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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23:58
샤워기를 틀었을 때에도 대장님은 멍하니 열에 취한 표정이었다. 플레이에 유난히 몰입한 날이면 그는 현실로 돌아오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렸고 이후에도 한동안 말수가 줄어들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애정 표현을 많이 해드릴수록 회복이 빨라졌기에, 스모크스크린은 대장님을 씻겨드리는 내내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 욕조에 앉혀서 체액 범벅이 된 하반신을 부드럽게 세척하고 달궈진 밸브에서도 오일과 트랜스액을 꼼꼼히 빼냈다.


“으응…”


손가락이 내부를 부지런히 오가는 동안 대장님이 가볍게 신음했다.


“아파요?”

“으음, 괜찮네…”


이럴 땐 라쳇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를 만져서 신음하시는 건지 아니면 아픈데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의연한 척 하시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스모크스크린은 잠시 그와 시선을 맞추다가 느리게 립 플레이트를 겹쳤다. 과장되게 움쪽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맞추길 반복하자 대장님이 살며시 이마를 마주대왔다.


“흐응…”

“이번에 안 힘드셨어요?”

“네… 아니, 괜찮았네.”


무심결에 존댓말로 대답하던 그가 말을 고쳤다. 바비가 대장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도울 겸 스모크스크린은 머리를 들이밀었다. 플레이 동안 경직되어있던 수직관계를 우회적으로 해소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저 쓰담쓰담 해줘요.”


따스한 손길이 조심스럽게 헤드 장식에 닿았다. 스모크스크린은 그 손바닥에 머리를 마구 부벼댔다. 고개를 들어서 본 대장님의 얼굴에는 귀여워하는 미소가 걸려있었으나, 곧 다시 사그라들었다. 얼핏 보면 평소와 같이 온순한 무표정에 어딘가 우울의 그늘이 드리워진 상태였다. 혹시 플레이 중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었던 걸까?


“이번에 어땠어요? 수정해서 다음에도 해보고 싶으신 거 있으면 알려주세요. 대장님 생각도 듣고 싶어요.”

“난 좋았네... 자네도 만족스러웠나?”

“엄청나게 무지하게 좋았어요. 대장님이 왜 하자고 하셨는지 알 거 같아요. 혹시 뒤는 괜찮으세요? 이렇게 많이 때린 건 처음인데… 에너존 나온 것도 처음이고.”

“지난번보다 좋았네.”


대장님이 머뭇거리더니 조금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언제나 막연하게 좋았다는 말만 연발하는 그에게서 이렇게 비교하는 피드백이 나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스모크스크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많이 때린 게요? 아니면 살살 때린 게요?”

“음, 둘 다…”

“지난번에는 강도가 너무 셌어요? 아니면 밸브를 많이 때려서?”

“지난번에도 괜찮았네.”

“아니… 안 괜찮아서 기절하셨잖아요… 어쨌든 이번이 나았다는 거죠?”


대장님은 말을 고르는 듯 하더니 답했다.


“체력 안배가 안 되었을 뿐 그 때도 좋긴 했네.”


스모크스크린은 그의 립 플레이트에 냅다 샤워기 물을 뿌렸다.


“아 진짜아, 솔직하게 말 좀 해주세요. 이게 뭐라고 그렇게 조심하냐고요. 아무래도 대장님 때문에 전 바비가 만족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나쁜 주인이 돼버릴 거야.”


그제서야 좀 나은 대답이 나왔다.


“음… 사실… 초반부에는 살살 맞는 게 조금 더 좋은 것도 같네.”

“그거야 쉽죠. 근데 왜요?”

“그러면 나중에 강도가 세지거나 오래 맞아도 잘 적응할 수 있거든.”

“보셨죠? 건강한 피드백. 어렵지 않잖아요.”


다음 번에는 그렇게 해서 육십 대로 늘려봐야겠다. 세정액을 마저 헹궈내면서 콧노래를 부르자 대장님이 작게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아까와 같이 미묘하게 울적한 낯빛으로 돌아왔다. 플레이가 문제가 아니었나? 스모크스크린은 빠르게 자신의 몸을 세척하며 물었다.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닐세.”

“....대장니임.”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일세.”


뭔지는 몰라도 또 얼버무리고 계셨다. 스모크스크린은 입을 삐죽거리며 어떻게 자백을 받아낼지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대장님의 그 반응이, 근심없이 쾌감의 늪을 유영하던 바비 상태에서 현실의 책임에 짓눌려 우울증을 앓는 프라임으로 돌아오느라 발생하는 일종의 후유증이란 걸. 대장님이 질문을 선수쳤다.


“자네는.. 우리 관계에 만족하나?”

“네? 당연한 말씀을.”

“지금처럼 플레이 때에만 단편적으로 주인님 대우 받는 게 괜찮은지 묻는 것일세. 만약 내가 일반 대원이었다면 하루 중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을 텐데...”

“전 지금 정도가 적당한데요. 24시간 주인님 행세해야 하면 애교를 못 부리잖아요. 대장님한테 귀여움도 못 받고.”

“훗, 그건 그렇네.”


둘은 보송하게 동체를 말리고 나서 쿼터 안쪽으로 돌아왔다. 오일을 쏟는 동안 꽤나 긴장했던지 대장님이 탄성 같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몸을 맡겼다. 스모크스크린은 패인 둔부에 입을 맞출 때마다 흠칫거리는 그를 감상하다가, 컴파운드를 바르기 시작했다. 엎드려 누워서 한참 손길을 받던 대장님이 뜬금없이 웅얼거렸다.


“스모키..”

“네?”

“자네는 좋은 메크야.”

“....”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그렇네. 알파 트라이온도 자네를 자랑스러워 하실거야.”


스모크스크린은 굳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습 공격 같은 문장이 스파크를 움켜잡고 흔들었다. 대장님의 말은 최면적이었다. 그건 신뢰가 가지는 힘이었다. 그가 좋은 메크라고 하는 순간 꼼짝없이 좋은 메크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대장님만큼 절대선에 근접한 존재가 의미 없는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온 우주를 배신해야 한다더래도 대장님만큼은 실망시킬 수 없었다. 스모크스크린은 좋은 메크가 되어야했다.


“갑자기 사랑 고백타임이에요? 좋아하는 걸로 따지면 대장님은 절대 저 못 이기실 걸요. 상대가 될 법한 싸움을 거셨어야죠.”

“...쿨링 팬 회전 수로 측정하자면 내가 더 높을걸세.”

“스파크 부정맥은 제가 더 많이 걸렸는데요.”


그의 스파크 박동을 확인하려는 듯이 등 뒤로 뻗어져나온 팔에 뽀뽀하는 동안, 덜 마른 폴리쉬가 뭉그러져서 컴파운드를 덧발라야했다. 그 뒤로도 누가 누굴 더 좋아하니 하는 유치한 말싸움을 하던 도중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콘적스 리투스 얘기를 스모크스크린은 도로 삼켰다. 긍정적인 대답을 받을 거라는 자신이 아직 없었다. 왠지 지난번과 똑같이 말을 돌리실 것 같았다. 그러니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쌉싸름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는 대장님의 무릎 손상 복구에 집중했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얼굴을 완갑 사이에 묻고 있는 대장님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트포 스뫀옵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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