틀어잡힌 채로 이 남자의 향기와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있자, 어쩔 수 없이 또 그날 밤 이 남자에게 안겨 있던 수많은 순간에 그랬던 것처럼 숨이 차오르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그때까지도 내내 마치다를 걱정스럽게, 그리고 조금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남자의 입꼬리가 휘어지는 게 신기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조롱기를 담았지만 그만큼 희열도 가득한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박혀왔다.
"그 끝내줬던 밤을 나만 기억하고 있는 줄 알고 서운할 뻔했잖아."
#놉맟
#돔섭놉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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