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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9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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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얼굴이 좀 발그레해진 마치다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나가자. 이미 여기서 너무 많은 말을 했어."

마치다가 말한 적은 없지만 스즈키가 샤워를 하는 동안 마치다가 방 안에 몰카나 도청기가 설치돼 있는지 확인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밤을 보내고 난 뒤 마치다가 씻으러 갔을 때 스즈키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마치다의 옷을 소파에 걸쳐놓다가 옷에서 떨어진 도청장치 감지기를 본 적이 있었다. 사진을 찍어 나중에 모델을 확인해 보니 도청장치와 몰카가 전부 감지되는 고성능 모델이었다. 그러니 이 방에 도청장치가 있지는 않겠지만 경계하는 마치다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워낙 경계심이 높은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두 사람은 바로 호텔을 나왔다. 

"우리 어디 가요?"

마치다는 스즈키를 흘긋 바라보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는 니네 집. 나는 내 집."
"이야기 좀 하자니까요."
"무슨 이야기."

자기가 '일단 나가자'고 했잖아. 여기서 너무 많은 말을 했다고. 그러면 자리 옮겨서 이야기하자는 말 아니었어? 게다가 스즈키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누구의 소행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지령팀장이나 본부장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려면 당시 상황을 알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스즈키도 그 일을 떠올리는 게 마치다에게 고통일 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어서 잠시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목소리를 죽여서 속삭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긴 했지만 혹시 몰라서.

"오늘 부대표라는 사람이랑 본부장이라는 인간이랑 붙었어요. 오늘 케이가 나갈 뻔했던 그 작전 때문에요. 거기서 이야기를 좀 들었는데 길거리에서 떠들기는 좀 민감한 문제잖아요."
"... 본부장?"

마치다는 걸어가는 내내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스즈키에게 꺼지라고 하지도 않아서 두 사람은 차량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새벽 거리를 걸었다. 마치다의 집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스즈키는 마치다의 거처가 이 근처일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마치다를 발견한 바도 그랬고 이후에 마치다가 출몰했던 바들도 다 근처였으니까. 마치다가 이 도시 곳곳 사방팔방에 있는 바들을 돌아다녔다면 몇 년간 마치다의 폰번호도 몰랐던 스즈키가 애초에 어떻게 찾았겠는가. 그런데 마치다는 큰길을 따라가지 않고 골목으로 접어들더니 골목을 나와 다시 다른 골목으로 이번에는 큰길로 다시 다른 골목, 골목을 나온 후에는 다시 다른 골목으로...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술은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술이 덜 깼냐고 그래서 집에 가는 길도 못 찾겠냐고 농담을 하려던 스즈키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순간적으로 발걸음이 멈췄다.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

마치다는 여전히 무심하게 발을 옮기면서 낮게 속삭였다. 스즈키가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이며 마치다의 옆으로 붙자, 마치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작게 속삭였다. 

"부대표랑 본부장 만났다고?"
"네."
"거기 누구 또 있었어?"
"지령팀장이요."

마치다는 더 이상 말이 없었기 때문에 스즈키는 옆에서 걸으면서 작게 물었다. 

"꼬리 붙었어요?"

미행이 붙은 거냐고 묻자 마치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직에서 소속 요원을 미행할 필요가 있나? 본부장이 붙인 건가? 부대표가 말한 그 약점이 요원 하나, 아니 둘을 죽여없애야 할 정도로 큰 거라고? 그러나 이 길거리에서 그 이야기를 마치다에게 할 수는 없었고 마치다는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바로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스즈키에게는 마치다의 단단하고 가느다란 몸이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몇 번 더 골목을 꺾었을 때, 마치다는 스즈키를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으로 끌어당기고 스즈키의 앞을 가로막아 스즈키를 가려주더니 바로 옆의 어느 가게에서 내놓은 세로형 광고 배너를 끌어다 건물 틈을 가로막았다. 

건물 사이 틈이 너무 좁아서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마치다는 스즈키를 등 뒤로 보내고 거리의 기척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 언젠가 실탄이 들어간 총을 든 경비들이 지나가는 와중에 지금처럼 작은 틈에 몸을 숨기고 바짝 긴장한 채 기척을 살피던 마치다를, 헬폭스를 모니터로만 바라보고 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헬폭스의 옆에 있으면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마치다보다 더 큰 덩치를 하고는 마치다의 뒤에 숨겨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작은 한숨을 참지 못한 건 그래서였다. 물론 그들에게 붙은 미행이 들을 수도 있으니 입 안으로만 삼킨 한숨이었으나. 

"너는 기초훈련 1년받고 바로 지령팀 훈련으로 넘어갔으니까. 괜찮아."

마치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여전히 앞만 주시하고 있었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시큰둥한 목소리로 다정한 위로가 돌아왔다. 

스즈키가 기초훈련 1년 후에 바로 지령훈련으로 넘어간 건 사실이었다. 원래 훈련소에서는 체력훈련과 보안교육, 사격 등을 공통으로 배우고 1년이 지나 시험에 통과하면 각각 지령과 잠입 훈련으로 넘어갔다. 잠입 훈련에서는 각종 각종 무기사용 훈련이나 강화된 체력훈련 등을 받고 지령 훈련에서는 시스템을 뚫는 법이나 암호 해독법 등을 주로 배우는데 훈련 내용이 그다지 심도가 깊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군경이나 타 민간군사조직에서 경력을 쌓아야 훈련소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 기초는 다 쌓고 왔으리라 여기기 때문에. 스즈키는 애초에 목표가 아저씨가 있는 이 조직이었기 때문에 경찰에서는 필요한 기한만큼만 채우고 바로 넘어왔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당연히 아저씨는 마치다의 이전 경력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스즈키도 간혹 다른 팀에 지령을 내린 적이 있기 때문에 마치다가 다른 어줍잖은 요원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괜히 조직에서 마치다가 알파 팀이 몰살됐을 때 조직을 뒤엎고 신참 요원이 폭스라고 불렀을 때 작전 수행을 거부하기까지 했는데도 그 못된 성질을 달래가며 고이고이 데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게 아저씨의 팀에서 경험을 잘 쌓아서 그런 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서 스즈키가 마치다에게 더 가까이 붙자, 마치다가 아무말없이 손만 뒤로 내밀어서 스즈키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지났을 때 마치다는 뒤를 돌아 스즈키를 보더니 스즈키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같은 호텔에서 씻고 나와서 같은 샴푸향과 비누향이 풍기는 몸을 끌어안고 있으니 뭔지모를 불안으로 들끓던 가슴이 차츰차츰 가라앉았다. 스즈키가 마치다를 끌어안고 있는 동안 불안을 조금 가라앉혔듯이 마치다도 스즈키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 들끓는 불안을 조금 씻어낸 것처럼 몇 분간 끌어안고 있기만 하던 마치다가 나직하게 물었다.  

"너 집주소 조직에 사실대로 알려줫어?"

잠깐 무슨 말인지 몰라서 멍해졌던 스즈키는 잠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엔 그랬었는데 이사하고는 이사했다고 알리진 않았어요."
"... 일단 내 집으로 가자."





마치다의 집은 "평범한" 2층주택이었다. 마치다가 문을 열고 스즈키를 먼저 들여보낸 후 집 안으로 들어오자 마치다의 재킷 안에서 붉은빛이 반짝반짝하기 시작했다. 스즈키가 긴장해서 마치다를 돌아보자 마치다는 재킷 안쪽을 열어보였다. 재킷 안에 들어 있는 건 언젠가 스즈키가 본 적이 있었던 도청장치 감지기였다. 설마 집에 도청장치나 카메라가 설치된 건가? 스즈키가 침을 꿀꺽 삼키자 마치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1층에 있는 거실의 불을 켜면서 도청장치의 스크린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들여다보자 스크린 상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도청장치와 몰카의 위치가 떠 있었다. 스즈키는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지만 마치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기기들이 각각 어디에 설치돼 있는 건지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린을 눌러 기기를 껐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가서 가구가 별로 없는 침실의 불을 켜고 침실에 붙어 있는 욕실에도 들어가 불을 켰다. 욕실을 나와 불을 켜지 않은 옆방으로 가서 잠시 창밖을 지켜보던 마치다는 다시 돌아와서 욕실의 불을 끄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치다가 집 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마치다가 가지고 있는 도청장치 감지기는 계속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다는 2층에서도 한 번 몰카와 도청장치 위치들을 꼼꼼히 확인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숫자의 기기들이 설치된 걸 보고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불을 켜지 않은 부엌의 창가에서 밖을 잠깐 내다본 마치다는 스즈키를 데리고 1층 부엌 옆에 있는 작은 펜트리로 들어갔다. 늦은 저녁을 먹고 호텔에 가긴 했지만 식사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기 때문에 조금 출출하긴 했다. 그렇지만 너무 긴장해서 뭘 먹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그저 마치다의 등만 바라보고 있자 마치다가 흘긋 스즈키를 바라봤다. 

"배고파?"
"... 아뇨."
"졸려?"
"아뇨."
"음... 그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마치다는 펜트리에서 라면 한 팩과 계란 한 팩을 챙기고 돌아서다 스즈키를 보더니 라면을 한 팩 더 챙기고 통조림 몇 개와 작은 크기의 쌀 한 봉지, 크래커 한 상자를 챙겼다. 

나 그렇게 많이 먹게 보이나...?

그러나 머쓱할 틈도 없었다. 마치다는 작은 바구니에 챙긴 인스턴트 제품들과 쌀, 계란을 넣더니 바구니를 스즈키에게 들리고 통조림이 가득 쌓인 펜트리 선반 뒤쪽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자 바닥의 타일 한 칸이 열리고 시커먼 공간이 드러났다. 

"내려가자."

.... 네?





사다리를 타고 꽤 깊게 내려간 뒤 마치다가 벽 쪽으로 가서 어딘가를 누르자 사다리가 위로 다시 올라갔다. 너무 캄캄했기 때문에 스즈키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 기다리고 있자 마치다가 다가와서 스즈키의 손을 잡았다. 마치다가 이끄는 대로 몇 발짝 걸어가자 마치다가 스즈키를 끌어당겨서 세웠다. 아직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아 몰랐는데 바로 앞이 벽인 듯했다. 마치다가 벽에 손을 올리고 어딘가를 누르는 것 같더니 곧 벽의 조그마한 부분이 튀어올라와 옆으로 스윽 밀리면서 푸른 빛을 뿜어내는 스크린이 뜨고 곧이어 숫자판과 홍채 인식장치가 나타났다. 스즈키가 멍하게 난데없이 나타난 첨단 보안설비를 보고 있자 마치다는 능숙하게 숫자 여러 개를 누르고 눈을 가져다댔다. 그게 시작이었다. 

마치다는 스즈키의 손을 잡고 어두컴컴한 지하터널을 걸어가면서 그렇게 몇 번의 문을 통과했고 모든 문은 두 사람이 지나가면 바로 닫혔다. 보안장치는 때때로 지문인식장치였고 때때로 홍채 인식장치였다. 정맥인식이나 USB 삽입을 요구하는 문도 있었다. 그렇게 빙글빙글 돌며 몇 개의 문을 통과한 뒤에야 마치다가 벽의 장치를 누르자 눈앞의 벽이 열리는 대신 머리 위쪽에서 퉁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다리가 내려왔다. 

스즈키가 멍하게 사다리와 마치다를 보고 있자, 마치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스즈키에게 바구니를 받고 사다리를 통통 쳤다. 

"위에 올라가도 사람 잡아먹는 괴물 같은 건 없어. 진짜 내 집이 있지."






혐생 이슈로 띄엄띄엄 올 예정...
#요원놉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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